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부른다 창비아동문고 63
이원수 지음, 이상권 그림 / 창비 / 197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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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누릴 문학과 삶
[시를 사랑하는 시 8] 이원수, 《너를 부른다》(창작과비평사,1979)

 


- 책이름 : 너를 부른다
- 글 : 이원수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79.4.25.)
- 책값 : 8500원

 


 국민학교 다니면서 ‘동시 쓰기 숙제’가 참 힘들었습니다. 국민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분들은 ‘동시 쓰기 숙제’를 내면서 글잣수 맞추는 운율에서 어긋나면 안 될 뿐 아니라 생각힘을 뽐내어 새로운 말을 만들라고 했어요. 아이들한테 글잣수 맞추어 동시를 쓰라 하는 일이란 너무 벅찹니다. 기껏 말놀이나 말재주는 될 수 있어도, 막상 즐거이 읽고 사랑스레 나눌 동시를 쓸 수는 없어요.

 

 내 아버지는 국민학교 교사이면서 동시를 쓰셨습니다. 아버지 책꽂이에는 다른 어른들 동시책이 꽤 꽂혔어요. 학교에서 ‘동시 쓰기 숙제’가 나오면, 나는 어김없이 이 동시책을 뒤졌습니다. 학교 교사들 가운데 누가 알겠느냐고, 교과서에 실린 동시 말고는 읽은 적 없을 어른들이 아버지 책꽂이에 있는 동시책에 실린 동시 여러 가지를 이래저래 짜깁기한들 알아챌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동무들도 나처럼 동시책에서 뭔가 그럴듯한 꾸밈말을 베끼고 짜깁기해서 동시 숙제를 냅니다. 그런데, 다른 동무들은 짜깁기 동시로 곧잘 상을 받는데, 나는 이렇게 짜깁기한 동시로 상을 받지 못합니다. 그때, 내 생각은 오직 하나, ‘뭐야, 나도 저 애들하고 똑같이 짜깁기 했는데, 나만 왜 상을 못 받아? 쳇!’이었습니다.


.. 눈 얼음에 덮였던 북향 뜨락에서 / 겨울을 난 개나리 가지에 / 꽃봉오리 일제히 트는 것은 / 우리 눈을 즐겁게 하려는 / 그런 뜻에서가 아니었다. // 봄마다 우린 너를 반겨했지만 / 개나리 네 가슴엔 / 더 큰 벅찬 것이 있었던 것을……. // 그 모진 추위 / 더구나 찬 밤 얼음 속에 서서 / 너는 불 켜진 따순 방 유리창을 바라보며 / 이를 악물고 울었을 게다. / “살자, 살자, 살자!”고 / 마음속에 힘주어 다짐하면서 ..  (개나리 꽃봉오리 피는 것은)


 국민학교 다니며 국어를 배우는 때가 되면 언제나 두려웠습니다. 혀짤배기인 탓에 교사들이 바라듯 ‘교과서를 빨리 읽’으려고 하려면 으레 혀가 꼬입니다. ㄹ 글자는 소리 내기 참 힘들었습니다. 내가 가장 힘들어 한 낱말은 ‘우리’였는데, 교과서에는 툭하면 ‘우리’가 튀어나옵니다. 우리 형, 우리 나라, 우리 집, 우리 학교 …… 아아, 번호 차례나 책상 차례에 따라 내가 읽을 대목이 어디인가를 어림해서 먼저 후다닥 속으로 소리내어 읽습니다. 내가 읽을 대목에 ‘우리’가 몇 차례 나오는가 셉니다. 다른 ㄹ 들어간 글자가 몇 있나 훑습니다. 부디 틀리게 읽지 말자고 다짐하면 수없이 되읽고 욉니다.

 

 어느 날에는 서너 줄밖에 안 되는 글월에 ‘우리’가 자그마치 일곱 차례 나옵니다. 나는 이날 이 교과서 읽기가 너무나 끔찍해서 여태 잊지 못합니다. 고작 서너 줄 읽으며 그만 혀가 꼬여 더는 읽지 못했습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교사는 못 읽은 만큼 몽둥이로 때립니다. 동무들은 혀짤배기 꼬이는 소리를 들으며 깔깔 호호 웃고, 나는 어디 숨을 구석이 없어 쪼그라듭니다.

 

 내 어릴 적 국어 배우는 날은 아주 싫고 슬프며 미웠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교과서 읽기를 숙제로 내거나 시험으로 칠 때면 아주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 / 오늘은 주무셔요, 바람 없는 한낮에, / 마룻바닥에. // 코끝에 땀이 송송 / 더우신가봐. / 부채질 해드릴까. / 그러다 잠 깨실라. // 우리 엄만 언제나 일만 하는 엄만데 / 오늘 보니 참 예뻐요, 우리 엄마도. / 콧잔등에 잔주름 / 그도 예뻐요. // 부채질 가만가만 해드립니다 ..  (우리 어머니)


 국민학교 여섯 해 내내 힘들던 국어였는데, 중학교로 가니 교과서 읽기를 따로 시키지 않습니다. 교과서 읽기를 시키지 않으니 얼마나 고마우며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엉키고 설키며 꼬인 실타래가 차츰 풀립니다. 이제 비로소 교과서에 실린 시나 소설을 차근차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교과서로 읽는 시는 영 못마땅합니다. 자연을 노래하고 꿈을 그린다고 하는 시라지만, 가슴에 촉촉히 젖어들지 않습니다. 뜬구름을 잡을 뿐 아니라, 글쓴이 이름을 가리면 누가 언제 어디에서 쓴 시인가 알 길이 없습니다.

 

 나는 이런 시가 싫었습니다. 글쓴이 이름을 가리고도, 이 시를 읽으며, 아하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왜 쓴 시로구나, 하고 느낄 만해야 글이 아닌가, 시가 아닌가, 삶을 나누는 사랑이 꽃피는 문학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마땅하게 교과서 문학은 읽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안 실린 사람들 시를 찾아서 읽습니다. 도서관에 가고 책방에 갑니다. 낯선 이름 낯선 시집을 들춥니다. 내 눈길을 사로잡고 내 마음을 두들기는 글과 꿈을 찾습니다.


.. 봄비는 은실로 내리면서 / 흙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리네. / 정다운 얘기하며 땅에 스미네. // 젖은 흙에서 싹이 나오네. / 비는 위에서 내려오고 / 싹은 아래서 올라오네. // 봄비는 남몰래 흙 밑에서 / 어린 씨앗 속에 스며들었네. / 가슴 부풀려 싹을 틔웠네. // 비는 위에서 내려와도 / 싹에 얼려 한몸 되어 다시 오르네 ..  (봄비)


 문득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어린 날 교과서 읽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는 교과서 읽기가 몹시 못마땅하며 괴롭고 싫었으나, 이 끔찍한 일을 치르면서 ‘속으로 소리내어 책읽기’를 오래도록 갈고닦은 셈입니다. 내 혀가 짧지 않다면, 내 혀가 다른 여느 동무하고 비슷한 길이라 혀짤배기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게다가 내 코가 다른 여느 동무와 같다면, 코막힌 킁킁 소리가 내 말소리에 섞이지 않는다면, 이때에 내 글읽기나 책읽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내 몸이요 삶이라면 속으로 소리내어 책읽기를 하지 않았을는지 모르며, 글을 재빨리 읽어내는 버릇을 들이지 못했겠지요.

 

 동시 베끼기 숙제를 여섯 해에 걸쳐 하는 동안, 어느 동시책을 들추어 동시를 베끼든 어슷비슷한 줄 그때에는 몰랐으나, 이제 와 돌이키면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할 만합니다. 예나 이제나 적잖은 ‘동시인 어른’은 말놀이와 말재주에서 헤어나지 않습니다. 어린이를 귀염둥이로만 바라보는 동시인 어른이 너무 많습니다. 어린이 삶으로 녹아들며 어린이와 어깨동무하려는 동시인 어른이 너무 적습니다. 어린이가 맑고 밝으며 착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나날을 함께 일구려는 동시인 어른이 참 드뭅니다.

 

 파란 빛깔 하늘과 맑은 햇살과 시원한 바람은 언제 어디에서 부나요. 파란 빛깔 하늘을 노래하자면, 글로만 노래하면 되나요. 자동차 넘치며 배기가스 매캐한 이 나라에 어디 파란 빛깔 하늘이 견딜 수 있겠습니까. 팍팍하거나 고단한 살림을 이어야 하는 이웃이 있거나 내 집안이 팍팍하거나 고단하다 할 때에, 이와 같은 팍팍함과 고단함이 어디에서 비롯하고 어디에서 풀어야 하는가 하는 실타래를 살피지 않고 예쁜 말만 만들면 동시가 될 수 있겠습니까.


.. 일본 오끼나와의 어린 아이들은 / 남의 나라 뺏으려는 도둑질 전쟁 끝에 / 악마 같은 명령을 좇아 / 폭탄을 지니고 연합군의 진지로 / 죽음의 진지로 / 가엾이 뛰어들어 무참히도 죽어 갔다. // 5학년의 어린 아이도 있었단다. / 너와 같은 열두 살짜리도 있었단다. / 백성들을 죽여서까지도 / 저희들만 잘 되려는 / 나쁜 사람들의 정부 밑에 살았기 때문에 / 커 보지도 못하고 죽어 간 어린이들. // 우리는 그 흉악한 나라에서 빠져나왔지만, 독립만세 부르며 기뻐 뛰는 가운데서도 / 가엾이 죽어 간 / 오끼나와의 어린 동무들을 생각하자. // 다 같이 잘 살 줄 모르는 / 욕심장이들을 없애지 않고는 / 즐거운 나라는 될 수 없단다 ..  (오끼나와의 어린이들)


 이원수 님 동시책 《너를 부른다》(창작과비평사,1979)를 내 손으로 쥐어 처음 읽은 날은 2000년 10월 21일입니다. 나는 스물여섯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원수 님 동시책을 ‘책으로’ 처음 읽습니다. 스물여섯 해를 살기까지 국민학교에서도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이원수 동시’를 옳게 말하거나 제대로 들려주는 둘레 어른이나 동무는 없습니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나 스스로 찾을 생각을 못 합니다. 그저 ‘이원수 = 고향의 봄’으로 끝납니다. 가끔 ‘이원수 = 겨울나무’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 같은 싯말을 들려주는 어른을 만난 적 없습니다. “박꽃 핀 돌담 밑에 / 아기를 업고 / 고향 생각, 집 생각” 하는 싯말을 읊던 어른을 만나지 못합니다.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처럼 시를 노래하는 어른을 만날 수 없습니다.

 

 꼭 한 번, 《너를 부른다》를 국민학생 때에 읽었다고 하는 또래동무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녁은 1979년에 나온 동시책을 아마 1982년이나 1983년에 처음 읽었겠지요. 게다가, 이 녀석은 1984년에 나온 권정생 님 동화책 《몽실 언니》를 1984년에 읽었다고 떠올렸습니다.

 

 나는 《너를 부른다》를 2000년이 되어 비로소 읽었고, 《몽실 언니》는 1998년에 겨우 읽었습니다. 이때가 되도록 어느 누구도 나한테 이러한 책·문학·삶이 있다고 얘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 순희 사는 동네에 가면 / 개울물 소리 음악처럼 울려 오고 / 보드라운 새깃인 양 / 내 얼굴 스쳐 주는 바람. / 그 바람에 숨막힐 듯한 꽃 향기, 나무 향기. // 순희 사는 동네는 비탈진 골짜기 / 높은 산밭에서 거름을 주고 있는 순희를 보면 / 아! 그 귀여운, 일하는 모습 ..  (순희 사는 동네)


 어린이로 살아갈 때에 어린이 삶·꿈·넋을 빛내는 사랑·믿음·말을 들을 수 없다면 너무 슬픕니다. 나는 내 어린 나날 이렇게 좋은 책·문학·삶이 있었어도 만날 수 없었으니, 나이든 이제 돌이키면 슬프지만, 내 또래나 나보다 위인 형 언니 누나 들을 헤아리면, 이제라도 읽을 수 있으니 참 고마운 셈일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한글을 깨치고 나서 《너를 부른다》와 《몽실 언니》를 어린이일 때에 읽을 수 있으니까요.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문학늘 즐길 수 있으니까요. 어린이로서 어린이문학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 해가 지면 성둑에 / 부르는 소리. // 놀러 나간 아이들 / 부르는 소리. // 해가 지면 들판에 / 부르는 소리. / 들에 나간 송아지 / 부르는 소리. // 박꽃 핀 돌담 밑에 / 아기를 업고 / 고향 생각, 집 생각 / 어머니 생각―. // 부르는 소리마다 / 그립습니다. / 귀에 재앵 들리는 / 어머니 소리 ..  (부르는 소리)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문학을 즐기지 못하면 슬픕니다. 그러나,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답게 무럭무럭 뛰놀며 자랄 수 없다면 훨씬 슬픕니다. 나는 내 어린 나날, 아름다운 어린이문학을 만나거나 즐기지 못했지만, 마음껏 뛰놀며 동무들과 얼크러질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일 적에 어린이문학을 맛보지 못하면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다이 온갖 생각날개 펼치며 꿈꿀 수 없으면 더욱 안타깝습니다. 나는 내 어린 나날, 빛나는 어린이문학을 듣거나 마주하지 못했으나, 끝없이 생각날개를 펼치며 나한테 다가올 새날을 기다렸습니다.

 

 책으로 적바림한 이야기도 문학입니다. 책으로 적바림하지 않았으나 삶으로 아로새기는 이야기도 문학입니다.


..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 나뭇잎에 들어가서 초록이 되고 /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 열매 속에 들어가선 빨강이 돼요. //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 온 세상을 골고루 안아 줍니다. /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 ..  (햇볕)


 어린이가 누릴 문학과 삶은 어떠한 빛깔일까요. 어른이 누릴 문학과 삶은 어떠한 내음일까요.

 

 어린이가 누릴 문학과 삶은 어린이한테 어떠한 꿈과 노래와 춤사위일까요. 어른이 누릴 문학과 삶은 어른한테 어떠한 사랑과 살림과 땀방울일까요.

 

 오늘날,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서면 이원수 님 동시를 가르치거나 들려주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대입시험을 치르는 자리에 이원수 님 동시를 지문으로 내놓고 문제를 풀라 하지 않습니다.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이라는 자리에서 교사자격증을 따려는 아이들이 어린이책·어린이문학·어린이삶을 얼마나 누리거나 살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교사자격증을 따려는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문제에 이원수 님 동시가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찔레꽃이 햐앟게 피었다오” 하고 노래하던 때가 언제요, 이러한 노래는 누가 누구를 기다리며 부르는 말마디요 꿈인가를 묻는 시험문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감자 씨는 묵은 감자, / 칼로 썰어 심는다. / 토막토막 자른 자리 / 재를 묻혀 심는다. // 밭 가득 심고 나면 / 날 저물어 달밤. / 감자는 아픈 몸 / 흙을 덮고 자네. // 오다가 돌아 보면 / 훤한 밭골에 / 달빛이 내려와서 / 입을 맞춰 주고 있네 ..  (씨감자)


 스물여섯 살에 처음 읽은 동시책 《너를 부른다》를 서른여덟 살에 다시 읽습니다. 앞으로 열두 해를 더 살아내어 쉰 살이 되고서 《너를 부른다》를 새롭게 거듭 읽을 수 있을까 어림해 봅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곁에서 이 동시를 함께 읽을 수 있는지,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저희 짝꿍을 만나 아이를 새롭게 낳으면, 내 손주가 될 아이들하고도 《너를 부른다》를 나란히 읽을 만한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아마, 다시 읽겠지요. 아마, 또 읽겠지요. 아마, 거듭 읽겠지요.

 

 왜냐하면, 나는 내 여덟 살에도 내 열여덟 살에도 내 스물여덟 살에도 내 서른여덟 살에도 “개나리꽃 들여다보면 눈이 부시네” 하고 느끼니까요. 내 나이 마흔여덟이 된들 개나리꽃 들여다볼 때에 눈이 안 부시리라 느끼지 않아요. 쉰여덟이나 예순여덟이 되더라도 개나리꽃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눈이 부시다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 남 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 // 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 /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 하얀 찔레꽃 따먹었다오. /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먹었다오 ..  (찔레꽃)


 날마다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래합니다. 빨래를 마치면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줄줄이 넙니다. 빨래들은 바람 불면 춤을 춥니다. 살랑바람 불면 살랑춤 춥니다. 싱싱바람 불면 싱싱춤 춥니다. 산들바람 불면 산들춤 춰요. 된바람 불면 된춤을 추기 때문에, 이때에는 빨래를 걷어 집안에 옷걸이에 꿰어 넙니다.

 

 날마다 새롭게 크는 아이들 바라보며 날마다 손바닥 꾸덕살 두툼해지는 내 손을 바라봅니다. 내 손을 들여다보면 내 어머니와 아버지 손은 이 나이 무렵에 어떠했을까 하고 그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쯤 된다면, 이 아이들 손은 어떻게 달라질까 하고 헤아립니다.

 

 흐르는 삶입니다. 자라는 사랑입니다. 피어나는 삶입니다. 찬찬히 크는 사랑입니다.

 

 싯말 하나에는 씨앗 하나 깃듭니다. 씨앗 하나에는 이야기 한 자락 감돕니다. 이야기 한 자락에는 삶과 꿈과 땀이 골고루 어우러집니다.

 

 살아가며 쓰는 시입니다. 생각하며 쓰는 시입니다. 살림하며 쓰는 시입니다.

 

 살아가지 않고 머리만 굴려서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생각하지 않고 꼼수를 부려서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살림하지 않고 남을 들볶거나 부려서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 개나리꽃 들여다보면 눈이 부시네. / 노란 빛이 햇볕처럼 눈이 부시네. // 잔등이 후꾼후꾼, 땀이 배인다. / 아가 아가 내려라, 꽃 따주께. // 아빠가 가실 적엔 눈이 왔는데 / 보국대, 보국대, 언제 마치나. // 오늘은 오시는가 기다리면서 / 정거장 울타리의 꽃만 꺾었다 ..  (개나리꽃)


 아이들하고 날마다 즐겁게 노래하고 싶으니 동시를 읽습니다. 동시를 하나하나 알뜰히 읽으면서 나 또한 동시를 쓰자고 생각합니다. 아이들하고 예쁘게 주고받는 말마디가 천천히 글꽃이 됩니다. 내가 들려주는 말씨앗이 아이들 가슴에 젖어들어 씩씩하게 자라면 말꽃이 핍니다. 이 말꽃을 가만히 되새기면 시꽃으로 거듭납니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고갯마루 넘으며 “이야, 저기 멧봉우리에 구름이 앉아서 쉬는구나.”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고갯마루 낑낑대며 넘다 보니, 나도 다리쉼을 하고 싶은 나머지, 판판한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멧봉우리 구름이 나처럼 다리쉼 하는 동무처럼 보였어요. 깜깜한 밤하늘 올려다보고 시골길을 거닐 때 아이가 “구름이 깜깜하니까 달이 하얗게 비추네.” 하는 말을 문득 내뱉습니다. 등불 없는 시골길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에는 밝게 빛나는 별이랑 달이 있으니까요.

 

 앞으로 봄이 찾아와 아이들과 밭뙈기에 씨앗을 심으면, 씨앗이 자라 싹이 돋으면, 싹이 돋고 줄기가 오르며 잎을 틔운다면, 푸른 줄기와 잎 사이사이 꽃봉오리 핀다면, 이때에도 어버이와 아이는 저마다 달리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싯말을 마음껏 터뜨리겠지요. 싯말은 삶말이고, 삶말은 싯말입니다.

 

 함께 누리는 삶이기에 함께 쓰는 시 아닌가 생각합니다. 함께 즐기는 삶이기에 함께 읽는 책 아니랴 생각합니다. 함께 꾸리는 삶이기에 함께 먹는 밥이요, 함께 사랑하는 삶이기에 함께 지내는 집이지 싶어요.

 

 나 스스로 살아가고픈 대로 내 고향마을을 삼습니다. 꼭 내가 태어난 데가 내 고향이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내 꿈과 사랑과 믿음을 고루 펼치면서 즐거운 자리가 내 고향이라고 느낍니다.

 

 나는 커다란 도시가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멧골자락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지구별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드넓은 하느님 품자락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깊은 바닷님 가슴속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따사로운 햇님 살결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 스스로 예쁘게 고향마을로 삼으며 뿌리내리는 터에서 삶꽃을 피우는 동안 시꽃을 피웁니다. 내가 아이들과 시꽃을 피울 수 있을 때에 내 삶꽃이 곱게 피어납니다.


.. 바람 불면 빨래들이 춤을 춘다. / 어머니 파랑 치마 팔랑팔랑 / 쬐꼬만 내 치마도 팔랑팔랑. // 빨랫줄에 높다라니 매달려서 / 무섭지도 않은가 봐, 내 앞치마. // 바람 불면 빨래들이 춤을 춘다. / 빨래 따라 꽃이파리 팔랑팔랑 / 꽃잎 따라 노랑나비 팔랑팔랑 / 모두 같이 춤춘다, 팔랑팔랑 ..  (빨래)


 1911년에 태어나 1981년에 숨을 거둔 이원수 님은 조금이라도 따사롭거나 너그러운 한때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슬픈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어리고 푸르며 젊은 나날을 보냅니다. 해방 뒤로는 숱한 군화발과 고달픈 새마을운동에 시달립니다. “내 소년 시절이 억압과 곤궁의 시절이라면 해방 이후는 자유롭고 복된 세상이 됨직도 하지만 그렇지가 못했고, 내 시도 역시 즐거운 노래로 돌아서지는 못했다(197∼198쪽).”는 이야기처럼, 이원수 님은 즐거이 부르는 싯말을 일구기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원수 님 동시를 읽다 보면, 어느 한 대목 즐겁지 않은 싯말이 없어요. 울면서 웃고 슬프면서 기쁘다고 생각하는 꿈이었기 때문일까요. 동시집 이름이기도 한 시 〈너를 부른다〉는 1946년에 썼다고 해요. 동시 〈너를 부른다〉 첫머리는 “나뭇잎이 손짓하며 / 너를 부른다. / 운동장 느티나무 / 가지마다 푸른 잎새 / 바람에 한들한들 / 너를 부른다.”로 열고, 끝마디를 “순희야 / 순희야. // 양담배 양사탕 / 상자에 담아 들고 / 학교에 안 나오고 / 행길로만 도느냐. / 우리도 목메이며 / 너를 부른다.” 하고 맺습니다.

 

 2010년대에도 한길로만 도는 ‘너희’들이, ‘순희’들이 있습니다. 남녘땅에도 있고 북녘땅에도 있어요. 무시무시한 무기를 뽐내는 미국에도 가녀린 너희들과 순희들이 있어요. 무시무시한 무기 때문에 먼지처럼 죽고 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도 가녀린 너희들과 순희들이 있어요. (4345.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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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삶의 시선 17
송경동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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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도 힘들고 시읽기도 힘겹고
[시를 노래하는 시 12] 송경동, 《꿀잠》

 


- 책이름 : 꿀잠
- 글 : 송경동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6.3.30.)
- 책값 : 8000원

 


 열흘 남짓 입었는지 보름쯤 입었는지 헷갈리는 두툼한 웃옷을 벗은 엊저녁, 새 웃옷을 꺼내 입지 않고 잠들었는데, 반소매 웃통으로 이불 세 겹 덮어쓰고 자다가 내 옆에서 꼬물거리며 이불을 걷어차는 아이한테 내 이불 씌우다 보니 어느새 내 몸을 가리는 이불이 없더니, 그만 밤새 찬바람 많이 마시며 고단한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둘째 똥기저귀를 두 벌 빨래하고 나서는 도무지 몸이 버티지 못하겠구나 싶어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당근을 씻어서 알맞게 썬 다음 물을 짭니다. 이럴 때에 곁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거나 함께 놀아야 일이 수월한데, 꿈결인지 잠결인지 아스라한 소리만 듣고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눈을 감고 허리를 폅니다.

 

 두 시간을 들뜬 몸으로 뒤척이다가 일어납니다. 두툼한 겉옷을 입습니다. 아이 둘은 어머니 곁에서 알짱알짱 붙어서 칭얼거립니다. 아이 어머니는 두 아이 칭얼거림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아침과 낮 먹을거리를 마련합니다. 거꾸로, 아이 어머니가 드러누운 때, 내가 두 아이 먹을거리를 마련하면서 집안을 쓸고닦는 한편,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 빨래하는 몫을 기쁘며 홀가분하게 짊어질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짊어지기야 하지요. 날마다 이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다섯 해째. 그렇지만, 활짝 웃는 얼굴로, 싱그러이 노래하는 목소리로, 이 집일을 거느리면서 아이들하고 사랑꽃을 나누었을까 생각하면, 낯이 화끈거립니다.


.. 손톱 밑에 검은 때가 끼어 있던 손 / 괭이가 박혀 있던 손 ..  (손)


 아버지가 깬 뒤 둘째 아이가 셋째 똥기저귀를 내놓습니다. 둘째를 살짝 안고 한동안 어르다가는 똥기저귀를 빨래합니다. 똥기저귀랑 낮에 눈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는 사이, 둘째 아이는 넷째 똥기저귀를 내놓습니다. 아이 밑을 씻기고 똥기저귀를 새로 빨래하는 김에 오줌기저귀 두 장을 더 빨래하고, 옆지기 두툼한 겉옷 한 벌 나란히 빨래합니다. 후줄근하게 빨래를 마치고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넙니다. 새벽에 빨래해서 널어 다 마른 옷가지와 기저귀를 걷습니다. 걷은 옷가지는 갤 틈이 없습니다. 똥을 두 차례 더 눈 둘째는 틀림없이 졸릴 테니까요. 옆지기가 둘째를 어르고 나서 먹을거리 마련하기를 더 하는 동안, 아버지는 둘째를 품에 안습니다. 둘째 가슴을 톡톡 다독이고 노래를 부릅니다. 둘째는 눈을 뜨고 감다 되풀이하다가 스르르 감습니다. 옳지 옳지 이제 나이 제법 먹었으니 꼭 어머니 등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곱게 잘 수 있겠지.


.. 우린 흙 묻은 안전화를 끌며 계단을 서성이다 / 후문을 나서 다시 새벽 작업장으로 간다 ..  (저 하늘 위에 눈물샘자리)


 한창 뛰놀며 이른아침부터 늦은저녁까지 같이 놀자고 부르는 첫째 아이를 한동안 무릎에 누여, 얘, 얘, 아버지는 좀 쉬자, 좀 쉬다가 놀자, 너도 책 좀 읽어 주렴, 아버지도 책 읽으며 살짝 쉬자꾸나, 다리도 쉬고 허리도 쉬며 등도 팔도 쉬자꾸나, 이야기하며 시집을 들춥니다. 만화책도 읽고 사진책도 읽고 그림책도 읽습니다. 아이한테 그림책 글을 읽히며 함께 들추기도 하지만, 이제 아이는 그림책 그림을 혼자 말끄러미 바라보기를 조금 더 좋아합니다. 굳이 어떤 말을 살붙이며 들려주지 않더라도 아이 스스로 생각힘을 북돋웁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히며 때때로 생각합니다. 내 어버이는 나한테 그림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만화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동화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동시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나 어릴 적 살던 집에 책이 아예 없지 않았습니다. 빨간빛 딱따구리 100권 넘는 손바닥책이 있기도 했습니다. 돌이키면, 내 어버이 두 분부터 어린 나날 책을 읽으며 자라지 않았겠구나 싶습니다. 내 어버이 두 분은 도시와 시골에서 어린 나날을 바쁘게 부대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종이로 된 책이 없이 삶을 이었고, 종이로 된 책에 아로새기는 이야기가 없이 둘레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 사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 그 술집이 있던 닭장 골목 / 그 골목 밀고 이제는 멋진 아파트가 들어선다는데 / 나는 왜 이리 슬픈가. 집을 잃은 아이처럼 ..  (마지막 술집)


 나는 일곱 살 적 무얼 하며 한 해를 보냈는지 거의 떠올리지 못합니다. 하루나 이틀쯤 가까스로 한두 대목 떠올립니다. 나는 여섯 살 적이나 다섯 살 적이나 네 살 적이나 세 살 적을 거의 하루조차, 한 시간조차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런 내 넋으로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곰곰이 헤아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한 살일 적에 나는 한 살 나이에 내 어버이하고 어떤 나날을 보냈을까 하고. 우리 아이들이 두 살이고 세 살일 때에 나는 두 살 세 살 나이에 내 어버이하고 어느 곳에서 어떠한 보금자리를 누리며 살았을까 하고.

 

 우리 집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나서 저희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 적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우리 집 아이들은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 저희 아이들을 낳아 돌보며 무럭무럭 자라는 예쁜 모습 바라보면서 저희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모습을 되새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먼 뒷날 되새길 저희 어버이 모습, 곧 오늘 내 모습은 어떠한 이야기 나누는 사람일까요.


.. 하고많은 길 중에 내가 걸은 노동자의 길 ..  (길)


 아이와 살아가는 숱한 어버이들이 ‘아이들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더없이 예쁘며 사랑스럽다 이야기합니다. 나도 내 아이들 새근새근 잠드는 모습이 그지없이 예쁘며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이 아이들 자는 얼굴 바라보며 웃음을 흘리고 눈물을 짓습니다. 아이들 살몃 감은 두 눈을 바라보며 시가 절로 튀어나옵니다. 아이들 보드라운 볼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시를 절로 노래합니다.

 

 문득, 거꾸로, 내가 이 아이들만 하던 어린 나날, 내 어버이가 나를 재우면서 내 어버이도 나를 예쁘며 사랑스럽다 여겼을까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그무렵 나는 내 어버이를 보며 나를 재우는 어버이 손길이 언제나 포근하면서 따사롭구나 하고 느꼈는지 궁금해요. 왜냐하면, 예쁘며 사랑스레 잠드는 아이들을 무릎에 누여 토닥토닥 하면서 내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과 말길 모두 보드라우면서 따사롭게 바뀌니까요. 잠든 아이처럼, 재우는 어버이가 예쁘리라 생각해요. 잠든 아이처럼, 재우는 어버이가 사랑스럽구나 생각해요.


.. 김씨가 H빔에서 떨어져 죽고 나서야 / 나는 깜짝 놀랐다 / 고작 시급 3천 원에 목메던 그의 몸값이 / 1억이 넘는다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  (뒷빽)


 송경동 님 시집 《꿀잠》(삶이보이는창,2006)을 읽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송경동 님이 틈틈이 적바림한 글줄을 그러모은 《꿀잠》이라는 시집이 태어나기까지, 참말 시쓰기가 힘들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팍팍한 울타리와 맞서면서, 힘들게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을 고단하게 내모는 걸림돌과 부딪히면서, 참으로 힘들게 시를 썼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힘들게 쓴 시를 읽는 사람 또한 힘겹습니다. 아이들과 하루 내내 복닥이며 집안일을 하고 집살림을 꾸리는 어버이도 참으로 버겁습니다.

 

 시를 쓰기 힘든 이 나라이기 때문에, 시를 읽는 사람 또한 힘겨울밖에 없는 이 나라일까요. 시를 쓰면서 힘들게 이맛살 찡그리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슬픈 이 나라인 탓에, 시를 읽는 사람까지 뻑적지근해지는 등허리를 토닥이면서 겨우겨우 한 쪽 두 쪽 읽다가 이내 덮고는 똥기저귀를 빨고 오줌기저귀를 갈며 밥을 차리고 비질을 해야 할까요.


.. 세계는 학살을 하며 / 그게 평화라 하고 / 기생을 자유라 하고 / 굴종을 안녕이라 가르치기에 / 오늘부터는 없는 말 / 태어나지 않은 말들만 / 믿기로 했다 ..  (102쪽)


 어머니들은 하루하루 어떤 삶을 누리면서 아이들을 사랑했을까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어머니들은 하루하루 어떤 꿈을 심으면서 어떤 사랑을 누릴까요.

 

 어머니를 옆지기로 둔 아버지들은 날마다 어떤 일과 놀이를 즐기면서 아이들을 마주할까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아버지들은, 어머니를 옆지기로 둔 아버지들은 날마다 어떤 빛을 가슴에 묻으면서 어떤 사랑을 서로서로 빛낼까요.

 

 남녀평등이고 여남평등이고 성평등이고를 떠나, 2010년대를 넘어서는 이즈음에도 집안일을 여자가 할 때에는 아뭇소리 없습니다. 2020년대를 곧 맞이할 텐데, 2030년대나 2040년대가 되더라도 집안일을 남자가 할 때에는 참 얄궂다는 눈길로 바라봅니다. 혼인을 해서 며느리가 되면 시댁 집안일과 제사까지 맡아야 합니다. 혼인을 해서 사위가 되면 친정마실을 하더라도 그저 손을 놓고 책상다리로 밥과 술과 고기를 받아먹기만 합니다.

 

 삶이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이며 꿈이란 무엇일까요.


.. 농사는 안 허는디요, 소작 허는디요 / 소작이 농사지 뭐여 웃던 사람들도 / 소작이 무신 농사여 하던 사람들도 조용해졌다 / 아낙의 얼굴에 핀 더운 열꽃 ..  (바닷가 야유회)


 노동자 길을 걸어간 송경동 님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제는 벌교하고 한참 멀디먼 서울바닥에서 노동자와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어갑니다. 거꾸로, 서울에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노동자 길을 걷다가, 전남 보성 벌교로 흙일꾼 길을 걷는다든지, 흙일꾼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을 사람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두들 서울로 가고, 또 서울로 몰리며, 또 서울에서 으싸으싸 하면서 나라를 갈아엎으려 하는지 궁금해요.

 

 바깥에 볼일이 있어 전남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벌교읍을 지날 때면, 벌교시장 그득히 늘어선 꼬막장사 할매와 아지매를 바라보곤 합니다. 참말 사람 많고 저잣거리 넓구나 싶습니다. 벌교라 해 봤자 그리 넓지 않은 터에 넓지 않은 갯벌인데, 이 조그마한 벌교 갯벌에서 온 나라 꼬막구이 꼬막무침을 마련하는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곤 합니다.

 

 하기는. 한국에서 거두는 쌀이 남아돈대서, 시골마을에서 ‘논을 묵히’면 나라에서 돈을 줍니다(직불보상금).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거의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구는 논밭으로도 ‘쌀이 남아돈다’지만 나라밖에서 새로운 곡식을 사들이고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며 자동차와 손전화를 나라밖으로 팝니다.

 

 노동자는 자동차를 구워먹느라 힘들까요. 노동자는 2012년 1월부터 단돈 1만 원이 된 숫젖소 고기를 구워먹느라 버거울까요. 이 나라 노동자들이 설이나 한가위 때처럼, 모두들 일손을 놓고 고향마을 시골로 가서 두 번 다시 서울로든 인천이로든 대구로든 부산으로든 가지 말고 흙하고 어깨동무하고 살아간다면, 파업 아닌 파업으로 온 나라 크고작은 도시를 꼼짝달싹없이 멈추도록 한다면, 군인도 경찰도 공무원도 몽땅 시골마을 고향집으로 돌아가서 텃밭과 무논하고 소꿉놀이를 하면서 온 나라 공공기관과 청와대와 언론사 모조리 멈추도록 한다면, 깊은 밤에도 서울에서 올려다보는 까만 하늘에 뭇별이 반짝반짝 빛나겠지요.

 

 별을 보기 힘드니 시를 쓰기 힘듭니다. 별을 보기 힘겨우니 시를 읽기 힘겹습니다. (4345.1.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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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1-29 22:21   좋아요 0 | URL
충격적인 사건이 아닌 다음에는 아이 때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요. 철 들기 전의 세월들은 그저 부모님의 몫으로 고스란히 묻혀져 버리는 셈이지요. 사랑의 눈으로 찰칵 찰칵 찍힌 자식들의 어린 시절 사진들은 부모님 가슴팍에 새겨져 있겠지요.
저는...드문드문 네 살 때 기억과 여섯 살 때 기억이 나요. 네 살 땐 사랑하는 내 막내동생이 죽을 뻔했구요.그래서 거짓말처럼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지요. 아무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날마다 무탈하고 행복하게 잘 자랐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똥 싸고 오줌 싸며 아버지가 어르고 어머니가 젖 먹이고 그 품안에서 소르르 꽃잠 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송경동 시인요, 저랑 동갑 시인인데....읽으면 가슴이 참 아파요)

숲노래 2012-01-29 22: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즐거이 살았기에 떠올리지 못하기도 하는군요.
그래도, 즐거이 살았기에 떠올릴 수 있으면 더 좋겠어요.

송경동 님이 하루하루 더 즐거이 살아가면서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좋은 꿈을 꿀 수 있기를,
그러니까, 이 나라가 참으로 아름다우며 빛나는
좋은 나라로 차근차근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요..
 
검지에 핀 꽃 삶의 시선 14
조혜영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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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이 시를 써야 아름답다
― 조혜영, 《검지에 핀 꽃》

 


 - 책이름 : 검지에 핀 꽃
 - 글쓴이 : 조혜영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5.1.5)
 - 책값 : 5000원

 


 문학은 작품으로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이름난 이가 새롭게 펴낸 글이라 하더라도, 이녁이 쓴 글에 힘이 빠지거나 맥알이가 없거나 풋풋함과 튼튼함이 사라지면, 이러한 글은 읽거나 읊을 맛이 사라져요. 글재주는 남고 울림은 사라진다고 하겠습니다.


.. 노동과 시를 바라보는 눈에도 /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게야 / 노동현장에서 일하며 줄곧 / 시를 써온 한 시인에게 / 유명한 평론가에 교수는 / 일하면서 시 쓰기는 /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며 / 시 쓰는 일과 노동자의 삶은 /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고 감탄 연발이다 ..  (편견-노동시)


 나는 이름값으로 쓰는 시를 읽지 못합니다. 나는 손재주로 쓴 시를 읽지 못합니다. 나는 목소리로 외치는 시를 읽지 못합니다. 나는 이름표나 딱지를 붙인 시를 읽지 못합니다. 나는 돈을 버는 시를 읽지 못합니다.

 

 어쩌면 나는 시를 읽는 생각이 좀 한쪽으로 치우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시를 읽으며 내 생각이 어느 한골로 치우쳤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나는 내 삶으로 시를 읽을 뿐이니까요. 나는 내가 일구는 삶에 비추어 누군가 쓴 시를 읽으니까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러 가지 치우친 생각(편견)이 있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나 장애인이나 여성이나 학력 낮은 사람이나 못생긴 사람을 치우친 눈길로 바라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곰곰이 따지면, 하나하나 돌아보면, 이러한 눈길이나 이러한 생각은 딱히 치우쳤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꾸리는 삶에 따라 바라보는 눈길일 뿐이거든요.

 

 성차별을 하는 사람은 입으로만 성차별을 하지 않아요. 삶으로 성차별을 합니다. 이주노동자를 깔보는 사람은 입으로만 이주노동자를 깔보지 않아요. 이녁 삶으로 이주노동자를 깔봐요. 장애인 권리나 여성 권리를 생각하거나 아끼거나 돌보는 사람은 목소리로만 아끼거나 돌보지 않아요. 삶으로 예쁘게 얼싸안거나 어깨동무하면서 아끼거나 돌봐요.

 

 다시금 곰곰이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문학을 옳게 못 바라보지 않나요. 사람들은 문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잊거나 잃지 않나요.

 

 문학은 글 잘 쓰는 사람이 써야 하지 않아요. 시나 소설은 글쓸 겨를이 많은 사람이 써야 하지 않아요. 전문가라든지, 대학교수라든지, 평론가라든지, 글재주꾼이 써야 하는 문학이 아니에요. 일하는 사람이 일하는 삶을 담는 글이면 돼요. 살림하는 아줌마가 살림하는 나날을 글로 펼치면 돼요. 흙을 만지는 일꾼은 시골자락 흙삶을 글로 보여주면 돼요. 기름밥 먹는 일꾼은 기름밥 먹는 나날을 고스란히 글로 꽃피우면 돼요.


.. 요즘 세상에 / 결핵이 무슨 병이냐고 / 보건소에 가 약이나 갖다 먹으라는데 / 나는 그 결핵에 걸렸습니다 ..  (흔적)


 말하듯이, 살아가듯이, 일하듯이 쓰는 시입니다. 구김살이 있을 까닭도 없지만 꾸미거나 감추거나 보탤 까닭이 없이 쓰는 시입니다.

 

 신경림 시인은 1970년대에 첫 시집을 내놓을 때에 “못난 놈은 못난 놈끼리 논다” 하고 노래했던가요? 그래, 못난 놈은 못난 놈대로 못난 동무하고 놀면 돼요. 가난한 놈은 가난한 놈대로 가난한 동무하고 놀면 돼요. 사랑을 찾는 이는 사랑을 찾는 이대로 사랑을 찾는 동무랑 놀면 돼요. 아름다운 나날 꿈꾸는 이는 아름다운 나날 꿈꾸는 이대로 아름다운 나날 꿈꾸는 동무랑 놀면 돼요.

 

 착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착하게 살아가고픈 이와 동무를 삼으며 어울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나는 사랑하며 살고픈 이를 벗으로 여겨 예쁘게 어울리고 싶습니다.

 

 좋은 꿈으로 좋은 삶 일구고 싶어요. 좋은 꿈으로 좋은 삶 일구는 시를 읽고 싶어요. 좋은 꿈으로 좋은 삶 일구는 시를 읽으며 내 보금자리를 고이 보듬고 싶어요.


.. 공공기관에 와서 공공근로를 하면 / 공공연하게 비웃음 받을 수 있지 // 할머니는 너무 늙었어 / 노인네들은 집에 가서 애나 보지 / 젊은애가 아직 워드도 할 줄 모르고 / 재주가 없으면 이쁘기나 할 것이지 / 차 심부름이나 시켜야지 뭐 // 공공근로 주제에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네 / 사내자식이 대학까지 나와 가지고 / 에-라이 돈이 아깝다 / 공무원 월급 깎더니 / 필요도 없는 공공근로 보내서 골칫거리야 / 뭐 시켜먹을 일이 있어야지 ..  (공공근로 1)


 경상도 안동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권정생 님은 으레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공책에 적으면, 그게 바로 시인데, 어머니들이 그걸 모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이 얘기를 권정생 할아버지를 뵐 적마다 들었고, 권정생 할아버지가 쓴 글에서 곧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권정생 할아버지를 곁에서 모셨거나 가까이 섬겼다고 하는 분들 가운데 당신 아이들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적바림하면서 시꽃을 피운다든지, 당신 어머니나 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찬찬히 적바림하면서 시열매를 맺는 모습을 아직 못 봅니다.

 

 아, 그러고 보면, 참말 그러고 보면, 나한테는 내 아이가 있지만, 나는 내 어머니한테는 아이예요. 나는 내 어머니 앞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이야기가 곧장 시꽃이 되는 셈이에요. 내가 내 어머니하고 주고받는 말마디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싯말이에요. 내가 내 아버지하고 나누는 말마디는 고스란히 말꽃이요 말열매요 시꽃이며 시열매예요.

 

 그러니까, 공공근로 일자리 하나 얻어 공공기관에 드나들면서 그곳 공무원들이 뇌까리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받아적을 때에도, 이러한 말마디는 고스란히 시가 돼요. 삶이 말이고, 말이 삶이에요. 삶이 시요, 시가 삶이에요.


.. 공공기관의 직원들은 / 그들의 자질구레한 업무를 하나 둘 / 공공근로에게 공공근로로 시킨다 / 커피 타기, 해묵은 서류정리, 지하실 쓰레기 분리 / 국장님 담배심부름이 시간을 채워간다 // 공공기관의 직원들은 / 공공근로가 없으면 / 하루 종일 허둥대고 몸도 따라 바쁘고 / 공공근로를 기다리며 손부터 마비되어 간다 / 공공근로를 파견하지 않을 때는 정부를 탓하고 /무능한 정부 탓하며 시간을 보낸다 ..  (공공근로 3)


 이 땅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를 써야 맞아요. 이 땅 모든 일꾼들, 이를테면 흙일꾼과 기름밥 일꾼을 비롯한 모든 일꾼들은 글을 써야 옳아요. 내가 일하면서 보고 듣고 겪고 부대낀 이야기를 꾸밈없이 쓰면 돼요. ‘시적 자아’라든지 ‘모티브’라든지 ‘시적 구성’이라든지 ‘언어기교’ 따위는 몰라도 돼요. 아니, 이런 겉치레를 끼워붙이면 시하고 동떨어져요. 이런 자질구레한 껍데기를 들씌우면 글이 되지 않아요.

 

 부풀리는 글은 부풀린 풍선이지, 시라 할 수 없어요. 감추는 글은 감춘 고쟁이가 되지, 글이라 할 수 없어요.

 

 시금털털하면 시금털털한 맛이 나는 시예요. 수수하면 수수한 멋이 나는 시예요. 투박하면 투박한 아름다움이 빛나는 시예요. 맛깔스러우면 맛깔스러운 이야기 살가운 시예요.

 

 따분한 삶을 그리는 따분한 시가 있겠지요. 오순도순 웃음꽃 피는 삶을 그리는 시가 있을 테지요. 아프거나 슬픈 삶을 그리는 시가 있어요. 즐겁거나 가슴 벅차는 삶을 그리는 시가 있어요.

 

 애써 머리로 지어야 시가 되지 않아요. 억지로 글을 짜맞추어야 시가 되지 않아요.

 

 운율을 살펴야 시가 되지 않아요. 연과 줄을 나누어야 시가 되지 않아요.

 

 글자를 알맞게 줄여야 시가 되나요. 길이가 짧아야 시가 되나요.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나와야 시를 쓸 수 있나요. 누군가한테서 문학수업을 받거나 문학강의를 들어야 시를 쓸 만한가요.

 

 내 삶이 있을 때에 시를 써요. 내 삶을 누리면서 시를 써요. 내 삶을 사랑하면서 시를 써요. 내 삶을 좋아하고 즐기는 나날을 하루하루 곱새기면서 시를 써요.

 

 내 삶을 돌아보고 내 마음과 생각을 찬찬히 되짚으면서 시를 씁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길과 꿈과 일을 돌아보면서 시를 씁니다. 내 사랑을 다스리고 내 이야기를 갈무리하면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어요.


.. 한때 노동운동을 하다가 / 한때 학생운동의 기수이다가 / 한때 혁명전선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다가 // 지금 어디서 다 무얼 할까 // 누구는 정계에 진출해 꿈을 펼치고 / 누구는 지자체에 출마해 시의원 되고 / 누구는 벤처하고 누구는 판사 되고 / 하다못해 대학시간강사나 고액과외 선생이라도 하는데 / 누구는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되어 / 젊은날 청춘시절 무용담 섞어 큰소리라도 쳐보는데 // 너는 뭐냐! ..  (포물선-병렬이 3)


 조혜영 님 시집 《검지에 핀 꽃》(삶이보이는창,2005)을 읽습니다. 검지에 꽃이 피었다는 시를 읽습니다.

 

 명월리 응기,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둘레에 있는 수많은 이웃, 회사일과 집회로 고단한 남편 들을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쓴 시를 읽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살아갑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나대로 살아갑니다. 다들 무언가를 생각하고 어떤 삶을 꾸립니다.

 

 “당신이 왜 총을 맞고 포탄에 쫓겨 / 산천을 떠돌아야 했는지도 모른 채 / 평생을 혼자 짊어지고 온 / 분단의 그 고통 잊고 / 오래오래 사셔야 할 텐데(어떤 명예회복)” 하는 노래에는 조혜영 님 어떤 삶 한 자락 담았겠지요. “병원 문 앞에 도착하면 / 나도 모르게 부산을 떤다 / 어제처럼 대답 없는 엄마가 / 아기천사처럼 누워 있다 / 노동을 잃은 살결이 너무 뽀얗다(증후군)” 하는 노래에는 조혜영 님 또다른 어떤 삶 두 자락 담았겠지요.

 

 조혜영 님을 낳아 기른 어버이는 어떠한 나날 어떠한 삶을 누렸을까요. 나를 낳아 기른 어버이는 어떠한 꿈 어떠한 사랑을 빛냈을까요.

 

 쓸쓸히 떠나는 어버이인가요. 고단히 살아온 어버이인가요. 조혜영 님 어버이는 나한테 어떤 이웃일까요. 내 어버이는 조혜영 님한테 어떤 이웃일까요.


.. 아직도 밤새워 회의하는 조직이 있어? / 문학회가 글은 뒷전이고 / 매일 회의다 사업이다 매달리니 발전이 없지 / 어디 그래 가지고 문단에서 알아 주기나 한대? / 그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노동자 문학을? / 얼마 전 한 선배가 술김에 한 말이 / 불현듯 떠올랐지만 / 찬바람에 오줌 털 듯 진저리치며 / 다시 집으로 간다 ..  (단잠)


 발전이 없으면 어떻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면 어떱니까. 누가 알아주지 못하면 어떻고 밤새워 모임을 하면 어때요. 글 하나 제대로 써내지 못하면 어떻고, 책 하나 번듯하게 못 내면 어떻겠습니까.

 

 서로 부대끼며 착하게 살아왔어요. 서로 복닥이며 예쁘게 살아가겠지요. 어제도 오늘도 글피도 이냥저냥 부대끼며 착하게 살아가면 되는걸요. 저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땀흘려 일하면 넉넉한걸요. 없는 틈을 쪼개든, 있는 겨를을 나누든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잘난 손놀림으로 글을 빛내든, 어수룩한 손재주로 글을 매만지든, 하나도 대단하지 않아요. 그저 내 삶과 내 넋과 내 꿈을 시라는 글줄에 실을 수 있으면 즐거워요.

 

 사람들 앞에 널리 내보이려고 시를 써도 돼요. 혼자 용두질하듯 혼자 읽고 혼자 웃거나 울어도 돼요. 답답하니까 갑갑하니까 슬프니까 괴로우니까, 이 가슴을 뻥 뚫고 싶어 시를 써요. 즐겁거나 기쁘거나 보람차기에 이 모든 이야기를 널리 나누고 싶어 시를 써요.

 

 할 말이 많아, 온갖 말을 시로 써요. 못할 말이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털어놓듯 시를 써요. 옆지기한테 이야기하듯 시를 써요. 거울을 보며 나랑 이야기하듯 시를 써요.

 

 이렇게 쓴 시는 어디 ‘베스트셀러 목록’이나 ‘중·고등학교 권장도서 목록’이나 ‘대학생 교양도서 목록’에 끼지는 못하겠지요. 이름난 평론가들 글도마에 오르지 못하겠지요. 이름난 문학잡지 서평에서 다루지도 않겠지요. 중앙일간지라는 ‘서울’신문이라든지, 서울하고 멀찍하게 떨어진 시골신문이라든지, 책소개 한 줄로라도 이야기되지 못하겠지요.

 

 시집 《검지에 핀 꽃》을 조용히 읽고 조용히 덮습니다. 나는 얄팍한 사랑시를 그리 안 좋아하기에 《검지에 핀 꽃》을 조용히 읽습니다. 나는 귀청 따가온 노동시를 그닥 안 좋아하기에 《검지에 핀 꽃》을 조용히 읽습니다. 나는 돈내음 그윽한 베스트셀러 시집을 썩 안 좋아하기에 《검지에 핀 꽃》을 조용히 읽습니다. 나는 평론가들 추천이나 비평에 따라 시집을 읽지 않으니 《검지에 핀 꽃》을 조용히 읽습니다.

 

 마음을 담고 삶을 노래하며 나과 이웃을 사랑하는 수수하고 투박한 시가 좋습니다. 꾸밈과 거짓과 부풀림과 치우침하고는 처음부터 사귀지 않는 정갈한 시가 사랑받을 수 있는 날을 빌면서 조그마이 옹크린 시를 좋아합니다.

 

 푸근하게 감도는 따스함 어우러진 시집 한 권 읽으면 마음이 넉넉합니다. 다만, 어쩔 수 없는지 모르나, 푸근하게 감도는 따스함이 어우러지는 싯말 사이사이, ‘문학다이 꾸미는 말’이 보여 아쉽습니다. 아마, 아직 어쩔 수 없겠지요. 시를 읽는다는 사람들이나 시를 말한다는 사람들은 이런 ‘문학처럼 보이려고 꾸미는 말’을 좋아하거나 반길 테니까요. 온누리가 온통 ‘뭣처럼 보이려고 꾸미는 판’인데, 이러한 말마디 한두 대목 시집 한켠에 슬쩍 스밀 수 있을 테니까요.

 

 아이들이 읊는 말은 아이들 스스로 아이들 삶을 얼마나 꾸밀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삶을 스스로 꾸미면서 말을 지을까 궁금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읊는 말은 꾸미는 말인지, 꾸밈없이 터져나오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이웃 아이들이 외는 말은 꾸미는 말인지, 꾸밈없이 샘솟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 때문에 물든 말인가요. 그러면, 어른들 말은, 어른들이 흔히 쓰는 말은, 어디에서 어떻게 물든 말이 될까요. 어렵거나 딱딱한 어른들 말은 어디에서 어쩌다가 그 모양으로 물든 말이 되나요. 책을 읽어서? 무슨 학습을 하느라? 무슨무슨 집회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내 삶을 사랑하는 결대로 말하면 좋겠어요. 내 삶을 사랑하고 싶은 몸짓대로 말하면 기쁘겠어요. 내 삶을 사랑하는 살붙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말하면 예쁘리라 믿어요. 내 삶을 사랑하는 내 손길이 내 이웃이랑 동무 삶을 나란히 사랑하는 손길로 이어지며 아리따이 말하면 더없이 즐거우리라 믿어요.

 

 일하는 사람이 시를 쓰면 어여뻐요. 일하는 사람이 흙일을 하든 기름밥 일을 하든 집안일을 하든, 스스로 사랑하는 일이면서 아이들과 함께 할 만한 일을 웃음꽃이랑 눈물꽃 함께 나누면서 시를 쓰면 어여뻐요.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일이면서, 내가 내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을 만한 일을 환하게 누리면서 시를 쓰면 어여뻐요.

 

 대통령이 대통령이라는 일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다면, 이러한 일을 하는 동안 쓰는 시는 어여뻐요. 공장 일꾼이 공장 일거리를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다면, 이러한 일을 하는 동안 쓰는 시는 어여뻐요.

 

 함께하는 삶이고, 함께하는 사랑이에요. 함께 쓰는 시이면서, 함께 읽는 시예요. (4338.3.14.달./4345.1.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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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함께 아프고, 함께 살며
[시를 노래하는 시 10] 박경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책이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글 : 박경리
- 펴낸곳 : 마로니에북스 (2008.6.22.)
- 책값 : 9000원

 


 배앓이로 스물네 시간 남짓 뒹굴었습니다. 이제 배는 엊그제처럼 당기거나 쑤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말끔하지는 않아, 자주 쿡쿡 쑤십니다. 배앓이가 조금 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옆지기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이렇게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며 무얼 잘못 먹고 어떻게 잘못 움직여 속이 이토록 쓰리고 얹혔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옆지기 아버님은 갑자기 속이 얹혔을 때에 말이 나오지 않으나 성을 내면서라도 손가락을 따 달라고 하셨다는데, 나는 그저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린 채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또 이렇게 바보스레 몸앓이를 치르면서, 내 옆지기는 하루 한 해 온삶 어떤 몸으로 아픈 속을 달래며 지내는가를 생각합니다. 나는 고작 하루이틀쯤 배앓이로 꼼짝을 못하며 드러눕다가 모로 눕다가 엎드리다가 무릎 꿇고 엎드리다가를 되풀이할 뿐인데.

 

 저녁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밀린 기저귀 열두 장을 빨고, 둘째를 먼저 씻긴 다음, 첫째를 씻깁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차곡차곡 빨래합니다. 내 몸이 힘들다고 아이들 씻기기까지 못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막상 내 몸을 씻지 못하지만, 내 몸을 못 씻는 채 여러 날 보내더라도 아이들 씻기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더 힘듭니다.


..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산다는 것)


 빨래기계 없이 살아가고 싶지만, 빨래기계를 들여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손수 빨래하는 삶이 나쁜 나날이 아니지만, 스스로 이 일 저 일 마음을 쓰거나 품을 들이며 몸이 지치고 만다면, 애써 손수 빨래하는 삶이 되더라도 즐겁거나 보람찰 수 없구나 싶습니다. 그래, 하느님은 나를 빨래하며 삶을 보내라고 낳지 않았겠지요. 돈벌이를 하라고 낳은 내 목숨이 아닐 테고, 이맛살 찡그리며 살라고 낳은 내 목숨이 아닐 테며, 바보스레 살라고 낳은 내 목숨이 아닐 테지요. 참답고 착하며 곱게 살아가라는 내 목숨일 텐데, 자꾸자꾸 이 셋을 놓치거나 잊거나 저버린다면, 내 목숨을 다시 이어 하루를 새로 살며 무슨 뜻이 있고 어떤 사랑을 키울 수 있을까요.

 

 그나저나 나는 왜 빨래기계 없이 살아가려 했을까요. 어느덧 이런 생각마저 잊은 채 살아가는 나날이 아니었는지요.


.. 그러나 어머니는 / 딸이라 섭섭해 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  (20쪽)


 배가 아프며 아이를 낳지 않은 몸이기에 아이들을 덜 사랑할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내 몸속에 아이를 담고 열 달을 살아내지 않았으니 아이들을 덜 사랑할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언제나 ‘아이가 될 씨앗’을 몸속에 담으며 살아가는 만큼, 오늘 하루 무얼 보고 무얼 들으며 무얼 하고 무얼 누리는가 하는 삶이 고스란히 내 씨앗에 스며드는구나 싶어요. 이러한 흐름과 씨앗과 삶을 느끼지 못할 때에는 내 몸부터 옳게 아끼지 못하고, 내 몸부터 옳게 아끼지 못하는데, 내 곁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을 옳게 아끼지 못하겠지요.

 

 그러니까, 이제까지 나는 내 몸속에 깃든 ‘아이가 될 씨앗’을 올바로 깨닫거나 느끼거나 알아채지 않았습니다.

 

 늦게까지 잠들지 않으려 하면서 더 놀겠다는 아이한테 윽박지르듯 어서 안 자고 뭐 하니, 하고 나무란대서 아이가 잠들지 않습니다. 너 몸이 힘들지 않니, 살살 달래고 품에 따스히 안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노래 들려줄 때에 시나브로 잠듭니다.

 

 내 몸이 숱한 일을 치르며 고단하기에 날선 말이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내 몸이 무거운 일을 짊어지며 힘겹기에 골 부리는 말이 새어나오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하루하루 즐거이 누릴 마음이 못 되니까, 자꾸 날서거나 골 부리는 말이 삐져나와요.

 

 무슨 꿈으로 기운을 내고 어떤 사랑으로 삶을 일구는가를 살피지 않는다면, 온통 부질없는 일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삶을 밝히고 어떤 마음으로 사랑을 함께하는가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저 덧없는 하루하루입니다.


..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 서억서억 톱을 움직이며 /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 밭을 맬 때도 /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  (여행)


 살고 싶은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살고 싶은 모습을 그리며 살아야지요. 어찌저찌 되기를 빌면서 기다리거나 손을 놓는 삶이 아니라, 어떠한 그림으로 그리는 내 좋은 삶이 되도록 해야 할까를 되뇌며, 나 스스로 힘을 내야 합니다.

 

 이냥저냥 걷다가 뜻밖에 보배를 손에 쥐는 삶이란 없어요. 생각없이 살다가 난데없이 찾아오는 선물이란 없어요. 삶을 지어 삶을 누리고, 사랑을 지어 사랑을 누려요.

 

 나는 무슨 삶을 짓고 어떤 사랑을 짓는 나날인가 가만히 헤아립니다. 아무런 삶도 사랑도 안 지으면서 선물을 받으려 하는 나날이 아닌가 뉘우칩니다. 그야말로 번드레하게 말만 그럴듯하고, 막상 내 자리 내 터 내 사람들을 아끼는 일은 없이 수렁에서 헤매는 몸짓이 아니냐 싶어 부끄럽습니다.


..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 개미 쳇바퀴 돌 듯 /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  (바느질)


 소설쓰는 박경리 님이 남긴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마로니에북스,2008)를 읽습니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싯말을 읽으면서, 이 싯말은 하나하나 산문하고 같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싯말이라는 틀이지만, 따로 시를 쓰는 시가 아니라, 하나둘 털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을 갈무리하는구나 싶어요.

 

 할 까닭이 없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할 까닭이 있는 말을 합니다. 살아가며 나눌 사랑을 생각하고, 살아가며 누릴 보람을 생각하며, 살아가며 흘릴 땀방울을 생각합니다.


.. 다시 태어나면 /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 깊고 깊은 산골에서 / 농사짓고 살고 싶다 / 내 대답 // 돌아가는 길에 /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 왜 울었을까 ..  (일 잘하는 사내)


 아이들 옷가지를 중천장에 줄줄이 넌 방에 앉습니다. 동이 틀 무렵이면 이 옷가지와 기저귀는 다 마르겠지요. 빨래기계 장만하면서 내 일을 줄여 내가 고단하게 보내는 나날을 바꾸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인터넷을 뒤져 빨래기계가 얼마나 하고 크기는 얼마만 한지 살핍니다. 읍내에 있는 대리점에 가서 물건을 보아야 할는지, 인터넷으로 장만해야 할는지 생각에 잠깁니다. 어차피 똑같은 물건일까 궁금하고, 통에 이불을 어느 만큼 넣을 만한가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만할까 궁금합니다. 빨래기계를 들이면 씻는 자리는 얼마나 좁아질까 헤아립니다.

 

 그러나 이보다 다른 한 가지 생각이 오래오래 떠돕니다. 배앓이를 하며 뒹구는 동안 나는 생각도 일도 무엇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아플 뿐입니다.

 

 아픈 몸으로 스스로 손가락을 따지 못합니다. 아이들하고 어울려 놀지 못합니다. 갓난쟁이를 안아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손발과 몸뚱이 모두 차가우니 물을 만지기 싫습니다. 빨래는커녕 설거지를 꿈꾸지 못합니다. 빗자루와 걸레를 들어 방과 마루를 쓸고 닦자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 꿈에서 깨면 /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  (어머니)


 내가 아플 때에 아픈 사람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내 몸으로 찾아온 이 아픔이 가시고 난 뒤, 내 둘레 아픈 사람들 삶을 얼마만큼 헤아리거나 보듬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문득, 내 어린 나날 내 어머니는 몸이 아픈 적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몸이 아플 때에 어떻게 하루하루 살림을 일구었을까 궁금합니다.

 

 나는 어린 나날 얼마나 몸앓이를 했을까 되새깁니다. 우리 집 아이들 떠올리면서, 이 아이들이 몸앓이를 하면 나로서는 얼마나 힘이 들거나 벅찰는지 돌이킵니다. 씩씩하게 놀고 튼튼하게 밥먹는 아이들일 때에 얼마나 고마우며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아픈 사람한테 이거 하라 저거 하라 시킬 수 없어요. 아픈 사람이 무얼 바라는가를 묻고 들으면서 이것저것 차근차근 챙길 수 있어야 해요. 먼저 할 일을 살피고, 즐거이 함께 할 일을 찾아야 해요. 내 몸뚱이를 움직여 어느 일을 할 수 있는가 가늠하면서, 하루하루 알맞게 일거리를 잡아야 해요.


.. 각기 다르게, 그러나 모두 한길을 가는 / 목마른 삶의 모습을 / 생각하는 밤이 그 얼마인가 ..  (어머니의 사는 법)


 소설쓰는 박경리 님은 눈이 가물가물해지고 손아귀에 힘이 빠질 무렵 이 싯말을 내놓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눈이 한결 밝고 손아귀로 호미를 힘껏 쥘 무렵에는 다른 싯말을 내놓고 다른 소설말을 들려주었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글 한 줄 쓰다가 가슴이 쑤셔 끄응 하고 웅크리는 모습을 헤아립니다. 호미질 한 번 하다가 가슴이 갑갑해 끄응 하고 옹크려 앓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골방에서 글줄 붙잡으면 가슴이 더 쑤실는지 모릅니다. 흙을 밟으며 쟁기질을 하면 가슴이 조금씩 뚫릴는지 모릅니다. 골방에 너는 빨래도 하루 지나면 마르겠지만, 햇살 내리쬐는 마당에 너는 빨래는 햇살과 바람과 풀내음을 머금으며 한결 보송보송 마릅니다.


.. 밥을 예쁘게 자시던 노인네는 / 장날이 되면 소금으로 양치질하고 / 얼굴은 수건으로 빡빡 닦고 / 얹은머리를 한 뒤 / 열다섯 새 고운 베옷으로 갈아입고 / 작은 지게를 진 머슴새끼 앞세우며 / 출타하는 뒷모습이 훤칠했다 ..  (친할머니)


 갓난쟁이는 어머니가 곁에 없으면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버지가 곁에서 살가이 안고 살뜰히 달래며 사랑스레 재우곤 했다면, 어머니가 곁에 없더라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텐데 싶습니다. 포근하게 품에 안고, 넉넉하게 손을 잡으며, 싱그러이 눈을 마주치는 어버이 노릇을 얼마나 했나 하고 곱씹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바라고,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얼마나 살피는 내 하루일까요. 한 집에서 얼크러지는 살붙이들 몸과 마음을 어느 만큼 헤아리는 내 하루일까요.


.. 뙤약볕 아래 / 밭을 매는 아낙네는 / 밭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온 밭을 끌어안고 토닥거린다 ..  (92쪽)


 삶이 사랑스레 있고서야 글 한 줄 태어납니다. 삶을 사랑스레 돌보고서야 글 한 줄 거듭납니다. 삶을 사랑스레 함께하는 옆지기와 아이들을 생각하고서야 글 한 줄 여밉니다.

 

 호미질을 하지 않으면서 호미질 이야기를 글로 담지 못합니다. 살붙이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붙이들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엮지 못합니다. 그저 멀거니 구경하는 듯한 이야기만 끄집어낼 뿐입니다.

 

 내 삶이 구경하는 삶이 아니라면, 내 옆지기와 아이들을 옳게 좋아하며 예쁘게 어깨동무하고 싶은 삶이라면, 나는 오늘 다시 잠자리에 누울 때에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빌어야 할까요.


..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 목이 메이게 척박했던 시절 / 그래도 나누어 먹고 살았는데 ..  (까치설)


 소설쓰는 박경리 님 시집을 다 읽고 덮습니다. 박경리 님이 한 땀 두 땀 일구며 보낸 나날을 찬찬히 갈무리한 시집을 마저 읽고 덮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흙, 사랑하는 호미, 사랑하는 연필과 종이, 사랑하는 꿈과 마음과 별이 있으니, 이렇게 싯말 하나 내놓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싯말 내놓는 사람 삶이 이러하다면, 싯말 듣거나 읽으며 살아가는 나는 어떠한가요. 마냥 듣기만 하거나 그저 읽기만 해도 홀가분할까요. 스치고 지나가는 이야기 하나여도 될까요. 눈에 담고 마음에 담는데, 온몸으로 움직이지 않을 때에 무엇이 있을까요.


.. 거대한 산업 / 어디로 가나 세상 구석구석 / 광고의 싸락눈 안 내리는 곳이 없다 // 천문학적 자본을 쏟아 붓고 / 인력을 쏟아 붓고 / 시간을 쏟아 붓고 / 그것으로 먹고산다 / 그것으로 돈 벌어 부자가 된다 / 그것은 정치 전략의 요체가 되었다 // 그것으로 먹고사는 함정에서 / 사람들은 빠져나갈 수가 없다 ..  (소문)


 함께 아프고, 함께 살아갑니다. 함께 즐겁고, 함께 살아갑니다.

 

 함께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함께 밥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혼자 시시덕거린다면 내 삶도 우리 삶도 아닙니다. 홀로 앞장서기만 한다면, 홀로 내닫기만 한다면, 내 삶부터 될 수 없고 우리 삶은 도무지 아니에요.

 

 바보스러운 몸짓 말 마음 모두 버립니다. 아니, 살며시 내려놓습니다. 아니, 버리지도 내려놓지도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몸짓 말 마음 모두 붙잡습니다. 아니,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아니, 붙잡지도 쓰다듬지도 않습니다. 그예 즐거우며 예쁘게 누릴 삶을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 사랑스러운 몸짓이요 말이며 마음이 되자고 다짐합니다. (4345.1.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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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1-11 11:36   좋아요 0 | URL
박경리도 박경리지만 리뷰가 참 시 같기도 하고,
산문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래서 배앓이는 나은 거죠? 왜 그랬을까요?ㅠㅠ

숲노래 2012-01-11 16:58   좋아요 0 | URL
아직 멀었어요 ㅠ.ㅜ

하루나 이틀을 더 묵어야 할 듯해요...
에궁... ㅠ.ㅜ
 
망가진 기타 삶의 시선 21
서정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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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같은 사랑으로 시를 쓴다
[시를 노래하는 시 9] 서정민, 《망가진 기타》

 


- 망가진 기타
- 글 : 서정민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6.12.19.)
- 책값 : 6000원

 


 서정민 님 시집 《망가진 기타》(삶이보이는창,2006)를 언제 처음 읽었는가 돌아봅니다. 다 읽고 나서 왜 그때에 느낌글을 안 썼는지 헤아립니다. 글쎄, 모르겠습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은 군이지만, 이 군은 국회의원이 따로 없습니다. 이웃한 보성하고 한동아리로 묶어 국회의원 한 사람을 둔답니다. 어엿하게 군이라지만, 보성과 고흥이 한동아리로 묶인다면, 나날이 젊은이 빠져나가고 아이들 줄어드는 고흥은 머잖아 보성에 스며들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순천과 보성과 고흥을 하나로 묶을는지 몰라요. 요즘 이곳저곳에서 떠도는 광역시처럼.

 

 편지를 부치러 면내 우체국으로 자전거를 타고 찾아갑니다. 우체국 문닫기 앞서 아슬아슬 편지를 부치고 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고흥군 도화면 우체국 일꾼들이 이 마을에서 살지 않고 저기 순천부터 찾아온다는 말을 듣습니다. 아하, 순천 분들이 예까지 오시는구나.

 

 그러고 보면, 우리 면 우리 리 보건소에서 일하시는 분도 고흥사람은 아닙니다. 이웃한 다른 면 다른 리 보건소, 아니 보건지소로군요, 보건지소 일꾼들 가운데에도 고흥사람은 찾아보기 힘든지 모릅니다. 다들 순천이나 광주에서 이곳까지 일하러 찾아와 사택에서 살거나 출퇴근을 하는지 모릅니다.


.. 집에서 가장 멀리 도망친 곳 / 60번 버스 타고 여행을 가듯이 / 8년 반 동안 다닌 학교 / 술 먹으면 집에 오기 싫던 창원대학교 ..  (창원대학교 1)


 우리 네 식구 새 보금자리를 찾아 고흥으로 오며 ‘문닫은 학교’를 하나하나 알아보았습니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에 있는 문닫은 학교까지는 못 갔고, 거의 모든 학교를 다 돌아보았습니다. 이때에 고흥에 있는 문닫은 학교마다 사택이 참 많고 잘 지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깊이 들어갈수록, 고흥에서도 깊이 들어가는 더 외진 시골마을 학교일수록 사택이 크고 넓습니다. 거금도에서 문닫았다는 초등학교에는 사택 숫자만 해도 예닐곱 채쯤 되었고, 예닐곱 채에는 스무 사람 남짓 먹고자도 될 만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면내에 볼일을 보러 다닐 때에는 도화중학교랑 도화고등학교 옆을 지납니다. 면내 중·고등학교 옆을 지날 때면, 학교 울타리 유자나무 곁에 있는 3층짜리 사택 건물을 바라봅니다. 중학교랑 고등학교는 사택 건물이 아예 3층이라, 그러면 이 사택에는 교사가 몇 사람쯤 살려나. 정작 고흥군 도화면에서 나고 자란 교사는 거의 없이, 모두들 순천이니 여수이니 보성이니 광주이니 담양이니 나주이니 …… 하면서 다른 데에서 찾아오는 교사들인지 궁금합니다. 순천에서 고흥으로 일하러 많이 온다 하는데, 고흥 젊은이는 거꾸로 순천으로 나가서 살고, 순천 젊은이는 외려 고흥으로 일하러 오는 셈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 내 힘으로 돈 벌면 / 마음 놓고 술 한번 대접해야지 생각하던 곳 ..  (까페 블루)


 나는 잘 모르지만, 면사무소 일꾼들 가운데에도 고흥 아닌 순천에서 자동차 몰고 찾아오는 사람이 제법 많을는지 모릅니다. 면사무소에도 사택이 따로 있는지 모릅니다. 공무원 아파트나 빌라가 있는지 모릅니다. 도화면 도화초등학교에도 어김없이 사택이 있을 테지요. 시골 초등학교이기 때문에 면내 곳곳에서 띄엄띄엄 살아가는 시골집 아이들을 태워 오고 태워 모시는 작은버스가 있습니다. 어쩌면 교사들도 이렇게 밖에서 끌어오고 밖으로 돌려보내는 얼거리인지 모릅니다.

 

 순천은 언제부터 군이 아닌 시였을까요. 여수나 광양은 언제부터 군이 아닌 시였을까요. 보성은 사람들 숫자가 줄어들까요. 장흥은 어떠할까요. 해남이나 강진이나 완도나 진도는 어떠할까요. 젊은이는 왜 자꾸자꾸 도시로 몰려야 할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더라도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을 얻어야 하는데, 왜 자꾸자꾸 도시로 빨려드나요.


.. 물오른 버들가지 꺾어 만든 피리를 / 봉곡시장까지 들고 와 불었지 ..  (신포나루)


 시집 《망가진 기타》를 읽습니다.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장애를 안고 살아왔다는 서정민 님은 나와 내 식구들처럼 나이를 더 먹지 않습니다. 태어난 해 또렷한 만큼 숨을 거둔 해 또렷합니다.

 

 서정민 님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서정민 님은 그만 고꾸라져서 다시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깊은 밤에 깬 둘째는 아이 어머니가 잘 다독여 다시 재웁니다. 예쁘게 안아 자장자장 노래하는 어머니를 바라볼 때마다, 아버지인 나는 왜 이렇듯 예쁘게 안으며 자장자장 속삭이는 어버이 노릇을 하지 못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자꾸자꾸 이렇게 생각하니까 자꾸자꾸 이런 사람으로 굳어질까요. 서툴거나 어설프더라도 자꾸자꾸 사랑스레 말하고 따스하게 손을 내미는 어버이 노릇을 한다면, 내 아이와 이웃 아이 누구한테나 맑고 밝은 이야기 나눌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 낼 모레면 서른 / 벌써 배가 나오기 시작한 내 친구야 / 북면 막걸리 떨이 진국 / 연극 얘기 우리 얼굴이 / 앞산 노을보다 더 익었다 ..  (노을-철에게)


 나보다 일찍 태어난 서정민 님이 흙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나이 마흔을 앞두고 부르는 노래를 시 하나로 갈무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요, 나이 마흔에 부르는 노래를 예쁘게 즐겼겠지요. 그러나 서정민 님은 나이 서른 앞두는 노래까지만 부르고 그칩니다. 서른너덧 서른대여섯 즈음 달리다가 그만 마흔 고개 앞에서 폭 스러집니다.

 

 이제 서른여덟 나이를 맞이하는 나는 마흔 고개를 바라봅니다. 어두운 방, 이불을 뒤집어쓴 고단한 몸을 끙끙거리며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자꾸자꾸 바보스레 들여다보지 말자고, 나 스스로 자꾸자꾸 착하게 사랑하자고 생각합니다. 내 몸을 더 따사로이 일으켜 내 몸을 한결 따사로이 아끼자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아낄 때에 옆지기와 아이들을 아낄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마구 굴릴 때에 그만 옆지기와 아이들한테까지 막된 소리나 몸짓이 튀어나옵니다.

 

 나이 마흔에도 오늘 하루 고마웠습니다, 하고 노래를 불러야지요. 나이 쉰에도, 나이 예순에도, 나이 일흔에도, 아, 오늘 하루 사랑스러운 옆지기와 아이들 꿈을 함께 먹고 함께 키우면서 기뻤어요, 하고 노래를 불러야지요.


.. 달력 젖히면 살아온 날들 / 꽃 피고 눈 내렸다 ..  (달력)


 나는 꽃과 같은 서른여덟입니다. 옆지기는 꽃과 같은 서른셋입니다. 아이들은 꽃과 같은 다섯이요 둘입니다. 저마다 보람찰 새해요, 서로서로 애틋할 새해입니다.

 

 오늘은 하루 네 차례 빨래를 하느라 그만 저녁짓기 할 기운을 잃었습니다만, 새해에는 하루 다섯 차례 빨래를 하더라도 저녁짓기 또한 신나게 할 수 있는 기운을 내 몸에서 스스로 찾아서 솟구치도록 하자고 다짐합니다.

 

 사랑도 믿음도 꿈도 이야기도 빛줄기도 웃음도 내 마음에서 자라요. 슬픔도 미움도 시샘도 짜증도 성냄도 두려움도 괴로움도 내 마음에서 태어나요.

 

 나는 사랑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나는 믿음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나는 꿈나무를 심고 싶습니다. 나는 이야기잎을 틔우고 싶습니다. 나는 빛뿌리를 튼튼하게 내리고 싶습니다.


.. “얘야, 옷에 감물 들면 잘 안 진다.” / 어머니 말씀 / 그 후로도 몇 개나 더 먹었을까 / 문학이니 이념이니 목 매던 풋감들 / 편한 갈옷은 못 되고 / 군데군데 얼룩으로 남은 풋감물을 아직도 벗지 못했다 ..  (풋감)


 서정민 님은 시집 하나 《망가진 기타》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았습니다. 다만, 숨을 거둔 다음 내놓았기에, 서정민 님 살아숨쉬던 때에는 이 시집을 만지며 노래할 수 없었어요. 흙으로 돌아간 다음 넋으로 이 시집을 누립니다. 흙에서 되살며 넋으로 이 시들을 우리한테 나누어 줍니다.

 

 시집을 다시 읽고 다시 덮으며 생각합니다. 나도 이렇게 시집 하나를 내고 싶구나, 나는 씩씩하게 흙땅에 두 다리를 세우며 밭뙈기 일구는 몸뚱이로 시집 하나를 누리고 싶구나, 하고 꿈꿉니다. 우리 아이들하고 나눌 시집을 하나 얻고 싶습니다. 우리 옆지기하고 나눌 시집을 하나 누리고 싶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려는 꿈을 담은 시집을 얻고 싶습니다. 참다이 살림 돌보는 사랑을 실은 시집을 누리고 싶습니다.


.. 장사익이 노래하네 / 사랑은 행복, 사랑은 불행이라고 / 나는 노래하고 싶네 / 몸이 행복, 몸이 불행이라고 ..  (빛과 그림자)


 좋은 눈물로 시를 씁니다. 좋은 웃음으로 시를 씁니다. 좋은 술잔으로 시를 씁니다. 좋은 밥그릇으로 시를 씁니다.

 

 서정민 님, 활짝 웃는 얼굴 사진 담은 시집 하나 즐겁지요?


.. 호떡이거나 핫도그면 또 어떠리 / 그렇게 시를 쓸 수 있다면 / 그런 자세로 살 수만 있다면 // 어느 후미진 골목에 / 삼류 시들을 펼치고 서 있다가 / 팔리지 않아 무거운 리어카를 / 그대로 이끌고 돌아와도 좋겠어 ..  (붕어빵)


 서정민 님 시집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예쁘게 노래할 동무가 남녘땅 곳곳에 두루두루 있으리라 생각해요. 《망가진 기타》 한 권 책시렁에 살며시 얹으며 고향마을에 곱게 뿌리내리는 젊은 넋이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돈벌러 멀리멀리 자가용 모는 사람 아니라, 삶을 짓고 사랑을 짓는 고향마을에서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집숲을 돌보는 고운 사람이 꼭 있으리라 생각해요.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는 시골마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시골마을에 늙은이만 남기고 젊은이는 도시로 간다지만, 오래지 않아 젊은이들이 도시에서 나가떨어지거나 지치거나 슬프거나 사랑을 잃은 나머지, 서로 어깨동무하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나누는 웃음누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펼치면서 아름다운가 하는 슬기를 깨달으리라 생각해요. (4344.12.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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