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도날‘ 이란 읽고 싶지 않은 제목. 서머싯 몸의 또 다른 책이 거의 십 몇 년 전부터 집에 있는데도 이상하게 읽고 싶지 않았다. 책을 완독하고 나서 생각했다. 이 책을 진작 읽었어야 했는데. 집에 있는 서머싯 몸의 책을 난 왜 읽지 않고 있었을까. 구원에 이르는 길은 면도날을 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일지도. 그런데 작가가 말한 것처럼 개인의 가치는 다 다르므로 고행이 없어도 우리는 우리의 성공담을 만들지도. 이번 독후기록은 아직도 답을 고민하고 있는 질문들.
🍉 전반부에 래리와 그 외 인물들은 래리의 진로를 가지고 갈등한다. 다행히도 래리는 아껴서 살면 먹고살 만한 돈은 가지고 있다. 내가 소설 속 인물이라면 래리를 이해하거나 지지할 수 있을까? 래리는 분명 매력적인 인물이고 소설 끝까지 나로서는 동경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내 친한 친구나 가족이라면 뜯어말렸겠지. 래리가 세상을 돌아다니고, 탄광과 농가에서 일을 하며 얻은 것은 무엇일까?
🍉 모두 다 미워할 수 없고 자신만의 가치로 살아가지만, 이 중 내 마음이 편하고 친구가 되고 싶은 인물은 어이없게도 수잔이었다. 수잔은 여러 남자의 내연녀로 살지만, 자신만의 지조와 원칙이 있고 몸을 파는(?) 것에 프로패셔널한(적절한 우리말이..)정신이 있었다. 래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을 구하고 사망한 전우 얘기를 수잔에게 한다. 언뜻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수잔은 그 누구보다 안정적인 삶을 산다.
🍉 왜 래리는 소피와 결혼한다고 했을까? 래리는 소피와의 결혼이 수행의 과정이고 탄광에서 일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을까? 래리, 소피 커플의 결혼 파탄이 된 이사벨의 함정 (혹은 그들의 선택을 재검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일이 파탄의 원인일까? 아니면 이 일이 아니었어도 언제고 올일일까? 고의이며 악의일까? 선택을 충분히 할 수 있던 사건 일까? 이사벨의 악의는 비난하고 싶으면서도 어쩐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결과적으로 소피는 약과 남자, 두 가지로 살다가 죽는다. 소피의 삶, 그리고 죽음은 어느 누가 그 인생을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 래리는 결국 그 오랜 시간 동안 무엇을 찾아 다닌 걸까?사람이 죽어서 그것으로 끝이라면,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면, 과연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가?
이사벨은 사랑보다는 현실을 선택한다. 속물이 되었지만 진솔하고 비꼬는 말이나 대화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사벨의 외삼촌인 엘리엇은 속물 of 속물이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이 둘의 삶은 나름의 가치에 부합한 삶일지도. 수잔의 안정, 그레이의 루틴을 가진 삶. 소피의 삶. 평범한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 혹은 의미는 다들 다를지도 모른다. 내가 이사벨이었다면, 내가 엘리엇이었다면, 내가 수잔이라면, 내가 그레이 매튜린이었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의 삶의 가치,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 중요한 삶의 선택을 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