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나라 곳곳 모래내 (2023.4.28.)

― 인천 〈책방 모래내〉



  나라 곳곳에 ‘모래내’가 있습니다. 인천 구월동 모래내도 있고, 서울 남가좌동 모래내도 있고, 전주 모래내도 있습니다. 섬진강 옛이름도 모래내입니다. 예전에는 어느 마을이나 냇물이 흘렀고, 이 냇물에는 모래가 넘실넘실 타고 떠다녔으니, 그야말로 모래내란 이름이 안 붙은 고을이나 고장은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흔한 이름이란, 흐드러지는 이름이요, 흐뭇이 여기는 이름이자, 흐르는 이름입니다. ‘흐’가 말뿌리입니다. 우리말 ‘흐뭇하다·즐겁다·기쁘다’는 비슷하면서 달라요. ‘즐겁다’는 ‘즈믄·반갑다’하고 맞닿습니다. ‘즈믄 = 1000’이요, 1000이란 셈은 ‘온(오롯한)’인 100을 ‘열(열다·10)’씩 아우른 셈이기에 가없이 트이면서 끝없이 너른 빛을 품어요. ‘기쁘다’는 ‘기운·길다·깊다’에 ‘미쁘다·예쁘다’를 품지요. 세 낱말 ‘흐뭇하다·즐겁다·기쁘다’는 뜻으로도 살몃살몃 다르고, 결로도 퍽 달라요.


  우리는 늘 쓰는 흔한 우리말을 얼마나 살필까요? 우리는 수수하게 쓰는 우리말을 얼마나 헤아릴까요? ‘수수하다’는 ‘수북하다·수더분하다·수두룩하다·수박·슈룹’하고 말뿌리가 맞닿는데 ‘순(오직)·숲’하고도 맞물리며, 예부터 가시내를 가리키던 ‘순이’란 이름하고도 얽혀요.


  인천 그림책집 〈그루터기〉로 책마실을 하고서 〈책방 모래내〉로 걸어갑니다. 버스나 전철을 타도 되지만, 구름밭 하늘을 이고서 천천히 걷고 싶습니다. 두 책집 사이에는 예전에는 골목마을이었을 텐데, 이제는 깎아지른 잿집(아파트)이 마치 젓가락처럼 박힙니다. 하늘을 찌르려는 잿집 둘레는 젓가락처럼 가지치기를 해놓은 슬픈 길나무가 줄줄이 있습니다. 그래도 제법 자라 가지를 뻗고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길게 있어요. 앞으로 스무 해쯤 뒤, 가지치기를 더 안 하고 그대로 둔다면, 이 거님길은 놀랍도록 눈부신 마을길로 거듭나리라 봅니다.


  쇠날에 〈책방 모래내〉는 19시부터 밤책집(심야책방)을 이룬다는군요. 그러나 19시는 아무래도 곯아떨어져야 할 때로 여겨, 16시에 일찌감치 〈책방 모래내〉에 이릅니다. 북적이는 모래내저자를 가로지르니, 한갓진 골목에 하얗게 앙증맞은 책집이 나타납니다. 곁에는 ‘꽃집 같은’ 머리집(이발소)하고 전파상이 있어요.


  마을이란 어떤 꽃일까요? 마을사람은 어떤 꽃씨일까요? 마을책집은 어떤 꽃밭일까요? 마을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쉬고, 여러 어른·어버이가 새롭게 둘레를 보면서 삶을 새삼스레 익히도록 길잡이가 되는 책은 어떤 꽃내음일까요?


  ‘책숲(도서관)’이란 어떤 터인가 하고 그리는 노래꽃을 책집 앞에 놓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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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하루 (2023.4.28.)

― 인천 〈딴뚬꽌뚬〉



  며칠 앞서 인천으로 이야기마실을 올 적에는 미처 들르지 못 한 〈딴뚬꽌뚬〉입니다. 오늘 인천으로 다시 찾아올 일이 있기에 들를 수 있으리라 여기며 휘적휘적 걸어서 찾아갑니다. 그런데 〈딴뚬꽌뚬〉에 이르고 보니 쇠날(금요일)은 쉰다고 하는군요. 어, 그랬나? 아, 그랬구나.


  책숲마실을 다니면서 쉬는날을 잘 안 살핍니다. 여는때도 잘 안 살펴요. 그저 그곳에 책집이 있으니 선들선들 바람을 품고 햇볕을 머금으면서 걸어갑니다. 쉬는 〈딴뚬꽌뚬〉에 등짐을 내려놓습니다. 등판을 살짝 쉽니다. 바닥에 쪼그려앉아 허벅지랑 무릎을 토닥입니다.


  이른바 헛걸음을 한다면 책을 둘러볼 수 없고, 책을 장만하지 못 합니다. 그러나 헛걸음을 하기 때문에 ‘쉬는날 책집 앞에 내놓는 알림판’을 만납니다. 다리를 쉬고 등허리를 펴면서 ‘쉬는날을 알리는 판’을 이모저모 바라보면서 찰칵찰칵 담습니다. 알림판 글씨하고 그림이 정갈하구나 하고 새록새록 되새깁니다.


  스스로 책집을 언제부터 다녔는지 잘은 모르나, 여섯일곱 살 무렵에 언니 심부름으로 만화책을 사러 다녀온다든지, 어머니 심부름으로 ‘별책부록 많이 딸린 여성잡지’를 골라서 사오곤 했습니다. 언니는 귀찮아서 동생한테 시키고, 어머니는 바빠서 막내한테 시킵니다.


  책심부름은 싫지 않습니다. 다른 심부름도 싫거나 지겹다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심부름거리를 받아 신나게 마을길을 가로질러요. 어제는 이쪽 길을 달려서 심부름길을 갔으면, 오늘은 다른 쪽으로 돕니다. 이튿날에는 또다른 길을 찾아서 달려요. 걸어서 심부름을 간 적은 없다고 느껴요. 늘 달리기를 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린이는 달리기를 즐기거든요.


  어린 예닐곱 살 즈음부터 어린배움터를 거쳐 푸름배움터를 지나 20살에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둔 뒤로도 내내 ‘책집 쉬는날·쉬는때’는 안 쳐다보고 그냥 찾아갔습니다. 요새는 마실길이 좀 머니까 미리 챙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그냥 가요. 멀디먼길을 달려가거나 걸어갔는데 쉬거나 닫으면 ‘쉬거나 닫는다고 알리는 글자락’을 찰칵 담습니다. 책집을 찾아서 마을이며 골목을 거닐던 모습을 돌아보고, 시내버스를 타고 지나온 길을 짚어요.


  책숲마실은 책집만 헤아리지 않습니다. 책집을 둘러싼 마을을 함께 헤아립니다. 이 책집이 품고 싶은 마을빛을 헤아리면서 두 손에 책 몇 자락을 품는 이야기마실길이 책숲마실이라고 여깁니다. 17시에 일찍 길손집에 깃들어 바로 뻗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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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처럼 풀잎처럼 사람처럼 (2022.11.22.)

― 서울 〈콕콕콕〉



  부천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갑니다. 구로에서 엉뚱하게 내리고서 “어? 낯선데? 여기는 어디이지?” 하고 헤맵니다. 그림책집 〈콕콕콕〉에 가려고 했는데 그만 길잃은 아이가 됩니다. 넋을 차리고서 다시 전철을 타고서 오류동으로 갑니다.

  발걸음이 뿌리내리면 눈감고도 길을 찾겠지요. 석걸음 넉걸음 느슨히 이으면 서울에서도 거뜬히 길찾기를 하리라 봅니다.


  해는 우리한테 세 가지를 베풉니다. 빛(햇빛)은 ‘모습·무늬’이고, 볕(햇볕)은 ‘숨·목숨’이고, 살(햇살)은 ‘길·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사람도 서로서로 빛과 볕과 살을 나눌 테고, 풀꽃나무와 들숲바다도 이 세 가지를 늘 편다고 느껴요.


  저마다 아름다움이라는 길을 바라보는 오늘 하루를 지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거닙니다. 묵직한 등짐 탓에 천천히 걷지는 않아요. 두 아이를 안고도 척척 걷거든요. 발걸음이 닿는 둘레에 돋는 가을풀을 살펴보고, 걸어서 오가는 곳에서 올려다볼 수 있는 하늘을 헤아립니다. 이곳에 흐르는 바람결을 읽습니다.


  이제 〈콕콕콕〉에 닿습니다. 그림책 사이에서 붓길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시골내기는 종이책이 없더라도 풀잎과 씨앗과 빗방울과 이슬로 하루를 읽고 배웁니다. 서울이웃은 맨손으로 어루만질 풀잎이나 씨앗이나 빗방울이나 이슬이 무척 멀 만해요. 서울에서는 걷다가 길바닥에 쪼그려앉을 틈이 없다시피 하고, 문득 올려다보아도 하늘빛이나 별빛을 그리기 어렵습니다.


  만화책을 깊고 넓게 읽은 사람은 ‘만화책은 만화로만 담아낼 수 있는 깊고 너른 길이 있는’ 줄 알아요. 사진책을 깊고 넓게 읽은 사람은 ‘사진책은 사진으로만 옮길 수 있는 깊고 너른 숲이 있는’ 줄 알아요. 노래책(시집)을 깊고 넓게 읽은 사람은 ‘노래책은 노래(시)로만 그릴 수 있는 깊고 너른 숨이 있는’ 줄 알지요. 동화책을 깊고 넓게 읽은 사람은 ‘동화책은 동화로만 나눌 수 있는 깊고 너른 빛이 있는’ 줄 알 테고요. 그림책을 깊고 넓게 읽은 사람은 ‘그림책은 그림으로 누구나 어깨동무하는 사랑이 있는 줄 깊고 넓게 알’리라 생각해요.


  다 다른 갈래는 그저 다 다르기에 빛납니다. 어느 하나를 높이려 하면 바로 이 하나부터 깎여요. 아름다운 다 다른 책을 읽고서 눈물웃음을 지은 분이라면 ‘그림책이 누구나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을 담는 갈래’라는 대목만 느긋이 짚고서 이야기하리라 봅니다. 삶을 노래하는 사랑을 작은 책 한 자락에서 찾을 만합니다.


  걷다가 헤매니 새길을 찾고, 첫마음을 잃었으면 새마음을 키웁니다. 읽다가 덮으며 하루를 되새기고, 첫마음을 되새기며 오늘 이곳을 새록새록 돌아봅니다.


ㅅㄴㄹ


《우유에 녹아든 설탕처럼》(스리티 움리가 글·코아 르 그림/신동경 옮김, 웅진주니어, 2022.8.23.)

《소녀와 원피스》(카미유 안드로스 글·줄리 모스태드 그림/김선희 옮김, 봄의정원,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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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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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기쁘게 사랑으로 (2022.10.17.)

― 서울 〈악어책방〉



  이튿날 아침에 서울 수유 안골에 깃든 푸른배움터에서 삶빛·삶말·삶길을 놓고서 이야기꽃을 펴기로 했습니다. 미리 서울에 머물러야 하기에 시외버스를 달립니다. 오늘로 〈꽃 피는 책〉에 이태째 헛걸음입니다. 어쩌다 서울마실을 하니, 이날 마을책집 지기님이 바깥일을 본다면 못 깃들어요. 〈나무 곁에 서서〉하고 〈호수책장〉은 달날(월요일)에 쉬는군요. 〈악어책방〉은 엽니다. 이곳 이야기를 익히 들었으나 좀처럼 발길이 못 닿았는데, 네 해 만에 깃듭니다.


  서울 화곡동은 예전에는 ‘볏골(禾谷)’이었지 싶습니다. 이 언저리가 논밭이던 무렵 살던 분을 만나지는 못 했으나, 이 둘레를 한창 파헤쳐서 집을 줄줄이 올리던 즈음부터 살던 분이 들려준 바로는 ‘서울이면서 서울스럽지 않게 논이 넓었다’더군요. 이제 이곳에서 논을 떠올릴 분은 드물겠지요.


  시골도 서울도 맨땅을 디딜 만한 데는 찾기 어렵고, 들풀하고 노닐 만한 빈터도 거의 없습니다. 숲을 이루는 나무는 으레 새가 심습니다. 나무열매를 머금은 새가 훨훨 날다가 ‘씨앗을 품은 똥’을 뽀직 누어 주면, 새몸을 거친 씨앗이 새터에 드리워 새삼스레 무럭무럭 자라나며 푸르게 바뀌어요.


  나무를 심어 돌보려면, 새가 찾아들어 쉴 자리부터 마련하면 됩니다. 새가 찾아들어 노래하는 곳은 나무가 자라기에 어울립니다. 나무랑 새가 어우러지면, 이곳은 어린이가 뛰놀기에 즐거울 테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만하면, 어른과 어버이는 일터로 삼을 만하기에 넉넉하겠지요.


  〈악어책방〉을 비롯한 숱한 마을책집은 오늘날 어린이한테 고마운 쉼터이자 놀이터라고 느낍니다. 어린이가 마음 놓고 깃들어 멍하니 있을 만한 곳이 얼마나 될까요. 요새는 작은 마을쉼터에서조차 담배를 뻑뻑 무는 이들이 많습니다. 꼰대뿐 아니라 푸름이까지 마을쉼터에서 담배를 물어요.


  스스로 돌아볼 줄 안다면, 스스로 배울 수 있습니다. 낯설기에 두렵다고 여겨 버릇하지만, 낯설기에 놀랍고 기쁘게 새로 마주하면서 배울 만합니다.


  모든 아이는 다른 아이랑 똑같지 않습니다. 모든 어른은 다른 어른하고 똑같지 않아요. 일본 한자말로 가리키는 ‘장애’가 아니어도 누구나 다릅니다. 똑같은 겉옷을 입어도 속으로는 다른 마음과 숨결이 흐릅니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별빛이요, 꽃빛입니다.


  다 다른 너랑 나는 서로 다르게 살아가며 서로 다른 눈망울로 서로 다르게 책 한 자락을 집습니다. 같은 책도 서로 다르게 읽고, 다른 책을 서로 나란히 읽습니다. 즐겁게 생각을 엮고, 기쁘게 마음을 여미어, 사랑으로 말꽃을 피웁니다.


ㅅㄴㄹ


《애정결핍》(고선영, 악어책방, 2020.8.20.)

《엄마를 통해 나를 본다》(고선영, 악어책방, 2022.10.20.)

《미물일기》(진고로호, 어크로스, 2022.7.11.)

《아빠 나랑 좀만 놀자》(최민혁, 악어책방, 2022.6.17.)

《모양모양 vol.2》(안미영 엮음, 양천문화재단, 202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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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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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다 (2023.4.14.)

― 부산 〈비온후〉



  이른아침에 옆마을로 걸어가면 08시 시골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마을앞 07시 05분 버스를 타면 읍내에서 너무 오래 멀뚱히 서야 하기에 옆마을로 짐을 바리바리 지고서 걸어갑니다. 아침버스에는 할매할배뿐 아니라 푸른씨가 잔뜩 탑니다. 어르신이 잔뜩 탄 아침버스에 가득한 푸른씨는 저녁버스와 달리 얌전하고 조용합니다. 시골 푸른씨는 저녁버스를 타면 허벌나게 막말판(욕판)입니다.


  시외버스가 부산으로 달리는 동안 빗줄기가 조금씩 굵습니다. 먼지띠를 씻어내면서 봄들·봄숲·봄바다를 다독이는 상냥한 빗살입니다. ‘비오다’나 ‘눈오다’를 한 낱말로 삼아서 낱말책에 실을 수 있을까요? 말글지기(국어학자)가 낱말책에 싣나 안 싣나를 바라기 앞서, 우리 스스로 여느 자리에서 말하고 글쓸 적에는 ‘비온다·눈온다’처럼 붙여서 소리를 내지만, 막상 글로 말소리를 옮길 적에는 “비 온다·눈 온다”처럼 띕니다. ‘비옴·빛옴·꽃옴·봄옴’을 가만히 읊어 봅니다.


  부산 사상에서 버스를 내려 전철을 탑니다. 전철에서 내려 걷습니다. 마을책집 〈비온후〉에 닿습니다. 이달부터 ‘여섯 갈래 걸음꽃으로 피어나는 여행빛’을 여섯 판으로 나누어 폅니다. 오늘하고 이튿날은 ‘헌책집’이랑 ‘자전거’로 마실꽃을 누리는 걸음꽃을 들려주면서 생각꽃을 피우려고 합니다.


  “숲노래 씨는 말끝마다 ‘꽃’이란 말을 자주 붙이네요?” 하고 묻는 이웃님이 있습니다. 우리말 ‘꽃’은 ‘꼴찌·꼬마·끝·꿈’하고 말밑이 맞닿습니다. 중국말 ‘화양연화’는 어린이가 못 알아들을 테지만, 우리말 ‘꽃길’은 누구나 알아들어요. 그래서 글꽃(←문학)에 밝꽃(←과학)에 길꽃(←철학)처럼 풀어낼 수 있어요. 말꽃(←사전)으로 풀어도 어울립니다. 이야기꽃·수다꽃(←강의·특강·수업·클래스)으로 풀어내기도 합니다.


  아이 곁에 서면 누구나 느끼고 배울 만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아주 작은 무언가’를 할 적에 기쁨(선물)으로도 멍(상처)으로도 받아들여서 오래오래 마음에 품어요. 우리가 아이로 살아가던 지난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어버이 숨결을 모두 받아들여요. 어버이 말씨를 마음씨에 담아요. 그러니 이제 어른·어버이란 몸을 입은 모습으로서 ‘어른답게 철들고·어버이답게 사랑스레’ 말씨앗도 마음씨앗도 이야기씨앗도 책씨앗도 꿈씨앗도 함께 심고 가꾸려고 합니다.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이고, 생각을 기울이노라면, 어느새 깊이 들어서면서 기쁘게 만나리라 느껴요. 어렵다고 여기니 어렵고, 사랑으로 여기니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빗물을 참빗질로 여기고 마당빗질로 맞아들여 마음도 몸도 씻습니다.


ㅅㄴㄹ


《부산의 고개》(동길산, 비온후, 2022.11.25.)

《부산―포구를 걷다》(동길산, 예린원, 2022,7,15,)

《가볍게 읽는 한국어 이야기》(남길임과 일곱 사람, 경북대학교출판부, 2022.11.25.)

《연극비평지 봄 vol.19》(진선미 엮음, 봄, 2022.1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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