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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ㅣ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은 자라온 환경이 삶에 크게 작용한다. 어린시절 학대 받고 자란 아이는 불행하게 자신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거나 그시절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겹게 세상을 살아간다. 프레드리크는 어린시절의 아픔을 간직한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다. 다행히 그에겐 귀엽고 사랑스러운 다섯살난 마리라는 아이가 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그 아이. 그런데 그 아이가 처참하게 간강당하고 살해당한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이런 잔악한 사건과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 차마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그런 자들이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참혹하고 무자비한 느낌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반절을 읽어 내려가면서도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자신의 딸을 죽인 살해범이 탈옥을 한다. 프레드리크는 그를 찾아 나선다. 뭔가 사단이 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결론이 뭐였는지 알아? 경미한 정신질환이라는거야. 이해가 가? 꼬마들을 무자비하게 강간하고 살해했는데 진단 결과는 경미한 정신질환이라는 게 말이야." 오게스탐은 한숨을 내쉬었다. (198쪽) 그런 사람이 경미한 정신질환이라면 뇌수술이라도 좀 해주지. 확실하게 감옥에 붙잡아 둔다거나 다른 수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성범죄자들의 재발율이 높은데도 손 놓고 바라보는 느낌이 드는 것은 뭘까.
이 책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개개인의 입장, 그리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무수한 시각, 그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것인지를 떠나서 벤트 룬드라는 강간 살인범이 이 세상을 숨쉬고 살아가야 하는지, 법의 처벌이 아닌 개인이 다른이의 생사를 마음대로 해버려도 되는 것인지(그것이 잔혹한 살인범이라도), 그 여파로 인해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른다는것, 그것이 정당화 되어 버리면 사람들은 정당방위라는 재목 아래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 결국엔 사회는 엉망징창이 되어 버린다는 것. 시민들은 그런 놈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그 아이의 아버지를 옹호하고 분노하고 그로 인해 표출된 에너지는 또 다른 죄악을 남기게 되고, 이 책에서는 이런 시각이 담겨 있었다. 성범죄는 날이 갈수록 극으로 치닫고 있고 성추행이라든지 그런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때론 사형제도가 폐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전에 5섯명중 3명은 억울하게 교도소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이 죽으면 안되니까. 세상은 수학 정답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난 그 나쁜 자식이 두 아이의 사진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또 다른 희생자가 분명히 나온다에 죽어도 싼 놈이라고 생각했다. 제발 개인이 손을 쓰기전에 법이 먼저 강력하게 처벌해주면 안되나. 법은 멀리 있고 주먹이 가까운 것인가. 왜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어 내는가. 그리고 알몸으로 애국가를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노출증도 문제가 심각하지만 룬드라는 놈과는 달랐다. 분명히 아니다 그놈도 분명히 나중에는 그런 짓을 했을 것이다 라고 반발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그 누구라도 이런 사람이 한 동네에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생명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자칫 잘못해서 무고한 생명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결말에서 남겨준 그 희생자처럼 말이다. 사건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몇페이지가 남아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결말은 참 씁쓸했다. 모든것을 한쪽면만에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극적 흥분 상태에서 이런 일을 판단하면 안된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한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죽어도 싼 놈은 없다지만 그런 인간도 있고 정의는 살아 있다지만 형체가 연기뿐이라 아픈사람들을 더욱 처절하게 만드는 것 같다.
교보 북씨앗으로 받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