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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52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 이란 말은 축복일까, 저주일까..생각하게 된 건 미처 돌아가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참담함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고 받고 싶은 열망이 작용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상상할(?) 수 없는 제목에. 더 상상력을 극대로 끌어 올려가며 읽어야 할 것 같은 이 소설을 나는 단숨에 읽고 말았다. 페이지 압박이 크지 않은 것도 작용했겠지만... 4차원 문명을 이야기하는 이야기 속에서 자꾸만 계엄과 탄핵을 떠올리게 되는 문장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독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될 줄이야... 저들은 치열하게 4차원 문명을 이야기하는데.. 그 말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그대로 대입할 수 있다는 건 문학이 주는 미덕이라고 해야 할까?
"(...)비현실적인 것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설명되어야만 해.내 생각에 너희들 모두가 어떤 세력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아(..)인간의 지능보다 몇 백 배 고차원적인 지능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 같으니까"/117쪽 상식적이지 않은 곳에서 상식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받을수 있을까..생각했다. 어떤 세력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으니...
"(...)무슨 결론을 너희가 끄집어냈건 그건 실질적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제시해 주지 않아.너희들의 집이 불에 탔거나 홍수에 떠내려갔거나 하니면 태풍에 날라 갔을 때 너희들은 집이 사라지게 된 정확한 원인을 따져?그게 아니잖아.어떻게 살 것인가,어디서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등에 대해 생각하지(...)"/125쪽
그리고 어느 순간 '광기의 항상성' '공포' '사악한 매커니즘' 같은 단어들이 이 책의 전부인듯 나를 잠식해버렸다. 만약 평온한 시절 이 책을 읽게 되었다면,<죽은 등산가의 호텔>을 재미나게 읽었지만 세상..10년은 좀 버겁다,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과 보이지 않는 4차원 문명의 대결에 대한 이야기에 어수선한 나라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고 말았다.너무도 비현실적인 상황이고..그것을 어떻게도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작용한 것 같다. 덕분에 위로도 받았다.뭔가 혼란스럽고 어수선한..상황 속에서 명확하게 답을 찾아 정리되지는 않았은데..그런 가운데 우문현답같은 정답이 드러났다. "물론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는 차이가 있죠.그러나 상처는 상첩니다. 상처가 아물고 고통이 가시고 다 잊어버립니다.그러나 아주 미소한 자극에도 상처는 다시 아프기 시작합니다.늘 똑같아요.어떤 시대건(...) 그리고 때론 내 상처보다 다른 사람의 상처가 훨씬 더 나를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습니다"/192쪽 소설의 줄거리는 잊어버리는 날이 올지 몰라도, 이 책을 읽을 때의 마음은 오롯이 기억하게 될게다. 늘 똑같을지 모른다는 냉소...그러나 어쩌면 세상이 끝날(?)떄까지 결코 끝날수 없는 질긴 무엇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