📚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은이), 김화영 (옮긴이) 책세상 2023-11-07, 512쪽, 프랑스 소설

🐁 고전 페스트가 코로나 시대에는 더 많이 공감되었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정작 전염병의 시대가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을거라고 아예 생각이 바뀌었다. 그 상황이 공포스러운 건 기본적으로 죽음.그러나 죽음이 전부인 건 아니다. 나는, 우리는 무엇이 무서웠을까. 그 많은 공포도 어느 순간 무뎌지고 누군가의 삶을 하찮게 여겨도 당연해지는 세상. 그 세상은 정말 인간이 제일 무서운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 어떤 것과 단절된다는것은 생각보다 공포스럽다. 산다는 건 죽음만큼 받아들이기 어렵다. 살려면 먹고 살아야 하는데 전염병의 시대는 가난하다. 경제도 정신도 지탱할 것이 점점 약해진다. 그러다 보면 세상은더 많이 무서워 진다. 그럼에도 소설 페스트는 보잘것 없는 존재가 된 평범한 사람들이 연대한다. 감동적이거나 극적인 것과는 멀게 조금은 건조하게. 그렇게 우정이 시작되고 서로를 믿고 연대를 한다. 끝까지 대단한 드라마는 없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지만, 결국 서로를 지킨다.

🐁 시스템이 통제되면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 나온다. 혹은 반대로 시스템이 무너지더라도. 리외(리유)처럼 무심한 듯하면서도 성실하게 관찰하는 사람, 타루처럼 적극적으로 연대를 하려는 모습, 랑베르처럼 도망가려는 사람, 또 랑베르처럼 처음에 도망가려했지만 결국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사람, 코타르처럼 불행을 이용하려는 사람, 파늘루 신부처럼 징벌을 받는것이라 말하는 사람...등등. 나는 어떤 모습일까.

🐁 전염병이 휩쓴 사회는 슬프고 고통스럽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재난이 징벌이라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상한 사람이 아닌 제법 정상적이고 심지어 착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많이도 놀란다. 그럼에도 이런 재난같은 상황에 전염병의 최소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실제 코로나 시절 많은 자연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회복된 게 요즘 다시 망가졌을지도. 인간에게는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지구적 관점에서는 회복의 시간이었을지도.

🐁 소설 속 장면마다 작가가 드러낸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읽었을지도 모른다. 카뮈는 타루를 통해 묻는다. 너의 삶에서 너가 앓고 있던 페스트는 무엇이냐고. 갑작스런 질문에 진지해지지만, 언제나 카뮈는 어려운 질문만 하기에 난 바로 대답 하지 못한다. 규칙적이고 성실한 재난은 언제고 찾아온다. 소설속 페스트가 어느날 갑자기 물러났지만 언제고 다시 인간에게 행복과 불행의 교훈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내 자신의 페스트도 언제고 올 수 있겠지. 그 재난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 나누고 싶은 구절들

🌱 ˝네.˝ 타루가 끄덕거렸다.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이말하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뿐이죠.˝
리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언제나 그렇죠.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멈추어야 할 이유는 못 됩니다.˝
190p

🌱˝그런데, 타루.˝ 그가 말했다. ˝뭣 때문에 이런 일에 발 벗고나서지요?˝
˝저도 모르죠. 아마 제 윤리관 때문인가 봐요.˝
˝어떤 윤리관이지요?˝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193p

🌱 그때까지는 자기들의 고통을 한사코집단적인 불행과 떼어서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두 문제를 섞어서 생각해도 좋다고 여기게 되었다. 기억도 희망도 없이, 그들은 현재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실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현재로 변해버렸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 가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도 말해야겠다. 
265p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나야말로 나의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바로 그 페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362p

🌱˝그렇지만 말입니다.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 의식을 느낍니다. 아마 나는 영웅주의라든가 성자 같은 것에는 취미가 없는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것입니다.˝
368p (타루)

🌱노인의 말이 옳았다. 인간들은 늘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리유는 모든슬픔을 넘어서 자신이 그들과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442p

#페스트 #알베르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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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보여."
- P82

그러면 모든 게 얼마나잔인하고, 얼마나 무의미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 산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 아니면 삶이란 눈 먼 운명의 신이 만들어 내는 비극적인 실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 P84

그걸 내가 어찌 알겠어. 때로 인간은 아주 작은 무언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눈앞의 사건과는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이나 기분이 흐르기도 하지. 
- P88

선생님은 소설가시니까 그가 변한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겠죠?
"세상에 인간의 본성처럼 복잡한 게 없는데, 그걸 내가 어찌 알겠어?"
- P149

"사랑은 항해에 서투르기 때문에 바다에 나서면 약해지지. 이사벨과 래리 사이에 대서양이 놓이게 되면, 배를 타기 전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던 아픔도 실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깨닫게 될 거야."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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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 P7

지금껏 이렇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해 본 적이 없다. 

- P9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며 따라서 포괄적인 결론이다.
- P9

그런 갈등이 어느 정도 깊은 생각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막연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지만, 혼란과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어딘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묘하게도 나는 그에게 연민이 일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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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지만 "완성된 사람이 책을 쓰는게 아니라 책을 쓰며 완성해 가는 겁니다"라는 말에 용기를 내게 되었다.
- P10

느리고 모자라면 알아가는 재미가 훨씬 많다.
변명 같지만 난 좀 느리게 가고 싶고 즐거울 정도만 하고싶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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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찰란 피크닉
오수완 (지은이) 민음사 2024-08-23, 372쪽, 한국소설

🎄 표지가 그냥 트리인 줄만 알았다. 책을 절반 가까이 읽을 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다가 문득 ‘아찰‘임을 깨달았다. 아찰이 책 속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무섭진 않았다. 오히려 짠했다. 내 가족이 아찰이 된다고 하면, 등장인물들은 좀 무정하게 나온다. SF인가, 뭐지?, 라며 내게 질문 하다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님도 알아버렸다.

🎄 현실에 있는 것들이 그대로 책 속에 보이니까 SF 같지 않았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그냥 지금을 말하는 이야기였다. 재미있다고 말하기에는 내용의 깊이에 조금 미안하지만, 그랬다. 나의 재밌었다는 건,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으면서도 새롭게 이야기를 말하고,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2D 만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 아찰이 되는 것을 비롯한 책 속 상황들. 기본적으로 우리의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책 속 부모들은 상당히 무능하거나, 자녀에게 공감을 하지 못하거나, 자녀에게 희생을 한다고 착각을 하면서 아이를 학대를 한다. (당연히 전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자기만족이나 착각, 잘못된 방향의 희생도 혹은 또 다른 학대일지도. 나는 못했으니까, 내가 괴물이 될 테니까 너는 괴물에선 안 된다는 방식, 과연 이게 사랑일까?

🎄현실의 부모들도 비슷하지 않나. 내가 희생해서 너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나도 행복해, 이런 방식이 행복일까. 교육에서 시작해 온전한 삶도 들여다보는 이야기였다. 사실 교육이란 건 삶을 배우고 익히는 거니까. 근본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작가가 질문을 던지는 느낌. 그렇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할까.

🎄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면 헤임 자체도 결국 아찰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구역이다. 누군가의 희생, 댓가 없는 노동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과연 SF에서만 존재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뻔한 질문이면서도 선뜻 대답은 어렵다. 작가는 고단수다. 우리 시스템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살고 싶니, 어떻게 하는 게 맞니라고 돌려 묻는다. 그것도 쉬워 보이는, 청소년 소설 같기도 만화 같기도 한 이야기로. 교육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시대에 던지되, 재미있는 이야기로.

🎄재미있다고 했지만, 사실 이 소설은 꽤 잔인하다. 아이들은 왜 우리는 아찰이 되는지 계속 고민한다. 그리고 아찰들은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이 사회 시스템 자체가 아찰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사회고, 상위층 어른들은 이미 그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결국 아찰란 피크닉에서 정상까지 완주한다는 건, 아찰란의 사회 시스템을 받아들일 거냐 말 거냐를 결정하게 되는 일종의 성인식이다. 받아들이면? 이 더러운 세상, 아찰들이 어디 갔냐면 바로 이렇게 있었어, 하면서 공범되는 거지. 그래서 이 소설은 잔인하다. 그래도 작가는 뭔가 희망을 얘기한다. 서로가 구원할 수 있다고. (그건 믿어요.)

🎄 여담. 피크닉이 그 피크닉인지 몰랐다. 진짜 피크닉이 같이, 아님 운동회에서 오래 달리기나 계주 달리기 하는 건 줄 알았지. 그건 유격 아닌가. 그리고 아찰은 처음엔 누구도 못 피하는 죽음이라 생각했다. 읽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지만, 전반부는 죽음으로 받아들여도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하나 더. SF 영화, 특히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가 나오는 영화들은 꼭 나의 현실이 될 것 같은 여지를 준다. 음, 또 하나. 파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우느라 미안하다고 말을 할 수 없는 아란과 파보의 장면에서 울었다. 아란보다 먼저. 파보가 우리 아빠처럼 느껴졌다.

🎄참 쉬운데 많이 어려운 질문들을 하는 책.


🎄 나누고 싶은 구절들

🌱내가 나쁜 딸이어서 미안해. 한 번도 다정하게 대하지 않아서 냄새가 난다고 싫어해서 미안해. 냉정하게 굴어서, 그모든 것들 때문에 미안해. 아란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 모든 말들보다 울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54p

🌱한참을 고민하다 제목 쓰는 칸을 펜으로 검게 칠해 버린 뒤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썼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는가.
90p

🌱나중에 보니까 허공은 엄마와 나 사이에도, 출발선과 결승선 사이에도 있더라.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도.
그게 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말 몇 마디 한다고 뭔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200p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면 바보가 되고, 알면서도 분노하지 않으면 악인이 되지. 분노해서 뭔가 행동하려 하면 추방당하고, 분노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끝내 아찰이 되는 거야. 
226p

🌱사람으로 살려는 동안에는 우리는 사람이야.
3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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