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좋은 날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이유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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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차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뭐 하나 짚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25년간 그것이 단계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왜 그렇게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삶이 버겁고 힘들 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나를 잃었을 때, 차는 가르쳐 준다.

긴 안목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라.” (p. 11)

오랜 전통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선조들이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삶의 지혜들을 소중히 담았는지 깨닫게 된다. 하나씩 탐미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그동안 이 바쁜 삶 속에서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일일시호일>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영화의 원작 《매일 매일 좋은 날》은 저자 모리시타 노리코가 25년간 경험해 온 다도를 소재로 한 장편 에세이다. 노리코는 자신의 이웃이었던 다케다 아주머니에게 다도를 배우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다도를 통해서 어떤 것들을 배우게 되었고, 힘든 순간이 찾아와도 다도를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된 이야기들을 적어 내려간다.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문장들 속에서도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찻내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책을 내려놓기 아쉬워진다.

차라는 건 말이지, ‘형태가 그 첫걸음이란다. 먼저 형태를 만들어 두고 그 안에 마음을 담는 거야.” (p. 49)

현대인들에게 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사실 길을 걷다 보면, 짙은 녹색의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보다 까만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사람들을 더욱 자주 보는 게 요즘 생활 모습이다. 커피 한 잔이 풍기는 이미지는 전통 차 문화를 조금씩 밀어내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다도원이나 박물관에 가지 않는 이상 전통 차를 접하기란 어려운 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차의 형태도 우리나라 전통 차의 형태보다는 티백에 담겨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영국의 홍차수준이니 말이다.

《매일 매일 좋은 날》은 우리나라와는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일본의 전통 차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입에 실패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지 못하는 노리코에게 그녀의 어머니는 이웃인 다케다 아주머니께 다도를 배우는 것을 권유한다.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생각보다 규칙적이지 않는 학습 방법에 노리코는 다도에 대해 쉽게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머리가 기억하지 못해도 손이 기억하면 된다는 다케다 선생의 말을 따라 그저 매주 토요일 다도를 하기 위해 그녀의 집에 방문할 뿐이었다.

예전의 나에게 계절이란 더운 계절과 추운 계절, 두 가지밖에 없었다. 그랬던 것이 점점 세세해졌다. 봄에는 가장 먼저 산당화가 피어나고 매화, 복숭아꽃, 그다음 벚꽃이 핀다. 벚꽃이 지고 새잎이 돋아날 때면 동나무 꽃송이가 향기를 발하고, 활짝 피었던 철쭉이 지면 공기가 후텁지근해지면서 장마를 알리는 비가 내린다. 매실이 열매를 맺고 물가에서 창포가 피어나고 수국이 피고 치자나무가 달큼한 냄새를 풍긴다. 수국이 지고 나면 장마도 걷히고 버찌와 복숭아가 열리기 시작한다. 계절은 차례차례 포개어지듯 다가와서 공백이라는 것이 없다. (p. 8)

노리코는 25년간 다도를 배우면서 느꼈던 계절 본연의 느낌들을 아주 자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계절들은 사실 조용히 자신의 자리들을 지키고 있었음을. 삭삭삭- 따뜻한 한 잔의 차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계절들이 주는 소란스러우면서 평화로운 보통 날들을 깨닫게 된다. 원제인 일일시호일의 뜻은 비로소 그녀가 다도를 통해서 깨닫게 된 것들을 완벽히 나타낸다.

우리는 비가 내리면 오늘은 날씨가 안 좋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안 좋은 날씨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을 이런 식으로 맛볼 수 있다면 어떤 날도 좋은 날이 되는 것이다. 날마다 좋은 날이.

(p. 256)

사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다. 삭삭삭- 오늘도 따뜻한 차 한 잔에 담긴 마음은 나를 위안하고 위로해준다. 그 따뜻한 울림에, 그저 지나가는 계절을 감상하고 또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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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든든한 내 편이던
박애희 지음 / 걷는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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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먼 옛날 신이 언어를 만들 때,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 남편을 잃은 여자는 과부, 아내를 잃은 남자는 홀아비라 칭했다. 그러나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슬픔이 너무나도 커서 어떠한 이름도 붙이지 못했다고 한다.’ 비록 짧은 문장의 글이었지만,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이 짧은 문장에 완벽히 담기지 못한 채 넘쳐흘렀다. 분명 내가 지금으로선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이 있을 것이리라. 자식은 부모가 떠난 빈자리를 보고서 그제야 그 사랑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은 라디오 작가 박애희의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든든한 자신의 편이던 엄마와의 따뜻한 기억을 담은 에세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잠이 들지 않는 밤, 자신의 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며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의 엄마를 그려낸다. 라디오 오프닝이 끝나고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엄마의 문자에 대한 기억을 시작으로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곁에 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당신의 꿈이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고. 엄마로 살아온 당신의 이름 없는 날들 덕분에 우리의 눈부신 날들이 존재한다고. 엄마에 대한 나의 고백이었다. 코너가 끝나자마자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p. 93)


간혹 엄마라는 이름이 쓸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그 세월의 흔적들 때문에.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을 텐데, 그 서툰 과정 속에서 자신을 지우고 자식들로 채워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먹먹해진다.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의 박애희 작가도 그렇게 느낀 것일까. 자신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때로는 엄마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고, 허심탄회하게 뱉을 수 있을 진심들을 꾹꾹 눌러 담은 진심들을 들어주지 못했다며 그녀는 후회한다. 조금 더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것을.


인생에서 제일 빛나는 하루, 그 하루만 있어도 사람은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엄마가 선물해 준 빛나는 날들을 기억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했던 날들. 그 날들이 나를 지켜 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꼭 다시 만난다는 것을. (p. 102)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의 아픔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사실 우리는 살면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느 날 내 곁을 떠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을 아니지 않는가. 그러기에 그들이 떠나고 난 뒤의 그리움과 후회가 더욱 짙게 남아 때로는 가슴 미워지게 슬픈 날들을 겪게 되고.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을 읽다 보면, ‘만약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혹시라도 나의 엄마가, 혹은 나의 아빠가 이렇게 내 곁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나게 된다면, 나는 그 슬픔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하곤 말이다. 시간이 흘러 담담해져 사진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 전까지의 그리움과 후회의 시간들은 가슴 한 편에 오래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은 우리 딸, 최고라는 말이었다. 긴말을 하는 게 힘들던 엄마는 그러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이었다. 엄마의 응원에 화답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진짜 최고가 되자고. (p. 189)


집 안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거나 급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 나는 그 어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를 찾곤 한다. 엄마는 그 때마다 너는 진짜 엄마 없으면 어떻게 살래?”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며 그 문제를 해결해주신다. 그 질문에 그저 헤헤 웃으며 넘기고는 했지만, 막상 이렇게 그 질문은 다시 곱씹으니 대답은 하나인 것 같다. 글쎄, 나는 엄마 없이 어떻게 살까. 엄마 없이 살 수 없으니까 오래 내 곁에 있어줘.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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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연구소 - 완벽한 한 잔을 위한 커피 공부
숀 스테이먼 지음, 김수민 옮김 / 웅진리빙하우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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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 외국 영화를 보다보면 바쁘게 출근하는 여주인공의 한 손에는 커피 한 잔이 들려있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봐왔다. 그리고 , 저런 게 뉴요커의 삶인가.’라는 환상 아닌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커피 한 잔을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위한 활력이 생기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수업을 듣거나 과제를 할 때마다 늘 내 곁에는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어야 했다. 몽롱해질 즈음 입 안에 고소함과 씁쓸함을 한 번에 남기는 한 입의 커피는 너무도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물론 이는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길을 걷다 고개를 돌려 보면, 눈앞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카페가 존재하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은은한 원두향이 감싸는 순간들을 누구나 경험하고 있으니. 많은 현대인들에게 커피는 더 이상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어떤 과정들이 필요할까?

  《커피 연구소》는 커피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일명 닥터 커피(Dr. Coffee)’로 불리는 숀 스테이먼의 저서이다. 그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일상의 시름을 덜어주는 영혼의 안식처이자,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는 매혹적인 뮤즈다. 숀은 커피콩부터 시작하여 로스팅, 커피의 추출 과정을 설명하며, 커피의 맛을 조금 더 즐기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커피 연구소》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어디선가 로스팅 중인 따뜻하고도 쌉쌀한 냄새와 더불어 달칵달칵 머신을 돌리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순수한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필요에 의해 커피를 마신 적이 있는가? 단언컨대 이 질문 앞에 누구도 결백하지 않을 것이다. 솔직해지자. 카페인 때문에 커피를 마실 때도 많다. 특유의 향미를 음미하기 위해서만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커피의 카페인 함량에 추출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진다. (p. 148)


  커피 한 잔으로 최고의 활력을 얻는 법, 어제와 오늘의 커피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커피와 우유가 만났을 때의 반응, 커피만 마시면 계속 화장실에 가게 되는 이유 등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를 가질만한 주제들은 물론, 숀은 한 잔의 커피를 만들어내는 과정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커피콩부터 꼼꼼하게 따지는 이유, 로스팅 과정에서 커피를 더욱 신선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추출 과정에서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이유를 화학과 물리학을 통해서 설명한다. 커피를 과학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과학이야말로 지식을 얻는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로스팅할 때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대해 우리는 꽤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 부족한 것은 커피 향미의 화학성분과 그 상관관계에 대한 정보이다. 현대의 발전된 과학 기기와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이런 부족함을 채워준다. 특히, 커피광인 연구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더 큰 진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저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리면 된다. (p. 73)


  《커피 연구소》는 정확히 어떤 커피가 맛있고 맛없는지를 구분 짓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독자 개인의 입맛에 모든 것을 맡길 뿐이다. 독자가 맛있다고 느껴지는 커피가 바로 최고의 커피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에 대한 연구는 더욱 방대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전에 한 카페에 방문했을 때, 카페 직원들끼리 큰 테이블에 모여 커피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어떤 과정을 거쳤을 때, 조금 더 산도가 높은지, 풍미가 좋은지, 농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직접 시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멋있게 느껴졌다. 그들의 노력은 곧이어 고객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고객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한 잔의 커피를 만들기까지 그 과정은 너무도 열정적이기에, 커피 한 잔이 가진 따뜻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커피를 설명하는 사람과 이를 마시는 사람이 모두 같은 맛을 감지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소비자가 상품에 설명된 향미 중 어느 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설명은 최소한 이들에게 커피가 가진 잠재적인 맛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줄 수 있다. 나아가 소비자가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는 여정에서 안내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커피에 어떤 향미가 있는지 알면 맛을 볼 때 도움이 된다. (p. 176)


  《커피 연구소》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커피 한 잔이 절로 생각났다. , 오늘도 나의 활력이 되어줘서 고마운 커피 한 잔에게 이 서평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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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hemian Rhapsody 보헤미안 랩소디 공식 인사이드 스토리북
오웬 윌리엄스 지음, 김지연 옮김 / 온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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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늦게 극장으로 달려가 본 보헤미안 랩소디. 이미 알고 있던 퀸의 노래를 조그맣게 따라부르면서 흥겹게 즐겼던 영화였던만큼 그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졌다. 이 인사이드 스토리북 하나라면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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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든 루스 - 제7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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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쳐진 페이지에는 얼굴을 알 수 없는 실루엣만 남은 여인이 담배를 들고 있었다. <담배를 든 루스>. 루스는 에이미이거나 로자여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루스는 담배를 꺼내 들었다. 피우고 싶다, 피우고 싶지 않다. 피워도 된다, 피우면 안 된다. 이것은 담배가 아니다. 루스는 사서다. 루스는 은행원이다. 루스는 제인인이다. 제인은 나영이다. 이것은 그림이다. 이것은 그림이 아니다. 이것은 그림의 형태를 띤 색과 면과 점이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p. 164)

 

익명은 누군가에게 어떤 힘을 빌려주기도 하며, 누군가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기도 한다. 7회 중앙장편 문학상 수상작인 이지 작가의 첫 데뷔작 담배를 든 루스익명으로 하여금 청춘들의 이야기들을 그려나간다. ‘의 시선을 빌려 익명이라는 이름 아래에 가려진 개인 하나하나의 삶을 조명한다. 가난에 허덕이며 한없이 암울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달려가고자 하는 모습을 통해 오늘날의 청춘들을 대표한다. 그래서 담배를 든 루스를 읽다 보면 누가 이렇게 산다, 라는 느낌보다는 어쩌면 네 주변의 누군가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며, 그것이 네 모습이 아니라고는 부정할 수 없을 거야, 라는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스물셋의 는 여러 알바를 전전하다 시급이 더 높은 날씨 연구소라는 바에서 일하게 된다. 캐스터라는 직업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그들의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일을 하는 나는 그곳에서 리즈, 리타, 혹은 유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순수언니와 다다 역시 캐스터로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단골손님인 감독에게 연애하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나는 연애하자.’는 그의 말을 신경 쓰게 된다.


날씨 연구소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자신의 문제들과 직면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살 곳을 정하는 것. 나는 웬만한 조건들을 참고 넘어가지만, 자신의 생계가 달린 이유 때문에 무엇보다 집값을 가장 신경 쓰며 집을 구하고자 한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할 때마다 자신이 새롭게 보게 된 세상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꿈은 부사가 아닐까. 낮의 울림을 꾸며주는 밤의 언어. 그러므로 낮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한다 해도 그 의미는 사라져버리게 된다. 하지만 극장 안에서 진짜는 화면 속의 얘기뿐인 것처럼 꿈에서는 꿈만이 진실이다. 그 진짜의 세계는 좀처럼 우리를 놔주지 않는다. (p. 39)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한국 소설을 그렇게 즐겨 읽는 편이 아니다. 가끔씩 현실과도 너무나 닮아있는 소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끓어오르면서 책장을 넘기기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다른 외국 소설에 비해 주인공이 왜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모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배경에서 오는 분노는 쉽게 가라앉히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담배를 든 루스는 그런 현실을 굉장히 담담하게 그려낸다. 마치 오랜 친구가 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처럼. 더구나 마지막까지 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이름을 밝히는 순간, 그의 문제는 오로지 그에게 국한되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런 것들을 모두 뛰어넘어 이지 작가의 섬세한 문장들은 괜히 마음속에 간직하게끔 만든다. 책을 읽다 보면, 암울한 주인공들의 삶을 지켜보다 우울해지면서도 섬세한 문장들이 콕콕 와 닿으면서 작은 위로를 건네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곱씹으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믿음은 문장일까. 구조를 가진 하나의 완결체, 끝없는 덧붙임, 그리고 마침표.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해 단문으로, 복문으로 그리고 접속사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하나의 문장은 결국 하나의 문장일 뿐이다. 문장은 문장에 끼어들 수 없다. 결합하는 순간 또 다시 하나의 문장이 될 뿐이니까. 도두암도, 백색 믿음도, 스파게티 교도, 영화 학도들이 믿는 그 영화도 모두 하나의 문장이다. 문장이 우리를 홀리고 위로하고 속이고 쉬게 한다. (p.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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