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문학판의 보배 공선옥
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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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 특히 남편과 시어머니는 대개 악인이다. 남편은 “술을 먹고 마누라를 후려치”는 사람이다. 여자(이름이 용자다)는 왜 그런 남자와 결혼했을까. 그 남자에게 겁탈을 당했기 때문. 그럴 줄 알았으면 “...사팔뜨기 박씨와 결혼을 했던 게 훨씬 나았을 것도 같았다” 그럼 남자 생각은 어떨까.

“남자는 어쩌다가 실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그 실수를 한번 했는데 용자가..바짓가랑이를 붙잡았던 통에 맘에는 들지 않지만 인정에 이끌려 결혼을 했”다. 물론 그건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실수”란다. 남자 자신은 ‘실수’지만 여자에게 있어 그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강간범보다 당한 여자를 오히려 손가락질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인정에 이끌려 결혼해 줬다는 식의 생각은 당장에 붙잡아 회를 쳐먹을 발상이다. 결국 매맞는 것에 진력이 난 용자는 집을 나가고, 남편은 열나게 그를 찾아다닌다. “한번 집 나간 여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 다음 시어머니. 아내가 죽은 후 종만(다른 남자다)은 다방 여자와 재혼을 한다. 27세인 계모에게 17살인 망나니 아들은 이년 저년 하면서 대드는데, 그걸 종만이 나무라니까 시어머니가 악을 쓴다.

“지집이 잘못 들어온 거야. 그 사이 좋은 애비 자식을 갈라논 것이 필시 저 지집이랑게”

자기 아들 자기가 가르친다면서, 왜 거기다 자기 아내를 갖다대냐는 종만의 항변에 시어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저년이 인자 어미 자식 간도 갈라놀라고 허는개비. 굿을 혀야 써, 굿을”

시어머니에게 있어서 모든 악의 근원은 새로 들어온 며느리다. 공선옥 소설에 나오는 시어머니는 대개가 이렇다.


이런 의문이 생길 법하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다 그렇게 나쁜 것일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지 않은가. 그건 아니다. 사람의 인간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도박을 해봐야 하듯이,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에서야 인간의 참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공선옥이 다루는 사람들은 언제나 입에 풀칠하기 급급한, 없는 사람들이기에 시어머니와 남편은 상대적 약자인 아내를 탄압하는 나쁜 사람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공선옥은 <말>지에 “나이 마흔에 길을 떠나다”는, 지방 탐방 시리즈를 연재한 적 있다. 이 연작소설의 주인공 ‘한’은 아마도 공선옥 자신일 테고, 그때 만난 사람들의 얘기가 이 소설의 모태가 되었으리라. 문학평론가 방민호의 말처럼 오늘날의 소설 독자들이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가 아니라 결코-좋아하지 않는지라, 공선옥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픈 현실을 드러냄으로써 사회 진보에 기여하는 게 바로 문학의 사명이니까. 난 공선옥이 좋다.


* 사족: 공선옥답지 않게 오자가 좀 있는 듯하다.

-129쪽: 영숙은 그저 남들이 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만 오는 반상회가 끝났다.

-141쪽: 경찰서 안이 난장판이라 여겨지는 건 담배를 권한 형사가 조사를 하고 있는 자의 역할이 크다.

-190쪽: 노인 때문이 아니라 한을 보고 김 선장을 뱃머리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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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5-17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문이군요. 이런 건 편집자가 잡아줘야 하는데...월급 받고 하는 일이니까요^^물론 이것만 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해도

울보 2005-05-1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그러게요ㅣㅣㅣ
 
 전출처 : 마냐 > 누군들....살고싶을게다.
안전지대 고라즈데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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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촌의 뒷골목에 가면, 작은 카페들이 나온다. 그 동네를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해온 나도 그 카페골목을 몰랐다. 제법 얘기가 잘 통하는 마담이 있고, 언니들이 옆에서 술시중을 들어준다. P선배의 단골도 그중 하나. 지난 겨울, 3차로 그 카페에 갔다가 마담과 쿵짝이 맞았다. 세상에, 피터 마쓰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를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마담이 있군...그 언니 덕분에 술도 쑥쑥........
암튼, 다음날 아침, 뭔가 실수했다 싶었다. 이런, 마침 가방에 넣고 다니던 조 사코의 `고라즈데'를 넘겨주고 왔네! 3분의 1이나 남았는데. ㅠ.ㅜ

 좋은 책 선물했음 그만인 것을, 많이 아쉬웠던 책이다. 처음 그 책을 펼치고 받았던 충격들이 이젠 희미하다. 얼치기 지식인을 자처할라치면,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정도는 들어본체 해야 했길래....주저않고 집어든 책. 그리고 안이한 내 접근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담긴 책이었다. 어쨌든 `고라즈데'와의 인연은 신촌카페 사건으로 끝인가 했는데, 동료 T가 (당연하게도) 그 책을 갖고 있었다. 낼름 빌렸다.

 안전지대 고라즈데. 보스니아 내전의 기록이다. 세르비아계 만행으로부터 보스니아계 무슬림을 보호하기 위해 UN이 지정한 이른바 `안전지대'. 그러나 실상은 고립된 절망의 땅이었고, 때로는 무기력하게 살육당해야 했던 곳이다. 저자는 고라즈데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중계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이 만화. 대사는 비현실적이고, 그림은 엽기잔혹사다.

 "미국에서도 고라즈데를 아나요? ", "평화가 올까요?" "청바지를 사다주세요, 꼭 리바이스여야 해요"

 "사람들은 세르비아계 집들에 불을 지르고 있었죠. 무슬림계 집들은 대부분 세르비아계가 태워버린 상태였고요. 어떤 사람들은 약탈엔 관심이 없고, 오직 불지르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죠. 그들은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모두들 공포감에 사로잡혔고,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모두 일곱구. 그중 둘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죠...그의 배속에는 오물이 가득했어요. 아마 그들이 배를 갈랐던 모양이죠. ...그의 한쪽 손 손가락은 모두 잘려나갔고....모두 성기가 잘려있었어요. 그는 결혼해서 아이가 하나 있었죠..."(살육된 한 마을을 뒤늦게 찾은 고라즈데 사람들)
 
 "밤마다 사람들을 잡아갔소. 애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강물에 사람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소. 때로는 총을 쐈지만, 칼로 목을 찌르는 걸 더 좋아했소. 사흘 낮과 사흘 밤 사이에, 나는 200~300명이 죽는 걸 보았소. 나는 똑똑히 보았소."(고라즈데 주변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한 남자)

 평범한 고라즈데 시민들. 그들의 눈 앞에서 때로는 포탄이 터진다. 필사적으로 딸의 손을 붙잡고, 가족을 챙겨 달아나보지만, 길 위에서 아내를 잃고, 아이를 잃고, 때로는 가장을 잃는다. 아무 일 없을거라는 TV속 정치가들의 말과 현실은 달랐다. 혹시나 해서 피신했던 가족들은 두고 온 가족들을 `사망자 명단'에서 발견한다. 하룻밤 수십, 수백명씩 팔과 다리가 떨어져나가는, 배가 갈라진 부상자들이 병원에 실려와도 의약품은 없다. 포위된 주민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전달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UN 결의 불구, 세르비아인들은 멋대로 구호대를 차단하는 상황. 굶어죽지 않으려면 목숨을 거는게 당연하다. 총부리를 피해 밤새 산길을 타서, 수십kg의 식량을 짊어지고 돌아아야만 한다. 중간에 누군가 쓰러져있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누구나 같은 생각이다. 오직 살아돌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

 행복하게도, 운좋게도 평화를 맞이한 이들은 인생에 4년여의 공백을 두고 새출발을 한다. `피붙이를 잃은 슬픔'은 `살아남은 죄'로 이어진다. 떠들석하게 파티를 하고, 새 청바지를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설마 그렇겠냐만) 만화책의 그림 속에서도 처절하고, 눈빛은 공허해보인다.

 `베를린의 한 여인'에서 전쟁의 한 복판 목소리는 충분히 들었다. 고라즈데가 다른 것? 글쎄. 별로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책은 만화로 현장을 재생, 머리로 생각하기 앞서 먼저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시대적 상황을 방패막이 삼아, 잘 알던 이웃끼리 인간임을 잊고 공포에 취해 몇 세대를 두고 잊지 못할 원한을 쌓아간다는게 조금 다를까. 그리고 제3자가 들여다본 피해자들의 서글픈 광기 또한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국제질서라는 미명 아래 인류역사상 어디선가는 늘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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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하이드 > '감각의 축제' 로 초대합니다.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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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친구에게 사주려던 이 책이 박물관학책들과 같이 있었던건 좀 유감이다. 이 책의 원제는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

저자는 서문에서  '감각의 기원과 진화과정에 대해 탐구하고, 감각이 문화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지, 그 범위와 평가는 어떤지 등에 대해 알고자 한다. 또한 다른 감각적인 인간들을 기쁘게 해주고, 덜 감각적인 마음들도 잠시 쉬면서 감탄할 수 있도록 몇 가지 특별한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의 작은 축제가 될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작은 축제. 그 축제는 여러분이 감각적 인간이건 덜 감각적인 인간이건 모두 , 언제라도, 즐길 수 있는 누구에게나 초대장이 뿌려져 있는 그런 축제이다.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그 축제에 참가하는 것은 아니다. 축제는 바로 옆에서 항시 열리고 있지만, 생활에 찌들려서건, 책에 찌들려서건, 사람에 찌들려서건 그 작고 복받은 축제를 무시하고, 외면하고, 심지어는 모.르.고. 있는 분들을 위한 초대장과 같은 책이다.

01. 후각

 냄새보다 기억하기 쉬운 것은 없다. 냄새만큼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나는 기온의 변화보다는 냄새로 계절의 변화를 알아챈다. 겨울냄새는 구운고구마를 굽는 난로 냄새, 군밤 냄새이고, 눈 냄새, 크리스마스 냄새이다.

각종 냄새에 관한 흥미로운 고찰이 계속된다. 그 중 사람마다 다른 냄새에 관한 챕터에는 항상 축제중인 저자의 축제중이기 위한 팁이 하나 주어진다.

나쁜 냄새란 무엇일까?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는 무엇일까? 그 답은 문화와 연령, 개인적 취향에 따라 다르다. 언젠가 박물학자이자 사육사인 제럴드 더럴이 과일먹이박쥐를 포획하기 위해 ' 잭프루트'라고 이름붙인 커다란 과일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냄하얀 과육에서는 '파헤친 무덤과 하수구 냄새가 섞인, 시체 안치소에서 나는 것 같은' 악취가 풍겼닥 한다. 너무도 지독한 이 말이 정말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 작가는 언젠가 가보고 싶은 감각의 행선지를 적은 긴 목록에 '잭프루트 철의 로드리게스' 를 올린다.

언젠가 가보고 싶은 나라. '죽기전에 가봐야 할 곳 50 장소' 같은 리스트만 보며 침흘리는 나와는 차원이 틀리다.  '언젠가 가보고 싶은 감각의 행선지' 목록이라니.

후각에 대한 정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얘기가 나오고, 조향사를 만나 인터뷰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면서 후각에 대한 버라이어티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후의 다른 감각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역사, 문학,과학, 인류학, 사회학, 종교학, 인문학, 심리학,언어학 의학 등등의 측면에서 본 '후각'은 그야말로 오감중에 최고가 아닐까. (라고 후각만 본 나는 생각해본다.)

 

Shrine -JohnWilliam Waterhouse

02 촉각







 

 

 

 

 

 

 

 

                          The Spinner- Thomas Wilmer Dewing

피부는 우리와 세계 사이에 있다. 피부는 우리를 가로막고 있지만 또한 우리에게 개인적인 형태를 부여해주고, 외부에서 침입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며, 필요에 따라 우리를 시원하게도 따뜻하게도 해준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피부가 스스로를 복구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한다는 점이다. 무게가 3-45킬로그램에 이르는 피부는 인체에서 가장 큰 기관이자 성적 매력을 부여하는 핵심기관이다. 피부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발톱, 가시, 발굽, 깃털, 각질, 머리카락등. 피부는 방수가 되고, 물에 씻을 수 있으며, 신축성이 있다.

이런 식으로 피부를 보아 본 적 있는가? 이 길고도 짧은 문장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나의 피부를 다시 본다. 음. 방수도 되는구나. 등등등 등등등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발톱끝에서 머리카락 끝까지 쭈뼛 한번 세워보고 나의 피부와 촉각을 만끽해본다.

촉각 부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접촉'에 대한 실험이다. 쓰다듬어준 조산아들은 그렇지 않은 아기들에 비해 체중 증가 속도가 50퍼센트 더 빠르다. 안마를 받은 아기들은 더 활발하고, 또렷하고, 반응을 잘하고, 주변 환경을 더 잘 알고, 소음을 더 잘 참을 수 있다.또한 적응이 빠르고 정서적으로도 훨씬 안정되어 있다. 몇장에 걸쳐서 여러가지 실험결과들이 나오는데, 마지막에는 '신체접촉을 주고받지 못한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다 병이 들거나 접촉 결핍증에 걸릴 것이다' 라는 다소 격한 결론이다. 그와 같은 접촉의 중요성은 물론 어린 아이일수록 더 영향이 크다. 그리고 털에 대해 나온 부분. ' 대머리들은 섹시하다. 탈모가 되는 것은 혈액 속의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높기 때문이고, 카스트라토나 환관 중에 대머리를 볼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다시 보며 머리에 쏙 넣고, 웃을 수 있는 그런 글들이 많다. 물론 몰랐던 사실들이 훨씬 많긴 하지만서도.

여기서도 역시 위에 얘기했던 사회학, 인문학, 인류학, 등등등 플러스, 음악, 미술까지 끌어와서 '우리에게는 '촉각' 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  아, 촉각에서는 '키스에 관한 고찰'이라는 재미있는 글도 있다.

03 미각



 

 

 

 

 

 

 

 

 

 

 

 

 

 

 

 

무리요 - 과일 먹는 소년들

미각에 대한 첫마디는 '미각은 사회적 감각'이다. 라는 것이다. 혼자 식사하는 것을 꺼리는 인간에게 음식은 대단히 사회적인 구성 요소다. 결혼식은 피로연으로 끝나고 친구들은 기념 만찬 자리에서 재회한다. 아이들의 생일을 알려주는 것은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다. 브리야 샤바랭이 말한 대로 ' 사랑, 우정, 투기, 권력, 끈질긴 요구, 후원, 야심, 음모 등 모든 사회적 교류가 식탁 주위에서 이루어진다'  미각에선 브리야 샤바랭의 글이 자주 인용된다. 이 사람의 '미각예찬'이 번역 되어 있는데, 꽤나 마음에 드는 책이다.

재미있었던 부분. '송로의 진실' 중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채소이지만, '신의 관능성'과 '세상에서 가장 퇴폐적인 향'을 가지고 있단는 비싼 송로버섯이다. 이 송로 버섯을 찾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 암퇘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암퇘지 입장에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작가를 따라  암퇘지의 후각을 쫓아가보자.

' 암퇘지 한 마리를 송로가 자라는 들판에 풀어 놓으면 암퇘지는 블러드하운드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미친듯이 땅을 파대기 시작한다. 암퇘지는 무엇 때문에 송로에 집착할까? 독일 뮌헨 공대와 뤼백 의대의 연구자들은 송로에 수컷 돼지의 호르몬인 안드로스테놀이 돼지 한 마리 속에 들어 있는 것보다 2배 가량 더 함유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퇘지의 페로몬은 인간의 남성 호르몬과 화학적으로 유사한데, 그래서 송로가 인간을 자극하는지도 모른다.... 송로 채집자와 암퇘지에게, 지하의 송로 농장 위를 걷는 것은 우습고도 슬픈 일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암퇘지는 여태까지 만나본 중에서 가장 섹시한 수퇘지의 냄새를 맡는다. 왠지 모르지만 수퇘지는 지하에 있는 듯하다. 암퇘지는 흥분해서 미친 듯이 땅을 파지만, 나온 것은 고작 이상하고 울퉁불퉁한 얼룩무늬 버섯일 뿐이다. 그런데 다시 바로 옆에서 더할 나위 없이 남성적인 또다른 수퇘지( 역시 지하에 묻혀 있는) 의 냄새를 맡고 미친 듯이 달려들어 땅을 판다. 암퇘지는 욕망과 좌절로 광포해질 것이다. 마침내 송로 농부는 버섯을 모아서 배낭에 넣고 암퇘지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뒤에는 잘생긴 수퇘지들의 진한 향내를 풍기며 욕정으로 떨고 있는 들판이 있다. 모든 수퇘지가 암퇘지를 원하며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

조금 길긴 했지만 ,이런 식도 있다. 저자가 독자를 '감각'의 세계로 초대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때론 돼지를 따라, 때론 중세의 식탁에서, 때론 우주의 무중력에서 말이다. 오감을 열어 놓고 사는 작가가 부럽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초대장을 받아들였고, 잠시나마 즐겁게 나의 감각들을 즐겼다. (주위에서 희안하게 보는 부작용이 있다.)

04. 청각

아랍어로 어리석음은 ' 귀 기울이지 못함'을 뜻한다고 한다.  소리는 삶에 대한 이해를 두텁게 하고, 우리는 소리에 기대 주변의 세계를 해석하며, 세계와 소통하고, 자신을 표현한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사람들은 듣지 그 무엇보다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픔을 표시하는데,이를 가장 호소력 있게 표현한 사람이 헬렌 켈러다.

'나는 눈이 안 보일 뿐 아니라 귀도 안 들린다. 귀가 안 들려서 생기는 문제는 눈이 안 보여서 생기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고 해도, 훨씬 깊고 복잡하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지독한 불행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필수적인 자극. 즉 언어를 이끌어내고 생각을 불러 일으켜 우리를 지적인 인간 집단 속에 있게 해주는 목소리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청각'에서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청각'을 상실한 문학가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무엇보다도 바닷가에서 고래의 노래를 듣는 것은 정말 꿈에 나올 정도로 짜릿했다.  이 책을 통틀어, 다이앤 애커맨이 한 그 모든 경험 중 딱 하나를 경험하게 해준다면 ' 바다에서 고래의 노래를 듣는 것' 을 해보고 싶다.

 

                                                                                           ophelia- Johnwilliam Waterhouse

05. 시각



 



 

 

 

 

 

 

The False Mirror- Rene Magritte

거울을 보라. 우리에게 2개의 시선을 마련해준 얼굴은 섬뜩한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눈은 포식자의 눈이다. 대부분의 포식자들은 두 눈이 머리의 정면에 똑바로 붙어 있어 양안시를 이용하여 사냥감을 발견하고 추적할 수 있다.

할얘기가 무궁무진하게 많은 챕터다. '시각'

포식자의 눈으로 시작한 시각에 대한 이야기는 눈을 속이는 동물, 곤충, 식물의 보호색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리고, 미인의 얼굴, 하늘, 번개와 천둥. 그리고 가을에 변하는 잎의 색깔. 빛, 색깔, 그리고 내가 이래서 이 책이 좋다.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들 까지도.

그리고  06. 공감각



공감각은 가장 짧고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가장 재미있는 챕터였다.  음에서 색깔을 보는 스크리아빈. 알파벳에서 색을 보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여기엔 공감각에 대해 정확하고 아릅답게 묘사한 나보코프의 글이 실려 있다. 공감각의 세계를 가장 잘 넘나드는 예술가들의 기벽에 대한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아쉽지만 끝이다. 우리 옆에서 항상 열리고 있는 작은 축제는 끝이지만, 나는 ' 감각의 박물학'이라는 초대장을 꼭 쥐고 축제에 참가했고, 즐겼고, 이제 또 조금악지의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대로 또 축제를 즐길 것이다.

작가의 후기에 인용되어 있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

' 나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가기 위해서 여행한다. 나는 여행 그 자체를 위해 여행한다. 가장 멋진 일은 움직이는 것이다 '

가장 멋진 일, 삶과의 가장 멋진 연애는 가능한한 다양하게 사는 것. 힘이 넘치는 순종의 말처럼 호기심을 간직하고 매일 햇빛이 비치는 산등성이를 전속력으로 올라가는 것.

나의 세상이 좀 더 생생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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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숨은아이 > 살짝 구경하실래요_에릭 칼의 그림책 두 권

에릭 칼Eric Carle의 그림책 두 권, 살짝 구경하실래요?


<퉁명스러운 무당벌레(원제 : The Grouchy Ladybug)>는 원래 1977년 작품이고, 이번 2005년 3월에 몬테소리 씨엠에서 한국어판이 나왔어요.

개념 탄탄 그림책이라 해서, 화사하고 다채로운 그림과 반복되는 이야기를 통해 크기 비례와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모양이에요.

이 책의 중심은 바로 퉁명스러운 무당벌레의 하루를 입체적인 구성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지요.



이렇게 면의 크기가 점점 커져요.
가장 작은 면의 그림과 글을 볼까요.



그 다음 면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퉁명스러운 무당벌레는 점점 큰 동물을 만나요.

새로운 동물을 만날 때마다 노란 해는 점점 높이 떠오르고, 정오부터는 다시 땅을 향해 가라앉지요. 오른쪽 귀퉁이에 시계 보이시지요?



책머리에는 무당벌레에 대한 재미있는 정보가...



무당벌레 만세! ^^



두 번째 책은 <수탉의 세상 구경(원제 : Rooster's Off to See the World)>. 1972년 작품이고, 2005년 4월에 몬테소리 씨엠에서 한국어판이 나왔어요.

이 책에는 수탉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 개구리 세 마리... 등등이 반복해서 등장해요. 숫자 개념을 깨우치도록 하는 책이지요.

이 책의 그림도 화사하고 다채로워요. 서로 다른 방향과 기법으로 붓질한 그림들을 오려 붙인 듯, 콜라주 느낌이 나요. 가장 화려한 수탉 그림과 붓질이 독특한 고양이 그림을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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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길 떠나는 사람들
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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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요일 밤에 하는 텔레비전 모 시사 프로를 보다가 불끈불끈 치솟는 울화를 참기가 힘들었다. 고급 민영 아파트와 바로 이웃한 임대아파트 주민 사이의 반목과 갈등을 다루었는데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자기 아파트 앞을 지나지 못하도록 민영 아파트 주민들이 돈을 모아 담을 막아버린 것이다. 갑자기 가장 가까운 단거리 통학 코스를 잃어버린 임대 아파트 아이들은 바쁜 통학 시간 어찌어찌 뚫린 개구멍인가를 통하여 뛰어넘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그 아파트 앞을 통과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막 화가 치솟았다.

가난도 보면 상대적인 가난이 있고 절대적인 가난이 있다. 인간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조금 엉뚱한 예지만 마이 도러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우리 부부는 키작은 우리 아이가 1,2,3,4번 말고 제발 5번 정도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2번이라고 자랑을 했는데 알고봤더니 1번은 왜소증 아이였다. 그 사실을 알고나서 우리 부부는 아이의 키가 작아서 큰일이라느니 하는 말은 되도록이면 입에 올리지 않는다. 

가난도 그런 것이 아닐까? 가끔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끔찍한 사고로 드러나는 어떤 참혹한 가난 앞에서 평소 쓸 돈이 없다고  징징대던 우리들은 할 말을 잃는다. 오늘 읽은 공선옥의 연작소설  <<유랑가족>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이 작가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들 혹은 밑바닥 인생에 대한 일관된 관심과 천착으로, 여배우를 능가하는 세련된 화장과 차림으로 문화의 세례를 흠뻑 받으며 고독이니 허무니 사랑이니 입만 열면 나불대는 몇몇 여성작가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

'겨울의 정취'   '가리봉 연가'  '그들의 웃음소리'  '남쪽 바다 푸른 나라'  '먼 바다'의 다섯 편의 연작소설들은 모자이크식 구성으로 등장인물들을 스치게 하고 엇갈리게 하고 또 결정적으로 만나게 한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한'이 그 모자이크 속의 중심인물로 그가 어느 사보에 실을 사진을 찍으러 간 시골에서 만난 아이들과 주민들이 주인공이다. 그 시골 마을로 시집 온 조선족 여인의 꾐에 빠져 서울로 도망간 여인, 아내를 찾아 상경, 공사판을 떠도는 남자, 그 조선족 여인의 기구한 사연, 쫓고 쫓기는 그들이 떠도는 가리봉동 노래방과 여인숙과 싸구려 식당 풍경......'가리베가스'라는 웃기는 이름의 초라한 환락가.

특별한 개성을 부여받지 못한 인물들의 인생은 하나같이 엉망으로 꼬여 있고 남자건 여자건 늙었건 젊었건 그들이 툭하면 내뱉는 말은 낮이고 밤이고 "에이, 술이나 한잔하자!"이다. 조금 더 예쁘고 조금 더 착하고 조금 더 성실하다고 해서 달라질 인생이 아니다. 그것만큼 사람을 절망하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용을 써봤자 뛰어봤자 벼룩인 인생이라니! 이 세상에서 가족이나 친구가 가장 소중하다는 이데올로기도 이들 앞에서는 무색할 수밖에 없다. 당장 내가 죽겠는걸. 어떻게 입에 풀칠을 하느냐의 문제로......

왜 인생은 밑바닥을 힘겹게 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우려했던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런데 어쩌면 소설뿐만 아니라 사실이 그렇지 않나?

"어디서들 오셨습니까?"

"천지사방 헤매는 자들이올시다."

"지금은 어디로 가시는데요?"

"천지사방 헤매어봐도 우리가 살 땅 한 뼘을 찾지 못했소이다. 카아, 허면 바다는 우리를 받아줄까 하여 지금 그 바다가 있는 쪽으로 가고 있던 참인데 차가 멈춰버리네여,  껄껄."(250쪽)

<유랑가족>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도 이렇게  꽤나 서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하나같이 거칠고 신산스럽기 짝이 없는 주인공들의 삶의 풍경보다  '한 '의 예전 직장(잡지사)  동료로서 지금은 신문사 기자로 대학 강단에도 서고 한다는 '정'이라는 인간이 보여주는 꼬락서니가 제일 인상깊었다. 할머니마저 죽어 고아가 돼버린 소녀 영주의 친척을 찾아주기 위해 나선 길,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찾아갔더니 우국지사연하면서 온갖 똥폼 다 잡고 술을 마시는데......한의 눈에 들어온  고급가죽소파랑, 골프채 가방이랑, 조기유학 보낸 자식 사진......

모두가 그런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못 지나다니게 담을 막아버린 민영아파트 주민들 중에도 분명 그런 놈과, 또  백화점 문화센터에 나가 수필 강좌를 듣는 것이 자부심이라 '쓰레기 소각장' 문제로 한자리에 모인 이웃 주민들을 눈아래로 내려보며 떠들지만 사실 쓰레기도 분리하지 않고 몰래 내놓는  샘밭아파트 605호 여인 같은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소개한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 나는 가난한 작가일 뿐. 가난하여 이 땅 어디에도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랑민처럼 나 또한 가난한 유랑작가일 뿐.(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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