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독서모임에서 싱아, 지난 달에 그 산에 이은 박완서 작가님의 8월 그 남자 선정. 싱아와 그 산이 유년기와 성년기 자전소설로 이루어진 연작의 느낌이라면, 그 남자는 약간 앞에 두 작품과 거리감 있는 외전의 느낌이었다. 소설의 그 남자는 이름은 다르지만, 앞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첫사랑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영화관에서 장갑을 뒤집어 발을 따뜻하게 했다거나, 한 살 어린 미청년이란 서사는 똑같다. 속 깊은 남편도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설정이나 서사나 여러가지 면에서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이야기. 그래서 그 산을 애정한 독자라면 섭섭하거나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경우는 그 남자 > 그 산 > 싱아 ㅎㅎ 물론 이런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게냐마는.

🏡 소설은 자전적인 요소와 소설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이제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은 겨우 세 편째지만, 항상 작품 속 시대적 배경과 개인의 삶이 잘 어우러져 있다는 감탄을 하게 된다. 옛날 시대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인물의 감정에 공감이 되고,나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게 되었다. 이건 단순히 주요 서사인 연애에 한정된 건 아니다. 작품속에는 주요 등장인물을 비롯한 많은 인물이 나오는데, 독서모임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인물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나누었다. 그러면서도 그 시대 뿐 아니라 현재에서도 있음직한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들 - 주인공의 어머니, 시어머니, 첫사랑의 어머니, 춘희 어머니 - 네 분도 시대를 다 다르게 보여주면서도, 현재에도 각기 이해가 가는 모습이 있다.

🏡 그리고 주인공 나. 아, 역시 수동적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지만, 또 막 나가진 않는다. 작품만큼 주인공도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난 이렇게 솔직할 수 있는 모습에 끌렸다. 주인공 나 만큼 시선이 가는 인물은 춘희다. 춘희의 삶은 안타까우면서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갔던 것 같기도 하다. 둘 다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인간적인 바닥을 드러낸다.

🏡 독서 모임에서 소설 속 시대와 현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언급하며, 여성의 시선으로 쓰여진 소설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다. 그리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연대, 과거의 인연과 현재의 관계에 대한 생각,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가치관까지. 책은 가독성이 좋아 잘 읽혔지만,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아직도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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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비관을 받아들이는 것.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인상적인 조연 황정민의 대사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가 생각났다. 부제에 나와있는 아포리즘의 뜻을 몰라 찾아보니 문학비평용어 였다.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표현한 짧은 글로, 격언·경구·잠언 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만 몰랐던 용어였을지도.

🍉 쇼펜하우어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가 오늘날까지 쇼펜하우어를 기억하고 그가 남긴 저서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는 이유가 뭘까? 쇼펜하우어는 잘 모른다. 그저 염세주의자로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으니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라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욕심을 부리거나 행복만을 쫓는 것은 아니다. MBTI를 신봉하는 건 아니지만, 논리적인 대문자 T가 던진 차가운 팩폭이 오히려 위로가 되는 느낌도 든다.

🍉 쇼펜하우어의 ‘우정을 우연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챕터에 대해서 남겨본다. 지금 사회에서 우정을 지키는 자신의 규칙이 있을까. 관심을 갖고 응원을 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 노력하되, 선을 넘지 않으려 한다. 선을 넘지 않는다, 이 부분을 최근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요즘 나의 캐치프레이즈는 무심한 듯 다정하게, 다정한 듯 무심하게. 작은 연민과 연대를 지향하되, 어려운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돕고 응원할 마음은 품고 싶다.

📚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현재 하고 있는 일(직업, 취미 포함 모든)에 권태를 느끼는 편인지, 혹은 만족한 상태인지. 자신의 실수를 감당하고 작은 일에 만족도가 높은 사람인지. 한 번의 좌절이 하나의 정답으로 귀납되고, 방황의 끝에서 남들에겐 없는 도출된 나만의 소양, 성격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어려운 질문. 쇼펜하우어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나는 아직 모든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하진 못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나만의 대답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며 계속해서 질문하고 성숙해져야지. (음. 일단 인간부터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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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나를 떼어내어 낯선 공간에 던져넣는 일은 두렵지만,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을 배우고 익히고 싶다. 나누고 싶은 책은 여전히 너무나많다.
- P50

어제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에서 시의적절한표현을 만났어요. 악곡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알레그로 마 농트로포(allegro ma non troppo)‘는 ‘빠르게 그러나 적당히‘라는표현입니다. 
- P70

알레그로 마농트로포, 빠르게 그러나 적당히. 남은 집짓기 여정에 저를 위로하고 격려해 줄 저만의 주문입니다. 적당히 빠른 한 걸음 한 걸음을 부단히 내딛다 보면 언젠가 책방 문을 열게 되지 않을까요?
- P71

관심과 사랑이 결속감을 키운다. 결속에서 오는 안정감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형태의 관심과 사랑, 세상을 향한 다정함을 낳는다. 웅덩이에 일어난 작은 파문처럼, 그 다정한 마음이 전달되고 또 전달되며 정적인 공간에 활력이 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공존, 책으로 엮인 마음으로 작은 책방이 따뜻하게 물들어 간다.
- P99

오늘치 아픔을 마주하면서도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
- P101

그런데 시집 안에서 은유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갖는 시어로 낯설게 읽으면서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눈처럼 새하얀 시집에서 낯선 비유를 마주할 때마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하우게의 시를 읽으면 흐렸던 눈이 맑게 개었다.
시인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헤아림의 끝에서 나의 마음과 자주 만나곤 했다. 
- P113

독립 출판은 ‘하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동력이자 역량이라는 걸 배웠다. 책을 만들고 싶다는 간절함은아무것도 몰라도 누군가에게 물어보며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용기‘와 부딪혀 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실행력‘을낳았다. 완벽하고 싶은 미래의 결과를 위해 오늘을 망설이고 내일로 미루는 순간, 책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보다 만들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더 커질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든 결과를 예측하며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해보는 ‘그냥‘의 힘은 중요하다.
- P153

《자기만의 일》의 저자 니시무라 요시아키는 말했다. 새로운 일에 쓰이는 새로운 방법, 그 방법의 최초의 모습은 바로
‘실패‘라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겪는 실패를 통해 배움은 쌓인다. 새롭게 얻은 경험을 발판 삼아 시도하는 일은 발전할 가능성을 얻는다.
- P217

개인적으로 사들이는 책이 늘어나는 속도와 완독하는 책이 쌓여가는 속도가 비례해 본 적이 없다.
- P226

최소 2년, 길게는 5년 전에 읽었던 작품들을 내 기억력의한계에 놀라며 처음 만난 것처럼 읽는다. 하나씩 떨어뜨린 조약돌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내가 남긴 흔적을 쫓아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다. ‘다시 읽기‘
는 우리가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자 독서 생활의 중간 점검 의식과 같다. - P231

6년째 일일 책 판매량에 일희일비하는 나약한 존재에게 그들이 공유하는 기록은 공간의 항상성을 지켜주는버팀목이다. 애정 어린 부름에 책방을 지키는 시간이 흘려보내는 ‘크로노스‘에서 의미가 담긴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거듭난다.
- P237

가족을 돌보는 틈틈이 작품의 언어를 매만지고 다듬어 차곡차곡 쌓은 시간을 짐작해 본다.
- P252

《소설처럼》에서 다니엘 페나크는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라고 말한다. ‘책 읽을 시간이 없는 듯 보이는 빠듯한 일상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틈새 시간은 있기 마련이다.
핵심은 결심이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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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문화머뭄으로 드바로크에서 진행한 바로크 새싹, 독서모임. 이 모임을 신청했는데, 신청하고 보니 감사하게도 낭독하고 나누는 책이 좋아하는 이슬아 작가의 책이었다. 그러나 정작 모임에는 코로나 양성으로 참석을 못하게 되었다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 같은 공간에 있지 않지만, 똑같이 모임에서 하는 방식으로 좋아하는 구절 몇 개와 이유를 적어 보았다. 그리고 낭독은 이 글을 업로드까지 한 후 해볼 예정. (오늘로 코로나 자가 격리 6일차)


🍉 구절 1
우리는 글쓰기의 속성 중 하나를 알 것 같았다. 글쓰기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우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다른 이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자고 글쓰기는 설득했다. 내 속에 나만 너무도 많지는 않도록 내 속에 당신 쉴 곳도 있도록 여러 편의 글을 쓰는 사이 우리에게는 체력이 붙었다.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이 부드러운 체력이우리들 자신뿐 아니라 세계를 수호한다고 나는 믿는다.
7p (프롤로그)

선택 이유: 책 중간 75쪽 ‘간식과 잡담‘에도 있지만 글쓰기는 여간 귀찮은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실제 공저를 포함한 책 몇 권을 냈음에도, 글을 쓰는 것 보다는 책을 읽는 것 혹은 좋아하는 악기를 연주하는 게 더 즐겁다. 그럼에도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 책을 읽자마자 프롤로그에서 그 힌트를 얻었다.


🍉 구절 2
너의 주저함을 너무 좋아한다는말을 꼭 하고 싶었어. 주저하고 눈치를 살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 있잖아. 열심히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 너의 글쓰기는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해왔는데, 그것도 알고 있니? 내가 거의 올해의 문장으로 뽑고 싶을 만한 것을 너는 썼지. ˝우리는 꼭 마지막이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영화를 찍으며 즐거움을 느꼈다.˝ 너는너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천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92p (여수 아이들에게 쓴 편지)

이유: . ˝우리는 꼭 마지막이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영화를 찍으며 즐거움을 느꼈다.˝이 문장이 좋았다. 꼭 잘 된 결말이 확정되어야만 그 과정을 즐겁게 누릴 수가 있는 건 아니니까.


🍉 구절 3. 142~143쪽 중간 발췌
우리는 예능이나 드라마나 영화나 유튜브 영상 클립 등을 통해 여러 감정을 느끼지만, 극적인 비극을 본 뒤에도 대체로 별 탈없이 일상으로 복귀한다. 숱한 미디어콘텐츠가 주는 카타르시스 기능은 어제의 내가 변함없이 오늘의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정화 역할을 한다. 라캉은 이런 안정화를 비난했다. 안정화란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고착시키는 부정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에서는 그걸 ‘살균된 슬픔‘이라고 표현했다.
진정한 슬픔과 분노는 우리의 존재를 뒤흔든다. 원래 자리한 위치에서 떨어져나가게 하고 방황의 여정을 시작하게 한다. 
142p

외면하는 능력은 자동으로 길러지는 반면,
직면하는 능력은 애를 써서 훈련해야 얻어지기도 한다. 무엇을보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며 수업에서 나온다.
143p
(쉬운 감동, 어려운 흔들림)

이유: ‘살균된 슬픔‘에서 많이 죄책감을 느꼈다. 나 역시 내 삶이 흔들리지 않을 걸 확신하고 쉬운 슬픔과 감동을 경험하지 않았나.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글을 쓰며 직면하는 능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 이 책을 읽으며 글쓰기에 대한 사랑이 다시 피어올랐다. 매일 글을 짧게라도 쓰지만, 어느 순간 즐거움 보다는 부담으로 느낄때가 더 많다. 잘 써야 하는 글에 대한 테두리를 스스로 지운다. 그냥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글을 써도 되는데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도 나는 내일 또 경직된 글쓰기에 함몰될지도 모르겠다. 그럴때엔 생각을 하려하지 말고 이 책의 구절들을 다시 낭독할 수 있기를. 나에게 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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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에 대한 기록
손종만 (지은이), 에세이, 2024-11-20, 28쪽 #독립출판

🎐 작가의 경험과 추억을 담은 열 세편의 그리운 대상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짧은 에세이. 부모님, 반려동물, 추억이 있던 나라와 장소, 힘이 되어주던 사람들, 떠나보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짧지만 여운 있게 담았다. 종만 작가님의 글을 많이 읽어 보진 못했지만, 이번 글 역시 세련되진 않지만, 오랜만에 소식을 듣는 친구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 있다. 예민하고 섬세한, 그리고 거기에 그리움이 가득 찬.

🎐 문장과 구절에서 글쓴이 자신의 꿈과 삶을 위해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읽는다. 그리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내용을 읽으며, 역시 세상은 이유 없는 적의도 있으나 이유 없는 친절과 베풂도 공존하는 걸 목격한다. 열두 번째 그리움 편의점 사장님, 점장님 편에서는 법원까지 가게 된 일을 읽으며 어려움도 허탈함도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자세히 설명되진 않았지만, 모아둔 학교 등록금까지 벌금으로 납부한 사건은 글쓴이가 분명 기억조차 하기 싫을 텐데 이곳에서도 잊지 못할 그리움을 말한다.

🎐 책을 읽으며 미안함으로 가득한 또또와 또순이, 아롱이, 마당이를 생각했다. 그저 그리움으로 남는 존재들. 무지개다리를 건너야 하는 건 종을 가리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이 맞이해야 할 숙명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내가 지켜주지 못한 큰 잘못들이 각각 존재한다. 글을 읽는 동안 나 고마웠지만 끊어진 그리움들도 떠올랐다. 나의 그리움들도 글로 담아보고 싶어졌다.

🎐 지금의 장소와 인연도 언젠가는 그리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감사하고 좋은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책과 함께 담긴 A4용지의 작가의 편지에는 독자님의 마음속 그리움이 되어버린 지난 시간을 떠올리길 간절히 바란다는 마지막 구절이 있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감사하고 미안한 추억이 그리움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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