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노랫가락 (2022.7.27.)

― 인천 〈딴뚬꽌뚬〉



  태어나서 자란 인천에서 조용한 나날이란 드물었습니다. 지난날에는 부릉이(자가용)를 건사한 집이 드물었기에 부릉거리는 소리는 얼마 못 들었지만, 집집마다 흘러넘치는 갖은 소리가 온마을을 휘감았습니다. 일하는 소리, 심부름하는 소리, 노는 소리, 꾸중하거나 우는 소리, 놀거나 웃는 소리, 왁자지껄 이야기하는 소리가 어우러졌습니다.


  큰길은 서울로 떠나는 커다란 짐차가 땅을 울리는 소리, 하늘은 갈매기하고 비둘기가 어우러진 소리, 땅은 참새하고 제비가 어울리는 소리, 여기에 뭉게구름이 피어나면서 다가와 소나기를 퍼붓는 소리가 흘렀어요. 짐을 실은 기차가 오가는 소리, 연탄공장에서 깜돌을 찍는 소리, 그리고 어느 집마다 있던 쥐가 갉거나 달리는 소리가 있었어요.


  오늘날에는 온갖 소리보다는 부릉부릉 뒤덮는 소리 한 가지로구나 싶습니다. 숱한 소리는 어디 갔을까요? 뛰놀며 복닥거리는 어린이 노랫소리는 어디 있을까요? 아기를 달래며 자장자장 들려주는 말소리는 사라졌을까요?


  매캐하게 감도는 소리를 들으며 골목을 걷다가 〈딴뚬꽌뚬〉에 깃듭니다. 똑같은 틀로 짜맞추는 부릉부릉이 아닌, 다 다른 삶결로 스스로 노랫가락을 지을 수 있다면, 어느 곳이나 보금자리로 가꿀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래오래 사랑받는 린드그렌 님은 아이를 품에 안고서 웃고 춤추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썼고, 안데르센 님은 아이들을 곁에 앉히고서 눈물을 흘리다가 빙그레 웃으면서 토닥토닥 노래를 부르면서 이야기를 썼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몸짓으로 하루를 쓰는 눈빛일까요.


  나라(정부·사회)에 길든 글꾼(기자·작가)이 퍼뜨리는 글하고, 아이를 품고 바라보는 살림살이를 손수 돌보는 수수한 사람이 심는 글은 사뭇 다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한테 이바지할 글’은 쓸 수 없습니다. ‘모두한테 좋을 글’이란 없습니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글’을 쓸 뿐이고, ‘곁에 있는 아이 눈을 맑게 바라보는 글’을 쓸 적에 비로소 사랑씨앗을 꿈으로 그려낼 뿐입니다.


  작은책이든 큰책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값싼 판이든 비싼 판이든, 헌책이든 새책이든, 손수 장만하든 빌리든, 읽고 배워서 새롭게 펴는 마음이라면 모두 아름답습니다. 읽으면서 배우거나 새롭게 펴려는 마음이 없으면 으레 빈 껍데기입니다.


  아이들한테서 한소리·잔소리를 듣는 어른은 늘 새로 배우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이들한테 한소리·잔소리를 하는 어른은 늘 쳇바퀴에 갇혀 허우적거려요.


ㅅㄴㄹ


《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강은진, 작아진둥지, 2022.6.22.)

《어느 아이누 이야기》(오가와 류키치 글·타키자와 타다시 엮음/박상연 옮김, 모시는사람들, 2019.1.25.)

《Graphic Novel 26 아기공룡 둘리》(박소연 엮음, 피오니, 2017.5.1.)

《닮다, 나와 비슷한 어느 누군가에게》(최하현, 부크크, 2020.10.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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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이 싹튼 밑힘 (2023.3.9.)

― 청주 〈중앙서점〉



  오늘은 새벽 세 시 무렵 하루를 엽니다. 청주로 책숲마실을 갈 참이라 이래저래 글살림을 여미고 부엌을 갈무리하고 짐을 꾸립니다. 아침 첫 시골버스로 고흥읍에 가고, 전남 광주로 건너가는 시외버스를 탄 뒤, 대전으로 넘어가는 시외버스를 갈아타고서, 이제 청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탑니다. 청주에서 내려 한참 걷습니다. 이 고장이 어떻게 바뀌는가 하고 읽다가 등판에서 땀이 흐를 즈음 시내버스를 타고서 충북도청 곁에서 내려 ‘청주 책골목’으로 갑니다.


  2023년에 충북 청주에는 〈대성서점〉하고 〈중앙서점〉이 곧게 헌책집살림을 잇습니다만, 스무 해 앞서만 해도 헌책집이 열 곳을 아우르는 고장이었고, 서른∼마흔 해 앞서는 더 많았습니다. 청주에는 청주교대에 충북대처럼 배움빛을 헤아리는 젊은이가 꾸준히 물결쳤기에 새책집도 헌책집도 꽤 많았어요. 이제는 예전같지 않으나, ‘교대가 있는 작은고장’은 새책집·헌책집이 나란히 북적이면서 삶빛을 알뜰히 여미려는 숨결이 흘렀습니다.


  겉이 허름해 보이거나 데께가 내려앉은 모습만으로 ‘헌책’이라 여긴다면, 책을 모르는 셈입니다. 손길을 닿아 즐거이 읽힌 뒤에 새롭게 닿을 손길을 기다리는 하늘빛을 품은 속빛으로 ‘헌책’을 마주할 적에, 비로소 책길을 열 만합니다.


  헌책집을 드나들기에 ‘책을 알지’ 않아요. 새책은 아직 읽히지 않으며 기다리는 책이요, 헌책은 새롭게 읽히며 빛나려는 책입니다. 새책은 이제 막 태어나서 싹트려는 책이고, 헌책은 이미 씨앗이 트면서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오르려는 책입니다. 책마을이 아름드리로 우거지자면 ‘책 = 새책 + 헌책’이라는 얼거리를 곰곰이 짚으면서 알뜰살뜰 북돋울 노릇입니다. ‘새책 : 새로 지은 손길이 새로 읽을 이웃한테 흐르는 책’이요, ‘헌책 : 이미 지은 손빛이 새로 가꿀 눈빛으로 퍼지는 책’입니다.


  청주에도 ‘알라딘중고샵’이 있고, 이런 누리책집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굳이 손에 책먼지를 안 묻혀도 말끔한 책을 손쉽게 찾고 사고 되팔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알라딘중고샵’은 ‘바코드 없는 책’을 다룰 줄 모르고, 살필 길이 없어요. 온누리 헌책집은 마을에서 마을빛으로 지은 작은책(비매품·독립출판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여서 오래도록 나누고 알린 책터입니다. 헌책집이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마을책집(동네책방)은 싹조차 틔우지 못 했습니다. 많이 팔리는 책도 다루되, 거의 안 팔렸지만 뜻깊게 되읽으며 배울 어진 삶빛을 담은 책을 품은 헌책집을 잇는 밑힘을 청주시는 앞으로 얼마나 살리거나 키울 수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ㅅㄴㄹ


《맨발의 겐 2》(나카자와 케이지/김송이·이종욱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0.8.25.)

《맨발의 겐 9》(나카자와 케이지/김송이·익선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2.7.27.)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포올러스/김명순 옮김, 두풍, 1987.10.20.첫/1989.1.30.중판

《어둠의 속》(조셉 콘라드/나영균 옮김, 자유교양사, 1989.7.15.)

《大地의 딸》(아그네스 스메들리/타혜숙 옮김, 한울, 1993.5.29.첫/1993.7.5.2벌)

《유태인의 천재들》(유안진, 문음사, 1979.9.10.첫/1980.8.30.중판)

《파름문고 44 사랑의 물레방아 下》(로렛타 깁슨/유종숙 옮김, 동광출판사, 1984.4.15.)

《지성문고 38 결혼》(알베르 카뮈/이재하 옮김, 동천사, 1988.7.15.)

《太白山脈 1》(조정래, 한길사, 1986.10.5.첫/1993.10.25.62벌)

《太白山脈 2》(조정래, 한길사, 1986.10.5.첫/1994.4.4.57벌)

《왕따 리포트》((주)가우디 엮음, 우리교육, 1999.5.15.)

《구름》(구드룬 파우제방/김헌태 옮김, 일과놀이, 2000.11.23.첫/2004.1.103.2벌))

《휴지 하나 시 하나》(윤상화, 푸른숲, 1992.7.10.)

《삼부경》(金水寺 이법홍 엮음, 안양암, 1964.)

《피안으로 가는 길》(제1군사령부 엮음, 제7지구인쇄소, 1977.)

《봄눈 개관기념, 詩의 여백이 있는 노트》(조희선, 꽃잠, 2016.9.24.)

《안네의 일기》(안네 프랑크/유승희 옮김, 가나출판사, 1989.5.20.)

《문집 1호 우리 한 번 걸어 보자》(글다솜, 일터기획, 1994.3.31.)

《사람의 길 예수의 길》(이현주, 삼민사, 1982.10.25.첫/1989.9.20.중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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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는 눈 (2022.6.20.)

― 서울 〈서울책보고〉



  우리는 두 가지 몸을 입습니다. 사람도 암수요, 풀꽃나무도 암수요, 짐승도 암수요, 벌나비도 암수요, 고래도 헤엄이도 암수입니다. 처음에는 수(돌이)가 태어났고, 이윽고 암(순이)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암이 먼저 태어나지 않았으나, 우리말에서는 ‘암수’처럼 순이를 앞에 놓습니다. ‘어버이’라는 낱말도 ‘어머니(순이)’가 앞입니다. ‘가시버시’라는 낱말도 ‘가시내(갓)’이 앞이에요.


  처음에 태어난 ‘수(돌이)’는 덜 깨어난, 또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숨결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처음 지은 사람인 수였으나 덜 깨어나거나 아직 깨어나지 않은 탓에 마음을 열 줄 모르고, 마음을 틔울 줄 모르며, 마음을 닦을 줄 몰랐다지요. 이리하여 이 수(돌이)를 바탕으로 ‘다르지만 닮아서 닿도록’ 빚은 몸인 사람이 ‘암(순이)’이라고 합니다.


  얼핏 보면 먼저 태어난 수가 앞인 듯싶으나, 그저 먼저 태어났을 뿐, ‘깨어나지 못 한 마음’이요, 나중에 태어난 암은 뒤라고 하지만 늦게 태어났어도 ‘깨어난 마음’입니다. 그래서, 몸나이로 앞뒤를 가르지 않고 마음빛으로 앞뒤를 살펴 ‘암수’로 쓰는구나 싶어요.


  태어날 적에 스스로 깨어난 빛인 암인 터라 구태여 다른 데에서 빛을 안 찾습니다. 이와 달리, 태어날 적에 스스로 안 깨어나거나 덜 깨어난 수인 터라 스스로 밝히려 하기보다는 바깥(남)에서 빛을 찾으려고 합니다. 짝을 맺을 적에 수(돌이)가 그렇게 뽐내거나 자랑하거나 내세우면서 무지갯빛으로 꾸미는 뜻을 읽을 만해요.


  암수에서 ‘수’는 ‘수수함·숲·수월함’을 품을 만했는데, 막상 수컷은 수수한 숲으로 수월하게 피어나는 숨빛하고 동떨어졌어요. 이와 달리 암컷은 스스로 알고 스스로 앞장서면서 살림을 짓는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빛으로 알찬 삶으로 나아갑니다. 사람이 모여 마을을 이룬 첫자리가 ‘엄마누리(모계사회)’일 만합니다.


  서울마실을 하며 〈서울책보고〉로 찾아갑니다. 즐거이 책숲마실을 할 헌책집을 두 곳 이야기하는 날입니다. 일찌감치 잠실나루에 닿아 책시렁을 돌아봅니다. 돌이(수컷)란 몸을 입고 태어났기에 덜 깨어난 마음을 살찌울 책을 하나둘 헤아립니다. 돌이는 참말로 바지런히 읽고 쓸 노릇입니다. 돌처럼 딱딱한 머리랑 마음을 깨뜨려야 깨어날 테니까요. 이와 달리 순이는 굳이 글이나 책에 기대지 않고서 마음빛을 돌아보면 언제 어디에서나 어질고 슬기로운 눈망울로 살피겠지요.


  글로만 적는 이야기로는 어느 마음도 깨울 수 없습니다. 숲을 수수하게 품으며 푸르게 살리려는 이야기일 적에 마음을 깨웁니다. 머슴으로 머물지 않으려고 하루를 읽고 바람을 노래하고 별빛을 보듬습니다.


ㅅㄴㄹ


《제3세계의 이해》(변형윤·박현채·사무엘 팔머 외, 형성사, 1979.2.첫/1990.7.25.중판)

《경주 속담·말 사전》(김주석·최명옥, 한국문화사, 2001.6.15.)

《영리한 공주》(다이애나 콜즈 글·로스 아스키스 그림/공경희 옮김, 비룡소, 2002.4.24.)

《일본의 소출판》(와타나베 미치코/김광석 옮김, 신한미디어, 2000.6.25.)

《현대 출판학 원론》(박유봉·채백, 보성사, 1989.4.15.첫/1992.10.15.4벌)

《전통무용 1호》(최종실·최석실 엮음, 월간 전통무용, 1987.11.1.)

《남북한 청소년 말모이》(정도상·박일환 글, 홍화정 그림, 창비교육, 2020.7.3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왜 왔읍니까?》(지학순, 뿌리깊은나무, 198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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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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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2022.5.31.)

― 고흥 〈더바구니〉



  오늘로 드디어 모든 시끌짓(선거유세차량)이 끝납니다. 곰곰이 보면 그들(정치꾼·공무원)은 늘 시끄럽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을 자랑삼아 떠들지 않는데, 그들은 뭘 했다고 떠들고 뭘 하겠다며 떠듭니다.


  굳이 잘난책(베스트셀러)을 안 읽습니다. 잘났다고 떠들썩하게 온갖 곳에 알림글로 채우는 책은 속이 비었거든요. 빈수레는 시끄럽습니다. 빈책(공허한 베스트셀러)은 자꾸자꾸 알림글을 여기저기 목돈을 띄워서 떠듭니다.


  삶을 삶답게 새로 읽으려고 할 적에 비로소 책집에 깃들어 스스로 차분히 하루를 되새길 만하지 싶습니다. 쇳덩이(자동차)를 내려놓고서 마을책집으로 천천히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달리지 않는다면, 삶을 삶답게 읽을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쇳덩이를 빨리 달려 부릉부릉 끼이익 세워서 후다닥 사들이는 몸짓이라면 구태여 책을 읽을 까닭이 없어요. 빨리빨리 하고 싶으면 그냥 빨리 죽는 길이 낫습니다.


  둘레(사회)에서는 ‘병·병신’을 하염없이 나쁘게 여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낱말 ‘병·병신’은 하나도 안 나쁩니다. 이 낱말을 나쁘게 여기거나 쳐다보는 눈썰미가 ‘나쁘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병신 = 아픈 몸 / 앓는 몸’이란 뜻입니다. 아프거나 앓을 적에 비로소 몸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알아’ 가는 길이게 마련이라, 속뜻으로 놓고 보면 ‘아프다·앓다·병·병신’은 나쁜말일 수 없어요. 뜻을 모르니 함부로 쓰거나 나쁘다고 손가락질을 할 뿐입니다. ‘사춘기’도 ‘앓이(병)’ 가운데 하나입니다. 배움터(학교)를 안 다니는 아이는 봄앓이(사춘기)가 없습니다. 스스로 하루를 그리고, 손수 풀꽃나무를 쓰다듬고, 몸소 흙살림을 짓는 푸름이도 ‘사춘기라는 병’이 없습니다. 그러나 배움터에 길들어야 하고 옭매여야 하는 모든 푸름이는 ‘사춘기라는 병’ 탓에 시름시름 앓아야 하고 아파야 하지요. 굴레에서 벗어나자니 끔찍하게 앓고서 털어야 합니다.


  자전거를 달려 〈더바구니〉로 옵니다. 반가이 읽을 책을 등짐에 챙기고서 새삼스레 천천히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갑니다. 55킬로미터쯤 달리는 자전거길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습니다. 그저 멧길이자 들길이자 바닷길입니다. 우리는 종이에 앉힌 이야기도 읽지만, 두 다리로 디디는 바람길도 싱그러이 읽을 만합니다.


  우리는 왜 책을 안 읽을까요? 첫째, 우리 스스로 그들(정치꾼·공무원)이 된 탓에 빈수레처럼 떠들어요. 둘째, 쇳덩이를 부여잡느라 부릉부릉 빵빵빵 빨리 달리니 이웃도 참나도 안 봅니다. 셋째, 해바람비를 안 읽으니 숲도 종이도 안 읽습니다.


ㅅㄴㄹ


《한국 개미 사전》(동민수, 비글스쿨, 2020.12.20.)

《고해정토, 나의 미나마타병》(이시무레 미치코/김경연 옮김, 달팽이출판, 2022.1.18.)

《제주도》(이즈미 세이치/김종철 옮김, 여름언덕, 2014.5.25.첫/2019.1.1.2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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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하는 마음 (2021.7.17.)

― 제주 〈동림당〉



  애월 곽지부터 달려 제주시로 넘어오기까지 여러 오름을 거쳤고 여러 바닷가를 돌았습니다. 오늘 하루는 ‘책집마실’을 누리자고 생각했으나, 그만 ‘자전거마실’만 실컷 했습니다. 〈바라나시 책골목〉에서 짜이를 마시면서 다릿심을 끌어올리려 했으나 마침 오늘은 〈바라나시 책골목〉가 쉬는날이더군요. 철렁이는 바닷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동림당〉에 가기로 합니다. 아직 첫걸음을 떼지 못 한 다른 마을책집을 헤아리자니 곧 마감입니다.


  며칠 만에 〈동림당〉 지기님을 만납니다. 책을 더 사더라도 등짐에 담을 수 없는데, 이곳에서 책짐을 풀어 고흥으로 부쳐도 된다고 말씀합니다. 빈꾸러미를 얻어 차곡차곡 책짐을 옮깁니다. 〈동림당〉에서 만나는 책도 한 자락만 새로 등짐에 담아 밤에 읽으려 합니다.


  제주에서는 ‘제주 것’을 찾거나 챙기거나 가꾸거나 알리려는 빛이 짙습니다. 서울이며 부산이며 수원이며 여러 큰고장도 이런 물결이 있습니다. 고장지기(지자체장)가 조금이나마 살림(문화)에 마음을 기울이면 고장빛을 살찌우는 길(정책)을 어느 만큼 폅니다. 그런데 제가 나고자란 인천이라든지, 제가 보금자리를 누리는 전남 고흥에서는 고장빛을 북돋우거나 가꾸는 길을 좀처럼 못 봅니다. 인천이나 전남 고흥에는 살림빛(문화정책)이 없다고 해도 될 만합니다.


  굳이 ‘우리 것’을 앞장세우거나 치켜세우거나 높여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살림살이’를 스스로 사랑하고 돌보면서 오늘을 노래하면 즐겁습니다. 아이 곁에서 도란도란 보금살림을 ‘우리 나름대로’ 지으면 됩니다. 다른 집에서 하는 살림살이를 기웃거리거나 따라할 까닭이 없습니다. ‘다른 집 아이’를 쳐다보면서 ‘우리 집 아이’를 맞춰야 할 일조차 없습니다.


  이웃나라 사람이 쓴 책이건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어느 책을 손에 쥐건 마음빛을 읽고서 우리 사랑씨앗을 보듬으면 넉넉합니다. 그저 모든 책은 ‘우리말’로 쓰고 ‘우리글’로 읽으면 됩니다.


  우리말 우리글은 ‘토박이말·순우리말’이 아닙니다. 우리말 우리글은 ‘삶말·살림말·사랑말·숲말’입니다. 그리고 ‘사람말’이지요.


  어린이한테서 놀이를 빼앗으면 어린이한테 우리말(살림말)을 빼앗는 셈입니다. 어른 스스로 살림을 등지면 우리 스스로 우리글(사랑글)을 잊는 셈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오늘 이곳에서 짓는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말을 가없이 품고 돌보며 밝히는 눈빛’입니다.


ㅅㄴㄹ


《寫眞輯 朝鮮解放1年》(朝鮮民衆新聞社 엮음/水野直樹 옮김, 新幹社, 1994.9.1.)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페터 빅셀/전은경 옮김, 푸른숲, 2009.10.30.)

《안전운전 (신규자 교재)》(편집부, 경찰청 감수, 도로교통안전협회, 1991.11.27.)

《관광교통 시각표 223호》(안종복 엮음, 철도여행문화사, 1993.5.5.)

- “호텔 충무”

《고등학교 세계사》(오인석·김규호, 동아출판사, 1990.3.1.)

《고등학교 국어 (하)》(박갑수 외 여덟 사람, 교육부, 1990.9.1.)

《보건실 이야기》(곤노 히토미/박소연 옮김, 가람북, 2009.12.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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