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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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한국어>를 읽으면서 가장 강렬한 문장 하나를 꼽으라면,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해 놓은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부분이 아닐까 싶다.물론 언어와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은 1인이라 혼자 자괴감을 격하게 느낀 모양이다. 그럼에도 재미나게 잘 읽혀서 <중급한국어>로 바로 넘어왔다. 


자서전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으로 이어지고, 대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삶'이란 화두로 나를 사로 잡았다. 사람 '人'에 대한 해석을 예전에 설명 듣고 공감했던 이후 오랜만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생각하는 만큼 보이게 되는 건가 싶다. '삶'이란 단어를 보면서 뭔가 많은 것이 들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고 지내왔던 것 같다.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물론 버거운 과정이었지만 그냥 지나치면 안될 화두이기도 하니까. 혐오적인 말들이 차고 넘쳐 있는 세상 한 복판에 있다는 기분이 들어, 타인에게 향한 화살을 스스로에게로 돌려 놓고 생각해 보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서 잠깐. 지금보다는 서로에게 화살을 덜 겨누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더 심하게 화살을 쏘고 싶어지려나, 웃픈 세상이다 싶다. 소설에서 삶을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건드린 건 아니었는데,스스로 그렇게 빠져 들고말았다.<중급 한국어>를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아무래도 책 속에 또다른 책들이 언급되는 장면들이었고,자연스럽게 이어진 글쓰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좋았다. 진짜 강의를 듣고 있다는 기분..그러니까 '초급한국어'를 읽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소설을 읽고 있지만,재미난 문학강연을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읽었던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찾아 보고, 읽지 않은 작가의 책을 리스트에 담았다.다시 재독해봐야 겠다는 작가의 작품까지..그러는 사이 소설가를 꿈꾸며,글쓰기강의를 해야 하는 한 사람이 보이고,<중급 한국어> 덕분에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쓰는 글이든,그렇지 않은 글이든(애초에 잘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이렇게 독후감도 쓰지 못하고 있었을게 분명하다^^) 계속 써야 하는 이유도 알겠다.잘 쓰기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는데.. 


" '뜯어 먹기 힘들지만 맛은 풍부한'인생 그 자체를 발견하게 되는 거죠. 이 단계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행운도 불운도 쾌락도 고통도 모두 '있는 그대로'받아들여집니다.그러니까 '좋다,싫다'가 아니라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냥 사는 것입니다.일어난 일 두 팔 벌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220쪽 


아이를 잃은 부부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닐테니까,차마 부부에 대한 마음을 헤아릴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하겠지만,지금 내게는 앞뒤 문장 잘라 놓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말'이 위로가 된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라는 말이 염세적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냥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문학강연을 듣는 기분이 들어 좋았고, 무언가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지도 알겠다 생각했지만...결국 나를 흔들어 놓은 말은 생뚱(?)맞게 그냥 사는 것..에 대한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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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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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나를 향해 작살이 비오듯 쏟아졌지만 통증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나는 보트를 하나씩 박살 냈다. 물에 빠진 선원들은 부서진 배의 잔해에 매달려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113쪽



고래가 인간을 공격 했다는 표현은, 고래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만 할 수 있는 생각일게다. 고래는 절대로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아니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야기를 최근 보았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고래에게 반한 이들의 인터뷰에서 배가 뒤집힐 뻔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고래와 눈이 마주쳤고, 고래는 배 옆으로..움직였다고 했다.무엇하나 믿기 쉽지 않은 세상이라,의심하는 병이 나를 잠식해버린 기분이지지만, 다큐로 만난 '고래와 나'에서 그려진 고래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사랑을 하는 모습도 아름다웠고, 노래하는 모습도 황홀했다. 고래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세상의 모습이,내가 고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모습과 닮아 있어 반가웠다. 그리고 세풀베다선생의 시선은 정말 고래가 인간들을 저와 같은 모습으로 보고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인간이 자신들을 공격해야 하는 이유를 몰라 당황했고, 알게 되고 나서도 싸우려는 마음보다 더 멀리 더 깊이 고래잡이배들이 올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된 것일뿐... 그러니까 만약 고래잡이를 인간들이 하지 않았다면, 고래를 보는 일이 지금만큼 어렵지 않았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해서 나는 하얀고래가 인간에 맞서 싸우는 장면에서 인간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에 대한 고래의 복수라 생각했다.


"인간들은 아주 먼 곳에서 오는 거야.하지만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그들의 탐욕과 야망을 막을 수 없어(...) 배와 난파선의 잔해들이 해안에 잔뜩 쌓여 있단다.그것들은 말은 못하지만 인간들이 얼마나 무모한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끈질기고 집요한지,자기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셈이지"/108~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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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키스의 말 - 2024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배수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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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급한국어>를 재미나게 읽고 나서 <중급한국어>로 넘어왔다. 착각하기 쉬운 제목이라 생각한건 스스로 오독한 탓이 있을텐데,'중급한국어'로 검색하면 문제집이 우선순위로 검색되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해서 제목 끝에 작가의 이름을 함께 검색하는 노력이 필요했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바우키스의 말>이 따라 왔다. 큰 맘 먹고 배수아작가님의 소설도 읽어봐야지 생각했던 것인데,도대체 무슨 연결 고리가 있어서 계속 '바우키스의 말'이 따라 온 걸까... 비밀은 <중급한국어>를 읽다가 스스로 알아(?)냈다. '초급한국어'도 재미있고 '중급한국어'까지 재미나게 읽게 되면서 진짜 작가가 궁금해진거다. 그제서야 알았다. <바우키스의 말>은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이란 사실을... <중급한국어>에는 공교롭게도 두 책을 내가 나란히 읽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를 문장이 있었다. "점과 점을 잇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던가(...)"/43쪽 인생에서는 잘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또다른 어딘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들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고 믿는 1인이다. <초급한국어>를 읽지 않았다면.. <중급한국어>는 당연히 읽지 않았을 테고, <바우키스의 말>은 언제 읽어낼지 기약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 해서 '허리케인 나이트'를 읽었다.



"(...) 동네 친구들은 우리 집에 단독 화장실이 있는 걸 부러워했지만 나는 학교 친구들의 대궐 같은 집과 비싼 물건들을 부러워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현실이 지닌 불균형 속에서 오락가락 괴로워하는 나에게 아빠는 말했다. 사람이 아래를 보고 살아야지 위를 보면 끝도 없다.우리 정도면 괜찮은 거야"/77쪽


허리케인이 찾아왔던 밤에 에피소드는 고교시절로 시간을 돌려 놓는다.서로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사이에서 친구가 가능할까...며칠전 지인과 나눈 대화가 없었다면, 남자에게 롤렉스시계란 무엇이였을까..에 대해 생각했을 텐데, 서로 진정한 친구가 되기 힘든건,알게 모르게 우리 마음을 헤집고 들어오는 '질투' 때문이라고 했다. 해서 나는 이 소설을 '질투'의 시선으로 보고 말았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나보다 우월했을 피터에 대해 내가 느끼는 그 불편함.아니 굳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오락가락 하는 그 마음...에 대해 나는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날밤 허리케인으로 부터 나를 구해(?)준 피터에게 부자는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결말은 뭔가 억울했을지도 모를. 왜냐하면 피터는 그냥 여전히 잘 지내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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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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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장난(?)스러운 제목이라 생각했다. 너무 평범한 제목 같기도 하고.. 실제 '초급한국어'를  검색하면 문제집들이 우선순위로 검색된다. 이어 읽게 될 '중급 한국어'를 나도 모르게 중급 중국어..로 검색하는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무튼 언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인가 싶어 호기심이 갖고, 읽기 시작하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소설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서 더 재미나게 읽혀진 것인지도 모르겠다.그런데 이것도 어쩌면 편견일지 모른다는 남자의 고백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서사가 되기 위해서는 '극적이고' '놀라우며' '그럴듯한'요소들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이를테면 플롯이나 개연성 복선과 반전 같은? 그건 혹시 편견이나 선입견이 아닐까? 삶은 평범하고 소설은 특별하다는 고정 관념만큼이나 해로운 것은 아닐까? 현실과 소설 사이에는 대체 어떤 벽이 세워져 있기에?"/175~176쪽


소설이란 생각보다 에세이를 읽고 있다는 착각에 종종 빠져들었다. 작가가 가진 능력이라 생각했다.캐주얼한 문체지만 작가 냄새를 풍기지 않는 듯한  언어의 한계를 누구보다 절감하며 살아가는 1인이라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비수가 되어 꽂혔다."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65쪽 분명 소설을 읽고 있는데, 소설을 읽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고전문학을 계속 읽고 있는 이유는, 소설이란 생각보다,내 자신에게 끝없이 무언가를 질문하게 만드는 그 힘이 좋아서인데,<초급 한국어>를 읽으면서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우리나라 소설도 열심히 찾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인공 남자의 말처럼, 이 소설은 내게 하나의 '변곡점'이 되어준 셈이다.21세기 소설의 역활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그리고 나는 그런 세련됨이 어색하고 불편해서 외면했더랬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나를 더 궁지로 몰아넣는 기분이 들었지만,언어를 소설이란 세상으로 가져와 생각해 보면,소설이란 세계를 조금더 확장해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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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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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건 책을 빌리고 나서야 알았다. 연극을 보기 위해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된 것인데, 어느 순간 에릭의 목소리를 연기할 배우님의 목소리가 상상이 되는 즐거움을 미리 경험했다. 


"의심만으로는 아무것도 파괴할 수 없다"/155쪽



우린 알고 있다.평범할 것 같은 가족의 모습에서도 미세한 균열은 분명 있을 거란 것을. 그러나 적당히 외면하거나 그러지 않은..척 살아간다. 문제는 균열이 수면위로 올라오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정도가 될까... 추리소설이라고 했지만, 심리를 파고드는 그 지점이 더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될 소설이다.결이 다를수도 있지만 아서밀러의 '시련'이 제일 먼저 떠오른 것도 그래서일게다. 아무렇지 않은듯 베이비시터 역활을 하고 돌아온 다음날, 에이미가 사라졌다. 당연히 의심 대상 1 순위는 베이비시터를 하게 된 키이스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가운데 의심을 받는다는 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문제는 키이스의 부모조차 아들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변명하자면 그럴만한 이유가 많았다는 거다.그러니까 <붉은 낙엽>은 에이미가 사라진 것 자체보다,사건이 발생한 이후, 우리에게 어떤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가에 대한 지점들이었던 것 같다. 의심을 하게 되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이고, 믿음이 없어지게 된 이유는, 뭔가 불확실성에서..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스스로 확신을 주게 된다는 거다.(지금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와 너무 닮아 있어서 기꺼이 오독까지 하게 되는 문제가 나타났다.망상과 환상과 거짓말..)  키이스가 그렇고 그런 아이였으니까, 그럴수 있을 지도 몰라. 하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에릭의 어린시절을 소환한다.  그는 형을 의심해야 했던 지점이 있고,아버지와 형과의 문제를 외면한 모습이 있다.그리고 에릭이 미처 몰랐던 어머니에 대해서까지. 이 소설에서 시종 일관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건 실체가 있는 듯 없는 의심이란 공포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헤집어 놓는가였다. 의심만으로는 무엇도 파괴할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지금 나는 의심을 넘어 망상을  확증으로 믿고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지 않은가..소설 역시 의심만으로 파괴되는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다. 소설이 끝날때까지.. 소설 사이 사이 에릭이 들려주는 목소리는 집중하기 힘든 부분이었고, 앤딩의 조금은 느닷없는 반전은 살짝 아쉬웠지만, 의심이란 공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가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된다. 결과를 알고 보는 연극이라 극적 재미가 덜해진다 해도 아쉽지 않을 것 같다. 연극 덕분에 강렬한 소설을 읽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 보고 싶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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