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의 곡예사
R. O. 블레크먼 각색 및 그림, 박중서 옮김 / 샨티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성모의 곡예사
- 그림ㆍ각색 : R.O.브레크먼
- 옮긴이 : 박중서
- 펴낸곳 : 샨티(2006.12.25.)
- 책값 : 8900원


 우리 나라에 종교가 있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글쎄, 있었을까요. 집마다 업을 모시고, 새벽에 맑은 물 한 그릇 떠 놓은 뒤 비손을 하고, 서낭당이나 마을을 지킨다는 나무에 비손을 하는 일은 있었으나, 따로 종교라고 할 만한 믿음은 없었지 싶어요. ‘주 찬양’을 하지 않아도 ‘하느님 사랑’을 알았고, ‘부처님 만세’를 읊지 않아도 ‘온갖 목숨붙이를 자기 몸처럼 여기며 함부로 마주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 캉탈베르는 서글펐다. 그는 곡예를 통해 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  〈25쪽〉


 지금도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콜럼버스’라는 사람이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찾은’ 사람이라거나 ‘탐험가’로 가르치는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도 곧잘 하고요.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과 계약을 맺고 돈과 영주라는 지위를 얻고자 쿠바며 북미에 있는 여러 섬 토박이를 끔찍하게 죽이고 마을을 불살랐으며, 그곳 사람을 죄 노예로 삼았습니다. 콜럼버스 뒤로도 수많은 ‘탐험가’들은 중남미 대륙에서 어마어마한 학살과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중남미 토박이는 아프리카 토박이처럼 노예로 붙잡아 써먹기 어려움을 깨닫고는, 이른바 ‘인종청소’를 합니다. 토박이 문화와 문명을 모두 짓밟고 불사르고 깨부수고 무너뜨리면서. 불타오르는 마을과 외마디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탈자와 학살자는 한결같이 외칩니다. “하느님 이름으로! 성경 말씀으로!”

 북미에서 이루어진 약탈과 학살도 중남미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방법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고, 중남미 때보다 훨씬 꼼꼼하게 땅빼앗기와 인종청소를 이루어냈습니다. 북미는 중남미와는 달리 통째로 살갗 흰 사람들 나라가 되어 버립니다.


.. 차라리 수사가 되었더라면, 따뜻한 집에 살면서, 친구들하고도 어울리고, 새들에게 모이도 주면서, 이 세상의 불행 따위는 모르고 살아갈 수 있을 터인데. 그리고 성모님께 말씀드릴 수도 있을 터인데, 이 서글픈 마음을. 그러면 성모님께서는 모두 다 이해해 주시겠지 ..  〈49∼51쪽〉


 서양 종교가 발을 디디거나 뿌리를 내리는 나라치고, 그 나라나 겨레한테 고유하게 있던 문화와 버릇과 삶과 터전이 고이 이어가는 곳을 보지 못합니다. 앞에서는 사랑을 말하고 입으로는 나눔을 읊지만, 정작 이루어지는 일은 빼앗음과 괴롭힘이었어요.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믿음으로 사랑과 나눔을 함께하려고 애쓴 마음 착한 이들은 틀림없이 있습니다만, 권력을 쥐고 사회를 움직이며 사람들한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휘두르는 종교라는 방망이는 여린 이를 내리치거나 짓누르거나 울궈내는 연장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바퀴벌레도 사랑하고 까마귀도 아끼며 구렁이도 어여삐 여기리라 믿습니다. 닭공장에서 전기불빛에 눈이 벌건 채 알만 낳고 잠을 못 자는 어미닭도 사랑하고, 비닐집에서 사료와 농약을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딸기며 토마토며 푸성귀도 사랑하시겠지요. 개미는 개미라서 사랑하고, 비둘기는 비둘기라서 사랑하며, 고등어는 고등어라서 사랑하리라 믿습니다. 독일사람은 독일사람이라서, 네덜란드사람은 네덜란드사람이라서, 헝가리사람은 헝가리사람이라서 사랑하리라 믿습니다. 이리하여 키체 부족 사람은 키체사람이라서 사랑하고, 이러쿼이 부족 사람은 이러쿼이사람이라서 사랑하며, 류우큐우 부족 사람은 류우큐우사람이라서 사랑하리라 믿습니다.


.. 수도원의 모든 형제들은 각자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크리스마스를 맞아 성모 마리아께 바칠 선물을 마련하기에 바빴다. 누구는 책을 쓰고, 누구는 조각을 하고, 누구는 요리를 하고, 누구는 시를 짓고, 누구는 작곡을 하고, 누구는 그림을 그렸지만, 캉탈베르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  〈82∼84쪽〉


 만화 《성모의 곡예사》에 나오는 ‘곡예사 캉탈베르’는 북중남미에 살던 토박이 같은 사람이었을까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자기가 즐길 수 있는 놀이, 자기가 가진 재주를 또렷하게 깨달으며 사는 사람. 남 앞에 우쭐거릴 줄 모르며, 자기가 기쁘고 즐겁게 맞이하는 일과 놀이를 기꺼이 이웃과 나누려는 사람. 자기가 가진 것은 자기 혼자만 누릴 것이 아니라 이웃과 스스럼없이 함께 누릴 것으로 여기는 사람. 꾸밀 줄 모르고 감출 줄 모르며 덧바를 줄 모르는 사람.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사람.

 곡예사 캉탈베르는 자기한테 하나 있는 재주 ‘곡예’로 세상을 아름답게 보듬으며 살고자 했습니다. 이 뜻이 성모 마리아님한테, 다른 수사들한테 건네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북중남미 토박이를 거의 모두 죽이고 없앤 살갗 하얀 사람들은 오늘날에 와서 ‘북중남미 토박이 슬기를 배우고 나누자’며 이들이 입으로 남긴 이야기를 책으로도 묶고 이들 삶을 좇아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강의하고 교육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북중남미 토박이는 죽었습니다. 곡예사 캉탈베르는? (4340.3.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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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백작 - 농부는 백가지 일을 하고 백가지 작믈을 기른다
후루노 다카오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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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백성백작
- 글쓴이 : 후루노 다카오
- 옮긴이 : 홍순명
- 펴낸곳 : 그물코(2006.7.22.)
- 책값 : 8000원

 
 이 책 하나 14 - 백성백작
 : 추위를 견디니 달콤한 봄입니다


 엊그제만 해도 겨우내 긴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무논에서 왁왁 울어댔습니다. 멀리서도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고 눈이 오며 확 쌀쌀해지니 개구리 소리가 잦아듭니다. 설마 무논에서 꽁꽁 얼어붙었을까요.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가기는 어려웠을 텐데, 어찌 되었을는지.


.. 나는 30년 가까이 벚꽃 피는 계절에 이런 일만 해 왔다. 여러 해 농사를 지었건만 씨를 뿌리고 싹이 날 때까지는 불안과 즐거움이 엇갈리는 나날이 계속된다. 올해는 토마토, 가지, 피망 등 모두 순조롭고 균일하게 싹이 터 두 잎을 벌리고 있다. 그렇게 보통은 표현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는 균일하지 않다. 쌍잎의 방향, 본잎이 나는 방식 등 어느 하나인들 같은 모가 없다. 인간의 얼굴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르듯이 자연계는 진정한 뜻으로 다양성에 충만해 있다. 농업은 생산력을 올리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가능한 한 이 다양성을 균일화하는 행위일 것이다 ..  〈188∼189쪽〉


 굳이 옛사람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먹는 밥과 반찬을 보면 그이 삶과 성격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김치 하나만으로도 밥을 뚝딱 해치운다고 했습니다만, 김치는 배추김치 하나만 있지 않습니다. 무김치도 갓김치도 오이김치도 겉절이도 물김치도 있습니다. 무채도 있고 깍두기도 있으며 섞박지도 있습니다. 따로 김치를 담그지 않고 무나 배추나 오이 들을 날것으로 먹어도 좋습니다. 날이 풀리는 봄이면 들풀과 멧나물을 뜯어서 흙만 털고 먹어도 좋고요. 이처럼 밥 한 그릇을 비워도 온갖 반찬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모습을 고이 간직한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자기 입에만 달짝지근하게 느껴지는 반찬에만 손을 대고 흰 쌀밥만을 먹는 사람은, 고이 지닌 자기 모습을 못 찾거나 못 보지 싶어요.


.. 우리들은 달빛 아래 낫으로 벤 벼를 모아 콤바인에 떨었다. 나는 달빛 아래 가족이 함께 일하는 행복을 갑자기 느꼈다. 유기농업의 가장 좋은 점은,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녁으로 돈가스와 맥주가 최고였다 ..  〈165쪽〉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먹을 만한 곡식을 거두는 논밭은 아주 조그마해도 넉넉합니다. 식구가 늘면 조금 더 있어야 하지만, 네 식구 논밭은 50평으로도 좋습니다.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고 싶다면 100평쯤이면 꽤 넓을 테지요. 이만한 크기라면 기계 없이 손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기계란 한꺼번에 많이 심고 농약과 비료로 한꺼번에 다스리며, 마지막에도 한꺼번에 거두어들여 일손을 적게 들이고 더 많이 얻어서 돈을 벌려는 생각에서 씁니다.

 장사를 할 때 먹고살 만큼만 벌겠다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뼈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먹고살 만큼을 넘어, 다른 데에도 돈쓸 일이 있기 때문에 하루 열 몇 시간씩 몸이 무너지도록 일에 시달리고 맙니다.


.. 이곳은 확실히 포도밭이 넓다. 그렇지만 한 집 앞 면적은 작아, 360평에 불과하다. 1년 수입은 15만 엔쯤이라고 한다. ‘사치만 하지 않으면 가족 네 사람 먹고 지낼 만해요.’ 햇빛에 그슬린 얼굴에 웃음을 띄우면서 농민 우씨는 말했다 ..  〈159쪽〉


 없는 이한테는 ‘사치’를 말할 것이 없습니다. ‘살아남기’, ‘살아가기’가 걸린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있는 이들은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재산을 쌓을 수 있었을까요. 있는 이들 재산은 이들이 일한 대가대로 알맞게 받은 셈인지요. 또한, 없는 이들은 일한 대가대로 알맞게 버는 셈인지요.

 우리 사회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어서, 두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해도 받는 돈이 다릅니다. 여기에 학력 푸대접이 있어서, 둘이 똑같은 날 회사에 들어가 똑같은 시간을 똑같은 일을 해도 둘이 받는 돈이 다릅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백화점에서 파는 값과 길가 좌판에서 파는 값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일한 만큼 올바르고 알맞는 대접을 받고 대가를 얻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몸이 망가지도록 일에 시달려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 대접, 일한 대접을 못 받으니까 삶이 팍팍해지고 일이 괴로울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 한편 1950년대 논에는 여러 가지 물고기―물장군, 소금쟁이, 새우, 거머리, 참개구리…… 잠자리도 고추잠자리만 아니라 실잠자리, 가는실잠자리, 갈구리측범잠자리, 왕잠자리, 밀잠자리, 검은물잠자리, 물잠자리 등 다양한 잠자리들이 있었다 … 논에 물고기가 없어지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다. 농약과 제초제 이전에 많은 물고기가 죽었다. 그러나 결정적 원인은 논의 경지정리로 연못과 툼벙이 메워지고, 물길이 3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데 있다 … 독자 여러분, 논에 물고기가 살았던 때를 기억해 보세요. 모르는 분은 상상해 보세요. 논이나 물길에 물고기가 살고 어린이들이 물고기를 잡습니다. 먹을거리 교육이다, 환경이다 하면서 인공 정보를 부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줄 필요가 없습니다. 논에 물고기가 뛰노는 풍경을 재생하면 됩니다. 이것이 아마 아파트 세대의 의무일 것입니다 ..  〈154∼155쪽〉


 부모들은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사람 대접을 받기를 바라며 학교에 넣습니다. 아이가 어른으로 커 가는 길에 대학교를 굳이 다니지 않아도 올바르고 씩씩하고 훌륭하며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졸업장이 없으면 사람 대접을 못 받기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입시교육으로 몰아세웁니다. 자격증이라는 종이쪼가리가 없어도 차근차근 일을 배우면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는 우리들이지만, 이 자격증 문서를 보고 사람을 뽑고 일삯을 주기 때문에, 현장과 동떨어진 학원에 돈을 쏟아붓고 시간을 헤프게 씁니다.

 세상 어느 지식이 쓸모가 없겠느냐만, 너무 많은 세상 지식은 외려 우리를 좁은 우물에 가둔 채 더 널리 더 멀리 더 깊이 바라보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책을 보며 물고기 이름을 외우고 꽃피는 철을 익힌들 무엇하겠습니까. 길가에 자라는 풀이름을 모르고, 어시장에서 물고기 한 마리 사서 다듬거가 반찬으로 다룰 줄 모르는데. 한국사람들이 꼬맹이 때부터 영어를 빈틈없이 배운들 무엇하겠습니까. 정작 한국말은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영어 낱말과 말투를 어설피 한국말에 뒤섞으며 지식 자랑을 하는데.


.. 유기농업의 일 가운데 나는 풀매기를 가장 좋아한다. 혼자면 천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여럿이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 요컨대 잡풀도 해충도 자연의 다양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농업은 생태계 진화의 법칙을 따르면서 이 법칙을 인공적으로 억제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하여 노동력을 투입한다. 나의 경우 스낵 완두콩의 제초작업니다. 요즘 ‘농업은 환경을 지킨다’는 표현이 자주 쓰이지만, 생태계 진화의 일반 법칙으로 비추어 보면, 이 표현은 좀 이상한 말이다. 농업은 다양해지려고 하는 환경을 오히려 억누르고 있다. 잡풀이나 해충이 생태계를 다양하게 하는 활동을 하는 것을 사람은 자기 필요에 맞추어 무시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한다 ..  〈128∼129쪽〉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합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혼자일 때는 제 빠르기에 맞추어 달리며 둘레를 구경할 수 있고, 혼자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습니다. 여럿일 때는 함께 바라보는 둘레 모습에 놀라워하고 기뻐하기도 하다가는,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요사이는 시골도 도시도 차가 지나칠 만큼 늘어나서,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며 생각에 잠기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잠깐 생각에 잠겼을라치면 앞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들 때문에 화들짝 놀랍니다. 갑자기 밀어붙이는 차에 치이지 않으려면 마음이 조마조마, 마음을 바짝 조여야 해요. 자동차가 달릴 때 나는 소리는 귀를 째듯 시끄럽습니다. 게다가 도시는 큰길가뿐 아니라 골목길에서도 한갓지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눌 만한 터전이 못 됩니다. 갖가지 소리들이 마음을 어수선하게 흔듭니다.

 오늘날 문명은 우리들이 ‘온갖 소리에 무덤덤하도록 길들이는’ 문명일까요. 더 크고 많고 빠르고 힘센 것을 좇도록 하면서 온갖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내모는 문명일까요.


.. 1950년대 경지정리를 하기 전 우리 마을의 논은 모양이 다양했다. 세모꼴, 바나나꼴, 부채꼴, 긴 막대꼴 등 여러 모습이었다. 논의 높낮이도 제각각이었다. 논 한복판을 손으로 판 배수로가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버드나무가 자랐다. 그 당시 논의 둑에는 감나무나 치자나무가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다. 경지 정리 이후 논은 대체로 100m×30m의 긴 네모꼴로 정리되었다. 그래서 트랙터나 이앙기, 콤바인 등 기계작업의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논의 풍경은 획일적이고 단조로워 아무 재미도 없게 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보기 지루한 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  〈122∼123쪽〉


 학교 건물을 보면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느껴집니다. 높은 울타리, 모두 똑같이 네모난 상자 같은 건물, 굳게 닫힌 창문과 전깃불을 켜지 않으면 어두운 골마루와 교실, 아이들이 뛰어놀지 않는 빈 운동장, 겉보기로 좋으라고 플라스틱 잔디를 깔아 놓은 운동장, 똑같은 옷(학교옷)에 똑같은 머리길이와 머리모양, 똑같은 신에 비슷비슷한 가방을 멘 아이들…… 저 아이들은 가슴에 붙여야 하는 이름표에 적힌 글자만 다를 뿐, 모두 틀에 박힌 붕어빵처럼 똑같은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고 세상일을 똑같은 눈길로 바라보며 똑같은 생각으로 살아가도록 길들여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새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줄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모는 자가용에 아늑하게 타서 학교 문앞까지 가는 아이들이 늡니다. 어버이 자가용이 아니더라도 마을버스나 학원버스가 학교 문앞과 집 둘레 골목길 또는 아파트 들머리를 오가며 아이들 다리가 힘을 안 써도 되게 해 줍니다.

 제 어릴 적 동무들과 국민학교를 다니던 무렵에는, 다 다른 옷차림에 머리모양에 머리길이에 누가 누구인지 척 보면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초등학교 아이들조차 비슷비슷 매한가지로 느껴집니다. 그나마 조금씩 다르구나 느껴지던 초등학교 아이들은 중학교라는 곳에만 들어가면 한결같이 붕어빵이 되고 맙니다. 한국땅에서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아이들, 가장 지루하고 딱딱하고 메말라 보이는 아이들이라고 할까요. 모두 어슷비슷하게 되면, 이 아이들 머리통에 지식쪼가리 집어넣기는 수월할 테지만, 이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 꿈을 간직하고 키워나기란 별따기와 같을 테지요.


.. 밭에 채소만 여러 해 심으면 잡초가 늘고 해충이 늘고 이어짓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 는다. 그래서 3년 밭으로 사용하면 다시 논을 만든다. 거기 벼를 심으면 벼만 계속 심던 논보다 튼튼하게 잘 자란다. 거꾸로 논을 밭으로 만들면 잡초나 해충 발생이 매우 적다 ..  〈104쪽〉


 저는 책을 한 권 사서 읽을 때 으레 다음처럼 합니다. 먼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힘껏 해서 돈을 법니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 둔 뒤 지갑을 채우고 자전거를 타고 책방으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책방은 가까운 곳에도 있지만 제법 먼 곳에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지나고 찻길도 가로지르노라면 이곳저곳에서 저마다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대낄 수 있습니다. 어느덧 가고자 한 책방에 다다르면,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갑니다. 땀을 들이며 느긋하게 몇 시간 동안 책을 고릅니다. 딱히 어떤 책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기 때문에, 그날그날 책방에서 만난 온갖 책을 하나씩 살피며 제 주머니에 든 돈에 알맞는 만큼 책을 고릅니다. 그리곤 가방에 넣고 다시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새책은 새책대로 읽고, 헌책은 걸레로 먼지를 닦아 줍니다. 걸레는 제가 손빨래로 빨아 놓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한 손에 볼펜을 듭니다. 읽으며 제 눈길을 끌거나 마음에 와닿는 대목에 밑줄을 긋고 빗금을 치거나 별을 그립니다. 빈자리에 이것저것 적바림할 때도 잦습니다. 책을 다 읽은 뒤에는 책꽂이에 얌전히 꽂아 두는데, 꽂아 두기 앞서 스캐너로 책 겉그림을 긁고, 책읽은 느낌도 몇 줄이나마 적어 봅니다.


.. 그렇게 말하면 ‘뙤약볕 아래 열심히 논에서 일꾼으로 일했던 오리 친구를 잡아먹다니 가엾지도 않아요?’라고 걱정을 듣는 일도 있다. ‘당신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채소, 쌀도 먹을 것 아니에요? 그들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청둥오리도 소도 돼지도 닭도 생선도 쌀도 채소도 인간도 생명은 하나, 모두 같습니다.’ 그런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도 문제의 본질은 청둥오리가 가엾다기보다 ‘왜 사람은 평상시 먹는 것에 대하여 가엾다고 생각하지 않는가’에 있을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 쓰고 버리는 시대에 우리들은 ‘먹을거리’가 생명이라는 당연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  〈97쪽〉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담겼다는 말을 처음에는 너무 대단한 말이라고 느껴서 살갗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고 뭇 목숨붙이를 가만히 돌아보는 동안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데, 밥알 하나도 소중한 목숨이고, 김치 한 조각도 소중한 목숨입니다. ‘밥’과 ‘김치’이기 앞서, 이들은 저마다 땅에 뿌리내리며 살아가던 풀목숨이었습니다.

 물고기를 먹든 뭍고기를 먹든 똑같습니다. 우리가 즐기는 밥상에 오르기 앞서는 모두 목숨이었어요. 우리가 즐기는 밥상에 오른 뒤에도 목숨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목숨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나라는 목숨 하나가 하루 더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나 하나 살자면 다른 목숨 몇을 늘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다른 목숨붙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서로가 서로한테 힘을 얻어서 살아갑니다. 사람 삶도 ‘더 있는 사람이 나누어 덜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한테 더 있는 것을 기꺼이 쓰거나 나누고, 나한테 모자란 것을 기꺼이 얻거나 받습니다.

 모두모두 소중한 목숨이니 밥알 하나 함부로 흘릴 수 없고, 땅바닥에 떨어진 밥풀도 스스럼없이 주워서 먹습니다. 모두모두 소중한 목숨이니 이웃이나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푸대접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일한 대가를 알뜰히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쓰게 됩니다. 생각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다고 해서 적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소중한 목숨이니, 고달프거나 힘겨운 이를 보면 따순 손길을 나누고 싶고, 한손을 내밀어 돕고 싶습니다.


.. 그렇기는 하나 요즘 논밭에서 일을 거들거나 노는 아이들이 매우 줄었다. 일본 논밭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현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일본의 대지에 농약이나 제초제, 화학비료라는 편리하고 위험한 독물을 대량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일 것이다. 그것은 또 경제의 고도 성장과 궤도를 같이한다 … 밭을 ‘간다’는 것은 마음을 가는 것이고, 동시에 일을 거드는 아이들의 마음을 가는 것이다. 우리는 돈만 내면 외국의 수입 농산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논밭을 부모와 자식들이 갈았던 것같이 외국의 논밭을 부모와 자식들이 갈 수는 없다 ..  〈88∼89쪽〉


 우리가 읽는 책은 돈을 주고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돈을 내고 사거나 빌려 깃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은 돈을 치르고 사서 입을 수 있습니다. 돈 하나면 거의 모든 옷밥집이며 문화살이를 즐길 수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참말로 돈 하나면 무엇이든 살 수 있을까요.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는 책, 마음을 살찌운다고 하는 책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요. 책이라는 ‘물건’이라면 얼마든지 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책에 담긴 ‘줄거리’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많은 돈을 치러서 책이라는 ‘물건’을 산다고 해서 책에 담은 ‘줄거리’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요. 값싼 헌책 한 권을 사면 ‘줄거리’를 못 얻을까요.

 큼직큼직한 책방에 마일리지 쌓으러 가고, 인터넷책방에서 턱없이 깎아주거나 끼워팔기마저 하는 책을 손쉽게 산다고 해서 ‘책읽기’가 제대로 이루어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책을 산다면, 틀림없이 책이라는 ‘물건’은 우리 손에 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 하나가 이루어지는 ‘땀방울과 흐름’은 못 느끼지 싶어요. 책 하나에 담긴 ‘줄거리’를 빚어내려고 애쓴 글쓴이 땀방울, 책에 담는 줄거리를 알뜰히 엮어내어 살가이 보여주려고 힘쓴 출판사 손길, 애써 꾸려낸 책이 우리들한테 두루 보여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책방사람 움직임, 책방을 둘러싼 우리네 마을과 사회 터전, 이 여러 가지까지 함께 느끼며 책에 담은 ‘줄거리’를 느끼자면, ‘물건’이 아닌 다른 것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 퇴비만으로 키운 밀가루에는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부추를 썰어 넣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쳐서 굽기만 해도 정말 맛이 있다. 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 원래 밀에는 밀의 맛이 있고, 쌀에는 쌀의 맛이 있고, 무에는 무의 맛이 있다. 그 맛을 내는 농법과 요리법, 즉 자연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  〈79쪽〉


 시골집에서 밥을 해서 먹을 때와, 서울 같은 큰도시에 있는 밥집에서 돈을 치르고 사먹을 때 맛이 크게 다릅니다. 밥하는 사람 마음도 다르겠지만, 쓰는 물도 다르니까요. 제아무리 유기농으로 지은 쌀로 밥을 한들, 도시에서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 좋은 쌀을 씻는 물이, 그 좋은 쌀이 익으면서 어우러지는 공기가 깨끗하지 못하니까요. 그렇다고 깨끗한 물을 멀리서 사들인 뒤 짓는다면 밥이 맛있을까요? 글쎄, 얼추 비슷해지기는 해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깨끗한 물 길어 와서 쓰면 뭐해요. 이웃들은, 다른 사람들은 더러운 물에 더러운 공기로 살아야 하는걸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누구나 맛있는 밥을 지어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느 곳에 살든 깨끗한 물과 공기를 즐기며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씽씽 달릴 찻길을 끝없이 새로 닦는 공사판보다, 사람들 살림집이 조금 낡았다고 해서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알뜰살뜰 살아오던 사람들을 죄다 내쫓고 재개발한다고 싸그리 무너뜨리는 막개발보다, 서로서로 웃고 어우러지며 살아갈 신명나는 한마당을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 아이들을 죽순 캐는 데 데리고 갔다. 아이들은 눈높이가 낮아서일까, 죽순을 정말 잘 발견한다. 흙 표면에 낙엽을 뾰죽이 치밀어 올리는 죽순을 차례차례 발견하면서 좋아라 날뛰고 있다. 죽순 찾기에 싫증이 나면 나무를 오르거나 언덕에서 미끄럼을 탄다. 뒷산은 아이들의 천국이다. 부모들이 일하는 옆에서 놀고 있다. 농사를 지어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풍경의 하나다 ..  〈24쪽〉


 어버이가 하는 일을 딸아들이 이어서 하는 일을 보기 힘들어지는 우리 삶터입니다. 어버이가 하는 일을 딸아들이 남부끄럽다고 생각하는 탓도 있고, 어버이부터 딸아들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이름을 한껏 날리며 몸을 덜 쓰며 아늑하게 일할 자리를 얻어 주길 바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들, 어버이가 아닌 딸아들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어떠한가요. 지금 우리들이 하는 일은 우리들이 낳아서 기를 딸아들한테 물려줄 만한지요. 자기가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동무나 동생들한테 물려줄 만한 일을 하고 있는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한테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을 가르쳐서 이어주고 싶은지요.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먹고사는 길로 할 만한 일이라면, ‘자기가 낳아서 기르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며 온삶을 같이 살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어야지 싶습니다. 이런 일이 아니라면, 자기 딸아들한테든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이웃이나 동무한테든 자기가 지금 하는 일을 물려줄 수 없겠지요.


.. 식물의 잎은 태양의 빛을 받게끔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속이 앉은 배추 쪽이 본래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시금치도 연둣빛을 띠고, 잎끝이 조금 갈색이 되어 있다. 데쳐서 먹어 보면 뿌리도 잎도 달아 맛이 각별하다. 잎이 땅바닥에 기는 당근도 입안에서 녹듯이 부드럽고 달다. 추위를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  〈14쪽〉


 추위를 견뎌냈기 때문에 부드럽고 단 빨간무입니다. 추위를 견뎌내지 못한 빨간무라면, 비닐집에서 키운 빨간무라면 부드럽고 달 수 없습니다. 산에 들에 자라는 산딸이나 나무딸이나 들딸은,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을 있는 그대로 머금어서 달고 새큼하고 달짝지근하고 시기도 합니다. 비닐집에서 비료와 물만 잔뜩 머금고 굵직굵직하게 나오는 비닐딸은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설탕을 묻혀 먹지 않으면 단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퍽퍽하거나 푸석푸석하지요. 땅에 없는 기운을 비료로 먹였으니까요. 햇볕이 아닌 전깃불을 먹였으니까요. 하늘을 흐르는 바람과 땅을 흐르는 물이 아닌 갇힌 공기와 억지로 퍼올린 수도물을 마셨으니까요.

 이야기책 《백성백작》은 “농부는 백 가지 일을 하고, 백 가지 작물을 기른다”는 이야기를 우리한테 건넵니다. 농사꾼만이 아니라 농사꾼 아닌 우리들 모두 ‘백 가지’ 일을 하며 ‘백 가지’ 사람을 만나고 ‘백 가지’ 생각으로 이 세상을 보듬고 살아갑니다. 아니, 이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들은 백 가지 일을 하며 백 가지 사람을 만나고 백 가지 생각을 품기보다는, 한두 가지 일만 하려들고 몇몇 사람만 만나려 하며 좁은 생각 몇 가지로 울타리를 쌓고 재미없거나 따분하게 자기 삶을 옥죄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들은 언제쯤 높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과 맑은 물을 함께 즐기는 너른 땅으로 뛰어나올 수 있을까요. (4340.3.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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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투게더 6 - 완결
가와쿠보 카오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해피투게더 (1∼6)
- 글ㆍ그림 : 가와쿠보 카오리
- 옮긴이 : 설은미
- 펴낸곳 : 학산문화사(2005)
- 책값 : 한 권에 3500원씩


 살아가며 나이를 생각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책방 나들이를 하며 책 하나 고를 때에도, 다른 이 일손을 거들며 땀을 흘릴 때에도, 밥을 할 때에도, 설거지를 하고 걸레를 빨아 방을 훔칠 때에도.

 나이 스물에도, 스물다섯에도, 서른에도 높다란 언덕길을 낑낑대면서 신나게 자전거로 넘었습니다. 어느덧 서른셋이 된 이 나이에도, 자전거로 언덕길 넘기는 늘 즐깁니다. 앞으로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지금처럼 살겠지요. 힘은 떨어질지 몰라도. 이마에서 땀이 방울져 뚝뚝 떨어져도.


.. “얼마 남지 않았어. 시합에서 이기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절실히 느끼게 돼. 지금까지 계속 지면서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어. 그때마다 내 형편없는 실력과 연습부족에 좌절하면서 그 이상으로 미련이 남는 게 있었어. 만약에 이겼으면, 모두와 또 같이 시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지금까지 못한 것을 채우자. 반드시, 반드시 이기자.” ..  〈6권 136∼138쪽〉


 배구부 동아리 활동을 하며 고등학생 1∼2년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 《해피투게더》를 봅니다. 거친 몸싸움이 없고 오로지 자기 재주와 훈련으로만 부딪혀서 이기고 짐을 겨루는 경기인 배구. 어느 쪽이든 반칙을 할 수 없고, 반칙이 나올 수 없는 경기인 배구. 축구나 농구처럼 ‘심판이 안 보이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옷을 잡거나 다리를 걸거나 팔꿈치로 찍는’ 못된 짓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배구. 그만큼 자기다스림과 자기가꿈으로 몸을 만들고 솜씨를 쌓아야 하는 경기인 배구. 배구를 즐기면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튼튼해집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펄쩍펄쩍 뛰면서 온갖 생각을 잊을 수 있습니다. 한편, 고요히 자기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독이기도 합니다. 잠깐도 눈을 뗄 수 없이 경기에 빠져들어야 하지만, 숨가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내가 어디에 어떻게 서 있나를 돌아보게 된달까요.

 만화 《해피투게더》에 나오는 여섯 아이는, 저마다 다 다른 집안에서, 저마다 다 다른 생각으로, 저마다 다 다른 꿈을 안고 살아가다가 만납니다. 딱히 ‘배구’에서 만나야 할 까닭은 없었지만, 한삶을 바칠 만한 대상으로 삼은 아이가 있고, 뜻하지 않은 때에 짜릿함을 느끼며 자기 마음 더 깊은 데를 찾아보고 싶은 아이가 있으며, 세상 편견에 맞서고 싶은 아이가 있습니다. 겉멋에 홀려 찾아드는 아이가 있고, 우리 삶 깊은 자리를 파헤치는 가운데 찾아드는 아이가 있고, 동무 따라 강남 가듯 흘러드는 아이가 있습니다. 따로따로 노는 이 아이들은 어떻게 배구에서 ‘모이’고, 어떻게 자기 삶에서 ‘저마다 흩어져’ 살아가게 될까요.


― “우리도 할 수 있어.” 〈5권 36쪽〉
― “레이코, 처음으로 슬라이딩하면서 공을 잡았구나. 아주 잘했어.” 〈5권 50쪽〉
― ‘너는 이 도시를 좋아하고, 줄곧 이곳에서 살아가겠지.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조금은, 마지막으로 조금은 봤는지도 몰라. 이 도시의 빛깔을.’ 〈5권 99쪽〉


 만화를 보는 내내 ‘일본도 우리하고 크게 다를 바 없구나. 학교를 다니는 이 아이들한테 길잡이가 되거나 길동무가 되는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구나. 아예 없지는 않지만.’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한테 말벗이 되고 스승이 되고 제자도 되었다가 도움이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받치는 기둥, 밑바탕이라고 할까요. 다른 동무한테 힘을 내라며 건네는 한 마디는, 다름아닌 자기한테 힘을 내라는 울림입니다. 자기 속으로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는 굳센 믿음은, 다름아닌 다른 동무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더욱 자기를 믿고 힘내라는 응원이기도 합니다. 자기 길을 찾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스스로이지만, 그 길에는 자기만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옆이나 뒤에 동무들이 있으며, 다른 동무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길을 꿋꿋하게 걸어야 하지만 그 길 옆이나 뒤에도 언제나 다른 동무들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 “그러면 안 되나요? 저처럼 요령이 없고, 아무 재주도 없는 애가, 설령 착각일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선생님 보시기에는, 제가 언제까지나 형편없는 인간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걸 만회하기 위해 제 진로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  〈6권 87∼88쪽〉


 만화에 나오는 아이들이 그저 만화 주인공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멀거니 구경하듯 바라보는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 하나마다 제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제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며, 제 앞길을 내다보게 합니다. ‘너 지금 얼마나 즐겁니?’ 하고 자꾸자꾸 말을 겁니다. ‘너한테 소중한 일은, 사람은, 사랑은, 놀이는, 세상은 무엇이니?’ 하고 끊임없이 묻습니다. 저는 요사이 사랑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데, 사랑은 언제나 제 곁에 있었으며 앞으로도 곁에 있겠구나 싶습니다.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을 뿐이며, 좀더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고, 잃었다고 생각했구나 싶습니다.

 ..

 다만, 이 만화책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아쉬웠습니다. 영어로 지은 책이름 《해피투게더》를 보고는 정나미가 떨어졌거든요. 니노미야 토모코라는 사람이 그린 《GREEN》이라는 만화책을 볼 때에도 그랬습니다. 책이름을 왜 이렇게 지을까요. 이렇게밖에는 못 지을까요. 《GREEN》은 도시에서만 살던 아가씨가 농사짓는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시골 총각한테 시집가서 살아가는 줄거리로 된 만화책입니다. 만화는 퍽 짜임새있고 재미도 있지만, 책이름 ‘그린’만 보아서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해피투게더’도 마찬가지. 일본사람들이 영어 쓰기를 좋아한다지만, 우리 말로 옮기면서 책이름을 우리 삶과 문화에 걸맞게 풀어내 주면 한결 나았지 싶은데. “함께 웃는다”나 “다 함께 즐겁게”나 “함께 있어서 좋아”처럼. (4340.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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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일기
목수 김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목수일기
- 글쓴이 : 김진송(목수 김씨)
- 펴낸곳 : 웅진닷컴(2001.7.10.)
- 책값 : 8000원


 학교에서는 착한 일을 하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착한 일을 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착한 일’을 권리로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땅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힘없는 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착한 일은 언제가 가로막힙니다. 재개발을 한다는 마을마다 ‘그곳에 있던 집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가 으레 있으나, 이런 나무를 사랑하며 돌보고 싶은 착한 마음은 언제나 포크레인 삽날에 찍혀 버립니다. 큰나무를 파서 옮기자면 500만 원도 넘게 들지만, 새로 사서 심으면 50만 원이면 넉넉하다고 하면서.

 힘없이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을 돕자는 착한 마음도 언제나 날벼락을 맞습니다. 철거를 맡은 깡패들은 ‘위에서 시킨 일’이라 하고, 위에서는 ‘법으로 떳떳이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나날이 줄어드는 지구자원을 걱정하면서 자전거로 거리를 오가면, 한결같이 자동차 배기가스 세례를 받고 시끄러운 빵빵거림을 받습니다. 자동차마다 자전거를 길섶으로 아슬아슬하게 밀어붙이곤 합니다. 정작 지구자원을 펑펑 써대는 자동차는 ‘석유든 석탄이든 다른 지하자원이든 바닥날 일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조차 안 합니다. 자전거 타거나 걷는 사람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지구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착한 마음은 언제나 콜록콜록 아찔아찔입니다.


.. 도시계획과 도로개발 과정의 기획안에는 땅값의 배상 이외에는 주거인들에 대한 어떤 것도 고려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전유한 공간에서 살 권리가 인정되거나 그것을 배려한 정책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그런 법조항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개발에 관한 한 무제한의 독재가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이 농촌인 것이다. 따라서 만일 도시의 번잡스러움을 피해 산골로 숨어들었다고 해도, 그리고 그곳을 자신의 삶의 공간으로 수십 년을 가꾸었다고 해도, 어느 날 산을 뚫어버리며 쳐들어오는 도로와 갑자기 만들어지는 댐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는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지 않다 ..  〈273∼274쪽〉


 저는 아직 시골에 몸을 붙이고 있지만, 이곳에 얼마나 오래 몸을 붙일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땅임자는 땅을 팔아 전원주택 짓거나 인삼밭을 가꿉니다. 산임자는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고 공장을 들여놓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뿐 아니라 이 나라 어디를 가도 형편이 비슷합니다. 도시에 깃든들 뾰족한 수가 없고, 시골에 뿌리박는들 다른 수가 없습니다. 땅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집이 없으면 없는 대로 언제나 떠돌이 신세입니다. 찻길도 놓고 공장도 세우고 짐승우리도 갖춰야 하니 자꾸자꾸 쫓겨납니다. 전세값 높이고 재개발을 하고 뭐를 뭐를 짓는다고 하니 자꾸만 밀려납니다.


.. 땡볕에 군인들 몇 중대가 동원되고 포크레인이며 트럭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한편 고맙기도 하고, 한편 일하는 모양새가 영 마뜩찮던 중이었다. 개울물이 도로를 휘돌아서 아스팔트가 다 벗겨지고 콘크리트 밑의 흙도 다 휩쓸려 내려가, 공중에 콘크리트만 덜렁 들려 있는 곳이 그들의 작업터였다. 그런데 아무리 긴급 복구공사지만, 공중에 떠 있는 콘크리트를 무너뜨리고 흙을 다져넣는 게 아니라 동굴처럼 보이는 앞부분만 흙으로 메우고 있었다. 마침 어제는 흙을 가득 실은 복구차량이 그 위를 지나다 콘크리트가 무너져내려 전복되어 버렸다.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그저 흙더미만 대충 메우는 일품새를 보니, 차라리 수해복군지 뭔지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  〈44∼45쪽〉


 학교에서 우리들한테 가르친 ‘착한 일’이란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데 눈길 두지 말고 시험공부 잘해서 일류대학에 붙은 다음, 자격증 몇 가지와 운전면허증 따서 큰기업에 일자리 얻고, 좋은 신랑신부감 만나 하루빨리 시집장가 가서 애 쑥쑥 낳고 세금 잘 내는 일등시민 되라는 것? ‘어떤 사람을 찍을지는 알 수 없어’도 투표하는 날은 빠짐없이 투표하라는 것? 무엇이 쓰레기로 버려지는지는 따질 것 없이 ‘쓰레기 잘 줍는 일’? 아직까지도 서울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수상한 사람은 신고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간첩신고 알뜰히 하는 일?

 우리가 사회살이를 하며 할 수 있는 ‘착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나라에서 시키는 일 군말 없이 받아들이기? 행정관청에서 하라는 일은 두말 없이 받아들이기? 나이 많이 잡수신 어르신 말씀 고개숙여 잘 듣기? 신문과 방송에서 수없이 흘려보내는 소식을 비판없이 그대로 새겨듣기?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에 월급 주고 일 시키는 회사가 얼마나 고마웁냐고, 이런 회사에 반기를 들며 교통정체 일으키는 데모하지 말고 야근이나 잘하기?


.. 도무지 엄나무를 제대로 자라게 놔두는 법이 없다. 몸에 좋다고 껍질을 벗겨 약으로 쓰거나, 엄나무닭 백숙이라고 하여 닭국에 넣어 삶아먹는지라 남아나는 게 없다. 큰 엄나무가 방골내미 뒷산에도 자라고 있었는데, 그것도 한 해 전에 누군가가 뎅겅 잘라가 버렸다 ..  〈78∼79쪽〉


 목수 김씨(김진송)가 쓴 《목수일기》를 읽습니다. 처음에는 나무쟁이 이야기만 쓰는 줄 알고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닐까 싶었으나, 가만가만 읽노라니 나무질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만난 나무 이야기, 자기가 만난 나무가 어떻게 시달리고 있으며 괴롭게 살아가는지 하는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또한 자기가 나무를 만지며 살아가는 터전이 얼마나 팍팍해지고 있는지, 자기 또한 나무를 만지며 살 수 있는 시골땅에서 사람다움을 간직하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숨김없이 털어놓습니다. 반갑군요. 이렇게 나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간직하고 있으니. 하지만 슬프군요. 나무며 사람이며 우리 삶터며 된통 뒤죽박죽이 된 채 어둡고 슬프게 살아가야 하니까요. (4340.2.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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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뿌리
서숙 지음 / 녹색평론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따뜻한 뿌리
- 글쓴이 : 서숙
- 펴낸곳 : 녹색평론사(2003.5.10.)
- 책값 : 8000원

 
 새벽을 좋아합니다. 시골에 있든 도시에 있든 새벽이 참 좋습니다. 시골에서는 시골 나름대로 고요하고 으슬으슬 추운 새벽이 좋습니다. 도시에서는 도시 나름대로 시끄러운 소리 모두 잠든 새벽이 좋습니다. 지난날 서울에 살며 신문돌리기를 하던 때, 이 새벽이 참 좋아서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다른 딸배보다 먼저 일을 끝마치고 지국으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 점심으로 국수를 해먹고 맥주를 마셨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했는데, 충일한 기운이 몸안에 쌓인 듯했는데 여전히 정오였다. 학교에서는 전화 두어 번 하면 점심시간인데, 어떻게 시간이 이렇게 마디지요? 시골에서는 그럼 돈도 이렇게 마딜까요? 그럴 수도 있지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사고 싶은 욕망이 생길 틈이 없고, 생활이 그래서 단순해지고 ..  〈12∼13쪽〉


 술이 거나해서 비틀거리는 사람을 빼놓고는 새벽에 볼 수 있는 사람이 드뭅니다. 도시 골목길을 치우며 손수레 끌고 다니는 청소부를 빼놓고는 새벽에 길거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새벽 두 시쯤 일어나 신문 부수를 헤아려 챙긴 뒤 자전거 앞뒤에 가득 싣고 달렸습니다. 신문돌리기로만 먹고사는 다른 신문사 총무도 비슷한 즈음 일어나서 새벽을 엽니다. 우유돌리기로 살림을 꾸리는 다부진 아저씨 아주머니 들도 비슷한 즈음 일어나서 새벽을 엽니다. 새벽길에 이분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마주치면,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도 꾸벅 인사를 하거나 ‘안녕하셔요’, ‘수고하셔요’ 하고 인사말을 주고받습니다.

 때때로 노래를 부르면서 돌립니다. 무언가 울컥하는 것이 있는 날은 큰소리를 질러 보며 신문을 돌립니다. 빗길에는 신문 젖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고, 눈길에는 언덕길을 못 올라갈까 근심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이른새벽 골목길을 지나가는 차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하는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엄청난 빠르기로 쌩하고 지나갑니다. 이런 차를 부대끼면 차 뒤에 대고 주먹을 휘두릅니다.


.. 두 손으로 하던, 두 손 끝에 정성과 마음을 모아 하던 일들이 사라진 지금, 그 손들은 무엇을 하는가. 무슨 일을 하여서 잃어버린 집중과 긴장의 순간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손을 쓰지 않으면서부터,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생기를 잃게 되고, 우리의 삶은 그만큼 나른해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삶은 손을 통해 연결되는 현장성과 멀어지는 만큼 막연해지고 추상적이 되는 것이다 ..  〈114쪽〉


 새벽 신문돌리기에서 몹시 짜증스러운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순찰을 돈다는 경찰. 새벽 순찰을 돈다는 경찰은 신문배달부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꽂힌 신문을 으레 슬쩍합니다. 그러고는 시치미를 뚝 떼지요. 골목길 안쪽 집에 신문을 넣고 헐레벌떡 돌아오면 저 앞쪽에 순찰차가 슥 지나가는 게 보입니다. 바구니에 꽂은 신문 부수를 세어 봅니다. ‘저 자식들 또 훔쳐가네’ 언젠가 코앞에서 슬쩍하는 모습을 보고 ‘야, 뭐 하는 거야!’ 하고 소리를 지르니 ‘어, 죄송해요. 그냥 뭐가 났나 보려고요.’ 하며 꼬리를 내리고, 언젠가는 ‘아저씨 오면 돈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면서 알량한 웃음을 짓고, 언젠가는 ‘우리들이 이 새벽에 이렇게 고생하는데 한 부쯤 주면 안 돼요?’ 하고 외려 큰소리입니다. 그러면 저도 한 마디 하지요. ‘저도 이 새벽에 이렇게 고생하면서 돌리는데 한 부쯤 사 주면 안 돼요?’


.. 가령, 쌀 한 톨이라도 애껴야 한다는 것은, 그것이 알뜰이나 절약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밥상에 밥 한 공기가 오르기까지, 곡식알들은 벌레로부터 비바람으로부터 새들로부터 오가는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수확기의 뜻밖의 폭우에 이르기까지 많은 위기들을 넘기고 살아남았다. 그러니 설거지통에 쌀 한 톨이 떨어진들, 그걸 무심히 그냥 버리지 못할 것이다. 거기까지 살아서 온 그의 존재를 그런 식으로 허방을 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거지 물에서 건져내어 잘 씻어 향긋한 밥을 지어 먹을 때, 비로소 쌀 한 톨의 삶은, 거기 연결된 생명의 손길들은 완성되는 것이다 ..  〈217∼218쪽〉


 우유상자를 여섯 통 자전거 앞뒤로 매달고 이른새벽부터 아침까지 돌리는 아주머니를 보았습니다. 앞에 하나, 짐받이에 셋, 짐받이 옆으로 하나씩. 아주머니는 저렇게 돌리고 한 달에 얼마를 벌 수 있었을까요.

 어느 날, ㅈ일보를 돌리는 총무가 우리 지국으로 찾아와 울면서 하소연을 합니다. ‘제 오토바이 못 보셨어요? 일을 마치고 쇠사슬로 묶어 놓았는데 누가 그걸 끊고 훔쳐갔어요. 그런데 지국에서는 오토바이 도둑맞은 건 제 과실이라면서 제 돈으로 그걸 물어내라고 해요. 아내하고 저하고 둘이서 1500부를 돌리는데 한 달에 70만 원 받아요. 오토바이 값은 80만 원이래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 정말 그러네. 배낭들을 삐딱하게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거리네. 이기, 우리가 차가 없어서 이럴 수 있는 기지요. 그건 그렇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비행기 택시 버스를 타고 걷고. 자가운전을 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전국의 도로 위를 달려가는 차들, 목적지를 향해 달리며 운전석에서 뒷자석에서 옹색하게 내다보는 풍경들 …… 물어서 버스표 사고 기다리고 그곳 사람들과 함께 타고 가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삶 속으로 잠시라도 들어가는, 그  홀가분하고 긴장된 순간들은 사라진다. 파스텔 색조가 사라지는 세계. 삶은 획일을 향해 질주한다 ..  〈136쪽〉


 새벽바람이 찹니다. 마당에 나가 새벽에도 아직 밝게 빛나는 별을 올려다봅니다. 이제는 밤하늘 별은 시골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아니 예전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고마운 선물입니다. 하지만 요즈음 시골사람들은 이 고마운 선물을 누릴 만큼 느긋함이나 아늑함이 없습니다. 그만큼 힘듭니다. 삶이, 사회가 팍팍해지니까요. 그렇다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밤하늘이 선사하는 고마운 별빛을 손사래치고 무엇을 얻거나 누리며 살아가는가요. 우리를 먹여살리는 따뜻한 뿌리는 무엇일까요. 언제나 새힘을 내도록 하고, 저마다 다른 열매를 맺도록 북돋워 주는 따뜻한 뿌리는 무엇일는지요. (4340.2.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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