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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윌리엄 슈니더윈드 지음, 박정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태어나서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같다. 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쌍한 영혼이다. 절대자나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거나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기회가 없었다. 책으로 만나는 그들의 이야기는 지루하고 따분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크리스마스를 즈음하여 친구를 따라 딱 한 번 교회에 가 본 적이 있지만 심드렁한 느낌으로 기억한다. 난 어렸을 때부터 애늙은이였다.

가끔 어머니가 절에 가신다. 마음이 복잡할 때나 사월 초파일 등 기껏해야 일년에 몇 번이지만 등산 겸 해서 절에 다시시는 어머니의 그것을 한 번도 종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종교는 나약한 인간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영혼의 아버지뻘 쯤 되겠지만 여전히 호기심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종교에 대한 개인적인 태도는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오로지 관심뿐이다.

그러나 한 인생을 살면서 종교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다만 ‘믿음’의 문제와 부딪히면 고개를 외로 튼다. 무식하고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만 성경을 읽어도 불경을 읽어도 책을 통해서는 알 수가 없다. 당연한가? 종교에 대한 관심과 신앙심과는 무관한 것 같다.

윌리엄 슈니더윈드의 <성격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는 종교에 대한 또 다른 질문에 답한다.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불교든 정전의 힘은 막강하다. 코덱스(책)의 형태로 묶여진 성경이나 코란이나 불경은 그 종교를 대표하는 권위를 지닌다. 처음부터 그랬을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유대교와 그리스교의 정전인 ‘성경bible’은 ‘비블리아biblia’라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다. 비블리아의 뜻은 ‘책들’ 혹은 ‘두루마리들’의 뜻을 담고 있다. 이렇게 성경을 뜻하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면 성경을 누가 썼는지 왜 썼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현재의 책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두루마리로 쓰여진 모세 오경이 바탕이 되어 있던 텍스트들을 순서를 정해서 지금과 같은 책이 되었다.

현재까지는 대략 페르시아 제국과 헬레니즘 시기(기원전 5세기 ~ 3세기경)에 구약성서가 기록되고 편집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슈니터윈드는 고고학적 고증을 통해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경으로 그 시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흥미롭게 전개되는 성경의 시작과 끝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구전 문화와 기록 문화의 충돌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 가장 강력한 종교적 권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문자가 등장하면서 문자는 왕과 제사장들의 절대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행정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었다. 문자가 대중화되면서 ‘말씀’과 ‘글’에는 충돌이 생겼고 그것은 권위와 믿음에 대한 종교의 기본적인 믿음의 대상에 대한 충돌로 이어진다. 결국 ‘글’이 ‘말’의 권위를 눌렀으나 그 변화 과정은 종교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당연히 적용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읽혔다.

어쨌든 게임은 끝났고 성경이라는 ‘책’은 종교인들에게 ‘말씀’을 넘어선 권위를 지키게 되었다. 기록된 한 권의 책이 가지는 사회적 권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후 기독교라는 종교가 사회에 미친 영향은 유럽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종교와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이러한 종교의 사회적 역할 때문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보여주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물론 모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종교의 순기능을 축소하려는 생각도 없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일 뿐.

성경은 언제 기록되었을까? 왜 글로 기록했을까? 성경은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을까?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독자들을 고대 이스라엘로 인도한다. 기록된 글이 고대 이스라엘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성경의 역할과 책으로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가 안내하는 고대로의 여행에 동참하고 싶은 독자는 성경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나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나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책이라는 형태의 기원과 탄생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고 싶은 사람이어도 좋을 것 같다.

글과 문자성은 자유를 줄 수도, 억압할 수도 있는 두 가지 힘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 P. 165

엉뚱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어면서 이 한 줄이 기억에 남는다. 모든 책이 각각의 독자에게 다르게 해석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이 책은 나에게 또 하나의 책에 관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도 성경은 사라지고 책만 남았다.


06100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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