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9월 내맘대로 좋은책


 
"내년 여름에도 꺼내들을 수 있는 음반!"
 
덥고 또 더웠던 8월이 지나가고... 이제 선선한 9월이 돌아왔다! 8월 내 귀를 거쳐간 200여장의 음반 중 내년 여름까지 나의 라이브러리에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는 음반 5장을 꼽아보았다. 
 

 
1. Depapepe - Let's Go : 두 젊은 친구가 들려주는 감각적인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 시원하고 열정적이며 감각적이고 짜릿하다! 콘서트 하면 만사 제치고 달려갈 아티스트에 또 한 팀 늘었다!
 
2. SINGER SONGER - ばらいろポップ (장미빛 팝) : 이 앨범은 발매가 며칠만 늦었으면 아마존 재팬으로 가서 구입할 뻔 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적극 추천하는 음반! 이 좋은 앨범이 왜 이리 안팔리는지...
 
3. Rachael Yamagata - Happenstance :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면 껌뻑 죽는 나를 위한 앨범. 지금 알아두면 분명, 평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아티스트, 평생 함께 할 앨범이 되리라 확신한다.
 
4. Martin Stadtfeld - Bach : Goldberg Variations : 골드베르크 하면 다들 굴드나, 앙타이, 혹은 쉬프를 떠올린다. 속는 셈치고 한 번 들어보는게 어떨까. 클래식 음악은 이런 아티스트 덕에 발전하는 것이고 사랑받는 것이다.
 
5. Crazy Frog - Crazy Hits : 우하하하! 우울할 때, 청소할 때, 심심할 때, 답답할 때 언제든 꺼내 들으라! 2005년 최고의 댄스 앨범!! ㅎㅎ
 
마징가 Z 지하기지를 건설하라
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 지음 / 스튜디오 본프리
 
& ...8월 최고로 재밌었던 책 하나. 이 정도면, 망상도 존경할 만하다! 기가 막힐 정도의 치밀함과 황당함 내기를 하는 듯한 어이없는 생각들이 모여 이루어낸 가장 감동적인 결과물. 진심으로, '마에다건설 판타지영업부'를 존경한다.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8월, 알라딘엔 스밀라 열풍"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아래의 글을 여기에 꼭 가져오고 싶었다. 묵묵히 짐을 싸들고 끊임없이 방을 옮기는 사람들의 행렬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창을 다 열어 놓은 채 시끄럽고 들뜬 여름 밤을 지낸 8월, 고독에 대한 스밀라 식의 존중이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모른다. (덧붙여, 무한을 스밀라식으로 배웠다면 나는 지금쯤 숫자로 시를 쓰고 있을지도 -,-)
 
다른 사람들이 교회의 축복을 느끼는 방식으로 나는 고독을 느낀다. 고독은 내게 있어 은혜의 불빛이다. 나는 내 방문을 닫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칸토르(러시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일생을 보낸 수학자)는 학생들에게 무한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한한 수의 객실을 가진 호텔 주인 한 사람이 있고, 이 호텔 객실에는 손님이 모두 들어차 있다. 거기에 손님 한 명이 더 도착한다. 그래서 호텔 주인은 1호실에 있는 손님을 2호실로 옮겨준다. 2호실에 있던 손님은 3호실로 옮긴다. 3호실 손님은 4호실로.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렇게 하면 1호실은 새로 온 손님을 위해서 비워진다.
 
이 이야기에서 내 마음에 들었던 점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손님들과 주인 모두가, 한 손님이 자기 방에서 평화와 고요를 얻을 수 있도록 무한한 수의 작업을 지극히 당연하게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독에 대한 커다란 존중의 표시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p. 22에서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그리고 <쾌도난마 한국경제>. 제목 그대로 시원시원하게 한국 경제의 오늘을 꼬집는다. 개념으로 알고 있는 것 - 이를테면 신자유주의나 주주 자본주의, 경제 민주화 -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찬찬히 살펴야 한다는 메시지에 200% 공감. '재벌을 타도한다고 노동 시장 유연화가 극복되고 신자유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건가?' 또는 '소액주주운동이 경제 민주화를 이끄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고 많이 배웠다.
 
인문.사회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모험이라면 역시 사남매!"
 
8월에는 재미있는 책들을 나름 많이 읽어서 이 날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예전에 이렇게 썼더니 몇 권을 읽었냐고 묻는 분들이 꽤 여럿 계셨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 본인은 기록 습관 같은 것은 애초에 없을 뿐더러 가끔씩 내 정신이 네 정신인 사람이다 -_-;;)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프란시스코의 나비>, <너는 쓸모가 없어>, 세 권의 청소년 소설은 모두 아픈 상황을 최대한 건조하게 그리고 있는 점이 좋았다. 특히 앞의 두 권, 그 내용은 때로 그만 읽고 싶을만큼 참혹했지만 작가가 너무 담담해서 나도 담담하려 애쓰며 결국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성장한다고 할 때의 '책'은 이런 책을 일컫는 말일 게다.
 
외출
김형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그리고 <외출>을 읽었다. 과거와 현재를 여러 번 오가며 매우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사랑이란 역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찰나로 끝나는 열정도, 긴 세월을 조용히 지켜봐주는 묵묵함도, 사랑은 모두, 너무, 참, 좋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매우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영화관에는 가지 않기로 한다.
 
제비호와 아마존호
아서 랜섬 지음, 신수진 옮김 / 시공주니어
 
<제비호와 아마존호>야말로 8월에 읽은 가장 재미있는 책이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는데 무어라 찬찬히 소개를 쓸 시간도 없어 그저 '가슴 벅차도록 재미있다'고 써 두었다. 진심이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도 그렇듯 모험에는 역시 사남매가 제격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도 아이가 넷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또한 진심이다.
 

 
아, 8월에는 친애하는 동료 S씨가 지름신으로 몸소 강림하사, 재미있는 만화책을 백만 권쯤 추천해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꽃이 있는 정원><그와 달>이 매우 재미있었으며, 복간본 <후쿠야당 딸들>도 고이 모아가고 있음을 말씀드리는 바이다.
 
어린이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그의 열정에 매료되어"
 
iCon 스티브 잡스
제프리 영 외 지음, 임재서 옮김 / 민음사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스티브 잡스의 열정으로 가득찬 삶을 읽고 나서, 그리고 그의 모습에 매료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은 스티브 잡스, 그가 품었던 '열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십대에 이미 백만장자에 오르는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회사에서 쫓겨나 끝도 없이 추락하고, 다시 화려하게 재기하지만 암이라는 아찔한 선고를 받기도 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 고비마다 선택의 순간마다 그를 일으키고 옳은 길로 인도하는 건 자신의 감각에 대한 '믿음'과 그것을 꼭 이뤄내야겠다는 '신념'입니다.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지금의 그와 성공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전에는 단순히 '대단한 천재'로만 알고 있었던 스티브 잡스. 천재를 넘어 인간으로 바라본 그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멋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도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세상을 놀라게 하려고 또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그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그런 책입니다.
 
* 스탠퍼드 졸업식에서 그가 했던 연설문을 함께 적어봅니다.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
그가 살아온 삶을 이보다 잘 표현해주는 말은 없는 것 같네요.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여름이여. 장르여."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 행복한책읽기
 
아, 책이 너무 좋을 땐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좋은지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 지 막막하다. <영웅문>을 모르는 친구에게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다가 말을 더듬는 것도, 를 읽어보라고 하긴 해야겠는데 얼굴만 벌개지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게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바람의 열두 방향>이 SF 독서의 마지막이었는데, 이 책이 또다시 장르에의 애정에 기름통을 부었다. 케이트 윌헬름이 어슐리 K. 르 귄과 더불어 SF의 여성시대인 70년대를 풍미했다는 사실도, 테드 창이 그녀를 사사했다는 점도, 심지어 이 책에 주어진 온갖 수상 딱지와 찬사도, 이 책 그 자체보다 훌륭하지는 않다.
 
원폭, 불임으로 예견되는 인류의 종말, 클론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소재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작가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사람'에 고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3편의 중편이 합쳐진 소설의 연결고리 하나를 건널 때마다 그녀는 속삭인다. 과학도, 사회도,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시적인 묘사가 가득한 짤막한 에필로그를 읽는다면, 이 책이 왜 SF 소설 중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위기의 주부들 & 나는 스밀라에게 반하지 않았다"
 
아웃
키리노 나츠오 지음, 홍영의 옮김 / 다리미디어
 
지난 여름엔 문자 그대로 미친듯이 추리소설이 쏟아졌다. 제아무리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라지만, 제발 이제 그만 좀 나와! 라고 비명을 지를 정도로. 그러나 정말 많은 신간 추리소설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6년 전에 출간된 <아웃>이다.
 
이 책은 1998년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으로 2004년 미국 에드가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사건과 인물, 짜임새를 잃지 않고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내러티브를 지닌, 흡입력 100%의 추리소설. 한 권, 한 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를 읽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도시락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하는 네 여자가 있다. 구조조정으로 오래 다닌 직장에서 해고된 후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마사코, 없는 형편에도 빚을 내어 과소비를 하는 탐욕스러운 성정의 쿠니코, 자리보전한 시어머니와 딸, 손녀까지 부양해야 하는 고달픈 과부 요시에, 도박과 술집 여자에 미쳐 불성실해진 남편 때문에 고민이 많은 야요이. 네 여자 모두 각자 힘겨운 삶을 견디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더이상 남편을 참아내지 못하게 된 야요이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다. 그녀는 늘 침착해 보이는 마사코에게 도움을 청하고, 마사코는 그녀를 돕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살인을 완벽하게 은폐하고 한 남자의 시체를 처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요시에와 쿠니코마저 이 일에 말려들고, 평범한 주부에 불과했던 네 여자는 잔혹하고 위험한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살인 전과가 있는 도박과 매춘업자가 살인자로 몰리는 가운데, 시체를 토막내어 유기하고 뒷처리하는 과정이 손에 잡힐듯 리얼하게 그려진다. (상당히 자세히 묘사되므로 비위가 약한 사람은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얼핏 쉽게 덮고 넘어갈듯 보이던 사건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복잡하게 뒤엉키고,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 또한 커다란 내적 변화를 맞는다.
 
얼핏 평온해보이는 일상 바로 곁에 폭력과 죽음의 세계가 놓여있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지만 필요에 따라 한없이 잔인하고 이기적일 수 있다. 때때로 차마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닥쳐온다. 가족의 무관심과 몰이해에 계속해서 상처입고 무릎이 꺾인다. 복잡한 세상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건 사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고 말해야 하는 게 문학-예술이 아닐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끔찍한 시간을 견뎌낸 후에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면 새로운 문을 찾아서 열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 거짓 이야기를 꾸며내든, 망각을 선택하든... 어떻게든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결국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명제이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소년이 죽었다. 그러나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얼음과 눈, 숫자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스밀라 외에는. "나는 영웅이 아니다. 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손에 내 집념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이웃에 사는 한 소년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스밀라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책을 읽는 건 스밀라,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행위이다. 아니다. 곁에 서서 그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이다. 6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전체가 통채로 '스밀라'다.
 
스밀라는 정말 특별한 여자다. 그린란드인과 덴마크인의 혼혈인 그녀는 이전 어느 소설의 캐릭터보다도 독특하고 냉정하며 (자신에게조차) 탱크 같은 행동력을 지녔다. 동시에 놀랄만큼 다정하고 다분히 감상적이며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에 익숙하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않는 그런 사람이다.
 
중간에 읽기를 여러 번 멈추고 책 귀퉁이를 여러 번 접으며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인간과 사물, 세계와의 관계 맺음에 대해 사유와 성찰과. 스밀라의 뒤에 바짝 붙어선 채, 차갑고 먼 북구의 바다를 헤매는 자신을 발견한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생존해나갈 방법 찾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 스밀라에게 생존의 이유는 바로 '이해'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해의 소설'이다. '이해하고 싶다는 것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고자 하는 시도다.' 스밀라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희망' 때문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라 표현되는 무엇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인간에 대한 고요하고 깊은 이해와 성찰이 담긴, 진심으로 일독을 권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199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 소설가 김연수의 진심이 담긴 추천글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글의 마지막 문단을 내 식으로 바꾼다면, 마지막 장면 속으로 잠시 들어가 그녀의 뺨에 가만히 손을 대고 '삶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다. 간절하게.)
 
문학.예술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고양이 - 라고 쓰는데 이십분이 걸리는 세계"
 
이집트 상형문자 - 읽기와 쓰기
스테판 로시니 지음, 정재곤 옮김 / 궁리
 
이번 달에는, 쐐기처럼 생긴 수메르의 설형문자를 들여다볼 일이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점자책이 눈앞에 등장해 생전 처음으로 만져(아니 읽어?)보았다. 그리고 뜬금없이 이집트 상형문자 책이 등장했으니, 모두가 뭔가의 계시일까?
 
...싶은 심정으로 심심할 때마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썼(아니 그렸?)으니,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고양이(발음은 미우)를 표현하려면 동그란 항아리 하나 + 새끼 (왜 꼭 새끼?) 메추라기 한 마리 + 그리고 이집트산답게 털이 짧은 고양이 한 마리까지 나란히 그려야 한다.
 
...무슨 고생이냐. 그러나 썩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이런 책이 나오게 되었는지 몰라도 마음에 들었다. (실은 이집트 상형문자에 대한 책이 올해만 몇권 나왔다. 이상하다.) 남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수고하는 것이 실은 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말들은 짧지만, 그리고 그 사람이 눈앞에 있어도, 심장을 손에 얹어 내밀듯이 백년쯤 궁리하여 내뱉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다.
 
편집팀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호랑녀 > 출판... 두번째 뒷얘기

 

 

 

 

 

시리즈로 쓰는 건 아니고, 그냥 빠진 얘기가 있어서요.

네 개 정도의 스토리가 좋겠다고 처음에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외로운 아이들 네 명이 등장했죠.

민주는...

엄마 아빠가 무지 바쁜 집의 외동딸입니다. 제가 학교에 있을 때, 저랑 참 친하던 한 친구가 모델입니다. 혼자 침대에 앉아서 벽보고 얘기하고 있었더니 엄마가 들어와서 '너 언제부터 교회다녔니?' 하더랍니다. 기도하는 줄 알고...

하승이는...

위로 형이 있고, 아래로 늦둥이 여동생이 있는 아이입니다. 짐작되시죠? 집안의 머슴이죠. 제 딸 준희가, 딱 내 얘기네! 라고 하더군요. 사실 이 아이의 모델이 되었던 아이는... 6남매를 둔 집의 남자아이였습니다. 성격 진짜 좋은 아이인데, 찬바람이 불 때도 맨발에 반바지, 샌들을 신고 왔더라구요.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늦잠자서 옷이 없어서...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길레 제가 무지 예뻐하던 아이였죠.

진우는...

사실은 제 아들놈의 얘기입니다. 혹시 장애가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둔하죠. 정말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해도 실전에 들어가면 오히려 더 못하는... 그것때문에 콤플렉스도 많고(아직두요), 친구 사귀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조금 과장된 면도 있지만요.

그리고 마지막 안나 이야기는...

예전에 제가 만났던 아이입니다. 미국 입양아인데, 대학 입학하자마자 한국에 왔더라구요. 입양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엄마를 찾아 만났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 갈등이 많았습니다. 몇 명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갑자기 입양아 얘기가 너무 생뚱맞다는 평을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항상 외로움 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안나가 떠올라서 도대체 물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초고의 마지막은 안나의 편지로 맺었습니다.  엄마를 향한 편지였습니다. 낳아준 엄마.

그런데 결국 그 부분은 수정했습니다. 수정에 제일 큰 역할을 했던 건 제 아들놈이었는데, 4학년짜리 아들놈이... 안나의 감정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쓰면서 울었는데... 그건 어른의 감정이었나 싶어서 결국 수정했죠. 이 책의 대상은 아이들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원본 편지는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마 책을 안 읽으신 분은 잘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겠습니다만, 그래두 버리기 아까워서 여기다 수정하기 전의 생모를 향한 편지를 올리렵니다.

  나를 낳아주신 분께

  안녕하세요? 저는 안나에요. 한국에 있을 때는 은혜라고 불렸는데, 그 이름은 고아원에서 지어주신 건지 아니면 나를 낳아주신 분이 지어주신 건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지금은 안나입니다.

 

  6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온 후, 처음으로 이번에 한국에 가게 되었어요. 계획보다는 조금 빨라진 거예요. 엄마와는 대학에 다닐 때 꼭 가보자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에서 알게 된 한국 친구들이 저를 초대해줬어요. 한국에 관한 숙제를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인데, 그중 민주라는 친구의 엄마가 제가 사는 곳에 출장을  오신대요. 그래서 가는 길에 저를 한국으로 데려가 주시기로 한 거죠.

 

  제가 한국에 가면 민주의 집에 묵으면서 친구들과 함께 한국 여행을 하기로 했어요. 농사를 짓는 진우 할아버지네 집에도 가 보고, 또 다른 친구들과 캠핑도 갈 거예요. 제가 한국학교에서 배우던 사물놀이를 제대로 하는 공연도 볼 예정이에요.

 

  처음에는 제가 입양아라는 얘기는 안 했었어요. 그 얘기를 하면 ‘입양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 ‘네 부모님은 잘 해주시니?’ 등등을 물을 게 뻔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가려니 어차피 알려질 일이어서 사실대로 말했어요. 그랬더니 민주 엄마가 저에게 저를 낳아주신 분을 찾고 싶으면 돕겠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저를 보고 싶으세요?

 

  저를 길러주신 미국의 엄마 아빠는 참 훌륭한 분이에요. 사람들 말처럼 사랑이 넘치는 분이죠. 어제 어디에서나 생김새가 전혀 다르게 생긴 저를 보고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 말씀하시고 항상 저를 자랑스럽게 얘기하시죠.

 

  그런데 저는 가슴에서 태어난 게 참 싫었어요. 다른 아이들처럼 나도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고 싶었어요.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다면 엄마 아빠처럼 생겼을 테니까요. 그러면 사람들이 자꾸 다시 쳐다보고 엄마에게 이 아이는 누구냐고 묻지 않을 테니까요.

 

  내 기억에 한국에서 살 때는 별로 착한 아이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고아원 기억뿐이지만요. 그렇지만 미국에 와서는 항상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엄마는 내가 너무 착해서 마음이 아프대요. 그래도 난 항상 불안했어요. 착하지 않으면 또 버림받을지도 모르니까요.

 

  엄마는 내가 버림받았던 건 아니라고 말씀하셔요. 함께 살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나를 맡긴 거라구요. 어떻게 다른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아마 당신(한국학교 선생님들은 어른에게 당신이라고 부르는 건 옳지 않다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제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엄마’는 아니잖아요?)을 만난다면 그것을 제일 먼저 물어볼 거예요. 함께 살 수 없는 사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원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좋은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요.

 

  이번에 한국에 갈 때는 내가 자랐던 고아원에 가 보고 싶어요. 그러나 아직 당신(죄송합니다)을 만날 준비는 안 되어 있어요. 제가 더 훌륭한 모습으로 자라서 찾을게요. 그래야 당신도 나도 모두 기쁠 테니까요.

 

  그래도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나를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호랑녀 > 출판... 뒷이야기

 

 

 

 

 

학교 그만 두고, 알라딘에서 열심히 놀고 있을 때(물론 거의 글은 안 쓰고 눈팅만 하던 때였죠), 친구에게 제의를 받았습니다.

너 동화책 한 권 써라.

야, 책은 아무나 쓰냐? 나까지 쓰레기 만드는 일에 일조하고 싶지 않다.

처음엔 제가 이렇게 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계속 얘기합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일들을 아이들의 눈높이로 써보자는 것이다, 딱 우리 아이들의 눈높이면 된다... 너 아이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얘기 없었니? 직접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이 써 보자!

그 이야기에 솔깃했습니다.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

사서교사를 할 때, 참 많은 아이들이 저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형제가 많은 집 아이들도, 친구가 많은 아이들도 겉보기완 다르게 정말 외로운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외동아이는 잠자기 전에 침대에 앉아서 벽을 보고 얘기한답니다. 또 어떤 아이는 운동을 잘 못해서 친구들 사이에 끼지 못하는 것때문에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죠.

어떤 아이는 부모님이 자꾸 싸우셔서 늘 힘들어했죠. 그 아이의 말을 적나라하게 들은 후에 동네에서 그 아줌마를 만나면 눈을 맞출 수가 없기도 했죠. 엄청 우아하고 고상한 아줌마였거든요. ^^

(그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우리집의 셋이나 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큰놈은, 가출을 꿈꾸면서 돈을 모으고 있었고, 둘째는 위아래로 치여서 늘 외로워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늦둥이라서... 말이 통하는 형제가 없으니 또 외롭답니다.)

저는 때로는 함께 울면서, 때로는 함께 웃으면서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 아이들이 참 기특했습니다. 이제 너희들은 때가 되었구나, 이제 곧 날아오르겠구나...

외로움이란 건, 절망이 아니라 기회라는 걸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들어주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친구의 제의를 받고, 출판사 관계자를 만나면서... 그 얘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성을 잃고 OK를 해버리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ㅜㅜ

쓰면서 내내 후회했고, 제가 우울했고, 제가 힘들었습니다.

고쳐쓸 때마다 이야기가 바뀌었고, 나중에는 제 머릿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녀서 그 중 어떤 놈들이 태어났는지도 헷갈리게 되었습니다.

역시... 책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로구나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이 책은 이렇게 태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차라리 애를 하나 더 낳고 말지, 책 쓰는 건 정말 힘들다... 고 말했습니다. (애는 쑴풍쑴풍 잘 낳거든요. 둘째는 20분만에 뚝딱 낳았대니깐요) 그러면서도 또 머리 한쪽에서는 다음에 혹시 또 쓰면 이런 식으로 써볼까,  저런 아이를 등장시켜볼까... 머리 굴리고 있습니다.

책이 나오면 무지 후련할 줄 알았습니다. 헉... 그런데 정말 무지 부끄럽고 무지 창피하고... 그냥 잠수하고 싶군요.

혹시 제 책을 읽으신다면, 거리낌없는 비판 부탁드립니다.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많은 비판 뒤에는 한두 줄쯤 격려도 부탁드립니다. 이 책 쓰면서 저도 우울증을 앓았거든요. 헤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호랑녀 > 외로울 땐 외롭다고 말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8월 내맘대로 좋은책


 
알라딘 편집팀이 2004년 12월을 마지막으로 감감무소식이었던 '내맘대로 좋은 책 그리고 음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아무 일 없던 듯 조용히 재개하려 했지만 인사조차 않는 건 너무 능청맞겠지요. 한번 바쁘다고 넘어가니 서로 눈치만 보면서 계속 그렇게 되더라,는 게 변명입니다.
 
반년간의 좋았던 책과 음반과 영화를 돌이켜 적어보니 새록새록 떠오르는 생각들에 지나간 시간이 뿌듯하게도 여겨집니다. 이우일씨가 <옥수수빵파랑>에서 권한대로 일부러 멈춰서서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는 일, 역시 즐겁군요.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의 마음에도 어떤 책들 떠오르고 있는 중일까요? ^-^
 
 
"설렁설렁.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상반기 결산을 맞아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을 쭉 소개해 드릴 계획이었는데... 무슨 책을 읽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마도 더운 날씨 때문인듯 싶습니다. 뒤척이며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더니 머리가 멍한 느낌입니다. (늘 TV에서 한강 둔치까지 나가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며 오죽하면 저럴까 했는데, 올해 톡톡히 '잠 못드는 열대야(熱帶夜)'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영서 읽기도 여름이면 방학을 맞이합니다. 아무래도 신경 곤두세우고 의미를 찾아가며 읽어야 하는 경영서다 보니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대신 설렁설렁.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그런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부담 없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문학책도 많이 읽고. 예전에 한번 읽었던 여행서들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문학책이 '안 읽어도 그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괴짜경제학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닷컴
 
주말에 시간이나 보낼 겸 꺼내들었던 <괴짜경제학>과 <서른살 경제학>은 의외의 수확이었습니다. <괴짜경제학>은 주제 선정의 '괴짜'스러움과 이국적인 표현에 왠지 모르게 첫 부분은 꺼끌꺼끌한 밥을 씹는듯 했지만, 그 고비만 넘기고 나니 (그런 표현 스타일에 익숙해지니) 속도감 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정말 특이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에 일조한 책이기도 합니다. '경제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만, 한번쯤 독특한 재미를 느끼기에는 나쁘지 않은 책입니다.
 
 
서른살 경제학
유병률 지음 / 인물과사상사
 
<서른살 경제학>도 허름한 표지로 알짜배기를 감추고 있는 겸손한, 그래서 잘못하면 안 읽고 그냥 지나칠 뻔 했던 책입니다. 고령화 시대에 걸맞는 재테크 방법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만으로도 큰 수확입니다. 읽다가 좀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십삼 년 후 제가 40살이 되었을 때도 제가 중간 나이에 약간 못 미친다고 하네요. (40을 먹었는데도 인구의 반 이상이 저보다 나이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아직도 날씨는 덥고 방학은 계속됩니다. 날씨가 좀 선선해지면 그때 지금 받아두었던 책들을 꺼내 읽어야겠네요.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2005년 상반기 나만의 베스트"
 
알라딘에서 상반기 주문한 건수는 총 30건. 금액은 1,659,000원. 이 주문 중, 그리고 이리저리 알게 된 많은 작품들 중 나의 상반기 베스트!
 
1> 음반 : 실비 바르땅의 베스트 앨범
2> DVD : 달콤한 인생 감독판
3> 도서 :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4> 화장품 : 뉴 르파 겐조 뿌르 옴므 오드뚜왈렛 향수
 

 
화장품은, 많은 것 중 향수를 선택했다. 원래 주로 쓰는 것은 아르마니나 폴로, 불가리였는데 겐조를 우연한 기회에 선물받게 되어 요즈음 즐겁게 뿌리고 다니고 있다. 가벼우면서도 상쾌한 느낌이 괜찮다. (전에 쓰던 것들이 좀 무겁고 힘있는 느낌이어서인지, 더 끌리는지도.)
 
도서는, 뭐 책을 그리 읽지 않는 것도 있지만, 별로 고민하지 않고 선택했다. 다 읽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이 정도 꼼꼼한 영화사 책을 근래 보기 힘들었다는 점. 그리고 튼튼한 마무리 등 외적인 부분까지 만족스러웠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DVD는, 역시 별다른 고민이 없이 선택했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만 두 번을 본 작품으로, 감각적인 화면과 멋진 음악 등등 이른바 '간지' 가 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당연히 나오자마자 DVD를 주문했고, 매일 밤마다 어루만지면서 흐뭇해하고 있다.
 
음반은, 사실 조금 더 고민해보면 다른 앨범을 집어들 수도 있을 테지만, 비오는 수요일 오후에 딱 떠오른 앨범이 바로 실비 바르땅이었다. 샹송 앨범이라고 지레 던지시는 분도 있겠지만 '유럽' 이라는 단어에 까닭모를 흥분을 느끼신다면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듣다보면 파리의 수많은 거리들이 바르땅의 힘있고 열정적인 목소리에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시기적으로는 30년 가까운 '음악인생'을 담은 덕에 프랑스 대중음악의 다양한 단면을 시공을 초월해 느껴볼 수도 있다.
 
지금 이 앨범은 CD로, ipod의 파일로, 노래방 레퍼토리(연습 중)로, 다른 가수가 부른 동일 곡의 앨범 구매로, 제인 버킨 등 명 샹송 아티스트들의 박스 장바구니 담기 등으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정말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듣지 못했을 음반. 새삼 알게 된 것이 기쁘다.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2005년 상반기, 한국에서 출판된 최고의 외국 소설"
 
바람의 그림자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상반기 최고의 소설은 단연 <바람의 그림자>였다. 근래 외국에서 무슨무슨 상을 수상하고, 세계 몇십개 국에서 몇개 언어로 출간 예정이며, 100만 부 정도야 가볍게 팔아치웠고, 영화로 제작 중이거나 제작 예정이며, 누구누구 유명 작가가 격찬했다는 소설이 너무 많이 나온 탓에, (헉헉) 웬만한 수식엔 마음이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의 그림자>는 "2001년 스페인에서 출간된 직후 101주 동안 베스트셀러 상위에 머물렀으며,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30여 개 국에서 20개 국어로 번역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소설. 아마존닷컴에서 단시일 내에 100만 부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고, 스페인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0년 스페인 '페르난도 라라 소설 문학상' 최종 후보작, 2002년 스페인 '최고의 소설', 2004년 프랑스에서 그해 출판된 '최고의 외국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라는 소개글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만한 멋진 소설이다.
 
이 책의 내용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한 소년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오래된 헌책방에 가게 된다. 거기서 '자신만의 책' 한 권을 얻게 된 소년은, 그 책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아픈 운명에 얽혀 들어간다. 내부에 수많은 미니어처를 담고 있는 '러시아 인형'같은 이야기. 책의 운명과 저주에 대한 소설처럼 시작했다가 추리소설인가 갸웃거리게 하고, 사건 속에 스페인 내전의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져 있되 결국엔 죽음도 가라놓을 수 없었던 어떤 연인들의 이야기로 마감된다.
 
인물들의 운명은 소년과 책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번 반복되고 또 변주된다. 인생이란 결국 그러한 것. 반복과 변주를 통해 생은 조금씩 빛깔을 달리하고 아름답게 채색된다. 그때 그들 사이에 오가던 감정, 각자의 사연을 그 누가 온전히 되살릴 수 있을까. 소년은 흩어졌던 지난 인생의 조각들을 모으고, 그 과정을 통해 어른이 된다.
 
풍성한 내러티브, 경쾌한 전개, 지적이면서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다. 주변에 권해준 모든 이들 중 단 한 명도 실망했다 말하지 않은, 추천도 100%의 멋진 작품이다. 지극히 복고적이고 낭만적이며, '매혹'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매력적인 소설. (책을 다 읽고 나면 전쟁 중에도 도시에서 꽃을 팔았다던 낭만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가고 싶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 p.s. 2005년 상반기에는 이른바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재간되어 많은 이를 기쁘게 했다. 최고의 코믹 SF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재출간되었으며, 고려원에서 나왔던 미하엘 엔데의 훌륭한 단편집 <자유의 감옥>과,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가 출간됐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란 제목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들을 찾아 헤매던 많은 사람들이 기뻐할 만한 소식. (그러나 유감스러운 건 지금까지의 예를 볼 때, 이렇게 재출간된 책들의 스코어가 썩 좋지많은 않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이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엔 또 어떤 멋진 책이 나올까, 기대 반 걱정 반 가슴이 설렌다. (요즘엔 매일 추리소설만 읽어대서 정신세계가 날로 각박해지고 있다.;;)
 
문학.예술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오랜만입니다"
 
그와 달 1
이케미 료 지음 / 학산문화사
 
뜬금없이 찾아온 '내맘대로 좋은 책'. 정초 이후 마음 속으로 '언젠가는 써야 해'와 '잊자!' 무리가 끊임없이 싸웠다. 현실에 승복하고 주섬주섬 책을 챙겨보니, 의외로 이번 달에 건진 만화책이 몇 권 있어 다행이다.
 
이케미 료는 국내에서 그다지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다. <장미빛 내일>, <내가 있어도 없어도>와 같은 대표작을 꼽아도 아는 이는 드물다. 2권까지 나온 <그와 달>은 <허니와 클로버>의 신선한 명랑함과 <이씨네 집 이야기>의 대가족 구도를 70:30정도로 버무렸다. 거기에 종종 등장하는 수선스럽기 짝이 없는 가족의 컷은 <니아 언더 세븐>의 괴기스러운 수다와도 연결된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해 요즘 보기 힘든 대가족이 다다미방이 깔린 구식주택에서 살아간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개성이 뚜렷하지만 이야기의 무게는 분명히 젊은이들에게 쏠려 있다. 자신을 좋아하던 회사동료가 투신자살한 이후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어두운 분위기의 장남, 무뚝뚝하지만 매력적인 장녀 히로노, 남에게 사랑받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차녀 호노카. 이들이 각각의 짝과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한여름에 읽어도 기분좋은 따스함이 느껴진다.
 
2권까지 나온 터라 성급한 결론은 어렵겠지만, 전작과 비교해 좀 더 짜임새가 있는 만화다. 다만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도 많고 각자의 에피소드도 다양해 집중도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라는 것. 늙어서 면역부전에 걸렸지만 여전히 귀여운 고양이 나폴레옹도 매력만점! (2권 표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마키아벨리와 그의 친구들"
 
내 맘대로 좋은 책 제2의 창간을 기념하며 여기에 어떤 책을 가져올 것인지 많이 고민했다. 단지 제목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나 <끝나지 않은 길>, <돌아온 젖소 블라섬>에 잠시 혹했던 것도 사실. 그러나 이 영광스런 자리에 아무 책이나 모실 수는 없는 법, 고르고 고른 끝에 2005년 여름을 함께 한 '마키아벨리와 그의 친구들'(맘대로 지은 시리즈명)을 이 자리에 모신다.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 옮김 / 까치글방
 
우선 <군주론>. 태도가 냉정하면서도 이상을 위해 행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전이다. 마키아벨리의 현실 인식에 감탄하거니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치밀하고 간결한 표현력에도 매력을 느낀다. 책장 구석에 있던 책을 꺼내 책상 위 책꽂이에 모셔두었다면 얘기 끝.
 
 
新군주론
딕 모리스 지음, 홍대운 옮김 / 아르케
 
다음은 <新군주론>. 1996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이 중도적 노선을 취해 재선에 성공하도록 전략을 짠 정치 컨설던트 딕 모리스의 책이다. 서문부터 눈길을 확 휘어잡는다.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만약 미국 정치인들이 진정한 현실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자기 이익을 추구했더라면 오늘날 정치인들이 당파 싸움에 몰두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신 훨씬 더 깨끗하고 바람직한 이슈 중심의 정치가 뿌리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고로 이 책의 주제는 '진정한 현실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말씀! 미국 정치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딕 모리스의 통찰력이 빛나는 책이다. 당위며 도덕적 우월성에 기댈 생각을 버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전략을 세우라 하신다.
 
 
피도 눈물도 없이 경영하라
로브 라케나워, 조지 스토크 지음, 김원호 옮김 / 북앳북스
 
마지막 책은 <피도 눈물도 없이 경영하라>. 세상에는 두 가지 기업이 있다. 1. 적당한 수준의 실적을 내고 신사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기업 2.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극한의 노력을 기울여 결국에는 승리하는 기업. 이 책은 후자를 선택한 이들 즉, 하드볼 플레이어를 위한 일종의 지침서다.
 
경쟁이란 원래가 흥미있는 주제이며, 이기는 일이란 아무리 초연한 듯 굴어도 결국은 흥분되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을 지키며 얻는 승리란 얼마나 멋진가. 책은 괜한 자존심 세우느라 정작 지킬 것을 잃지 말고, 당당하게 싸워서 멋지게 이기라며 꼬시고는, 몇 가지 팁을 알려준다. 어떤 내용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어떤 내용에서는 '이건 좀 심한거 아니냐'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 p.s. 쓰고나니 어째 분위기 살벌. 그러나 본인은 평소 휴머니즘을 주창하는 사람이며 <아름다운 가치사전>이나 <쨍한 사랑 노래> 같은 책들을 더 열심히 읽는 사람임을 밝혀둔다.
 
인문.사회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내맘대로 좋은 책'을 다시 시작하자고 서로의 결심을 다진 지 어언 몇 달. 이번 달에는 하나 둘씩 동료들이 진짜로 책을 정해내기 시작했다. 어이구 어이구 배신자 나빠 미워... 투덜거리는 사이 나만 남았다(알고 보니 막판역전에 성공하긴 했다 ^^). 게다가 팀장님은 한 권을 뽑든 두 권을 뽑든 신간을 고르든 구간을 고르든 마음대로 하라신다. 너무해요, 저는 원래 본성이 소심하고 우유부단하여 결정에 약합니다요. ㅠ_ㅠ
 
너무 멀리까지 생각했다간 수렁에 빠질 게 뻔하다. 근래 어떤 책 덕분에 즐거웠더라? 그래, 보름 전쯤 일과 시간에 몰래 <노다메 칸타빌레 12>를 읽다가 불의의 장면에 기습당하고 꽥꽥 소리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다. 치아키 님 제게 돌아오세요! ♡♡♡
 
 

 
상반기 내맘대로 좋은 동화는 역시 <헨쇼 선생님께>. 마음이 자란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지난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도 다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도 좋았다. 여성의 권리에는 목소리를 높여도 엄마의 권리에는 무심한 나, 진심으로 반성한다. <악마와의 계약>은 무척 강렬했다. 과녁을 향해 직진하는 티에리 르냉의 글쓰기가 좋았다. 이 책의 표지는 빨간색 밖에 될 수 없으리라.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JD, <달님 안녕>이야말로 최고였지요? ^^
 
어린이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올해의 첫 매미 울음, / 인생은 /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바람의 그림자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한 명의 동료를 떠나보냈다. 고개를 들어보니 계절은 늦여름이다. 반년간 읽은 책을 궁리하다가 <바람의 그림자>를 꺼내들고 가만히 바라본다. 이 책에는 향기가 있어서 지금 주인공들의 운명은 다 잊었을지라도 향기만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운명, 우연, 사랑, 인생, 고통을 낭만으로 견디는 것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인생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고통까지 자초하는 인간들에게는 운명이나 시대가 친구인 셈이다. 어떤 리뷰어께서 "소설과 원수지지 않았다면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정말이다. (혹자는 지나치게 영화 시나리오 같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좌우간) 그 어떤 이야기가 기척을 알리며 읽는이의 마음에 접어드는 것은 대단한 일. 묘하게 후각적인 이 책은 소설 읽는 재미를 상기시켜준다. (편집자 모씨는 책을 읽고 이상형이 '페르민'으로 바뀌었다고 토로하셨도다. 그이가 잊지 말라고 내가 여기 적어둔다.)
 
올 여름을 화끈하게 총정리해준 것은, 그런데, 주간지인 '한겨레21' 8월호 별책부록 '추리소설 가이드'다. 일부러 주간지를 사볼만한 재미가 있다. 아아 어느새 저 매미 울음 부쩍 시끄러운 것은 가을이 올 신호인가.
 
편집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