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돌보기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5
재클린 윌슨 지음, 지혜연 옮김, 닉 샤랫 그림 / 시공주니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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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돌보기》(시공주니어)를 읽는 아이들은 자기들을 돌보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지금 어떠한 형편인지, 몸은 어떻고 마음은 어떠한지를 가만히 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아이를 거의 하나만 낳아서 어린 나이부터 일찍일찍 여러 가지를 가르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 하나를 금이야 옥이야 기르기 마련이고, 지나치게 보호한다면서 아이가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가 되어 버리게 한달까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부모와 자식 사이인데도, 서로를 깊이 살피지 못하고 겉스침으로만, 그저 바라기만 하는 대상으로만 느낀달까요.

 글쓴이 재클린 윌슨 님은 이런 현실을 잘 잡아채었고, 누구보다 아이들한테, 또 아버지와 어머니 들한테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면서 살아가면 즐거울까, 더 나을까, 재미와 보람이 있을까를 생각하도록 이끄는구나 싶습니다. 여기에다가 결혼만큼 쉽게 이혼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아버지나 어머니 가운데 한쪽이 없이 지내는 아이들 마음도 더 찬찬히 살피도록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책을 읽으며 좀 거리끼는 대목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좋지만, 이런 줄거리에 나오는 여러 상황이라든지, 집안살림 모습이라든지, 어른들 일 세계나 둘레 마을 모습은 우리 사회하고 많이 다르지 않느냐는 것. 요즘 우리 사회는 서양 문화나 문물이 많이 들어와서 이런 이야기도 그다지 거리낄 만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아파트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현실에서는 자연스러운 삶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어쩐지 거리끼게 됩니다. 너무 도시 중심으로, 서양 이야기 판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냐 싶어서. 그리고, 이만한 줄거리라면 굳이 번역을 해서 내기보다는, 우리 나라 동화작가들이 얼마든지 창작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출판사에서 우리 나라 동화작가들한테 창작의욕을 불태워 주거나 창작동화를 부탁해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려는 마음을 차근차근 북돋우고 일구어 간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습니다. (4339.11.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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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지혜롭게 살았을까? - 지혜가 넘치는 우리 문화 이야기 어린이 인문교양 8
강난숙 지음, 김홍모 그림 / 청년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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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을 살아가는 아이들한테 이 땅 옛사람들 발자취를 들려주고자 한다면, 누구보다도 우리 어른된 사람들이 이 땅을 아끼고 옛사람 발자취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우리 옛 문화와 전통과 삶터를 찬찬히 돌아보지 않거나 낡았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보다 우리 어른들 탓이라고 느낍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우리 옛 문화와 전통과 삶터를 깔보거나 깎아내리거나 내동댕이를 치니, 요즈음 아이들이 우리 옛 문화든 전통이든 삶터이든 눈길 한 번 안 둡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지혜롭게 살았을까?》(청년사,2008)는 아이들로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을 우리 옛사람들 발자취와 모습을 돌아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니 좋습니다. 지금 어른들이 잊어버리거나 아예 처음부터 알지도 않았거나 늘 곁에 있어도 건성으로 지나쳤던 이야기를 스무 갈래로 나누어 찬찬히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여주는 스무 가지 가운데 지금 우리들이 가까이에서 만나거나 느끼거나 새롭게 받아들이거나 요모조모 고쳐서 가꾸고 있는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나마 어렵잖이 보거나 만난다는 김치와 된장만 하더라도, 집에서 손수 장만해서 먹기보다는 가게에서 돈만 주고 사먹고 있습니다. 김치 하나를 한다고 해도 김치를 담글 때 쓰는 푸성귀나 속을 부모든 아이든 손에 흙 한 번 묻히지 않고 오로지 돈으로만 사들입니다. 이리하여 이 책은 자칫 지식쌓기로 흐를 위험이 있고, 글쓴이가 이런 대목에 제대로 마음을 기울이지 못한다는 느낌이 짙어서 ‘우리는 이런 세계제일이 있었어!’ 하는 테두리에서 끝나겠구나 싶습니다. 우리 옛사람들이 슬기로웠다면, 오늘날에도 넉넉히 받아들이거나 새롭게 북돋워 내면서 우리 삶으로 녹아들어야 할 텐데, 지금 형편을 보면 조금도 이러하지 않습니다. 글쓴이와 출판사는 이런 흐름을 조금 더 깊이 살펴서 책을 펴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낱 지식쌓기로만 펴내려고 하는 책인지, 얼추 이런저런 짝맞추기로 펴내려고 하는 책인지, 참으로 아이들한테 피와 살이 되면서 머리로만이 아닌 몸으로 헤아리면서 껴안기를 바라는 책인지 곰곰이 되짚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눈높이를 헤아리노라면 알맞지 못한 말이 너무 많으며, 잘못되거나 뒤틀린 낱말과 말투도 곳곳에 보입니다. 더욱이, 역사 자료를 잘못 살핀 대목까지 보입니다. 이를테면 ‘재와 똥을 함부로 버리면 곤장을 치는 벌을 내렸다(81쪽)’는 대목인데, 1750년부터 1805년을 살았던 학자 박제가 님이 쓴 《북학의》를 읽으면, ‘중국과 달리 조선은 (서울에서) 재와 똥오줌을 간수하지 않고 버리기만 하여, 냄새도 엄청나고 아까운 자원이 헛되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선시대에 곤장치는 벌을 왜 내렸고,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들을 좀더 깐깐이 살펴보고 글을 적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별 다섯 만점에서 하나 반을 주겠습니다. (4341.3.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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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선생님의 어린이 양성 평등 이야기 어린이 인문교양 10
권인숙 지음, 민재회 그림 / 청년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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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보다도 ‘성 평등’을 몸으로 부대끼고 있을 권인숙 님이 쓴 《어린이 양성평등 이야기》는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올바른 생각을 심어 주도록 도와주는 좋은 책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생각 밖으로 깊이있게 이야기를 펼치지 못합니다. 애써 낱권책으로 묶었으나, 어린이 교양만화잡지인 《고래가 그랬어》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나와서 주고받는 이야기보다 눈높이가 얕다고 할까요. 너무 뻔한 이야기,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더욱이 이와 비슷한 주제로 엮어낸 다른 좋은 책도 꽤 있어요. 출판사나 글쓴이로서는 너무 가볍게 ‘요즘 세상에서 잘 먹힐 수 있는’ 글감을 골라서 섣불리 책으로 펴냈다고 느낍니다. 게다가 권인숙 님이 이 책에 쓴 말은 초등학교 아이들한테는 너무 어려우며 우리 말법이나 말투와 어긋난 말마저 꽤 많이 보입니다. 다만,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펼치는 책이 이미 나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양성평등’은 거의 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책으로 읽히고 뜻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이야기를 하기는 하나,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실천으로는 뻗어나가지 못해요. 별 다섯 만점에서 별 하나 반을 겨우 줄 만하다고 느낍니다만, 찬찬히 읽어 보면서 어느 한 가지라도 지금 자기 생각과 삶을 돌아보면서 ‘사람과 사람으로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껴안을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면, 모자라나마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4341.2.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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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
박희병 지음 / 그물코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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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41 ― 돈 아닌 ‘사람’이 가꾸는 고향마을
 : 박희병, 《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을 읽으며


- 책이름 : 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
- 글쓴이 : 박희병
- 펴낸곳 : 그물코(2007.7.25.)
- 책값 : 8000원



 (1) 천막농성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 깃든 동네 한복판을 쑤석거리려는 산업도로를 반대하는 뜻으로 펼쳐 놓은 천막농성터에 나와 있습니다. 어느덧 열아흐레째(3월 17일). 인천시는 자기들이 밀어붙이려는 산업도로가 주민들 반대에 막히어 공사 삽날이 멈추게 되자, 살그머니 말을 돌려서 여론을 바꾸려고 애를 씁니다. 동네 한복판에 놓으려고 하는 길은 ‘산업도로’가 아닌 ‘6차선 간선도로’라 말하고, 방음벽 세우면 걱정거리가 없다고 하면서.

 처음부터 ‘6차선 간선도로’를 내야 하는 곳이 아니었음에도 ‘산업도로에서 간선도로로 목적을 바꾸었으니, 이런 길은 내야 하지 않느냐?’고 주민들 앞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 길이 나야 공해가 줄어든다니까요?” 하는 말과 “이 동네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길이라니까요?” 하는 말에는 그만 질려 버립니다. 찻길이 나야 공해가 줄어든다니, 찻길이 나야 동네가 발전한다니 …….

 천막농성터를 찾아온 인천 동구 구청장님은 말합니다. “어차피 이 동네는 재개발과 재생사업을 할 텐데, 그런 간선도로 놓아 보았자 중복투자가 되니 쓸모가 없다”고. 구청장님은 “나한테는 권한이 없어요. 그리고 시에다가도 이런 길은 내지 말아야 한다고 요청하는 공문도 보냈습니다.” 하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여쭈어 봅니다. 몇 해 앞서 보낸 공문 말고, 요즘에도 그런 요청을 공문으로 시에 올린 적이 있느냐고. 구청장님은 “요사이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해 줍니다.

 구청장님은 ‘일개 구청장한테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하다면, ‘일개 주민’은 어떤 힘이 있는가요. 위에서 내려보내는 명령과 지시가 있으면, 힘이 없는 ‘일개 구청장’은 곧이곧대로 따라야 하고, ‘일개 주민’은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들여야 하나요.


.. 벼가 익으면 이른 아침부터 벼를 베었다. 낫으로 한 동씩 한 동씩 정성껏 베었다. 한 손으로 벼포기를 잡고 벼 밑동을 싹둑싹둑 베었다. 벤 벼는 논바닥에 눕혀 놓았다. 벼 베는 일은 허리가 아프고 힘든 일이지만 일 년의 보람이 여기에 있었다 ..  (벼 베기/152쪽)


 구청장님 말이 아니더라도 가난한 동네 사람들 몇몇 힘으로 나라힘(공권력)을 뒤집기는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옳지 않은 일을 앞에 두고서 힘이 딸린다고, 힘이 모자란다고, 힘이 없다고 하여 물러설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들 삶터가 포크레인 삽날에 찢기고 갈리게 되는 모습을 마냥 불구경 하듯 손 놓고 바라볼 수 없습니다.

 내 모든 이야기와 발자국이 남아 있는 고향인데, 이 고향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모습을 뒷짐 지고 구경할 수 없습니다. 시멘트로 떡바른 아파트가 성냥갑처럼 촘촘히 올라서며 햇볕을 막아 버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우리 뒷사람들이 ‘당신(앞사람)들이 말하는 옛날 자취와 역사와 문화란 무엇이냐?’고 따질 때, ‘우리(뒷사람)들한테 시멘트 아파트만 달랑 남겨 놓고서 우리보고 무엇을 보고 느끼고 꿈꾸며 자라라고 하는 셈이냐?’ 하고 따질 때, 미안합니다 한 마디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흐흐흐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앞사람)는 여기에서 태어나서 이와 같은 집에서 살았고 이러한 골목길에서 뛰놀았으며 이런 역사가 깃든 학교에서 공부했단다’ 하고 들려주고 싶습니다. 공장 굴뚝보다는, 도시락 싸들고 나들이를 올 수 있는 나무그늘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자동차 배기가스보다는 걱정없이 자전거를 타고다닐 수 있는 사람길을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돈으로 이룩한 지엔피 숫자보다는, 땀방울과 웃음울음으로 쌓아올린 책 하나를 남겨 주고 싶습니다.


.. 추수를 끝낸 논에 가 보면 너무도 허전하였다. 그 많던 개구리며 물방개며 소금쟁이며 미꾸라지는 싹 종적을 감추고, 벼 밑동만이 논바닥 까만 흙 위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추수가 끝난 논을 혼자 밟으며 노는 일은 너무나 유쾌한 일이었다. 그 속에는 개구리, 물방개, 소금쟁이의 기억들이 서랍 속의 물건들처럼 빼곡히 들어차 있었따 ..  (추수한 뒤의 논/35쪽)


 (2) 내 고향 네 고향


 일곱 살 앞서는 거의 떠오르지 않지만, 일곱 살 때부터는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그 무렵 살던 다섯 층짜리 아파트는 연탄으로 때던 곳이었고, 1층 집으로 들어가려면 계단 다섯을 밟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2층부터는 일곱 계단이었다고 생각하는데, 한 칸씩 밟고 올라가기보다는 멀리서 달음질을 해 오며 폴짝 뛰어오르기를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네 칸 뜀뛰기가 되었고 드물게 다섯 칸 뜀뛰기가 됩니다. 제자리뛰기를 하면 거의 세 칸 뜀뛰기가 되고, 네 칸을 밟을락 말락 하다가 뒤로 자빠질 뻔하기도 하고 앞으로 콩 넘어지며 무릎이 깨지기 일쑤입니다. 4층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갈 때면 형하고 잡기놀이 하듯 신나게 뛰어올라갑니다. 이때부터는 셋셋하나, 또는 셋둘둘, 또는 셋넷, 또는 둘셋둘.

 거꾸로 4층집에서 내려갈 때에는 한꺼번에 일곱 칸 뛰기를 해 보는데 이럴 때면 무릎이 아프기도 하여 셋넷 나누어 뛰기로 내려오곤 합니다. 때때로 나무로 된 손잡이를 잡고는 계단밟기를 않고 아래쪽 손잡이를 밟고 다시 아래쪽 손잡이를 잡은 뒤 그 아래쪽 손잡이를 밟고 하기를 되풀이. 손잡이에 한쪽 엉덩이를 깔고 미끄러져 내려오기도 합니다.

 어머니 일을 도와서 신문돌리기를 할 때에도 뜀뛰기 놀이 하듯 쉬지 않고 달립니다. 겨드랑이에 끼고 달리는 신문이 무거워 1층 난간 손잡이에 신문을 올려놓고는 한두 부만 집어서 후다닥 올라가 우유주머니에 넣거나 문틈에 끼우거나 문 아래로 밀어넣습니다. 신문 보는 집마다 ‘넣어 달라고 하는 방법’이 달라서, 작은 쪽지에 이런저런 방법을 적어 놓고는 그때그때 보면서 넣습니다. 5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신문이 한 부씩 사라질 때가 있어서 나중에는 무거워도 통째로 들고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합니다. 신문돌림꾼이 지나가는 때를 알고는 슬쩍 한 부 훔쳐가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 흙이 있는 데는 어디든지 땅강아지가 있었다. 마당에도 있고 담부랑 밑에도 있고 집 뒤에도 있고 집 앞에도 있고 밭에도 있고 길에도 있고 강변에도 있고 묵은땅에도 있고 논두렁에도 있고 숲에도 있었다 ..  (땅강아지/138쪽)


 열다섯 동으로 이루어진 다섯 층짜리 아파트에는 큰 놀이터가 둘 있었습니다. 한쪽은 모래밭으로만 제법 길게 이어져 있어서, 이곳에서는 공차기도 하고 공치기도 합니다. 먼저 와서 찜 하는 아이들이 차지하고 놀곤 해서(어차피 같이 놀게 되기는 하지만), 학교 마치고 집으로 올 때면 집에 책가방 던져놓기 앞서 먼저 찜해 놓는 아이가 있기 마련. 넓은 모래밭을 차지하지 못하면, 바로 건너편에 있는 조금 좁은 모래밭을 차지. 이곳도 차지하지 못하면, 1동부터 8동 사이로 퍽 널찍하게 나 있는 찻길이 놀이터. 여기도 차지하지 못하면, 차가 가장 적게 서 있는 동과 동 사이가 놀이터.

 중학교에 들어선 1988년까지도 집에 차를 모는 사람이 드문 우리 동네라서, 우리들 놀이터는 언제나 넓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차도 많지 않은 아파트마을에 웬 빈터를 그리 넓게 마련했는가 모를 일인데, 인천 시내에 있는 다른 5층짜리 아파트도 동과 동 사이 빈터는 모두 넓었어요.


.. 아무리 추워도 사흘만 견디면 다시 따뜻한 날이 온다는 희망 때문에 긴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나흘이 따뜻하면 사흘이 아무리 추워도 견딜 만하였다. 견뎌내기만 하면 다시 따뜻한 날이 온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하였다 ..  (삼한사온/127쪽)


 이렇게 모래밭 놀이터를 차지하면서 공차기를 할 때는, 발이 푹푹 빠지니 제대로 달릴 수 없지만, 그래도 좋다며 신이 나서 달리고 찹니다. 야구놀이를 할 때에는 뜬공 잡기 힘들고 튄공 잡기 버겁지만 좋다고들 뛰고 치고 북적댑니다.

 하드볼이 아닌 테니스공으로 했으니 유리창 깰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요즈음 아파트처럼 툇마루 통유리를 한 집이 몇 군데 없었기에 파울을 치면 툇마루 안쪽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이때는 공을 친 아이가 그 집을 찾아가서 딩동딩동 단추를 눌러서 공 꺼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허구헌날 여러 차례 공 꺼내기 해 주어야 하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는 우리들 개구쟁이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공을 안 꺼내 주겠다고 하면서 욕설이나 큰소리가 나왔고, 공 들어간 집이 1층이나 2층이면 몰래 담벼락을 타고 들어가서 꺼내오곤 하는데, 그러다가 수위 아저씨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죽도록 얻어맞거나 안 붙잡히도록 내빼기.

 동과 동 사이에서 야구를 할 때는 포수가 없이 벽을 포수 삼고 분필로 스트라이크존을 그립니다. 여기에 들어가면 스트라이크. 안 들어가면 볼. 그런데 벽치기 야구를 할 때에도 걸림돌이 있습니다. 벽치기 대상이 되는 1층 집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창문을 열고 “딴 데 가서 놀아!” 하고 빽 소리를 지르니까요.

 벽치기 야구를 할 때에는 으레 2층이나 3층 또는 4층이나 5층까지도 공이 들어갑니다. 어쩌다가 옥상에 공이 올라가면 이때에도 수위 아저씨가 있나 없나 두리번두리번 살핀 뒤 살짝 옥상문 열고 들어가서 공을 주워 옵니다. 위험하다고 해서 옥상에는 못 올라가게 하지만, 이 옥상에 올라가서 공을 주울 때면 우리 아파트마을 오른편에 있는 경인고속도로 들머리가 내려다보이고, 왼편에 있는 제2부두가 내려다보입니다. 공을 줍고 나서 한참 동안 큰 짐차와 컨테이너차를 구경합니다. 타워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집어서 큰 짐배에 싣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다가 저 멀리 수위 아저씨가 저를 보고 꽤액 하고 소리를 치면, 부리나케 옥상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서 어디엔가 숨습니다. 이윽고 다른 동무들이 ‘아저씨 갔다’는 신호가 나오면 조용히 나와서 다시 벽치기 야구놀이를 하고.


.. 웬만한 마을 바위는 모두 이름이 있었다.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들은 대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듣고 부모는 그 부모에게서 듣고 부모의 부모는 또 그 부모에게서 듣고 부모의 부모는 또 그 부모에게서 듣고 이런 식으로 들어 알기도 했을 테지만, 어릴 때부터 마을사람들한테 들어 알기도 했을 것이다 ..  (바위/101쪽)


 모래밭에서 동 대항 야구놀이를 하던 어느 날, 우리 형이 타자로 나온 모습을 보고는 뒤에서 응원한다고 촐싹거리다가 야구방망이에 귀가 맞아서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기도 했습니다. 이날 형은 집에서 구두주걱이 부러지도록 얻어맞고, 야구놀이는 파장이 되고, 저는 너덜거리며 아픈 귀를 잡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엉엉 울기만 하고.

 열흘쯤 앞서 오랜만에 형과 형 옛동무를 만나서 신포시장에서 순대 한 접시 시켜 놓고 소주를 마시다가 옛날 제 귀 떨어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형은 “야, 너 때문에 내가 집에서 얼마나 맞은 줄 알아?” 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합니다만, 그때 아버지한테 얼마나 모질게 혼이 났을까요. 참 미안한 옛일입니다.


.. 한쪽 다리로 나무를 밟고 큰 도끼를 어깨 너머까지 힘차게 들었다가 휙 내리치면 나무가 딱 벌어지며 쪼개지는 것이었다. 한 번에 쪼개지지 않는 나무도 있었는데, 그런 나무에는 반드시 옹이가 있었다. 옹이는 나무의 상처였다. 아버지는 “상처가 있는 나무는 단단하단다”라고 하셨다 ..  (장작/40쪽)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깃든 5층짜리 아파트는 헐려서 없어지고 22층인가 23층짜리 새 아파트가 이 자리에 우람하게 올라섰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끔 이 앞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있던 기름집도 함께 사라지고 기름집 자리에는 맥도널드가 2층짜리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예전 집자리 건너편 정석빌딩은 지금도 그대로. 예전 집자리 왼편에 있던 한국은행 인천지점은 지금도 그대로. 새로 올라선 높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옛 이웃은 지금도 몇 집 있으나, 우리 집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이웃은 다른 데로 살림을 옮겼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인천을 떠난 사람도 있을 테고, 우리 나라를 떠난 사람도 있을 테지요. 멀리멀리 떠나간 사람들이 자기 어린 나날을 보낸 집자리로 돌아와 볼 일이 있을까 모릅니다만, 예전 집자리로 돌아와 본다 한들, 어린 날을 돌이킬 수 있는 ‘무엇인가’는 거의 한 가지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흥 남여 중학교로 가는 울타리도 없고, 울타리에 자라던 까마중도 없으며, 제일제당에서 인천 앞바다로 흘려보내는 쓰레기물 흐르는 개천은 뚜껑이 덮이어 뚜껑 밑으로 쓰레기물이 흐르는지 민물이 흐르는지 똥물이 흐르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그때나 이제나 이곳 하늘을 날고 있는 갈매기를 만납니다. 공장과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와 먼지밖에 없는 곳임에도, 갈매기는 이곳, 바닷가 마을을 잊지 않고 찾아와 줍니다. 몸에 좋을 턱이 없는 새우깡이나마 던져 주는 이 없고, 지친 날개 쉬며 느긋이 앉을 너럭바위 어디에도 없이 모텔만 줄줄줄 늘어선 이곳이지만, 갈매기는 한결같이 찾아와 줍니다.

 바다를 앞에 끼고 살아가는 인천사람이지만 갈매기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데.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찾아오는 바깥사람들도 갈매기를 바라보지 않는데.


 (3) 《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을 책꽂이에 꽂으며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천막 둘레로 지나갑니다. 먼저 초등학생들이 지나갑니다. 재잘재잘 쫑알쫑알. 곧 중학생들이 지나갑니다. 천막 둘레에 걸어 놓은 걸개천 글씨를 읽으며 지나갑니다. 이제 어둠이 깔리면 고등학생들도 지나갈 테지요.


― 나무를 보고 있으면, 말이 없는 것이라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갈참나무/136쪽)
― 두릅을 먹으면 두릅나무에 왜 가시가 많은지 알 것 같았다.  (두릅/133쪽)
― 나무를 모르면 그 눈꽃이 그 눈꽃이지만, 나무를 알면 눈꽃이 저마다 달랐다.  (눈꽃/96쪽)
― 같은 밥을 늘 같이 먹으니 누렁이는 얼굴이며 성품이 우리와 같았다.  (누렁이/83쪽)
― 산골마을에는 교회나 절 같은 건 없어도 밤하늘의 별들 때문에 평화로웠다.  (별/47쪽)



 산골마을에서 어린 날을 보냈던 박희병 님은 당신 어린 날을 돌아보면서 책 하나를 적어내려 갑니다. ‘오늘날 박희병’을 이루어낸 뿌리가 무엇인가를 되짚으면서 책 하나 끄적여 내놓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면서 우리 옛문학 이야기를 틈틈이 책으로 써 내다가, 뜬금없이 당신 옛 고향 발자취를 더듬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어쩌면 뜬금없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까뭉개며 없애려고 하지만, 없어져서는 안 될, 아니 찬찬히 되살아나야 좋을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엮어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고향마을이 될 터전을 자꾸자꾸 짓뭉개거나 밟아 없애려고 하기에, 이러다가는 우리 모두 죽음길로 갈밖에 없다는 걱정이 커지면서 내놓았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거의 모두 도시에 지어진 높고 우람한 아파트에서 살며 부모나 학원 차를 타고 집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지냅니다. 흙 밟을 일이 없지만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 밟을 일도 드뭅니다. 이런 가운데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앞으로 스무 해쯤, 또는 서른 해나 마흔 해쯤 뒤, 자기가 자랐던 어린 날 고향을 떠올리면서 어떤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요. 자연과 담을 쌓는다기보다 아예 ‘자연이라고 하는 국물도 건더기도’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돌아보면서 끄적일 이야기는 누구한테 얼마나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요.


.. 똥물을 주면 채소는 몸이 실해져 벌레가 잘 달라붙지 않고 잎에서는 당장 윤기가 났다. 사람은 자기가 먹은 것을 똥으로 누고 똥은 다시 먹을 것이 되고 먹은 것은 또다시 똥으로 되고 똥은 또다시 먹을 것이 되니 결국은 제한테서 나와 제한테로 돌아가는 듯 싶었다. 마을 어딜 가도 늘 똥냄새가 났으나, 그래서 그 냄새는 싫지 않았다 ..  (똥바가지/118쪽)


 천막농성 열아홉 날이 저물고 스무 날이 다가옵니다. 지난 3월 3일 낮, 인천시 종합건설본부장은 천막농성 터로 한 번 찾아왔습니다. 그날 그분은 우리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거 강제로 포크레인 가지고 때려부수면 그만이라니까!”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태껏 동네사람들하고 ‘막공사 산업도로’ 문제로 열린 토론마당을 한 번도 마련하지 않고 ‘시에서 2020년까지 내다보면서 마련한 계획이니 이대로 해야 한다’는 방침만 통보하고 있는 마당에, 종합건설본부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분 말로는, 더욱이 천막농성터에 찾아온 분이 꺼낼 말로는, 그다지 알맞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뜨거운 무엇이 머리끝까지 솟구쳐올랐고, 헛웃음을 웃으며 돌아가는 종건본부장 겉옷자락 꽁무니를 볼 때에는 소름이 돋았으며, 주민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 마음이 없다는 뜻을 다시금 알게 된 뒤에는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일구어 가는 우리 고향이요 우리 문화요 우리 사회요 우리 세상이 아니라, 돈(경제) 논리 하나만으로 삽날을 앞세워 파헤치고 무너뜨린 다음에 다른 돈보따리를 들고 와서 새로운 집을 지으면 된다고 하는 마음씀은 그지없이 불쌍하고 못난 지식쪼가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높은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얻은 지식이, 그동안 나라밖 여러 곳을 다니며 듣고 보았다는 경험이, 여태 정부 부처 여러 자리에서 나라일을 주물러 왔다는 움직임이 고작 이만큼밖에 안 되느냐 싶으니 눈물이 다 날 노릇이었습니다.

 길은 돈으로 내고 아파트도 돈으로 짓는다지만, 길은 누가 다니고 아파트에는 누가 살지요? 두 다리가 아닌 자동차로만 움직이는 사람은 얼마나 사람다운 사람이며, 온 몸뚱이가 아닌 돈으로 사들여 잠만 자고 떠나는 아파트는 얼마나 사람 깃들일 만한 집입니까? (4341.3.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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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방고의 숲속학교
트래버스 외 지음,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40 ― 아이들한테 ‘공해’를 물려주기 싫다
 : 네 아이가 함께 쓴, 《오카방고의 숲속학교》


- 책이름 : 오카방고의 숲속학교
- 글 : 트래버스, 앵것, 메이지, 오클리
- 옮긴이 : 홍한별
- 펴낸곳 : 갈라파고스(2005.1.7.)
- 책값 : 15000원


 (1) 봄과 학교


 서른네 번째 맞이하는 봄입니다. 서른세 번째 겨울을 지났고 서른세 번째 가을도 지났습니다. 앞으로는 서른네 번째가 되는 여름과 가을입니다. 그런데 서른네 번째 여름이 두렵습니다. 지난여름을 가까스로 넘겼는데 올여름은 얼마나 무더울지 두렵습니다. 다가올 가을도 두렵습니다. 더위가 가라앉으며 울긋불긋 높아가는 가을내를 맡고 싶은데 지난가을에도 가을내를 못 맡았습니다. 돌아올 겨울이 두렵습니다. 겨울답지 않게 푸근하다가 내처 한두 달 동안 꽁꽁 얼어붙은 채 풀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리하여 2008년에 태어날 새 목숨붙이한테 봄을 봄대로, 여름을 여름대로, 가을을 가을대로, 겨울을 겨울대로 느끼도 받아들이도록 해 주지 못할까 싶어서, 무엇보다도 두렵습니다.


.. 사자들은 무자비한 자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 자연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단지 야생의 삶은 힘들 뿐이다 … 사자들은 공간과 자유만 주어지면 자기들의 문제를 영리하게 창의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사자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단 한 가지 있다. 총이다 … 누가 우선되어야 할까? 사람 아니면 사자? 지구의 일부를 따로 떼어놓아 야생동물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야생동물에게 삶의 터전을 돌려주어야 할까, 아니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생존조차 힘든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할까? 물론 내 생각은 확고하다 ..  (208∼210쪽)


 초중고등학교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열렸습니다. 벌써부터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되어 3월은 아주 따뜻하다 못해 때로는 살짝 덥습니다. 종알종알 재잘재잘 하면서 집과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을 봅니다. 서울 나들이를 하며 서울 시내와 골목길을 차 옆으로 아슬아슬 걸어가는 아이들을 봅니다. 인천에서 살며 인천 시내와 골목길을 차방귀 맡으며 걸어가는 아이들을 봅니다.

 아이들 얼굴은 더없이 싱그럽고 살결은 뽀얗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폭신폭신한 운동신이나 딱딱한 구두를 신고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된 길만 밟습니다. 흙도 풀도 밟을 일이 없습니다. 때로는 아스팔트길조차 못 밟습니다. 자동차 시트만 밟습니다.


.. 무엇보다도 ‘마운’에서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고 함께 놀고 어른들과도 잘 어울린다 ..  (28쪽)


 골목길 한켠에 자라는 나무에는 참새라도 머뭅니다. 까치나 비둘기는 머물지 못합니다. 그래서 골목길에서 귀기울이고 걷거나 가만히 서거나 앉으면, 새소리를 듣습니다. 도심지에 심긴 나무에는 참새조차 살지 못합니다. 나무는 죽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며 줄기를 올리지만, 이놈 줄기마저도 봄을 앞두고 싹둑싹둑 잘립니다. 나무는 나무다울 수 없습니다. 나무다울 수 없는 나무에는 새가 보금자리를 틀지 못합니다. 새가 보금자리를 틀지 못하는 나무 둘레에는 그늘이 없고 자연이 없으며, 동네 아이와 어른도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메말라가는 나무 옆으로 맥도널드 가게가 있고 피자헛 가게가 있습니다. 과일주스와 커피를  파는 가게가 있고 이름난 신발과 옷을 파는 가게가 대낮에도 전기불을 환히 밝혀 놓고 있습니다. 햇볕은 못 들어오게 막아 놓으면서.

 목이 마른 아이들은 곳곳에 있는 자판기를 찾아내어 동전 몇 알 집어넣고 탄산이 톡 쏘는 마실거리 깡통을 쪽쪽 빱니다. 또는 편의점이나 구멍가게에 들러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어 종이돈 한 장 내밀고는 쭉쭉 빱니다.


.. 숲에서 피터 아저씨와 함께 살기 전까지는 사자는 그냥 사자였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그놈이 그놈 같았고, 우리가 사자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은 엄마가 사 준 여행 안내서에서 주워모은 지식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자를 너무나 잘 안다. 한 마리 한 마리를 잘 알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자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  (83쪽)


 학교에서는 틀림없이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거나 가르칩니다. 그러면 아이들 집에서는 얼마나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는가요. 학교에서 ‘환경 문제’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서, 우리네 집에서는, 아이 아버지나 어머니는, 또 언니와 누나들은 얼마나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고 몸소 보여주는가요.

 아이가 변기에 누고 내리는 똥과 오줌이 정화조를 거쳐서 하수도로 들어가고, 이 하수도로 들어간 물이 돌고 돌아서 수도물로 나오며, 정수기를 거쳐서 우리 물잔에 담기는 줄 배우는지요. 아이를 집과 학교와 학원으로 태워 주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가 하늘로 꾸역꾸역 모여서 산성비가 되어 땅으로 돌아온 뒤 땅속으로 스며들어서, 아이들이 사마시는 탄산음료 물이 되는 줄 느끼는지요. 아이 방을 채우고 있는 갖가지 장난감을 만드느라 공장에서 써 버리는 쓰레기물(폐수)이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가서 물고기를 병들게 하고, 우리는 이렇게 병든 물고기를 잡아서 저녁밥상에 올려놓고 있음을 헤아리는지요.





.. 지난 3년 간 우리는 아주 많이 성장했다. 우리는 이제 동물에 대한 이해가 자연을 보존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자를 직접 관찰하고 매일 사자의 일상을 쫓다 보니,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얻은 정보가 실제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읽거나 본 것을 모두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접 고생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  (97쪽)


 제가 살고 있는 인천에서는, 옛 도심지에 있던 학교들이 일찌감치 ‘새 도심지가 될 곳’에 땅을 사서 학교 건물 새로 지어서 옮겼습니다. 새로 지은 학교마다 체육관이며 실습관이며 시설이며 …… ‘현대식’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들어섭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다니는 ‘새로 지은’ 학교에서 쓸 수 있는 ‘도서관 책 장만하는 돈’은 한 해에 200만 원을 겨우 넘을 뿐입니다. 다른 학교도 엇비슷합니다만, 그나마 이 이백만 원도 ‘책 사는 데에 제대로 쓰이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 돈 이백만 원으로 ‘어떤 책을 사고 있는지’를 알 턱조차 없어요.

 새 학교 짓는 데에 수십 억을 쏟아붓지만, 또 학교도서관을 꾸민다고 수 억이나 수천만 원을 들이지만, 정작 이 도서관에 갖출 책을 장만할 돈은 없습니다. 국공립도서관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출판사에 공문을 띄워서 ‘책 기부를 해 달라’고 할 뿐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부천에 있는, 또 성남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교장이었을 때 찾아갔던 일을 떠올려봅니다. 당신 일하는 학교에서도 도서관 꾸미는 데에 정부 뒷배로 수천만 원을 받아서 깔끔하고 멋들어지게 꾸며 놓았지만, 정작 책을 사들여서 갖추어 놓는 데에는 ‘국고예산으로 한 해에 떨어지는 이백만 원’에만 기댈 뿐이었습니다.


.. 우리가 상처를 돌보았다면 오히려 살아남을 가능성이 낮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무척 힘들었다. 사자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렸거나 사람 때문에 다쳤다면 도와줘야 하겠지만, 자연 상태에서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에는 스스로 이겨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  (108쪽)


 이제는 학교마다 급식실이 생겨서 도시락 싸들고 갈 일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급식비 내는 새로운 짐이 생깁니다. 또한, 아이마다 몸이 다르고 밥버릇이 다른데, 학교 급식은 얼마나 아이 하나하나에 맞출 수 있을까요. 집에서 도시락을 싸들고 오면 남기거나 버려지는 밥과 반찬이 거의 없을 텐데, 학교 급식실에서는 음식물쓰레기를 어떻게 간수하지요. 몸에 더 낫다고 하는 유기농 곡식을 학교 급식실에서 영양사가 사들여서 지지고 볶고 하기보다는, 학교 텃밭을 마련해서 아이와 교사가 손수 푸성귀를 길러서 먹도록 하면 한결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괜한 걱정에 쓸데없는 마음씀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하나, 동네 아이들을 보면서, 또 우리 집에서 태어나 자라날 아이를 생각하면서, 이런 데에 눈길과 마음길이 쏠립니다. 부모 된 우리 어른들부터 ‘도시락 싸는 마음’을 잃고 ‘돈으로 때우는 마음’을 키우면서, 아이들한테 마음이 아닌 돈을 가르치고 있구나 싶어요. ‘더 많이 배웠으니 더 많이 나누자’ 하는 뜻을 가꾸기보다는, ‘더 많이 배웠으니 더 많은 돈을 나 혼자 벌자’는 뜻만 북돋우고 있구나 싶어요.





 (2) 아이들과 삶아갈 곳


.. 나는 지금 열여섯 살이고 운전을 한 지는 올해로 5년째다. 운전은 엄마한테 배웠다 … 이 사자를 아주 어릴 때부터 죽 봐 와서 이 녀석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녀석을 무척 좋아한다 ..  (16쪽)


 학교 앞에서 차에 치여 죽은 아이 소식을 들으며, 국민학교 적 일을 생각해 냅니다. 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도 한 차례인가 두 차례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워낙 수출입 물동량이 많은 인천이고, 제가 다니는 국민학교 앞으로는 그때나 이제나 그 수출입 물동량 큰 짐차(컨테이너차나 자동차를 두 겹으로 싣고 다니는 짐차 따위)가 뻔질나게 다닙니다. 건널목이 있어도 건널목 푸른불에 제때 멈추는 차보다는 휙 하고 지나가는 차가 더 많습니다. 푸른불에 멈추지 않고 씽씽 달리는 차 때문에 건널목 푸른불이 다 바뀌도록 건너지 못한 적도 잦았습니다. 이럴 때에는 누군가 어른이 건널목에서 기다리다가 건너 주어야 겨우 마음을 놓고 후다닥 뜀박질을 하며 함께 건넜습니다. 건널목을 건너며 동무한테 ‘잘 가’ 하고 손인사를 하다가 귀옆을 쌔애액 하며 지나가는 큰 짐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몸뚱이가 후들후들 떨리리며 간이 콩알만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국민학교 앞길부터 해서 일곱 군데나 되는 초중고등학교 앞을 지나가는 또다른 산업도로를 내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 몹쓸 일을 지켜보던 동네사람들이 ‘생존권을 또 짓밟으려 하느냐’ 하면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 일을 꾀하는 인천시 공무원들은 우리들 주민한테 한결같은 목소리로, “여기에 이런 찻길이 놓이면 오히려 공해가 줄고 동네가 살기 좋아지는데, 왜 반대를 합니까?” 하고 대꾸를 합니다. 올해에도,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 처음에는 숲을 돌아다녀도 아무것도 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몇 차례 가다 보니 눈이 밝아지고 주변 환경에 더 민감해졌다 … 숲에 다닌 지 여러 달이 되었지만 사자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한테 사자를 볼 수 있는 예리한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  (52,58쪽)


 동네 주민들이 인천시 도로과 공무원한테 따집니다. “당신들 집 앞에 이런 길을 낸다고 하면 거기서 살겠느냐”고. 도로과 공무원은 대꾸합니다. “나라면 내 집 앞에 이런 길을 내는 것을 찬성하겠다”고.

 허허, 허허. 주민들은 말문이 막힙니다. 속이 울컥하면서, ‘당신 아이가 초등학생이고, 그 아이가 집에서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 그렇게 널따란 찻길이 새로 뚫리면서 그 길을 건너다녀야 하는 판이라면 마음놓고 학교에 보낼 수 있겠느냐’고 묻고 싶지만 묻지 않습니다. 이렇게 물었다가는, ‘부모가 뭐 하는 사람입니까, 그럴 때는 자가용에 아이를 태워서 학교를 다니게 하면 되잖습니까?’ 하는 대꾸가 돌아올 테니까. ‘차없는 사람은 어떡하라고?’ 따져 보았자, ‘차 한 대 장만하시면 되지요. 요새 차값이 얼마나 싼데, 그거 하나 못 사요. 그리고 요새 차 없는 집이 어디 있어요?’ 하는 대꾸만 돌아올 테고.


.. 우리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 삶을 이상화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비가 오는 날이면 눅눅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거나, 변소가 가득 차면 새로 파야 한다거나, 한밤중에 토했는데 물도 나오지 않고 전기도 나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  (122쪽)





 자동차 이름 줄줄 외는 아이들, 게임 아이템 달달 외우는 아이들, 연예인 이름뿐 아니라 개인 삶까지 속속들이 꿰는 아이들. 아이들을 둘러싼 삶터가 이러하다면, 아이들한테는 한갓지고 조촐한 골목길이나 놀이터보다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오토바이가 훨씬 반갑고 고마운 선물일 수 있겠어요.

 좀더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와 탁 트인 하늘과 따순 햇살과 싱그러운 무지개와 하이얀 구름과 파란 바다를 물려주고 싶은 제 마음이지만, 좀더 조용하며 이웃끼리 어깨동무하면서 살아가는 동네 삶터를 이어주고 싶은 제 마음이지만, 이런 제 마음은 한낱 헛꿈이나 개꿈일 수 있겠어요. 아이한테는 사랑보다는 돈을, 믿음보다는 큰 아파트를, 나눔보다는 빠른 차를 물려주어야 하는가 봐요.


.. 아기 때는 모래밭에서 기면서 곤충들을 보았고, 어린아이 때는 나무에 올라가 새를 보았고, 좀더 자라서는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나가 동물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다 … 차 뒷좌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아주 작은 것들이다. 숲을 보려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연을 이루는 구성원들을 먼저 보아야 한다. 아프리카에 오는 사람들이 그저 ‘다섯 거물(사자, 버펄로, 코끼리, 표범, 코뿔소)’만 보려고 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조그만 생물들의 세계를 완전히 놓치고 마는 것이다. 왜 그런지 사람들은 이런 작은 동물들을 무서워한다. 인체에 무해한 벽거미를 텐트에서 눈에 뜨이는 족족 잡아 죽인다. 이 거미들이 자기들이 가져온 살충제만큼이나 모기를 죽이는 데 유용하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  (170쪽)


 그나마 우리 집에 갖추고 있는 책들로 아이 마음밥을 넉넉히 살찌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집에서 마음밥을 아무리 넉넉히 받아먹는다고 해도, 이 삶터가 온통 자동차 소리와 배기가스로 어지럽고 시끄럽다면 어쩌지요. 아이 몸뚱이가 맑은 바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이 눈이 싱그러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다면, 아이 발이 풋풋한 흙내음을 밟을 수 없다면, 아이 얼굴을 타고 땀방울이 흐를 만큼 뛰어놀 골목이 없다면.


 (3)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를 다시 한 번 덮으면서


 영국 도심지에서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아프리카 벌판으로 옮겨가서 어린 나날을 보내게 된 네 아이 삶과 생각이 담긴 책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를 읽어냅니다. 한 번 읽고 덮은 뒤 한 해쯤 묵히다가 다시 펼쳐서 읽고 덮습니다. 처음에는 부러운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유럽놈들이니까 우리 나라와 같은 걱정이 없어서 이렇게도 살 수 있지 하는 짜증이 살짝 있었습니다. 세계 온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괴롭힌 녀석들인데 하는 짜증.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이런 마음은 말끔히 가시지 않습니다.

 다만, 영국이나 유럽이나 미국이 세계 온나라를 식민지로 삼거나 괴롭히는 짓은 이 아이들 탓이 아니지 않느냐고, 또 이 아이네 부모는 그런 제 고향나라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 않느냐고 하는 생각.


.. 젖 떼는 시기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어미가 얼마나 잘 참아 주느냐, 다른 먹이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8개월이 되면 고기를 주로 먹는다. 우리의 관찰에 따르면 오래 젖을 빤 새끼가 더 건강한 것 같다 ..  (216쪽)







 가만히 보면, 우리 나라가 일본한테 식민지살이를 겪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는 제3세계 나라에서 찾아오는 사람들, ‘이주노동자’를 모질게 괴롭히고 들볶고 등처먹고 푸대접하고 깔봅니다. 우리 나라는 미국한테 경제 식민지처럼 매여 있으나, 우리 나라가 울궈먹고 못살게 구는 가난한 나라가 퍽 많습니다. 말과 물이 선 나라뿐 아니라, 중국 조선족을 괴롭히고 따돌리는 우리 나라입니다. 일본 조선인을 깎아내리며 콧방귀도 안 뀌는 우리 나라입니다. 러시아 한인은 어떻고요.


.. 숲속 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숲에서 사는 생활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환상적이라고 말하면 거짓이겠지만, 많은 부분은 다른 어떤 삶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  (92쪽)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치며 사진을 죽 훑고,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은 대목을 또 한 번 읽습니다. 마음속 깊은 데까지 건드려 준 좋은 이야기를 맛보았으면서 왜 이렇게 심통을 부리나 싶군요. 아무래도 마음그릇이 좁기 때문에, 마음닦기가 덜 되었기 때문에 이러나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마음짐 내려놓고 ‘개발 삽날’ 걱정 없이 해맑은 바람과 시원한 물을 즐기는 가운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함께 살아갈 터전이 그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생각 때문에 슬퍼서 이러는구나 싶어요.

 시골은 시골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제 모습 제 꿈 제 빛깔을 고이 간직하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더 많은 돈을 뽑아내는 개발이 아니라, 더 즐겁고 밝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 가꾸기로 눈길을 맞출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더 널리 함께하는 슬기로움이면 좋을 텐데. 더 많은 자격증이나 더 높은 졸업장이 아니라 더 따숩고 살가운 배움과 가르침으로 오순도순 어울릴 수 있는 이야기라면 좋을 텐데. 산업도로든 간선도로든 다른 무슨 길이든, 자동차만 다니는 길 닦는 데에만 수천 수만 수억 수조를 쏟아붓지 말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과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을 있는 그대로 살려 놓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서 들짐승들과 날짐승이 살아갈 길을 지켜 주고. (4341.3.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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