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의사의 일기
아오키 신몬 지음, 조양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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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장의사(납관부)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삶과 그 주변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에세이처럼 읽혀서, 마치 소설과 에세이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완전한 소설도 에세이도 아니지만, 소설로서도 에세이로서도 독자에게 읽는 맛과 메시지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줄 것 같다.

주인공은 삶에 특별한 의미를 느끼지 못하다가 대학을 돌연 그만두고 주점을 열거나 유명한 문학인의 권유를 받고 쓴 첫 소설이 좋은 평가를 받아 소설가로서의 삶을 뜻하기도 했으나 결국 자신이 바라던 삶을 이루지 못한다. 불안정한 가정 상황에서 아내의 불만과 호소로 앞길이 막막하던 차에, 우연히 사원 모집 공고를 보고 일을 하게 된 곳이 바로 장례 업체였다.

지인들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쉽게 밝힐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있다가도, 이 일을 해나가면서 점점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에 이르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인류의 보편적인 인식의 변화를 돌아보는 일종의 에세이 같은 서술 방식은 독자에게 지적인 만족감도 제공한다.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기에 그 무엇보다 진지하고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할 알이지만, 거기에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는 장의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대단히 낮은 시기가 묘사되어 있다. 대체로 평화를 구가하던 시기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쟁이나 불황 같은 사람들을 절망으로 모는 사건들을 경험하고 난 뒤에는 죽음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삶과 죽음 어느 하나도 소홀히 대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인생의 지혜임을 이 소설은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다.

시신의 상태에 따라 생전의 삶의 궤적을 그려보기도 하고, 마른 체형이나 통통한 체형 등 어떤 형태의 체형이 더 많이 나오는지에 따라 어려웠던 시절이나 풍요로운 현재 등 시대의 특징을 구분하는 모습 등도 나오는 등, 직업적 감각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경향이나 사실 등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읽을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최근 한 공중파 방송국에서 방영되었던 장례지도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떠올랐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그 작품에서도 여전히 죽은 사람을 대하는 직업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이 간접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또 예전에 상영되었던 임권택 감독의 「축제」라는 영화도 생각났다. 죽음이 결코 슬프기만 하거나 피하고 싶고 꺼려지는 것이 아니었던 문화에 대해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죽음은 우리의 삶과 구분될 수 없는 일부분이다. 그래서 ‘생사’라는 개념도 성립하는 것이다. 요즘 부쩍 상조업체의 광고가 눈에 띈다. 죽음조차 이제는 비즈니스의 핵심 아이템으로 다뤄지는 시대다. 상업적으로만 다뤄질 게 아니라, 이제는 보통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죽음은 좀 더 진지하고 성실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이 전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통찰들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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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소개서 - 45억 년을 살아온 행성의 뜨겁고 깊은 이야기 인싸이드 과학 4
니콜라 콜티스 외 지음, 도나티엔 마리 그림, 신용림 옮김 / 풀빛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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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방송으로 디스커버리채널에서 방영되었던 ‘아포칼립스 혼돈의 지구방위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인류 멸망 시나리오 8가지를 총 8회에 걸쳐 하나씩 파헤치는 내용이다. 구체적인 멸망 시나리오로 핵전쟁, 소행성 충돌, 바이러스, 기후 위기, 슈퍼 화산 폭발, 외계인 침공, 인공지능의 역습 등이 있다.

이런 종류의 인류 멸망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류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인식이다. 인간이 생존하는 기본 터는 바로 지구다. 그래서 인류가 멸망할 때 핵심 조건이 지구가 파괴되거나 황폐화되는 상황이다. 물론 인간의 입장에서는 재앙이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라 오히려 재생과 회복의 이벤트일 수 있다는 것이 반전이지만 말이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은 곧 더 큰 것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인간에게는 그 대표적인 대상이 지구일 것이다. 어째서 이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에만 이렇게 인류가, 아니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현재 과학의 수준으로는 확률적으로 외계인이나 기타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을 뿐, 실제로 관측하거나 확인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지구는 생명체가 사는 유일한 행성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구에 대한 관심과 탐구, 지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풀빛 출판사에서 나온 교양 과학 시리즈인 ‘인싸이드 과학’ 그 네 번째인 『지구 소개서』는 이런 우리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첫 디딤돌로 적당하다. 이 책은 총 10가지 주제로 지구라는 세계를 탐구한다. 지구에 대한 본격적인 과학적 탐사는 20세기에 들어 비로소 제대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계기가 핵폭탄 시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이 사건을 통해 지구가 광물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지구를 안다는 것은 곧 우리가 디디고 서 있는 땅과 땅을 둘러싼 물, 그리고 맨틀과 핵으로 구성된 중심부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 이 책이 알려주는 지구의 가장 신비로운 특징은 살아 움직이는 행성이라는 사실이다. 정적인 구체가 아니다. 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폭발하는 하나의 역동적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 파생된 생명 현상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을 정도이다. 이런 지구의 특징을 살펴보면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이 결코 은유적 표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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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오류에 대한 철학적 안내서
호세 A. 디에즈.안드레아 이아코나 지음, 이상원 옮김 / 일므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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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랑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한다. 철학에서 일반적으로 다루는 분야 중 인식론적 관점에서 사랑을 조명하며, 특히 이 사랑이라는 광범위한 개념 가운데서 에로스와 낭만적 측면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다시 말해 사랑의 인식론적 분석이 이 책의 기본적인 틀이다.

이 책은 먼저 사랑의 세 가지 경향을 소개한다. 첫째, 신체적 변화, 둘째, 성적 접촉, 셋째, 비정상적이고 기이한 행동이나 생각이다. 사랑을 하면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도 긍정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은 비이성적 믿음에 자주 빠진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무엇이 이런 성향을 만드는가도 이 책이 탐구하는 핵심 주제 중 한다.

사랑은 의지와 무관하다. 자신의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랑은 일관적이거나 계속해서 상승 곡선만 그리지 않는다. 사랑의 강도는 세졌다가 줄어든다. 이러한 불연속적 속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나타나다. 두 사람의 사랑이 동일하지 않을 때다. 대체로 사랑은 그런 형태를 보인다. 그래서 사랑은 비대칭적이다. 사랑에는 연대감의 형성, 상대방을 염려하는 것 등의 좋은 요소가 있지만 여기에서 다루는 것은 좋은 사랑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날것의 경향이다.

이 책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근거 없는 믿음을 얻게 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룬다. 근거 없는 믿음은 곧 자기 사랑에 대한 정당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정당화를 통해 사랑에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바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지적 실수를 다룬다. 다시 말해 사랑은 인식론적으로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 인지적 실수의 대표적 경향으로 ‘합리화’를 드는데, 예를 들어 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던 그 사람이 기대와 다르거나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초래할 때 이건 내가 알던 네가 아냐,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던 네가 아니라는 식으로 결론나는 경우가 있다. 결국 있는 그대로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없다. 그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상대를 규정하고 대했던 것뿐이다. 사랑이 깨졌을 때 나타날 수 있고 깨닫게 되는 가장 우울한 결말이다.

오늘날의 사랑은 너무 가볍다. 상대에 대한 인격적인 관심이나 존중보다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것에 너무 치우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쉽게 맺어지고 쉽게 이별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일까? 우리가 원시인이나 동물의 수준이라면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에로스든 낭만이든 그 이전에 더 신중한 접근과 교류가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랑에 빠지기 전에 그 사태를 최대한 대비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가이드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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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라 불린 사람들 - 지능과 관념 · 법 · 문화 · 인종 담론이 미친 지적 장애의 역사
사이먼 재럿 지음, 최이현 옮김, 정은희 감수 / 생각이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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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인식, 사회상에 따라 지적 장애인의 지위와 처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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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라 불린 사람들 - 지능과 관념 · 법 · 문화 · 인종 담론이 미친 지적 장애의 역사
사이먼 재럿 지음, 최이현 옮김, 정은희 감수 / 생각이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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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나 사회의 성숙한 정도는 그 국가나 사회의 사회적 약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또는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매우 쾌적하고 안전한 상황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답지 않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이나 사회 참여도는 매우 낮은 형편이다. 예를 들어 최근의 전장연의 시위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들 시위의 본질이 무엇이든, 장애인에게 불편한 사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거대 서사 위주로 다루어졌던 역사의 흐름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역사의 의미를 찾는 미시사의 발견은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할 수 없었던 전해지지 않았던 일상의 가치가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것들의 의미와 권리를 되찾아 준 것은 물론이고, 역사가 놓치고 있었던 본연의 모습 반쪽을 찾은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소외되고 베재되고 차별받고 무시되는 가운데서도, 더욱 그런 취급을 받은 부류가 있었으니 이른바 백치, 즉 ‘지적 장애인’의 삶과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소위 바보, 천치, 등신, 백치, 그리고 이 책에서 새롭게 접했던 표현으로 치우나 경우 같은, 말하자면 다소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입장에 있었는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장애인의 범주에 속해 있지만, 그렇게 구분되지 않고 한 사회 안에서 자기의 역할을 어느 정도 감당하던 시절도 있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18세기 중후반까지도 소위 백치라 불린 사람들은 가족, 친구, 지역사회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비교적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고 살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8세기 말에 이르러 부패와 비리가 사회적으로 만연하자 이들은 착취의 대상이 되면서 보호받거나 격리되어야 할 존재로 격하되었다. 백치에 대한 법적 개입과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왕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백치들의 상속 재산을 자기 것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저지른 온갖 조치들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는 성직자들도 포함된다. 그만큼 세상은 혼탁했고, 조금 모자라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감당했던 지적 장애인들의 삶은 사회상의 변화에 따라 그 지위와 처우가 천차만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유럽의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확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기초 작업의 일환으로, 단지 문화와 삶의 방식이 다를 뿐인 비유럽 민족들을 자기들의 관점과 기준에서 백치와 동등시하는 과정은, 인간의 뿌리 깊은 인종과 계급 차별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주며, 오늘날 사회가 왜 그토록 갈등과 분열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백치라 불린 사람들」은 무척 의미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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