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 문옥주 할머니 일대기, 역사의 증언 2
모리카와 마치코 지음, 김정성 옮김,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펴냄 / 아름다운사람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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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 글쓴이 : 모리카와 마치코
- 옮긴이 : 김정성
- 펴낸곳 : 아름다운사람들(2005.8.8.)
- 책값 : 12000원

 ‘한일 청구권’ 문제, 그러니까 1965년에 박정희와 김종필이 ‘한일협정’이라는 걸 맺은 문제가 2005년인 지금까지도 발목을 잡습니다. 전쟁과 식민지로 온갖 괴로움을 받아야 한 사람들이 배상을 받아야 하는 일은 둘째치고,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는 피해자가 된 사람들한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까닭이 있어요. 바로 우리들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일은 잘못이 아니에요. 하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는 일은 잘못입니다.


.. 한국의 경우,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어떤 일이 있어도 지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유감스럽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 <22쪽>


 해마다 어김없이 3.1절과 광복절을 치르면서도 이때 죽어 간 사람들, 아파한 사람들이 누구였고, 어떻게 고달팠는지를 말하는 이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말하는 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왜 누구 아파야 했지?’ 하고 물으면서 이런 까닭을 살피려 하지 않아도 좋을까요?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는 어느 일본사람이 종군위안부로 아픔과 슬픔을 겪어야 했던 할머니 한 분을 여러 해에 걸쳐서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뒤 자서전 틀을 빌려서 담아낸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참 어이없는 일이 많구나, 어째 이랬을까 싶은 한편, 왜 이런 이야기를 한국사람들이 가까이에서 받아 적고 함께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면서 사람들이 이런 속이야기를 널리 알도록 해 주지 못했을까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러니까, 한국사람들은 이런 책이 나와도 읽거나 소개도 하지 않는데, 바로 그런 마음이 아주 깊은 곳까지 또아리를 틀고 있어서 이런 할머니들 이야기를 뭣하러 책으로 담느냐 하고 생각하지 싶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기사를 쓰는 사람도, 책을 만드는 사람도, 방송을 찍는 사람도 눈길을 안 둬요. 이런 현실을, 역사를, 삶을 담아내려 하지 않고 보려고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무슨 이야기를 펼치고 나누고 있나요? 책에, 신문에,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문옥주 할머니는 벌써 세상을 떠났습니다. 앞으로 열 해쯤 뒤면 문 할머니 이름도 거의 잊혀져 버릴 테고, 이 책도 판이 끊겨서 사라져 버리겠지요. 자, 그러면 그때,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에는 종군위안부로 애먹어야 했고 죽도록 괴로와야 했던 사람들 삶과 역사도 사라지는가요? (4338.9.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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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하는 즐거움
리처드 파인만 지음, 승영조 외 옮김 / 승산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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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발견하는 즐거움
- 글쓴이 : 리처드 파인만
- 옮긴이 : 승영조, 김희봉
- 펴낸곳 : 승산(2001.4.6.)
- 책값 : 9800원

 지난번 대통령 뽑기가 떠오릅니다. 이때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사람 가운데 둘, 이회창 씨와 노무현 씨는 ‘옥탑방’이 무엇인 줄 몰랐습니다. 옥탑방이 무엇인 줄 몰랐으니 ‘지하방-반지하방’이 무엇인 줄도 모르겠지요? 이 나라에서는 사람을 바보 멍청이로 만드는 군대 조직인 터라 군대에는 안 가야 하고, 군대가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돈과 이름과 힘이 없는 사람은 군대에 끌려가기 마련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군대에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돈과 힘과 이름이 있는 이들은 군대에 안 가거나(뒤로 빼돌리지요), 가더라도 아주 아늑한 곳에서 탱자탱자 놀면서 지냅니다. 이들한테 ‘군대’란 무엇이고 ‘병역면제’란 무엇일까요?

 서울시든 다른 곳이든 교통이 참 엉망입니다. 길은 수없이 깔지만 길마다 막히며, 사람들이 다니는 길도 아주 안 좋아요. 길섶은 늘 파여 있기 일쑤고, 사람이 걷는 길이나 자전거가 다니는 길은 곳곳이 끊어져 있는 한편, 길턱이 너무 높아 휠체어나 자전거나 유모차가 다니기 매우 나빠요. 그런데 이게 왜 그럴까요? 바로 공무원이고 건설담당자고 정치꾼이고 누구고 ‘대중교통’을 타는 일이 없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일터를 오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국회의원 가운데 하나라도 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길을 달려서 국회의사당을 오간다면, 그나마 괜찮다고 하는 한강 자전거길은 ‘지금 이 길에 깃든 온갖 문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질는지 몰라요.


.. 아버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름만 가르쳐 주는 법이 없었지요. 아버지는 이름만 아는 것과 진짜로 아는 것의 차이를 알고 계셨어요. 덕분에 나는 그걸 아주 일찍 깨달을 수 있었지요 ..  〈24쪽〉


 어릴 적에 흔히 듣던 말로 “야구의 ‘야’ 자도 모르는 주제에” 같은 말이 있습니다. 야구 규칙이고 야구선수 이름이고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야구’를 있는 그대로 알지는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저는 헌책방을 참 즐겨 다니는데, 저도 아직 헌책방의 ‘헌’ 자도 제대로 모릅니다. 그런데 저뿐 아니라 대단히 많은 분들이 헌책방의 ‘헌’ 자조차 모를 뿐더러, 이렇게 기본도 모르는 자기 자신을 고치거나 가다듬으려 하지 않아요.

 속살까지 지긋이 파헤치거나 살피려 하지 않고, 참다운 모습을 느끼려 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발견하는 즐거움》에서 파인만 님은 ‘새가 어떤 이름인지 안다고 해서 아는 것은 아니라고, 그 새를 어느 나라에서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가만 아는 것뿐이다’고 말합니다. ‘새가 즐겨먹는 먹이가 무엇이고 소리를 내는 까닭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잠을 자고 짝짓기는 언제 어디에서 얼마 동안 하며 새끼는 언제 까고 몇이나 낳으며 어떻게 기르는가…’를 알아야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도 ‘그 새를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는 없고 ‘새의 모습과 삶 가운데 어느 만큼만 안다’고밖에 할 수 없다고 아버지한테 배웠다고 말합니다.

 ‘안다’는 말은 섣불리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일이란 그처럼 쉬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또한 ‘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지 않아요. ‘알았다’면 바로 이때부터 중요합니다. 알았으면 무얼 해야 하나요? 바로 ‘실천’입니다. 아는 것을 ‘펼치는’ 일입니다. 정치꾼들이 ‘옥탑방’이 무엇인지를 지식으로 안다고 해서 옥탑방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 삶을 헤아리는 정책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까요? 점심에 국수를 먹는다고 하루 세 끼니를 라면으로 때워도 가까스로 살림을 버티는 이들 형편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 위대한 종교라 해도 위대한 지도자가 직접 가르친 내용을 잊어버리고 형식만 추구하면 퇴보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형식만 추구하며 그것을 과학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이비 과학입니다. 사이비 과학적 조언자들의 영향 아래에 있는 수많은 단체나 제도 속에서 오늘날 우리는 일종의 학정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  〈70쪽〉


 파인만한테는 ‘과학’, 이 가운데 ‘물리학’이 ‘종교’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좋아하고 믿고 즐기는 것을 ‘종교’란 자리에 넣어서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겉이 아닌 속을,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거짓이 아니라 참을, 그릇된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찾아서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4339.3.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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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유쾌한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 이야기
사이토 미치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삼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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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글쓴이 : 사이토 미치오
- 옮긴이 : 송태욱
- 펴낸곳 : 삼인(2006.1.5)
- 책값 : 10000원

 우리 나라에도 틀림없이 ‘장애인 공동체’라는 곳이 있습니다. 장애인을 아끼고 돌보며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하면서 꿈을 펼치도록 도우려는 손길도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거나 바라보아 주는 마음길이란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 만약 관리 규칙이 있다면, 모든 것이 ‘규칙에 이렇게 쓰여 있으니까’라고 정리해 버려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롭게 활달한 의견이나 발상이 파묻혀 버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37쪽〉


 정신장애인들이 모여서 산다는 ‘베델의 집’. 정신장애면 어떻고 다른 장애면 어떻습니까. 문제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들이 문제이고 골치입니다. ‘이런 장애인이 있대’가 아니라 ‘장애인이네’ 하고 바라보기만 하지 못하는 비장애인 문제입니다. 치우치거나 비뚤어진 생각을 씻지 못하는 우리들 문제입니다.

 장애인은 장애인입니다. 장님은 장님이고 귀머거리는 귀머거리입니다. 앞을 못 보니 장님이고 소리를 못 들으니 귀머거리예요. 이런 낱말은 사람을 차별하거나 괴롭히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장님’을 깔보는 말로 여겨서 ‘시각장애인’으로 돌려서 말하고 ‘장애인’을 ‘장애우’로 돌려서 말합니다. 우리는 낱말만 바꾸려 하고 우리들 생각과 몸짓은 하나도 안 바꿉니다. 비장애인 삶에만 맞춘 제도 또한 그대로 두려 합니다. 이러면서 무엇을 하지요? 껍데기만 그럴싸하면 되나요? 요즘 지하철에는 꽤나 큰돈을 들여서 ‘스크린도어’라는 것을 만드는데, 이것은 ‘비장애인 안전’만 생각하는 시설일 뿐 장애인도 함께 헤아리는 시설은 아닙니다(여기에 들이는 돈과 잽싼 움직임과 어떻게 짓는가를 보면 훤히 알 수 있어요). 더구나 우리네 교통 현실은 장애인이고 비장애인이고 사람 대접을 못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가용 중심이고, 관리자 중심이거든요. 버스타는곳이고 전철역이고 앉을 자리, 걸상이 몇 없습니다. 사람들 거님길에 ‘턱’이 너무 높거나 많으면 휠체어 타기 아주 안 좋습니다. 게다가 비장애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도 아주 안 좋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유모차를 끌기에도 참 나쁩니다. 그런데 이런 시설은 좀체로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못 느끼고 건의도 제대로 안 하지만, 건의를 받는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 문제를 찾거나 고치려고도 하지 않아요. 이러니까 장애인 문제는 ‘그들한테만 문제인 것’쯤으로 여겨 버리겠지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는 작은제목으로 “문제투성이 ‘베델의 집’ 사람들의 놀라운 회사 창업 성공기”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네, 이런 창업성공기도 좋고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더 재미있고 좋은 대목은 ‘장애인이면 어떻고 비장애인이면 어떠냐? 똑같이 세상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하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건네는 데에 있습니다. 그저 즐겁게 어울리는 사람들, 규칙이나 틀로 서로를 옭아매려 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예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이렇게 산다구’ 하며 이야기를 건넵니다. 딱히 따뜻하지 않게, 그러나 구태여 차갑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남김없이 보여주면서 손을 내밉니다. 이 손을 장애인들 손으로 느끼지 말고 ‘당신과 똑같은 사람 손’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이야기책입니다. (4339.2.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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