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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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를 알게 된 계기는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이였다. SF작가였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쓴사람이였다니 이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전에 알았겠지만 아마도 흘려들었을 것이다.) 미스터리는 딱 3작품뿐이란다. 로트레크와 그리고 부호형사가 그 세작품중에 포함된다. 로트레크를 읽었을때는 '이건 뭔가' 싶었는데 부호형사를 읽으며 유쾌해졌다. 추리라든지 미스테리와는 약간 거리가 먼듯해보이는 유쾌하고 재미난 책이다. 돈이 많아서 미안한 부호 형사 다이스케이다. 다이스케의 아버지는 대부호로 돈이 많아서 주체할수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아들이 형사로 일하는데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들이 사건을 맡아올때마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곤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눈이 뒤집히고 숨쉬기가 곤란해 쉭쉭 거리는데 절대 죽지 않는다. "그 호텔이 네가 일하는데 도움이 된단 말이냐? 경찰작전에 쓰인다는 게야? 온갖 몹쓸 짓으로 벌어들인 더러운 돈으로 지은 그 호텔을 사회를 위해 써준단 말이구나."(251쪽) 요렇게 말하면서 울고 불고 너는 내 천사라는 둥 곧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처럼 말한다. 다만 숨이 넘어갈것 같지만 죽지 않을뿐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양반이다. 다이스케는 수사에 사비를 부어가며 형사로써 일하고 있다. 이래저래 돈이 배로 불려서 오는 통에 다이스케 아버지는 화를 내는데 그것이 이상하게도 적자를 내려고 하면 금방 또 다시 이익을 내서 돌아온다. 그런 부하직원에게 화를 내고 당장에 잘라버리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참 현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이스케는 돈이 많아서 주체할 수 없고 돈많은 부자라서 재수없게 느껴질지도 모르나, 거부감도 들지 않을뿐더러 그런 형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까지 든다. 처음에 <부호형사의 미끼>에서는 이래저래 등장하는 형사들의 이름때문에 좀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첫번째 이야기는 끝나고 밀실의 부호형사편이 시작된다. 이 책은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정말이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어서 배꼽을 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스케를 멋진 배우로 선택하고 스즈에라는 아버지의 미서도 미모의 배우로 뽑아서 요런 내용으로 만들면 대박. 유쾌하게 웃어 줄 수 있으리라.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말을 건다. '이사람이 수완이 좋잖아.'

<부호형사의 함정>에서는 저자의 유머가 독자를 더욱 즐겁게 만든다. 다이스케의 사비로 아이의 몸값을 지불하게 되는데 작전상 다이스케가 그 돈가방을 빼앗아 들고 튄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 돈가방을 들고 도망가는 다이스케를 기자 두명이서 쫓아오는 상황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다이스케가 선택한 방법은 사람들에게 돈을 뿌렸다는~ 그로인해 4명의 경미한 부상자 발생. 웃기기만 한것은 아니고 추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추리는 경미하지만 계속된다.
다이스케는 사건 종결자, 허나 문제 발생함. 동료들이 다이스케를 거들어서 한마디 한다.
"아, 뿌린게 아니라 흘렸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사루와타리가 외쳤다.
"어떻게 흘리면 지폐 다발이 천장까지 솟아오를 수 있나?" (230쪽)


<호텔의 부호형사편>이 완성도가 있었다. 처음에는 어수선하게, 중간에는 웃기게, 마무리는 추리작품처럼 끝이나고 있었다. 부호형사가 어떻게 돈을 들여서 사건을 처리하는지 그 과정과 그의 아버지의 코믹함이 잘 어울러졌다. 정말이지 요런 부호형사 나쁘지 않은데 말이다. 은근히 대부호나 부자들을 비꼬는듯한 느낌도 받았는데 그건 나만의 느낌일런지. 정말이지 형사나 경찰에 동원되는 지원비가 턱없이 부족한데 이런 부호형사가 봉처럼 나타나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이책은 북카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 http://cafe.naver.com/readbook.cafe 에서 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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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코 서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박영난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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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치코 라는 헌책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단편의 이야기다. <수국이 필 무렵>은 처음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였는데 아쉬운점이 많았다. 거의 반백수인 이 남자는 연상의 여인과 동거 중이였다. 사치코 서점이 있는 곳으로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 동네 라면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이였다. 그는 궁금증이 많아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다녔다. 라면집에 젊은 남자가 반팔을 입고서는 이층을 바라본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도 매우 의심스럽게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 젊은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감이 딱 온다. 그에게만 보이는 젊은 남자는 라면집 사장으로 며칠전에 상해당한 사람이였다. 그리고 몸이 편치 않은 딸과 부인을 남겨두고 갑작스럽게 살해당한것이다. 자신이 지켜줘야 한다며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젊은 남자가 살해당한 사람이라는 암시가 좀 약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야기해줬지만, 처음의 이야기를 읽을때는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잘 모르겠다는

사치코 책방과 그 주인이 여러 단편속에서 꼭 등장한다. 구체적으로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끌고 갔더라면, 수국이 필 무렵의 이야기가 어설프게 이야기를 끌고 있어서 좀 아쉬웠다. 사치코 서점이 있는 동네에는 은근히 귀신이 자주 나타나는 모양이다. 웃긴 귀신 아니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귀신들이다. 이 책의 단편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여름날의 낙서>, <사랑의 책갈피>였다. <여름날의 낙서>는 가슴이 시린 이야기였다. 허약한 소년이였던 동생은 골목대장에 똑똑한 형을 무지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부터 전봇대에 동생에 관련된 이상한 말이 붙어 있는 것이였다. 그말이 암시하는 것은 동생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었다. 언제까지고 아픈 동생을 지켜줄것만 같았던 형은 그 아이를 어떻게서든 잡아서 혼내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잡지 못하고 이야기는 씁쓸하게 끝이난다. <사랑의 책갈피>는 책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러브레터 이야기였다. 역시 그 러브레터를 나눈 장소는 사치코 서점이다. 사치코 서점이라고 해서 아리따운 여자가 주인장일줄 알았는데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인상은 좀 험하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따뜻하다는 뭐 그렇다. 자신의 이상형인 남자가 그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책을 읽기 위해서 서점에 자주 들른다는 이야기를 주인장을 통해 듣는다. 그리하여 책꽃이에다가 간략하게 몇줄씩 적어가며 편지를 주고 받는다. 지금의 시대와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요즘에야 금방, 뚝딱, 여러말을 주고 받고 끝내기도 빨리 끝내겠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이어지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여자의 마음>은 알 수 없는 여자의 마음에 대해서 나온다. 술만 마시면 돌변하는 남자를 사랑해서, 그것이 여자의 마음인가. 왜 이런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지, 그를 떠나지 못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남자가 죽었지만 그녀는 그사람을 잊지 못해서 미친사람이 된 듯 보인다. 딸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그녀의 친구는 생각한다. 그녀가 어떻게 된다면 자신이 딸을 잘 키워줄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상황은 불행하게 흐른다. 그녀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것이다. 처음의 시작에서 중간까지는 괜찮았는데 마지막이 좀 흐지부지한 느낌이라서 이 이야기도 잘 나가다가 좀 그랬다. 그 다음부터는 아리쏭쏭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다음편을 읽다보면 단편이 좀 재미없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편의 이야기가 많은 위안을 준다. (생각보다 잔잔하지만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에는 사치코 서점의 주인도 멀리 떠나기전에 부인의 전령을 받는 마무리짓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가 몇편을 빼고는 방황하는 느낌이 든다. 귀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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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내가 죽었다 - 끌로드씨의 시간여행
이즈미 우타마로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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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뭐 하나 거치적거릴 것 없이 즉사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11쪽) 끌로드씨는 64년의 인생에 작별을 고하고 죽음을 맞았다. 죽으면 끝이라고 했지만 끝이 아니였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또 다른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현재의 삶이 달라질까? 동화스러운 책표지, 제목은 <어느날, 내가 죽었다>이다. 한끝 차이라면 <어느날, 내가 죽였다>도 될 수 있다. 끌로드씨처럼 누군가를 죽인게 아니라 내 삶의 시간을 죽였는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마다 끌로드씨는 마트에서 시다릴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끌로드씨는 죽어서 수호천사들을 만났다. 이 생에서의 삶은 끝났지만 아직 끌로드씨의 여정이 끝나지 않았다. 끌로드씨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천사들이 애썼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시절로 올라가는데 끌로드씨는 몰랐다. 천사가 자신에게 무엇을 속삭여 주었는지, 어딘가로 이끌었는지 말이다. 생이 계속 반복되지만 과거의 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면 어떨까? 아마도 현명한 사람들은 현명 레이더가 착착 앞길을 비춰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갖고 싶다. 현명 레이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독특했다. 그다음은 가슴이 찡해진다. 끌로드씨가 사랑하는 부인과 헤어졌던 그 순간. 다시 보아도 끌로드씨는 가슴이 끊어질듯 아팠다. 그런데 천사들이 행복의 순간이란다. 끌로드씨는 죽을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두 사람은 행복했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다만 끌로드씨의 부인 이레드는 사랑하는 남편을 더이상 속박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남편을 떠난다고 말했지만, 그것뿐만은 아니였다. 이제는 서로를 위해 살았으니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그녀는 남편을 떠나갔다. 흐르는 눈물을 참고 아픈 가슴을 간신히 추스리면서 말이다. 끌로드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꿈을 향해 떠나가던 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이다. 끌로드씨의 마음에 담겨져 있던 꿈을 펼치는 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죽을병에 걸린 줄 알았던 끌로드씨는 모처럼 휴가를 받았다. 재밌게도 이 역시 천사들의 장난이리라. 서른을 넘기면 큰일날 것만 같다라고 끌로드씨가 말하니 천사들은 말도 안된다고 했다. 서른은 거대하고 창대한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면서.(이것은 내말이다) 20대에 할일을 40대에 하면 안되나? 때가 있다고 하지만 그때가 변한다고 해서 어찌되는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긴 하겠지. 많이. 그렇겠지.. 힘도 들겠고. 나이 먹어서.. 이래서 안되는건가.

"보물은 말이지. 처음에는 자기도 보물인지 잘 모른단다. 그러니까 주위 사람들도 대부분 몰라. 하지만 그게 정말 즐겁고 계속 기억에 남는다면 분명 보물인 게야. (104쪽) 중간을 넘어서 끝으로 갈때 책의 내용이 복잡미묘해진다. 끌로드씨처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알지 못하는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마음속 울림이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 귀기울여야 할지 모르겠다. "좀 크게 말해주면 안될까?"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다. "그런 이야기는 빨리 해주면 좀 좋아." 라고 투덜대고 싶어진다. 빨리 말해준다고 해서 내가 빨리 알아들었을까 싶지만. 지금도 어느 순간의 기억이 끊켜있는데 이전의 생이 있었다고 해도 기억하는 것은 무리도 한참 무리다. 이 책을 읽으니 마음이 찡하면서 힘이 난다. 힘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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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싶은 날 -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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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런 날이 있다. 그림 그리고 싶은 날~ 그리고 싶은데 그려지지 않는 날~ 그래서 더 울쩍한 날~ 추위가 뼛속 깊이 사무칠때, 누군가가 그리울때, 괜시리 눈물이 날때, 그런 날이 있다. 처음에 시작할때 빼고는 글이 많지 않다. 그점이 마음에 들었다면 매우 들었다. 일러스트나 만화 소품집 같은 느낌도 든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려보라는 저자의 말대로 그려 보는데 삐딱삐딱하다. 병 그리는게 쉽지 않다. 책속에서는 매우 간단하고 쉬워보인다. 저자의 시작은 신발 그림이다. 난 신발끈이 싫다. 걸어다닐때도, 신발을 신을때도, 신발을 빨때도 매우 거추장 스러우니까. 역시 그릴때도 신발끈이 참 나쁘다. 신발끈이 무슨 대수냐고. 한번 그려보시길. 선 연습부터, 언제 기초 닦고 실전에 들어가냐 싶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선이 엉망이다. 역시 점이 점점이 커지면서 선이 되고 선이 모여서 면이 되고 그런다지. 저자가 쉽게 그린것 같은 그림을 자세히 보면 선이 단순하고 세련되었다. 사람을 그리든, 사물을 그리든 여러번 긋지 않고 한번의 선으로 가는 것은 예리한 눈대중과 노련한 솜씨가 필요한 일이다. 뭐 그런거 상관없으니 자유롭게 그려보란다. 어라라~ 그말 믿고 정말 그려본다. 저자가 그린 벨트나 맥주병들은 멋지다. 내가 그린 맥주병은 물속에서 분명히 가라앉을거다. 균형이 잡히지 않아서.

콜라병을 그대로 그리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보는 것과 그리는 것은 이토록 다르다. 특히나 안목이 높을 경우에는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매우 심하다. 그래서 금방 포기하게 된다. 차라리 한쪽 눈을 감아버리자. 안되면 두눈이라도 질끈. 다양한 디자인의 의자들을 바라보며 흡사 디자인관련 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단순하게 의자의 특색을 잘 잡았다. 색도 대강 칠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과 행동을 빠르게 잡아서 그리는 것은 재미있을 것 같다. 다만 그 사람이 최소한 10분정도는 서 있어 주어야 할텐데. 쌩하고 가버리니 참으로 아쉽다. 어릴적에 내가 좋아하는 강아지를 그려주고 싶었는데 잠잘때 빼고는 한시도 가만있질 못해서 그리는데 실패했다. 자다가도 내가 쳐다보는 눈길을 느끼는지 벌떡 일어나서 꼬리를 흔든다. 뒷장으로 넘어가면 나만의 스케치북을 만들어 본다. 스케치 만드는 장에 글씨가 꼼꼼하게 많이 씌여져있다. 좀 피곤한 기분이다. 만들기 잼병인 나에게 스케치북은 좀 무리인듯 싶다. 집에 돌아다니는 크로키북을 들었다. 책꽂이 사이를 살펴보니 먼지가 수북히 쌓인채 놓여 있었다. 참 오랜만이다. 열심히 그려 보리라 다짐했던 그날이 잠시 생각났다. 몇장 그려지지 않은 크로키북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주변 사물을 꼼꼼히 바라보았다. 잠잘 시간이 지났지만 나의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동안 이것저것을 그려 보았다. 저자의 말대로 그냥 그려보려고 한다.

그림을 어떻게 그리라고 그런 내용은 없다. 시작해 보라고 한다. 저자의 스케치북안의 풍경을 살펴본 기분이다. 사람들의 모습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대략 훑어 보았던 그림들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이 책을 살펴보면서 좀 아쉬웠던 것은 그림속의 대부분이 영어로 씌여졌다는 것이다. 자유스러운 그림들이 볼때마다 나도 하나씩 그려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그림이 낙서처럼 느껴지지만 역시 실력자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속에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뭐랄까. 있는 그대로가 아니여도 자신만의 세계가 더 그림속에 묻어 났으면 하는 바램이 그냥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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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공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공간 공감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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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가 좀 구질한(얼핏 보면 내게는 그런 느낌이다) 느낌인데 익숙한 느낌이다. 내가 그곳을 간것도 아닌데 이런 스타일의 책이 집에 있나보다. 읽기는 금방 읽었는데 읽고나서는 좀 아리송송하다. '공간'이라는 상당히 제한적일 것 같으면서도 무한대의 느낌이 드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건축에서 공간은 때로는 철저하게 계획되어진 것일때도 있고 우연한 경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축의 공간부터 시작해서 가까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장소에까지 공간이야기는 흘러든다. 공간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어느 장소와 추억, 그 시간선상에 있다.  그들의 그림은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살아가는 공간에서의 경험들이 하나하나 의미를 가질 때 우리의 삶 역시 의미로 가득 찬다.(57쪽) 어떤 공간에는 그리움이 쌓이고 사랑스러운 선율이 들려오기도 한다. 때로는 그 공간을 지나가기 싫어서 멀리 돌아가기도 한다. <나홀로 남겨져>란 미스터리풍이 강한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추억이 한공간에 맺힌다는 것은 어쩌면 어떤 파장과 맞아 떨어져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곳을 가도 시간이 지나면 집에 오고 싶어진다. 집에 오면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집이라도 마음만은 편하다.(근데 곧 허물어진다는데 정말 마음이 편할까? 잠도 잘 오지 않을 것 같다. 깔려 죽을까봐) 종종 잘때면 형광등이 나를 덮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잠이 든다.. 공간이 모든면에 닫혀있다면 어떨까? 그건 아마 독방일 것이다. 공간이라고 하기엔 복잡미묘한 느낌이다. 공간이 이루어내는 환상적인 느낌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지 않을까. 해가 뜨지 않는다면 창가로 빛이 들어오지 않고, 비도 오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는다면, 바람도 불어주지 않는다면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세상에 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중산간 들녂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 씨 뿌리고 거두며 마지막엔 뼈를 묻는 토박이들뿐이다.
최소한 그대들의 신산한 삶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오름을 경외하는 이들만이
그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205쪽)


책속에서 여러 공간을 거닐어 보았다. 영화속의 보았던 한 장면, 그러고 보면 우리는 그런 공간을 동경한다. 한옥이 자연과 함께 숨을 쉬며 존재하듯이, 공간이 혼자 토라진듯이 외톨이처럼 있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도 외면하고 자연도 외면하는 그런 공간이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정감 어린 곳이였으면 좋겠다. 대도시는 어디를 가도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다. 어느 곳 하나 발붙이기에는 따스함이 없는 곳들이 많다. 단순하고 깔끔해보이지만 왠지 속으로는 딴 생각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공간의 구축은 경험의 구축이자 삶의 구축이다. 공간을 거니는 것은 삶을 거니는 것이다. 공간을 향기 맡고, 듣고, 만지는 것은 삶을 향기 맡고, 듣고, 만지는 것이다. 공간을 기억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다.(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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