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자네는 나를 버리고 갔는가.

  한번은 내가 "자네가 나보다 열여섯 살이나 어리니, 나보다 뒤에 죽을 테지."라고 했더니, 자네는 "제가 먼저 죽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네. 아! 그런데 지금 자네는 그 바람대로 나보다 먼저 갔네그려. 인간의 수명은 정해진 운명이 있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자네에 대해서만은 그 사실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겠네. 이제 말을 하자니, 먼저 기가 막히네그려.

  아! 지난 날 후사를 이어줄 사람을 구하다가 자네의 성품이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거의 반 년을 애태워 자네 부모님께 겨우 승낙을 받았네. 정인이 된 뒤 자네의 행실을 보니, 과연 총명하고 영특한 재주와 단정하고 정숙한 자질이 보통 규수에 비할 바가 아니었네. 부모를 공경하고 지아비에게 정성을 다하며 형제간에 우애있는 것은 모두 다 천성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네. 그 밖에 문사에 해박한 것, 거문고와 바둑에 능한 것, 자수나 서화에 뛰어난 것들은 여사라 할 수 있었지. 그러니 내가 자네에게 각별한 정을 쏟은 것은 그 훌륭한 재색 때문만은 아니었다네.

  자네가 우리 집으로 들어온 뒤에 나는 곧바로 지방관으로 나가게 되었네. 성주에서 경주로, 달성에서 함양으로, 다시 또 평양으로 지금까지 11년째 옮겨 다니며 살고 있네. 자네는 늘 나를 따라다니며 타향살이를 했지만, 밥상 한 번 제대로 마주 대하지 못했소. 그러나 자네가 아직 젊고 나도 아직 늙지는 않았기에 언젠가는 함께 살 수 있으리라 여겼네. 그러니 자네가 지금 타향에서 요절하여 한 집에서 함께 살고 싶은 바람을 저버릴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자네가 아이를 낳던 날 저녁, 마침 자네 아비의 부고가 이르렀네. 나는 효성이 지극한 자네가 몹시 슬퍼하다 몸을 해칠까봐 병이 나은 뒤에 알려주려고 했는데, 자네가 결국 아비가 죽은 줄도 모른 채 죽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네.

  자네가 많이 아플 때, 마침 사신이 국경에 와 있어 나는 그들을 접대하느라 분주해 자네를 돌볼 수 없는 것이 매우 한스러웠네. 그러니 국경 밖에서 그들을 수행하고 있을 때야 말해 뭐하겠는가. 자네는 나를 만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도 자네의 병이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네. 자네는 나를 말없이 쳐다보며 눈물 흘리다 내 손을 잡고 "다시는 못 뵙겠지요?"라고 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네. 나도 자네가 동요하여 병이 더 악화될까봐 속으로는 그지없이 슬퍼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위로의 말로 이별을 고하고 훌쩍 떠났다네. 아! 천지신명도 그날의 슬픔을 안다면 참담했을 것이네.

  자네는 내가 떠난 지 3일 만에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네. 부고가 도착하던 날, 나는 서쪽으로 가던 중이었네. 그래서 자네가 눈 감는 것도 못 보고, 영결하는 말도 듣지 못했으며, 시신을 어루만져주지도 못했네. 모든 장례 절차를 자네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손에 맡기고 말았으니, 이 어찌 자네가 평소에 바라거나 짐작하던 일이겠는가. 이 일은 내 평생 한이 되어 아마도 풀어질 날이 없을 듯하네.

  아! 해가 몇 달째 앓고 있어 자네는 그 아이가 죽을까만 염려했지. 자네가 해보다 먼저 죽고 해마저 자네 뒤를 따라 죽을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자네 아비와 자네, 그리고 자식 3대가 두 달 사이에 모두 죽었으니, 하늘을 어찌 이렇게 혹독한 화를 내린단 말인가. 나는 자네가 죽고 열이틀이 지나서야 의주에서 돌아왔네. 황량하게 모자의 빈소가 마주하고 있는 걸 보니 간담이 찢어질 듯 애통했다네. 저 무심한 하늘이여, 이 슬픔이 언제나 가실런지.........

  내가 서쪽으로 떠날 때, 자네는 내게 언제 오느냐고 물었네. 나는 약속대로 돌아왔는데 자네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전에는 내가 밖에서 돌아오면 자네는 문 앞에서 웃으며 맞아주었는데, 지금 내가 돌아왔는데도 자네는 왜 이렇게 싸늘하게 누워만 있단 말인가.

  아! 자네의 관을 고향으로 보내 새로 잡은 장지에 묻고 훗날 나도 함께 묻혀 평소 자네의 소원을 저버리지 않을 생각이네. 그러나 과연 생각대로 될는지..... 또 하인들을 시켜 자네 무덤을 지키게 하고 3년 동안 향불이 꺼지지 않게 해주려 하는데, 자네는 아는지 모르겠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생사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달이와 민이 두 아이는 이제 어느 정도 자랐다네. 자네가 살아 있을 때보다 그 아이들을 더 잘 기르고 가르치겠네. 그 아이들이 장성하면 자네 제사를 맡길 것이니, 자네도 지하에서나마 묵묵히 도와주어 아이들이 자네처럼 일찍 죽지 않게 해주면 고맙겠네.

  아! 이제 다 끝났네그려. 자네의 그 낭랑한 목소리도 더는 들을 수 없고, 아름다운 모습도 다시는 볼 수가 없네그려. 그런데도 말소리는 아직 귀에 쟁쟁하고, 얼굴도 눈앞에 선하다네. 아! 내게 귀가 있고 눈이 있는 한 잊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제 자네를 만날 가망이라곤 꿈에서밖에 없는데 자네가 죽은 뒤로는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네. 아! 자네는 어쩌면 그리도 무정하단 말인가. 영혼이 갈 곳을 모른 채 떠도느라 그런 건 아닌지.......

  아! 10년간의 우리 행복은 눈 깜짝할 사이였는데, 사별의 슬픔은 끝이 없네그려. 행복한 순간은 어찌 이리도 짧고, 슬픔은 어찌 이리도 길단 말인가. 지하에서 만난다는 옛말도 있으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조만간 우리가 다시 만나지 않겠는가. 내생에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있으니, 우리 인연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면 다시 맺어질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럴 리는 없으니, 목놓아 울며 길이 탄식할 밖에....... 애통한 말은 여기서 끝나지만 정은 끝이 없다네. 오호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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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이 있어도 입지 않고

거마가 있어도 몰지 않다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이 즐기게 되리.

 

뜰이 있어도 물뿌려 쓸지 않고

종과 북이 있어도 두들기고 치지 않다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이 차지하리

 

술과 밥이 있는데

어찌 날마다 비파를 타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으며

하루 해를 길게 보내지 않는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이 집에 들어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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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5-08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무엇때문에 있는 소용 다하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마음 속에 무슨 잊지 못하는 사연있길래...의상은 빛이 바래고 거마는 늙어죽으니....이 무슨 소용으로 사는가?
뜰에 핀 꽃과 나무...종과 북, 비파와 술이 무슨 소용으로 버려지는 것일까? 아, 봄비에 날리는 꽃가루 씨앗도 뿌리지 못하고 가는구나...
 

아! 나 홀로 우두커니 방에 있으려니, 하룻밤이 1년 같구려.

침상 위는 적막하고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소.

간혹 창문을 열고 안채를 바라보면 상청이 있고 마루는 고요한데,

당신 모습이 여느 때처럼 눈앞에 삼삼하게 아른거리는구려.

지금의 이 심정이 언제나 나아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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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입니다.

 

                                                                            - Martin Ruther K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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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반짝이는 어느 날 밤,  툭 터진 곳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라.

당신의 머리 위 저 수백만의 세상들을 쳐다보라.

아마 거기에는 당신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당신보다

더 뛰어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존재들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무변광대한 우주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한 알의 모래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

이 우주는 부서져 사라질 것이고 당신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미친 짓이 아닌가?

이 모든 세상 앞에서 당신의 목적과 희망은 무엇인지,

당신에게 요구되어질지도 모를 요구사항과

이에 대한 당신의 각오는 무엇인지 당신 자신에게 물어보라.

멀고도 어려운 여행이 당신 앞에 있고 당신은 이상하고도

알려져 있지 않은 곳으로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길은 끝없이 멀다. 길을 가다가 쉴 수 있을지, 어디에서 쉴 수 있을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아주 나쁜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필요한 것 모두를 가지고 여행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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