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시험 치른 아이들은 책을 읽고 싶을까?
 : 친구들아, 이제 ‘진짜’ 책을 쥐어야지



 〈1〉 시험을 마친 친구들한테


 아침부터 날이 따뜻합니다. 지금은 가을이 아닙니다. 겨울도 아닙니다. 미친날씨 탓에 뒤죽박죽이 된 철없는 아침입니다. 그러면 이 아침은 왜 철없는 아침이 되었을까요. 그냥 날씨가 미쳤기 때문일까요? 흔히 말하는 지구온난화 때문일까요?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면 지구온난화는 왜 일어날까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린 친구들이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을 치르는 날은 모질게 추웠습니다. 열 해쯤 앞서는 더 추웠고, 스무 해쯤 앞서는 훨씬 추웠고, 서른 해나 마흔 해쯤 앞서는 대단히 추웠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올 11월은 안 춥습니다. 안 추울 뿐 아니라 낮에는 덥기까지 해서 모기와 파리가 잠들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시멘트로 지은 학교 건물에 아침부터 늦은밤까지 갇혀 지내면서 이런 미친날씨를 느껴 보았나요? 요즈음 햇볕이 어떠한지, 요즈음 하늘은 파란빛 없이 뿌옇기만 한 빛깔인지, 도시고 시골이고 백 미터 앞도 또렷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먼지띠가 드리웠는지, 겨울이 코앞인데 안 추운지, 여름이 한창인데 비만 퍼붓는지를 살갗으로 느껴 보았나요? 산성비와 산성이 아닌 비가 어떻게 다른지 맞아 본 적이 있나요?

 지금은 열두 시. 친구들은 한창 연필이나 볼펜을 놀리며 문제풀이를 하고 있겠군요. 수학능력시험을 치르지 않는 친구들도 있겠지요. 모든 친구들이 대학교에 갈 수 있지 않은 한편, 꼭 대학교에 가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대학교에 가서 학문을 깊이 갈고닦을 수 있지만, 학문을 갈고닦는 길은 반드시 대학교만이 아닙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앞으로 자기가 다니고 싶은 회사에서 쓰일 만한 실무를 익힐 수 있으나, 대학교를 안 가고 곧바로 ‘고졸’ 또는 ‘중졸’ 또는 ‘학력없음’인 채로 세상을 부대끼며 일손을 하나하나 익힐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친구들이 수학능력시험을 다 치르고 난 뒤(또는 시험을 안 치르고 보낸 뒤), 어떻게 하루를 마감할까 궁금합니다. 시험을 치르고 난 이튿날부터는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낼까 궁금합니다. 여태껏 하고 싶었어도 못한 꿈을 펼치려는지, 여태껏 보고 싶어도 못 본 영화를 보려는지, 여태껏 사귀고 싶었어도 못 만나고 지낸 이성친구(또는 동성친구)를 만나려는지, 여태껏 다니고 싶었어도 먼나들이(여행)를 떠나지 못한 아쉬움을 풀고자 신나게 길을 나서려는지.

 벌써부터 술맛을 들인 친구도 있을 테고, 술하고는 멀리 떨어진 채 지내는 친구도 있겠지요. 어떠하든 좋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저, 술 한 잔 사 주셔요’ 하고 말씀드리며 알딸딸한 채로, 마음에만 담고 있던 온갖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일 하루쯤, 또는 이틀쯤 학교를 빠지고 고향땅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여행을 떠나 보면,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고 바람을 쐬러 나가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개근상을 반드시 타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면 헬멧은 꼭 쓰셔요. 우리들 푸른 친구들 소중한 목숨은 하나이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우리 나라를 한 바퀴 돈 다음 학교로 돌아가도 괜찮겠지요. 자기 몸뚱이로만, 자기 두 다리로만 페달질을 하면서 홀로 노래도 부르고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옴팡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이 나라 구석구석을 밟으며 우리네 이웃사람들 삶터와 발자취를 마음껏 느껴 보아도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해는 1993년입니다. 그때 수학능력시험이 처음 치러졌고, 저는 11월 6일과 한 달쯤 뒤에 다시 한 번 해서, 두 번 치렀습니다. 덕분에 마음을 놓고 느긋하게 쉴 수 없었고, 홀가분하게 나들이를 떠날 수도 없었어요. 다만, 제 살가운 너나들이네 집에 놀러갔더니, 동무 아버님께서 손수 고기를 구우시면서, “너희들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술을 마셔도 돼!” 하면서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뿅 따서 내리 일곱 잔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한 잔을 마시면, 당신이 구운 고기를 젓가락으로 손수 집어서 입에 넣어 주시고. 이렇게 거푸 일곱 차례.

 이튿날 학교에 갔더니 열두 시 즈음 끝내더군요. 뭐, 이 나라 고등학교는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 치르기’가 끝나면, 우리 친구들한테 아무것도 가르쳐 줄 수 없으니까 그렇겠지요. 친구들 다니는 학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친구들이 초등학교 여섯 해, 중학교 세 해, 그리고 고등학교 세 해, 모두 열두 해 동안 배운 교과서란 무엇입니까? 한낱 대학입학시험 치르는 연장일 뿐 아닌가요. 대입시험을 치르면 찢어버려도 되는 종이뭉치, 대입시험을 치르면 헌책방에 내다 팔아도 되는 종이덩이, 대입시험을 치르면 신발로 마구마구 밟거나 종이비행기 접어서 던져도 되는 종이꾸러미…….

 아무튼, 제 고3 때를 더듬어 보면, 두 번째 수능이 끝난 뒤부터는 아주 자유로워졌고, 학교도 일찍 끝냈기에, 저는 곧바로 제 고향인 인천에 있는 모든 책방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습니다. 대한서림, 동인서관, 시민서점, 동아서림, 한겨레문고, ……, 그리고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들, 부평에 있던 헌책방 광장서점 들 …….

 책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여태까지는 ‘진짜 책이라 할 만한 책’은 한 권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는 책이 아닌데, 교과서 아니면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을 담은 책, 우리 이야기를 엮어낸 책, 우리 생각과 뜻과 마음을 이끌어 주거나 북돋워 주는 책, 진짜 책을 만나고 싶어서 새책방이고 헌책방이고 낮 열두 시부터 저녁 여덟아홉 시까지 박혀 지냈습니다. 나중에는 서울에 있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와 종로서적에도 먼 나들이를 가 보았습니다. 그런 데는 얼마나 책이 많은가 싶어서.


 〈2〉 교과서는 가짜 책


 우리 푸른 친구들한테 여덟 가지 책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여덟 가지 책은 제 나름대로 참 괜찮다고 느낀 책들인데, 친구들한테도 괜찮다고 느껴질는지, 그저 그렇네 하고 다가갈는지, 지루하거나 따분하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책, 친구들 마음을 움직이거나 울리는 책은, 어찌 되었든 친구들 두 손으로 고르거나 찾아내야 합니다. 저는 제 두 손으로 이 여덟 가지 책을 찾아냈고, 읽어냈고, 가슴으로 녹여냈습니다.

 아무쪼록,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채울 꺼리는 친구들 스스로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그 꺼리는 책이 될 수 있고, 자전거가 될 수 있으며, 살가운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기가, 붓이, 인터넷이, 술이, 오토바이가, 또는 호미나 낫이 될 수 있겠지요. 종이접기가, 장구와 북이, 피리와 기타가 될 수 있고요.


 (ㄱ) 두 친구 이야기
 : 안케 드브리스 씀, 박정화 옮김 / 양철북, 2005.11.18, 8500원



.. “엄마가?” “놀랄 줄 알았다. 그 여자는 대낮에 별이 보일 정도로 호되게 자식을 팼다. 그 애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가끔 여기까지 들렸지.” “그…… 그런데…….” 미하엘은 말을 더듬었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어요?”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하는 법이 아니란다.”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저 양반 때문에 못했다! 그 불쌍한 꼬마를 도와야 한다고 말해도 우리 일이 아니라고 영감이 한사코 말리잖아!” 할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실제로 우리 일이 아니잖아. 이 세상은 골칫거리로 가득하다고. 그걸 다 당신이 해결할 수는 없잖아. 아무도 당신더러 참견하라고 부탁하지도 않았고.” 미하엘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유디트 등의 멍과 부은 자리만 생각났다. 엄마가 그랬다니! 왜 유디트는 나한테 숨겼을까? 거짓말까지 하면서. 난 유디트의 남자친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말인가? ..  〈257쪽〉


 (ㄴ)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더글러스 러미스 씀, 김종철ㆍ이반 옮김 / 녹색평론사, 2002.12.10, 7000원



.. 매년 몇 십만의 사람들이 살인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단히 큰 살인학교가 있어서, 미국에서 몇 백만 명의―주로 남자들― 사람들이 그 살인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그 살인학교라는 것은 물론 군대입니다. 나도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알지만, 군대의 훈련 중에서 이런저런 기술도 가르치지만, 그 이외 군대의 훈련에는 큰 목표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사람을 죽이지 못합니다. 저항이 있어서, 그리 간단히는 되지 않습니다. 적이라고 해도 실제로 인간의 몸을 겨냥해서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는 그 저항을 없애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죽이지 못하는 인간을 죽이는 인간으로 훈련시킵니다 ..  〈42쪽〉


 (ㄷ)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 아룬다티 로이 씀, 정병선 옮김 / 시울, 2005.9.29, 8500원



.. 일단 시민사회가 자유를 넘겨주고 나면 투쟁 없이는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유를 회복하는 것보다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우리의 자유가 비록 변변치 못하다고 할지라도 정부가 결코 하사한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자유를 얻어낸 것은 우리의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유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때때로 자유를 시험해 보지 않는다면 자유는 위축되고 맙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유를 수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를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초라하고 빈약한 것만 남게 될 것입니다 ..  〈24∼25쪽〉


 (ㄹ) 백성백작―농부는 백 가지 일을 하고 백 가지 작물을 기른다
 : 후루노 다카오 씀, 홍순명 옮김 / 그물코, 2006.7.22, 8000원



.. 국산 밀이라고 상표가 붙은 밀가루가 이따금 팔리지만, 내가 알기로는 화학비료, 제초제,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밀가루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퇴비만으로 키운 밀가루에는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부추를 썰어 넣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쳐서 굽기만 해도 정말 맛이 있다. 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 원래 밀에는 밀의 맛이 있고, 쌀에는 쌀의 맛이 있고, 무에는 무의 맛이 있다. 그 맛을 내는 농법과 요리법, 즉 자연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수입 농산물이 아무리 있어도, 사람은 진정한 풍요로움을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은혜를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유기농업의 가장 좋은 점은,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78∼79쪽, 165쪽〉


 (ㅁ) 블루백
 : 팀 윈튼 씀, 이동욱 옮김 / 눌와, 2000.2.25, 7000원



.. 아벨은 어머니의 편지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는, 자기가 그곳에서 어머니를 돕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밤이면 뜬눈으로 어머니와 롱보트 만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내놓든 어머니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벨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그루 나무처럼 완강하고 또 굳건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얼마나 어머니를 지치게 하고 어머니의 시간을 허비하며 어머니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을까. 사람들은 그 땅이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그들은 롱보트 만이 아벨의 어머니에게는 한 생애이자 친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땅이 어머니에게 남편 같은 존재였다는 것도 역시 몰랐을 것이다. 날마다 그 박하나무 아래서 어머니는 아벨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서 있곤 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해가 지고 달이 가도록 변함없이 그럴 수 있는지 아벨은 당혹해 하곤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아벨은 그 모든 것들―바다, 관목숲, 집,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외로움으로부터 지켜준 것은, 그리하여 어머니를 굳건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그 사랑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양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벨은 그 어머니의 사랑 덕택에, 줄곧 숨죽이는 생활을 해야 했던 도회지에서의 무미건조한 학교 생활을 견뎌내고 마침내 얼굴에 바다의 푸르름을 적시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100∼101쪽〉


 (ㅂ) 희망은 있다
 : 페트라 켈리 씀, 이수영 옮김 / 달팽이, 2004.11.15, 8000원



.. 유럽평화운동을 하는 일원으로서 서유럽에 사는 우리는 미국의 미사일 배치를 막기 위해 시민불복종과 적극적인 비폭력운동을 통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합법성과 정당성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가 저지른 도덕적으로 잘못된 결정에 대한 마지막 대응수단으로 우리는 불법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행동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지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법적 권리와 도덕적 권리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불복종할 시민의 의무(!)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토 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비폭력 시민저항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이러한 무기들이 배치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훨씬 높아지고, 또 미래 세대의 생존기회가 줄어들 것이 뻔합니다. 시민불복종운동이 법을 어기는 행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소련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뿐 아니라, “미국이 이곳에 머물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 점차 급박해지는 이 질문에도 비폭력행동으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국군대를 반대합니다. 소련은 아프카니스탄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며, 미국은 그레나다에서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  〈69쪽〉


 (ㅅ) 깜둥바가지 아줌마
 : 권정생 씀 / 우리교육, 1998.11.20, 6000원


.. “나도 뚝배기 마음을 잘 알고 있어. 그리고 사기 접시랑 오목탕끼들이 우리를 무척 업신여기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단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왜 그 애들을 미워하지 않는 거예요? 꾸짖지 않는 거예요?” 뚝배기는 너무 서러워 목이 꺽꺽 막히었습니다. 깜둥바가지는 여전히 상냥스레 타일렀습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나쁜 짓 하는 것을 꾸짖는 게 무슨 잘못이에요?” “그게 아니란다. 사기 접시랑 오목탕끼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만약 내가 무섭게 그 애들을 꾸짖고 욕하면 되레 우리를 더 미워할 게 아니니? 전보다 더 나쁜 짓을 하면서 대들는지도 모를 거야. 그래, 이 좁은 부엌 안에서 매일 싸움만 하고 서로 미워한다면 얼마나 불안스럽겠니?” 깜둥바가지는 잠시 말을 그쳤습니다. 된장 뚝배기는 가만히 귀담아듣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어느 한쪽이 참아야 하지 않겠니? 쬐그만 할 때는 누구라도 다 장난꾸러기인 거야. 그걸 탓하지 말고 사랑해 주면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게 된단다. 그러니까 그냥 꾹 참고 지내면 앞으로는 사기 접시도, 오목탕끼도, 수저들도 모두 뉘우치고 우리랑 친할 거야.” 된장 뚝배기는 어느새 눈물을 말끔 씻고 있었습니다 ..  〈40∼41쪽〉


 (ㅇ) 우리 말 살려쓰기 (셋)
 : 이오덕 씀 / 아리랑나라, 2005.8.25, 15000원



.. 초등학교란 이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보통학교, 소학교, 어린이학교, 그밖에도 몇 가지 의견이 나왔던 모양인데, 왜 온 나라 사람들의 교육을 하게 되는 학교 이름을 붙이는데 일반 백성들의 생각을 물어 보지 않고, 행정관청에서 마음대로 붙이나? 몇 천 명인가를 상대로 알아보기는 한 모양인데, 그래서는 안 된다. 내 눈에는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이름을 바라나 하는 것이 훤하다. 그러니 이런 여론조사는 조사 대상을 어떤 사람으로 하나 하는 데 따라서 얼마든지 바라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어린이학교’가 가장 좋다. 그러나 어린이학교로 되리라고는 바랄 수가 없었기에 내 생각을 한 번도 내놓지 않았다. 어린이학교가 되려면 아이들 생각을 들어 봐야 하는데, 일반 교사보다 교감, 교장의 생각을 더 잘 듣는 지금의 행정당국이 아이들 생각에 귀를 기울여 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그 정도로 될 줄 알았지. 우리가 하는 정도가 그저 이런 정도밖에 안 되니까. 초등학교가 되더라도 좋으니 부디 교육이나 좀 달라졌으면, 하고 바랄밖에 없다. 국민학교, 아, 그 몸소리나는 국민, 국민, 국민총동원, 총후국민, 비국민, 황국민, 국민정신작흥주간, 대일본국민체조, 국민독본, 국민복, …… 이제 그 왜정 때의 그 지긋지긋한 국민이란 말에서 벗어나게 되려나 ..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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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 저녁, 동인천역 둘레로 나들이를 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팔뚝에 걸쳐 놓은 신문을 하나 집어서 “석간이에요. 읽어 보셔요.” 하고 건넵니다. “네, 고맙습니다.” 하며 받습니다. 몇 해 앞서부터 수없이 찍혀 나오고 있는 ‘공짜 신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철역 둘레에 쌓여 있는 이런 공짜 신문을 제 손으로 집어들어 볼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늦은저녁, 쌀쌀한 날씨에도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맞춘옷을 입고 덜덜 떨면서 한 장씩 나누어 주실 때에는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며 받아듭니다.

 집에 와서 공짜 신문을 펼칩니다. 광고가 참 빽빽합니다. 이 신문들은 공짜로 나누어 주는 만큼 광고를 받아내어 종이값을 대고 직원들 일삯을 대겠지요. 그러니까, 곰곰이 따지면 공짜는 아닙니다. 우리 눈을 아프게 하는 어수선한 광고까지 다 넘겨서 살피는 대가로 받는 신문입니다. 버스나 지하철도 그렇잖아요. 눈둘 데가 없을 만큼 광고판이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이 우리들 ‘편의’를 헤아리는 대중교통이라 한다면, 찻삯을 받지 말고 광고로 떡칠을 하든지, 찻삯을 받는 만큼 광고판을 집어치우든지 해야 올바릅니다.

 공짜 신문을 술술 넘기니 ‘친환경상품전시회’ 광고가 있습니다. 얼핏 보았을 때에는 기사 같았는데 코딱지 만한 글씨로 ‘전면광고’ 꼬리말이 붙었네요. 지구자원을 써서 만드는 물건인데 ‘환경을 사랑하는(친환경)’ 물건이 될 수 있을는지. 지구 삶터를 가장 무너뜨리는 나라가 미국이고, 끊임없는 석유 싸움과 무기 싸움으로 온누리를 괴롭히는 미국인 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며, 미국 부시 대통령을 나무라고 주한미군 문제를 외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환경운동 하는 분들조차 “STOP, CO₂!”를 읊고 ‘친환경상품전시회’ 구호로도 쓰입니다.

 ‘경제’ 지면도 아닌 ‘Money’ 지면에 “내일의 운세를 ENGLISH로”라는 광고가 보입니다. 바로 밑 기사는, “무비데이에 파브시사회서 데이트할까”. 삼성전자에서 새로 내놓은 텔레비전 광고 기사네요. 새 텔레비전 이름은 ‘파브 깐느 풀HD LCD TV’입니다.

 지난 10월부터 〈한겨레〉는 ‘한 부 500원짜리 논술신문’을 펴냅니다. 지난 2005년 겨울, 〈한겨레21〉 587호 별책부록으로 ‘2006 논술 예상문제 6선!’을 끼워팔았습니다. 2002년이었던가요, 그때는 ‘초등학생 영어일기 첨삭지도’를 한 주에 한 차례씩 기사로 실었습니다.

 오늘은 대학교를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입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또 인터넷이 ‘시험 잘 치르라’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 저녁이 되면 시험문제 풀이로 떠들썩할 테지요. 하지만, 대학교에 가는 아이들보다 더 많은 ‘대학교 안 가고’ 사회살이를 할 아이들한테 마음쓰는 신문이나 방송은 얼마나 될는지. 서민을 말하고 진보를 말하고 개혁을 외치며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는 어이하여 ‘고졸’ 아이들을, ‘중졸’ 아이들을 못 껴안고 있는지. (4340.11.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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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전태일 / 돌베개 / 1988년 10월
평점 :
절판



(ㄱ)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 돌베개,1998.11.1.
(ㄴ) 어머니의 길 / 돌베개,1990.11.30.



― 이 책 하나 27 : 쉰아홉 살이 된 전태일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와 《어머니의 길》


 

 〈1〉 11월 13일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정기구독하고 있습니다. 2003년 10월에 첫 호를 내고 어느덧 48호까지 나왔습니다. 상업만화와 학습만화만이 판치는 우리 나라에서, 아이들과 부모들과 교사들이 자기 마음밭을 다스리는 줄거리를 담은 만화잡지이면서도 정기독자를 4천 사람 남짓 모아서 꾸려가고 있으니 놀라우면서 반가운데, 이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꾸준하게 실려 온 만화로 〈태일이〉(최호철 그림)가 있습니다. 서울 청계천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해 오다가 1970년 11월 13일에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서 숨을 거둔 전태일 님 이야기를 다룬 만화입니다. 이 만화 〈태일이〉는 얼마 앞서 낱권책으로 묶여 1권과 2권이 선보였습니다(돌베개 펴냄, 한 권에 1만 원씩). 《전태일 평전》이 있고,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 《청년 노동자 전태일》도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어, 요즘 아이들뿐 아니라 젊은이들도 쉬 생각해 보기 어려운 1960∼70년대 모습을 그림으로 함께 느끼고 돌아볼 수 있는 만화책이 나왔으니 참으로 뜻깊으며 반갑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런 만화를 이어싣는 잡지 《고래가 그랬어》 살림은 그다지 좋지 못해서, 주주 모으기를 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http://gyuhang.net)

 오늘은 11월 13일, 바로 전태일 님이 다락방 옷공장이 빼곡히 늘어선 청계천 골목길에서 몸뚱이에 불을 붙이고 숨을 거두면서 ‘노동자가 누려야 할 세 가지 큰 권리’를 외치며 한 줌 재가 된 날입니다. 이때는 전태일 님 나이 스물둘. 그야말로 꽃나이입니다. 꽃나이이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저물었습니다. 아니, 꽃송이가 뚝 끊어져 버렸습니다.


.. 이미 의사의 진단은 회생할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입원실에서도 별다른 치료를 해 보지 못하고 거의 방치해 두다시피 했다. 저녁이 되면서 태일이는 기력이 탈진해 가는지 잠잠하게 누워 있었다.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듯하더니 눈을 뜨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배가 고프다…….” 이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소리인가! 죽어가는 자식의 마지막 한 마디가 ‘배가 고프다’는 말이라니. 에미로서 생전에 잘 먹이고 잘 입히지는 못했을망정 죽는 순간까지도 배고픔을 달래 주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  《이소선-어머니의 길》 35쪽


 뚝 끊어져 버리는 꽃송이는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제 꽃잎을 떨구지 않았습니다. 꽃송이가 통째로 끊어져 버렸지만, 고픈 제 꽃잎에 양반을 빨아들이기보다 다른 꽃잎들한테 양분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땅에 뚝 떨어지면서도 책갈피 사이에 남는 꽃잎이 아닌, 그 몸뚱이 그대로 썩어가며 땅으로 돌아가 다른 꽃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거름으로 바뀌었습니다.


 〈2〉 15 : 8


 쉰아홉 해. 쉰아홉 살. 1948년에 태어난 전태일 님이 살아 있다면 쉰아홉입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 여느 노동자로 일했다면 머잖아 정년퇴임으로 일터를 물러나야 하는 나이입니다. 전태일 님이 숨을 거둔 뒤, 살아남은 이소선 어머님은 온갖 회유와 협박을 물리쳤습니다. 돈으로 아들 주검을 사려는 공권력 앞에서 떳떳했습니다. 이리하여 죽은 님과 남은 님한테 떨어지는 것은 ‘돈’이 아닌 ‘싸움’.

 이소선 어머님을 살살 달래며 돈으로 꾀려던 이들은, “그 돈을 다 합치면 종로에 있는 노동청 산재 사무소 옆에 있는 빌딩 큰 것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빌딩을 사서 세를 주고, 한 칸만 가지고 식당을 해서 곰탕이며 도가니탕을 팔면서 사람을 고용하면, 나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자식 대에까지 편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식당에 노동청 직원들이 매일같이 단골로 다니면 장사도 잘 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어머니의 길, 50쪽)”는 이야기처럼, 이 나라 모든 노동자한테 고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삶터보다는, 한두 사람만 떵떵거리며 배불리 먹고살 수 있는 평등하지 못한 삶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떠할까요. 어두운 세상에 한 떨기 꽃잎일망정 거름으로 제 몸을 바친 한 사람 뜻이 이 땅에 스며든 지 서른하고도 일곱 해째 되는 지금 이 세상은. 지금 이 세상은 얼마나 ‘모든 일꾼이 고르게 권리를 누리며 어깨동무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아름다운 세상일까요. 돈이 적다고 권리를 앗기지 않으며, 힘이 없다고 권리가 밟히지 않으며, 이름이 없다고 권리가 내동댕이쳐지지 않는, 누구나 즐겁게 일하고 놀고 먹고 자고 껴안고 말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논밭이나 텃밭을 가꾸는 한편, 맑은 바람과 따순 햇볕을 쬐면서 지낼 수 있는 세상인가요.


.. 끝날이 인생에 종점이겠지. 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아이롱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걸(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 사나이 큰 포부를 가지고 인내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지만 정히 못 견디겠다 ..  (1967년 3월 18일)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09쪽


 하루 열다섯 시간을 괴롭게 일하는 노동자가 이 땅에서 사라졌을까요. 참말 사라졌을까요. 관공서와 학교와 큰 공장부터 해서 ‘주 5일노동’을 펼칩니다만, 작은 공장과 작은 일터 노동자들은 얼마나 ‘주 5일노동’ 혜택을 받고 있을까요. 한 주에 닷새 일하면서도 누구나 고르며 알뜰한 권리를 누리며 일한 대가와 대접을 받고 있는지요.


 〈3〉 살아가는 이 몫


 아침에 눈을 뜨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퍽 따뜻했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따뜻했습니다. 한낮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면 긴소매 입고 거리를 돌아다닐 때에 등에 땀이 송송 맺힙니다. 11월을 넘겼는데. 12월이 코앞인데. 올겨울에는 눈송이 구경 한 번 못하고 지나갈지 모르겠습니다.

 미친날씨(기상이변)라고 할 수 있지만, 날씨가 미쳤다면 왜 미쳤을까요. 우리들은 가만히 있는데 날씨만 미칠까요.

 나날이 늘어나는 자동차, 나날이 넓어지는 찻길, 나날이 새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물건들, 새로 쏟아지는 물건 못지않게 넘쳐나는 쓰레기. ‘쓰레기를 줄이자’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보이지만, ‘무엇이 쓰레기이고, 쓰레기 줄이는 삶이란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며 몸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보기 어렵습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번화거리를 빼고는 걷는 사람 구경하기 힘듭니다. 대중교통이든 자가용이든 기름 먹는 탈거리로 움직이는 우리들입니다. 여름에는 추운 일터, 겨울에는 더운 일터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일터, 여름에는 춥고 겨울에는 더운 일터에서 일하는 분들도 ‘노동자’입니다. 이름은 똑같이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정규직’이고 어떤 이는 ‘비정규직’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주노동자’입니다.

 노동자 권리, 그러니까 일하는 사람이 자기가 일한 만큼은 알맞게 대접을 받아서 배곯지 않을 뿐 아니라 골고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낡고 허름한 옷을 입어도 똑같은 사람으로 지낼 권리, 가방끈이 짧아도 새 직원 뽑는 자리에서 푸대접을 안 받을 권리, 부자 동네 아닌 서민 동네에 살아도 막개발과 재개발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삶터를 고이 지키며 살아갈 권리, 남자이건 여자이건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똑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권리, 어른이라고 젊은이라고 늙은이라고 어린이라고 어느 한편이 따돌림받거나 업신받지 않을 권리, 무기를 적게 가지거나 안 가지고 있어도 무기 많이 가진 나라한테 시달리지 않을 권리 …… 들을 우리들은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요. 아니, 우리들은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하지만 마땅히 못 누리고 있는 권리를 되찾으며 함께 누리고자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고 있나요. 마음 기울이기를 넘어서 얼마나 땀을 흘리며 두 손 맞잡으며 움직이고 있을까요.


.. 동지는 모두 5권의 노트에 일기를 남겼다. 그런데 분식 직후, 조선일보사에서 기사 작성에 참고한다며 가져갔는데, 일기의 중요한 부분들이 예리한 면도칼에 의해 잘려나가 없어져버린 채 되돌아왔다. 이후 동지의 가족은 1년 여에 걸쳐 없어진 일기를 되찾으려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게다가 1978년 어느 날에는 동지의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일기장 3권을 집을 뒤져 도둑질해 간 일도 일어났다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머리말


 2007년 우리 세상을 헤아리면서 1970년 우리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자,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를 다시 펼쳐 봅니다. 옆에 나란히 꽂아 놓고 있던 《어머니의 길》도 다시 펼쳐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ㅇ씨가 낸 《사회부 기자》(1977)라는 책에 실린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 나는 우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일기장을 어디서 찾아낼 수 없을까? 그것만 찾아낸다면 통쾌한 스쿠프가 될 텐데…. 뭔가 있긴 있을 텐데….” 나는 추리, 상상 속에서 혼자 특종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상상이었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그에게 일기 같은 게 있을 것인가 말이다. “여기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취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주위 상황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경만 할 수는 없는 시간이었다. 제일 먼저 나는 부의금 방명록을 먼저 체크해 보기로 했다. 누가누가 와서 얼마씩이나 내고 갔는가부터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시체실 한쪽 테이블에 청년이 두 명 앉아 방명록을 기록하고 있었다. 명단을 쭉 훑어봤으나 이렇다 할 지명인사는 없었다. 명단을 모두 막 훑어보고 난 순간, 그 방명록이 낡은 대학노우트였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나는 섬뜩해졌다. 청색 비닐 커버의 대학노우트. 직감적으로 느낌이 이상했다. 아니나다를까. 대학노우트를 한 장 펼쳐보니 무언가 잔뜩 적혀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틀림없다.”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뭐요?” 나는 부의금 접수를 맡은 20대 청년에게 귀엣말로 슬쩍 물었다. 주위에는 동료 기자들이 쉴사이없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일이 일기예요.” “어?” 나는 무조건 그 노우트를 움켜쥐었다. “잠깐 좀, 봅시다.” “누구신데요?” “나가 보면 압니다.” 부의금이 적힌 대학노우트를 코우트 호주머니에 움켜넣고 내가 먼저 앞장을 서 시체실을 나왔다. 그 청년은 죽은 태일 군의 사촌형이라고 했다. “태일 군의 집으로 갑시다!” 짚차는 급히 병원을 빠져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청년은 얼떨결에 차에 올라탔으나 자신이 탄 차가 신문사 짚차란 사실을 미처 몰랐던 모양이었다 ..  《사회부기자》 41∼43쪽


 조선일보 사회부기자 ㅇ씨는 전태일 님이 살던 집까지 찾아가서 남은 일기장까지 손에 얻습니다. 뒷날 일기장이 전태일 님 남은 식구한테 돌아왔지만 잘려진 곳이 있는 채 돌아왔다고 합니다. 누가 어떤 일을 했을까요? 사라진 글쪽에는 무슨 이야기가 실려 있었을까요?


.. 그러나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 여 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 저 착하디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요.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발전도상국에 있는 국가들의 공통된 형태이겠지만 이 동심들이 자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37쪽


 일기장은 칼질이 되기도 하고 도둑맞기까지 했습니다. 아니, 일기장에 앞서 전태일 님은 벌써 흙으로 돌아가고 없습니다. 일기장이 칼질이 되고 도둑을 맞았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떠난 이 넋과 뜻을 잊지 않습니다. 더욱 깊이 새깁니다. 땅에 뚝 떨어지고 만 꽃송이인 전태일 님은 세상에 없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떠난 이가 못 다한 일을 이어가고 모자라다고 해도 꿋꿋하게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헌법이 있고, 노동법이 있고, 평등권이나 자유권이니 기본권이니 생존권이니 있습니다. 종이에 또렷하게 새겨진 법과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법이 있으니 나라에서는 무엇보다도 나라에서 세운 법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온힘을 쏟아야 옳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얼마나 ‘종이에 적힌 법’을 지키고 보듬고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법이 없더라도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온힘을 쏟아야 옳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없다고 해도 사람을 마구잡이로 부리는 일이 없어야 하고, 헌법이 없어도 누구나 고른 권리를 두루 누릴 수 있어야 하며, 기본권이나 평등권이라는 말이 없어도 누가 누구를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등처먹는 일이란 없어야 합니다. 몸이 아파서 조퇴를 하는 사람한테도 똑같은 일삯이 주어져야 합니다. 나어린 일꾼이라고 해서 나이든 사람과 견주어 반토막 일삯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름난 작가라고 글삯을 더 챙겨 주고 이름없는 작가라고 글삯을 떼어먹는 일이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 줌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 전태일 님이 외친 목소리는 틀림없는 ‘노동 3권’입니다. 그러면 이 노동 3권이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 세 가지 권리일까요. 이 권리를 누려야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 우리 대표들은 노정국장실로 갔다. 노정국장한테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어떻게 대책을 세울 것이냐고 다그쳤다. “여러분의 요구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여러분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우리의 주장에는 얼버무리기만 했다.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말해 보시오.” “이렇게 집단적으로 와서 행동하는 것은 불법이니 빨리 철수하세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무턱대고 쫓아낼 궁리만 했다. 그 말에 욱하고 화가 뻗쳤다. “이봐요, 노정국장! 당신은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근로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 아니요? 감독소홀로 근로자가 죽어나자빠져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근로자들이 여기저기에서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회사에서는 해고시키고 폭력배를 동원해서 사람을 두들겨패고, 상급노조에서는 제명이니 유령노조니 하는 야비한 수법으로 탄압을 하고 있는데, 노동청에서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요? ..  《어머니의 길》 308쪽


 살아남은 이 가운데 한 사람인 이소선 어머님은 1970년 11월 13일 그날부터 2007년 11월 13일 오늘까지도 꼿꼿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한 줌 재가 된 전태일 님이 당신 어머님한테 마지막으로 남긴 말, “가냘픈 생명체가 계속 병들어가니까, 하루하루 병들어가는 것을 그냥 볼 수가 없어서, 안 보이는 벽살이 우리를 가두고 옥죄고 있어서 그 단단한 벽을 허물기 위해 나는 작은, 아주 작은 바늘구멍이라도 내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어머니의 길, 32쪽)”를 지키면서. 아니, 이소선 어머님 스스로 이 땅에서 전태일 님처럼 세상을 부대끼며 살다 보니까, 당신부터도 ‘작은 구멍’ 하나 낼 수밖에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한꺼번에 내는 큰 구멍이 아니라, 작은 사람들이 아주 조그맣게 겨우 내고 있는 구멍 하나를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어깨동무하면서 낼 때 비로소 우리 삶터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깨달았기에. (4340.11.13.불.전태일 님 죽은 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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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초상 1969-2007 - 전민조 사진집
전민조 지음 / 눈빛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한국인의 초상 1969-2007
- 사진 : 전민조
- 펴낸곳 : 눈빛(2007.10.6.)
- 책값 : 2만 원







 이 책 하나 26 ― ‘기다림’으로 담아낸 한국사람 ‘얼굴 사진’
 : 전민조 사진, 《한국인의 초상 1969-2007》



 〈1〉 우리 동네 사람들


 아침에 뒷간에서 《잘 먹겠습니다》라는 작은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 펼친 책에는, “의사는 병 치료에 많은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생명력이 강한 농작물을 키우는 흙 만들기나 건강한 사람이 자라기 위하여 뱃속 밭 관리방법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69쪽)”라는 이야기가 보여서 밑줄을 긋습니다. 의사들은 병원에서 ‘병을 고치는 법’을 알아서 아픈 이를 다스립니다. 아픈 사람들한테 무엇무엇은 먹으면 안 되고 무엇무엇을 먹으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픈 사람들이 먹으면 좋을 무엇무엇이 어디에서 어떻게 길러지는지, 아픈 사람들이 안 먹어야 할 무엇무엇은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길러서 얻을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


― 인부, 시청앞, 서울, 1972.4.19.


 어젯밤, 동네 구멍가게에서 보리술 두 병과 우유 한 통과 라면 두 봉지를 삽니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척척 물건셈을 해냅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까만 비닐봉지에 담으려 하십니다.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아, 비닐봉지에 안 담으셔도 돼요. 가방에 넣어서 들고 가면 돼요.” “다 들어갈까?” “그럼요, 안 들어가면 안고 가면 되고요.”


― 해군 장교, 해군 대구함, 경남 진해, 1971.10.7.


 지난 토요일부터 날마다 도서관에 놀러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셋이 어울려서 이곳으로 옵니다. 아이들 사는 집은 도원역 뒤쪽 숭의동. 아버지 어머니는 맞벌이를 하고, 집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만 계신다고 합니다. 동네에 함께 뛰어놀 또래 동무가 드뭅니다. 여태까지는 셋이서 어떻게 지내 왔을는지. 도서관 전기세 고지서를 살짝 넘겨다보더니, “우와, 어떻게 이렇게 조금밖에 안 나와요? 우리 집에는 삼만 원도 넘게 나오는데.” “우리 집은 오만 원.” “우리 집은 칠만 원.” “우리들(도서관에서는)은 세탁기도 안 쓰고 냉장고도 안 쓰고 텔레비전도 안 써서 그래요.”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두 대인데.” “우리 집은 세 대.”


― 농부, 전북 남원군 대산면 풍촌리, 1982.7.14.


 저녁나절 찾아오는 동네 동무가 있으면, 가끔 도원역 맞은편 2층에 자리한 닭집에 놀러갑니다. 예전에 피시방을 하던 자리에 들어오셨는데, 피시방 시설을 거의 그대로 두었습니다. 아주머니는 혼자서 부엌일을, 아저씨는 배달일을 합니다. 배달은 늘 밀립니다. 배달이 밀리는 까닭은 하나. 아저씨가 길눈이 많이 어두워, 한 번 배달을 나갔다 하면 소식이 영……. 그래도 주문은 끊이지 않습니다. 늦쟁이 닭집이지만, 동네 사람들은 맛있게 즐깁니다.


― 농촌운동가, 서경원, 전남 함평, 1986.6.13.


 한때 은퇴를 했다가 올여름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신 헌책방 할아버지 한 분 나이는 일흔아홉. 곧 여든입니다. 할아버지는 해방 또는 한국전쟁 즈음부터 헌책을 만져 오셨지 싶습니다. 당신 지난날을 아직 여쭙지 않고 책 구경만 했는데, 다음에는 당신 살아온 이야기도 여쭐까 합니다. 이웃한 헌책방 할아버지는 일흔일곱. 두 분은 일을 마칠 저녁나절이면 소주잔을 부딪히며 지나온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해주에서 나고 자란 일흔일곱 헌책방 할아버지는 당신 옛 고향을 아직도 또렷하게 떠올리면서 술잔을 기울입니다.


― 귀순자, 이웅평, 광화문, 서울, 1983.4.10.


 헌책방 할아버지와 견주면 앳된 아가씨였던 ㅇ서점 아주머니도 스물을 얼마 안 넘긴 나이부터 헌책을 만졌습니다. 그때는 앳된 아가씨였겠지만, 몇 해만 더 지나면 벌써 예순 할머니 나이가 됩니다. 배다리 골목집을 뚫으려는 산업도로 막는 일을 하랴, 책방 살림 돌보랴, 동네 사람들한테 ‘우리 삶이 바로 고운 문화예요’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랴, 하루 한때도 몸 가붓이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사람을 볼 때는 가슴을 봐야지요. 가슴이 살아 있는지 봐야지요.” 하는 헌책방 아주머니는 우리 도서관 바로 앞에 있는 좋은 이웃.


― 전경, 신민당 개헌대회, 전주, 1986.6.1.


 조금 앞서 무슨 검사실이라면서 전화가 옵니다. 말끝에 ‘-요’를 붙이기는 하지만, 저기 높디높은 하늘 끝자락에서 낮디낮은 땅 밑바닥을 내리깔면서 읊어대는 목소리입니다. ㅈ일보 기자가 저를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했는데, 그 건 때문에 출석을 해야겠다는 연락입니다. 히유, 이 사람들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좋지만, 어쩌고저쩌고를 하더라도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 사람을 깔보는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들으면서, 이 아저씨는 아침점심저녁으로 어떤 밥을 먹고, 누가 차려 주는 밥상을 받으며, 자기 밥상에 차려진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가를 한 번이라도 느낀 적이 있는가 궁금해집니다.


― 법조인, 이회창, 이마빌딩, 서울 종로구, 1996.4.13.


 ㅅ시장에 순대집이 있습니다. 저잣거리마다 한두 군데쯤은 꼭 있는데, 꽤 괜찮구나 싶어서 틈틈이 찾아가는데, 엊그제는 이곳에서 순대국을 한 번 먹어 보았습니다. 순대는 괜찮았으나 순대국은 으으으. 다른 집 순대국보다는 덜 맵고 짰지만(위에 얹은 고추장범벅을 많이 덜어내기도 했으나), 혀와 위에 몹시 자극이 되어 탈이 나는 바람에, 저녁나절 물똥을 누느라 똥구멍이 지지리도 아픕디다. 집에서 우리끼리 해 먹을 때는 혀며 위며 자극이 하나도 안 되는 부드러운 국이나 찌개를 즐기지만, 밖에서 사먹어야 하는 국이나 찌개는 도무지 손을 못 대겠어요. 두렵습니다.


― 수녀, 복선수녀, 샤미나드의 집, 인천 부평구, 2007.7.8.


 서울에서 지낼 때 찾아가던 동네 자전거집 아저씨는 ‘자전거 손질 삯’을 안 받았습니다. 손님 뜸하거나 가게문 닫을 즈음 찾아가면, 혼자 소주 한 잔 드시다가, ‘어, 잘 왔어요!’ 하면서 옆 구멍가게에서 삶은달걀 하나 사 와서 건네면서 ‘한 잔 받으셔요’ 하고 내밀어 주십니다. 자전거집 아저씨는 당신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자전거 연장과 새 연장이 함께 있었는데, “같은 연장인데도 옛날 게 더 쓰기 좋고 잘 들어요.” 하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인천으로 살림을 옮긴 뒤 찾아가는 이 동네 자전거집 아저씨도 ‘자전거 손질 삯’을 안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 “오늘은 내가 손질해 주지만, 잘 지켜보세요. 그리고 다음에는 집에서 혼자 해 보세요.”


― 정육점 주인, 김영기, 서울 금천구 독산동, 2006.2.11.


 배다리에서 동인천으로 가는 길목에 과일장수가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틈틈이 이곳에서 능금이며 배며 땅감이며 사서 먹었는데, 어느 날, 떨이라며 한 바구니에 2000원에 내놓은 능금을 살 때 보니까, 젊은 일꾼이 곯은 능금 몇 알을 슬그머니 끼워넣더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맨들맨들 좋아 보이지만, 속에는 곯은 능금을 숨겨 놓다니! 어차피 이 능금을 사 가는 사람이 집에 가면 뻔히 볼 텐데, 이렇게 눈가림을 하면 그 집에 다시 찾아가고 싶을까나.


― 청소부, 정진석, 남구로역 앞, 서울, 2006.2.18.


 동네에서 옷집을 꾸려 온 ㅂ아주머니는 몸이 아파서 일을 오래도록 쉬었습니다. 거의 죽는 줄 알았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살아난 지금은 예전 같지는 않아, 머리카락이 곱슬이 되고 몸 이곳저곳 많이 달라졌다는데, 그래도 새 목숨을 얻은 듯이 즐겁다며, 한동안 놓고 있던 옷짓기를 다시 하고픈 꿈을 꾸십니다. 어느 날엔가, 우리를 부르시더니, “우리 집에 나팔꽃이 참 예쁘게 피었어요. 아침에 한 번 놀러오세요. 저기 개코막걸리 옆집 알지요? 문 똑똑 두드리면 되니까, 와서 꽃도 구경하고 차도 한 잔 해요.” 하고 말씀합니다.


― 위안부 출신 할머니, 길원옥, 주한일본대사관 앞, 서울, 2007.8.29.


 지난 일요일, 사진찍는 전민조 님이 도서관에 찾아왔습니다. 전민조 님은 골목길 나들이를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사진기 한 대 들고 도원역 뒤편, 숭의동 달동네를 천천히 거닙니다. 빛빛이 고운 담벽과 빨래와 길에 내놓아 앉는 걸상 들을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담습니다. 그러다가 감 따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만납니다. 옆에서 사진을 찍어도 아랑곳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미안하니까 “감 따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진 몇 장 찍었어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쭈그렁 늙은이는 안 찍었지? 찍지 마.” 하면서 웃던 아주머니는(할머니였다고 할까. 손주를 보셨을 테니), 당신들이 따던 감을 몇 알 나누어 주십니다.

 











 〈2〉 사진을 찍는 전민조 님


 사진책 《한국인의 초상》을 가만히 넘기며, 제가 사는 동네 사람들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려봅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어떤 얼굴일는지,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웃한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는지 헤아립니다. 저도 이 동네 분들한테는 살가운 이웃으로 느껴질는지, 그냥 머리 길고 고무신 꿰는 젊은 양반으로만 느껴질는지 모릅니다만, 지난주 성당 나들이를 하던 날(입교자 신고), 수녀님이 손을 내밀며 “골목길 다니며 사진 많이 찍으시더니, 드디어 우리 성당에도 찾아오셨네. 반가워요.” 하고 활짝 웃으십니다. 언제 제 모습을 지켜보셨는지, 또 그 모습을 잊지 않고 계시는지. “내 이름은 예쁜데 내 얼굴은 못생겼다고들 해요. 하지만 이름은 예쁘니까 잘 기억해 주세요.” 하고 당신을 소개하는 수녀님은 얼굴 주름으로 미루어보건데, 예순은 훌쩍 넘은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글서글하며 시원시원한 이 수녀님을 보고 누가 ‘못생겼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동네 마실을 하면서 수녀님을 볼 때마다 느끼건데, 이분 가슴을 들여다볼 줄 안다면, ‘예쁜 이름이 그냥 예쁜 이름이 아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텐데.


.. 대상 인물이 자기 안에서 소화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  〈추천글 - 한정식〉


 수녀님은 저 같은 사람들이 성당 문을 두드려 주기를 기다리셨을까요. ‘이곳에 오면 좋은 이야기와 생각을 많이 얻을 수 있으니 어서 와요’ 하고 잡아당기지 않고, 지긋이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우리들이 손수 찾아가면, ‘그동안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고 웃으면서 맞아들이실까요.

 기다림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기다림이란, 지켜봄하고 한 동아리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켜봄이란 언제나 곁에 있는 일, 곁에 머무르기만 하지 않고 감싸거나 보듬거나 돌보는 일, 마음으로 사랑해 주고 걱정해 주고 애틋하게 손길을 내밀어 주는 일하고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나이를 먹었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변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직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은 먹고사는 문제보다 사진 찍는 일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사진을 찍고 있다가 문득, 문학ㆍ그림ㆍ음악ㆍ연극 등과 사진을 사회적 성과물로 비교해 봤을 때, 사진이 세상을 이미지와 콘텐츠로서 한 그릇에 담는 데에 무엇인가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사진을 화랑 벽에 걸기 위한 아름다운 작업에만 치중하지 않았는가 ..  〈책 뒤에 - 전민조〉


 길을 걷다가 걸음이 느린 사람이 있을 때는 살며시 옆으로 돌아가서 걷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걷는이를 만나면 딸랑이를 울리지 않고 조용히 빠르기를 늦추었다가 옆으로 비껴가기. 자가용을 몰고 골목길을 가다가 사람이나 자전거가 보이면 빠르기를 늦추고 먼저 가라고 손짓하기. 이런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세탁기를 안 쓰고 손빨래 하기. 자가용도 대중교통도 안 타고 걷거나 자전거 타기. 내가 읽었던 좋은 책을 이웃사람한테 선물해 주기. 집에서 손수 지지고 볶고 삶거나 무치거나 마련한 먹을거리를 옆집에 찾아가서 맛보라고 한 접시 내밀기. 이런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학교 시험성적이 높거나 낮거나, 고등학교만 마쳤거나 대학교를 마쳤거나, 얼굴이 예쁘다고 할 만하거나 못생겼다고 할 만하거나, 돈많아 떵떵거리거나 돈없어 쩔쩔매거나, 힘이 세거나 여리거나, 곱고 깨끗하게 차려입거나 대충 아무렇게나 차려입거나, 모두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마주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4340.1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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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일터인 동네 도서관에 놀러오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묻습니다. “남자가 왜 머리를 길러?” 어제는 한 아이가 묻습니다. “아저씨는 면도 왜 안 해요? 면도 좀 해요.”

 우리 나라를 빼고 ‘남자인데 왜 머리를 길러?’ 하고 묻는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어린아이들이 ‘남자는 머리가 짧게, 여자는 머리가 길게’로 생각하도록 하는 나라는 어디에 또 있을까요. ‘남자는 수염을 싹 밀어서 턱과 코 밑이 맨들맨들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나라는 어디에 더 있을까요.

 이제 아이들한테 제가 묻습니다. “머리가 길면 남자가 아닌가? 여자는 왜 머리를 기르지? 수염은 왜 깎아야 할까? 수염을 안 깎으면 안 될까?”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로 나선 이들은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어떤 정책을 내놓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여론몰이와 얼굴밀기 말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신문 구석자리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를 찾고, 인터넷으로 끄적이며 훑습니다. ‘여성 정책’이라고 적힌 자리를 들여다봅니다. 어느 후보나 여성 정책은 ‘아이 돌보기’ 이야기에서 맴돕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성 몫일까요? 교육이나 문화 몫이, 남자와 여자가 아닌 모든 사람이 마음 기울일 몫이 아닐는지요. 정책이나 공약을 곰곰이 살펴보노라면, 문화를 말하는 후보는 보이지 않습니다. 문화 가운데에서도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살림집에서 꾸려 가는 여느 문화’를 말하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예전에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나는야 서민 대통령’이라고 외치기는 하지만, 정작 서민으로 이 땅에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서민으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까요. 서민으로 살 생각이 없기 때문일까요. 신동엽 시인은 1968년 11월에 쓴 〈산문시 1〉에서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하고 노래했습니다. 막걸리병을 자전거 꽁무니에 싣고 시인네 집에 놀러갈 수 있는 대통령, 소주병을 자전거 짐받이에 묶고 저잣거리 좌판을 하는 할머니네 집에 놀러갈 수 있는 공무원, 줄넘기와 축구공을 자전거 바구니에 담고 골목길 아이들 놀이터에 놀러갈 수 있는 교사, 이런 사람을 바라는 사람은 현대 사회를 거스르는 바보일는지.

 《여성○○》, 《레이디○○》, 《우먼○○》를 비롯해 책방 잡지칸을 울긋불긋 수놓고 있는 여성잡지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요즈음 어떤 이야기로 기사를 채우고 있을까요. 여성잡지를 보는 분들한테는 아무나 대통령이 되어도 괜찮을까요. 어차피 여성들이 마음둘 곳은 몸치레 얼굴치레 집치레 밥치레 밤놀이 들이니, 나라일과 동네일은 바깥양반한테 맡겨 두면 넉넉할까요. 아이들은 어머니를 따라 머리집에 놀러갈 때 어머니들 보는 여성잡지를 함께 넘겨다봅니다. (4340.11.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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