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체제의 기원 - 한국전쟁과 자유주의 평화기획
김학재 지음 / 후마니타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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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제네바 협상, 반둥 회의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개에서 우리는 유엔을 통한 보편적 법치 기획의 실패와 퇴조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칸트적인 초국적 법치 기획은 한국전쟁 초기 국면에서 포기되었고, 대신 미국이 주도하는 홉스적 차별 기획이 대다수의 동아시아국제 질서를 정초한 제도적 틀을 만들어 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p521)

아시아 패러독스는 단순히 문화적 편견의 산물이 아니라 매우 격렬한 전쟁과 충돌의 부작용이다.(p522)... 동아시아 냉전의 전개 과정은 곧 유엔과 평화에 대한 논의가 안보와 동맹, 발전에 근거한 홉스식 국제질서로 후퇴했고,그에 대한 반발이 식민주의와 정의에 대한 강조로 수렴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p524)

한국전쟁의 사례를 평가한 결과, 판문점 체제는 자유주의의 보편적 원칙들을 군사력으로 강제로 관철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코 안정적인 영구 평화를 창출하지 못한 실패 사례이다.(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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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의 이해 (반양장)
데이비드 파렐 지음, 전용주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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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츠는 자신의 역작인 <민주주의와 선거 Democracy and Elections>(1997)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특정 선거제도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만병통치약 같은 수많은 처방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기준에 딱 들어맞는, 그리고 극히 민주적인 선거졔도는 존재하지 않는다."(p34) <선거제도의 이해> 中


  2019년 하반기 한국 정치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사항은 아마도 공수처 설치와 선거제도 개혁일 것이다. 선거제도와 관련해서는 보다 세부적으로 선거구제 문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쟁점의 주요 내용이라 생각되지만, 선거 제도와 관련하여 일반의 관심은 크게 높지 않다. 그것은 일반인들에게 선거 제도는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 논의가 한창 이루어지는 현시점에서 이 문제를 그냥 넘기기는 어렵기에 데이비드 파렐(Farrell, David M.)의 <선거제도의 이해 Electoral Systems : A Comparative Introduction>를 통해 우리 나라 선거제도와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려한다. 


 득표수를 계산해 의석수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의 기능이다. 이제 선거제도를 정의해보자. 선거제도는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p24) <선거제도의 이해> 中


 저자는 서두에 '투표 수'를 '의석 수'로 전환시키는 방식을 '선거제도'라 정의한다. 이는 투표 수(x)라는 독립변수와 의석 수(y)라는 종속변수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함수(function)문제라는 뜻이며, 식(式)을 어떤 방식으로 설정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적인 문제라는 의미기도 하고, 정답이 없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그리고, 정답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은 대개 보수적이다.)


 대표(representation)라는 용어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대표의 '축소판(microcosm)' 개념과 '주인 - 대리인(principal-agent)' 개념이다. 전자는 비례대표제 옹호론자들, 그리고 후자는 비(非)비례적 선거제도 옹호론자들과 관련 있다.(p32) <선거제도의 이해> 中


 투표 수와 의석 수의 관계를 보다 긴밀하게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보다 중요한 다른 대의를 위해 일정부분 포기해야 하는가. 이것은 선거제도를 통해 선출된 권력(權力)의 성격을 규정짓는 문제라는 점에서 선거 제도를 구분짓는 기준점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비례적'- '비(非)비례적' 선거제도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선거제도는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한 가지 간단한 방법은 선거제도가 낳을 수 있는 결과(output)을 기준으로 유형을 분류하는 것이다. 즉, 득표수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기준으로, '비례적(proportional)' 결과와 '비(非) 비례적(non-proportional)' 결과를 낳는 선거체제로 분류하는 것이다. 비례적 선거제도의 핵심은 각 정당의 의석수를 자신들이 얻는 득표수에 가능한 한 근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로 비(非)비례적 선거제도에서는 한 정당이 다른 정당보다 더 많은 표를 확실히 얻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강력하고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p25) <선거제도의 이해> 中


  저자는 <선거제도의 이해>에서 선거 제도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으나, 크게 본다면, '비례제 - 비(非)비례제'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소선구제 하에서 1인 선출 체제는 선출 방식이 단순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투표율이 낮은 상황에서 과연 민의(民意)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점도 함께 던진다. 이러한 문제점은 2010년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46%)을 고려했을 때 더 커지게 된다.(p346) <표 10-4> 2000년대 상이한 선거제도에서의 투표율과 무효표 비율


 본질적으로 당선 결정방식은 몇 개의 주요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상대다수제(plurality), 절대다수제(majority), 비례제(proportional), 그리고 혼합형(mixed)선거제도가 그것이다.(p27) <선거제도의 이해> 中


 1인 선출 상대다수제(relative majority)'에서 후보는 당선되기 위해서는 '최다 표(plurality of vote)'를 얻어야 한다. 옹호론자들에게 이 제도의 미덕은 단순함(simplicity)에 있다.(p37)... 그러나 50% 이상의 표를 얻을 필요는 없다는 점을 주목하라.(p44) <선거제도의 이해> 中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선거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소선구제 아래에서 1인 선출 시스템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도는 절반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 저자는 상대다수제 아래에서 중/대선거구에서 다수의 의원을 선출하는 제도가 비례성을 갖추기는 어렵다고 본다. 때문에, 선거구 문제 이전에 비례제의 논의를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레이(Rae, 1967)는 처음으로 선거제도의 구성 요소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했다. 1) 선거구 크기(district magnitude), 2) 당선결정방식(electoral formula), 3) 기표방식(ballot structure).... 일반적으로 합의된 점은 선거구 크기가 선거 결과의 비례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p26) <선거제도의 이해> 中


 기본적으로 선거구 크기가 클수록(즉, 한 선거구에서 선출하는 의원 수가 많을수록) 선거 결과의 비례성은 더 높아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법칙이 비례대표제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다수제나 절대다수제에서는 실제로 이 관계가 역으로 나타난다. 즉, 한 선거구에서 선출하는 의원 수가 많아질수록 비례성은 낮아진다.(p41) <선거제도의 이해> 中


  우리나라는 정당명부제(비례대표제)와 1인 선출 상대다수제를 혼합한 혼합형 선거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비율이 15 : 85로 현저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비례제의 장점인 민의 수용과 상대다수제의 장점인 안정성의 결합보다, 오염효과가 더 크게 나고 있는 실정이다. 상대다수제로 선출된 의원수가 현저하게 높은 비율을 차지하며, 정당의 목표보다 지역민심에 기반한 정당(政黨)이 오랜 생명력을 가지고 지역 감정을 조장하며 유지되는 현실은 이런 오염 효과의 증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랜 기간 이러한 부작용을 경험해왔다.


 혼합형 선거제도에 대한 지배적 견해는 이 제도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비례성이라는 장점과 상대다수제가 갖고 있는 선거구 대표성이라는 장점을 이상적으로 절충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p187) <선거제도의 이해> 中


 한국의 정당명부 의석은 전체 의석의 15%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독일의 50 : 50 비율과는 차이가 큰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비율로 나누어야 선거제도의 완전한 비례성을 해치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정당명부 의석 비율이 너무 낮을 경우 선거구 선거가 야기하는 비(非) 비례적 결과를 보완할 수 없기 때문이다.(p179)...  페라라(Federico Ferrara)와 동료들의 연구는 혼합형 선거제도에서의 두 종류 선거 간에 일종의 상호 '오염 효과(contamination effect)'가 있는지를 찾으려 했다. 오염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은 한 부분(예컨데 상대다수제)의 존재가 다른 부분(예컨대 비례대표제)의 작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p188) <선거제도의 이해> 中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 개혁과 문제점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정치인 불신 문제일까. 저자는 정치제도에 대한 낮은 대중의 관심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복잡한 선거제도에 대한 대중의 낮은 이해는 선거 제도의 개혁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선거제도의 복잡성, 그리고 선거제도에 대한 대중의 낮은 관심과 지식수준을 고려할 때, 선거제도에 대한 태도를 측정하는 가장 효과적 인 수단은 질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p308)... 다음 두 가지는 이 연구의 주요 결론이다 첫째, 실험 초반에는 제도 관련 쟁점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다수 응답자들이 기존 제도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둘째, 선거제도의 특징 중 비례성 문제는 포커스 집단에게 중요한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선거제도 복잡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p309) <선거제도의 이해> 中


 그렇다면, <선거제도의 이해>를 통해 저자가 제안하는 이상(理想)에 가까운 제도는 무엇일까. 서로 다른 제도의 장/단점을 비교한 후 저자가 내린 결론은 '비례대표제 - 그중에서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 '가 민의 반영과 안정성 모두를 고려했을 때, 가장 가성비가 높은 제도라는 것이다. 물론,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직접 대표성이 없다는 문제점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효율적인 제도라는 결론을 내린다. 


 선거제도의 영향에 관한 논의의 기저에는 정치체제 안정성 문제가 있다. 특히 비례대표제가 대의 기구를 강화시키는지 아니면 약화시키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p267) <선거제도의 이해> 中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기본적인 원리는 간단하다. 정당은 각 선거구에서 후보 명부를 작성하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유형은 유권자가 후보가 아닌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다.(p112)...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 비례성을 왜곡시키는 특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지방 선거구(subnational constituencies)나 지역(regions) 단위로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그 원인이 있다.(p113) <선거제도의 이해> 中


 여러 형태의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선거 공학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선거제도라는 사실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이 제도는 분명히 정당 지도부에게 상당한 정도의 통제력을 부여한다.(p149)...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 가지 부정적 측면은 선거구에 기초한 직접적 대표성이 부재하다는 것이다.(p153) <선거제도의 이해> 中


 특정 선거제도의 비례성과 정부나 정치제제의 안정성 정도 사이에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되었던 상반관계(trade-off)는 대부분의 경우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눈길을 끈다. 나아가 비례대표제에서 정부 안정성 정도가 높다고 결론짓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p351) <선거제도의 이해> 中


 결과론적으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손을 들어준 데이비드 파렐의 의견에는 분명 찬반이 갈릴 것으로 생각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특히, 우리나라 국회가 의원 개인의 정견에 따라 운용되지 않고, 정당의 거수기에 머무는 현실에서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놓고, 정당에 표를 주는 방안이 오히려 민심의 올바른 수용이 되지 않을까. 또한, 이런 방향으로 갔을 때 국회의원이 지역유지들과 결탁해서 지역 이권은 나눠갖는 문제 또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지방의 문제는 지방의회에서 논의되면서 지방자치가 활성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기에, 이상의 이유로 저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여기에 더해서, 인구통계적 특성에서 성, 연령, 지역, 소득 등 수많은 요인 중 지역만을 대표하는 대표를 선출해야하는 이유가 있을까도 질문을 던져본다. 과거에는 다른 요인들이 데이터 베이스(DB)화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든 유권자의 정보가 빅데이터로 저장된 현시점에서 세대별 갈등, 소득 양극화 갈등, 성별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대표의 선출과 이들에 의한 법률입안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처럼 <선거제도의 이해>는 선거제도에 대해 잘 정리하며 내용을 전달하며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래서, 국회 개혁 문제로 국민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선거제도의 이해>는 현재 개정판이 나와있어, 읽고자 하시는 분은 개정판을 보시기를 권장하며, 이번 리뷰를 마무리한다.


 PS. 국회의원 수를 어떻게 가져가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체 국회의원 월급 총액을 현수준에서 동결하고, 민의 반영차원에서 의원 수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학 극한(極限, limit) 문제 풀이 방식으로 답을 찾아보자. 의원 수를 한없이 줄이는 것과 한없이 늘리는 것을 동일한 제약조건(현재 예산) 수준에서 고민한다면, 답은 자명(自明)하다. 국회의원을 극적으로 줄일 경우 1인 입법자(독재)로 갈 것이며, 극적으로 늘려 '국민 수 = 국희의원 수' 라면 완전 민주주의가 구현된다. 때문에, 같은 조건이라면 늘리는 편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원 월급은 자신들이 정하는 것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 정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어느 직장인도 자신의 연봉을 스스로 책정하는 경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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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9 1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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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9 1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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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민주 유학과 21세기 실학 - 한국 민주주의론 재정립
나종석 지음 / 비(도서출판b)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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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관점, 그리고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최장집은 우리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흡수하고 그곳을 축소하는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p892)...최장집에 의해 촉발된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p893)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에서 핵심이 되는 주제는 직접민주주의의 원칙으로 간주되는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과 대의제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p894)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기여할 문화적 조건 중 하나는 공적 사안에 대한 시민들의 건전한 토론문화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건강한 토론문화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더 튼튼하게 해줄 민주적 공론장의 활성화도 실현될 것이다.(p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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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2 0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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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2 08: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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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 다원적 공공 정치를 위한 철학
폴 슈메이커 지음, 조효제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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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역사적으로 일단 판정이 난 전체주의 이념과 일부 극단주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정치 이념들이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의 지붕 아래에 모일 수 있다고 가정한다. 더 나아가 이 이념들이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을 공유할 때 정치의 영원한 쟁점을 놓고 일종의 거대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또한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은 어떤 이념을 신봉하든 그것이 편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동기가 아니라 확고한 철학에 기반을 둔 신념이어야 하고, 자신이 믿는 이념이 정치 공동체의 전체 선익에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p29)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은 그런 ‘이익‘ 추구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모든 정치 이념들이 최소한의 토대적인 공공성에 대해서 동의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즉, 나의 직접적인 이익과 관계없이, 또는 나의 직접적인 이익이 단기적으로 침해받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회 공동체의 정상적인 구성원이라면 동의해야만 하는 합의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p29)

정치의 영원한 질문에 관한 합의점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보면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 pluralist public philosophy이 되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치를 인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철학이라고 제안하고 싶다.(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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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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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만약 우리의 장래를 입법자들이 의회에서 보여주는 말재주에만 전적으로 맡기고, 일반 국민의 풍부한 경험과 효과적인 불만 표시로 잘못을 시정해 나가지 않는다면, 미국은 머지않아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그 지위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p56)<시민의 불복종> 中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는 1846년 인두세 납부 거부와 관련하여 하루 동안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된 <시민의 불복종 civil disobedience>에는 무정부주의자(anarchism)로서 그의 주장이 잘 담겨있다.


 원칙에 따른 행동, 즉 정의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사물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며, 과거에 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p26) <시민의 불복종> 中


 소로우가 반대하는 정부는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멕시코 전쟁을 통해 영토확장을 꾀하는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다. 당시 미국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에 동의할 수 없는 소로우는 <시민의 불복종>을 통해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올바른 것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p13) <시민의 불복종> 中


 권력이 일단 국민의 손에 들어왔을 때 다수의 지배가 허용이 되고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 실제적인 이유는 그들이 옳을 가능성이 가장 크거나 그것이 소수자들에게 가장 공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가장 힘이 세기 때문이다.(p12) <시민의 불복종> 中


 우리는 한 국가에 소속되기 이전에, 인간(人間)의 입장에서 먼저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 소로우의 견해다. 이러한 기준에서 봤을 때, 당시 미국 정책은 양심(良心)에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그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다수라는 이유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루어가고 있다면 이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소로우는 이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다. 그리고, 깨어있는 소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단 몇 사람이라도 '절대적을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p20) <시민의 불복종> 中


 시작이 아무리 작은 듯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껏해야 거기에 대해 토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하면서. 개혁은 수십 개의 신문을 붙들어 일거리를 주고 있으나 단 한 명의 사람도 붙들지 못하고 있다.(p31) <시민의 불복종> 中


 시민에 의해 창출되었으나, 올바른 길을 가고 있지 않은 권력이 있을 때 소로우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시민의 불복종>에서 말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부당한 권력에 대해 저항할 것을 강조한다.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는 이미 소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p33) <시민의 불복종> 中


 <시민의 불복종>에서는 이처럼 부당한 권력에 대한 깨어있는 양심의 저항을 말한다. 본문에서는 다수(多數)와 대비되는 소수(少數)의 개념이 언급되지만, 수의 많고 적음보다 과연 얼만큼 양심에 들어맞는가가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 481 ~ BC 411)의 말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양심'을 주장했을 때, 우리는 그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가. 추상적인 수학의 세계와 달리 감각적인 현실 속에서 우리의 기준은 흔들릴 수 밖에 없지만, <시민의 불복종>안에서 우리는 모호한 기준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형평성(衡平性)이다. 


 만일 아무 재산도 없는 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주정부에 9실링을 내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곧바로 감옥에 구속될 것이며, 그 기간 역시 정해진 법률 형기가 없기 때문에 구속시킨 자들의 재량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 정부로부터 9실링의 90배를 훔친다면 그는 곧 다시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p28) <시민의 불복종> 中


  아직도 '황제노역'이 존재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형평성이 지켜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양심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임을 우리는 <시민의 불복종>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개인이 양심과 건전한 상식에 맞춰 바른 기준을 세우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삶의 의미에 따라 행동하되, 그 양심에 국가가 어긋났을 때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개인의 양심에 귀기울이는 국가. 소로우는 이러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시민의 불복종>에서 제기한다. 소로우가 제시한 이러한 관계와 구성원의 수준에는 우리 사회와 구성원이 미치지 못하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를 희망하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내게는 다른 할일들이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중요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든 나쁘든 그 안에서 살기 위해서이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 어떤 일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가 모든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어떤 나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p29)<시민의 불복종> 中


 엄정하게 말하면, 정부는 피통치자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가 정부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진보일까?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고 조직화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는 없을까?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는 대접을 개인에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p57) <시민의 불복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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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9 2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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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9 2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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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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