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돈을 내고 공연을 본 게 얼마만이던가.

2. 난 노래 잘 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예전에는 목소리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목소리가 좋으면서 노래 잘 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톤은 베이스에 가까운 테너의 소리, 다른 말로 하면, 고음이 가능한 약간 굵은 톤의 소리다.

3. 내 서재에 ‘지금 이 순간’ 동영상을 올린 날은

2012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이후에 두 분의 인생 여정을 보여주는 영상의 배경음악이 ‘지금 이 순간’이었다. 그 노래는 가수 김연우씨가 불렀다. (무척 감동적인 동영상이긴 했지만, ‘당신이 나를 버리고 저주하여도’의 가사가 웬지 맘에 걸렸다. 나의 찜찜함은 12월 19일, 찜찜한 결과로 돌아왔다.) 유튜브의 여러 가수 버전 ‘지금 이 순간’을 찾아 듣던 중, 다른 노래와는 차원이 다른, 전혀 새로운 ‘지금 이 순간’을 듣게 되었다. 홍광호가 부르는, 홍광호의 ‘지금 이 순간’이었다.

4. 진짜로 좋아하게 됐다.

소이진님(소이진님, 오랜만이예요. 안녕~~)이 댓글을 달아줬는데, 노래 부르는 사람이 반반하다고, 잘 생겼다고 했다. 나는 놀랐다. 괜찮은 정도라고는 생각했지만, 잘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좋다는 것(타고난 목청), 노래를 잘한다는 것(다른 뮤지컬 배우들이 옆에서 같이 노래 부르기 싫어한다고 소문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확한 곡 해석, 섬세한 표현력은 인정하겠지만, ‘잘 생겼다?’ 그건 조금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콘서트장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화면 가득 그의 얼굴이 잡혔다. (나는 E3구역 05열 10번이라, 화면이 아니면 그의 얼굴과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노래를 부르는 그.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일순간 난 깜짝 놀랐다.

화면에 잡힌 그의 얼굴이 너무 예쁜 거다. (세종대왕님께 죄송하다. 이렇게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한글을 만들어주셨건만, 내 표현력은 겨우 이정도다.)

그의 얼굴이 너무 예쁜 거다.

난 그의 목소리가 좋아서, 그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듣고 싶어서 공연장에 왔는데, 어머나, 난 그만, 그의 얼굴에 반하고 말았다. 그 때 나왔던 노래가 무엇이었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마리아’였던가, 레미제라블의 ‘Bring Him Home'이었던가. 아님 무슨 노래였던가.

노래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았고, 보이는 건 오직 그의 얼굴뿐이었다.

 

 

 

 

 

 

 

 

(사진 출처는 사진에, 토요일 사진이 아닐 수도...)

 

그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그가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불렀을 때, 나는 어서 그가 눈을 뜨기를 바랬다.

그가 눈을 떴을 때, 나는 그의 눈 감은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는 분명 노래하고 있었는데, 난 그의 노래 소리를 듣지 못 했다.

나는 홍광호의 노래를 좋아해서,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서 공연장에 갔는데, 그 곳에서 나는 정말로 ‘홍광호’를 좋아하게 된 거다. 그를 진짜로 좋아하게 된 거다.

5. 공연 후기

박정현과 함께 부른 곡 ‘Come What May'는 좋았다. 박정현의 솔로곡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도 물론이다. 박정현은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노래하는 그녀를 보니, 노련미가 느껴졌다. 프로였다. 뮤지컬배우 최민철의 무대도 좋았다. 토크는 19금이었지만, 모두들 좋아했다.

2달동안 렛슨 받았다는 색소폰 연주도 좋았다. 아롱이는 피아노고, 바이올린이고 다 패스다. 무조건 색소폰이다.

나는 피아노 치는 남자에 대한 환상이 없다. 잘은 못 치지만, 피아노는 나도 치니까. 그게 뭐,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하는 건 사실, 쪼금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뭐 연습하면 그 정도도 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엄격하고 까칠한 기준에도 불구하고 홍광호의 피아노 연주에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그 이유는, 선곡 때문이다. 홍광호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Billy Joel의 ‘Honesty'를 불렀다. 물론, 완벽에 가까운 라이브였다. 박수를 크게 쳐주었다. 환호와 함께.

가요도 여러 곡 불렀다. 여수밤바다도, 안 되나요~도 좋았다.

하지만, 그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보여주기에는 역시 뮤지컬 곡이 더 맞는 것 같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는 정말 최고였다.

신기한 일은 한 번 더 일어났다.

그가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부를 때, 노래 가사가 그의 눈동자에 새겨지는 게 보였다. 다른 노래를 부를 때도, 각 노래마다 각각 다른 눈빛을 선보여 날 깜짝 놀라게 하더니, 급기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에서는 눈동자에 가사가, 마치 교회 찬양 시간에 ’찬송가‘의 가사가 파워포인트로 두 줄씩 화면에 나오는 그런 일들이, 아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나한테만 그렇게 보이는 게 틀림없다. 지금 생각해도 뭔가.... 싶다.

6. 궁금한 건.

검은 정장의 안전요원들이 사방을 살피는 바람에, 난 홍광호 사진 하나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더냐 하는 거다. 내 주위에서도 사진 찍겠다고 핸드폰 꺼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다른 사람이 잘 찍은 사진이다. 다른 사진들도 많은데, '다른 이름으로 저장'이 안 되는 관계로...

 

 

음원이 곧 나온다고 하는, 홍광호의 첫번째 싱글, 발걸음이다.

그의 말처럼, 그의 콘서트가 내겐 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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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7-0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임태경의 지금 이 순간만을 찾아 들었었는데, 홍광호의 지금 이 순간이 좋다고요? 한 번 검색해 들어봐야겠어요. 불끈!

단발머리 2013-07-08 12:17   좋아요 0 | URL
여러버전 중에 뮤지컬 어워드 때 영상이 좋아요~~ 제가 보기엔요.

임태경은 야들야들 하지요.^^

홍광호는 폭발적 가창력, 미친 가창력, 꿀성대, 뮤지컬계의 아이돌이지요. ㅋㅎㅎ

저는 홍광호의 인기가 더 많아지는걸 원해야 할지,
나만의 사람으로 간직해야할지, 아... 괴롭습니다.
 

그에 대한 내 사랑이 그에게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난 안다. 난 그의 책의, 내가 읽고 있는 그의 책의 5분의 1도 이해하지 못 한다. 난 그가 말하는 '인간 본연의 삶,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자유로운 삶'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난 여기에 그냥 서서, 물끄러미 그를 쳐다볼 뿐이다. 그의 분신, 그의 자식과도 같은 그의 책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의 죽음>

인간에게 죽음은 가장 두려운 문제이자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죽음을, 죽음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인문학자 강신주는 제일 먼저 인간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종교를 갖는 것은 인간이 약하기 때문(82쪽)이라는 것이다. 제일 먼저 그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자들이 나약해졌을 때 죽음을 생각한다는 이유에서다(85쪽). 그렇다면, 이 세상의 삶이 너무 힘들어 자살하려는 친구를 살리는 방법은 뭘까? 강신주는 말한다. 그를 사랑하면 된다고.

사랑해 준다는 것은 만날 때마다 껴안아 주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 아이가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거죠. “안녕, 왔니?” “오늘 머리 모양이 예쁘네.” 이 한마디 말로도 사람은 죽지 않아요. (88쪽)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까운 지인이 자살했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크게 상처받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나는 내 친구에게, 내 소중한 그 친구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그 한 사람’이 될 수 없었단 말인가.

‘너’의 죽음은 나도 파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 이게 우리한테 제일 중요하죠.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너랑 놀고, 너랑 산책하고, 너랑 밥 먹는 것인데 그런 존재가 사라진다면 ‘나’마저도 죽을 수 있어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 너의 죽음인 거죠. 여러분 자신이 죽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진짜 중요한 건 ‘너’의 죽음이에요. (91쪽)

걱정할 것 없는 1인칭 ‘나’의 죽음, 아무런 느낌이 없는 3인칭 ‘그들’의 죽음, 그리고 2인칭 ‘너’의 죽음. ‘내가 사랑하는 너’가 죽었을 때, 이것은 나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 된다. ‘너’의 죽음은 ‘나’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강신주의 마지막 당부.

살아있는 행복은 ‘너’가 있는 곳에서 찾을 수 있으니, 친구든 애인이든 아니면 어떤 시인이든 책이든, ‘너’를 꼭 찾으셔야 돼요. 사랑하는 ‘너’를 꼭 찾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너’,

‘너’를 꼭 찾으라.

내가 사랑하는 ‘너’의 부탁이다.

‘너’를 꼭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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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사 주시는 어떤 분이 있어, 딸롱이랑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보러갔다.

주초만 하더라도, 책을 미리 읽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보니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다섯 권짜리였고, 게다가 첫 번째 책은 이미 대출 중이었다. 대강의 줄거리를 읽어 보고, 주요 테마곡을 몇 번 들어보고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 4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커피숍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배가 고프다는 딸롱이는 치킨베이크를, 나는 까페라테를 주문했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 가자고 딸롱이랑 같이 일어섰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이 됐다. 공연을 보러 온 나도 이렇게 긴장되는데, 배우들은 얼마나 긴장될까.

오늘의 캐스팅, 몬테크리스토 백작 임태경, 메르세데스 윤공주.

 

 

팜플렛을 보며 딸롱이에게 더블 캐스팅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다. 이 사람이 이 사람이랑 할 때도 있고, 저 사람이랑 이 사람이랑 할 때도 있고. 딸은 작게 말했다.

“그런 이 언니가 이 사람이랑 저 사람이랑, 다 뽀뽀해야 되는 거야?”

@.@

응.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고, 노래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노래를 듣고 있는데, 임태경과 윤공주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아, 저 마이크는 무슨 마이크냐. 원래 소리가 좋아서 저런 소리가 나는 거야, 아니면 마이크가 무슨 특수 마이크냐. 무슨 마이크야. 나도 소리 좀 내 보자. 아, 아, 아~’

물론 에코가 들어간 소리기는 했지만,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남녀 주인공의 노래 소리는 정말, 최고였다.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받을 만 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저렇게 예쁘게 화장을 하고, 저렇게 예쁜 옷을 입고, 이렇게 큰 환호를 받으면서, 무엇보다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자신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일까. 돈을 내야 할 쪽은 내가 아니라, 저 쪽인데.

또 생각했다.

영화의 주제와 표현이 우리의 ‘현실’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데 비해, 현실에 비해 훨씬 더 과장된 감정과 표현이 이루어지는 ‘뮤지컬’ 무대에 서는 배우들의 일상은 어떨까. 화려한 무대 뒤, 화장을 지우고, 눈부신 의상을 갈아입은 후의 생활은 어떨까.

클래식 연주 공연이나 다른 공연은 재미없다던 딸롱이도 어제의 공연은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나도 즐거웠다.

임태경과 윤공주의 ‘언제나 그대곁에’를 찾아봤지만, 영상이 없는 듯하다.

여러 배우들의 버전이 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버전은 신성록 & 옥주현.

가장 최근 버전은 김승대 & 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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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6-2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의 이 감동을 제가 부숴버릴 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이것 보셨어요? ㅠㅠ


http://youtu.be/ZvTN91RFxwU


전 어제 티븨에서 처음 보고 충격에 할 말을 잃었던... orz

단발머리 2013-06-28 12:02   좋아요 0 | URL
엄맛!!!!

다락방님은
어떻게
이걸,
이렇게,
빨리,
나에게,
전해 주었나요...

엉엉T.T.

다락방 2013-06-28 12:23   좋아요 0 | URL
미...........미................미안해요......................................

단발머리 2013-06-28 15:17   좋아요 0 | URL











느끼해서.... 엉엉....

다락방 2013-06-28 16:06   좋아요 0 | URL
아니 그러니까 우리 태경씨는 왜 하필 참깨라면에, 아니 라면 광고가 싫은게 아니라 거기에서 참깨라면~ 하고 노래를 부르는게 영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13-06-28 17:55   좋아요 0 | URL
하늘이 육쪽 마늘처럼 6개로 나눠진다해도
절대! 저 참기름라면은 먹지 않을 거예요.

오른쪽 밑에 작은 글씨 '임태경 뮤지컬 배우'는 또 뭐래요.

아앙~~~
 

또 강신주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강남에 살지 않아도 섹시하다.

강신주의 학부때 전공은 화학공학. 석사는 서울대에서, 박사는 연세대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학위를 받았다. 정확히는 중국철학, 동양철학자인데, 서양철학에도 조예가 깊다. 깊은 정도가 아니라,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좌우로 종횡무진, 동서양 고전과 한국의 현대시를 거침없이 인용하고 설명한다. 각 분야의 철학 전공자들이 보기에 강신주의 자르고, 찌르고, 정리하는 여러 가지 논제들에 대해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강신주’만큼 여러 철학자들의 주요 사상과 현대적 해석을 나같은 철학 문외한에게도 쉽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현재까지 인터뷰집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을 포함해 단행본 18권을 써냈고, 총 12권으로 기획된 제자백가 시리즈를 비롯해 다른 저작들도 작업 중이다. 하루에 4명분의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고, 지방 도시 어디에서든 강연을 요청하면,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고, 버스를 타고, KTX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 감히 말한다. 삶과 앎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다, 라고.

이 책의 부제는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욕망’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에 대해 치밀하게 추적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길들이고 자극하여 끝없이 상품을 소비하게 합니다. 그 결과 노동으로 얻은 화폐는 소비되고, 그럼 또다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지요. (21쪽)

우리와 우리 이웃들은 산업자본에 고용되어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내지요. 그리고 노동의 대가로 얻은 임금을 자신과 이웃이 만들어낸 상품들을 구매하는 데 사용합니다. 산업자본의 소비 전략을 통해 결국 자신이 만든 상품을 스스로 구매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동시에 소비자라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물건을 자신의 임금 가치보다 훨씬 더 비싸게 소비한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 핵심 비밀이자 신비입니다. (362쪽)

소비할 때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어, 이젠 그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떤 물건이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아닌 ‘신상품’을 ‘소유’하기 위해, ‘소비’하는 나 자신을 ‘확인 받기’ 위해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우리는, ‘소비’하는 것이다.

시골에서의 단조로운 삶의 환경과는 현격히 구별되는 이런 자극적이고 복잡한 도시의 사건들에 일일이 반응하면, 우리는 대도시에서 하루도 견딜 수 없습니다. 자신과 무관한 모든 일은 그저 냉담히 남의 일로 간주해야 합니다.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는 일도 피해야 합니다. 오직 나와 직접 관련된 일에만 정서적으로 반응할 뿐입니다.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날지라도 신속히 그 원인을 지적으로 파악하여 그 사건으로부터 받게 될 정서적 충격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만 합니다. (85-6쪽)

산업 자본주의는 대도시의 형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생산공간과 소비공간이 하나로 통일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산업자본의 잉여가치가 더욱 증대되기 때문(79쪽)이다. 즉, ‘대도시가 화폐 경제의 본거지’가 되기에, 산업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될 때, 대도시의 등장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이다.

대도시의 생활은 시골에서의 생활과 판이하게 다르다. 시골에서의 삶의 규칙으로 대도시에서 살아간다면, 그는 금새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 반대는 또 어떤가. 대도시의 삶에 염증을 느껴 시골에 가서 생활하게 된다면, 그 역시 시골의 촘촘한 인간관계, 누구네 집에 수저, 젓가락이 몇 개인지도 서로 알고 지내는 시골의 삶에 곧 답답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도시에서의 삶이 주는 선물은 ‘자유’다. 거리를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모른다. 난 혼자 울 수 있고, 혼자 웃을 수 있다. 물론 혼자 밥 먹을 수 있고, 혼자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도시에서의 삶은 자유롭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반대편에는 ‘고독’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리를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모른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 지금 내 마음을, 내 심정과 아픔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커피를 마셔야 한다. 자유롭되 고독하게 살 것인가. 답답하지만 인정 많은 사람들의 관심속에서 살 것인가.

당시 파리 상점들은 눈부실 만큼 화려한 장식들로 매우 유명했습니다. 이것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높이려는 미적 전략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남자 종업원들이 대거 채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32쪽)

이처럼 백화점은 고가의 상품을 사는 사람과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적 욕망을 훈련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주목받는다는 도취감, 그리고 주목받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가 암묵적으로 교차하는 공간이 바로 백화점입니다. (134쪽)

백화점의 초기 형태 아케이드, 특히 19세기의 아케이드는 수많은 노숙자와 창녀들이 빈번하게 출입했던 장소였다. 비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노숙자와 걸인들이 꼬여들었고, 아케이드 안의 남성 손님을 유혹하기 위해 수많은 창녀가 모여들었다. (130쪽) 하지만, 부르주아 사회가 발달하면서 경제적 부를 소비하는 실제 계층으로서 부르주아 가정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131쪽) 백화점의 주요 고객이 중산층 여성으로 상정된 순간, 남자 종업원들의 출현은 당연하다.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친구의 어머니가 백화점 화장품 C넬 매장에 들르셨다. 아이크림이 다 떨어져서 새로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아이크림을 판매한 직원은 친구 어머니에게 ‘무료 메이크업’을 받아보시라고 권했다. 친구가 다른 곳을 구경하고 돌아와 C넬 매장에 돌아와 보니, 어머나! 친구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팔자 주름, 미간 주름, 주름이란 주름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잡티란 잡티는 모두 사라진 모습이었다. 친구 말대로라면 5살은, 아니 10살은 더 어려보인다 했다.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신 친구 어머니는 그 날 C넬 매장에서 ‘무료 메이크업’에 사용된 화장품 몇 가지를 구입하셨다. 몇 가지만 해도 70만원이 훌쩍 넘었다.

여기까지는, 쉽게 그려지는 그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상황이다. 희한한 건 그 다음이다. 얼마 후, 친구 어머니는 C넬 매장에서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안내 전화를 받고, 그 백화점 9층식당가를 방문하셨다. 식사를 대접하기 전, 정말 이쁘게 생긴, 연예인 뺨치게 꽃같이 예쁜 20대 초반의 ‘꽃미남’들이 대거 그 음식점에 등장했다. 그리고는, 어머님들(나이로 보면 확실히 그 꽃미남들의 어머님뻘이시다.)의 한쪽 손을 다정하게 부여잡고, 이번에 새로 출시된 수분 크림을 손등에 콕콕 찍어 바르고는, 곱디 고운 꽃미남들의 손으로 어루만지더라는 것이다. 물론 “너무 촉촉하고 부드럽죠?” 라는 멘트와 함께.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어머님들 거의 대부분 그 수분 크림을 구매하셨다 한다. 모든 분들에게 그 크림이 필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분들이 감동받은 것은 확실한 듯하다. 갈비탕 1인분이 12,000원이던가 15,000원이었다는데, 그 크림은 한 개당 20만원이 족히 넘는 가격이니, C넬은 계산 한 번 야무지게 잘 했다.

옷은 분명 성교와 관련된 직접적인 성적 욕구의 충족에는 도리어 방해가 되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옷은 성적 욕망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요. 성적 욕구의 단순한 충족을 뒤로 미루고 더욱 강한 욕망을 발산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145쪽)

‘성적 욕구의 충족에 방해가 되는 ‘옷’ 때문에, 성적 욕구는 뒤로 미뤄지지만, 오히려 더욱 강한 욕망으로 발산된다‘니, 왜 의식주인가 했더니만, 이래서 의식주인가. 인간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의‘란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백화점 2층은 엘레강스 캐주얼, 3층은 디자이너 부띠끄, 4층은 영캐주얼, 5층은 남성복, 골프의류, 6층은 어린이옷, 7층은 주방용품, 8층은 영캐주얼이다. 맞다. 욕망을 표현하고 발산하고자 할 때, 가장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인간은 털갈이를 할 수 없으니. 맞다, 옷을 갈아 입을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적 욕망들은 그 힘이 너무도 강해서 하루아침에 종식시킬 수 있는 것들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의해 상처받고 있는지를 절실히 느끼기 시작한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더 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이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떠안기전에, 치유의 노력이 곧 시작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432쪽)

자본주의에 의한 상처, 그리고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사실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삶이 다른 어떤 시간의 삶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413쪽)

지금 이 순간을 내일과 미래와 다음 기회와 바꾸지 말자.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자. 행복해하자.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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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6-2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으로 강신주에 엇발을 딛어도 될까요?
단발머리님 강력 추천으로 곧 만나게 될거라는 예감이 들어요.^^

단발머리 2013-06-28 08:50   좋아요 0 | URL
ㅋㅎㅎ 넹, 엇발 내지 한발 내지 두발뛰기 하셔도 완전 만족하실거예요.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는 지점이 다 각각이지요. 일단 강신주님은 제 스탈이죠.
약간 세시고, 강하고, 그러면서도 한쪽 팔로 그러안아 잡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순오기님도 좋아하실까, 궁금해요~~~ *^^*

순오기 2013-06-28 19:42   좋아요 0 | URL
앗 오타~ 첫발을 엇발이라니요 ㅠ ㅠ
쎄고 강하면서도 한쪽팔로 그러안아 주는 스탈이면 완전 로망이잖아요!^^
아이패드로 댓글다느라 엉금엉금~
이젠 골뱅이소면에 막걸리 한잔하러 나가요 ^^

단발머리 2013-06-29 09:39   좋아요 0 | URL
저두 첫발이 엇발ㅋㅎㅎ
아이패드로 댓글달 때, 오타가 우수수지요.

어제 저녁은 좋은 시간 보내셨어요?
아직도 주무시진 않을텐데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요.
침대하고만 이야기 나누는 신랑을 깨워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순오기 2013-06-30 06:04   좋아요 0 | URL
헤헤~ @@
골뱅이소면과 해물파전에 맥주 3병~ 아줌마 둘이 요정도면 됐지요!
배가 너무 불러 남은 안주는 싸와서...아직도 그대로 있네요.
집에서 뭘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오늘은 아버님 생신으로 목포에 갑니다~ ^^
 

작가의 이름만 들어도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소설가는 아니지만, 소설 속 문장같은 기막힌 문장을 구사하는 정혜윤의 책이 그렇다.

독서 에세이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가 내가 읽은 그녀의 첫 번째 책이고, 페이퍼를 쓰진 못 했지만 『침대와 책』도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 책, 『사생활의 천재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은 이렇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인생,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 카프카

매스컴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성공요인을 가지고 있다. 머리가 좋거나, 좋은 학교를 나왔거나 (이전에는 이 두 가지 행운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엔 '돈이 많거나, 좋은 학교를 나왔거나'의 행운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끈기와 열정이 있거나. 그들만의 노하우로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을 이루고,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환호한다. 물론 보고 배울 점이 많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힘이 되는 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각하께서도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난관을 여러 번 이겨내셨던 것을 기억하라.), 바로 지금, 지금 현재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모른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나의 안전과 행복을 확인하는 것처럼 잔인한 것도 없지만,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은 그러기 마련이다. 아니, 나는 종종 그럴 때가 있다.

1. 자기 삶의 천재가 되는 것에 대해서 - 박수용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소몰이꾼이 되어 시골장을 전전하던 한 아이는 밤마다 이 장, 저장을 옮겨 다닌다. 밤새도록 소 두 세 마리와 함께 산을 넘고 고갯길을 걸어가며, 그는 시장의 시간과 오솔길의 시간, 인간의 규칙과 자연의 규칙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는 후에 야생 시베리아 호랑이를 따라 숲을 헤메고, 한 해의 절반을 영하 30도의 나무 위나 땅굴 속에서 호랑이를 기다린다. (53쪽)

세계에서 한 시간도 기록되어 있지 않던 야생의 시베리아 호랑이를 1,000시간 가까이 영상으로 기록한 7편의 감동 다큐멘터리로 프랑스 쥘 베른 영화제 관객상, 블라디보스토크 국제 영화제 특별상 'AMBA'를 수상했으며,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을 출간한 박수용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야기이다. (81쪽)

 

 그때 나는 사슴 뼈를 보면서 숲과 사슴의 역사를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살아생전 지녔을 사슴의 감성과 살아있을 동안의 투쟁과 생애 마지막 순간의 고뇌를 느꼈습니다. 그 뼈를 보면서, 숲 속에 자신의 역사를 외로운 유적처럼 뼈로 남겨놓은 한 생명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인생 전체가 중요하다는 것, 매일매일 불행하다가 어느 한 순간 찬란하게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나는 뼈 한 조각을 보면서 보람이란 것을 어떤 핵심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50쪽)

시베리아 호랑이를 찾아 숲을 헤멘다. 땅굴 속에서 호랑이를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초등학교 4, 5학년 때, 걸었던 밤길을 생각한다. 시끄러운 시장의 시간, 조용한 오솔길의 시간, 시장에서 통용되는 인간의 규칙, 스스로 움직이는 자연의 규칙.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인생 전체가 중요하다는’ 그의 말은 오랫동안 큰 울림이 되었다.

나 역시 한 열흘쯤은 초연하다가도 한 사흘쯤 가슴이 아픕니다. 비트에서 너무나 그리워했던 삶이지만 도시에 돌아오면 그 삶은 나를 또 슬프게 합니다. 자연 다큐를 하면서 나는 제작비 문제로 고생했고 같이 일하는 동료를 잃기도 했고 겨우 제작비를 타내면 ‘추후 타사와 5년 동안 방송 행위 금지’ 같은 이상한 서약서를 요구받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때 오솔길의 긴 흐름들, 비트에서 지낸 시간들, 호랑이와 함께 지낸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눈 내린 아침 전나무 끝에 매달린 아침 햇살을 생각합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더 큰 것이 있다. 더 큰 것이 있다. 사소한 것들은 잊힌다. 그 오솔길의 끝에.’ (68-9쪽)

 

2.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 변영주 영화감독

변영주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밀애」, 「발레교습소」, 「20세기를 기억하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 「화차」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 「낮은 목소리」의 주인공 강덕경 할머니에게서 시작된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나자 돈이 딱 떨어졌습니다. 문제는 강덕경 할머니가 일 년 반을 살았다는 겁니다. 마지막 6개월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응급실에 실려갈 때마다 복잡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죽어도 안도, 살아도 안도였습니다. 인간이 이래도 되나 반, 다행이다 반.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돈이 없었던 겁니다. .... 그래서 도망치듯 시나리오를 한 편 썼습니다. 시놉시스를 재밌어하는 제작자들이 있으면 미팅을 갖는 시네마트가 있는데, 저는 도망치듯 그곳에 갔고 정확히 3일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너, 나 안 지키고 딴 데 가서 딴 일 하는구나. 나 확 죽어버린다.' 꼭 이러고 돌아가신 듯했습니다. 「해운대 엘레지」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함께 있자고."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이상해진 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91-2쪽)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기억들을 영화로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강덕경 할머니. 변영주는 강덕경 할머니를 만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돈이 없는 거다. 할머니를 계속해서 돌볼만한 돈이 떨어진거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할머니가 회복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열 두 번씩 교차되는 가운데, 그녀는 그만 할머니의 손을 먼저 놓아 버린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그 때부터 방황은 시작된다. 자신을 학대하고, 원망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이젠 자신의 내면을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자기를 용서하고, 다시 자신을 사랑하고,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도시의 소리,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큰 소리, 시끄러운 소리들. 그 소리들에 답하지 않는다. 그 소리들을 가만히 가라앉힌다.

그리고 듣는다.

숲의 소리, 자연의 소리, 조용한 소리, 내면의 소리, 작은 소리.

내 안의 침묵이 끝내 자기 자리를 찾았을 때, 그 소리는 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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