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국가가 리버럴한 정신과 리버럴한 태도를 지닌 시민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리버럴한 정치적 강령의 기초로서 충분하지는 않다. 자유주의의 정치적 미래는 오늘날 자유와 평등 간의 긴장, 개인의 자기 결정과 사회적 형평성의 제도적 보장 간의 긴장, 법치국가와 복지국가 간의 긴장이 민주주의 정치 체계 속에서 어느 정도로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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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원原개념에는 나중에 더 뚜렷해지고 서로 대조를 이루게 되는 미세한 차이를 지닌 두 가지 의미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p12)... 즉 결정적인 것은 평화의 상태를 '사랑하다'로부터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보호하다'로부터 이해해야 하는지가 차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에 상응해서 '평화'는 어떤 때에는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의 상호 결속 상태로, 또 어떤 때는 단순한 비폭력 상태로 파악될 수 있다는 말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 : 평화>, p13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5번째 주제는 평화(friede)다. 개념사 사전에서는 이미 '평화'라는 단어의 어원 안에 담긴 서로 다른 의미가 후대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어느 정도 암시한다. '사랑한다'의 개념 안에 담긴 박애(博愛)의 이미지가 중세 기독교 사회 사상과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1804)의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에 영향을 미쳤다면, '보호하다'는 외부로부터 구성원을 안전하게 한다는 의미로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의 사상과 연결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현세적 평화"를 이 속세에서 도달 가능한 모든 평화로 파악하고, "영원한 평화" 즉 피안의 완전성이라는 시간을 초월한 평화의 상태와 대비시켰었다면, 적어도 중세 절정기 이래 사람들은 그것을 세속적 평화, 즉 "자연인 homines naturales"으로서의 인간들이 서로서로 유지해왔고 또 유지해야 하는 평화로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서 대립하고 있는 것이 "영적인 평화 pax spitualis"인데, 이는 "영적인 인간 homines spirituales"으로서 사람들이 "신의 평화 속에서" 다 같이 함께 살았던 종교상의 평화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 : 평화>, p28


 그렇지만, 사실 '국가에 절대 권력을 부여하여 구성원들을 불안과 공포로부터 보호한다'는 홉스의 사상 역시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중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봤을 때 우리는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의미를 더 잘 이해될 수 있으리라.


  서구 중세는 프리트리히 헤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닫힌" 평화라는 관념을 넘어서지 못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이 사실은 서구의 평화 개념과 '법'과 '정의' 간의 길밀한 결합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 : 평화>, p37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 : 평화>에서는 이처럼 게르만 어의 기원에 담긴 모순된 의미가 후대에 어떻게 변용되어 왔는가를 그려낸다.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다음의 <신약성경> <루카복음>의 구절을 추가하고 싶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루카 12:51)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루카 24:36)


 같은 복음서 내에서 충돌하는 두 문장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한 편의 페이퍼가 될 것이기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멈추자. 다만, 기독교 사상 안에 담긴 평화와 분열의 이미지는 해석 여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만 생각해 두자. 일반적으로 우리는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평화'라고 하는 안정적 상태가 불평등한 관계에서 맺어진 것이었다고 한다면, 불평등한 관계를 강요당한 입장에서는 오히려 '전쟁'이 더 발전적인 관계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전쟁은 피 흘리는 정치이고 정치는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분열 사태와 정신적으로 힘든 분열 상태 중 우리가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우위(優位)에 있다 말할 수는 없는 것은 아닐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전쟁, 혁명 등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성을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그것을 행하는 주체(主體)가 심판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결정짓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생각할 거리들은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의 주제를 '정의'와 '독재'라는 다음 주제로 이끈다...








 



신학이 해 놓은 pax 에 대한 해석은 중대한 결과들을 낳았다. 언급했던 것처럼 게르만의 평화 개념이 원래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어떤 상황을 나타냈다면, 기독교 신학은 간단히 표현해 pax를 우주적 질서의 원칙으로 파악했다... pax가 인간에게 적용되는 한,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기보다는 "도덕적 존재"로서의 관점에 서게 되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 : 평화> - P14

홉스에게 ‘시민 평화‘의 본성이란 바로 이렇게 평화와 공정성을 분리하는 데 있었다. 여기서 공정성은 진리의 개념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평화, 공정성 그리고 진리의 결합 부분이 바로 종파적 시민 전쟁이 불붙었던 지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홉스는 "권력도 진리도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Authoritas non veritas facit pacem"라고 대답했는데, 이것은 그의 말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말 하나를 약간 바꿔 표현한 것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 : 평화> - P46

칸트에게는 내부의 ‘올바른‘ 질서 없이는 외부의 어떤 평화도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보댕, 홉스 그리고 푸펜도르프 같은 국가 이론가들이 신중하고 명확하게 설정해 놓은 절대적 국내 평화와 불안한 국가 간 평화 사이의 경계선은 평화를 이성의 전래적 명령으로 이해함에 따라 희미해졌다. "이제 우리 마음 속의 도덕적/실천적 이성이 저항할 수 없는 거부권을 표명한다. 자연 상태의 나와 너 사이에도, 국가들로서의 우리 사이에도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 : 평화>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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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들이 점점 더 스스로를 더 이상 중립적인 평화 체계들로서가 아니라, 온갖 대립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의 참되고 영원한 평화를 약속한다는 한 가지 점에서만은 공통된, 특정한 사회적 체제들의 부분적으로는 잠정적인 현현들이고 실현들로서 스스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에야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 간 전쟁은 어쩔 수 없이 이념 전쟁이 되고(빅토르 쿠쟁Victor Cousin), 미래의 평화 제국을 위한 십자군 전쟁이 된다. 현대적 전쟁에 내재된 이 같은 목표 설정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어떤 평화 조약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즉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그런 국가 간 평화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들 간의 지양된 폭력 행위" 라는 이런 종류의 평화를 위해서 그 사이에 "냉전" 이라는 개념이 창안되었기때문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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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3번 째 주제는 ‘제국주의‘다. 다소 거칠게 제국주의를 요약하자면 세계를 향한 팽창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끊임없는 팽창만 이루어진다면 어떤 사물도 안정되지 않는다. 행성이 항성 주위를 돌 때 작용하는 원심력과 구심력에 따라 안정적으로 원운동을 하듯, 제국에서도 권력의 팽창에 반대 급부로 경제적 이권은 제국의 중심으로 향하게 된다. 결국 제국주의는 경제와도 관련을 맺을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는 양면이라는 또 다른 결론에 이른다.

한편,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이 내린 가장 간략한 정의는 ‘자본주의의 독점 단계‘라는 것으로, 공산주의에서 바라보는 ‘제국‘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그렇지만,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반-제국‘이라는 ‘제국‘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형이상학‘사상에 반대하기 위해 ‘유물론‘이라는 ‘반-형이상학‘이라는 사상이 필요했던 것과 같은 또 다른 아이러니라 여겨진다. 마르크스 사상에서의 ‘제국주의‘는 「자본론3」과 함께 별도의 페이퍼에서 깊게 들어가보자...


‘제국주의‘는 라틴어 ‘임페리움imperium 에서 파생되었다. ‘임페리움‘은 원래 항상 법적으로 다소 정확하게 규정된 개념이며, 이와 더불어 다양한 비非법적인 의미들도 부가되었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반은 요구이기도 반은 비난이기도 하지만, 세계를 지배하려는 데까지 이르는 세력 확장의 경향이다. 이러한 의미들은 제국주의 개념과 함께 법적으로 규정된제국 개념으로부터 분리되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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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결국 새 시대를 특징있는 개념이 되었다.  처음에 ‘혁명‘은 교체, 봉기, 지배자 몰락 혹은  헌법  변동이라는 전통적인 현상을  표현했다.  그 후 헌법 변동은 전통적인, 예컨대 폴리비아누스적인 신적인 의미에서 헌법 순환므로 해석될 수 있었고,  18세기에 역사철학적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그것은  변동 자제를 의미했지만 모든 생활 영역들을 함께  진보적으로 보다 나은 미래로 미끌 변동을 의미했다. 혁명은 역사적 필면성의 후광을 얻게 되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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