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한다. 보일러를 돌려 따뜻한 물이 나오게 한 뒤, 먼저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다 감을 무렵 비로소 물이 조금 미지근해진다. 머리는 찬물로 감았다. 하지만 빨래를 할 때에는 제법 따순 물이 나온다. 어제부터 담가 둔 긴소매 웃옷 한 벌과 긴바지 한 벌을 빤다. 긴소매 웃옷은 보름 앞서 서울에서 충주로 돌아갈 때 입던 옷. 그때 땀에 흠뻑 젖어서 이제 빨아 입어야 했는데, 시골집은 물이 얼어서 빨래를 못한다. 빨래도 못하고 씻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번 서울 나들이에는 빨랫감을 입고 지고 하며 가지고 왔다. 그제는 시골집에서 입는 두툼한 겉옷 하나를 빨고 면티 하나와 수건도 하나 빨았다. 시골집에서는 난방을 거의 안 하기 때문에 옷을 두툼하게 입는다.

 오늘 빤 빨래도 진작에 빨고 싶었지만 못 빨고 있던 옷들. 이제 면티 하나만 더 빨면 밀린 빨래는 다 하는 셈.

 문득 오랜만에 빨래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렇구나. 겨울이 되어 물이 얼어붙은 뒤로는 땀에 전 옷도 말려서 다시 입곤 했다. 이렇게 입으니 몸이 근질근질 자꾸 가려웠는데,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려 땀이 줄줄 흐르면 가려움은 이내 사라지곤 했다.

 빨래도 오랜만, 머리감기도 오랜만. 한 번 말끔하게 빨고 씻으니 몸이 개운. 씻은 뒤 가뿐하다는 느낌이 이러했던가.

 비누를 골고루 문지른 뒤 북북 비벼서 빤다. 홍제동 얹혀지내는 집 뒷간은 크기가 작은데다가 세탁기까지 자리를 차지해서 퍽 비좁다. 그래도 몸을 비틀어 쭈그리고 앉은 채 빨래를 한다. 잿빛 땟물이 줄줄줄 흘러나온다. 물을 틀어 빨래를 헹구고, 다 헹군 뒤 뒤틀어 물을 짠다. 다 짠 뒤 탁탁탁 턴다. 빨래를 털 때 자잘하게 일어나는 김 같은 물방울들. 여름철에는 이 물방울이 팡팡 일어날 때 참 시원하다고 느꼈다. 겨울에는 조금 차갑다고 느끼는데, 따순 물로 빤 다음 터니 따뜻하게 느껴진다.

 다 빤 옷을 벽에 박힌 못에 건다. 다 마른 옷은 걷어서 갠다. 월요일쯤 충주로 돌아갈 텐데, 가는 길에 땀에 흠뻑 젖는 옷이 또 하나 생길 테지. 그 옷은 다음에 서울 나들이를 다시 할 때 또 입어야지. 그리고 서울에 와서 다시 빨래를 해야지. (4340.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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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꾹질이 나온다. 오랜만이다. 반갑구나. 딸꾹질이 멈추지 않으면 끅끅 하면서 다른 일을 하기 번거롭지만, 내가 아직 잘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 딸꾹질 나오는 일도 나쁘지 않다.

 배고프다. 지금은 새벽 네 시 삼십칠 분. 밤새 필름을 스캐너로 긁는 한편 글을 쓰고 있다. 어릴 적부터 밤을 새워 본 적은 딱 한 번도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거의 밤을 새울 뻔했으나 새벽 다섯 시에 깜빡 잠들어서 못 샌 적이 있고, 할머님 돌아가셨을 때는 새벽 여섯 시까지 허드렛일을 하다가 딱 십오 분을 잔 적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군대에 들어가 이등병 때 곧바로 뛴 겨울훈련 때 밤새워 18시간 행군을 한 적이 있고, 똘아이 중대장을 만나 36시간 동안 쉬지 못하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으며 얼차려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군대에서 두 번 밤샌 적이 있는 셈이로군. 이런 내가 지지난주에 한 번, 오늘 또 한 번 거의 밤샘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안 졸리다니. 참 놀라운 일이네. 하지만 배고프다. 밤새 깨어 있으니 배가 출출하다. 그래서 밥통에서 밥을 한 숟가락 퍼서 먹는다. 딱 한 숟가락만. 그리고는 한 시간쯤 다시 글을 쓰다가 다시 한 숟가락 먹고, 또 한 시간쯤 뒤 다시 한 숟가락을. 밥을 한 그릇 가득 채워 먹으면 배가 부를 테지만, 이렇게 배가 부르면 바로 졸음이 쏟아진다. 그런데, 어, 밥을 우물우물 씹고 있으니 딸꾹질이 멎네.

 어제 인터넷새책방 ‘알라딘’에서 편지가 왔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미안하다’면서 적립금 2000원을 보내 주었다는 줄거리를 담았다. 글쎄, 딱히 미안할 일이 있을까. 하지만 미안하다고 느꼈다면 고맙다. 얼굴 안 보고 인터넷으로만 돈을 주고받은 뒤 책을 보내는 마당에, 서로 믿을 수 있도록 하지 않은 잘못을 조금이나마 느꼈다면.

 노래 듣는 기계가 고장난 듯하다. 아니 맛이 갔나? 어제까지는 잘 돌아가더니 오늘은 영 삐리리하다. 테이프를 다 씹어먹을 듯 늘어진다. 기계가 퍽 오래되기는 했는데, 이렇게 삐리리하게 되다니. 심심하다. 그나마 혼자 지내는 시골집에 오직 하나 있는 말동무인데.

 새벽 두 시쯤 마당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구름이 퍽 많이 끼었다. 달이 잘 안 보였다. 조금 앞서 나와 보니 구름이 하늘을 온통 덮었다. 아침부터 눈이 내릴라나? 눈이 내린다면 제법 큰눈이 올 듯한데. 날이 좀 풀릴까 싶더니 다시 꽁꽁 얼어붙을지 모르겠다. 한 달 넘게 물을 못 쓰고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봄까지는 이대로 지내야겠구나. 날이 밝으면 윗마을로 부리나케 올라가 물 한 동이 떠올까? (4340.1.3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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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에 처음 쓴 글인데, 다시 읽으면서 몇 가지 고칠 대목이 눈에 뜨여서 이래저래 손을 보았습니다. 해묵은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나, 몇 군데 도매상 부도 이야기를 빼면, 지금 생각해도 아직까지 하나도 좋은 쪽으로 달라진 모습이 없다고 느끼기에 걸쳐 봅니다. 이 글을 쓰던 2004년에는 미처 몰랐는데, 뒷날 홈쇼핑에 책이 몇 % 마진으로 들어가는가를 안 뒤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홈쇼핑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숫자를 살짝 바꾸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숫자 나눗셈을 해 보시면, 홈쇼핑에 들어가는 책값 마진을 얼추 헤아려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홈쇼핑 문제는 이런 어마어마한 마진만이 아닙니다. 홈쇼핑 업체한테 주는 돈이며, 중앙일간지 여러 곳에 틈틈이 실어 주어야 하는 광고값, 그리고 여러 가지... 홈쇼핑은 돈 놓고 돈 먹기 장사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 많은 어머님들은 텔레비전 홈쇼핑을 보며 그런 책들을 아주 손쉽게 카드결제를 하며 사들입니다.


 출판사여, ‘돈’ 생각보다는 ‘첫마음’을…
 [책이 있는 삶 4] 출판사와 독자가 함께 어울릴 길을 찾자


 〈1〉 영국 헤이온와이와 파주를 생각해 본다


 인터넷을 누비다가 며칠 앞서 재미있는(저한테만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신문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파이낸셜뉴스〉 10월 20일치 기사인데, 영국에 있는 ‘헤이온와이’ 마을을 찾아가 헌책방 마을을 만든 리처드 부스를 만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리처드 부스는 한국 기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한국에서도 지금 저희 헌책방 마을을 모방해 파주출판단지를 건설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헤이 온 와이는 파주출판단지처럼 새롭게 건물을 신축한 것이 아니라 옛날의 집을 약간 리모델링해서 전통을 살렸기 때문에 성공했지요.” ..


 얼마 앞서 ‘어린이책’이라고 하는 도매상이 부도 났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부도날 것을 미리 안 몇몇 출판사에서는 미리 책을 빼고 돈을 거둬들였고, 힘과 돈이 있는 큰 출판사는 ‘자기들 책만 빼오고 피해만 되찾으면 그만’이라는 투로 나서고 있어서 중간 크기와 작은 크기 출판사들은 더욱 어렵고 피해가 큽니다(〈한겨레〉 10월 15일치 기사에도 나옴).

 자, 이 두 가지를 잘 생각해 봅시다. 큰 도매상이었던 ‘어린이책’이 부도가 나면서 많은 출판사들이 휘청거리고 있는 한편으로, 지금 파주에서는 엄청난 돈을 들여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 출판사가 줄을 잇습니다. 새 건물을 크게 짓는 출판사 가운데에는 이번에 적잖은 돈을 부도로 날린 곳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좋을까요? ㄴ출판사 사장은 파주출판문화단지를 두고 “출판사의 천국”이 아니라 “당신들만의 천국”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파주로 들어가자면 땅을 사거나 땅을 빌리기만 해서는 안 되며 자기 출판사 건물을 새로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기본 투자비를 내야 하는데, 그 돈은 웬만한 출판사 여러 달치 매출과 맞먹거나 그보다 훨씬 큰 돈입니다. 더구나 서울과 파주로 출퇴근하는 직원에게 일삯도 더 주어야 하고, 교통삯이나 먹고자는 일도 골칫거리입니다. 인건비를 주지 못해서 쩔쩔 매는 출판사도 있는 한편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들만의 천국”을 짓는 모습이 바로 우리네 책마을 모습입니다.


 〈2〉 출판사는 ‘책장사’가 아니다


 책은 팔라고 만드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팔려고만 하는 목적’으로 만드는 물건이 책은 아닙니다. 책은 애써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을 값과 뜻이 있어야 합니다. 이 값과 뜻이 없이 만드는 책은 한낱 공산품, 그러니까 공장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찍어내는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에 내놓을 만한 값과 뜻이 있는 책을 만들어내어 많은 사람들이 널리 읽고 좋은 뜻을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재미있어하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출판사마다 처음 책을 낸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닐까요?

 그런데 요새 어떤 일도 있는 줄 아십니까? 매출도 높고 직원도 많고 책도 잘 파는 출판사들이 ‘홈쇼핑’으로도 나아가면서, 엄청나게 싼값으로 ‘퍽 괜찮다고 할 만한 책’을 무더기로 팔고 있습니다. 요즘 홈쇼핑으로 파는 그 책들을 가만히 살피면, 나온 지 여러 해 된 책들로, 일반 책방에서는 ‘제값(정가)’대로 팔다가 인터넷서점 할인율이 너무 높아(20∼40%) 요즘은 에누리해서 파는 책입니다(낱권은 정가, 전집은 에누리). 그런 책을 이보다 훨씬 싼값으로 팝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아니, 왜 이런 일을 할까요?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좋은 책을 손쉽고 값싸게 사서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참말로 그럴까요?

 그 출판사들이 참말로 독자들이 ‘손쉽고 값싸게 좋은 책을 사서 보기’를 바랐다면 이렇게 홈쇼핑으로 팔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홈쇼핑으로 책을 파는 일이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홈쇼핑에서도 좋은 책을 팔아야 합니다. 다만 ‘알맞는’ 값으로 팔아야지요. 하지만 홈쇼핑을 발판으로 엄청나게 싼값으로 책을 판다면, 그것도 일반 책방에서는 ‘정가(낱권으로 살 때 직접 찾아가는 손님은 정가대로 사야만 합니다. 도서정가제 때문에)’대로 파는 책을 그처럼 묶어서 싸구려처럼 무더기로 팔면 조그마한 책방은 어떻게 하나요?

 책방 없이도 책을 팔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일까요? 매출만 높이면 된다는 생각일까요? 독자들이 손쉽고 싼값에 좋은 책을 사서 보아야 했다면, 처음부터 책값을 알맞게 매겨서 책방에서 팔면 그만입니다. 20만 원짜리 책을 홈쇼핑에서 7만 원에 팔면(보기를 들어서), 홈쇼핑으로 그 책을 사는 사람은 좋겠지요. 그렇다면 책방은 어떻게 되죠? 그리고 홈쇼핑으로 나오기 앞서 그 책을 산 사람들은 무엇이 될까요? 독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게 지금 출판사들이 하는 짓이 아닌가요? 처음부터 책값을 7만 원이든 10만 원으로든 맞췄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그 책을 사서 보지 않았을까요? 20만 원짜리 책을 홈쇼핑에 7만 원에 내놓고도 남는 것이 있으니, 이렇게 책을 팔겠지요. 그렇다면 참말로 20만 원이란 책값은 무엇이라는 이야기일까요? 출판사한테 이익이 남고 독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사 갈 만한 알맞는 책값이란 얼마쯤일까요?


 〈3〉 《타쉬》라는 책


 제게는 아주 소중한 책이 두 권 있습니다. 이 두 권은 웬만해서는 얻기 어려운 책입니다. 하나는 1999년 3월 17일에 ‘한국조류보호협회’에서 펴낸 책으로 《한국의 천연기념물》이란 도감입니다. 아, 보통 도감인 것 같은데 이 책이 뭐가 소중하느냐고요? 이 책은 보통 책이 아닙니다. ‘점자책’입니다.

 하나 더. 2002년 1월 20일에 나온 《타쉬》(샘터)라는 책입니다. 아, 《타쉬》란 책도 흔한 책이 아니냐고요? 이 책도 보통 책이 아닙니다. 2001년 12월 20일에 나온 자그마한 《타쉬》는 보통 책이지만, 이듬해 1월 20일에 나온 《타쉬》는 ‘점역판’으로 만든 자그마치 45000원짜리 책입니다.

 ‘샘터’라는 출판사는 지난 1970∼80년대에 박정희 독재정권을 찬양하거나 팔짱 끼고 구경하는 줄거리, 미국을 하느님처럼 떠받드는 줄거리를 잡지에 담아 거침없이 펴낸 곳입니다. 이런 대목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잡지와 여러 책을 펴내며 모은 돈으로 ‘새 건물 짓기’나 ‘땅 투자’만 하지 않고, 이처럼 ‘점역판’ 책을 냈다는 대목은 참 놀랍고 반갑습니다. 아니, 우리네 책마을 현실을 돌아볼 때는 무척 훌륭하고 대단한 일입니다.

 지난날 우리 삶을 밝힌 훌륭한 인문사회과학 책을 줄기차게 펴내던 ㄱ이란 출판사는 요즘엔 사뭇 다른 책만 펴냅니다. 돈 많이 벌기와 처세술과 재벌 이야기, 부동산, 웰빙, 증권, CEO, …… 이런 책만 펴냅니다. 이런 모습을 본 김규항 씨는 차라리 ‘옛 출판사 이름을 안 쓰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만, 참 많은 출판사들이 ‘돈’만 보고 돈만 좇으면서 책을 내고 있습니다. 돈이 있어서 책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한다는 책을 내는 셈이라 하겠는데, 돈이 없어서 책을 사서 보기 어려운 사람들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꿈과 용기와 슬기를 심어 줄 책을 내는 일을 출판사 사람들이 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할까요?

 파주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파주에 새로 세우는 건물은 저마다 수십 억이 든 건물입니다. 앞으로 지을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평당 건축비와 건물 짓는 평수를 알아본 바로는). 그 돈을 생각해 봅니다. 구태여 그 많은 돈을 들여서 건물을 새로 지어야 했을까요. 그 많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겉보기로 번듯번듯한 ‘새 집 짓기’ 말고는 없을까요. 파주 책잔치 한마당에 놀러가는 사람들은 ‘수십 억 들인 건물’과 ‘수백 억 들인 출판문화단지’를 구경하는 일이 ‘책 문화를 넓히는 좋은 길’로 생각하는가요?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출판사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요. 이곳을 찾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글쎄,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렇게 건물을 수십 억 들여서 지을 돈으로 《타쉬》 점역판이나 《한국의 천연기념물》 점자판 같은 책을 만들어야 알맞지 않을까요. 이런 책 만드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돈이 들지 않습니다. 나아가 그 출판사에서 펴내는 책을 값싸게 내놓으면 훨씬 좋습니다. 새 건물을 짓느라 드는 큰돈을 책값에 들씌워서 독자들한테 짐을 지라고 하는 꼴과 같은 지금 모습을 고쳐 나가면 좋겠습니다.


.. 점자는 신기하고, 소중하고 그래요. 일반 글씨를 읽고 쓸 줄도 알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점자를 배웠어요. 보이지 않아도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하는데, 점자를 이용할 수밖에 없잖아요 ..  《눈 밖에 나다》(휴머니스트,2003) 28쪽


 좀 된 일이지만, 지난 2000년에 ‘점자책 만드는 일’을 하는 분을 뵌 적 있습니다. 그분한테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대목은 무언가요?” 하고 여쭈니, “출판사에서 원고를 보내 주지 않는 일”이라고 합니다. 자기들이 하나하나 타자를 쳐서 점자책을 만들자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몇 권 만들지 못하지만, 원고 파일이 있으면, 아주 손쉽고 빠르게, 더 많이 좋은 책을 점자로 만들 수 있는데, 출판사에서는 ‘자료 유출’이라면서 보내 주지 않는다고 해요. 요즘에도 형편은 마찬가지랍니다.

 출판사에서는 ‘자료 유출’은 걱정하겠지만, 자기네 책이 ‘점자’로 만들어져서 장님도 책을 볼 수 있다면 좋아하겠지요? 그렇다면 돈 많은 출판사들 스스로 ‘새 건물 짓고 땅 투기 하는 데 돈 쓰지 말’고 이런 ‘점자책’을 만들어 줄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출판사에서는 이런 일을 안 해요. 어쩌다 한두 군데, 한두 번 할까 말까입니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책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늘 듣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책이라고 만들어 봐야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사 주지도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독자들이 찾는 책만 펴내면 될까요? 독자들이 찾는 책만 펴내 주면 출판사 어려움도 다 풀릴까요?

 글쎄. 책마을 사람들은 “사람들이 안 찾는다고 어떤 갈래 책을 안 펴낼 수도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해서 그런 책만 펴낼 수도 없”습니다. ‘유행과 시류’를 타는 책을 펴내야 어느 만큼 돈을 만지며 ‘다음에 펴낼 좋은 책’에 돈을 쓸 수 있습니다. 유행과 시류를 안 타는 책을 펴내면 첫판 1쇄도 다 팔기 버거워 빚만 껴안다가 끝내 출판사 문을 닫을 걱정이 큽니다. 하지만 유행과 시류를 타는 책은 출판사 이름을 깎아내리기 마련이고, 한길을 곧게 걸어가며 펴내는 책은 사람들한테 조금씩 입소문이 퍼지며 아주 느리게 좋은 이름을 얻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좋은 이름’만으로 밥먹고 살 수 없잖아요. 또한, 하늘에서 돈이 뚝뚝 떨어지지도 않으니, 유행과 시류를 거스르며 올곧은 책만 펴낼 수도 없고요.

 책 한 권으로 넓고 깊은 문화를 나누고, 올곧은 사회 흐름을 잘 살피고 헤아리도록 하고픈 책마을 사람들 꿈은 남김없이 부서지거나 짓밟히고 있습니다. 돈에 울고 독자들한테 울고 자기 자신 때문에 웁니다.


 〈4〉 돈을 벌고자 하면 돈이 멀어진다


 옛말에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은 돈을 못 벌고, 돈을 벌 생각이 없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번다고 했습니다. 돈은 ‘수단이나 방법’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가 돈을 벌면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더 좋은 책을 만들어야겠지요?

 책이 좋아서 만들고, 책을 만들어서 많은 이들이 즐거울 수 있다면 보람을 얻는 곳이 출판사가 맞는가요? 그래, 그렇다면, 책 팔아 번 돈은 책 펴내는 데 쓰기 마련이어야 옳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출판사들 가운데 ‘책 팔아 번 많은 돈’으로 ‘다시 책 펴내는 데 돈 쓰는 곳’은 얼마쯤 될까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까요. 어떤 곳은 책 팔아 번 돈으로 물장사를 하고, 어떤 곳은 비데 장사를 하거든요. 정치꾼에게 돈을 대는 곳도 있고 건설이나 부동산에 손을 대는 곳도 있습니다. 좀더 많은 돈을 벌어서 아주 좋은 일을 하겠다면서 영어교재에 손을 댔다가 털어먹은 곳도 있지만, 영어교재에 손을 대 아주 큰 부자가 된 곳도 있습니다. 좀더 많은 돈을 벌어서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지만, 참말로 돈을 많이 번 뒤에는 ‘좋은 일 하겠다는 마음’을 잃어버린 곳도 있어요.

 독자들이 좋은 책을 알아봐 주기 바란다면, 책마을 사람들은 ‘좋은 책 만드는 일’에 온힘을 바쳐야 옳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누구나 손쉽고 값싸고 알뜰하게 책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이 넉넉한 사람들만이 기꺼이하거나 사 볼 수 있는 책이어서는 안 됩니다. ‘어차피 이 책을 사서 봐야 할 사람들은 사서 볼 거야’ 하는 마음으로 펴내는 책이어서도 안 됩니다. 누구나 즐겁게 사서 볼 수 있도록 알맞게 값을 매기고, 보기 좋게 꾸밀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독자들이 책에서 자꾸만 멀어진다고 책마을 사람들마저 ‘책 만드는 첫마음’을 잃어서는 안 되잖아요. 이럴수록 첫마음을 다시 돌아보고 되새기면서 중심이 되는 잣대와 뜻을 차분하고 튼튼하게 지키고 가꿔야 좋잖아요.

 우리는 아직 출판 후진국이라 할 만합니다. 독자들이 선뜻 좋은 책을 잘 알아봐 주는 일은 참으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바탕이 튼튼하면 그 위에 건물 짓기 좋겠지요. 그런데 그 바탕을 닦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나, 차분하고 느긋하게 애쓰면서, 튼튼한 바탕이 될 알뜰하고 알찬 책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간다면 독자들도 차츰차츰 움직이고 눈길을 두지 않겠습니까.

 한 걸음 다가갔는데 독자들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뒷걸음질치지는 맙시다. 그러면 우리가 한 걸음을 더 다가가면 되잖아요. 그래도 꼼짝 않는다면 다시 한 걸음을 다가가요. 그래도 마찬가지라면 또 한 걸음을 다가가면서 책을 펴내는 곱고 아름다운 뜻을 잘 이어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 ‘돈’이 아닌 ‘독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책을 만드는 정성’에 온힘을 쏟으면서 책마을이 참다운 책마을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37.10.29.쇠.처음 씀/4340.1.27.흙.고쳐 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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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헌책방 책갈래는 어떻게 나누는가


 책은 우리 손으로 펼쳐서 우리 눈으로 읽는 가운데 우리 머리로 새겨서 우리 마음에 받아들입니다. 다른 이가 책을 쥐어 펼쳐 줄 수 없습니다. 다른 이 눈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다른 이 머리로 새길 수 없습니다. 다른 이 마음으로 곰삭일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책읽기는 오로지 우리 스스로, 우리 힘만으로 하는 일이나 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어울려 놀 때는, 놀이규칙을 저희들끼리 잡습니다. 놀 곳도 저희들끼리 찾습니다. 놀 사람도 저희들끼리 부르고 모읍니다. 누가 시킨다고 놀 수 있지 않아요. 누가 시킨다고 더 잘 놀 수 있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내켜서 하는 놀이요, 스스로 신나기 때문에 즐기는 놀이입니다.

 반갑게 손에 쥐어 읽을 책이라면 우리 스스로 찾아낼 때, 신나게 뛰면서 이마에 땀이 맺힐 놀이라면 우리 스스로 뒹굴 때 가장 반갑고 좋지 싶습니다. 때때로 다른 사람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책이든 놀이든 늘 우리 힘으로 우리 스스로 즐길 때가 가장 재미나고 뿌듯하고 보람이 있다고 느낍니다.

 널찍한 큰 책방에 가든 도서관에 가든, 가만히 골마루를 누비며 책꽂이를 살피다 보면, 책갈래를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 우리 스스로 느낄 수 있습니다. 따로 누구한테 묻지 않아도 책이 저절로 보입니다. 꽂혀 있는 책에 따라 우리 몸이 맞춰지니까요.

 일본으로 나들이를 떠나거나 인도로 나들이를 떠나거나 이집트로 나들이를 떠날 때는, 일본을 느끼고 인도를 살피고 이집트를 부대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파리를 간다면 파리사람들을 만나고 파리밥을 먹고 싶기 때문입니다. 코펜하겐에서는 코펜하겐에만 깃든 모습을 보고 싶으며, 부다페스트에서는 부다페스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모습과 함께하고 싶겠지요. 책방 교보문고를 간다면 교보문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책을, 책방 영풍문고를 간다면 영풍문고에서만 만날 수 있을 책을 느낄 수 있다면 가장 좋지 싶어요. 우리가 미국 모습을 느끼고 싶어 일본을 찾지 않잖아요. 이집트에 가서 프랑스밥을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요. 헝가리에 가서 독일 문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고향동무를 만날 때에는 고향에서 나고 자란 살가움을 나눕니다. 학교동무를 만날 때에는 함께 학교를 다니며 부대낀 옛이야기를 나눕니다. 일터동무를 만날 때에는 같은 길을 걸으며 느끼는 온갖 세상과 삶을 나눕니다. 사랑동무를 만날 때에는 서로한테 느끼는 애틋함을 부대낄 테고요.

 새책방을 갈 때에는 새책방 책을, 도서관을 갈 때에는 도서관 책을, 헌책방을 갈 때에는 헌책방 책을 만납니다. 부대낍니다. 손에 쥡니다. 찾고 살피고 헤아립니다. 자연스럽게. 같은 새책방이라지만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다릅니다. 대전 대훈서적과 전주 홍지서림이 다릅니다. 인천 대한서림과 광주 충장서림이 다릅니다. 같은 도서관이라지만 국립중앙도서관과 사직동 도서관과 대학교 도서관은 다 다를 테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헌책방이라지만 서울 청계천과 부산 보수동이 다릅니다.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과 용산에 있는 헌책방이, 대전 원동에 있는 헌책방과 청주 중앙로에 있는 헌책방이 다릅니다. 제주시에 있는 헌책방과 춘천시에 있는 헌책방이 같을까요. 다 다르겠지요.

 꼭 찾아야 할 책이 있어서 쪽지에 책이름을 적어 놓고 찾아간다면, 책방마다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책살림을 꾸리는지 살필 일이 없습니다. 그냥 책이름을 부르고, 그 책이 있으면 사고 없으면 안 사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꼭 찾아야 할 책이 아니라, 내 마음을 움직이는 즐거움과 보람을 선사하는 책을, 그러면서 아직 내가 모르는 책을, 어렴풋이 스친 적은 있으나 제대로 속살을 맛보지 못한 책을 찾는 몸가짐이라면, 책방을 찾는 우리들 눈에 들어오는 책이 다릅니다. 책방 나들이도 한결 다릅니다. 널찍한 교보문고에서 서너 시간 또아리를 틀고 책을 살피겠지요. 조그마한 헌책방구석에서 네다섯 시간 쭈그리고 앉아서 책을 살피겠지요.

 넓은 새책방과 도서관이라 해도, 좁은 헌책방이라 해도, 이삼십 분 느긋하게 죽 둘러보면 책갈래를 어떻게 나누었는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은 여기에 있고 저런 책은 저기에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와닿을 책을 바라는 마음으로 둘러보면 온갖 책이 다 눈에 뜨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사려는 어떤 책이름 몇 가지만 머리에 넣고 있으면 책꽂이가 안 보입니다.

 요즘 사람들 책방 나들이 모습을 지켜보면, 다리품을 팔거나 시간을 들여서 자기가 읽을 책을 찾는 분들이 자꾸자꾸 줄어드는구나 싶습니다. 다른 이들이 추천하고 칭찬하는 책, 흔히 좋다고 하는 책을 찾아서 읽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남들 말이 아닌 자기 말로, 그러니까 남들이 좋다고 하든 싫다고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한테 가장 좋을 책을 찾는 눈매와 손길이 자꾸자꾸 사라집니다. 어쩌면, 유행 따라 살고 유행 따라 옷 갖춰 입고 유행 따라 머리 손질 하고 유행 따라 돈버는 일자리 바꾸는 요즘 사람들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큼직한 책방 교보문고를 찾아가는 까닭이, ‘교보문고가 갖춘 수많은 책을 두루 구경하기’가 아니라 ‘마일리지 쌓기’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동네책방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주문해서 받아 볼 수 있는 책을 구태여 먼 나들이를 하며 교보문고에서 사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책방에 주문한 뒤 택배로 며칠 뒤에 받아 보는 데에 걸리는 시간과, 동네책방에 전화한 다음 손수 책방을 찾아가서 찾아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견주면 어느 쪽이 더 알뜰할까요. 요새는 동네책방에 책 주문을 넣어도 하루나 이틀이면 책방으로 들어옵니다. 다만, 동네책방에 주문을 넣으면 자기 몸을 움직여야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동네책방이 어디 먼 외딴곳에 있나요. 가게에 장보러 오가는 길에, 일터에 오가는 아침저녁 길에, 동무를 만나러 나들이하는 길에 동네책방에 잠깐 들를 짬이 안 날는지요. 컴퓨터 자판 또닥거리며 주문을 넣는 시간이 참말로 ‘짧’을까요.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 같은 책을 사도 좀더 값싸게 살 수 있어 좋기도 합니다. 책을 값싸게 사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값 싸게 얻는 일에만 마음을 쓴다면, 헌책방 나들이를 아무리 오래도록 많이 즐겨도 ‘싸구려’ 하나만 얻을 뿐입니다. 인터넷책방으로 책을 주문하는 일이 다리품을 덜어 준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마음을 써서 세상을 부대끼는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오로지 ‘손쉽게’ 살아가는 길만 느낄 뿐입니다. 헌책방 나들이는, 첫째,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먼저 알아본 책을 사는 일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책이지만, 이 모든 새책이 새책방 책꽂이에 고스란히 꽂히지 못합니다. 팔리면 살아남고 안 팔리면 곧바로 사라집니다. 언론매체에서 눈길을 두며 소개해 주는 책은 그야말로 몇 가지 안 됩니다. 그러면 이 책들은 ‘안 읽을’ 만하기 때문에 소개도 못 받고 팔리지도 못한 채 사라져야 할까요. 헌책방은 이런 모든 책을 푸대접하지 않고 모두 똑같은 대접으로 받아들여 주는 곳입니다.

 둘째,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사서 읽은 뒤 내놓은 책을 샛장수와 헌책방 임자 두 사람이 ‘다시 새숨을 불어넣어 팔 만한 값어치가 있구나’ 하고 느끼며 갖춘 책을 사는 일입니다. 사람마다 보는 눈길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며 품은 생각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읽을 책이 다르고 읽어서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릅니다. 이 다름이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가로지를 수 있다면 헌책방 책꽂이에 살아남습니다. 쉰 해가 지난 책이라 해도, 책겉이 다 낡은 책이라 해도, 나라밖 말로 된 책이라 해도.

 셋째, 어떤 책을 읽으면 좋다고 할 때, 모든 사람이 온돈을 주고 사서 보지 않아도 좋도록 나눔을 베푸는 일입니다. 도서관은 책 문화를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이어 주는 곳입니다. 문을 열어 주는 곳입니다. 책을 꼭 돈 주고 사서 읽어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참말 좋은 책인데 비싸서 버겁다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됩니다. 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기가 참 어렵습니다. 모든 책을 두루 갖춰 놓고 있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은 얼마나 많은가요. 이리하여 도서관에서마저 버리는 아까운 책을, 한 번 버려지면 다시 찾을 길 없는 책을, 새책방에서 판이 끊어진 뒤 자취를 알 수 없는 책을, 어디에서 만날까요. 어디에서 찾을까요. 바로 헌책방입니다. 헌책방이 없다면 ‘판이 끊어진 책’과 ‘도서관에서 버린 책’을 만날 길이란 영영 없어지는 우리 나라입니다. 도서관은 책 살 돈이 없는 우리들한테 고마운 나눔터 몫을 하는데, 헌책방은 마냥 빌려서 읽기만 하기에는 어려운 책을, 그리고 새책보다 눅은 값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합니다.

 넷째, 소중한 자연 자원을 덜 쓰도록 하며 ‘다시쓰기’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책 한 권을 한 사람만 읽도록 만든다면 자연 자원은 너무나 많이 들어야 합니다. 책 한 권을 두 사람이 읽을 수 있다면, 열 사람이나 백 사람이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주머니돈을 털어서 사 읽는 책이라 해도, 나중에 다른 누군가가 읽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아끼고 돌볼 수 있으면 좋습니다. 우리가 죽은 뒤에는, 우리가 사들인 책이 누구 손에 갈까요. 우리가 살아 있는 날만 생각한다면 자연 삶터는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다섯째, 지역에 읽을거리가 돌고 돌도록 하면서 스스로 지역 문화를 가꾸는 일입니다. 헌책방은, 이 헌책방이 깃든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읽고 즐기는 책이 있는 곳입니다. 지역 헌책방을 보면 그 지역 사람들 책문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동네책방이 잘되는 곳은 헌책방도 잘됩니다. 동네책방이 죽을 쑤거나 사라지는 곳은 헌책방도 죽을 쑤거나 사라집니다. 동네새책방과 동네헌책방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라면 동네 문화, 곧 지역 문화도 따로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돈이 으뜸이요, 이름값 날리며 자기 혼자만 떵떵거리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는 동네새책방과 동네헌책방이 발붙일 틈이 없습니다. 책읽기란, 언제까지나 자기를 낮추며 배우는 일이기 때문에, 책읽는 소리가 조곤조곤 마을을 감도는 곳에는 늘 싱싱한 기운이 감돌고 젊음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책읽는 소리가 사라진 마을은 술주정 소리와 고기굽는 소리로 뒤덮일 뿐입니다.



 여섯째,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겉보다 속을 살피는 눈길을 가꾸며, 우리 스스로 자기한테 참답게 무게를 두며 돌보고 사랑하고 아낄 곳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삶이 즐거운 삶인지 돌아보도록 하는 일입니다. 김치국물이 튀었다고 해서 책 줄거리에 김치국물이 묻지 않으니까요. 낡은 갱지로 찍은 책이라 해서 책 줄거리가 낡아 버리지 않으니까요. 빳빳한 종이에 찍은 책이라고 줄거리도 빳빳해지나요? 곱고 하얀 종이에 찍는 책이라고 줄거리도 곱고 하얗던가요.

 나눌 줄 아는 마음, 기꺼이 자기 것을 함께할 수 있는 마음, 언제라도 고개숙일 줄 알며 자기가 모르는 것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는 마음, 껍데기나 유행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곱다시 자기 줏대를 지키며 튼튼하고 다부지게 추스르고 매만질 수 있는 마음을 얻거나 나누는 곳이 헌책방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헌책방들은 저마다 책갈래가 다릅니다. 크기도 다 다른 헌책방이고, 마을마다 책갖춤새도 다를 뿐 아니라, 헌책방 꾸리는 분들 마음과 생각도 다 다릅니다. 이리하여 그 작은 헌책방들도 책꽂이 매무새를 살피자면 느긋하게 이삼십 분 둘러보아야 합니다. 바삐 살피는 눈으로는, 건성으로 스쳐 지나가는 몸으로는, 쪽지에 적은 책이름만 읊으려는 입으로는, 조용히 우리들을 부르는 책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하는 귀로는 헌책방 헌책을 느낄 수 없습니다.

 헌책방 한 곳 책꽂이를 느끼는 일은, 그 헌책방 한 곳을 꾸려나가는 책살림을 보는 일인 한편, 그 헌책방이 깃든 마을 문화를 헤아리는 일이며, 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는 책흐름을 짚는 가운데 자기한테 가장 알맞을 책 하나를 건져올려야 하는 몸바침이고, 먼저 임자-샛장수-헌책방 임자 이렇게 세 사람 손길을 느끼는 일입니다.

 헌책방 책갈래 살피는 일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일거리를 찾을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살필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으려면 자기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아무 책이나 대충 고를 수 없겠지요? 적어도 한두 시간은 들여서 읽는 책인데, 대충대충 유행하는 책을 찾아서 읽어야 할까요? 그럴 바에는 아예 아무 책도 안 읽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자기한테 반가울 책을 찾아서 읽어야 좋잖아요. 자기 삶을 가꿀 책을 찾아서 읽어야 좋잖아요. 자기한테 즐겁고 재미가 넘치는 책을 읽어야 좋잖아요. 남들이 읽어서 좋았다는 책이 아니라, 내가 읽어서 좋을 책을 찾아서 읽어야 좋잖아요. 그러자면, 헌책방 책갈래 나눔은 우리들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 스스로 느껴야 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거나 바라는 책이 다른 만큼, 자기가 좋아하거나 바라는 책은 어느 자리에 얼마만큼 꽂혀 있는지, 얼마나 갖추고 있으며 어느 때에 들어오는지 느껴야 좋습니다. 한편, 자기가 딱히 좋아하지는 않으나 자기 생각과 머리를 가꾸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어느 자리에 어떻게 있는가를 돌아볼 수 있겠지요. 내 이웃을 느끼듯이, 내 동무를 생각하듯이, 내 어버이와 내 딸아들을 헤아리듯이.

 헌책방 책갈래는 우리들이 사서 읽은 책을 중심으로, 그 다음으로는 우리가 사서 읽은 뒤 기꺼이 내놓는 책을 중심으로 갖추어 놓고 나누어 놓습니다. 헌책방 책갈래가 엉성해 보인다면, 또 흐지부지 어수선해 보인다면, 또 거의 나눔이 없어 보인다면, 이런 모습으로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헌책방 책갈래가 퍽 꼼꼼하고 알뜰하며 재미있다면, 이런 모습으로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파리에는 파리 문화가 있고 도쿄에는 도쿄 문화가 있습니다. 헌책방에는 헌책방 문화가 있습니다. 신촌 ㅈ헌책방에는 ㅈ헌책방 문화가 있습니다. 노량진 ㅈ헌책방에도 ㅈ헌책방 문화가 있습니다. 인천 ㅇ헌책방에는 ㅇ헌책방 문화가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대구 ㄷ헌책방을 찾아가면서도 ㄷ헌책방 문화를 느끼거나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맛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원 ㅇ헌책방을 찾아가면서도 수원 ㅇ헌책방에만 있는 문화를 돌아보거나 만나거나 부대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만날 수 있는 책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어떤 책을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헌책방 나들이를 해서 얻는 보람이나 즐거움이란 무엇일까요? (4340.1.22.달.ㅎㄲㅅㄱ)

http://club.cyworld.nate.com/501544711104/108787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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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 아저씨 말 3

 
 “헌책방 장사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정년퇴직 걱정 없이 내가 죽는 날까지 평생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야. 그래서 난 죽을 때까지 여기서 헌책방 장사를 할 거야.”


 충북 청주에 있는 헌책방 〈보문서점〉 아저씨, 아니 이제는 할아버지. 당신 또래 동무들은 모두 딸아들한테 눈치보며 용돈 타서 쓰지만, 당신은 헌책 팔아 손주 과자도 사 주고 용돈도 쥐어 줄 수 있으니, 남은 삶도 즐거우시리라 믿습니다. (4340.1.4.나무.ㅎㄲㅅㄱ)

 

헌책방 아저씨 말 4


 “네? 무슨 책이요? 아, 그런 책은 지금 없는 것 같네요. (전화 끊음. 그리고 저를 보면서) 요즘은 다 이렇게 전화로만 물어 봐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오는데, 전화만 하지 말고 이런 데 한 번 와서 죽 돌아보면 좋으련만. 태영이가 그러잖아. 전화상으로만 묻는 손님들은 우리들하고 무관하니까 물어 봐도 그냥 책 없다고 그러라고. 하하하.” -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1매장 아저씨

 
 ‘헌책’을 찾는 사람이 줄기는 줄었지만, 찾는 사람이 줄었다기보다 ‘손수 찾아다니는’ 사람이 줄었다고 느낍니다. 인터넷 헌책방이 늘어나고 인터넷으로 책 사고파는 일이 늘어나는 숫자를 보면, 이 숫자가 예전에는 손수 헌책방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던 숫자와 비슷하거든요.

 느긋하게 살피고 둘러보면서 책 하나 고르지 못한다면, 자기가 사들인 책을 느긋하게 헤아리면서 읽을 수 없지 싶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찾아들고 집어든 책 하나가 아니라면, 책에 담긴 줄거리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깊은 알맹이는 더더구나 맛을 못 보지 싶습니다. 기꺼이 다리품을 팔지 않을 때에는 헌책방마다 다 다르게 간직한 모습을 볼 수 없을 테고요. (4340.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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