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물이 하등하고 어떤 동물이 고등하다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편견임에 틀림없다. 모든 현생 생물들은 각자 그들만의 생존 방식으로 선택적으로 진화해 적응해 왔으며 단지 어떤 동물이 시각이 발달했다면 또 다른 동물은 촉각이 발달했거나 어떤 동물이 두뇌가 발달했다면 또 어떤 동물은 다리가 발달했거나 각자의 방법으로 선택되어 살아남는 것이다. 

존재의 대사슬은 모든 생명체에 위기 관계를 부여하는 논리에서 비롯된다. 중세 인간들이 남녀의 위계관계를 세우고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인종간의 위계 관계를 세워 놓았듯이 말이다. 도킨스는 이렇게 인위적인 위계 관계의 맨 꼭대기에 신이 있고 그 밑에 각종 천사들이 있고 그 밑에 각종 계급과 인종으로 다시 구분되는 인간들이 있고 그 밑에 동물 그 밑에 식물 그 밑에 미생물이 있다고 말한다. 

진화는 모든 방향으로 발산하며 모든 생명체는 모두 생존에 뛰어나다. 따라서 고등생물과 하등생물을 분류하는 것은 기준의 문제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 똑똑하거나 인간과 비슷하더거나 하는 속물적 이유가 하등이니 고등을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반진화적 개념이다. 침팬지보다 사람이 더 고등하다는 생각, 혹은 말 자체가 인간이 침팬지보다 더 진화된 생명으로 잘못 인식하게 하는 말이다. 시간이라는 수평선 상에서 현재라는 시간 점을 기준으로 똑같이 생존해 있는데 뭐가 고등하다는 말인가.ㄱ께 인간에 더 가깝다는 거라면 날지 못하고 물속에서 숨쉬지 못하고 냄새맡지 못하는 등등의 이유도 고등하다는 이유가 된다. 

인간과 침팬지는 공동 조상을 가졌을 뿐 서로 다르게 진화해왔다. 그들의 조상과 인간의 조상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딘가에서 서로 갈라져너온 진화적 뿌리를 만날 수 있고 그 이후에 서로 다른 방법으로 생존에 필요한 기관을 적응시켜갔음에도, 인간의 조상이 침팬지라는 비유가 별 반대없이 종종 쓰이는 이유는 그 조상의 외모 혹은 또다른 생물학적 특징이 사람보다는 침팬지와 더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던 사람은 사람대로 침팬지는 침팬지대로 각자 길을 걸어온 결과가 현재고 현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미래의 고등 생물은 무엇이 될지 아직 모른다.

리처드 도킨스가 창조과학회의 주장과 맞대응하는 일은 다시 생각해도 좀 소모적인 구석이 있다. 전에 진중권이 했던 어록 중 이런 게 있다.

"말을 해도 못알아 먹으니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다."

도킨스의 경우 앤디와의 인터뷰에서 그말을 못알아먹는 정도가 절정을 이루는데, 도킨스에게 발린 많은 종교적 논쟁 비디오 중 하나인 인터뷰 전문이 여기에도 실렸다. 앤디는 진화의 증거를 보여달라고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도킨스는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화석 자료들을 근거로 제시하며 가서 보았냐고 말하는데, 대답은 않고 증거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이렇게 되면 마치 진화론 자체가 그 무식한 사람들의 주장과 대응되는 팽팽한 논리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자 증거를 보여주시죠.

과학은 무슨 살인 사건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타고라스의 법칙처럼 단 한개의 증거로서 진리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포퍼의 말처럼 기존의 진리는 새로운 진리가 나타나면 전복되기도 하지만, 그 전복의 근거 역시 이제껏 과학이 쌓아온 것들에 기반하여 보완해가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일반 대중에게 그것은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의 문제고 탐구의 문제다. 하지만 진화를 종교로 파악하고 '믿지 않는' 창조과학회가 내놓는 자료들은 과학적 기반에 근거한 자료들이 아니라 단지 진화를 잘못 이해하거나 혹은 진화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 속에 전해오는 신화들의 모순을 가리기 위해 걸고 있는 일종의 체면요법 같은 거다. 이런 억지 주장에 일일히 대응을 하면 진화의 근거가 절대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이런 대응 때문에 진화의 세부적인 사항들을 더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상반된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받았다면 진화와 자연선택은 믿고 자시고 할 만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알고 보니 한국 창조과학회의 회원중 박사급들이 있다고 하는데 전공이 유전학인 경우는 없고 공학이나 의학이라고. 그런데 그 분야의 전문적 지식과는 상관없는 분야의 박사라는 권위로 이론을 호도하는 듯하다) 어쨌든 그 앤디리는 사람에 따르면 자신은 그걸 믿지 않는다는 거다. 도킨스가 화석의 예를 설명하면서 박물관에 가봤냐고 했을때에도 그는 실질적 증거를 대라고, 이제까지 출간된 중거들은 그냥 머리속에서 상상했을 뿐인 것들을 종이에 그린 것이므로 만져질 수 있는 증거를 대라고 한다. 

결코 잃어버린 적 없는 진화의 고리들

그들의 허무맹랑한 여러 주장 중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 중 하나가 '잃어버린 고리'이다. 이 말만 들으면 진화를 설명하는 화석 중 진화의 어떤 단계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도약에 대한 화석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들릴 수 있는데 이게 다 말장난이다. 도킨스가 제시한 예중 가장 쉬운 예는 청소년에 대한 비유로, 인간은 18세 생일을 맞아 갑자기 유년에서 성년으로 뛰어 점프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단지 이름이 다르다고 해서 그 계통의 중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원을 따질 때 물고기처럼 매끈하게 생긴 생물들이 가득한 바다에서 인간이 걸어나왔다고 하는 사실은 은근 믿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다양한 고생대의 화석은 어류와 양서류 그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다채로운 생명들의 흔적을 시대적 지층 위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또한 이제는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흔한 예로 인간의조상이 원숭이었다는 걸 믿으라는 거냐는 비슷한 말도 자주 쓰이는데, 그런 의문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인간과 원숭이의 공통 조상의 외모가 원숭이와 더 가깝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인간의 진화 역시 창조론자들에게 회의적 소지를 준 것은 과학계의 폐단이랄 수도 있는 선조들에 대한 개별 학명에 대한 문제점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18세를 전후로 해서 갑자기 투표권이 생기고 법적 성인 상태로 인정받는다고 해서 점진적이고 꾸준한 변화가 생략된 채로 18세의 생일날 갑자기 키가 50센티 자라고 목소리가 변하고 모든 어른으로 바뀌지 않는 것처럼 인간의 선조들도 진화할 때 호모 종들과 다른 종들 사이의 구별이 매우 점진적이어서 그것들이 발견된 시기와 학명의 규칙의 여러 문제점들 때문에 각기 독립된 생물체처럼 보일 소지가 있다는 것인데, 물론 이러한 자세한 설명이 명료한 이해을 돕는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진화 자체를 믿음의 문제로 보지 않는 대다수의 독자에게 창조론자들의 바보같은 주장을 일일히 상대하는 부분은 도킨스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는데, 뭐 미국과 영국에서는 진화를 믿지 않는 인구가 사십프로나 육박한다고 하니 상대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일 거 같긴 하다. 그렇게 살다 죽으라 냅두지 뭐..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갈릴레오를 핍박하고 천국에 간다고 굳게 믿음으로서 정신적 승리를 이뤘던 쾌거는 진중권의 어록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같다. 역으로 말해 이기려면 말을 통하지 않게 막무가내로 나가며면 되는데, 이 때 이기는 사람은 이겼다고 믿은 사람일 뿐 아큐정전적 정신적 승리 속에서 주변의 비웃음을 모르는 것이겠고.

연대측정의 원리

방사능 시계의 원리를 대중이 알아먹게 기술하고자하는 노력은 창조론자의 주장에 맞추기 위해 더욱 필요했을 듯 싶다. 특히 그들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방사능 연대 측정의 증거를 피해 지구의 나이를 왜곡된 시각으로 젊게 유지한다. 그렇다면 화석 증거의 연도들은 어떻게 확인할까. 

원자는 중성자와 양성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성자의 갯수가 원자번호 즉 원자표의 이름을 결정하고 중성자의 갯수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것에서 착안하여 화석의 연도를 측정한다. 그러니까 중성자의 갯수에 따라서 안정된 원소와 불안정 원소로 나뉘는데 불안정 원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발적으로 붕괴해 다른 원소로 바뀐다. 이 불안정한 원소들의 예측 가능성이 방사능 시계를 가능하게 한다. 불안정성은 중성자가 관여하는데 네 가지 종류의 붕괴로 구분한다. 

첫째는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어 주기율표 상에서 한단계 위의 원소가 된다. 나트륨-24가 마그네슘-24로 바뀌는 예가 그것이다. 둘째는 반대로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어 주기율표 한 단계 아래 원소가 된다. 셋째는 우연히 돌아다니던 중성자가 핵의 부딪쳐 양성자를 밀어내고 차지하여 주기율표 한단계 아래 원소가 된다 네번째는 알파붕괴로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가 합쳐져서 알파 입자를 방출한다.

각 불안정한 원소들은 저마다 독특한 속도로 붕괴한다. 붕괴율을 재는 잣대로 반감기가 선호된다. 어떤 원소의 반감기가 수억에서 수십억년이라면 진화적 규모의 시간 측정이 가능하다. 탄소 시계의 원리는 이렇다. 대기 중 co2에서 방사능이 없는 C-12가 대부분인데 1조개 중 1개가 C-14이고 반감기는 5730년이다. 식물은 호흡으로 탄소를 당에 엮고 먹이사슬로 이동된다. 

이 모든 먹이사슬 내에서 탄소가 소화되고 호흡하여 순환하는 동안에도 방사성 동위원소 C-14의 비율은 변하지 않지만 죽는 순간부터 탄소-14는 붕괴하여 질소-14가 된다. 즉 죽는 순간부터 영점화가 되어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토라노의 수의는 기록상으로는 1300년대에 등장했고 16세기부터 토리노에서 보관하고 있었는데 천 재료로 쓰인 아마가 베어진 시기가 ,3군데서 독립적르로 측정한 결과가 13~14세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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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1-28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진화론을 이해하거나 믿는것은 아닙니다ㅎ 똑똑한 사람들 중에서도 진화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ㅋ 특히 종교인인 경우에요.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 - 나의 과학 인생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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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를 쓰게 되는 내용은 이미 인생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1권에서 다루고 있는데 1권에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생명에 대한 탐구가 신앙과 종교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주저함없이  드러내도록 이끌었던 듯 싶다. 어쨌든 그는 1년간 의무로 주어지는 부학장이라는 직함을 가질 때, 만찬을 주체하고 식전식후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런 그가 종교와 그토록 싸우는 장면은 자서전을 통해 리처드 도킨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는 쓸모없는 소모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생각은 뭐였냐면, 종교를 믿는 사람은 믿는 이유가 있고,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 이유가 있으며, 죽어보지 않은 이상 종교가 그리고 유일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데 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종교를 그토록 반대할까. 과학이 밝힌 것도 있지만 못밝힌 것도 많으므로 그것은 신의 영역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믿고 안믿는 사람은 후에 과학이 더 밝혀낼 거로 믿으면 될 거 아닌가. 


나의 이러한 생각은 리처드 도킨스에 대한 오해였고, 또 일부 그 논리 자체가 틀린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가 책에서 말하는 구구절절 옳은 말들 중 꽂히는 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왜 오직 종교는 비판에서 성역이어야 하느냐 라는 것이다. 우리는 제도를 비판하고, 문학을 비평하고, 예술을 비평하고, 문화를 비판하고, 사회 자체를 비판하고, 하다못해 맛집의 서비스도 등급을 매겨 비판하는데 왜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그토록 금기시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 말에 우리가 종교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얼마나 종교적인 것이었는지, 그러니까 절대로 건드리지도 비판하지도 말아야할 성역이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를 적대시하고, 그를 성내며 진화론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권위있는(?)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창조론자들이며, 그가 그토록 소모적인 논쟁에 발을 담글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진화라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 살아있는 증거들로 가득차 있는 사실들을 부정하고, 논쟁조차 불가능한 억지 소리를 해대는 창조론자들임을 알았다. 도킨스가 만난 종교지도자들, 캔터베리 대주교니 카톨릭 대주교 등등의 사람들은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은 과학의 영역이 종교는 종교적 영역이 있음을 주지시킨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어차피 유일신 사상 자체가 뿌리 깊게 민족적 정서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창조론적 사고관이 그리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건국 이념 자체가 기독교 신앙의 뿌리를 둔 미국의 경우 특히, 남부 사람들은 진화론을 학교 교과 과정에서 삭제하고자 하는 움직임까지 거세다고 하니, 이 양반이 괜히 돈이나 벌려고 <만들어진 신>을 쓰고 TV 토론회에 나가고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리처드 도킨스의 평생 주제라고 한다면 아마도 자연선택일 것이다. 이 책은 그의 후반기 삶에서 교수(강사)로서의 삶, 책을 집필하는 저자로서의 삶, 그리고 대중과 소통하는 과학자로서의 삶, 토론자로서의 삶 등으로 분류하여, 그의 여러가지 업적들이 어떠한 인간관계와 사회적 위치 내에서 어떻게 이루었는지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대단한 것은 단지 연구 업적 뿐만 아니라, 그의 저술들이 탄탄한 과학적 사고와 사실의 기반하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호소력 있고 우아하게 대중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인데, 그 점에서 도킨스는 책만 재밌게 쓴 것이 아니라 TV 토론회와 과학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꾸준히 대중에게 과학을 전파했고 함께 소통했다. 


그는 옥스포드에서 대학원생들을 가리키며 매우 똑똑한 학생들과 소통하며 연구하는 것을 즐겼지만, 인생의 더 후반부에서는 그것보다는 옥스포드 대학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래서 TV 출연 및 과학 책 저술 및 각종 강연 등의 과학 행사를 주최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여, 학교에 전달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월급을 받았다. 암튼 대략 그렇다. 그래서 도킨스 말로는 연봉은 줄었다고 말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여러가지 방면의 지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또한 일반 대중에게도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섰다. 


약 600여페이지에서 12개의 장으로 삶을 구분하였는데, 마지막 12장 <과학자의 베틀에서 실을 풀며>는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에서 주장하는 도킨스의 이론들에 대한 것으로, 우리나라에 출간되어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모든 저서들에 대한 개략서라고도 할 수 있을만큼 폭넓은 그의 생각들을 다룬다. 약 12개 장 중의 하나의 장이지만 거의 200페이지 가량으로 책 한권으로 엮어도 될만한 양적 질적 내용을 갖는다. 그는 수십년 동안 12개의 책을 썼다.  이기적 유전자가 가장 처음 나왔는데 작년이 40주년이었다. 이후 도킨스의 가장 잘 된 저서라고 스스로 주장했다는 <확장형 표현형>. 이 책에 대해 만일 천국에서 베드로가 지상에서 공기마신 값으로 뭘했냐고 따져물을 때 최선의 대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구는 여러 복제자가 서로 협력하며 공유하는 개별 단위인 개체가 지배하고 있다(444)"

"운반자 개체에 든 모든 유전자는 미래로의 출구(병목)을 다 함께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는데, 출구란 개체의 정자 혹은 난자다"

"만일 어떤 세균에게 숙주의 난자로 들어간 뒤 난자에 실려 그 숙주의 후손에게 전달되는 방법 외에 다른 미래가 없다면 세균 유전자와 숙주 유전자는 거의 같은 선택압을 겪을 것이다... 그들의 유전자는 숙주 유전자와 너무나 긴밀하게 얽히도록 진화할 것이므로... 원래는 기상자였다는 흔적을... 희미하게만 남긴 채 숙주의 정체성과 하나로 통합되고 말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무임승차한 세균이었다... 협동조합의 다른 모든 유전자와 출구-즉 운반자의 난자-를 공유하게 되었기에 ...(448)

"우리가 품고 있는 모든 유전자, 우리 자신의 모든 유전자는 사실 온갖 바이러스의 거대한 군집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그런 우호적인 바이러스들이.... 정자나 난자라는 떳떳한 통로를 통해서 현재 숙주의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점 뿐이다.(449)


위의 인용들은 확장형 표현형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내용인데, 이런 식으로 자신의 저서들에서 주장했던 핵심 논점들을 가져와서 다시 논쟁하고, 설명하고 정리해주기 때문에, 12장의 내용은 리처드 도킨스 저서 완벽 정리 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학창 시절 쓰던 참고서 처럼 요점만 정리한 것이 아니라, 설득력있게 논증하고 주요 내용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그의 저서를 일부만 읽었거나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의 세계를 더 이해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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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 어느 과학자의 탄생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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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서적 중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고 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효기간 만료된 고교 시절에 배운 과학 이래로 거의 처음으로 읽었던 책이라, 처음 읽던 당시 읽는데 시간이 엄청 걸렸고, 그나마 끝까지 다 읽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다시 읽기로 작정하고, 책탑에서 거두지 못하고 있는 책 중의 하나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외에도 <만들어진 신>으로도 유명할 뿐만 아니라 무신론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는 분이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그가 아주 젊었을 때부터 TV 등에 나와서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의 논쟁에 뛰어들어 토론하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최근에 나는 리처드도킨스의 진화학강의를 읽는 중이었는데, 자서전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중간에 손을 떼고 이 책부터 읽었다.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 책 1권은 선조들과 어린시절에서부터 시작하여 대학생활, 대학원생활을 거쳐 버클리와 옥스포드를 거쳐 대학에 자리를 잡기까지의 내용을 쓰고 있다. 


항간에 떠도는 동영상 등을 통해 내가 가졌던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논리적이지고 논쟁적이고 악의적인 비판에 몸을 사리지 않고 민감한 종교적 논쟁 등에 서슴없이 자신을 불사른다는 점이다. 정치나 이념에 있어서는 자칫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우 양쪽에서 뭇매를 맡기 쉽상이지만 종교에 관해서라면 사정이 다르다. 뜨뜻 미지근한 중도파든 불가지론자든 무관심자든 어느 한 종교를 열렬히 믿는 신도가 아닌 이상 각자 이름붙이기 나름인 이러한 여러가지 종교에 관한 태도와 가치관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기회주의적으로 비쳐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냥 냅둔다. 더더욱 이러한 가치중립적인 태도는 언제가 아무때나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기 때문에 유리하다. 그럼에도 리처드 도킨스가 신은 없다고 이 세상에 신은 없다고, 오로지 진화가 있을 뿐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1권에서는 아직 그의 무신론적 관점이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될만큼 어떤 계기가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1권에서는 그의 첫번째 책 <이기적 유전자>를 출판하는 데까지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어린시절에 간혹 그가 그토록 무신론자가 될만한 어떤 환경적 영향을 받았을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종교적 환경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았는데, 그는 한때 열렬히 기독교를 믿었다. 성취가 높은 과학자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보면, 어린 시절의 이야기라든가 사적인 부분보다는 자신의 위대한 성취가 되는 어떤 이론이나 저서들이 나오기까지의 이론적 디테일들이 주를 이루고, 그를 통해 그가 성취한 일들을 좀 더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어렵거나 딱딱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1권에서는 어린시절은 물론 가족의 선조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사적인 기록과 일화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술술 잘 읽혔다. 


우선 어린시절을 보면 그의 선조들과 부모대의 사람들이 대부분 식민지 국가의 공무원으로 파견근무를 했다는 사실에서 당시 대영제국의 파워를 간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등 누구 하나 빠짐없이 좋은 대학을 나와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거느리고 있던 방대한 영국 식민지의 관리로 나갔던 것이다. 일제를 겪은 식민지배의 피해자로서 그리고 청산되지 못한 과거 매국 권력의 지배가 아직까지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는 우리 나라에서 사는 우리로서는 반대의 입장에 선 국가의 국민이 어떻게 그런 지배체계에서 삶을 운영해갔는 지를 가늠해볼 수 있었음에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후에 도킨스의 아버지는 잘 모르는 친척에게서 땅덩어리를 상속받게 되어, 식민 관리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농부가 되기로 작정을 하고, 그렇게 해서 영국으로 돌아와 자리잡은 때가 리처드 도킨스에게는 초등학생 시절이다. 


이렇게 어린시절과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는 약 2/3 정도 차지하는데, 이후 옥스포드의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면서 점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설명이 많아지다가 연구와 강의를 맡게 된 이후로는 그가 그 리즈 시절에 시작했던 연구들의 자취를 더듬는데, 그의 불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되기 이전 10년부터 그 저서를 완성하기까지 영향받은 이론가들, 사색들, 연구 내용들이 비교적 자세히 나와있어서 이전에 읽었던 내용을 새롭게 복습하는 기회가 되었을 뿐더러, 리처드 도킨스가 어떻게  그 책을 쓰게 되고, 또 어떻게 중단이 되었다가 다시 시작했는지에서부터, 글을 쓰는데 들인 정성과 노력 등이 자세하기 알 수 있었다. 가장 감동이었던 것은 그 책을 쓸 때, 얼마나 문장 하나하나 정성을 들였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문학작품을 쓰는 소설가들도 아닌데 그는 문장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쓰고 고치고 지우고를 반복했고, 그렇게 해서 완성된 초고를 수도 없이 수정한다. 동영상을 보면 말을 워낙에 청산유수로 잘하는 사람이라, 글도 휘리릭 쉽게 썼을 줄 알았는데, 좋은 책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글을 쓸때 거의 모든 문장을 수정하고, 만지작거리고, 재정렬하고, 지우고, 다시쓴다. 쓴 글을 강박적으로 다시 읽으면서, 일종의 다윈주의적 체에 문장들을 통과시킨다. .. 문장을 최초로 타이핑할 때조차, 적어도 단어의 절반을 지웠다 바꿨다 한 뒤에야 완성한다. 나는 늘 이렇게 작업했다. (355)


그가 동물학자로서, 글만 잘쓰는 것이 아니다. 전에 다른 책을 읽다가 그의 진화 프로그램을 접한 적이 있는데, 연구비도 많이 나오는 세계적인 과학자니까, 연구원들을 고용해서 프로그램을 작성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그는 1966년부터 컴퓨터를 사용해온 얼리아답타였다. 그는 천공 펀치로 데이터를 입출력하던 박물관시대의 컴퓨터와 씨름하는 때부터 컴퓨터를 즐겼으며, <이기적 유전자>에서 수학적 논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시적 언어로 변환할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주로 하면서 논리적 사고 체계가 확립된 듯 보인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를 출간한 시점을 자신의 인생 절반의 마침표였다고 말한다. 아직 30대이며 이 때까지만 해도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평은 매우 좋았으며 크게 공격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 앞으로의 전개될 신과의 싸움 그 험란한 길이 어떤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추측이 된다. 이 때까지 그는 앞으로 자기 인생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얼마나 더 큰 성공이 그리고 또 얼마나 대대적인 논쟁이, 또 얼마나 유명인의 길을 걷게 되는지 말이다. 2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만들어진 신, 확장적 유전형,  진화학 강의와 같이 기라성 같은 그의 저서가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사유와 통찰을 통해 연구가 완성되어가기까지의 과정 또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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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대니얼 호손 외 지음, 최주언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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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환상적인 세계를 꿈꾸고 공상의 나래를 펴는 능력은 현실에서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 살아가야 하는 어른에 도달한 다음에는 쇠퇴하게 된다. 모험과 판타지, 그리고 공포를 포함한 이야기들은 대개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서 성장한다. 스스로 상상할 수 없다고 해서,  남들이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제대로 재미있는 공상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을 때, 내가 하는 상상이 현실의 벽이 부딪혀 별로 진도가 나가지 못할 때, 소설 속의 환상은 숨통을 틔워준다.

 

환상 동화 같은 6개의 환상 고전 단편들이 실려있다. 모두 19세기 작가들의 작품이다.  <보물섬>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목소리섬>이 첫번째다. 목소리섬은 목소리만 들리고 모습은 보이지 않는 신기한 섬을 의미한다. 장인이 별로 하는 일도 없어보이는데 부족한 것 없이 펑펑 돈을 쓰는 것이 수상쩍다. 알고 보니, 바닷가 어떤 섬으로 순간이동 하는데,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소리만 듣는다. 장인이 펑펑 쓰는 돈은 그 섬의 해변에서 주워온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라는게 무한한 돈의 출처를 알게 되면 그대로 둘 수 없게 되어 있다. 케일라의 돈을 줍기 위한 목소리 섬으로의 모험 이야기


허버트 조지 웰스의 이야기는 아이가 아버지 손을 끌고 들어간 마술 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일어나는 이상하고 기이한 마술들이 펼쳐지는 신기한 이야기인 <마술가게>, 유년시절 우연히 발견한 초록문 속의 매혹적인 정원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 세상의 일들에 눌려, 번번히 기회를 놓치고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 <초록문>, 그리고 눈먼자들이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는 눈먼자들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 눈뜬자가 눈먼자들 속에서 겪는 이야기인 <눈먼자들의 나라> 이렇게 세 편이 있다. 세 이야기 모두 좋았지만, 특히 눈 먼자들의 나라가 기억에 크게 남는다. 지진같은 재앙 때문에 절벽 안쪽에 갇혀 세상과 고립된 채로 살아가고 있는 작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유행병이 돌아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장님이 되고, 그들은 그렇게 수대째를 반복해서 살면서 그들에게 시각이란 존재하지 않는 감각이 된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그들은 만지고 냄새맡고, 듣고, 하는 등의 다른 감각을 예민하게 발달시켜, 보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던 날 절벽에서 길을 잃고 떨어진 남자가 나타나서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는 시각에 계속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그를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는 마을의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고, 그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눈을 제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로드 던세이니의 <얀 강가의 나날들>은 제목만큼이나 낭만적이고 안개속을 걷는 것처럼 뿌옇고 흐릿하며 조금은 생소한 소설인데, 무역을 하는 선원들이 배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을 묘사한 환상적인 글이다. 마지막으로 <페더탑>은 동화같은 느낌을 듬뿍 주는 내용으로 마녀가 만든 허수아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멋진 귀족의 모습으로 변신시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동화책처럼 에쁜 표지에 각 단편마다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싣고 있는데, 반할 만큼 그림이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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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커플
샤리 라피나 지음, 장선하 옮김 / 비앤엘(BNL)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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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된 아기가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앤 부부는 잠든 아기를 혼자 두고 옆집 아저씨네 생일 파티에 갔다가 아이를 잃어버렸다. 돌아와보니 문은 반쯤 열려져있고, 누워 있어야 할 아기 침대에 아기가 없는 것이다. 아기의 부모는 30분마다 한 번씩 아기가 잘 있는지 교대로 확인을 했고 무선기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가서 확인했던 시간이 12시 반인데, 1시 살짝 넘어서 돌아와 보니 아기가 없어진 것이다. 경찰은 바로 부모들을 의심하는데, 이런 경우 부모가 아이를 살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설은 3인칭이지만 아기를 잃어버린 엄마 앤의 시점에서 주로 서술되기 때문에 앤은 범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앤은 겉으로 보기에 그 중에서 가장 범행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해리성 장애를 겪어 가끔 정신을 잃고 저지른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했는데 화장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완전 피투성이가 되어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개박살내고나서 그 행위를 기억하지 못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아이를 죽였다는 의심을 의식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가 생긴 원인을 따지게 된다. 만일 파티가 없었다면 아기가 혼자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은 잘 지내는 옆집 아저씨 생일이었고 두 사람만 초대했기 때문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신시아가 아기를 데려오지 말라고 당부하지 않았다면, 앤은 아기를 데리고 갔을 것이고 파티도 일찍 끝나고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앤은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아기는 칭얼댔으며 남편은 아기 없이 좋은 시간을 갖고자 했기 때문에 아기는 두고 가기로 했다. 아기를 대신 봐주기로 했던 베이비시터가 제 때 왔다면 또한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베이비시터가 갑자기 약속을 취소하자 앤은 아기를 두고 가지 않겠다고 고집했으나 마르코가 괜찮다며 재워놓고 자주 찾아가면 괜찮을 것이라 우겼고, 앤은 할 수 없이 남편의 뜻에 따랐다.


그런 모든 자세한 상황을 아무 상관도 없는 언론이나 이웃에서 알 필요는 없지만, 문제는 그들이 한 가지 사실만 안다는 것이다. 디테일을 모르려면 피상적인 것조차 모르는 게 낫고, 관심이 재난을 돕는 게 아니라면 무관심이 낫다. 그들이 아는 것은 단지 아이를 혼자 두고 파티에서 술을 퍼마시다가 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불행에 관심을 쏟고, 매스콤의 마구 쏟아내는 추측성 보도를 시청하며 범인 찾기 놀이와 누구든 비난하는 현상은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놀이이자 오락거리가 된지 오래다.


앤의 남편 마르코도 범행동기의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최근 사업이 몹시 어려워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으며, 사업상 재정문제로 매우 곤란한 위기에 놓여있는데, 그 사실을 앤에게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마르코는 아기의 몸값으로 큰 돈을 지불할 것을 약속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 돈은 엄청나게 부자인 앤의 부모가 나서서 해결해주기로 약속받는다. 탐문 수사 결과 범인이 12시 35분에 앤의 집 차고에서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다가 아기를 납치해서 뒷길로 빠져나간 경황이 포착된다. 마르코가 아기를 옆집에서 파티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아기를 본 직후의 시간과 일치한다.


싱겁게도 범인은 소설을 반쯤 읽었을 때 밝혀지고 마는데, 독자들이 충분히 상상했을 법한 사람이다. 즉 중간부터 독자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범행 동기와 범행 과정이 서서히 밝혀진다. 이 때부터 심리전이다. 수사 당국의 끝도 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탐문 과정에 대답해야 하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집앞에서 기다리면서 가뜩이나 아기를 잃어 실성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부부들에게 악의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부모를 비난하는 우편물을 보내 집안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범인이 밝혀지고 나서도 아직 밝혀져야 할 진실은 많이 있고, 진짜 범인은 따로 있음을 알게 된다.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기로 약속되어 있던 베이비시터의 갑작스런 취소가 내겐 설명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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