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오월 이삭문고 1
윤정모 지음, 유승배 그림 / 산하 / 2011년 2월
구판절판


"옴마, 우리 집 밥상!" 누나는 밥상 앞에 달려들어 밥을 퍼먹어댔다. 배가 고파서만은 아닌 듯했다. 집에서 먹어 보는 밥상이 그처럼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우리 집 김치가 참말로 꿀맛이다, 꿀맛!" 엄마는 달걀 부친 것도 슬며시 누나 밥그릇 옆으로 디밀었으나, 누나는 김치와 청국장만 허겁지겁 먹어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엄마와 아버지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굶었으면 저럴까 싶은 모양이었다. "천천히 묵어라잉." 그렇게 말해 놓고 엄마는 누른 밥을 긁어 왔다. 누나가 그 누른 밥까지 달게 먹고 있는데, 엄마가 물었다. "인제 다시는 안 나갈 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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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신포시장에서 감자 한 봉다리를 천 원에 샀습니다. 알이 작은 녀석이고 떨이입니다. 저잣거리에서 감자를 팔 때면 으레 굵직한 녀석을 파는데, 이런 알 작은 녀석은 사가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돈 천 원으로 여러 날 넉넉히 먹을 만한 감자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4340.7.3.불.ㅎㄲㅅㄱ)-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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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코
리영희 지음 / 까치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스핑크스의 코
- 글쓴이 : 리영희
- 펴낸곳 : 개마고원(1998.11.30.)



 우리 나라에는 아직 공안부서 경찰이 있습니다. 아직 있을 뿐 아니라 꽤 많이 있는 듯하며, 요즘 들어 실적 올릴 일이 없어진 탓에 부서 예산이 줄어드는 일과 정리해고 되는 일에서 벗어나고자 동네 헌책방 일꾼을 ‘좌경용공사범’으로 몰아붙이며 들볶습니다.

 동네 헌책방을 들볶는 일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을 테며, 자기들로서는 언제나 들이밀기 좋은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에, 동네 헌책방은 아주 만만합니다. ‘동네 헌책방에서 사고팔아서 말썽이 된다’고 공안부서 경찰이 말하는 ‘불온 이념도서’는 ‘교보문고 같은 새책방에서 팔린 뒤, 이 책을 사서 본 이가 내놓아서 헌책방에 들어온 책’입니다. 공안 경찰은 헌책방 일꾼을 붙잡아서, “이 책을 어디서 사 왔느냐? 누구한테 팔았느냐?” 하고 심문합니다. 하지만 헌책방 일꾼이 누구한테 언제 샀는지 하나하나 떠올릴 수 없는 노릇. 고물상에서 뭉텅이로 주워 온 책들을 어찌 낱낱이 떠올릴 테며, 이 책들이 누구한테 팔렸는지 어찌 하나하나 되새길 수 있을까요. 공안 경찰들이 ‘어디에서 흘러나온 책’인가 알고 싶다면,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와 알라딘과 예스24와 인터파크와 …… 이런 새책방 ‘판매명단’을 압수하면 될 일입니다. 교보나 영풍 같은 곳 ‘마일리지 카드’를 압수해도 손쉽게 쭉 뽑아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말썽이 되어야 한다면, 맨 처음 새책방에서 이 책을 사서 읽은 사람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이런 책을 펴내어 시중에 내놓은 출판사가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이런 책을 써낸 사람(지은이)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책이 나왔을 때 ‘좋은 책 나왔으니 사서 읽으시오’ 하고 소개글을 썼던 기자와 교수들이 말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시중 새책방에 깔려 있는 《스핑크스의 코》 같은 책은 ‘빨갱이 리영희’가 썼다고 해서 ‘불온 이념도서’라고 도장을 찍습니다. 제법 널리 읽혀서 웬만큼 ‘책 좋아하는 사람’ 집에는 다 꽂혀 있을 뿐 아니라, 이 책을 안 꽂아 둔 도서관이 없고, 리영희 교수 만나보기를 안 해 본 언론매체도 없으나, 공안 경찰은 오로지 하나, ‘한 놈만 팬다’는 법칙(?)을 따라서, 가장 힘없고 이름없고 돈없는 동네 헌책방만 겨냥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아직 국가보안법이 있었어?’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네’ 하며 혀를 차거나 ‘그깟 헌책방에서 일어난 일인데, 뭐’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빨갱이’ 리영희 교수가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 소비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의 유행 창조자들은 젊은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드러내보임으로써 ‘풍요한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여성이 배꼽을 드러내거나 반나체가 되는 새 유행의 옷을 남보다 먼저 걸치는 것을 ‘여성 해방’의 ‘실천적 행위’로 미화하는 소비주의 경제와 그 광고산업의 돈줄을 장악하고 잇는 것은, 압도적으로 남성들이다. 경제력을 지배하고 있는 남성들이 여성의 육체에 수백만 원짜리 옷을 입혔다 벗겼다 하거나, 여성들의 손에 다이아몬드를 끼웠다 빼었다 하는 유행을 ‘현대화’니 ‘풍요’로 미화할 때, 그런 유행 속에서 현대화와 풍요를 찾으려는 여성은 남성의 지배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없다. 오히려 더욱 깊이 예속 상태에 빠지게 된다 ..  〈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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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손가락 이야기 산하작은아이들 15
로랑 고데 외 지음, 백선희 옮김, 마르탱 자리 그림 / 산하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름 : 다섯 손가락 이야기
- 글 : 카미유 로랑스, 장 드베르나르, 미카엘 글뤽, 로랑 고데, 엠마뉘엘 다를레
- 그림 : 마르탱 자리
- 옮긴이 : 백선희
- 펴낸곳 : 산하(2007.5.5.)
- 책값 : 8500원


― 다섯 사람한테는 다섯 빛깔이
 : 《다섯 손가락 이야기》를 읽으며



 다섯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발걸음 너비며 팔 젓는 매무새며 얼굴빛이며 다섯 모습입니다. 열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열 가지 모습이고, 백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백 가지 모습입니다. 사람 눈에는 비슷하다고 할지 모르나, 참새 다섯 마리가 모이를 쪼면 다섯 모습이고, 열 마리가 모이를 쪼면 열 가지 모습이며, 백 마리가 모이를 쪼면 백 가지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적잖은 그림쟁이나 만화쟁이들은 천 마리도 아니고 백 마리도 아닌 열 마리나 스무 마리 개미나 잠자리를 그릴 때 틀에 박힌 똑같은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들에 핀 꽃들이 같은 갈래라 해도 백 가지 꽃이 피었으면 꽃잎 크기부터 모양새까지 하여 똑같은 꽃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얼마나 이 다름을 느끼고 있을까요.

 초등학교 적부터 제도권 입시교육으로 치달으며 우리 생각과 마음을 좀먹는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줏대를 지키거나 가꾸지 않으니까 자꾸만 다 다름(다양성)을 잃고 어슷비슷 뻔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는 않을까요. 자기 줏대를 가꾸지 못하니 유행에 휩쓸리게 되면서, 자기한테 쓸모있는 물건을 알맞게 사서 쓰거나 손수 마련해서 쓰지 못하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따라쟁이가 되지는 않나요.

 우리 모두 서울대학교에 가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연고대나 이화여대에 안 가면 사람 구실을 못할까요. 서울대에 갈 수 있는 학생은 몇 천도 안 되는데, 팔십만∼백만에 이르는 수험생들은 서울대에 못 들어갔다는 까닭 하나로 사람 대접을 못 받아도 될는지요.

 키가 큰 동무는 키가 큰 대로 반갑고, 키가 작은 동무는 키가 작은 대로 좋습니다. 오른손잡이 세상이지만 앞으로도 왼손잡이가 태어날 수밖에 없고, 나라살림이 한껏 부풀어올라 세계 몇 손가락에 들 만큼 부자나라가 되더라도 가난한 사람과 거지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나라가 잘산다고 다른 모든 나라가 잘살 수 있을까요. 우리들 모두는, 자기 깜냥대로 자기 발걸음대로 자기 몸피와 마음밭대로 자기 길을 걸어가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야기책 《다섯 손가락 이야기》는 사람마다 두 손에 걸쳐 열씩 있는 손가락이 모두들 어떤 노릇을 하면서 함께 어울리고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엄지는 엄지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새끼는 새끼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검지는 검지이기 때문에 훌륭하고 가운데는 가운데이기 때문에 멋지다고 이야기해요.


..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건, 연극은 절대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연극을 해 보면, 손잡고 함께해야 할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거든요. 어른이 되더라도 말예요 ..  〈68쪽 / 미카엘 글뤽〉


 미국이 참말로 평화를 사랑하며 우리 나라하고도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란다면, 한국에서 ‘보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끔찍한 피울음을 울게 할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억지로 맺으려고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구태여 한국땅에 수만 미국 군대를 앉힐 까닭이 없는 한편, 미국에 있는 어마어마한 무기공장을 ‘생필품 공장’으로 고칠 테고요. 뭐, 미국만입니까. 러시아도 프랑스도 영국도 독일도 마찬가지예요. 일본과 북조선과 남한 모두 마찬가지예요. 중국과 대만과 인도와 이란도 마찬가지입니다. (4340.6.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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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 - 이주일, 나의 이력서
이주일 지음 / 한국일보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뭔가 말 되네요>이다. 하지만 이 책은 판이 끊어진 지 스무 해가 되었지 싶다. 이제는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책이지만, 이 책과 함께, 이주일 님 다른 책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도 함께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절판되어 사라진 책 소개글"을 적어 본다.

 


 - 책이름 : 뭔가 말 되네요
 - 글쓴이 : 이주일
 - 사잇그림 : 박수동
 - 펴낸곳 : 전예원(1985.11.15)


 이주일 아저씨, “뭔가 말 되네요”
 - 새책방에서 사라진 책 : 이주일 님이 남긴 책 하나



 〈1〉 거침없음


.. 돈으로 표 좀 긁어 모으시겠다구요? 요새 말로 참 ‘착각은 유엔 헌장에도 나와 있는 자유’라더군요. 그건 착각이에요. 돈으로 표 못 삽니다! 지위, 명성, 인기 전술로 표 좀 따 보시겠다구요? 그걸로 표가 따지면 이주일이는 국회의원 열두 번하고도 거스름이 남겠네. 딴 방법 아무것도 없어요. 국민과 같이 뛰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먹고 같이 잘 사람이 아니면 표는 면회도 못합니다. 그게 뭐 극장표라야 암표라도 사지, 어림도 없다구요 ..  〈26쪽〉


 전두환 독재가 서슬퍼렇던 때(1984~1985), 이주일 님은 이런 말을 거침없이 내뱉았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돈도 못 벌고 지위도 없고 위엄도 없지만 그래도 이 이주일이를 제치고 애들의 표를 모을 수 있는 비결이 과연 뭐냐, 이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항상 애들과 아픔을 같이하고 애들의 고민거리를 귀담아 들어 주고 쓰다듬어 주고 아껴 주고 애비가 야단칠 때는 막아 주기도 하고 변명도 해 주고 항상 애들 곁에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표를 따는 거 아니겠읍니까?(25쪽)” 하고도 말합니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투표를 하면 어머니와 아버지 가운데 누가 인기가 있겠느냐고 아내가 자신있게 말했다지요. 아내가 툭하면 그런 말을 했답니다. 하지만 이주일 님은 한 번도 집안투표를 하지 못했대요. 자기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랍니다. 실제로 아이들을 달래고 어르고 가르치고 키우고 사랑하고 아끼기는 아내가 훨씬 잘하는데, 어떻게 아이들한테 자기(아버지)를 찍으라고 하겠느냐 하면서요.

 한국사람이 길거리에 한국말 간판을 안 다는 모습을 보고는, “그 수많은 자장면집 중에 '뉴욕 자장면'이란 간판을 보셨읍니까, ‘아리랑 자장면집’을 보셨읍니까? 어느 중국집이든 그 간판은 완전히 중국식이에요.(43쪽)” 하고 말하는 이주일 님입니다.


.. 저도 LA에 가 봐서 압니다만 그건 사실이더군요. 바로 그 점입니다. 밖에 나가면 잘하실 수 있는 일을 안에서는 왜 못하느냐 이겁니다. 밖에 나가시면 우리 말 우리 글을 잘 쓰시면서 안에서는 왜 남의 것만 쓰느지 난 그게 이해가 안 돼요 ..  〈44쪽〉


 1980년대 첫머리에 쓴 글입니다. 2007년인 오늘 와서 다시 읽어도 가슴 뜨끔하면서 등골이 오싹할 만큼 날카롭군요. 아주 맞는 말이거든요. 아주 올바른 말이고요. 아주 맞는 말, 아주 올바른 말은 세월이 얼마가 흐르건 빛을 내고 힘을 냅니다. 하나도 맞지 않거나 조금도 올바르지 않은 말은 몇 해, 아니 몇 시간, 아니 몇 분 앞서 나온 말이라고 해도 쓰레기만도 못하고요. 금세 잊혀지거나 사라집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사람한테 장사를 하는 술집이고 찻집이고 옷집이고 밥집인데, 날이 갈수록 한국말 아닌 나라밖 말을 아주 쉽게 쓰고 있네요. 서울 노원구청은 아예 공문서를 만들어 동네 가게들한테 ‘간판을 영어 공용으로 바꾸라’고 지시까지 하는 판이에요.


 〈2〉 눈치 안 봄


.. 야구선수는 만사 제쳐놓고 야구를 잘해야 하고 그게 근본이에요. 그 다음에 자기가 당구를 치든 야구방망이로 타작을 하든 해야 이해가 되는 거 아닙니까? 어떤 여성이건 가정을 갖고 자식을 가졌으면 그것을 간수하는 게 첫 번째의 임무요, 그게 그분의 생활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호호호…… 내가 좀 바쁘잖아요? 그래서 엄마로선 빵점이에요. 호호호” 이 소리가 어디서 나옵니까? ..  <58쪽>


 사회생활 바쁘다고 여성이 어머니 노릇을 빵점으로 한다면 문제입니다. 그러면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서, 사회생활 바쁘다고 남자가 아버지 노릇을 빵점으로 한다면?

 사회생활은 남자만 하는 일이 아니요, 여자들은 해서 안 되는 일이 아닙니다. 아이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낳지, 여자만 낳고 남자는 구경만 하지 않습니다. 낳은 아이 또한 남자와 여자가 함께 키워야지 어느 한쪽에서만 키워야 하지 않아요. 다만, 이주일 님이 이 글을 쓴 때는 우리 사회가 남성 가부장 권위가 큰 때였습니다.

 세월이 묻은 이주일 님 책이라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느끼지만,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받아들이면서, 반갑고 즐거운 모습을 반갑고 즐겁게 받아들이면 좋다고 느껴요. 글발 날리던 이주일 님이 아니고, 우리들한테 웃음 한 자락 선사하려면 이주일 님입니다. 예전 책이요, 묻힌 책이요, 잊혀진 책이지만, 이런 책 하나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으면서, 제 자신이 미처 모르고 지나치고 있을 ‘마음속 벽이나 굳은 껍데기’를 느끼며 하나둘 벗겨내 보기도 합니다. 지난날 이주일 님한테 깃들었던 아쉬움은 ‘지금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추슬러 풀어내면 좋을까’ 생각하며 되짚고, 예나 이제나 훌륭하다고 보이는 대목은 ‘나도 이렇게 한결같음을 이어갈 수 있도록 더 애써야지’ 다짐하며 되새깁니다.


.. 만약 그렇다면 말입니다! 책 많이 읽는 사람은 수백 수천 권도 더 읽는데 거기 나오는 등장인물 다 외우자면, 아이구! 수만 명 이름을 다 외워야겠네. 차라리 서울 시민 이름을 외우면 인사할 때 써먹기나 하지! 소설 주인공 다 외워서 어디다 써 먹을려고 그래? 더 웃기는 건…… 무슨 퀴즈 프로그램에도 그런 문제가 나와요. “노틀담의 곱추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이 뭡니까?” 이러면 삑- 부자가 울리고 스톱을 걸고…… 뭐라고 뭐라고 대답하고 점수 올라가고, 나 참! 웃기지도 않아 ..  〈88쪽〉


 어쩌면 독이 담긴 말이라 할 테지만, “어느 책에 어떤 구절 있는 거 그거 외우려고 책 읽었나? 그리고 그거 알면 유식한 건가요? 그럴려고 책 읽을 바에는 난 그 지겨운 고생해 가면서 책 안 읽겠네!(88∼89쪽)” 하고 덧붙입니다. 비아냥이라고 해도 될까요? 뭐, 비아냥이면 어떻고 독 담긴 말이면 어떻고 가벼운 비판이면 어떻습니까. 틀림이 없는 말을 꾸미거나 숨기거나 가리지 않고 말하는걸요. 남들 눈치를 보아가며 설렁설렁 말하지 않는걸요. 겉치레가 아닌 속치레를, 겉멋이 아닌 속멋을 찾아가자는 이야기를 하는걸요. 참은 참이라 말하고 거짓은 거짓이라 말하는걸요.

 좋은 모습은 북돋우고 얄궂은 모습은 고개숙여 가다듬습니다. 시샘을 하며 헐뜯지 않으며, 말꼬리를 잡으며 깎아내리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들 누구나 살아가면 좋을 모습, 반가운 모습이지 싶어요.


 〈3〉 아뇨! 담배는 몸에 해로워요!


 헌책방 책시렁에서 문득 찾아내어 재미있게 읽은 《뭔가 말 되네요》입니다. 이 책이 먼 뒷날 다시 태어날 날이 있을까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글쎄, 어쩌면 다시 태어날 수 있고, 어쩌면 이대로 묻힌 채 ‘흘러간 옛책’으로만 남겠지요. 책에 담긴 속살을 캐내거나 잡아채려는 사람이 하나둘 나올 수 있는 한편, ‘이주일 같은 사람이 남긴 말이 뭐 볼 게 있겠어?’ 하며 코웃음을 칠 사람도 나올 테며, ‘이주일이 뭐 하는 사람인데?’ 하며 아예 잊어버릴 날도 다가오리라 봅니다.


.. 이렇게 중년 신사, 노신사란 말은 있지만, ‘중년 숙녀’라는 말 들어 보셨어요? 못 들어 보셨지? 그럼 여자는 중년이 되면 숙녀가 아니라 이겁니까? 나아가서, ‘노숙녀’라는 말은 아예 생겨나지도 않았어! 중년 신사, 노신사는 있는데 어째서 중년 숙녀, 노숙녀는 없느냐…… 이거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 아닙니까? 아, 여러분같이 말 잘하시는 분들이 어째서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갑니까? 정말 유감이에요! 여자의 명예를 찾아야 할 거 아니에요? ..  〈159쪽〉


 어떻든 좋습니다. 나중에 이 책을 알아보며 저처럼 가슴벅참을 느끼고, 두 번 세 번, 또는 네 번이나 다섯 번까지 찬찬히 다시 읽고 또 읽으며 눈물 한 방울 똑 흘릴 사람이 있어도 좋고, 이주일 님 이름 석 자를 아예 잊어버리는 세상이 되어도 좋습니다. 어느 쪽이 되든 우리 몫이며 우리 삶이니까요. 우리 길이요 우리 넋이니까요. 자그마한 것이라 해도 좋은 것 하나를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라면 《뭔가 말 되네요》는 참말 뭔가 말이 되는 이야기책이 될 테지요. 큰 것에만 값어치를 두지만 그 큰 것끼리도 치고박고 싸우고 물어뜯는 세상이라면 《뭔가 말 되네요》는 헌책방에서조차 찾는 사람이 없어 먼지만 먹다가 폐휴지로 버려지는 종이뭉치가 될 테지요.


(------)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
(이주일) 오늘이 제 사형날인가요?
(------) 그런가 봐.
(이주일) 할 말 없어요.
(------) 그럼, 마지막으로 담배나 한 대 피워, 자.
(이주일) 아뇨! 담배는 몸에 해로워요!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우스갯소리는 모두 우리 삶에서 나옵니다. (4337.4.25.처음 씀/4340.6.16.고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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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 원시의 자연습지, 그 생태 보고서
강병국 글, 성낙송 사진 / 지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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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원시의 자연습지 그 생태 보고서, 우포늪
- 글 : 강병국
- 사진 : 성낙송
- 펴낸곳 : 지성사(2003.1.15.)
- 책값 : 12000원


 이 책 하나 16 ― 내 깜냥대로 살면서 읽는 책
 : 《우포늪》을 차근차근 읽은 뒤



 충주에서 인천으로 살림을 옮긴 지 두 달이 지나갑니다. 태어나기를 인천에서 태어나고,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인천에서 지냈으나, 그 뒤로 열 몇 해를 인천을 떠나 서울로, 충주로 옮겨다니며 살았어요. 이렇게 고향과 멀어진 채 지내고 돌아와 보니, 예전 가게가 그대로인 곳도 많지만, 길과 골목이 퍽 많이 바뀌었습니다. 재개발을 한다며 골목집을 싹 밀어붙이고 아파트가 들어섰으며, 어떤 골목집은 찻길로 바뀌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인천시장은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르기까지 중구와 동구에 있는 골목집을 모조리 허물고 아파트와 쇼핑센터로 새로 지을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아파트만이 살 길’인가요. 저잣거리에서 사입는 옷보다 20층이나 30층짜리 우람한 쇼핑센터에서 사입는 옷이 우리한테 더 보기 좋거나 아름다울까요. 복닥이는 저잣거리에서 사먹는 밥보다 40층이나 50층짜리 주상복합센터 식당거리에서 사먹는 밥이 우리 몸에 한결 좋거나 알맞을까요.

.. 일제시대 때 소벌을 한자로 쓰다 보니 뜻 그대로 우포(牛浦)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금도 우포보다는 소벌로 더 많이 부르고 있지요. 참고로 목포(나무벌)는 비가 많이 오면 주변의 나무들이 떠내려오던 곳이라서, 사지포(모래벌)은 모래가 많아서, 쪽지벌은 크기가 작다고 해서 붙은 이름들입니다 ..  〈13쪽〉

 해가 떨어지는 저녁이 되면 날씨가 알맞게 선선합니다. 이 선선한 저녁나절에 아내와 골목길 마실을 나섭니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 한켠에 문을 연 도서관은 저녁 여덟 시에 문을 내리니, 밤마실 나가는 때하고 꼭 들어맞아요. 서울에서 지낼 때에는 저녁 여덟 시면 사람들이 한창 술마시고 떠들고 노는 때, 또는 헌책방에 손님이 가득할 때입니다만, 인천에서는, 또 배다리 헌책방골목에서는 저녁 일곱 시만 되면 가게 불빛이 하나둘 스러지고 조용해집니다. 뭐랄까요, 이웃나라 일본하고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일본만 해도 저녁 예닐곱 시면 가게마다 문을 닫잖아요. 저녁나절은 자기 시간을 보낸다고 하면서. 아침에는 일찍 문을 열고요. 이곳도 그래요. 아침 일찍 가게문 열고 저녁에 알맞춤하게 가게문 내리고.

 그래서 동네 골목길이 저녁이나 새벽에 참 조용합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들이 씽씽 달릴 때 내는 귀따가운 소리를 빼놓고는 시끄러운 소리가 없습니다. 거리 등불은 알맞게 어둡습니다. 이러다 보니 골목길에 쓰레기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드물고 술주정으로 떠들썩한 사람 찾아보기 어려워요. 뜨는 해를 보며 하루를 열고 지는 해를 보며 하루를 접으니, 사람몸에는 자연스러움이 배고 더도 덜도 아닌 한가위 보름달 같은 마음을 품으며 산다고 할까요.

 좀더 늦게까지 가게문을 열면 살림돈을 더 벌 수야 있겠지만, 돈 몇 푼 더 벌면서 자기 시간을 빼앗기며 자기 삶을 놓친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조금 더 번 돈으로 무엇을 즐길 수 있을까요.

..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시연은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로 엄격히 보호되고 있었지만,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면서 환경부의 보호대상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환경은 점차 나빠지고 있고,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이미 멸종 단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가시연도 언제 사라질 지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  〈24쪽〉

 보름쯤 앞서였나, 도원동 골목길부터 해서 신흥동과 유동께를 거쳐 경동과 율목동을 지나 싸리재를 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싸리재 언덕길 한켠에 서 있는 길알림판을 보노라니 ‘밤나무골길’이라는 푯말이 보이더군요. ‘밤나무골길’? 이름은 참 좋은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 아하, 그렇구나! 율목동 이름이 한자로 ‘밤 栗 + 나무 木’이네. 말 그대로 ‘밤나무골’이었구나, 이 동네가. 지금 같은 도시가 되기 앞서 예전에는, 지난날에는, 그러니까 수백 해, 아니 수천 해 또는 수만 해 동안 이곳 싸리재 둘레에는 밤나무가 많았겠구나.

 하지만 이제는 찾아볼 길이 없는 밤나무. 밤나무 없는 밤나무골 ‘율목동’. 무시무시한 막개발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는 인천시장과 지역개발업자들. 공사는 나날이 끊이지 않으며, 공사비로 들어갈 수 조, 또는 수십 조는 모두 우리 주머니에서 나오고. 우리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길닦기와 아파트 세우기와 쇼핑센터 짓기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라면 주민복지와 교육복지와 문화생태를 가꾸는 데에 쓰고도 남아, 대중교통에다가 택시까지도 누구나 거저로 쓸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테며, 의료혜택도 거의 거저로 받을 수 있을 텐데.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육도 돈없이 마음껏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2킬로미터짜리 길을 닦는 데에 수천 억을 들인다고 하는데, 그런 새길을 닦지 말고, 복지 정책과 문화 정책을 잘 추스른다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터전은 한결 아름답고 넉넉할 수 있지 싶은데.

.. 반딧불이는 깨끗한 환경에서만 살 수 있는 생물입니다. 공기와 물이 많이 오염된 오늘날 자연환경을 되살려 반딧불이를 다시 만나고자 하는 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애벌레 시기를 땅위에서 보내건 물속에서 보내건 물기가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반딧불이에게 물과 공기가 더러워지는 것은 이들에게서 설 땅을 빼앗는 것과 같답니다 ..  〈55쪽〉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하는 일은 이불과 깔개를 옥상 담벼락에 널어 놓기. 해가 잘 드는 날 이불과 깔개를 내놓아 말리면, 저녁에 걷을 때 뽀송뽀송한 느낌과 햇볕 냄새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걸레로 방을 훔친 뒤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누우면 몸이 좋아합니다. 데굴데굴 구르며 깔개와 이불에 골고루 배어든 햇볕을 받아들입니다. 하루 내 고단했던 몸은, 햇볕 머금은 깔개를 깔고 이불을 덮으며 말끔하게 다시 태어납니다.

 굳이 이불 빨래를 하지 않더라도 개운하며, 꼭 무슨무슨 세제를 써서 빨아야 깨끗하거나 폭신폭신하게 되지 않습니다. 싱그러운 바람과 따순 햇볕이 있으니 넉넉합니다.

.. 황소개구리가 밤낮없이 우는 데 비해 청개구리와 무당개구리는 주로 밤에만 운답니다 ..  〈111쪽〉

 아내가 즐겨먹는 밥은 배추잎과 토마토. 아내가 바꾸어 놓은 제 밥상은 말랑말랑 두부와 선인장채, 때때로 달걀 반 삶은 것. 그동안 된장국에 콩나물 넣어 먹거나 된장국수를 먹곤 했는데, 이렇게 밥상을 바꾸어서 먹어도 몸에서 잘 받습니다. 아니, 이런 밥상이 더 반갑구나 싶어요. 따로 불을 피워서 끓이지 않아도 되는 밥이요 반찬입니다. 불을 피워서 익힌다고 해도 조금만 하면 됩니다.

 배불리 먹기보다는 알맞게 먹으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 밥을 차립니다. 하루에 세 끼니를 먹을 수 있으나 두 끼니만 먹어도 나쁘지 않고, 밥상에 반찬이 세 가지가 넘으면 젓가락질할 것이 너무 많다고 느낍니다. 두 가지 반찬만 올려놓아도 푸짐합니다. 꼭 김치를 담가서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배추잎을 물에 씻어서 먹어도 좋아요.

.. 습지는 단순히 숨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 보전된 생태계나 먼 미래의 인류의 윤택한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좁은 국토를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에 습지가 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  〈139쪽〉

 ‘먹는 게 남는다’는 옛말이 있는데, 어떻게 먹어야 남을까요. 무엇을 먹어야 남을까요. 누구와 먹어야 남을까요. 돈 많이 벌어 마음껏 쓰며 사는 일이 그렇게까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돈 많이 벌어 펑펑 쓰는 삶이라면, 참 딱하거나 불쌍하겠구나 싶어요. 돈을 걱정없이 쓸 수는 있지만, 돈을 쓰며 자기 스스로를 가꾸거나 이웃들하고 함께하는 즐거움은 얼마나 누릴 수 있을까요. 이웃사람은 돈 한 푼 제대로 못 쓰는데, 자기 혼자 돈을 마음껏 쓰는 일이란 얼마나 신나고 멋진 일이 될까요.

 저도 어릴 적 어느 때인가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일 할 거야’ 하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며 옅어졌어요. 돈벌어서 해야 할 일이 대단히 많더라구요. 우리 세상 어둡고 괴롭고 짓눌리고 고달픈 곳을 찾아서 풀어내려면 수십 조나 수백 조로는 턱도 없고(1980년대 어림셈으로도), 끝없는 돈으로도 안 되겠더라구요.

 일찍부터 철이 들었다기보다, 구구셈을 해 보니 그랬어요. 그래서 ‘돈 많이 벌 생각은 접자’고 마음을 바꾸었고,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 품은 생각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내 깜냥대로 나누며 살자’였습니다.

 책 하나를 읽어도 그때그때 내 깜냥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속으로 삭여서 몸소 해낼 수 있을 만큼 읽자고, 일 하나를 배워도 내 몸과 마음과 눈높이에 맞게끔만 익혀서 더도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만 하자고.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기꺼이 나서서 하되, 할 수 있는 힘이 없거나 모자라다면, 하는 데까지만 하고 뒷일은 힘과 기운이 되는 이한테 맡기자고. (4340.6.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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