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 베이식 아트 2.0
제이콥 발테슈바 지음, 윤채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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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예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이 피카소나 마티스, 몬드리안, 샤갈처럼 이름이 잘 알려진 화가들이다. 물론 미술에 좀 더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더 많은 작가들의 이름이 떠오를 테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추상미술은 위의 사람들로 대표되며, 보편적인 이미지도 이 사람들의 작품들에 영향을 받아 거의 고정관념화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마크 로스코라는 또 한 명의 걸출한 추상예술계의 거장을 만나게 된다.

그의 작품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사상의 복잡성을 단순함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을 띤다. 명료함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커다란 형태를 추구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시간을 초월한 주제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그의 후기 작품에서 신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은 현실을 반영한 이미지보다 신념에 대한 구현에 더 초점을 둔다.

로스코의 작품은 모든 추상예술이 그렇듯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고 했으며, 낯익은 대상들의 사용을 주저한다고 했다. 나아가 로스코는 뿌리를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같은 추상표현주의 계열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차별화된 이미지의 구현을 추구했던 것 같다.

그는 회화 미술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회화를 드라마로, 그 안에 재현된 형상을 배우로 간주한다”라는 표현을 썼다. 회화라는 예술 행위 자체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된 이미지들을 그 바탕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인식한다는 의미 같은데, 이는 로스코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 영역’에 국한시키지 않는, 말하자면 문학에서 배웠던 공감각적 인식으로 대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뭉뚱그려진 각각의 색채들이 섞일 듯하면서도 각자의 경계를 지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로스코의 작품들은 구체성이라는 요소와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데, 오히려 그는 “뼈와 살의 구체성을 결여한 추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일종의 모순적 발언을 통해 자신만의 추상표현주의적 특징을 설명한다. 추상이란 용어 자체가 구체성과는 구별되는 개념 같은데 오히려 그 안에서 현실적인 감각을 이끌어내려 했다는 의도는 보통의 감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점점 색과 형태의 관계보다 비극이나 운명 등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의 풍성한 색채 감각은 인간의 따뜻한 감정과 비극적이고 우울하고 슬픈 감정으로 뚜렷하게 나뉘는 느낌을 준다. 오렌지 톤의 밝은 작품들은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며, 반면 어두운 톤의 갈색과 회색, 적색 계열의 작품들은 보기만 해도 우울한 감정에 젖어드는 느낌을 준다.

이 책은 한편 20세기의 시작에서 중반에 접어드는 회화예술의 역사에서 추상예술이 어떻게 발현되었고 전성기와 쇠퇴기의 과정을 거쳤는지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물론 예술의 경향이란 돌고 도는 것이기에 완전한 쇠락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오늘날의 과도한 추상적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서 숨이 막힐 지경이라면, 이런 회화 예술의 한 축을 담당했던 추상예술의 정통 원류를 찾아가보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되고 미술을 보는 시각도 한층 체계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네이버 「북유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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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철학자와 함께한 산책길 -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는 노학자 6인의 인생 수업
정구학 지음 / 헤이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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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생활을 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더 깊은 진리를 깨우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각계의 전문가, 철학자들을 만나 남긴 인터뷰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철학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들어 봤지만, 저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또 익숙하면서도 특별한 느낌이 들어 여기에 소개해 본다. 저자가 설명하는 철학이란 ‘여러 가지 상황에서의 판단과 선택의 순간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기 위한, 근본과 기본에 대한 앎 또는 깨달음’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다소 모호할 수 있는 개념이나 명제를 현실적으로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요즘, 저자의 철학에 대한 이 정의는 귀에 착 붙는 깔끔한 설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 책에 소개된 저자가 만난 각 분야의 인생의 대가들은 앞서 언급한 ‘근본과 기본을 깨달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저자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인생을 살아간”다고 표현한다. 아무래도 이 책에서 말하는 철학적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분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인생의 흔들림과 풍파, 선택의 순간을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범주에 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분들이 대다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인터뷰 대상들의 대표적인 공통점이 바로 ‘어른’이라 불리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인터뷰 방식 또한 분명한 색깔이 있다. 저자는 ‘어른들’과 함께 산책하며 이야기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이 일련의 인터뷰에서 일어나는 지적 탐험의 과정을 ‘걷기⇨생각하기⇨이끌어내기’라는 사고체계로 정리했다. 이채로운 것은 여섯 명의 인터뷰이 중 다섯 명은 산책이 평소 습관으로 자리 잡은 분들인데, 고 이어령 선생은 산책은 즐기지 않았고 명상이 그 역할을 해온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어령 선생님과 산책을 하며 진행된 이 인터뷰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Let it be’의 가사가 떠오르는, 우주의 섭리에서 발견하는 무위자연적 삶의 태도, 칸트 철학의 핵심이 인간의 존엄성에 있다는 깔끔한 요약, 지식은 자연과 관한 것이고 지혜는 인생에 대한 것이라는 명확한 구분, 산업과 금융 등 물질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를 넘어선 생명자본 개념의 필요성, 산업혁명 이후 보이는 가치에 치중한 데 따른 인문 정신의 붕괴와 그에 따른 사회의 경직화를 보이지 않는 가치로 보완하고 균형을 잡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것 등이 이 책에서 배울 수 있었던 주요 지식 및 교훈이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인생의 문제를 유연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근본과 기본’이라는 무기를 완전히 갖추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종의 ‘연단의 과정’ 즉 트레이닝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그것이 마치 자기 생각이나 개성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실상이다. 그런 안개 자욱한 세상에서 빛과 소금, 등불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를 이 책이 담고 있다고 한다면 과장된 생각일까?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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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20세기 제약 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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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한나 아렌트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에게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나 아렌트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치철학자 중 한 사람이 된 데는 ‘악의 평범성’과 ‘사유하지 않는 인간의 위험성’을 주장하며 나치 학살과 세계대전 등 인간이 초래한 비극들의 본질의 핵심적인 측면을 꿰뚫은 것과, 아울러 그 통찰이 현대의 위기를 진단하는 데도 적절한 사유 도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간된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가 특별한 이유는, 한나 아렌트와 같은 학자들이 밝혀낸 악의 평범성이나 무사유의 위험성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이상적 열광 현상, 즉 나치 선동에 휩쓸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잔인하게 죽어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당대 독일 시민들의 상태, 그리고 아무리 신분 때문이라고는 해도 그런 상황이 이어지도록 계속 협조하고 순응할 수 있었던 군인들의 상태에 대해, 왜 그들이 정말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주는 강력한 역사적 근거,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요인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데 있다.

광신적인 상태에서 일상을 유지하는 괴기한 상황이 가능했던 결정적 이유는 바로 ‘약물’이었다. 이 책은 당시 독일 사회에 만연한 약물의 실태를 기록 문헌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그렇다. 약물 때문이라면 카리스마나 대중 선동력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히틀러의 영향력이나 당시 사회상, 사람들의 심리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컨대, 당시 약물은 히틀러에서부터 일반 민중, 사회 전반에 걸쳐 크고 작은 영향을 쉴 새 없이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약물의 효용성과 위험성은 그것이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한 통치 혹은 선동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를 연구할 때 절대 가볍게 봐서는 안될 테마임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데올로기 따위만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미친 짓을 하고, 독재자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 사람들의 심리와 신경계통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조치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행위들, 그 핵심에 약물-마약이 있었던 것이다.

히틀러가 마약 중독자였는가 하는 점, 그리고 만약 약물에 의지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어떤 경로로 그것이 가능했는지 추적하는 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당시 독일의 과학 기술의 발전상과, 전쟁 패배 이후 나치가 독일 사회를 장악하기까지의 기간에 특히 제약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부작용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람들의 활기를 북돋우는(?) 약물 제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문화적 배경까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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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
최진석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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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원래 추상적인 학문이 아니다. 매우 현실적인 의문을 추궁하다가 탄생한 것이 철학이다. 물론 학문의 발생은 노예 제도라는 비인간적 토대 위에서 성립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자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인간과 자연을 탐구하는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 인류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철학의 발생 배경을 확인했다면 우리는 더 겸손해져야 한다. 그리고 철학이 사변적인 학문으로 방치될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학문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진석 선생의 저서들은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이번에 출간된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의 경우 자유로운 신분으로 저자 특유의 사상을 마음껏 펼쳐 놓은 특징이 두드러지기에 철학이 좀 더 실용적이면서도 그 본분이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기에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먼저 목적과 목표를 구분함으로써 삶이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 것인가, 그림자에 머무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목적은 기능적이고 제한적인 것으로, 목표는 가치와 의미의 문제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교회의 사례를 드는데 매우 와닿았다. 교회가 세워지는 원래 의미는 복음을 전하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데 덕이 되기 위해서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별이 되기 위해서”다. 그런데 교회가 정도를 넘어 신도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교회를 크게 짓는 일에 몰두하다 갈등하고 사회적으로 지탄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기능적 목표에 빠져 본질을 망각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철학이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경우는 봉건사회에서 시민사회로 전환된 혁명을 들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아무 의심 없이 자신의 신분에 순응하며 살 때,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역사의 책임자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앞서 언급한 ‘별’의 역할을 왕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짊어지자는 것이다. 모두 별이 되어 빛날 수 있다는 의식의 전환, 혁명이 세상을 바꾸었다.

저자는 ‘내가 별이 되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다른 사람이 뿜는 별빛에 박수만 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나는 사람들의 집합체가 바로 시민사회이며 민주주의의 올바른 모습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는 “정치가 혼란스럽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그 이유가 제대로 주인 역할을 하는 시민이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진단한다. 저자는 여기서 성숙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돈은 많은데, 그 많은 돈이 자본으로 바뀌는 것이 아직 부족한 상태’, 그리고 ‘부자는 있는데 그 부자가 아직 자본가로 바뀌지 않은 상태’를 미성숙한 사회 시스템의 예로 들며, 오늘 우리 사회가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은 참다운 인간됨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일은 스스로 불편을 자초하는 일”과 같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도 절묘한 비유를 드는데, 대답만 하는 사람과 질문하는 사람으로 나누어, 앞서 언급했던 기능적 존재에 머무는 것과 그 사람 특유의 가치를 드러내는 존재로 승화하는 경우를 설명한다. 질문하는 사람은 내면의 호기심이 발동하는 인격적 활동을 통해 참다운 인간됨을 실현하는데, 이때 겉으로 나타나는 두드러지는 특징이 바로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고 장애의 단계까지 나아가는 경지라고 한다. 여기서도 교회의 예가 적절히 활용된다.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주차한 차들 때문에 사람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 사실 이 불편은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근처 주민들을 위해서 차를 몰고 가지 않거나, 가져오더라도 스스로 더 먼 곳에 주차하고 걸어오는 수고를 감수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 정도다. 그렇게 교회에 나오는 목적과 이유를 실현시키는 과정을 성숙의 한 예로 든다.

저자는 경박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감당하며 공공의 책임을 기꺼이 지고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덕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저자는 동양철학과 서양의 하이데거 철학을 연결시키는데,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을 ‘덕’이 활동하는 곳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우리는 ‘덕’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활동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애’의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참된 시민의식을 구현하는 진정한 ‘시민’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여러 수단으로 ‘문화’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내용을 설명했다. 최진석 교수도 여기에 동참하는데, 무척 설득력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문화란 ‘무언가를 만들고 제조하고 생산하여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적 상태와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다시 말해 항상 무언가를 만들거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최소한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는다면 그는 참다운 인격적 존재라고 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탁월한 통찰은 ‘허무’와 ‘무한확장’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개념을 통합하는 시도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인생이 매우 허무하고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심리적인 현상만이 아니라 우주의 속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허무를 근거로 무한이 성립될 수 있다는 독특한 발상을 보여준다. 사실 이런 역발상이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했고 지금까지 생존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근거, 그 사람만의 바탕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고, 기능적인 존재에서 본질을 탐구하는 존재로, 편리함보다 불편을 자초하면서 인격적 성숙을 이루고, 문화적 존재로서 항상 자신과 세계에 대한 변화를 야기함으로써 가치를 입증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어진 환경과 형편에 순응하거나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항상 질문해야 한다. 더 나은 상태, 개선책이 없는지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비루한 현재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볼 때, 그런 노력들의 총합, 정수가 어쩌면 철학이라는 형태로 결정화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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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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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면서도 삶의 중심 이슈로 부각되지 못하고 항상 뒤에 미뤄진 채로 방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어떤 대형 사고나 사건이 발생해 그 현상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많은 관심을 받고 이야기의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듯 죽음은 또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다.

대부분의 죽음은 고통을 수반한다. 평안하고 안정적인 죽음을 보기는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편히 쉬듯, 잠이 들듯 죽음을 맞는 이상적인 모습은 드문 축복이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순간에 경험하는 두려움과 공포, 분노, 부정, 불안, 괴로움, 고통 등은 거의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화한다.

저자는 이런 죽음의 패턴에 변화를 일으키려 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저자는 죽음이 삶의 결과물이며, 죽음을 앞둔 고통의 시간은 정리가 필요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온전한 정리를 위해서는 적어도 고통으로 신음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돌봄이 필요하다. 줄어든 고통은 죽음을 앞둔 시간을 보다 인간적이고 존엄성을 지키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갖고 갈 것인가. 이에 대한 저자의 비유가 인상적이다. 죽음은 쪽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죽음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훌륭한 이유가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하루키의 소설에서 본 것으로 기억되는 한 문장이 떠오른다. 그 문장의 요지는 이랬다. 죽음은 그대로 끝이 아니라 삶의 대극으로서 이어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도 마지막까지 남은 과제가 있는 셈이다. 죽음을 의연하게 맞을 수 있다면, 죽음은 단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완성하는 최종 단계이자, 이어지는 영속적 의미를 갖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저자가 말하는 완화의료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심리는 어루만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완화 효과를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실제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약물의 적절한 활용도 중요함을 알려준다. 이렇게 얻어낸 죽음을 앞둔 환자의 안정된 심리는 본인은 물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할 사람들에게도 평화의 원천을 제공한다.

“환자의 극심한 고통을 다뤄야만 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닌 통증을 흡수한다” 이 대목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의 심리와 건강도 무척 중요함을 알려준다. 저자 역시 자신만의 경험과 이론이 온전히 정립되기 전에 환자를 대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고통을 경험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개인적인 고난의 시간을 겪으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이끌어낸다. “환자들을 온전한 인간으로서 포괄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나의 모든 일들은 우선 나 자신과 내 삶을 보살피는 데 헌신한 뒤에야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병을 치료할 방법은 없을지라도, 그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남아 있다”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단순히 그 환자의 병을 관리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환자의 존재, 삶을 돌보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일깨운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도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환자 한 사람을 온전히 인격적으로 대하기에는 너무나 바쁘게 순환되는 진료시스템이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마저 경색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민영화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과연 산 사람이나 죽음을 앞둔 사람 모두를 인격적 차원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돌봄이 가능할지, 우리나라가 진정한 의미의 의료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등의 의문이 잇따른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제공하는 양질의 삶, 이것은 저자가 생각하는 완화의료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죽음이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고 두렵고 떨리는 현상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임을 마지막 순간까지 인식하게 하는 것은 저자가 주장하는 완화의료 효과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 증상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정서적 돌봄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도 상당한 효과를 보인다고 저자는 설명하지만, 병 때문에 심각한 통증을 겪는 환자의 경우 약물적 조치는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적인 접근도 중요하다. 모르핀을 비롯한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다양한 약물이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광범위한 제도적, 재정적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뜻있는 몇몇의 노력만으로는 제한된 수의 환자들만이 그 혜택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넘어 아름다운 죽음”으로 죽음의 대중적 인식의 단계를 보다 발전·확립시키려는 저자의 그간의 노력과 흔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죽음이 단순히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완성을 위한 단계임을 보다 깊이 인식하게 한다. 우리는 죽음을 인지하지만, 온전히 경험할 수 없다.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고 타인에 대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죽음은 엄연히 존재하며, 우리는 겸허하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로 죽음을 더 깊이 생각하고 일상의 담론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물질만능주의로 경박해진 오늘날의 세태를 조금은 바른 방향으로 개선해줄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에 적절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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