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보다 나은 일을 할 때도 많았다. 손으로 하든 머리로 하든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활짝 피어난 현재라는 시간을 희생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삶에 넓은 여백을 두고 싶다. 
- P140

그러다 보니 관계가 너무 돈독한 탓에 서로의 앞길을 막아서기도 하고, 서로의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장담컨대, 지금보다 조금 덜 만나도 중요하고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터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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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만간 개발될 위험이 없는 여러 군데의 집터를 찾아냈다. 마을에서 너무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마을이 내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듯했다.
- P103

"나는 내가 조망하는 모든 것의 군주이고,
그러한 내 권리에 대해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1) 윌리엄 쿠퍼(Wiliam Cowper)의 <알렉산더 셀커크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시(Verses supposed to be written by Alexander Selkirk)> 중에서.
- P104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숲으로 들어갔다.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충족한 채 살아도 삶이 가르쳐 주는 진리를 배울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었다. 삶이란 소중한 것이기에 삶이 아니라면 살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필요하지않다면, 체념한 채 살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깊이 있게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고 싶었다. 삶이 아닌 것은 모두 파괴해 버리고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가길 바랐다.
- P114

왜 우리는 이처럼 바쁘게 삶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지금의 우리는 배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기로 결심이라도 한 듯하다. 흔히들 제때 뜨는 한 땀의 바느질이 훗날 아홉 땀의 수고를 줄여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뜰 아홉 바늘을 줄이려고 오늘 천 땀의 바느질을 한다.
- P117

필요하다면 강에 다리 하나를 덜 놓고 조금 멀리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를 에워싼 무지의 검은 심연을 건너게 해줄 구름다리 하나라도 놓아 보자.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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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노라는 ‘등거리‘라는 단어를떠올렸다. 안전한 교실에 속한 단어 등거리 노라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는데도 거의 제자리에 머무는 동안 너무도 중립적이고 수학적인 그 단어가 강박적인 만트라가 되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등거리 등거리 등거리 어느 쪽 강둑하고도 더 가깝지 않았다.
노라는 평생 그런 느낌으로 살았다.
- P272

중간에 끼어서 안간힘을 쓰고, 허우적거리며 그저 살아남으려고 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어느 길에 헌신해야 후회가 없을지
- P273

"인생은 언제나 행동하는 거란다." 강에 뛰어들었던 조가 친구들에 의해 끌려 나오는 모습을 노라와 함께 지켜보며 엘름 부인이말했다. 
- P274

"디지털 피아노는 네 방으로 옮겨갔고, 넌 그걸 친구처럼 환영했지. 그리고 꾸준히 연습했어. 용돈으로 피아노 독학 교재와 <초심자를 위한 모차르트> <피아노로 연주하는 비틀스>를 샀지. 피아노가 좋았으니까. 오빠에게 인정받고 싶기도 했고."
- P276

이 도서관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까지 노라가 선택했던 삶은 사실 모두 다른 사람의 꿈이었다. 결혼해서 펍을 운영하는 것은 댄의 꿈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는 것은 이지의 꿈이었고, 같이 가지 못한 후회는 자신에 대한 슬픔이라기보다 단짝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빠의 꿈이었다. 노라가 어릴 때 북극에 관심이 있었고, 빙하학자가 되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꿈마저도 학교 도서관에서 엘름 부인과 나눈 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라비린스는 늘 오빠의 꿈이었다.
- P276

어쩌면 그녀를 위한 완벽한 삶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에 틀림없이 살 가치가 있는 인생이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인생을 발견하려면 더 큰 그물을 던져야 한다는걸 노라는 깨달았다.
- P277

"우리가 정돈해 놓은 체스판을 보렴." 엘름 부인이 부드럽게 말해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인 지금은 얼마나 질서 있고 안전하고 평화로워 보이니. 아주 아름답지. 하지만 동시에 지루하고 죽어 있어..
그러다 네가 체스판의 말을 움직이는 순간 상황은 변하지. 좀 더 무질서해져. 내가 말을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그 무질서는 점점 쌓이는 거야."
- P278

엘름 부인은 예전에 했던 말을 반복했다.
"절대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유용한 조언이었다.
- P279

"연민은 도덕성의 근본이다"라고 아서 쇼펜하우어는 덜 냉소적이던 시절에 말했다. 어쩌면 연민은 삶의 근본일지 모른다.
- P282

 마음 쓰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길을 가세요.
여러분 없는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네요.

*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밥 딜런의 노래 제목•
You can go your own way. 플리트우드 맥의 <Go your own way> 가사• 
God only knows what we  be without you. 비치 보이스의 <God only knows)의 가사.
- P287

이 우주에서 개와 함께 살고있는데 왜 다른 우주를 원해?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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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게 다 오빠 때문이니?"
"아뇨, 전부 다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서는 살 수가없는 것 같아요."
"원래 인생은 그런 거야."
"그럼 대체 왜 살죠?"
"변호하자면, 죽음 역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단다. 자, 이젠 어떤삶을 살고 싶지?"
3402
"살고 싶지 않아요."
"뭐?"
"더는 책을 펴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삶은 원치 않아요."
- P266

노라는 깨달았다. 그녀가 살면서 했던 대부분의 후회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었다는 걸.
- P267

"체스에서 한 번이라도 이기려면 무언가를 깨달아야 해." 이것이 노라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듯이 엘름 부인이 말했다.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넌 그걸 깨달아야 해. 체스판에폰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경기는 끝난 게 아니야. 한 사람은 폰 하나와 킹 하나만 남고, 다른 사람은 기물이 다 있어도 경기는 아직 진행 중인 거야. 설사 네가 폰이라고 해도, 아마 우리 모두 그럴테지만, 넌 폰이 가장 마법 같은 기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폰은 하찮고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왜냐하면 폰은 절대 그냥 폰이 아니니까 폰은 차기 퀸이야. 넌 그저 계속 앞으로 나아갈 방법만 찾으면 돼. 한 칸 한칸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그러다 반대편 끝에 도달하면 얼마든지 다른 기물로 승급할 수있어."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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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페르와 가본 적이 없는 곳에 있고 싶었어. 그의 유명을 느낄 수 없는 곳에 하지만 막상 와보니 반만 성공이었어. 장소는 장소고, 기억은 기억이고, 인생은 망할 놈의 인생이지.
- P175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보는 빙하는 매끈한 하얀색 덩어리 같았는데 이 빙하는 질감이 산 같았다. 암갈색과 흰색. 게다가 끝없이 다양한 흰색, 세상의 온갖 흰색이 다 모여 있었다. 하얀 흰색,
푸르스름한 흰색, 터키빛 흰색, 황금빛 흰색, 은빛 흰색, 투명한 흰색이 눈부시게 생생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확실히 아침 식사보다 인상적이었다.
- P179

빙하가 보이는 풍경은 무엇보다도 그녀가 지구에 사는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녀와 모든 인간은 그저 지구에사는 9백만 종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그녀가 살면서 했던 거의 모든 일, 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하고 돈을 받고했던 모든 일이 그런 이해로부터 멀어지게 했음을 깨달았다.
- P185

"꿈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고, 상상했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면 일상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라고 소로는 《월든》에 썼다. 또한 이 성공은 고독의 산물이라고도 했다.
"나는 고독만큼 함께하기 좋은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그 순간 노라도 비슷하게 느꼈다. 비록 혼자된 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으며, 아무도 없는 자연 속에서 이런 고독은 처음 느껴봤지만.
- P185

예전에 밤이 되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노라는 그 이유가 고독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고독을 느끼지못해서였다. 분주한 도시에서는 외로운 마음이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연결되기를 갈망한다. 마음은 인간과 인간의 연결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수한 자연(혹은 소로의 표현대로 하자면 ‘야생이라는 강장제) 안에서는 고독이 다른 성격을 띤다. 고독 안에서 자체적으로 연결이 이뤄진다. 그녀와 세상이 연결되고, 그녀와 그녀 자신이 연결된다.
- P185

애쉬는 SNS를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가 외로워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다들 서로 미워하는 것 같더군요." 애쉬가 말했다. "어설프게 알기만 하는 친구들로 과부하 상태라서요. ‘던바의 수‘라고 들어본 적 있습니까?"
- P186

"그렇다니까요. 건강하지 않아요! 뇌가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대면 소통을 갈망하는 거죠. 또………… 그래서 내가 사이먼 앤드 가펑클 기타 악보집을 온라인으로 구매하지 않는 겁니다!"
- P187

북극곰의 눈빛에 미움은 전혀 없었다. 노라는 그저 먹이였다. 고깃덩어리. 그걸 깨닫자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면서 공포가 밀려들었다. 곡 막바지에 이르러 점점 커지는 드럼 소리처럼 심장이 고동쳤다. 급기야 노라는 놀라울 정도로 또렷하게 깨달았다.
죽고 싶지 않았다.
- P192

노라는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 충격은 배에 탄 다른 사람들이 짐작하는 충격과는 약간 달랐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는 충격이 아니었다. 사실은 자신이 살고 싶어 한다는 깨달음에서 온 충격이었다.
- P194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잊어버린다.
경도와 위도가 얼마나 긴지 무감각해진다. 한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광활한지 깨닫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일 거라고 노라는 짐작했다.
- P194

하지만 일단 그 광활함을 알아차리고 나면, 무언가로 인해 그 광활함이 드러나면, 당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희망이 생기고 그것은 고집스럽게 당신에게 달라붙는다. 이끼가 바위에 달라붙듯이.
- P195

실망과 단조로움과 마음의 상처와 경쟁만 한가득이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험은 순간에 끝난다. 어쩌면 그것만이 중요한 의미인지 모른다. 세상이 되어 세상을 지켜보는 것. 부모님이 불행했던 이유는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성취하겠다는 기대를 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노라는이런 것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배에서 깨달았다. 자신이 생각보다 부모님을 훨씬 더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 노라는 두 사람을 완전히 용서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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