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 -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두 바퀴 이야기
김세환 지음 / 헤르메스미디어 / 200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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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하는 세상이지만
 [잠깐 읽기 1] 김세환,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



- 책이름 :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
- 글쓴이 : 김세환
- 펴낸곳 : 헤르메스미디어(2007.4.5.)
- 책값 : 9800원



 (1)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하는 세상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한 소리를 듣습니다. 나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한 소리를 듣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한 소리를 듣습니다. 실업자는 실업자대로 한 소리를 듣고,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한 소리를 듣습니다. 농사꾼은 농사꾼대로, 글쟁이와 사진쟁이는 글쟁이와 사진쟁이대로 한 소리를 듣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한 소리를 듣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아이들대로 자전거로 학교를 오가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아직 어려서 찻길에까지 나오면서 자전거를 타면 차에 치일까 걱정이라고 합니다. 골목길에서도 씽씽대며 자동차를 들이미는 사람들은 쉴새없이 빵빵질을 하면서 아이들한테 욕지거리 퍼붓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아이들대로 학교까지 자전거로 다니기 어렵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수험공부에 시달려서 몸이 고단하기도 합니다. 자전거로 다닐 시간에 부모님이 자가용에 태워서 씽 보내주어야 몸이 덜 고단하고 공부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많다고들 이야기를 한답니다. 대학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학점따기 공부나 동아리 활동이나 사랑놀이나 온갖 일거리에 바쁘니 자전거 탈 겨를을 마련하기 힘듭니다. 일터를 나가는 사람들은 일터에 나가는 사람대로 치이고 볶입니다. 더욱이 저녁에는 툭하면 술자리인데 어느 세월에 자전거를 타겠습니까. 아침에 늦잠을 자고 부랴부랴 길을 나서니 자전거를 타고다닐 엄두는 도무지 내지 못합니다.


.. 내가 처음 산악자전거를 탄 것은 내 나이 마흔을 넘긴 시점이었다.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그 나이에 젊은 사람들도 타기 어렵다는 산악자전거를 타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놀라는 반응을 보내 왔다. 그런 시선들 속에는 부러움과 비웃음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현란한 복장과 몸에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겠다는 것이, 나이로 보나 사회적인 위치로 보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게는 산악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열망이 그 모든 부정적인 반응보다 강렬했다 ..  (77쪽)


 자전거 타기 힘든 세상, 아니, 가만히 살펴보면, ‘자전거는 타고다니지 말라는 세상’입니다. 지금 아이들 교육 얼거리를 보면, 참다운 사람으로 크도록 이끄는 학교교육이 아닙니다. 더 높은 대학교에 가도록 시험점수 잘 받게 지식을 집어넣는 교육일 뿐입니다. 아이들한테 영어를 일찌감치 가르치는 까닭이, 아이가 ‘착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는 뜻인가요? 아이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재주를 기르라’는 뜻에서 가르치는 영어가 아니던가요? 한자를 가르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를 가르칠 때에도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인문학이 푸대접도 아닌 똥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한둘이 아닐 테지요. 무엇보다도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사람으로 살기보다는 ‘사람 아니게’ 살도록 내모는 사회 얼거리가 갈수록 깊어지기 때문에 인문학은 똥대접, 찬밥대접이 아니겠느냐 싶어요. 느긋하게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가꾸도록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두 다리로 우리 땅을 디디면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일깨우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자기 몸뚱이를 움직여서 일하는 기쁨과 땀흘리는 맛깔스러움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들이마신 산소는 몸만 정화시킨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에서 받은 온갖 스트레스와 걱정까지 날려 주곤 했다 ..  (8쪽)


 자전거는 취미일 수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삶입니다. 손빨래를 취미로 하는 분도 없지는 않을 터이나, 손빨래는 어디까지나 삶입니다. 1회용 기저귀를 안 쓰고 천기저귀를 쓰면서 손빨래를 하고 삶아서 빨랫줄에 널어서 햇볕에 말리는 사람들은 그저 환경운동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새로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좀더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이렇게 합니다. 1회용 나무젓가락을 안 쓰고 쇠젓가락을 쓰거나, 나무젓가락을 깨끗이 씻고 말려서 다시 쓰는 사람들도 그래요. 한낱 환경운동으로 이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삶을 가꾸고 보듬으려는 마음이라서 이렇게 합니다. 내 이웃과 내 식구들, 그리고 내 자신까지 사랑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1회용품 한 가지로도 우리 삶터를 더럽히고 싶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자전거입니다. 자가용도 안 몰지만, 또는 자가용을 모는 분들이라 한다면 조금 덜 몰지만, 내 몸뚱이를 움직여서 내 힘으로 내 사는 이 나라 이 터전을 밟는 자전거입니다.


.. 편안한 복장 때문에 마음까지 가벼웠고, 페달을 밟는 다리에 더욱 힘이 갔다. 역시 나에게는 갇힌 공간인 자동차나 목을 누르는 넥타이보다 이렇게 자유로운 복장과 자전거가 제격이었다 … 정장을 벗고 자동차를 버렸던 그날, 내가 풍경을 즐기면서 가장 빨리 도착점에 이르렀던 것처럼 … “이런 오르막길을 어쩌면 그렇게 잘 오르세요?” 웃음으로 답하지만, 사실 나의 비결은 천천히 포기하지 않고 내 속도로 올라가는 것이다. 빠르게 올라갈 자신은 없지만 지치지 않고 오래 올라갈 자신은 있다 ..  (41∼42쪽, 50쪽)


 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눈 비 바람 햇볕 어느 때에나 자전거로만 움직이면서 지난 몇 해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자동차꾼들이 일으켜 주신 ‘뺑소니 사고’ 여러 차례에 몸이 망가져서 팔다리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사랑스럽고 그리운 자전거가 먼지 먹는 모습을 씁쓸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걸레질만 해 줍니다. 아무래도 자전거 세상이 아닌 자동차 세상인데, 이런 세상을 거스른 탓일까요. 더 높은 학교를 다니고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더 크고 빠른 차를 몰면서 살아야만 ‘내 이웃을 밟고 올라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인데, ‘위로 올라갈’ 생각은 않고 아래에서 자전거만 타고다닌 보람일까요.


 (2) 김세환 님, 다음에는 부디 ‘행복한 자전거’ 이야기로 …


 연예밭에서 일하는 김세환 님은 1986년부터 자전거를 탑니다. 그리고 2007년, 당신이 스무 해 남짓 즐겨 온 자전거 이야기를 책으로 하나 묶어냅니다.

 김세환 님이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 몰기로 당신 길을 걸었다면, 이렇게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 하나로 묶을 수 없었을 겝니다. 그래도 당신 자서전을 쓰기는 쓰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만, ‘자동차와 살아온 발자국’만으로 펴낸 자서전이었다면, 우리 눈길을 그다지 사로잡지는 못했으리라 봅니다.


.. 어찌된 일인지, 좋은 자전거를 사면 다들 윌리부터 시도하려고 한다. 좋은 장비를 갖췄으니 뭔가 그에 걸맞은 멋진 기술을 구사해 보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그러나 산에서 자전거를 탈 때 기술은 곧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겸손하게 하나씩 단계를 밟아 배우겠다는 마음가짐부터 가져야 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  (154쪽)


 그러나,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는 못내 아쉽습니다. 김세환 님 당신이 스무 해 넘는 세월을 자전거와 함께 살면서 ‘행복했다’고 말씀을 하지만, 얼마나 어떻게 ‘행복했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책은 ‘행복한 자전거’를 말하는 책이라고 내세우지만, ‘자전거 풋내기한테 알려주고 싶은 선배 도움말’ 몇 가지에다가, ‘아직 자전거를 안 타는 사람한테 해 주고 싶은 말’ 몇 가지에다가, ‘산타는자전거를 즐기고픈 이한테 미리 알려주는 말’ 몇 가지에 무게가 지나치게 쏠려 있습니다.

 자전거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너무 적게 들어가 있고, 책에 담은 글은 ‘자전거에 앉아서 땀흘리며 쓴’ 글이 아니라,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로 생각하며 쓴’ 글이라는 느낌이 짙습니다. 김세환 님 자전거 삶 스무 해를 헤아려 본다면, 알맹이가 빠져 있다고 할는지요, 팥소가 빠진 찐빵이라고 할는지요. 한편, ‘행복한 자전거’를 알뜰하게 채우지 못하는 가운데 책끝에 ‘김세환 님 자서전’ 비슷한 이야기를 달아놓습니다. 김세환 님을 좋아하는 분들한테 드리는 선물 같은 꼭지라고 보아도 좋을 수 있으나, 이 또한 ‘행복한 자전거’하고는 너무 멀리 떨어지고 맙니다.

 책을 읽으며 별 숫자로 점수를 붙이고 싶지 않습니다만, 부디 김세환 님이 다음에는 좀더 ‘행복한 자전거’ 이야기를 들려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별 다섯 만점에서 둘 반을 드립니다. (4341.3.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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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할머니의 나의 수채화 인생
박정희 지음 / 미다스북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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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42 ― 우리 어머니 삶도 예술이요 문화가 아닐까?
 :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 《나의 수채화 인생》



- 책이름 : 나의 수채화 인생
- 글ㆍ그림 : 박정희
- 책만든곳 : 미다스북스(2005.3.31.)
- 책값 : 13000원





 (1) 손과 얼굴과 하얀 빛


 안양에 볼일이 있어서 전철을 타고 나들이를 다녀오면서 사람들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은 어쩐지 사람들 얼굴에 자꾸 눈이 갑니다. 손에도 눈이 가고, 하얗게 드러낸 종아리나 허벅지에도 눈이 갑니다. 그러다가 제 손을 들여다보고, 뒷간에 있는 거울을 보며 제 얼굴을 곰곰이 살핍니다.

 때는 바야흐로 삼월하고도 스무 날을 넘기는 때.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월에 한 차례 눈보라가 치고 나서야 따순 기운이 돌았는데 올해에는 삼월 눈은 찾아오지 않을 듯한 느낌. 벌써부터 반소매 옷차림으로 다니는 사람이 생겨나고, 자동차 에어컨 돌리는 사람도 있고.


..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밖의 일을 보고 돌아온 나에게 남편은 정색을 하고 앉으라더니, “나, 왜 살아?”라고 물었다. 남편의 그 말에 무어라 얘기를 해야 할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준엄한 표정 앞에 나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분의 명령으로 사는 거지요. 당신은 팔십 평생 참 좋은 의사로 수고 많이 했고, 이제는 머리도 몸도 늙고 망가져서 돌아갈 때가 된 것이지요. 먼저 하나님께로 가세요. 제가 뒤따라갈게요.” ..  (6쪽)


 무릎이 맛이 가고 왼어깨가 나가고 오른팔꿈치도 반편이가 된 가운데 먹통인 오른손목도 내 손목 같지가 않은 지금, 다문 1분 자전거를 타도 네 군데 다섯 군데에서 아이고 아야 엉엉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찔끔 합니다.

 한창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면서 살던 때에는, 고무신 안쪽 발가락과 발바닥만 하얗고 나머지 몸뚱이는 죄 새까맸는데,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된 지금은 ‘살갗이 참 하얗네요’ 소리를 듣습니다. 이 소리를 들을 때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가뜩이나 도서관 지키랴 천막농성 하랴, 길에서 햇볕 쬐며 움직일 일이 없어진 요즘이니, 싫디싫은 허연 얼굴로 살아가게 되는 모습이 진저리가 쳐집니다. 햇볕을 쬐며 일하고 싶은데. 햇볕 쬐는 곳에서 일할 수 없다고 해도, 낮에는 햇볕을 쬐면서 돌아다니고 싶은데.


.. 행복이라 느끼면서 살다 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주었던 사랑을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나에게 베풀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라는 권위로 혼내고 다그치기보다는, 함께 즐기고 어떻게 하면 서로 즐거울 수 있는지를 생각해 왔다. 그래서일까? 지금 나이에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키우면서 받은 추억들이 너무나 많다 ..  (39쪽)


 어릴 적부터 제 살결은 허연 편이었습니다. 동무들하고 똑같이 바깥에서 뒹굴며 놀아도 동무들은 금세 까맣게 그을리는데 저는 허여멀겋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늘을 부러 찾아가지 않고 그냥 땡볕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노는 데에도 살갗이 잘 타지 않았습니다. 군대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하얀 얼굴이라고 해서 구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휴가를 받아 한두 번 세상 구경을 할라치면 ‘꼭 도적놈 같다’는 소리를 듣지만, 부대에서는 ‘얼굴 허연 놈’ 소리를 듣습니다.

 책만 읽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그다지 안 많은 사람임에도, 또 책읽기보다는 밖으로 나다니는 시간이 훨씬 많은 사람임에도, 얼굴이 허여니 책상에서 펜대나 굴리는 놈팽이로 여기는 눈길이 달갑지 않습니다. 남들 눈길이 어떠하든 제 나름대로 살면 그만일 텐데, 저부터 사람 보는 눈길에서 홀가분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잘 그을렸다고 해서 더 훌륭한 사람이 아니고, 얼굴이 허옇다고 해서 못난 사람이 아닐 텐데, 어릴 적부터 오래도록 ‘얼굴 허연 사람’은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 대접을 해서 무척 꺼려졌습니다.


.. 초등학교에 근무한 경험이 있던 나는,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지 않는 어린이가 질색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한글도 모른 채 선생님께 맡기고 싶었다 ..  (76쪽)


 전철을 타고 움직이는 사람들 얼굴은 저보다 훨씬 허여멀겁니다. 안양에 닿아 찾아간 사무실에서 일하는 공무원들 얼굴은 더더욱 허여멀겁니다. 아주머니 할머니는 얼굴에 허옇디허연 화장품을 바르고, 젊은 아가씨도 얼굴에 하얗디하얀 화장품을 바릅니다. 얼굴 하얀 서양사람처럼 되어야 살결 곱고 예쁜 사람으로 보인다고 느껴서 이리 할 텐데, 서양사람도 들판에서 일하는 이들은 살결이 까무잡잡합니다. 기록사진으로 남아 있는 1900년대 첫머리, 또는 1800년대 끝머리 서양사람들 살결을 보면 우리가 ‘깜둥이’라고 하는 사람들 살결하고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개화기 무렵 우리 나라 백성들 사진을 살펴보면 모두들 까만 얼굴에 까만 손에 까만 발입니다. 이 무렵 임금과 높은 신하들 사진을 살펴보면 퍽 허여멀건 얼굴에 허연 손입니다.


.. “오늘 하늘의 빛은 코발트로 칠하고,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은 오렌지색이네? 이렇게 드문드문 가로 점을 찍은 다음, 굵은 붓에 맑은 물을 묻혀서 슬슬 가로 퍼뜨리면 시원하게 그려졌지? 그리고 수건을 손가락에 감고 찍어내면 구름이 되는 거란다. 마른 뒤에 구름의 표정에 조심스럽게 그늘을 넣어 볼까?” “우와∼ 쉽다. 나도 선생님처럼 저 구름을 그려야지.” 아무리 보이는 대로 그리려고 애를 써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오묘한 광선과 바람을 어찌 그릴 수가 있겠는가. 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없이 즐거워하며 행복을 만끽하며 자연을 흉내내듯 그리는 것도 자연이 내려준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인 것이라 생각한다 ..  (139쪽)


 잠깐 일을 멈추고 제 손을 바라봅니다. 서른네 살 먹은 아저씨 손을 봅니다. 손가락과 손바닥에 굳은살이 넓게 박혀 있습니다. 자전거를 못 타고 있음에도 굳은살은 그대로입니다. 손마디에는 주름이 굵직하게 패였고, 손가락이며 손등께며 불그스름합니다. 손끝은 빨갑니다. 책을 읽는다며 또 글을 쓴다며 할 때 보면 손이 시려서 자주 비빔질을 하고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 끼고 녹이곤 합니다. 날이 풀렸다고 찬물로만 빨래를 하다 보니 두어 점 손빨래를 하고 나면 손끝까지 쩡쩡 얼어붙어 살짝 아픕니다.

 어릴 적을 더듬어, 우리 어머니가 제 나이였을 때 손이 어떠했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때 어머니 손을 보면서, ‘어머니 손은 왜 이렇게 누래요?’ 하고 여쭈곤 했습니다. 제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불긋불긋한 가운데 누릇누릇합니다. 그때 어머니 손이 왜 누랬는지 알 만합니다.







 (2) 우리 어머니


 환갑 나이가 된 어머니한테 ‘어머니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시지요?’ 하고 여쭈면, 으레 ‘알잖아?’ 하면서 ‘없어.’ 하고 끊어버립니다. 하긴, 누군가 저한테 무슨 먹을거리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글쎄 …… 없는데.’ 하고 대답합니다.

 어느 어머니가 안 그러느겠느냐만, 우리 어머니도 틀림없이 좋아하는 먹을거리가 있을 텐데, 당신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생각할 겨를이 없이 살아오셨지 싶습니다. 당신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즐길 틈이 없이 사는 가운데 그예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아니, 당신 머리속 한켠에 아주 조그맣게 숨겨 두고는 다시 들추어낼 생각을 못하시지는 않는지.

 입가림이 많아서 반찬을 골고루 못 먹던 저였습니다. 어머니는 걱정도 많고 다그침과 꾸지람도 많았지만, 그래도 웬만해서는 봐주며 제 입에 무엇이 맞나 찾아 주려고 애쓰셨습니다. 우유도 못 마시지 치즈도 못 먹지 버터도 게우지 배추김치는 못 씹지 김은 숨막히지 찬국수에는 속이 뒤집히지 ……(우유는 몇 번 물똥을 누고 나서 입에 맞으면 즐겨먹게 되지만, 한 주쯤 안 먹고 끊다가 다시 마시면 꼭 탈이 났고, 배추김치는 영 삼키기 힘들어 했습니다. 이제는 다 잘 먹고 있습니다만). 어린 그때를 생각하면, 밥먹는 자리는 바늘방석 안절부절이었습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눈치밥을 먹어야 하나, 오늘은 또 얼마나 울면서 억지로 삼켜야 하나.

 꼭 저 때문은 아니지만, 저를 비롯해 다른 두 식구가 먹지 않고 남기는 반찬이 있을 때면 어머니는 그 반찬을 꼭꼭 남김없이 드셨습니다. 날짜가 지난 우유는 벌컥벌컥 들이키셨고, 두 형제와 아버지가 지저분하게 먹고 남긴 물고기 반찬도 뼈까지 우걱우걱 씹으면서 마무리를 지으셨습니다.


.. 흰 수건을 머리에 쓴 아낙네들 서너 명이 무엇인가를 심고 있었다. 저 멀리 울멍줄멍한 산 위에 청명한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 상태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는 그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집에 가서 빨랫감을 놓고 그림도구를 가지고 오겠다면서 돌아섰다. 하지만 이내 집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다시 되돌렸다. ‘말도 안 돼! 신랑이 입고 나갈 와이셔츠를 빨아야 하잖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몇 번 되풀이하던 끝에 결국, 지난해의 잡초가 말라 있는 자리에 털퍼덕 앉아 무릎 위에 스케치북을 폈다. 그런데 그 순간 두 눈에서 더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것은 무슨 조화였을까. 그 얼굴을 남들이 보기라도 했다면 무어라 했을지. 그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어, 이렇게 좋은 풍경화를 어디서 샀나?”라고 내게 물어 보았다. “제가 그린 거예요.” ..  (25∼27쪽)


 남은 밥이나 반찬을 뒤에서 조용히 마무리하는 모습을 늘 보면서 마음에는 죄스러움과 미안함이 쌓입니다. 밥상머리에서 늘 꾸지람을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에도 막내아이 몸이 걱정되어 어떤 먹을거리를 주어야 하느냐로 마음앓이 많으셨겠지요. 이런 걱정 저런 마음씀은 제 몸으로 살며시 스며들어 한 해 두 해 열 해 스무 해가 지나는 동안, 그 어린 날에는 몸에서 안 받는 여러 가지가 몸에 받게 되고 잘 먹게 됩니다. 지금도 물고기 대가리는 못 먹습니다만, 꼬리와 지느러미와 내장만 빼고는 깨끗이 먹습니다. 반찬 남기는 일이 없고 밥풀 하나 흘리는 일이 없습니다. 워낙 어려서부터 밥그릇에 밥풀 하나라도 남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어쩌다가 바닥에 밥풀을 흘렸으면 곧바로 주워서 먹어야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으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밥알 하나 함부로 여기지 말고 옳게 간수하라는 뜻이었고, 밥 한 그릇 비우는 고마움을 알라는 뜻이었습니다. 내 소중한 목숨을 이어가도록 나한테 바쳐진 다른 목숨을 먹는 일이 밥임을 깨닫게 해 주는 뜻이었습니다.


― [육아일기] 현애를 나았을 때의 엄마(1947)
: 25세 때였다. 모든 것이 내 힘에 벅찼든 때였다. 나라의 상태도 그렇지만 나 개인의 사정도 힘들어 내가 무한히 좋아하는 그림과 글씨를 못 그린 기간이였다. (55쪽)



 허구헌날 병치레요, 툭하면 비실대니, 바람 잘 날 없는 막내둥이입니다. 그러다가 육학년 때, 저한테도 마마가 찾아와서 여러 날 꼼짝 못하고 드러누워서 밥 한 술 못 뜨며 열이 잔뜩 올라 앞뒤 못 가리며 지낸 적이 있습니다. 이때 일기장 숙제가 걱정되어(일기를 안 쓰면 학교에서 얻어맞았으니까) 어머니한테 애타게 부탁을 했고, 어머니는 저 대신 일기장을 채워 줍니다.

 “1987년 5월 27일 수요일 날씨 맑음. 종규에게 - 몸이 약한 너의 모습을 볼 때, 엄마는 걱정이 많이 된단다. 선생님의 열의에 감동도 되고, 숙제를 하느라 잠도 모자라겠지? 그렀지만 열심히 노력을 해야지 종규야, 힘 내도록 열심히 먹고 열심히 운동도 해야지? 너의 편식은 너무 심해져가니 어떻게 하면 좋겠니? 엄마는 몹시 걱정이란다. 아들아, 노력하는 성실한 어린이가 돼길…….”


..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남이 그린 그림을 보고 가슴이 뛰도록 기쁜 것이 더 대단한 재주일지 모른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공감하는 가슴을 갖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  (168쪽)


 제 머리가 닿는 대로 되새겨 보면, 어머니는 언제나 일하는 어머니였고, 저보다 훨씬 먼저 일어나고 훨씬 늦게 잠들면서도 쉬지 않고 일손을 놓지 않아서 집안에 있을 때는 딴짓을 하거나 장난을 치거나 놀 수가 없었습니다. 어영부영 시간죽이기 하며 놀다가 문득문득 어머니가 보이고 어머니가 생각이 나 매무새를 바로잡게 됩니다. 밖에 나가 동무들하고 놀다가도 어머니가 생각이 나고 아무 허튼 짓을 하면서 살 수 없게 됩니다. 국민학생 때까지는 호되게 구두주걱질을 받아서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았습니다만, 여느 때에는 늘 말없이 부업 일감을 한 아름 떠안고서는 바삐 지내시는 모습으로 우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달이 틈틈이 떨어지는, 저와 형 독후감 숙제나 만들기 숙제를 무던히 도와주었습니다. 반공 글짓기, 과학 만들기, 저축 감상문 따위를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알고 해내겠으며, 스무 가지 서른 가지 식물채집을 도시에서 어찌 해내겠습니까. 방학 때 탐구생활 라디오듣기 숙제를 놓치게 되어도(밖에 나가 노느라) 어머니는 집에서 혼자서 듣고서는 찬찬히 알려주셨습니다. 이때마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벌개집니다. 낮은학년(2학년) 때에는 그림일기 숙제를 어머니가 그려 주기도 했습니다.

 요즈음 어머니 자국을 옛 일기장이며 쪽지며 원고지며 돌아볼라치면, 맞춤법도 틀리고 하셨지만, 글씨는 참으로 반듯하고 그림도 빛느낌이며 어우러짐이며 참 곱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우리 어머니가 교과서 겉에 쓴 글씨(달력으로 교과서를 싸서 겉에 쓴 글씨)며, 공책에 적은 이름이며, 그림일기에 그려 준 어머니 그림이며를 보면서, “종규 어머니가 글씨를 참 잘 쓰시는구나, 그림을 참 잘 그리시는구나” 하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난 언제쯤 어머니처럼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면서 공부끈을 바지런히 붙잡습니다.








 (3) 《나의 수채화 인생》에 담긴 이야기


 2005년에 한 번 읽었던 《나의 수채화 인생》을 세 해 만에 집어들어서 또 한 번 읽습니다. 마침, 인천 동구 화평동에 자리한 박정희 할머님 ‘평안수채화의 집’을 찾아뵈어 말씀을 듣고 사진도 찍고 여러 그림들을 구경하면서,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사들고 읽던 때에는, 여든 넘기신 할머님이 참 곱게 늙으시면서 당신 좋아하는 그림을 저렇게 즐기시는구나 하고만 여겼습니다. 할머님 아버님인 박두성 선생님 삶과 발자국만 좇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달에 할머님을 몸소 뵙고 당신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우리 어머니가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그리고, 한글 점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장님들 마음눈을 틔워 준 박두성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훌륭하지만, 박정희 할머님은 또 할머님대로 훌륭한 대목이 있는데, 미처 못 보고 있었다고 느낍니다. 열 평이나 될까 싶은 조그마한 집에 스물세 식구가 다닥다닥 모여서 살아야 하는 살림을 꾸리면서도 ‘모두들 아무 탈 없이 즐겁게 살았다’고 할 만큼 알뜰히 보내온 당신 발자국을 느끼면서, 당신 어머니 처녀 적 사진부터 해서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면서 그때 그 이야기들을 올올이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놓고 우리들한테 차곡차곡 들려주면서 눈가를 촉촉이 적시는 모습을 보면서, ‘남들은 다 쓰레기라고 버리지만 나는 못 버린다’고 하는 천쪼가리 종이쪼가리를 주워모아서 멋진 손가방을 만들어내어 쓰고 있다면서 보여주실 때,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면서 무릎을 칩니다. 사람들이 인천 동구 화평동을 한낱 ‘세숫대야 냉면거리’로 잘못 알리고 잘못 알면서 찾아가는 발걸음이 어떻게 뒤틀려 있는가를 여태 못 깨닫고 있었네 하면서 뒷통수를 칩니다.


.. 내게 있어서 그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마법과도 같다 ..  (185쪽)


 나이가 들어갈수록 당신 스스로도 당신 그림이 더욱 나아진다고 느끼신다는 박정희 할머님. 앞으로 백 살까지 꾹꾹 눌러채우며 몸 튼튼히 마음 튼튼히 살아 주셔야지요. 아니, 꼭 백을 채우기보다는 백하나나 백둘이 더 나으려나.


.. 소원컨대 부디 건강하게 즐겁게 지내다가 마지막 날을 맞이하였으면 한다. 그래서 같이 살아 주고 보살펴 준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그리고 손주들에게 고마웠다고 인사하며 잠들고 싶다 ..  (216쪽)


 인천시는 스무 해쯤 앞서 진작에 송암 박두성 선생 살던 율목동 집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따지는 목소리는 인천시장이나 인천시 공무원 귀에 가 닿지 않았고, 귓등에 살짝 스친 목소리는 모기 앵앵 소리로 여길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화평동 박정희 할머님 그림집(평안수채화의 집)마저도 ‘재개발해야 하니 도장 찍어 달라’고 하는 판입니다. 화평동 한켠에 쉰 해 가까이 ‘평안의원’ 간판을 걸고 있던 이 집을, 그 뒤로는 ‘평안수채화의 집’ 간판으로 바뀐 채 처음 모습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집을, 인천시에서는 문화재로도 동네 삶터로도 바라보는 눈이 없습니다. 인천 바깥에서는 ‘그림 할머니’며 ‘육아일기 할머니’며 높이 사고 훌륭하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으나, 할머님뿐 아니라 할머님 아버님 삶과 발자취를 높이 기리고 모시고 있으나, 인천에서 문화 행정을 하는 이들은 눈이 멀었습니다. 역사 행정을 하는 이들은 귀가 먹었습니다.

 하긴, 함세덕 선생 생가가 버젓이 있음에도 인천시는 이 집을 사들여서 고유한 문화유적지로 삼지 않고 있는 판인데(지금 이 집은 소주방으로 쓰입니다). 우리 나라 첫손 꼽는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 발자국도 살려 놓고 있지 않는 터인데. 일제강점기 때 ‘동아일보 일장기 지운 사건(손기정 님 마라톤 우승)’을 일으킨 사진부기자이자 한국 사진밭을 처음으로 개척한 신락균 선생 기리는 어떤 것 하나 없는 형편인데. 여기에다가 ‘존슨 별장’을 엉터리로 되살리려 하고, ‘만국공원(자유공원)’도 패키지관광코스로 까뭉개는 재생사업을 하려 하는 가운데, 인천 서민 오랜 땀방울과 피눈물이 서린 배다리 골목길을 한꺼번에 날려 없애려고 하는 인천시이니, 말 다한 셈인가요. ‘자유공원’이 아닌 ‘만국공원’에는 맥아더 동상이 아닌 함세덕, 고유섭, 신락균, 박두성, 현덕, 조봉암 같은 분들 동상이 서야 할 텐데, 참말로.

 역사가 있어도 역사를 보지 않고, 문화가 있어도 문화를 느끼지 않고, 주민 삶이 있어도 함께 살려고 하지 않으니, 배다리이든 박정희 할머님 ‘수채화 인생’이든, 몇 해 지나지 않아, 어쩌면 2014년 아시안게임을 맞이하여, 티끌 하나로도 남지 않고 갈갈이 찢겨진 채 땅속에 깊이깊이 파묻히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4341.3.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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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 보림문학선 5
채인선 지음, 이혜리 그림 / 보림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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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해 2월, 어느 잡지사에서 책추천 글을 부탁해 와서 거의 억지처럼 써서 보낸 글... 씁쓸한 마음은 그때나 이제나 마찬가지라서 걸쳐놓는다.)

 

네 가지 책 모두 그다지 추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내기가 참 고달팠습니다. 그래도, 이 책들 모두 출판사에서는 정성을 들여 엮었을 텐데, 이 책을 손에 쥘 아이들이 어떻게 읽을지까지는 좀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땀방울을 헛되이 써 버렸다고 할까요. 이 가운데 하나 가까스로 골라서 추천하는 글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확 눈에 뜨이는 책이 있다면, 선정기도 마감에 늦지 않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오늘날 삶으로 녹여내지 못한 아쉬움


 설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올해에는 쉬는날이 짧아서 길이 많이 막힐까 걱정들을 했다지만, 정작 명절 동안 길은 거의 안 막혔다고 느낍니다. 저는 서울부터 자전거를 타고 음성에 계신 부모님 댁으로 갔는데, 여느 때보다 조금 늘었을 뿐, 딱히 명절 느낌이 나지 않더군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은 명절이라고 해서 길이 더 막힐 만하지 않을 만큼 전국 구석구석에 넓은 길이 많이 뚫렸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고속도로가 많이 늘었고 고속국도도 많이 늘었으며 일반국도도 참 많이 늘었습니다. 자전거로 전국 나들이를 하노라면 웬만한 시골길(지방도로)은 차가 아주 뜸합니다. 일반국도와 고속국도도 차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새길을 놓는 공사는 수없이 많은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굳이 고속철도를 놓지 않아도 서울과 부산 사이를 빠르게 오갈 수 있는 좁은 땅인데, 고속철도까지 놓았습니다. 이런 판이니 명절이라고 길이 막힐 일이 없어요. 한편, 이렇게 길막힘 없이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 둘레에 자연 삶터가 그만큼 무너지거나 사라졌다는 소리요, 우리 둘레 자연 삶터가 이토록 무너지고 사라졌다는 소리는, ‘으레 떠올리는 시골집 모습과 산골짜기 경치’는 국립공원에서조차 자취를 감춘다는 뜻입니다.

 동화책 《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은 글쓴이한테는 어머니이고, 글쓴이 아이한테는 할머니가 될 분한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요즘 아이들한테 우리 삶과 문화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도깨비’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는 도시고 시골이고 도깨비를 볼 만한 깊은 산골이 없기 때문에, 또 무시무시한 귀신 타령도 아이들한테는 씨나락이 먹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옛날이야기가 얼마나 살가이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도깨비란 먼 하늘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에 늘 있던 님이고, 우리 삶을 차분히 다스리도록 이끄는 벗이기도 한 만큼, 도시문명 사회에서도 이런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도깨비 이야기를 빚어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억지스레 도깨비를 꾸며 보이지 않습니다. 도깨비를 그린 그림도 아이들한테는 앙증맞거나 깜찍하다고 느껴지겠구나 싶습니다. 서양 아이들한테는 요정일 테지만, 동양, 더욱이 한국 아이들한테는 도깨비입니다. 이런 도깨비 문화와 느낌을 살뜰히 받아들이도록 하면서, 어린 날 상상력과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참 좋겠구나 싶어요.

 한편, 《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은 옛이야기도 아니고, 또 오늘날에 맞추어 새로 꾸민 이야기도 아닌 어중간한 모양이 되었습니다. ‘에이, 다 지어낸 이야기잖아.’ 하면서 피식 웃을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요? 그저 할머니한테 듣는 꿈 같은 이야기만이 아니라, 참말로 자기가 사는 도시 아파트에서도 ‘옷장에 도깨비가 있지 않을까?’, ‘책상 밑에서 도깨비가 올려다보고 있지 않을까?’, ‘창문 밖에서 몰래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까?’ 하고 느끼도록 해 줄 장치나 이음고리 몇 가지쯤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도깨비 일곱 동무 이름을 성격에 맞게 재미나게, 그러면서도 퍽 알뜰히 붙인 대목이 반갑고, 도깨비들이 자기 이름에 걸맞게 우스꽝스럽기도 하며 놀랍기도 하면서 어울리는 모습은 아이들한테 저마다 다 다른 개성이 서로서로 소중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겠지요. 다만, 말놀이를 느끼게 해 주려고 쓴 꾸밈말이나 시늉말은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책을 읽을 아이들한테 걸맞지 않거나 얄궂은 말투나 낱말, 어렵게 쓴 낱말은 덜어내거나 다듬으면 좋겠어요. 말놀이란, 한낱 재미만으로 이루어낼 수 없거든요. 알맞는 말만 쓴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올바른 말을 쓰는 바탕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점수를 매긴다면, 별 다섯 만점에서 별 둘을 주겠습니다. 다른 책 세 가지는 너무 볼품없어서 말할 값어치를 못 느낍니다. (4340.2.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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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1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인선 작가의 <시카고에 간 김파리>가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숲노래 2008-07-1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1
노경실 외 지음, 윤종태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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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타고 충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 또 서울에서 충주로 돌아오는 길은 만만치 않습니다. 150km 남짓 되는 거리라 조금 멀다고도 할 수 있지만, 거리가 먼 일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멀면 시간이 좀더 걸릴 뿐이니까요. 이 거리를 자전거로 오가면서 어려운 일이 있다면 자동차들이 너무 위험하게 내달릴 뿐 아니라, 좁은 지방도로와 네찻길 국도에서 규정속도를 훨씬 벗어난 빠르기로 씽씽 달리면서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내로 접어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택시, 버스, 짐차, 자가용, 오토바이 할 것 없이 자전거를 깔보고 밀어내고 덮칠 듯이 으르렁거립니다.

 한미FTA라든지, 비정규직노동자 문제라든지,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모르는 이는 없다고 할 만큼, 이런 이야기들이 신문-방송-인터넷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가 ‘힘없고 짓눌리는 편’에서 나아지거나 고쳐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장애인을 따돌리는 일, 여성이 괴롭힘받는 일은 예전에 견주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봉건계급 시대와 요즘 형편을 견줄 수는 없는 노릇. 더욱이 어른들이 아이들을 힘겹게 하고 못살게 구는 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학원이며 시험공부며 숙제며 영어며 한자며, 아이들은 어마어마하게 짓눌리고 있고, 책읽기도 거의 짐처럼 주어지는 일덩이입니다.

 어른들 스스로 자유롭게 살고 평화로이 어울리며 평등하게 부대끼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보고 배울 것이란 차별-따돌림-괴롭힘-푸대접 따위입니다. 어린아이들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서양 공주님 같은 옷을 입히며 피자와 콜라를 즐겨 사먹이는 가운데 아이들 가치관과 생각과 마음은 어떻게 자리잡을까요. ‘아름다움을 보는 눈’, ‘여성과 남성은 어떠한 사람인가’, ‘사회 차별’을 얼마나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는지요.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는 서양과 우리 이야기를 세 꼭지씩 골라서 ‘따돌림받고 괴롭힘받는 사람(거의 여성 눈높이에서)들 삶을 요즘 모습에 맞게 고쳐서 다시 쓴 역설 동화입니다. 군데군데 잘못 쓰거나 어렵게 쓴 말(검은 머리칼을 지닌/미소를 지었다/흑설공주에게로/점점 마음이 동하더니/하여/심해)이 보이고, 굳이 안 써도 좋을 말(가시랭이/가살맞은/고바우/관차/벼룻길/성현/묘책/만세복록)을 쓴 뒤 아래에 각주를 붙인 대목은 아쉽습니다. 이야기에 군살이 많이 붙었고, 마무리로 나아가는 단계에서 억지스러움이 엿보이지만, 속없이 그저 웃기려고만 하는 동화가 너무 판치며 오히려 아이들한테 비뚤어지거나 치우친 생각을 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반가운 작품입니다. 앞으로는 ‘역설 동화’를 넘어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이웃을 차별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얄궂은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창작동화로도 나아간다면 더 나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4339.8.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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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에서 보림어린이문고
이영득 지음, 김동수 그림 / 보림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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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은 어른들이 그리고 책으로 묶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글책(동화책이나 동시책이나 여러 이야기책)도 어른들이 글을 쓰고 책으로 묶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손에 쥐는 책에는 작게든 크게든 어른들 생각과 마음과 뜻이 담기기 마련이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펼쳐지곤 합니다. 어른들이 어릴 적에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적은 책이 있는 한편, 아이들이 지금 나이에 알아두면 좋을 것을 적은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책 역사가 짧지만, 우리 글 문화는 지배계급 글 문화였기 때문에 종이에 적힌 이야기책이 드물었을 뿐, 전국 곳곳에는 그곳 나름대로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입말,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문화가 오래도록 이어져 왔습니다. 노래와 놀이도 그렇고요. 이런 이야기와 노래와 놀이는 아이들이 즐기는 문화인 한편 어른도 함께 즐기는 문화였고,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말하는 어른 또한 즐거운 문화였다고 느낍니다.

 예부터 이제까지 어른들이 아이와 함께 즐기는 이야기 문화를 가만히 보면, 중심 이야깃감은 자연에 있구나 싶습니다. 그림이야기책 《할머니 집에서》(보림,2006)도 자연을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펼칩니다. 자연을 모르면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솔이가,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던 아버지 고향(할머니가 계신 곳)에 찾아가 자연을 하나둘 느끼면서 가까이 동무로 삼게 된다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날마다 밥을 먹고 우유를 마시고 고기를 먹어도, 이 모든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누가 기르거나 잡아서 얻는지 모르는 도시 아이들에게 《할머니 집에서》는 자연을 가까운 동무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좋은 길잡이책이자 놀이책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솔이뿐 아니라 솔이 엄마도 자연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감자와 고구마를 가릴 줄 모르니까요(책을 보면, 이 대목에서 솔이라는 아이가 처음에는 감자와 고구마를 가릴 줄 모르다가 몇 줄 뒤에 곧바로 둘을 아주 잘 가려내는 것으로 나와 모순이 되는 잘못이 있습니다). 그래, 《할머니 집에서》처럼 자연을 이야깃감으로 삼는 책은,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삶을 꾸리는 이 나라 아이들한테 우리한테 무엇이 중요한가를 가르치는 한편, 이 책을 보는 어른들도 말이나 책으로만 아이한테 설교하지 말고, 어른부터 스스로 우리한테 소중한 값어치를 찾아보자고 이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투나 흐름도 부드럽고 살갑습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대목이 눈에 띕니다. 《할머니 집에서》는 아이들 그림을 흉내내어 그리면서 일부러 단출하고 가볍게 그림을 그렸는데요, 7쪽에 처음 나오는 할머니 그림에서 손이 뒤집혔고, 주인공 솔이는 오른손잡이로 보이나 책을 보면 왼손잡이처럼 물건을 잡거나 던지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인사를 할 때 왼손을 흔듭니다. 49쪽에 아이들이 달리는 모습을 그리면서도 다리가 이상하게 되었는데 54쪽에는 다리를 제대로 그립니다. 알 낳는 닭을 흰닭으로 그렸는데 이 흰닭은 서양에서 들여와 양계장에서 키우는 닭이지, 시골집에서 키우는 닭이 아닙니다. 시골집 닭은 지난날 똥개(누렁이)와 마찬가지로 누런닭이거나 검누런닭입니다. 아이들 그림을 흉내낸다고 해도 사실을 비틀거나 모순되게 그려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 그림이 삐뚤빼뚤이라고 하지만 사실을 비틀거나 모순되게 그리지 않습니다. 제도권 교육에 물들어 판에 박히게 그리는 아이들 그림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기가 보고 느끼는 대로 그리는 아이들 그림을 좀더 눈여겨보아야 더 낫고 살뜰하게 그림책을 엮어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10쪽에 시골집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아름드리나무도 많았어요”라고 나오는데, 우리 나라 어느 시골에도 아름드리나무가 많은 곳은 없습니다. 어른이 두 팔을 벌려서 꼭 안을 만큼 줄기가 굵은 나무가 아름드리입니다. 이런 나무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산과 들 온갖 나무가 거의 다 죽어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 아름드리나무는 마을에 한두 그루만 남았어도 다행이라 할 만하거든요. 지리산이나 한라산이나 설악산도 마찬가지예요. ‘아름드리나무’가 아니라 ‘나무’라고만 해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4339.9.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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