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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옥중기
 

 감옥에 갇힌 분들이 남긴 글이 책으로 묶이기도 합니다. 신영복 님이 보낸 짤막한 엽서를 모아 《엽서》가 나오기도 했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나오기도 합니다. 박석조 님 형제가 주고받은 《옥중에서 오고간 편지》가 있으며, 서준식 님이 쓴 《서준식 옥중서한》도 있습니다. 문익환 님도 감옥에서 쓴 글과 편지를 모아 책이 여러 권 나왔고, 사회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 이런 일 저런 일로 감옥에 갇혀서 식구들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남긴 일기나 편지가 책으로 묶이기도 합니다.


 ┌ 오스카 와일드 쓴 《옥중기》
 └ 루이제 린저 쓴 《옥중기》


 나라밖에서 이름난 책이라면, 그람시 님이 남긴 《옥중수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루이제 린저 님이 쓴 《옥중기》가, 또 오스카 와일드 님이 쓴 《옥중기》가 있어요. 


 한편, 나라안에 이름난 시인이 남긴 책이지만, 거의 알려지지 못한 김현승 시인 《옥중일기》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가만히 보면, 모두들 ‘옥중(獄中)’이라는 말을 씁니다.


 ┌ 감옥에서 쓴 글
 ├ 감옥에서 부친 편지
 └ 감옥에서 적은 일기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쓴 이야기는 ‘동물기’로 알려졌습니다. 장 앙리 파브르 님이 쓴 이야기는 ‘곤충기’로 알려졌습니다. 김찬삼 님이 남긴 이야기는 ‘세계여행기’로 알려졌습니다.


 ┌ -記
 └ 적음 / 남김


 시튼 님이 남긴 ‘들짐승’ 이야기인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와 《회색곰 왑의 삶》과 《뒷골목 이야기》와 《위대한 늑대들》과 《표범을 사랑한 군인》과 《다시 야생으로》를 한 권 두 권 찾아서 읽습니다. 가슴찡함을 느끼면서 자연 삶터를 담아내는 문학이란 얼마나 자연 삶터를 사랑하고 아끼며 가까이하는 가운데 적어내려가야 하는가를 새삼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야기’라는 말은 쓰지 못할까요.


 파브르 님이 남긴 ‘벌레’ 이야기를 읽고 ‘푸나무’ 이야기를 읽습니다. 책이름은 《파브르 곤충기》와 《파브르 식물기》이지만, 파브르 님은 크고작은 ‘벌레’들을 살펴보면서, 또 ‘풀과 꽃과 나무’를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당신 딸아들한테 읽히려는 마음으로. 그나저나 우리는 왜 ‘-이야기’라는 말은 넣지 못할까요.


 ┌ 들짐승 이야기
 ├ 벌레 이야기
 └ 푸나무(풀꽃/풀) 이야기


 옛날 옛적부터 내려온 이야기이기에 ‘옛날이야기’이건만, ‘민담’이나 ‘민화’니 하는 이름으로만, ‘설화’니 ‘신화’니 하는 이름으로만 우리들한테 읽힙니다. 알려집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는 책,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책은 ‘어린이책’이고 ‘어린이 이야기’일 테지만, 한결같이 ‘동화’라는 이름으로만 자리매깁니다. 이 땅에는 ‘이야기’가 자리잡을 수 없는가요.


ㄴ. 가톨릭 다이제스트


 새벽에 일어나 성당에 다녀옵니다. 오늘은 성당에 바깥손님 한 분이 와 있습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를 만드는 일꾼 가운데 한 사람. 짤막하게 잡지를 소개합니다. 앉은 자리에서 가만히 책을 넘겨 봅니다. 2007년 4월치에 박완서 님 만나보기가 있습니다.


.. 사노라면 형제 간처럼 든든한 힘이 없는데 요즘은 아이들을 하나나 둘밖에 안 낳으니 사촌끼리라도 자주 만나 정을 들이고 우애 나누라고 타이르고 그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 실은 요새 손자들을 다 모으기도 힘들어요. 누구는 고3이니까 빼 줘야 한다, 누구는 과외공부 갈 시간이다, 이런 식이거든요. 예전엔 특별한 집에서나 아이들을 공주님, 왕자님 취급하는 걸 보았는데, 요즘은 내 손자, 손녀가 다 왕자님, 공주님입니다. 세상이 그렇다니 제가 어쩌겠어요. 저는 이미 구세댄걸요 ..  〈18∼19쪽〉


 몇 꼭지를 빼고는 우리 둘레에서 흔히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로 채워 놓았습니다. 퍽 수수하게 꾸미고 있구나 생각하며 판권을 보니, 잡지가 나온 지 벌써 스무 해. 2007년 4월에 206호였으니 그동안 먼길을 뚜벅뚜벅 걸어왔군요.


 ┌ 리더스 다이제스트
 └ 가톨릭 다이제스트


 잡지이름을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왜 ‘다이제스트’라는 말을 붙였을까? 꼭 ‘다이제스트’라는 말을 붙여야 했을까? ‘다이제스트’라는 말에 어떤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할까? 이 나라 이 땅에서 ‘다이제스트’ 아니면 안 되었을까?


 ┌ 가톨릭 이야기
 ├ 작은 가톨릭
 ├ 가톨릭과 삶
 └ …


 벌써 스무 해나 《가톨릭 다이제스트》로 써 왔으니 그대로 나아가는 편이 더 낫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름이야 어떻게 붙였든, 알맹이를 차근차근 다지고 추스르면서. 어쩌면 스물다섯 돌을 기리면서, 또는 서른 돌을 기리면서 새 이름으로 거듭날 수 있어요. 잡지이름 고치기란 참말 어려운 노릇이지만, 이런 어려움이란 마땅히 짊어지고 나아갈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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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
쿠루사 지음, 최성희 옮김 / 동쪽나라(=한민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
- 글 : 쿠루사
- 그림 : 모니카 도페르트
- 옮긴이 : 최성희
- 펴낸곳 : 동쪽나라(2003.10.15.)
- 책값 : 6800원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가꾸는 동네 놀이터
 [그림책이 좋다 42] 쿠루사 + 모니카 도페르트,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



 (1) 눈과 길


 밤부터 눈이 내립니다. 소록소록 내리는 눈발은 멎지 않습니다. 차곡차곡 쌓이며 온 동네를 하얗게 물들입니다. 요 가까이에 있는 제일제당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도, 두산중공업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도, 동일방직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도, 동국제강과 인천제철에서 내뿜는 연기도 잠재우면서 눈이 내립니다.

 집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철길에도 눈이 쌓입니다. 서울로 들어서는 경인고속도로 들머리에도 눈이 쌓일 테지요. 걸어가면 코 닿을 자리에 있는 인천 제2부두, 제3부두, 제4부두, 만석부두, 화수부두에도 눈이 쌓일 겝니다. 얼마 앞서까지 유리공장이 있던 터에도 눈이 쌓일 터이고, 골목집을 쓸어내고 우뚝 솟아 버린 아파트 지붕에도 눈이 쌓이겠지요.


..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칼리토스의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였을 때만 해도, 베네수엘라의 산에서는 퓨마가 울부짖었습니다. 당시의 산은 거의 원시의 모습이었습니다. 커다란 나무들과 작은 잡목들이 우거진 숲속에는 계곡이 뻗어 있고, 좁은 오솔길이 나 있었습니다 ..  (1쪽)


 아침에 뒷간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다가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건너편 빈집 3층 창가에 비둘기 한 마리 오들오들 떨며 옹크리고 있습니다. 그러게, 참. 이렇게 눈이 소복소복 쌓이면 날짐승들은 어떻게 먹이를 얻지? 어디에서 따순 잠자리를 마련하지? 보금자리 틀 나뭇가지 하나 찾을 수 없는 도심지에서, 보금자리 틀 키큰나무 한 그루 없는 도심지에서, 짓궂은 사람들 손길을 안 탈 만한 조용하고 호젓한 자리 하나 찾을 길 없는 도심지에서, 비둘기며 까치며 참새며 박새며 어떻게 겨울나기를 할 수 있담.

 비둘기가 자주 앉아서 쉬는 창턱에 옆지기가 빵조각을 뜯어서 놓곤 합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이 빵조각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저 앉았다 떠날 뿐입니다.


..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베네수엘라 각지의 소도시와 농촌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와 산기슭에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이 집을 짓는 동안, 아이들은 나무에 오르거나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널찍한 공터를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  (5쪽)


 눈이 쌓이니 자동차는 하나같이 굼벵이가 됩니다. 이런 길에는 아예 차를 못 몰겠다며 투덜거리며 길을 나설 분이 있을까요. 대중교통 타야겠구나 하며 일찌감치 길을 나설 분이 있을까요.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서 쉬는 아이들은 방학숙제며 학원숙제를 잠깐이마나 제쳐놓고 동무들한테 사발통문을 돌려서 ‘눈싸움 하자!’고 들떠 할까요. ‘먼 놈의 눈이 이렇게 와?’ 하면서, 골목집 사람들은 빗자루를 들고 골목길을 쓰윽쓰윽 쓸고 있을까요.

 저도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살그머니 골목길 마실을 나가 보아야겠습니다. 눈발 날리는 골목길에서 뒹굴며 노는 아이가 있는지, 눈발이 멎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언손 녹여가며 골목길 쓰는 어르신이 있는지 살펴보러.


.. 예전에는 계곡 아래가 풀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높다란 건물들이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곳에서 바라본 언덕배기는 집들로 빈틈없이 뒤덮여 있었습니다. 큰길은 고속도로가 되어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산에는 나무 몇 그루만 겨우 남아 있었고, 그 많던 꽃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놀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  (11쪽)



 (2) 종합건설본부 공무원과 길


  어제, 1월 10일 낮 세 시, 인천종합건설본부는, 인천 동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주민 몰래 주민설명회’를 열려고 했습니다. 중구 삼익아파트 앞부터 동구 동국제강까지 2.51킬로미터 길이에 너비 50미터가 넘는 산업도로를 뚫겠다는 생각을 그예 밀어붙이려고만 했습니다.

 어제 ‘주민설명회’라는 자리를 하기 앞서, 종합건설본부는 인천 동구청과 동구에 있는 동사무소에만 7일날 깜짝통보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이 산업도로라는 길이 뚫릴 때 피해를 입게 될 주민들한테는 아무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귀띔도 알림글도 공문도 걸개천 같은 것 하나 없이 몰래 하려다가 주민대책위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허울로만 주민설명회를 열었다고 내세우면서 막공사를 밀어붙이려 했기 때문에 이런 짓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종합건설본부 사람들은 말합니다. “설명회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협조와 의견수렴을 거치고자 했다. 그러나 필요성을 알리려 해도 도저히 설득이 안돼 답답할 따름”이라고(경인일보 2008.1.11.).


.. 아이들은 풀이 죽은 채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계단에 앉아 각자 자기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우리들이 놀 만한 장소가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거야.” 맨 먼저 말한 아이는 키가 큰 카밀라였습니다. “그런 장소는 없을 것 같아. 차라리 시장님을 만나서 우리한테 놀이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리자.” 한 아이가 그렇게 제안했습니다. “시장님 집이 어딘데?” ..  (22쪽)


  인천시 공무원은 말합니다.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계획안을 내놓기 전에 이미 많은 대화를 했기 때문에 시 계획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 다음 주민설명회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시가 세운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고(인천일보 2008.1.11.).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지난 달, 동 자치위원들과 도로개설에 따른 소음방지를 위한, 터널 확장, 녹지조성 등 여러 대안과 관련해 설명하는 자리에서 설명회 요청이 있어 이번에 개최하는 것 … 이미 행정절차는 다 끝난 마당에 굳이 절차적인(요식적인) 설명회를 열 이유는 없다”고(인천신문 2008.1.11.).

 그러면, ‘굳이 안 해도 되는 설명회’를 왜 열려고 했을까요. 게다가 ‘굳이 안 해도 되는 설명회를 왜 몰래 하려고’ 했을까요. 종합건설본부와 시청 공무원들이 만난 ‘주민’은 참말로 어디에서 뭘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일까요. 이들은 ‘주민’이라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했을까 모르겠습니다. 또한, ‘주민을 부르지 않으면’서 왜 ‘주민설명회’라는 이름을 내걸었을까 모르겠습니다.


.. “네, 그래요. 저희들은 시청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러 왔어요. 저희들은 놀이터가 필요해요.” “아저씨, 들어가게 해 주세요.” “한가하게 너희들을 만나 줄 사람은 이곳에 없다. 그러니 다들 집으로 돌아가거라.” 경비원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지만 아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돌아가라는데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어서 돌아가! 여기에서 얼쩡거리면 경찰을 부를 거다!” “아저씨, 저희들은 이런 놀이터를 갖고 싶어요. 자, 보세요!” 가장 어린 칼리토스가 요구사항이 적힌 종이를 펼쳐 보였습니다 ..  (31쪽)


 사람이 사는 곳이니 집을 마련해야 하고, 길도 내야 하고, 가게도 들이고, 일자리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논밭 일굴 땅이 남아야 하고, 숨쉴 바람을 마련해 주는 숲이 남아야 합니다. 숲에서 베어내는 나무는 우리들이 날마다 엄청나게 써대는 온갖 종이로 바뀝니다. 그러니 숲에는 나무도 많이 남아 있어야 하고, 우리들이 나무를 베어내는 만큼 새 나무를 심어 주어야 합니다. 또 새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지켜야겠지요.

 그러면 우리한테는 집을 마련하는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는 길이 얼마만큼 있어야 하나요. 우리 동네에는 가게가 몇 군데쯤 있으면 좋을까요. 우리 동네 일자리는 몇 가지쯤 있어야 할는지요. 우리 동네에는 쉼터와 숲이 얼마만큼 남아 있어야 하며, 우리는 동네 숲을 얼마만큼 간직하면서 가꾸어 나가야 좋을까요.


.. 시장과 직원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희들은 그런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안내해 드릴게요.” “거기가 어딘지 함께 보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사서 선생님이 시장과 직원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글쎄요, 지금은 좀…….” 직원이 말을 흐렸습니다. “으흠.” 시장이 헛기침을 하고 슬그머니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습니다 ..  (40쪽)


 우리 사는 이 땅에는 나라밖으로 내다 팔 물건을 실어나를 길만 있으면 좋은가요. 우리 사는 이곳에는 하루하루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으로 부자를 만들어 주는 크고 높은 아파트만 있으면 되는가요. 우리 사는 이 동네에는 흙 한 줌 밟지 않고도, 풀 한 포기 쓰다듬지 않고도, 나무 한 그루 돌보지 않고도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있는가요.


.. 카밀라의 말이 맞았습니다. 몇 주일이 흘러도 시청 사람들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공터는 갈수록 잡초가 무성한 가운데 온갖 잡동사니들만 쌓여 갔습니다. 놀이터가 들어설 만한 자리 같지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어느새 그 일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  (52쪽)



 이른아침부터 방송차가 다니면서 ‘눈이 많이 오니 집 앞 눈을 쓸자’는 이야기를 외칩니다. 그러나 이런 방송차가 다니지 않아도 골목집 사람들은 알아서 집 앞 눈을, 골목길 눈을 씁니다. 골목집 사람들 문간에는 언제나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마련해 놓고 ‘청소부가 치울 쓰레기’도 먼저 치우고 쓸며 살아왔거든요.





 (3) 책과 길


 아침나절, 창영동과 금곡동과 숭의동을 두루 돌아봅니다. 눈 덮인 길을 걸으며 돌아봅니다. 한 번 쓸어 놓은 길, 두 번 쓸어 놓은 길, 세 번째 쓸려고 사람들이 나와서 일하고 있는 길,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자동차가 밟고 지나가며 눌러 놓은 길을 어기적어기적 걷습니다.

 골목집 사람들은 비질을 하며 걸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 놓습니다. 동사무소 사람들은 염화나트륨까지 뿌리며 아예 눈을 다 녹여 버립니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골목길을 거닐며 눈을 뽀도독뽀도독 소리나게 밟습니다. 차가 오가는 조금 넓은 길은 눈녹은 질퍽거림을 잔뜩 느낍니다. 시커멓게 바뀌어 가는 얼음물이 바지로 튑니다.


.. 어느 날 아이들이 거리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였습니다. 식료품을 가득 실은 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습니다. “얘들아, 저리 비켜! 왜 길에서 노는 거야!” 트럭 운전사가 소리쳤습니다. “왜요? 길에서 놀면 안 돼요?” 아이들은 그렇게 맞서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트럭은 아이들보다 훨씬 더 크고 힘도 셌습니다. 화가 난 운전사가 아이들 쪽으로 트럭을 몰았습니다. 아이들은 하는 수 없이 그곳을 피해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  (16쪽)


 두 시간 남짓 동네 마실을 하고 집 앞에 닿습니다. 바로 들어갈까 하다가, 가까운 헌책방 한 곳에 들어가서 손을 녹입니다. “모처럼 눈이 많이 오는데 눈 구경 안 하셔요?” “저희는 (책방에 일하러) 오는 길에 했지요. 이제 눈 구경 가시려고요?” “아니요, 아침부터 죽 돌고 이제 막 들어오는 길이에요. 조금만 늦으면 눈을 다 쓸어내서 없으니까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웅크리면서 녹이고 있을 무렵,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들어와서, “《궁》 있어요?” 하고 묻습니다. “아니요, 없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아이들은 돌아나갑니다. 바라는 만화책 한 가지만 물어 보았습니다. 이웃가게에 들러서도 똑같이 물어 볼까요? 그러다가 아무 헌책방에도 자기들이 바라는 만화책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요. 가까운 새책방에 가서 살까요?


.. “음, 좋은 의견이구나. 아주 훌륭하다. 그런데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지?” 사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문제는 어른들이에요.” 카밀라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만약 어른들이 우리와 함께 시장님을 만나러 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좋고 훌륭한 의견을 내놓으면 뭐 해요? 실행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죠.” “어른들이 너희들과 함께 시장님을 만나러 가지 않으려고 하시니?” “어른들은 우리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래? 그렇다면 너희들끼리 가지 그러니? 그럴 생각은 없나 보구나?” ..  (28쪽)


 모든 아이들, 또는 모든 어른들이 “무슨무슨 책 있어요?” 하고만 물으며 그 책이 없으면 돌아나가지는 않습니다. 제법 많은 아이들은 자기가 살 참고서나 문제모음도 꼼꼼히 살피고 들여다보면서 고릅니다. 적잖은 어른들도 자기 마음밭을 살찌울 책을 고르려고 짧으면 한두 시간, 길면 서너 시간이나 대여섯 시간 동안 다리아픔도 잊은 채 서서 책을 고릅니다.

 “무슨무슨 책 있어요?” 하고 묻는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만 찾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만 찾습니다. 자기한테 낯선 사람이 쓴 책, 낯선 출판사에서 펴낸 책, 아직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 붙은 책은 코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않고 거들떠보지 않으며 꺼내어 들춰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스테디셀러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본다고 하여 우리 자신한테도 도움이 되거나 재미가 있거나 읽을 만할까요. 우리가 책 하나를 고르거나 사는 잣대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보는 책’이나 ‘두루 사랑받는 책’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요.


.. “와, 우리에 대한 기사다!” 케오가 소리쳤습니다. “우리가 신문에 나오다니, 우리는 이제 유명한 사람들이네!” 칼리토스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우리는 유명한 사람들이야. 하지만 여전히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어.” 카밀라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  (48쪽)



 지금 꼭 《궁》이 보고 싶으니까 《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고픈 그 《궁》이 없으면 어쩌지요? 언제까지나 《궁》만 찾아야 할까요.





 꿩 대신 닭이 아니라,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도 눈길이 갈 만하고, 《조폭 선생님》도 손길이 갈 만하고, 《테르미도르》도 마음길이 갈 만합니다. 때로는 《교도관 나오키》에, 때때로 《어시장 삼대째》에, 가끔은 《태일이》에 손을 뻗어 볼 수 있어요. 오늘은 《위안부 리포트》에, 내일은 《따끈따끈 베이커리》에, 모레는 《요츠바랑!》을 펼칠 수 있겠지요.

 학교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내십시오’ 하는 숙제를 낸다고 해서 꼭 ‘이런저런 책’만 읽고 느낌글을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이런저런 책’은 그다지 마음이 안 가고 재미도 없을 듯하며 읽은 보람이 없다고 느낀다면, 손수 책방 나들이를 해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든 다음, 이 책을 차근차근 읽고 자기 깜냥껏 느낌글을 써서 내도 좋아요.

 ‘1 + 2 = 3’이라고 맞는 답만 적어서 내야 숙제를 잘하는 셈은 아니거든요. ‘1 + 2 = 4’라고 적으면서 틀릴 수 있는 숙제이고, 자기는 다르게 생각하서 다르게 마무리를 지었다는 이야기를 적어도 좋은 숙제입니다.


.. 어느 날, 칼리토스는 삼촌이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장이나 시청 따위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뭐 있어? 우리끼리 힘을 합쳐 만들면 돼.” 삼촌이 탁자를 ‘쾅!’ 소리나게 치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삼촌의 친구들은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신나간 소리하지 마. 무슨 힘을 합친다는 거야? 자기 집 앞 골목도 치우지 않는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힘을 합쳐 놀이터를 만들기나 하겠어?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야.” ..  (55쪽)


 (4)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그림책


 그림책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를 읽습니다. 책을 고르던 책방에서 한 번 읽고, 책을 사들이고 집으로 돌아오던 전철길에서 한 번 더 읽습니다. 집으로 와서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이웃집에 놀러가서 ‘동네사람끼리 모여서 책읽기 모임을 해 볼까요?’ 하고 말문을 열면서 또 한 번 넘겨봅니다.


.. “시장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들끼리 놀이터를 만들면 안 될까?” 칼리토스가 말했습니다. “놀이터를 만드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인 줄 아니? 그건 아주 복잡한 일이야.” “하지만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끼리 놀이터를 만든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산호세 아이들은 저마다 친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또 형이나 누나들을 모았는데, 나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들까지 나섰습니다 ..  (53쪽)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났던 일을 차근차근 그림책으로 엮어내 보여주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입니다. 달동네 아이들은 자기들이 마음놓고 뛰어놀 곳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집안 어른들한테 놀이터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모두들 ‘바쁘다’는 핑계로 손사래를 칩니다. 시청 공무원들도 말로만 다짐을 하고 자기들 다짐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놀 곳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놀이터였던 골목이 자동차가 빵빵거리며 내달리는 곳이 되어 버리는데, 처음에는 누구나 신나게 뛰어놀던 빈터에 빌라가 들어서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속도로로 바뀌면서 자꾸만 산꼭대기로 쫓겨나고 있는데, 아이들은 마냥 팔짱을 끼거나 나 몰라라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바로 놀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손으로 놀이터를 만듭시다!” 이렇게 주장한 사람들은 칼리토스의 삼촌과 아이들뿐이었습니다 ..  (58쪽)


 어른들은 일을 해야 하니 바쁘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왜 일을 하지요? 무엇 때문에 일을 하지요? 누구 때문에 일을 하지요? 일을 해서 얻은 돈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지요?

 아이들은 바로 지금 놀고 싶어합니다. 놀이동산에 가자는 소리가 아니라, 동네에서 동무들하고 웃고 떠들고 울고 복닥이면서 놀고 싶어합니다. 미끄럼틀이나 시소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터만 있으면 됩니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터, 못이나 병조각이 흩어져 있지 않은 터, 차가 함부로 들어와 빵빵거리지 않는 터, 맑고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땀흘려 뛰고 구를 수 있는 터를 바랍니다. 키 크고 굵은 나무가 있어 그네를 맬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잎 많은 나뭇가지 그늘이 있으면 한결 좋겠지요. 팽이를 치고 연을 날리고 구슬을 치고 땅따먹기를 하고 고무줄을 뛰며 오재미나 오징어도 하고 빗돌치기나 자치기도 할 수 있는,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어른들도 함께 놀거나 곁에서 수다 떨면서 느긋하게 쉴 수 있는 놀이터를 바랍니다. (4341.1.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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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안녕하려면 - 하이타니 겐지로 단편집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츠보야 레이코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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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우리와 안녕하려면
- 글 : 하이타니 겐지로
- 그림 : 츠보야 레이코
- 옮긴이 : 햇살과나무꾼
- 펴낸곳 : 양철북(2007.12.14.)
- 책값 : 9800원


 이 책 하나 32 ― 아파하는 이웃과 외로운 아이들이 있습니다
 : 하이타니 겐지로, 《우리와 안녕하려면》



 (1)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


 지난주 토요일, 도서관에 놀러온 동네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한창 하다가 저희끼리 속닥속닥 하더니 책상서랍을 몰래 뒤지며 키득키득 합니다. 살며시 웃음을 띠면서 “이것 주웠어요. 땅에 떨어져 있었어요.” 하고 말하며 ‘타먹는 커피봉지’를 흔듭니다. 그러고는 그 커피를 타서 마시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저희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르리라 생각했을까요. “그게 왜 땅에 떨어져 있는데?” 하고 묻지만, 아이들은 능구렁이처럼 모르쇠로 밀어붙입니다.


.. “공부할 수 있는 놈한테는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지만, 슬픈 일이 하도 많아서 공부 따위가 손에 잡히지 않는 놈한테는 슬픈 일을 같이 걱정해 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잖아. 우리 학교에 그런 선생님이 있나?” ‘돼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선생님은 하나도 없었다 ..  (14쪽)




 이튿날, 동네 아이들이 컵라면을 들고 옵니다. 도서관에 놀러오면서 책 읽을 생각은 조금도 안 하는 아이들. 컵라면에 물을 받더니 책으로 뚜껑을 받칩니다. “책은 종이로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책이 다치잖아요.” 하고 말해도 못 들은 척. 그러면서 나보고 “나무젓가락 주세요.” 하고 말합니다. “내가 나무젓가락을 왜 줘야 하는데? 그리고 나무젓가락을 왜 써야 하는데?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나무젓가락을 왜 써야 하는데?” 하고 말하지만, “더럽잖아요!” 하고 말하기만 합니다.

 얼마 뒤, 바깥 나들이를 다녀온 옆지기가 아이들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따끔하게 나무랍니다. “여러분은 친구네 집에 가서도 이렇게 해요? 친구네 집에 가서도 냉장고를 뒤져서 마음대로 먹을 것을 다 꺼내먹고 서랍을 뒤져서 자기 것으로 가지고 해요? 도서관이 뭐하는 곳이에요? 책도 안 읽으면서 그렇게 놀러만 오는 곳이에요? 지난번에 어질러 놓은 것도 하나도 안 치우고 가고. 그렇게 하려면 앞으로 도서관에 오지 마세요!”


.. “어느 나라 사람이든 하면 할 수 있어. 일본인을 이기는 조선인이 나타났지. 더러는 좋은 일본인도 있었지만, 못된 일본인이 더 많았어. 일본인을 이겼다고 몹시 구박을 하더군. 나는 고집이 셌기 때문에 아무리 구박해도 꿋꿋이 연습해서 시합에 나갔지. 그리고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지.” 다들 남자의 억센 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독일 선수가 왔을 때 최초로 국제 시합에 나갔지. 기뻤지. 열심히 해서 결승전에서 3등으로 들어왔어. 일본, 독일, 조선의 순서였지. 일본 국기가 올라갔고, 그리고 …… 그러고 나서 올라간 것은 역시 일본 국기였어. 나는 울었어. 관중들은 기뻐서 우는 줄 알았겠지만, 나는 분해서 울었다. 그 뒤 난 수영을 그만뒀어.” 내 목이 꿀꺽 울렸다. “내가 다시 수영을 하게 된 것은 소순이가 수영을 하면서부터야. 오랫동안 나는 저항해 왔지. 오랜 저항이었어.” ..  (36∼37쪽)




 아이들은 도서관 전화로 장난전화를 걸기도 했습니다. “장난전화 하려면 전화 쓰지 마세요.”라 말해도 “뭐 어때요?” 하면서 스스럼이 없는 아이. 왁왁 소리를 지르고 손찌검을 하거나 회초리를 들어야만 말을 들을까요. 부드러이 타이르는 말은 귀에 꽂히기는커녕 한귀로 빠져나가거나 아예 귀로 들어가지도 못할까요.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들은 다른 동무한테 전화하면서, “○○야, 너, 왕따 시키고 싶은 애 있으면, ○○로 데리고 나와.”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이 말이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그저 장난으로 또는 재미로 다른 동무를 따돌리면서 재미있어 하는지.


.. 얼마 후, 선생님이 벌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국기게양 때 언제나 등을 돌리고 있는 것도 벌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도요. 우리가 교장실에 몰려가려 하자 선생님께선 말리셨죠. 그리고 조금 쑥스러운 듯이 말씀하셨어요. “만일 나를 위해 뭔가 해 줄 생각이 있으면 오키나와에 대해 공부해 다오. 그걸로 충분하다.” ..  (56∼58쪽)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나서 심심하면, 그예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어른들 흉내’를 냅니다. 어디서 얻었는지 화장품으로 얼굴을 허옇게 바르고 눈썹을 세웁니다. 저 나이에 벌써 화장놀이, 아니 어른 흉내라니. 그것도 좋은(?) 어른 흉내가 아니라 껍데기만 들씌우는 어른 흉내를. “예쁘면 좋잖아요!” 하는 아이들 눈에는 어떤 모습이 예쁜 얼굴일까요.

 곰곰이 떠올리면, 우리들 어릴 적에도 텔레비전 가수나 연예인들을 따라하면서 놀았으니, 이 아이들이 ‘텔미’ 춤을 추면서 노는 일도 자연스러운(?) 문화가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텔레비전 연예인 따라하기가 참말 문화가 맞을까요.

.. 하지만 선생님, 스스로 맞서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다들 너무나 순순히 규칙을 따르고 너무나 욕망에 약해요. 사친은 그것도 인간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은 결코 우리를 억누르지 않으세요. 그건 선생님께서 이제까지 사람들한테 억눌려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죄송해요, 선생님, 주제넘게 ..  (66쪽)




 어질러 놓기만 하고 조금도 치우지 않는 동네 아이들. 골목길 마실을 하며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을 스치고 지나갈 때 얼핏설핏 흘려듣는 아이들 말이며 몸짓이며 볼 때면, 하나같이 안쓰럽고 걱정스럽고 슬픕니다. 이 아이들은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요. 이 아이들 부모는 집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요.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하며 지내고 있을까요.

 아이들한테 무엇을 던져 주고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이끌고 있을까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교사가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설까요. 도서관에 오는 동네 아이들한테 책을 주면서 “너희 담임 선생님한테 드리렴.” 했더니, “우리 선생님은 책 안 봐요.”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집에서 부모님들은 책을 얼마나 볼까요. 아니, 책을 본다는 생각을 해 볼까요.


 (2) 이웃집 아이


 옆지기가 동네 아이들을 따끔하게 나무라며 내쫓은 뒤, 성당 반 모임이 있어서 이웃집으로 찾아갑니다. 반 모임에 나오는 분들은 거의 모두 아주머니와 할머니. 오늘은 할아버지 한 분이 있습니다. 1943년에 창영동에서 태어난 뒤 이 동네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할아버지입니다. “그 집에 불난 적 있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뒤로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더라고요.” 할아버지네 집은, 배다리 골목집들 한복판을 꿰뚫으려는 산업도로 예정터 바로 옆에 있습니다. 당신은 태어나서 자라고 학교 다니기도 모두 이 동네에서 했지만, 부모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한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당신 딸아들이 늘  ‘이제 그 낡은 집은 보상 받고 팔아서 우리들(딸아들) 사는 아파트로 오시라’고 말을 해도.


.. “그럼 할머니 혼자 지내세요?” 할머니께선 고개를 끄덕이시더군요. “아드님은 …….” “둘 다 천황 폐하께 바쳤지.” 선생님, 저는 그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천황 폐하께서 아직 감사의 말씀을 안 해 주셨어. 이웃 오야마 씨네도 외아들 미네요시를 천황 폐하께 바쳤지. 역시 아직 감사의 말씀이 없으셨지.” ..  (71∼72쪽)




 반 모임을 하는 집에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있습니다. 옆지기가 이 아이한테 묻습니다. 우리 도서관에 놀러오는 아이들을 아느냐고. 서로 안답니다. 그런데 이 집 아이와 도서관에 놀러오는 아이 매무새가 아주 크게 다릅니다.

 이 집 아이는 동네 어른들한테 꼬박꼬박 인사도 잘하지만, 차 대접을 한다며 어머니가 쟁반에 찻잔을 올려놓으면 자기가 손수 들어서 나르고 할머니한테는 커피를 타 드리기도 합니다. 반 모임을 하는 동안 옆에 같이 앉아서 지켜보고 이웃 아주머니와 이야기도 나눕니다. 똘망똘망하면서 참 맑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 인도네시아 어린이들은 눈이 크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입니다. 그 눈이 어둠 속에서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날아다닙니다. 나는 한동안 입을 열지도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몇 번밖에 다니지 않는 기차를 한밤중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어쩌다 도착한 열차에 벌떼처럼 모여든 거죠. 하지만 몇 명의 아이가 얼마만한 돈을 손에 넣을까요?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쫓아옵니다. 나는 아이들의 눈을 똑똑히 주시했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뚫어지게 보았죠 ..  (88쪽)




 도서관에 놀러오는 아이들 부모는 저녁 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집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만 계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네 부모는 두 쪽 모두 장사를 하는데 저녁 아홉 시가 넘어야 비로소 들어온답니다. 아침에도 일찍 나갈 터이니, 그 집 부모와 아이들이 만나는 때는 아주 짧습니다. 이와 달리 반 모임을 하던 집 아이는 아버지 일터가 바로 집이기도 해 언제나 아이와 함께 있기도 하고 어머니도 집에서 늘 아이와 있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성당에 함께 다니고, 아이는 성당에서 피아노 치기도 하고 있어서(일요일 새벽미사 때 피아노 치기도 했다는군요)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훨씬 깁니다. 또, 부모와 아이가 함께 마음과 뜻을 나누는 일거리와 만남자리가 있고요.


.. 인도네시아 어린이들은 ‘눈이 참 예쁘구나’ 하고 나는 같은 생각을 몇 번이나 다시 했습니다. 눈이 살아 있구나 생각하고 나서 문득 일본 어린이들을 떠올렸죠 ..  (100쪽)




 월요일 아침, 옆지기 동생이 인천으로 찾아옵니다. 세 사람이 차를 타고 일산으로 갑니다. 옆지기가 닭칼국수를 먹고 싶다고 하여 낮밥을 먹으러 어느 칼국수집으로 갑니다. 낮밥 때가 조금 지났는데도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우리 앞에 서 있는 아이 둘이 저를 빤히 바라봅니다. ‘뭐여? 이것들은?’ 저도 아이들을 빤히 바라봅니다. 5초 남짓 그렇게 서로를 바라봅니다. 이 아이들은 왜 제 얼굴을 빤히 바라볼까요.

 자리가 납니다. 세 사람이 둘러앉습니다. 옆자리에도 아이들이 있습니다. 방학 때가 되어서인지, 어머니가 아이들을 이끌고 나온 집이 많아 보입니다. 옆자리 아이도 저를 빤히 봅니다. 저도 마주봅니다. 수염 안 깎고 머리도 안 깎고 그대로 두는 남자가 드물어서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되는지. 하긴, 길을 가다가 저를 보는 아이들이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저한테까지도 들리는 목소리로’ “남자가 왜 머리를 길러?” “여자야, 남자야?” 하고 묻곤 하더군요.


.. ‘마사코는 자벌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127쪽)




 2008년에 새로 나올 교과서에는 어떤 그림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2007년에 나온 교과서 그림을 가만히 보면, 아직까지도 ‘집안일 = 어머니 몫 = 앞치마 두르고 밥하기’에다가, ‘집에 있는 남자 = 신문 보며 담배 태우기 = 방에 앉아서 밥상 받기’입니다.

 더욱이, 여자는 혼인하면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일까지 함께하면서 사회살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아니,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기르는 몫은 오로지 여자한테 넘겨집니다. 아이한테는 어머니가 가르칠 몫과 아버지가 가르칠 몫이 함께 있는데, 두 사람이 함께 가르치고 함께 어울리며 함께 살아간다는 데까지 생각을 이어가는 남자가, 남자들 집안이 드뭅니다. 대학교를 나오고 나라밖 유학을 다녀왔어도 이런 매무새와 생각 틀거리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3) 겨울 안개


 낮밥을 먹고 얼음과자집에 들른 뒤 옆지기와 저는 서울 나들이를 합니다. 연세대 앞에 있는 헌책방에 잠깐 들렀다가, 신촌에 있는 술집 ㅅ에 들러 사장님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술집 ㅅ 사장님을 알고 지낸 지 어느덧 아홉 해. 세상 부대끼는 이야기, 사진기 이야기, 사장님 후배가 신림동에 연 문화쉼터 이야기 들을 나눈 뒤 일산 옆지기 부모님 집으로 갑니다. 버스를 탈 때는 그다지 안개가 끼어 있지 않았는데, 수색을 지나고 고양에 접어들 무렵부터 안개가 짙어집니다. 탄현동에서 내리니 십 미터 앞쯤은 뿌얘서 거의 안 보일 만큼입니다.


.. 나는 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의식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보다는 차라리 10분, 20분이라도 더 아이들과 함께하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  (128쪽)




 겨울인데. 겨울에 어인 안개이지? 겨울이면 추워야지 춥지도 않고 웬 안개야? 대한이가 놀러왔다가 얼어죽었다는 소한을 지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올겨울은 ‘안 춥다 안 춥다’ 말이 많은데, 안 추워도 참으로 안 춥네. 기름값이 치솟아 겨울 난방값 걱정이 크다고들 하는데, 이만한 겨울이라면 땔감 걱정은 그럭저럭 안 해도 되지 않나.


.. 쳇. 이런 공부를 해서 뭐가 될까. 요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면 입시 경쟁에서 낙오된다고 꽤나 살벌한 말을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선생님이 있다 …… 입시 공부도 고등학교나 대학에 들어간다는 목적이 없으면 이 고문과 똑같으리라고 본다 ..  (152∼153쪽)




 이제 1월을 넘겼으니 2월도 있고 3월도 있습니다만, 앞으로 눈이 몇 차례 더 내릴 수 있을까요. 눈이 내릴 만한 날씨가 될까요. 겨울에 눈 아닌 비만 주룩주룩 내리지 않을까요.

 눈 없는 겨울로, 게다가 안개 짙은 겨울로, 날씨가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미쳐가는 우리 땅으로 치닫습니다.

 문득문득 드는 생각으로는, 사람이 제정신을 잃어버리니 날씨도 제정신을 잃어버립니다. 사람이 미쳐가니 날씨도 미쳐갑니다.

 날씨가 엉망이 되기 앞서 우리들이 마실 물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그지없이 사랑하는 자동차 덕분에, 끝없이 새로 닦으며 늘리는 찻길(고속도로 중심) 덕분에, 쉼없이 쓰고 버리는 온갖 물건들 덕분에, 우리들은 미국사람 부럽지 않게 갖가지 물질문명을 즐기면서 우리 땅을 병들게 하고 우리 날씨를 미치게 하며 우리 몸을 더럽히고 우리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 가령 우리 엄마는, “아파트란 사람 살 곳이 못 돼. 우리야 5층이라 그나마 괜찮은 편이지만, 12층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안 됐어. 발이 땅에 붙어 있지 않은 느낌은 정신을 불안정하게 하거든.”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한다. 그럼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아파트에서 자란 나나 남동생은 어떻게 되나? 그런 얘기는 무책임하다고 본다 ..  (156∼157쪽)



 하루가 지납니다. 안개는 걷히지 않습니다. 창문 밖으로 뿌연 자국만 보이고 집이며 길이며 사람이며 잘 안 보입니다. 오늘 낮까지도 안개가 이어질까요. 저녁까지도 안개는 걷히지 않을까요. 이 안개는 그냥 안개이기만 할까요. 우리들이 타고다니는 자동차에서 내뿜는 배기가스와 날마다 먹고 마시며 버리는 모든 쓰레기에서 나오는 먼지가 겹겹이 쌓여 있지는 않을까요.


.. 만들어진 걸 즐기는 것은 조금도 나쁜 게 아니다. 만들어진 것 가운데에도 진실한 것이 많이 있는걸. 하지만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유행만 좇아다니는 아이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사물을 정확히 꿰뚫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학교나 선생님이 정한 일을 단순히 지키기만 하는 아이들이 주로 인기가수 뒤꽁무니나 쫓아다닌다 ..  (173∼174쪽)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답답하지만, 지금 형편으로는 어디로 떠난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없습니다. 어디로 떠난다 한들, 우리 발길 닿는 곳이 포크레인 삽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복부인 지갑에서 홀가분할 수 있는 곳이 우리 땅 어디에 남아 있을까요.


.. 내 뜻대로 고생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억지로 주어진 고통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다. 지금 학교생활이 지긋지긋할 수밖에 없는 건 우리 스스로 변하는 것을 학교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명령이나 강제로 우리를 변하라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일 주일에 한 번 복장검사라는 게 있다 ..  (184쪽)




 옆지기 동생이 모는 차를 타면서 2005년도 판 길그림책을 살피니, 남녘땅에 새로 닦고 있는 고속도로가 자그마치 열일곱 군데나 되었습니다. 서울-춘천, 평택-음성, 당진-대전, 청주-상주, 서천-공주, 순천-완주, 익산-장수, 고창-담양, 구미-달성, 부산-울산, 기계-신항만, 구미-화산, 대구-부산(2), 목포-순천, 무안-광주, 통영-대전, 서울 외곽.

 왜 고속도로로 새 길을 내야 할까요. 새 길을 내야 한다고 해도 여느 국도로 내도 괜찮지 않은가요. 자전거도 함께 다닐 수 있는 길로, 사람들이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길로 닦아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기름을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다고,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길을 이렇게도 자꾸자꾸 새로 내고 있나요. 환경을 걱정하는 자동차도 아닌 기름만 먹어대는 자동차인데, 논밭을 갈아엎고 산을 깎거나 굴을 내면서까지 새 찻길을 늘려서 우리 삶터와 우리 몸뚱아리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새 길을 자꾸자꾸 닦아야 나라살림이 커지고 우리 살림도 나아지는가요.


 (4) 하이타니 겐지로 님 책 《우리와 안녕하려면》


 하이타니 겐지로 님 책 《우리와 안녕하려면》을 다 읽었습니다. 책을 덮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살며시 다시 펼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 살핍니다. 읽으면서 가슴에 콕콕 박혔던 대목을 소리내어 다시 읽어 봅니다.


.. 학교는 가르치는 일이 지나치게 중시되어, 어린이나 학생들의 목소리가 교사에게 닿지 않는 세계였습니다. 나는 이런 현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교육의 왜곡은 거기에서 비롯되는데……라는 생각에 슬픔이 더해졌지요. …… 생각해 보면, 나는 강한 것이나 너무 풍요로운 것에서는 무엇 하나 배운 것이 없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약한 것, 가난한 것에서 생명의 빛을 발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  (머리말)



 아파하는 사람들을 곁에서 보아 왔기에, 아니 겐지로 님 스스로 아파하면서 살았기에, 아니 겐지로 님 스스로 아파하는 만큼 이웃사람들 아픔을 구경하지 않고 어깨동무하면서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살았기에 《우리와 안녕하려면》이라는 책을 조촐하게 묶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배부른 사람은 배부른 사람들 마음을 압니다. 힘있는 사람은 힘있는 사람들 마음을 압니다. 배곯는 사람은 배곯는 사람들 마음을 압니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들 마음을 압니다. 다만, 그저 알 뿐이라면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떠올리지 못하듯 쉬 잊어버리거나 놓아버리겠지요. 머리와 마음으로 느끼고 알아간 다음, 몸을 움직여서 부둥켜안거나 부대껴야 비로소 ‘안다는 일이란 이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함께 살 수 있겠지요.

 자동차 배기가스를 듬뿍 들이마시면서도 찻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안 이 나라 교통정책과 자동차꾼 마음씀을 느낍니다. 두 다리로 터벅터벅 걸으면서 온삶을 두 다리로 버티며 살아온 여느 사람들 발자취를 깨닫습니다. 팔이 다치고 다리가 다치면서 또 몸살이 나고 고뿔에 걸리면서 고단한 곁사람들 삶은 어떠할까 돌아봅니다. (43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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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만호-한밭의 해돋이를 휘돌아》(대전광역시 동구,1995)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발자취를 골목길을 구비구비 더듬고 헤집으면서 부대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구청에서 홍보자료로 묶어냈는데, 글쓴이는 홍보자료로 묶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대전사람들 삶과 문화를 말하고 싶어서 구청 부탁을 받아들여서 골목길 나들이를 했답니다. 벌써 열세 해 묵은 책인데, 대전 동구청에 연락을 하면 이 책을 받아볼 수 있을까요.

 요즈음은 신문마다 ‘골목길 탐사’라는 걸 곧잘 하면서 ‘맛집 찾기’ 꼭지를 줄줄줄 이어싣기도 합니다. 나중에 낱권책 하나로 묶어내기도 하기에, ‘골목집 맛집 탐사’와 ‘빛깔 있는 골목과 거리’ 이야기를 다룬 책이 제법 많습니다. 이런 책들이 어느 곳 어떤 골목과 거리를 다루었는가 찬찬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서울 인사동과 서울 홍대 앞과 서울 강남이나 압구정동이나 서울 명동, 서울 남대문과 동대문, …… 서울, 서울, 또 서울입니다. 어쩌면, 서울 아닌 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골목길 이야기는, 그 서울 아닌 곳 사람들 스스로도 찾아서 읽지 않으니까 굳이 살펴볼 까닭이 없을지 모릅니다. 서울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서울 골목길 이야기만으로도 넉넉하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문화를 말하는 골목이나 거리’라 할 때에는, 먹을거리와 입을거리와 돈쓸거리를 선사해 주는 가게만 알려주면 흐뭇하다고 받아들이는지 몰라요.

 제주섬 중간산에서 홀로 살면서 오름 사진을 찍은 김영갑 님은 당신 삶을 조곤조곤 밝혀 적은 책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하날오름,1996)에서 “우리는 그냥 소나무를 푸르다고 한다. 소나무의 푸르름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확연히 다른데도 푸르다고만 한다.(58쪽)”고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제주섬 오름 하나만 찍어도 아침과 저녁에 따라, 새벽과 낮에 따라, 어제와 오늘에 따라, 궂은 날과 맑은 날에 따라, 봄과 가을에 따라, 여름과 겨울에 따라, 비오는 날과 비 걷힌 날과, 구름이 몰려드는 날과 구름이 군데군데 떠 있는 날과, …… 다른 모습 다른 느낌 다른 이야기가 참으로 많아서,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이 오름 하나라도 제대로 담아내기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인천은 온 골목길을 다 밀어붙이고 갖은 골목집을 싹 쓸어내면서 30층짜리 아파트, 50층짜리 아파트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시장부터 소매 걷어붙이며 나서고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운동장 헐리는 소식은 모두들 한목소리로 안타까워하는데, 인천 숭의동 공설운동장을 헐어버리려는 소식에는 인천 연고 야구단과 선수들도 아무 소리 안 냅니다. 서민 삶터인 배다리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내겠다는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그런 길을 내겠다고 하면 펄쩍 뛸 테지요. 인천을 비롯한 우리 나라 어느 곳이나 오로지 ‘서울로 가는 길’을 내려고 서민들 작은 집을 깔아뭉갭니다. 산과 들만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사람 삶터도 쓰러뜨립니다. (43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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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지기 신발 뒤축이 한쪽으로 많이 갈리는 바람에 걷기 몹시 나쁩니다. 걸음새가 한쪽으로 쏠리면 신발도 한쪽이 많이 닳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쪽만 갈리면서 걸음새가 뒤틀립니다. 신집에 가서 이놈 저놈 둘러보노라니, 신집 아저씨가, “신발이 안 갈리면 어떻게 해요. 우리들도 먹고살아야지요.” 하고 웃으면서 말합니다. 틀린 말이 아니니 마주보며 빙긋 웃습니다. 그렇지만 뒤축이 단단해 잘 안 갈리는 신발이라 한다면, 몇 푼 더 얹어 주고라도 그 신으로 사 신지 않을까요. 싸게싸게 많이 팔아도 장사가 될 수 있지만, 알맞는 값을 제대로 치르면서 팔아도 장사가 될 수 있을 텐데.

 지난 토요일, 개봉동에 사는 고등학교 적 선배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선배네 집은 아파트. 아파트 이름은 ‘로즈빌’. 선배는 혼인한 뒤로는 책 한 권 사읽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갓 혼인했을 때 집들이를 가니 “내 꿈이 서재 하나 가지는 거다.” 하면서 “책이 얼마 없지만 함 봐라.” 하면서 자랑을 했건만, 이제는 ‘책 있는 방’이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선배는 날마다 현장에 나가 공무원들과 복닥이는 게 일이라는데. 자동차 몰고 쉴 틈 없이 출장을 다니는 만큼 마음 다잡고 책을 손에 쥐기 힘들겠지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밥먹고 아기 보고 텔레비전 보다가 술 한잔 마시고 잠들기 바쁠 테고.

 눈없는 예수님나신날이 지났습니다. 날짜가 12월하고도 25일이면 ‘세 번 춥고 네 번 따뜻하더라’는 우리네 날씨가 아니더라도 오들오들 쌀쌀해야 하건만, 자전거 타고 나들이 다녀오기에 걸맞을 만큼 따사롭습니다. 앞으로도 눈있는 예수님나신날을 맞이하기는 힘들겠지요. 그래도 예수님오신날이라 하기에 사진기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골목길 마실을 다녀 봅니다. 옛 미림극장 앞을 지나고 화평동을 지나 화수동을 거쳐 화도진공원을 가로질러 만석동으로 갑니다. 너나들이가 사는 만석동 9번지 쪽방골목에서 서성거리며 사진을 찍다가 동인천 쪽으로 나오는 길, 9번지 들머리에 사는 아저씨가 빨래를 걷으면서 “포근합지요?” 하고 인사말을 건넵니다.

 만석동 9번지를 가운데 놓고 동서남북으로 제강소 제분소 철공소 방직공장 들이 줄줄줄 늘어서 있어, 걷는 내내 코가 냅습니다. 집에 뒷간을 들일 수 없어 공동뒷간을 쓰는 사람들. 이 골목 사람들한테 나라나 지역정부는 무엇을 베풀어 주면 좋을까요. 열 해쯤 앞서처럼 동네 1/4을 싹둑 잘라서 공장으로 드나드는 큰차 다니기 넉넉하도록 찻길 넓히기? 동네 1/5씩 잘라내며 빌라나 아파트 올려세우기? 만석동 9번지 사람들은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 수 있을까요? 큰 짐차 씽씽 내달리는 넓혀진 길에 이 골목 사람들이 차로 오갈 일이 있을까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골목집 허물고 30층 가까이 올려세운 아파트를 올려다봅니다. 놀이터 하나 보이지 않고 땅위 주차장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땅밑 주차장 들머리만 보입니다. 달동네 판자집처럼 다닥다닥 붙인 30층 안팎 아파트 건물들. 이웃끼리 얼굴 볼 일도 없겠습니다. (4340.12.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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