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내가 죽었다 - 끌로드씨의 시간여행
이즈미 우타마로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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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뭐 하나 거치적거릴 것 없이 즉사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11쪽) 끌로드씨는 64년의 인생에 작별을 고하고 죽음을 맞았다. 죽으면 끝이라고 했지만 끝이 아니였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또 다른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현재의 삶이 달라질까? 동화스러운 책표지, 제목은 <어느날, 내가 죽었다>이다. 한끝 차이라면 <어느날, 내가 죽였다>도 될 수 있다. 끌로드씨처럼 누군가를 죽인게 아니라 내 삶의 시간을 죽였는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마다 끌로드씨는 마트에서 시다릴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끌로드씨는 죽어서 수호천사들을 만났다. 이 생에서의 삶은 끝났지만 아직 끌로드씨의 여정이 끝나지 않았다. 끌로드씨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천사들이 애썼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시절로 올라가는데 끌로드씨는 몰랐다. 천사가 자신에게 무엇을 속삭여 주었는지, 어딘가로 이끌었는지 말이다. 생이 계속 반복되지만 과거의 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면 어떨까? 아마도 현명한 사람들은 현명 레이더가 착착 앞길을 비춰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갖고 싶다. 현명 레이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독특했다. 그다음은 가슴이 찡해진다. 끌로드씨가 사랑하는 부인과 헤어졌던 그 순간. 다시 보아도 끌로드씨는 가슴이 끊어질듯 아팠다. 그런데 천사들이 행복의 순간이란다. 끌로드씨는 죽을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두 사람은 행복했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다만 끌로드씨의 부인 이레드는 사랑하는 남편을 더이상 속박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남편을 떠난다고 말했지만, 그것뿐만은 아니였다. 이제는 서로를 위해 살았으니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그녀는 남편을 떠나갔다. 흐르는 눈물을 참고 아픈 가슴을 간신히 추스리면서 말이다. 끌로드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꿈을 향해 떠나가던 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이다. 끌로드씨의 마음에 담겨져 있던 꿈을 펼치는 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죽을병에 걸린 줄 알았던 끌로드씨는 모처럼 휴가를 받았다. 재밌게도 이 역시 천사들의 장난이리라. 서른을 넘기면 큰일날 것만 같다라고 끌로드씨가 말하니 천사들은 말도 안된다고 했다. 서른은 거대하고 창대한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면서.(이것은 내말이다) 20대에 할일을 40대에 하면 안되나? 때가 있다고 하지만 그때가 변한다고 해서 어찌되는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긴 하겠지. 많이. 그렇겠지.. 힘도 들겠고. 나이 먹어서.. 이래서 안되는건가.

"보물은 말이지. 처음에는 자기도 보물인지 잘 모른단다. 그러니까 주위 사람들도 대부분 몰라. 하지만 그게 정말 즐겁고 계속 기억에 남는다면 분명 보물인 게야. (104쪽) 중간을 넘어서 끝으로 갈때 책의 내용이 복잡미묘해진다. 끌로드씨처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알지 못하는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마음속 울림이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 귀기울여야 할지 모르겠다. "좀 크게 말해주면 안될까?"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다. "그런 이야기는 빨리 해주면 좀 좋아." 라고 투덜대고 싶어진다. 빨리 말해준다고 해서 내가 빨리 알아들었을까 싶지만. 지금도 어느 순간의 기억이 끊켜있는데 이전의 생이 있었다고 해도 기억하는 것은 무리도 한참 무리다. 이 책을 읽으니 마음이 찡하면서 힘이 난다. 힘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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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싶은 날 -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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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런 날이 있다. 그림 그리고 싶은 날~ 그리고 싶은데 그려지지 않는 날~ 그래서 더 울쩍한 날~ 추위가 뼛속 깊이 사무칠때, 누군가가 그리울때, 괜시리 눈물이 날때, 그런 날이 있다. 처음에 시작할때 빼고는 글이 많지 않다. 그점이 마음에 들었다면 매우 들었다. 일러스트나 만화 소품집 같은 느낌도 든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려보라는 저자의 말대로 그려 보는데 삐딱삐딱하다. 병 그리는게 쉽지 않다. 책속에서는 매우 간단하고 쉬워보인다. 저자의 시작은 신발 그림이다. 난 신발끈이 싫다. 걸어다닐때도, 신발을 신을때도, 신발을 빨때도 매우 거추장 스러우니까. 역시 그릴때도 신발끈이 참 나쁘다. 신발끈이 무슨 대수냐고. 한번 그려보시길. 선 연습부터, 언제 기초 닦고 실전에 들어가냐 싶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선이 엉망이다. 역시 점이 점점이 커지면서 선이 되고 선이 모여서 면이 되고 그런다지. 저자가 쉽게 그린것 같은 그림을 자세히 보면 선이 단순하고 세련되었다. 사람을 그리든, 사물을 그리든 여러번 긋지 않고 한번의 선으로 가는 것은 예리한 눈대중과 노련한 솜씨가 필요한 일이다. 뭐 그런거 상관없으니 자유롭게 그려보란다. 어라라~ 그말 믿고 정말 그려본다. 저자가 그린 벨트나 맥주병들은 멋지다. 내가 그린 맥주병은 물속에서 분명히 가라앉을거다. 균형이 잡히지 않아서.

콜라병을 그대로 그리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보는 것과 그리는 것은 이토록 다르다. 특히나 안목이 높을 경우에는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매우 심하다. 그래서 금방 포기하게 된다. 차라리 한쪽 눈을 감아버리자. 안되면 두눈이라도 질끈. 다양한 디자인의 의자들을 바라보며 흡사 디자인관련 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단순하게 의자의 특색을 잘 잡았다. 색도 대강 칠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과 행동을 빠르게 잡아서 그리는 것은 재미있을 것 같다. 다만 그 사람이 최소한 10분정도는 서 있어 주어야 할텐데. 쌩하고 가버리니 참으로 아쉽다. 어릴적에 내가 좋아하는 강아지를 그려주고 싶었는데 잠잘때 빼고는 한시도 가만있질 못해서 그리는데 실패했다. 자다가도 내가 쳐다보는 눈길을 느끼는지 벌떡 일어나서 꼬리를 흔든다. 뒷장으로 넘어가면 나만의 스케치북을 만들어 본다. 스케치 만드는 장에 글씨가 꼼꼼하게 많이 씌여져있다. 좀 피곤한 기분이다. 만들기 잼병인 나에게 스케치북은 좀 무리인듯 싶다. 집에 돌아다니는 크로키북을 들었다. 책꽂이 사이를 살펴보니 먼지가 수북히 쌓인채 놓여 있었다. 참 오랜만이다. 열심히 그려 보리라 다짐했던 그날이 잠시 생각났다. 몇장 그려지지 않은 크로키북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주변 사물을 꼼꼼히 바라보았다. 잠잘 시간이 지났지만 나의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동안 이것저것을 그려 보았다. 저자의 말대로 그냥 그려보려고 한다.

그림을 어떻게 그리라고 그런 내용은 없다. 시작해 보라고 한다. 저자의 스케치북안의 풍경을 살펴본 기분이다. 사람들의 모습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대략 훑어 보았던 그림들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이 책을 살펴보면서 좀 아쉬웠던 것은 그림속의 대부분이 영어로 씌여졌다는 것이다. 자유스러운 그림들이 볼때마다 나도 하나씩 그려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그림이 낙서처럼 느껴지지만 역시 실력자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속에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뭐랄까. 있는 그대로가 아니여도 자신만의 세계가 더 그림속에 묻어 났으면 하는 바램이 그냥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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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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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가 좀 구질한(얼핏 보면 내게는 그런 느낌이다) 느낌인데 익숙한 느낌이다. 내가 그곳을 간것도 아닌데 이런 스타일의 책이 집에 있나보다. 읽기는 금방 읽었는데 읽고나서는 좀 아리송송하다. '공간'이라는 상당히 제한적일 것 같으면서도 무한대의 느낌이 드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건축에서 공간은 때로는 철저하게 계획되어진 것일때도 있고 우연한 경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축의 공간부터 시작해서 가까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장소에까지 공간이야기는 흘러든다. 공간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어느 장소와 추억, 그 시간선상에 있다.  그들의 그림은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살아가는 공간에서의 경험들이 하나하나 의미를 가질 때 우리의 삶 역시 의미로 가득 찬다.(57쪽) 어떤 공간에는 그리움이 쌓이고 사랑스러운 선율이 들려오기도 한다. 때로는 그 공간을 지나가기 싫어서 멀리 돌아가기도 한다. <나홀로 남겨져>란 미스터리풍이 강한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추억이 한공간에 맺힌다는 것은 어쩌면 어떤 파장과 맞아 떨어져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곳을 가도 시간이 지나면 집에 오고 싶어진다. 집에 오면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집이라도 마음만은 편하다.(근데 곧 허물어진다는데 정말 마음이 편할까? 잠도 잘 오지 않을 것 같다. 깔려 죽을까봐) 종종 잘때면 형광등이 나를 덮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잠이 든다.. 공간이 모든면에 닫혀있다면 어떨까? 그건 아마 독방일 것이다. 공간이라고 하기엔 복잡미묘한 느낌이다. 공간이 이루어내는 환상적인 느낌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지 않을까. 해가 뜨지 않는다면 창가로 빛이 들어오지 않고, 비도 오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는다면, 바람도 불어주지 않는다면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세상에 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중산간 들녂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 씨 뿌리고 거두며 마지막엔 뼈를 묻는 토박이들뿐이다.
최소한 그대들의 신산한 삶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오름을 경외하는 이들만이
그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205쪽)


책속에서 여러 공간을 거닐어 보았다. 영화속의 보았던 한 장면, 그러고 보면 우리는 그런 공간을 동경한다. 한옥이 자연과 함께 숨을 쉬며 존재하듯이, 공간이 혼자 토라진듯이 외톨이처럼 있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도 외면하고 자연도 외면하는 그런 공간이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정감 어린 곳이였으면 좋겠다. 대도시는 어디를 가도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다. 어느 곳 하나 발붙이기에는 따스함이 없는 곳들이 많다. 단순하고 깔끔해보이지만 왠지 속으로는 딴 생각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공간의 구축은 경험의 구축이자 삶의 구축이다. 공간을 거니는 것은 삶을 거니는 것이다. 공간을 향기 맡고, 듣고, 만지는 것은 삶을 향기 맡고, 듣고, 만지는 것이다. 공간을 기억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다.(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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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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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평범한 일상을 즐기면서 부인과 사랑스러운 딸을 바라보면서. 그랬는데 그런 그가 지금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다. 그럴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누구는 마음먹고 토끼같은 자식 가슴에 상처주고 여우 같은 마누라의 가슴에 피눈물 흘리게 하려고 했을까.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겠지. 우연하게 회사에 들어온 임시직 여직원이였던 아키하와 나는 눈이 맞았다. 계기도 자연스러웠다. 그 선을 넘기지 않았더라면 그냥 직장 상사로써 괜찮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이 마흔이 가까워진 결혼한 남자는 이제 남자도 아닌 아저씨란다. 친구의 말에 웃고 말았지만 왠지 서글픔이 느껴졌다.(남자만 그런가 여자도 무생물이라는데) 사랑해서 결혼한 남녀가 시간이 지나면 이제 이성이 아닌 동성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편안한게 마냥 좋기만한 것은 아닐것이다. 그는 자신이 바람 핀다는 사실을 부인이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사람아 여자들이 얼마나 예리한지 모르는구만.'  그는 아키하를 만나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그의 부인과도 전에 느꼈을 감정이다. 그 소중함을 잊고 있을 뿐이지만. 우리 머릿속의 지우개는 괴로운 감정도 잊게 만들지만, 때로는 두근 거리는 설레임도 사라지게 만든다.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괜찮을꺼라고 악마의 속삭임이 강하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한때 지나가는 바람이였을지라도 그 바람의 소용돌이속에 있을때는 그렇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니까. 그는 아키하를 알아가면 갈수록 좋아진다. '이사람아 사귀는 것과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부인과 이혼하고 아키하와 결혼한다고 해도 또 다시 같은 생활은 이어지고 권태기는 올 것이다. 다만 그는 그동안 가정에 충실하고 바람은 경멸해왔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빠지면 더 무섭다는. 아키하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의 비서이자 애인이 살해 당한 사건이다. 이제 공소시효가 며칠있으면 끝나간다. 사건을 조사하고 다니는 형사와 살해당한 여인의 여동생이 아키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녀가 살해당하던 시각 그 집에는 그녀와 아키하 두 사람만이 집에 있었다. 증거는 없고 범인은 잡지 못한채 공소시효는 다가오고 있었다. 형사와 그녀의 동생은 아키하가 범인이라고 심적으로는 생각했지만 물증이 없어서 주변만 맴돌고 있었다.

아키하가 자주 가는 바는 이모가 운영중이고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어쩌다가 한번씩 얼굴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애인이 죽기 6개월전에 아키하의 엄마가 자살하고 애인이 살해당하고 복잡했다. 분명히 무슨 내막이 있었다. 앞장에서는 그와 아키하의 이야기, 그리고 부인에게 미안해하면서도 그녀에게 끌려하는 이야기, 그리고 살해사건에 대해서는 조금씩 실마리를 풀어 주고 있었다. 바람에 연을 날리기 위해서 실패를 조금씩 풀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진실은 잔혹하다. 때로는 모르는게 약인것처럼 말이다. 아키하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경우에는 누구를 법정에 세워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아키하는 진실에 침묵하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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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스토리콜렉터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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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단박에 알아내지 못했다. 추리 매니아인 언니는 범인을 넘 빨리 알아버려서 다소 실망했다고 했지만 나는 눈치가 느려서인지, 범인은 바로 이사람이다 할때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 사람을 범인이 아니라고 아예 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어찌보면 '말장난'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일도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점에서 저자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에 약간은 주춤하기도 하였으나 금방 읽어 내려갔다. 다 읽고 난 후 씁쓸한 기분이 되버렸다.

가족은 서로를 구속하고 잔소리하기 위해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은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서로를 돌보듯이 하더라도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짓기는 어려우나 그럴꺼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가족이 있으니까. 보기만 해도 으르릉 거리고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하기도 하고 유령처럼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은 경우도 있다. 인터넷상으로는 아무 상관도 없기 때문인지 몰라도 있는 말 없는 말도 다 하면서 가족과 함께 할때는 침묵하게 될까. 누군가에는 친절하고 다정한 아버지가 집에서는 무뚝뚝하기 그지 없고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한없이 다정한 녀석도 집에 와서는 지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만다. 아줌마들과는 끝없이 수다를 떨곤 하지만 집에서는 잔소리만 늘어놓게 되는 이런 극적인 상황.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상황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상황에 맞추어서 나의 또 다른 모습, 모습들을 나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현실에 가족이 있음에도 인터넷상으로 가족 역할극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장인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그전에 여고생이 살해당하고 그 두 사건이 이어져 있었다. 인터넷상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아들 미노루, 딸 가즈미 네 사람은 가족처럼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위로해주었다. 인터넷에서 이런 역할극을 한다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살해당한 아버지 딸의 진짜 이름도 가즈미였다. 가즈미의 아버지는 바람 피는 것을 밥먹듯이 하는 그런 사람이였다. 바람끼를 그의 부인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암묵적으로 못본체하며 그렇게 부부의 사이를 이어가고 있었다. 부모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불행하다. 이혼이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겠지만 불행을 안고 사는 것 역시 상처가 될 것이다. 경찰이 세운 전대미문의 계획은 별것 없었던 것 같지만 그 표제 자체가 심하게 거창하지 않은가 싶었다. 이런 일을 겪을때마다 경찰이라는 것이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것만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참아내야 한다는 것 역시 힘든일이다.

그것이 요즘 유행인 걸까? 자아, 자아, 자아. 모두가 남의 시선이야 어떻든 진정한 자아를 찾는 세상이다. 찾을 필요도 없이 이미 확고한 자아가 있다고 자부하는 이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을 고르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심정을 돌아보지도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272쪽) 그래서 난 자아를 찾아 길을 떠난적이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길 떠난다고 '자아가 나야 나'하고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므로.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어."(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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