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아홉 시가 조금 넘었을 때, 눈과 몸을 쉬고자 잠깐 자리에 눕는다. 불도 끈다. 조용히 드러누운 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면서 두어 시간만 쉬었다가 일어나자고 다짐한다. 어느덧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일어날까 말까 하다가 조금 더 눕기로 한다. 그러다가 얼핏 잠들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몸이 으스스 떨린 깊은 새벽.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웅 들린다. 곧 꺼진다. 다시 웅웅웅 돌아간다. 눈을 뜨고 누운 채 창밖을 바라본다. 별이 하나 보인다. 그렇구나, 별. 방바닥은 아직 따스해지지 않았고 몸은 으슬으슬 떨린다. 어떡할까. 이대로 죽 잘까, 아니면 일어날까. 망설이며 몸을 웅크리다가 벌떡 일어난다. 아, 춥다. 방온도는 아마 10도가 안 될 듯. 가지빛 고무신 꿰어신고 마당으로 나간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음, 별 많네. 예전만 못하기는 해도.

 새벽에 올려다보는 밤하늘. 고요한 이 새벽, 부엉이인지 소쩍새인지 밤새 한 마리 가늘게 우는 이 즈음. 저 멀리 큰길에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없고 오로지 내 발자국, 내 몸 움직이는 소리만. 바람도 없어 나뭇잎 구르는 소리나 나뭇가지 떨리는 소리도 안 들린다.

 산기슭에 쉬를 한다. 몸을 조금 풀어 준 뒤, 탁탁탁 뛰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방에 불을 켠다. 아, 눈부셔라. 어둠에 익숙해졌던 눈이 빛이 낯설어 찡그리게 된다. 부엌에서 물 한 모금 입에 넣고 오글오글 굴린 뒤 삼킨다.

 셈틀을 켜고 자리에 앉는다. 몸이 떨리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얼얼한 손을 비비며 글을 쓴다. 보일러가 다시 웅웅웅 돌아간다. 그러다가 뚝. 방온도가 11도가 되었다는 불빛. 11도라. 한 사람이 깨어나 움직이니 이렇게 되나. 아직 손가락이 시리다. 조금 더 있자니 12도. 햐. 1도 더 올라갔네. 하지만 더 올라가지는 않겠지. 요새 날이 좀 풀린 듯하면서도 새벽엔 이렇게 쌀쌀하단 말이야.

 기름을 때는 조그마한 살림집. 올해는 기름을 얼마나 썼을까. 아침저녁으로 기름통을 살펴보는데, 올겨울에는 기름을 거의 안 썼다. 지난겨울에 넣은 기름이 아직도 제법 남았다. 잘하면 이듬해 겨울도 이 기름으로 날 수 있을 듯. 올겨울에는 이 집에서 혼자만 지내는데, 보일러 온도를 가장 낮추어 돌리고, 어지간해서는 돌리지도 않으니 이렇게 된다. 그만큼 집에서는 옷을 두툼하게 끼어 입는다. 큰방에는 아예 불을 안 넣는다. 겨울 한철 큰방은 얼음장이다. 작은방에는 언제나 이불이 깔려 있다. 이불이 깔리지 않은 자리에는 책과 옷가지를 쌓아놓았다. 조그마한 불씨라도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그래, 기름을 때며 살아도 이렇게 아끼고 아끼면 두고두고 쓸 수 있구나. 나무 땔감이나 연탄 못지않게 적은 돈으로도 겨울나기 할 수 있겠네. 하지만 연탄을 땐다면 이 겨울이 한결 따뜻하겠지. 훨씬 적은 돈으로.

 두 손을 가랑이 사이에 넣고 비빈다. 틈틈이 이렇게 비벼서 녹이지 않으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다. 글을 쓰면서도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움직인다. 그래야 몸도 안 굳겠지. 겨울을 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텐데, 이 가운데 ‘부지런히 몸 움직이기’가 있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가장 안 쓰는 방법일 텐데, 나는 이 방법이 좋다. 시골 사는 분 가운데에는 나보다 더 춥게 살며 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분도 많다. 움직이지 않으니까 춥다. 옷을 안 입으니 춥다. 그것뿐이다. 겨울에는. (4340.2.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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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넘게 끙끙거린 끝에 겨우 책이야기 하나 마무리지었다. 읽은 지는 좀더 되었지만, 느낌글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를 놓고 갈팡질팡하느라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늘 마무리지은 책은 《청소녀 백과사전》(김옥/나오미양). 참 오랫동안 붙잡고 있어야 한 책이라서 막상 느낌글을 다 쓰고 난 뒤에도 책꽂이에 선뜻 못 꽂았지만, 다음 책을 또 하나 찾아서 붙잡아야 할 테지. 세상에는 참으로 좋은 책이 여러 가지 있는 만큼, 딱 하나에만 매일 수 없는 법이니까.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책 하나를 떠나보낸 뒤, 느낌글을 인터넷새책방 〈알라딘〉 게시판에도 올려놓는다. 길이가 제법 길어서 붙여넣기를 하는 데에도 몇 분 걸린다. 느낌글을 올린 뒤, 그동안 올린 다른 글을 가만히 살펴본다.

 흠, 그동안 올린 다른 느낌글을 보노라니 거의 모두 별 다섯을 붙여놓았다. 〈알라딘〉에서는 별 다섯을 잣대로 책느낌을 매기도록 되어 있다. 문득, 나는 왜 별 다섯을 이렇게 많이 붙여놓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글쎄.

 책이름을 하나씩 읊어내려가다가, 아하,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친다. 별 셋, 별 둘을 붙일 만한 책도 얼마든지 느낌글을 쓸 수 있겠지. 하지만 어차피 내 시간과 품과 땀을 들여서 쓸 느낌글이라면 ‘별 다섯(더러 별 넷)을 붙일 책만 추려서 쓰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나 혼자 읽는 책이라면 별 셋짜리건 별 하나짜리건 얼마든지 읽을 수 있지만, 굳이 다른 사람들도 읽도록 쓰는 느낌글이라면 ‘바쁘게 사는 이 세상 사람들한테는 별 다섯을 즐겁게 붙입니다!’ 하고 외칠 만한 책이어야지 하는 생각. (4340.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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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서점 -

- 대방 헌책방 -


 “나는 새장 속에 갇힌 새여. 평생 한 곳에 묻혀서 바뀌지 않는. 자네는 참 자유롭게 사는구먼.” ― 서울 연세대 건너편 〈정은서점〉 아저씨

 “나도 10년 전에는 헌책방 찾아다니는 게 취미였는데, 요새는 나갈 수가 있어야지. 앞으로 꿈이 있다면, 오토바이 뒤에 수레 같은 거 붙이고 헌책방 찾아 돌아다니는 거예요.” ― 서울 대방동 〈대방 헌책방〉 아저씨

 
 헌책방 아저씨들 겨드랑이에 새로운 날개가 돋아나 홀가분하고 시원하게 온 세상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날이 찾아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4340.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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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가에서 물 뜨기


 - 1 -

 충주에 돌아온 뒤 땀에 전 옷을 벗고 부엌 수도꼭지부터 살핀다. 물이 안 나온다. 틀림없이 날이 풀려서 녹았을 텐데? 펌프 자리로 가서 뚜껑을 열어 본다. 전깃줄이 뽑혀 있다. 누군가 뽑은 듯. 전깃줄을 잇고 수도꼭지를 다시 살핀다. 아무 움직임이 없고 펌프 돌아가는 소리도 안 난다. 지난해 이웃집이 불타면서 펌프 부속도 불탔을까?

 하는 수 없이 윗마을로 올라가 물을 뜨기로. 물통을 가방에 담고 느릿느릿 고갯길을 올라간다. 수도꼭지를 틀면 철철철 나오는 곳에서 뜰까 하다가 아기 오줌줄기보다도 가늘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샘가에서 물을 뜨기로 한다. 글쎄, 이런 물줄기로 받는다면 어느 세월에 한 통을 받을까 싶지만, 물통 뚜껑을 받쳐서 똑똑똑 떨어지는 물을 몇 방울씩 받으며 조금씩 물통을 채운다.

 쪼그려 앉은 채 물을 뜬다. 아주 조금씩 차오르는 물통이 1/10, 1/7, 1/4, 드디어 반쯤. 몇 분쯤 흘렀을까. 삼십 분도 넘은 듯한데.

 틈틈이 허리를 편다. 고개를 들어 새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며 어느 나뭇가지쯤 앉아 있나 찾아본다. 하지만 아무 새도 안 보인다. 안경을 안 써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 주먹만큼도 안 되는 조그마한 새들이겠지. 박새, 콩새.

 오랫동안 똑똑 물줄기를 받노라니 물소리 하나하나 퍽 큰소리로 들린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소리도 제법 큰소리로 들린다. 샘터 바닥에 가라앉은 모래를 보고, 물 한 모금 떠서 손가락으로 이닦기를 하고, 따사로운 햇볕을 냠냠 받아먹고, 서늘한 낮공기를 큼큼 들이키고.


 - 2 -

 샘가에서 물을 뜨는데, 윗마을 공동체학교에서 지내는 아이 둘이 개를 풀어서 내 뒤까지 끌고 온다. 이상한 사람이 와서 쫓아내려고 그러나? 그 개는 아주 어린 새끼였을 때부터 가까이서 보아 온 녀석. 이 녀석은 어릴 적 이웃 개한테 잘못 물려서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얼굴을 보면 한쪽으로 뒤틀려 있다. 새끼였을 때는 퍽 불쌍하다고 느꼈는데, 다 자란 뒤 나를 보고 컹컹 짖는 모습을 보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다른 개들은 나를 보고 안 짖고 안기거나 얌전히 있는데 이 녀석만 짖는다. 하지만 모르지. 개가 짖는 소리에 무슨 뜻이 담겼는지 사람 생각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가.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왜 개를 끌고 내 뒤에 서는가. 할 말이 있으면 입으로 하든가, 보기 싫으면 나가라고 하든가. 이 아이들은 한 마을에, 그것도 바로 위아래에 나뉘어 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을 모르는가. 하긴, 나도 이 아이들 얼굴이 낯설다. 아마 서로 얼굴 마주칠 일이 없어서 그럴 테지. 어른인 내가 아이들 얼굴을 잊지 않고 떠올린다고 해도, 아이들이 어른 얼굴을 모두 떠올리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자(이 아이들하고 가까이 지낼 일은 없지만 이래저래 스치며 여러 번 보기는 했으니까).

 등 뒤에서 바로 개 짖는 소리를 들으니까 물을 뜨던 손이 떨린다. 파르르.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이들한테, 그것도 공동체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아이들한테 도둑이나 이상한 사람으로 의심을 받고 있으니. 조금 뒤, 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 가운데 오랫동안 가까이 지냈던 아이 하나가 나를 알아보고 “야, 최종규 선생님이야.” 하고 왜들 그러느냐고 이야기. ○○○구나. 히유. 한숨이 나온다. 그렇지만 개를 끌고 온 아이들이 내 이름이 뭔지, 내가 어디에서 사는지,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 턱이 없을 테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안다 한들 달라질 것 없겠지.


 - 3 -

 한참 물을 뜨다 보니 손과 발이 얼었다. 처음에는 몸에 땀이 후끈후끈 올라왔다. 자전거 타고 살림집에 닿은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래서 샘가에서 얼굴 씻고 발 씻을 때 시원함만 느꼈으나, 한참 쭈그려 앉으며 물을 뜨는 동안 허리도 쑤시고 손발도 시리고. 하지만 물통은 언제 찰는지 까마득하고.

 그렇지만 똑똑똑 떨어지는 물줄기를 쏴아아 흐르도록 할 수 없다. 무슨 기계로 빨아들인다한들 더 빨리, 더 많이 나올 수 없다. 그저 지금 이 빠르기대로, 이 흐름대로 받을 뿐이다. 억지를 쓴다고, 꾐수를 쓴다고 달라지겠는가. 조바심을 낸다고, 안달을 한다고 바뀌겠는가. 말없이 기다릴 뿐이다. 그저 있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추운 겨울, 물이 얼어붙는 시골집에서는 으레 견뎌야 하는 일이며, 몇 방울밖에 안 떨어지는 물줄기라도 고맙게 느껴야지.

 문득, 물 한 동이 뜨려고 십 리나 이십 리 길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다녀야 한다는 사막마을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과 견주면 나는 얼마나 수월한가. 이만한 물줄기라도 하늘에서 내려준 복이 아닌가.


 - 4 -

 물은 반 조금만 더 받는다. 개 짖는 소리 듣기 싫고, 손발도 많이 얼었다. 밥할 만큼은 떴으니, 이것으로 넉넉하다. 다음에는 자전거 타고 휭 왔다가, 다시 자전거 타고 휭 사라져야지.


 - 5 -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늙은 감나무 옆에서 쉬를 보다. 올해에도 감 몇 알 열어 주시겠지. 내가 이 감나무한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시골집에 있을 때 틈틈이 올려다보거나 쓰다듬어 주기, 때때로 오줌을 주기. (4340.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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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을 사는 즐거움
- 헌책방 책값 느끼기


 책등이나 책 뒤쪽에 책값 딱지를 붙여놓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연필로 책값 숫자나 기호를 적어 놓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책값 딱지를 안 붙이고, 숫자나 기호도 안 적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책값 딱지를 붙이는 헌책방에서는, 책손이 책마다 매겨진 제값을 잘 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책값 딱지를 안 붙이는 헌책방에서는, 이 책이나 저 책이나 다 비슷비슷한 값인데 구태여 책값 딱지를 붙일 까닭이 없다고 느끼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아예 책꽂이마다 책값을 달리해서 꽂아 놓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헌책방을 열어 꾸려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책값을 붙이는 방법이 저마다 다릅니다. 또한, 책값을 붙이는 방법만큼이나 책값 매기는 잣대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김남주 시인 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키 소설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진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학습지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마음을 더 두는 책에, 자기가 더 좋아하는 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깁니다. 장사하는 처지로 본다면, ‘내가 안 좋아해도 남이 좋아하는 책’이라면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들도 헌책방 임자가 ‘아는 책’이나 그렇지 ‘모르는 책’에 섣부른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조복성’이 누구인지 아는 헌책방 임자가 어디 있겠으며(책손조차도 거의 모릅니다만), ‘앨런 테인 더닝’이 누구인지 아는 헌책방 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도종환이든 조정래든, 헌책방 임자로서는 ‘헌책방에 들어오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하나를 지은 사람’일 뿐입니다. 책더미 사이에서 눈에 뜨여서 따로 빼낸 뒤 좀더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놓을 수 있지만, 그냥 책탑을 쌓아 놓고 있을 수 있습니다. 도종환 님 책이라면 시집 칸 한쪽에 그냥 꽂아 놓을 수 있고, 조정래 님 책이라면 소설책 두는 자리에 덩그러니 올려놓거나 쌓아 둘 수 있습니다. 새책 값으로 6000원이 붙은 도종환 님 시집을 헌책방에서 2000원에 팔면 알맞는 값일까요? 1000원이나 1500원에 팔면 싼값일까요? 3000원에 팔면 비싼값일까요? 새책 값으로 9000원이 붙은 조정래 님 산문모음을 헌책방에서 4000원에 팔면 알맞는 값일까요? 3000원만 받아야 알맞을 값일까요?

 그제 강우방 님 산문모음을 5000원 주고 한 권 샀습니다. 다른 헌책방에서는 8000원을 받았을지 모르는 책이고, 어떤 헌책방에서는 3000원이나 4000원을 받았을지 모르는 책입니다. 이 책이 저한테 아주 쓸모있고 소중하다면 8000원이 아니라 1만 원을 불렀어도 조금도 비싸지 않다고, 참 싸다고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재미없거나 따분하거나 값어치없다고 느꼈다면, 3000원이 아닌 거저로 준다고 해도 짐스러워서 안 받겠지요.

 어느 헌책방이든 500원이나 1000원에 파는 책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500원이나 1000원이라는 아주 싼값에 살 수 있는 책은 ‘우리들이 얼마나 즐겁게 만나서 사 읽을 만한 책’이 될까요. ‘우리들이 반갑게 사 읽을 만한 책’이라면, 헌책방 임자가 책 값어치를 몰라서 대충 싸구려로 후려치며 내다 파는 책 사이에 더 많을까요, 아니면 헌책방 임자가 알뜰히 손질하고 책먼지를 깨끗이 닦아내어 얌전하게 책시렁에 꽂아 놓은 책 사이에 더 많을까요.

 헌책방을 찾든 새책방을 찾든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우리들이 읽을 만한 책은, 우리들이 치러야 할 만한 값이 매겨져 있습니다. 갓 나온 최민식 님 사진책 《인간》(눈빛)은 6만 원 딱지가 붙었습니다. 이 사진책 《인간》은 6만 원이라는 값을 하기 때문에 6만 원이 붙습니다. 조지 레이코프라는 사람이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라는 책은 1만 원이라는 책값이 붙었습니다. 이 책은 1만 원이라는 값을 하기 때문에 1만 원이 붙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알맞은 책값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이 헌책방에 들어온다면, 책값이 헌책방마다 다릅니다. 먼저, 헌책방에 들어오는 값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책이라 해도, ㄱ이라는 헌책방에는 1000원에 들어오고, ㄴ이라는 헌책방에는 500원에 들어오며, ㄷ이라는 헌책방에는 100원에 들어오고, ㄹ이라는 헌책방에는 50원에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ㄱ와 ㄴ은 책값이 어떻게 될까요. ㄷ과 ㄹ은 어떻지요? 1000원에 들어오는 책이라 해도, 들어오기 무섭게 팔린다면 책값은 한결 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즘 우리들이 얼마나 책을 즐겁게 사서 읽고 있는가요. ‘헌책방에 책이 들어오기 무섭게 팔리는’ 오늘날인지, 아무리 좋다고 하는 책도 ‘헌책방 책꽂이에 자꾸자꾸 쌓이기만 하는’ 오늘날인지.

 모든 책에는 그만한 값이 매겨집니다. 먼저, 책에 담긴 글-그림-사진을 풀어낸 글쓴이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다음으로, 책을 엮어낸 출판사 사람들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그리고, 책을 죽 늘어놓고 파는 책방 사람들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헌책방에 들어가는 책은, 먼저, 책을 내놓은 사람한테 물건값(책값)을 보상해 줍니다. 또는, 고물상이나 폐휴지수집상에서 책을 거두어들인 샛장수한테 물건값을 보상해 줍니다. 다음으로, 이렇게 들어온 헌책을 매만지고 손질해서 갖추어 놓는 헌책방 임자 품에 값을 매깁니다. 새책에는 새책에 걸맞는 값을 매기고, 헌책에는 헌책에 걸맞는 값을 매깁니다. 새책으로 사든 헌책으로 사든, 우리들 책손이 이 책 하나를 손에 쥐기까지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 품과 보람을 몇 푼 책값에 매겨 놓습니다.

 책을 사는 일은, 책 하나에 담긴 줄거리를 받아들이거나 즐기는 일입니다. 또한, 책 하나 엮어내거나 파는 이들이 들인 땀방울에 보답을 해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에는 되도록 ‘자기 돈을 써서 사서 읽어야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한테 재미나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슬기나 깨달음 들을 넉넉히 건네주는 책 하나를 써내고 엮어내고 팔아 준 이들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일이 ‘책 사기’거든요. 밥 한 그릇 받아먹으며 농사꾼들 땀방울을 고맙게 느끼는 한편 밥알 하나를 이룬 햇볕과 물과 흙과 바람 앞에 고마움을 느끼듯, 책 하나를 손에 쥐면서 이 책을 이루어 낸 모든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을 고맙게 느낀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 사는 일이 즐겁습니다. 책을 읽는 일 못지않게 책을 사는 일이 즐겁습니다. 누군가 저한테 책을 거저로 선사해 준다면 참 반가운 노릇이기는 한데, 제 주머니돈을 털어서 책을 사는 일보다 기쁘지 못합니다. 어렵사리 모은 돈을 그러모아서 고마운 책 하나 사는 일이란, 좋은 줄거리를 받아먹는 일만큼이나 ‘나도 무언가 했구나’ 싶은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손수 책을 하나하나 사서 읽히는 어버이들을 볼 때면, 참 흐뭇하고 살갑다고 느낍니다. 저 아이들은 벌써부터 ‘책 사는 즐거움’을 느끼고 배우고 몸으로 익히니까요. (4340.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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