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쓰기 

이동진의 빨간 책방 39회를 들었다. 김영하의 책 읽어 주는 시간은 김영하의 목소리 때문인지, 내가 청취한 회차가 그랬는지 (위대한 개츠비편) 참, 진지하고 잔잔했다. 이동진의 빨책 39회는 소설가 김중혁씨가 게스트로 나왔는데, 무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대한 이야기였다. 게시판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저급유머가 생각보다는 적은 회차였음에도,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모범생인듯 하지만 은근 삐딱한 두 남자의 이야기는 맛깔나게 재미있었다. 특히, 김중혁 작가의 초저음 베이스 목소리는 듣기 좋았다.  

하루키를 동네형 또는 하형이라고 부르는 김중혁 작가가 말해주는 하루키의 일상은 단순하면서도 대단했다. 새벽 3-4시에 일어나서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LP집에 갔다가 (김작가의 표현 그대로다. 음반 판매하는 곳?) 조깅을 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두부, 낫토, 생선을 사가지고 와서는 맥주 한 잔과 함께 먹는다. 9시쯤 잠자리에 든다. 하루키는 인터넷을 안 한다. 하루키는 써핑도 안 한다. 

하루키의 어마어마한 작업은 이런 성실성과 근면성에 근거한 것이라는데, 하루에 보통 원고지 10매 정도를 쓴다고 한다. 쓰는 걸로 한다면야, 스티븐 킹을 빼놓을 수가 없지. 엄청난 다작인데다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도 수두룩하다. 그 역시, 매일 매일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이 쓸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기도 그게 의문이라고. 다른 작가들은 그렇게 안 쓰면 남는 시간에 도대체 뭐하냐고. 이런 멘붕 질문을 했다고 한다. 작가들, 부지런한 작가들의 뇌는 정말 일반 사람들과 다른가. 그 많은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 



 

2. 이승우님과 다락방님 



 

 

 

 

 

 

 

 

 

 

 

 

 

 

 

2009년이던가, 도서관에서 그의 책들을 발견했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살다>. 책들은 새 책처럼 깨끗했고, 하늘색, 노란색 자그마한 책들은 예뻤다. 난 '이승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의 책 두 권을 읽었다. 이런 구절들을 적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문학의 문장은, 실용문과 달라서 정보의 직접적이고 빠른 전달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문학은 간접적이고 우회하는 방법을 택한다. 할 수 있는 한, 소통을 지연시키는 것, 그것이 문학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고 말하는 것이 문학의 언어이다. 호수는, 내 마음의 상태를 은유한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64쪽) 

내가 데뷔작을 쓸 무렵(결핵 요양을 한답시고 빈둥거리던 1981년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짜증스러웠다) 글의 길이 막힐 때면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몇 번이고 들추어 읽던 책이 <소문의 벽>과 바로 <당신들의 천국>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길이 보였다. 읽던 책을 덮고 원고를 쓰고, 원고를 쓰다 말고 책을 다시 집어 드는 일이 반복되었다. (소설을 살다. 38쪽)

다락방님은 여러 번 작가 '이승우'에 대해 말했다. 작가 중의 작가라고, 이승우 작가님이 작가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나도 그의 작품에 여러 번 도전하려 했지만, 사실 그의 작품은 편하게 앉아 쉽게 읽을만한 것들이 아닌 것 같아 좀처럼 시작하지 못 했다. 이번에는 다락방님의 추천으로 <지상의 노래>부터 읽어보마 결심했다. 


 

3. 아껴서 읽고 싶은 책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좀 더 노골적인 착각이 이루어졌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예전 주일학교 여선생을 보았다고 느꼈다. 그녀가 주일학교 여선생을 정말로 닮았는가, 얼마나 닮았는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많이 닮았을 수도 있고 조금 닮았을 수도 있고 전혀 닮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로 만난 사람이 과거의 누군가와 닮아서 그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에게 향하게 한 것이 아니라 새로 만난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과거의 누군가가 불러내졌다는 것이다. 이 길은 새로 만난 사람을 통해 과거의 누군가에게 가는 길이 아니라 과거의 누군가를 통해, 그를 이용해서 새로 만난 사람에게 가는 길이다. 과거의 누군가에게 가기 위해서는 새로 만난 여자가 과거의 그  사람과 실제로 닮아야 하지만, 새로 만난 사람에게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녀가 과거의 누군가와 닮아야 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누군가와 닮았다는 발견 혹은 암시만으로 충분하다. (48쪽) 

떠오르지 않은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연락할 수 없고, 떠오른 세 사람은, 떠올랐음에도, 혹은 떠올랐기 때문에 연락할 수 없었다. 대개의 사정이 그렇다. 연락하는 데 거리낄 이유가 없는 사람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를 이유가 없기 때문에 떠오르지 않는다. 연락하는 데 거리낌이 있거나 아예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떠오른다. 연락할 수 없기 때문에 떠오르고, 떠올랐기 때문에 연락할 수 없다. (309-310쪽) 

그의 문장은 진지하다. 그의 문장은 꾸밈이 없다. 그리고, 아주 찰지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그의 걸음을 따라가면서 난 생각했다. 아, 아껴서 읽는다는게 이런 거구나. 한 문장, 한 문장 내가 읽어버려 이제는 내 뒤로 던져지는 문장들이 이렇게 아깝구나. 너무나 아쉽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겨갔다. 

박 중위의 외출이 잦아진 것은 연희를 알게 된 다음부터였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일어날 거라고 예상되는 모든 증세가 그에게 나타났다. 그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한 상대에게 할 거라고 집작되는 모든 행동을 다 했다. 그는 자주 하늘을 쳐다보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공부를 하지 못했고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주 편지를 썼고 선물 공세를 했고 그녀의 집 근처를 배회했다. 때때로 호소했고 가끔 윽박질렀다. 퇴근 시간에 맞춰 미장원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기다리기도 했다. (58쪽) 

나중엔 박 중위의 사랑이 왜곡된 형태로 표현되어 아쉽기도 했지만, 적어도 58쪽에서의 박 중위는 순수한 모습이다. 하늘을 쳐다보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늦게까지 잠들지 못한다. 때때로 호소하고 가끔 윽박지르는 사랑.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부장은 준비해 온 것을 쓸 수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한 대화를 이어 가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안위했다.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편안히 지내시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헬기에서 내리기 직전에 부장이 그 한마디를 했다. ...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편안히 모시겠다는 말을 한정효에게 다시 한 사람은 장이었다. 그는 불편하지 않게 모시겠다고 말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지시대로 했다. 철저히 지켰고 감시했고 보고했다. 그러나 편안히 모시지는 않았다. (195쪽)  

권력의 자리를 떠나는 사람. 그리고 이제 막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 
이제 막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이제 권력의 자리를 떠나가는 사람에게 말한다.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편안히 지내시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말했을지 몰라도, 이 말을 했던 사람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편안히 지내시도록 조처하는게 어떤 것인지"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이 간단한 문장의 1%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까. 진심이라는게 있었을까. 의문이 생긴다. 이 책엔 좋은 문장이 참 많다. 좋은 문장이 참 많지만, 이 문장처럼 날 슬픔에 빠져들게 하는 문장은 없었다. 

세상의 권력은 그들의 구별된 공간인 천산을 침범하고 파괴하여 카타콤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침범하고 파괴하는 권력이 행사되는 이 세상이야말로 카타콤에 다름 아님을 그들의 구별된 삶과 특별한 죽음으로 증거했다. (346쪽) 

세상이 자신들을 버리기 전에, 세상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버리고, 세상을 버렸던 천산 공동체 형제들. 작은 방에 한 사람씩 고요히 누워, 자신들을 부르는 나팔소리를 기다린다. 나팔소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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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8-2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으니 저는 [지상의 노래]를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저도 지상의 노래 읽으면서 몇 번이나 멈췄었어요. 아, 이거 다 읽기 싫은데, 다 읽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말이지요. 뒤에 책장이 적어질수록 안타깝더라고요. 저는 이 문장이 아주 자지러지게 좋았어요.


헤브론 성이 그에게 도피성인 것은, 그가 세상에서 범한 과거의 죄로부터 그를 보호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앞으로 범할 죄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기 때문에 더 그랬다. 지은 죄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을 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는 도피성이 필요했다. (p.115)


지은 죄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을 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도 도피성이 필요하다니. 캬~ 정말 죽이지 않아요? 인간 내면의 깊숙한 부분을 아주 푹- 찔러요.

단발머리 2013-08-28 13:12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 좋은 책 추천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승우 작가님껀 아껴서 하나하나 읽어볼 생각이예요.

저도 이 구절 기억나요.
지은 죄 뿐 아니라, '지을 죄로부터'의 격리. 너무 멋지고, 근사해요. 전 <생의 이면>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는데, 이승우 작가님이 신학을 공부하신것 같아요. 맞나요?

인간, 신, 구원, 죄에 대한 통찰이 아주 엄청나죠.
한국의 '나다니엘 호손'이라 쓰고, '이승우'님이라 읽습니다. *^^*
 


1. 가족 삼각형 

2007년이던가, 아니면 2008년 처음 읽게 된 그녀의 책 <아무도 기획하지 않는 자유>는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다. '공부하며, 밥 먹으며, 함께 생활하는 지식공동체'가 실제적으로 가능하다는 걸 그녀가 실제적으로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3년 전, 흥분해서 내게 그 책을 소개했던 신랑은, 그 때의 자기를 잊어버리고선 "자기야, 이것 봐! 자기야, 이것 좀 봐!"하며 호들갑을 떠는 날 심그렁하게 쳐다봤다.

 

 

 

 

 

 

 

 

 

 

 

 

 

 

삶을 앎으로, 밥과 지식을 함께 나누며, 생활하는 그녀와 친구들의 좌충우돌 공동체 생활도 흥미로웠지만, 나의 시선을 끈 건, 바로 이 대목이었다. 

"자기 복제는 아메바도 하는 일이다.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만 쏟아지는 애정과 관심이 뭐 대단한 일이냐." 
 
오래전이라, 그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같다. 그 때도, 지금도 난 그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근자에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왜곡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부모가 젊건, 나이가 많건 큰 차이가 없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무한대, 무한정, 무조건이다. 

마음 속 작은 소리로, '작가님은 자식을 안 낳아봐서 그래요.'라고도 말하고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녀의 말이 옳다. 본능에 충실한 삶, 자식에게만, 오직 혈연적 관계가 확인되는 자기 자식에게만 애정과 에너지를 쏟는다면 그 사람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얼마나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장화홍련전>의 계모 허씨 부인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다. 다만, 그녀의 지극한 자식 사랑은 자신과 자식의 파멸을 가져왔을 뿐이다. 

도시의 발달과 더불어 핵가족이 정착되면서 효, 우정과 의리, 이웃과의 정, 야생동물 및 천지만물과의 연대감 절기에 따른 신체적 리듬 등 다소 비효율적이고(정량화가 어렵고) 애매한 가치와 관계들은 한큐에 정리되었다. 이제 사람들의 욕망은 핵가족의 일촌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다시 말해 스위트 홈의 망상이 무의식의 영토를 점령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언덕 위의 하얀집, 앞치마를 두른 미모의 엄마, 사무직 아빠,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치는 아이, 이것이 핵가족이 연출할 수 있는 최고의 명장면이다. (나의운명사용설명서, 163-4쪽) 

음양오행이 펼치는 '별들의 생성소멸'이 졸지에 가족삼각형 안에 갇혀 버린 형국이다. (나의운명사용설명서, 167쪽)

일단 내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 그게 부모된 나의 의무이자 도리이다. 행복한 사람,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으로, 바른 사람으로, 당당한 사람으로 잘 키워내야 한다. 사회에 도움, 아니, 사회에 도움까지는 됐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키워내야 한다. 그리고. 그리고 반드시. 나의 에너지와 애정은 가정의 삼각형을 넘어서야 한다. 

넘어서야 더 강력해지고, 넘쳐나야 더 풍성해진다. 



2. 팔자를 바꾸고 싶다면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운명을 안다는 건 '필연지리'를 파악함과 동시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당연지리'의 현장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해진 것이 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31쪽) 

따라서 운명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일상의 리듬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가. 이 일상을 건너뛰고 다른 방편을 쓰고자 한다면 그건 다 사술이다.... 요컨대, 일상이 습속을 바꾸고 습속이 다시 몸의 생리로, 몸이 또 인연의 장을 바꾸고 운명을 바꾼다. 출발은 어디까지나 일상이다. ......단언컨대, 핵심은 오직 일상이다. 일상의 리듬과 몸의 강밀도, 인생과 우주의 통로는 오직 이뿐이다. (124-6쪽) 

저자의 말 대로 이건 생각보다 쉬운 방법이다. 일상의 리듬을 바꿀 때,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일상이 습속을 바꾸고 습속이 몸의 생리로, 몸이 또 인연의 장을 바꾸고, 결국에는 운명을 바꾼다. 일상을 통해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일상을 바꾸어야겠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조금 난감하다. 운동을 시작한다. 규칙적으로 독서를 한다. 시간을 정해 집안을 정리한다.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 건가. 

그녀가 전해주는 팁 한 가지. 

일간이 뭐건, 사주팔자가 어떤 격과 형식을 가졌건 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취해야 하는, 또 취할 수 있는 보편적 용신이 있다. 약속과 청소다! 약속을 지킨다는 건 시공간과 몸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또 말과 행을 일치시킨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한다. ... 청소가 중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유불도를 막론하고 동양의 공부법은 청소를 '쿵푸'의 기초로 삼았다. 쓸고 닦고 정돈하고...  요컨대, 약속과 청소,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인생역전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255-6쪽)

이것은 내가 세상에서 들어본 '청소 좀 해라'의 권유의 말 중, 최고이다. 


 
3. 엄마복은 공부운 

일간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열 가지의 힘을 '십신'이라고 하는데, 십신, 팔자의 사회적 표상은 이렇다. (133쪽)

 

 

 

 

솔직히 나는 여덟 개의 카드에서부터 이해가 안 됐다. 그냥, 저자가 가는대로 설렁설렁 따라가는 거다. 표를 보면서도 이해는 잘 안 되는데, 흥미로웠던 건, 똑같은 조건이라도 남자와 여자에 따라 각 십신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어느 가정의 아들과 딸이 있어, 엄마, 아빠가 같고 (같고? 엥?), 다니는 초등학교가 같다 하더라도, 무엇보다도 생물학적 성에 의해서 십신의 표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거다. 

식신은 낳는 기운이니 여성에게는 자식이고, 남성에게는 처가 식구들 혹은 할머니 등에 해당된다. (내가 할머니를 낳는다고? 이것이 우주의 아이러니다. 돌고 돌다 보면 할머니가 곧 나의 자식이 되기도 한다.) (152쪽) 

여성한테 남편이나 애인은 관성. 나를 극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지위나 조건을 규정하는 토대에 해당한다. ... 그럼 남성에게 관성이란? 바로 자식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모양이다. (153쪽)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이 부분. 

공부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충전이고, 문서는 만물을 낳아 주는 대지의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게 육친으로 따지면 엄마란다. 하여, 엄마복이 있다는 건 공부운이 좋다는 뜻이 된다. (154쪽) 

요즘애들은 엄마복이 많아서, 공부운이 억수로 좋다. 학원 3개는 기본. 웃어야하나, 울어야하나.
 
이제는 가야겠다. 빨래가 다 됐다고, 세탁기가 띵동띵동~~ 노래를 하다가, 지쳐서 노래하기를 멈춰버렸다. 빨래하고, 아니지, 세탁기에게 빨래를 시키고, 널고 개서 옷장에 넣는 건, 약속을 지키는 것에 해당되는지, 청소하는 것에 해당되는지, 그녀에게 묻고 싶다. 

고미숙,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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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 치킨

첫 아이가 18개월이 되었을 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아침 시간이 그렇게나 정신없고 바빴는데, 막상 아이와 둘만 지내려니, 시간은 참 더디게 느릿느릿 흘러갔다. 기준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려 읽어본 최신 육아서에 의하면, 아이들의 어휘력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엄마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중에서도 고급 어휘는 일상언어보다는 '책'을 통해 습득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다. 읽어주고, 또 읽어줬다.

아이와 말할때도 아이들의 언어, 일테면 '맘마'나 '빵빵' 대신 '밥', '자동차'처럼 어른들이 쓰는 어휘를 그대로 사용했다. 나는 원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나만의 관객, 내 아이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해대고 또 해댔다. 하다하다 이야기거리가 떨어지면, 집에 있는 '치킨집 안내지'를 읽어주곤 했다. 

"이거 봐. 이건 후라이드 치킨이야. 튀김옷을 입혀서 기름에 튀긴 거야. 가격은 11,000원. 이건 '양념치킨'이야. 이건 '후라이드 치킨'에다가 매콤한 양념을 입힌거야. 가격은 11,000원. 보통은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이렇게 주문하지. 그렇게 하면 12,000원이야." 
무슨 중요한 이야기라고,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이야기를, 말 그대로 경청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어휘는 점점 빈약해져갔다. 엄마와 18개월 아이 사이에 할 말이란 게.... 
밥 먹자, 손 씻자, 책 읽어줄까? 코~자자, 말고 얼마나 많이 있을까.   

2. 번역물 

우리가 읽는 책들 중 많은 수가 '번역물'이다. 세계 문학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최신의 사회과학서, 경영경제서적 대부분도 번역물이다. 

고 이윤기 선생님처럼 (다른 분들도 많이 계실텐데, 이름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외국 작품을 우리말로 감질나게 번역해주시는 분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번역물'에는 '번역가'의 해석이 개입한 상태다. 원작자의 의도가 최대한 반영되었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최대한'이다. 

어휘 또한 마찬가지다. 번역 작업이라는 게, 완벽한 일대일 대응을 통해 이루어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대일 대응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번역가'의 역량에 따라, 독자들은 어려운 책을 쉽게 읽을 수도, 쉬운 책을 어렵게 읽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초고 자체가 한국인에 의해 쓰여진, 한글로 쓰여진 책들이 소중하다. 번역가들의 한글사랑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작가의 의도가 정확히 전해진다는 면에서는 아무래도 '한글로 된 책'들이 낫다.   

3. 육박해 들어가다 

 

 

 

 

 

 

 

 

 

 

 

 

 

 

 

 

육박하다 (肉薄--) : 바싹 가까이 다가붙다 


나는 이 단어를 강신주의 책에서 처음 보았다. (무식한 건 자랑이 아니라지만, 솔직한 건 자랑이다.^^) 

육박하다. 일단 이 단어는 한자어인데, 한자들도 아주 단단해 보인다. 한자사전을 찾아보니, '육'은 3번 뜻, 몸으로, '박'은 8번 뜻, 가까워지다로 해석되는 듯하다. 그래서, 뜻은 바싹 가까이 다가붙다. 소리내어 읽을 때, 단어가 주는 강렬한 느낌도 좋다. 육박하다. 육박해 들어간다. 

그래서 인문학을 읽을 때는 그게 시인이든 철학자든 영화감독이든 간에 그 사람의 정신성에 육박해 들어가야 해요. (54쪽) 

결국 인문학 고전을 읽는다는 건 나의 삶이 어떤 철학자나 인문학자에 육박해 들어가는 건데, 내가 시를 못 읽어내고 영화를 제대로 못 보고 철학 책을 제대로 못 읽는다는 건 그만큼 내 삶이 심화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55쪽)  

철학은 한 사람에게 육박하려고 하는 것인데요. 지금 전문화된 분과를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 그게 철학자의 역할이죠. (61쪽) 

저는 그런 걸 고민해요. 언어를 음악적 리듬에까지 육박시키고 싶다는. 좋은 소설가들은 그 리듬이 있거든요. (184쪽) 

괴테의 작품을 우리가 고전이라고 하는 것은 괴테가 보편적 공감의 구조에까지 육박해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괴테가 괴테다운 것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고요. (214쪽) 

인문학은 흉내내는 게 아니라 고유명사에 육박해 들어가는 거라는 것. 그걸 배우고 책을 읽었기에 나름 성공한 거예요. 드디어 이제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게 된 거죠. 이제부터는 제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고요. (215쪽) 

무려 철학박사 강신주도 '육박하다'라는 단어를 좋아하는가 보다. 좋아하다, 좋아하다 보니, 이제는 그가 쓰는 단어도 좋아한다. 이렇게. 

그런데, 저번주에는 '고미숙'의 책을 읽다가 이 단어를 또 만나게 되었다.

 

 

 

 

 

 

 

 

 

 

 

 

 

 

강의 변경을 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들었는데, 그때 얼떨결에 <춘향전>, <홍길동전>을 읽으면서 인생행로가 급선회하게 되었다. 난생 처음 원전으로 읽은 고전들은 기묘한 울림으로 내 신체에 육박해 들어왔다. (21쪽) 

반가웠다.^^

 

이제 응용편.

강신주의 모든 책이 내 삶 깊숙히 육박해 들어온다.

강신주는 말한다. 
인문학 고전 읽기를 통해 네 삶이 철학자, 인문학자에 육박해 들어갈 수 있도록, 네 삶을 더욱 심화시켜라.
육박해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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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3-08-22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인의 일상사가 늘 '육박전'에 가까운지라 저는 익숙한 단어입니다만. ㅋㅋ

단발머리 2013-08-22 11:12   좋아요 0 | URL
ㅋㅎㅎㅎ 야클님~~

혹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예전에 다락방님 서재에 놀러갔는데, 야클님이 한 줄짜리 댓글을 남기셨지요.

"글 남기려고 백만년만에 로그인하는 이 마음을 알아주~~"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혼자서 막 웃었어요.
야클님, 영광입니다.^^ 로그인해서 들어오셨군요.
아이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요, 저는 '육박전' 코앞입니다. ㅎㅎㅎ

다락방 2013-08-2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페이퍼 엄청 좋아요, 단발머리님. 추천!

조카가 우리집에 오면 우리엄마, 그러니까 조카에겐 할머니가 밥을 먹여주거든요. 어느날 여동생이 조카에게 밥을 먹이려는데 조카가 '엄마가 믹여줘' 라고 하더래요. 믹여줘라니, 믹여줘란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생각해보니 딱 우리 엄마더래요.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더니 엄마는 결코 믹여줘란 말을 한 적이 없으시단 거에요. 먹여줘 인데 왜 믹여줘 란 말을 쓰겠냐면서요. 그런데 그 뒤로 조카가 와서 밥을 먹을 때마다 우리 엄마가 이러시더라고요.


이리와, 할머니가 밥 믹여줄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것 같아요. 본 그대로, 들은 그대로를 따라합니다.


그나저나 치킨 천단지라니, 참신한데요! 우리 조카는 치킨 전에 족발..을 먼저 배웠던것 같아요. 하핫.

단발머리 2013-08-22 10: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애들은 정말 뭐든지 잘 배워요. 생존을 위해서 그런거겠죠?

헤헤, 치킨 전단지만이 아니구요. 종이란 종이는 다 읽어줬거든요..
족발은 가르칠게 별로 없네요. 대자, 중자, 소자. 아니면 보쌈 ㅋㅎㅎ

다락방님 조카 애기할 때마다 항상 궁금했는데, 그 때 사진 한 번 보고 나도 왕팬됐어요.
저도 사실, 겁나게 이쁜 딸을 키웠거든요. 근데.......

다락방님 조카 넘~~~~ 이뻐요. 이모의 미모던가, 엄마의 미모던가, 아빠의 준수함이던가.
확인만 남았군요.ㅋㅎㅎㅎㅎ

mira 2013-08-2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강신주님의 글보고 육박이 이처럼 좋은의미구나를 알았는데 ㅎㅎ, 저도 이분의책 좋더라구요

단발머리 2013-08-22 16:0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mira-da님. 반갑습니다. ^^

제가 배운 단어가 '육박하다' 뿐이겠습니까마는, 전 특히 '육박하다'라는 단어에 끌리네요.
저도 강신주를 좋아해서요.

앞으로 mira-da님이랑 강신주 얘기 좀 많~~이 하고 싶네요.

감은빛 2013-08-2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에게 치킨집 안내지(보통 찌라시라고 하죠?)를 읽어주는 모습이 정말 재밌어요.
막 제가 우리 아이에게 읽어주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

단발머리님의 이 재밌는 글이 제게 육박해 들어오네요.
즐거운 금요일 밤, 편안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단발머리 2013-08-26 13:01   좋아요 0 | URL
네..저는 이렇게 일상이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치킨집 안내지도 책처럼 진지하게 읽어주죠.

감은빛님, 즐거운 주말 되셨나요?
저는 주말도 좋은데요, 조용한 월요일 아침도 좋네요.
아이들이 학교 가서는 아니구요~~~~~
 

1. 엄마와 딸

요즘 들어 딸롱이와 같이 읽는 책이 부쩍 많아졌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서도, 딸롱이의 책 읽는 수준이 높아서라기보다는 내 수준이 낮아서이다.

처음에는 딸롱이 독서모임에서 <엄마 발표 시간>을 준비하다가 그렇게 됐는데, 요즘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내가 시작한 책이다. 도서관에서 1권을 빌려와,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만화의 힘이라고나 할까. 조금 어려운 내용이더라도 만화이기에 만만히 보고, 시작할 수 있다. 만화 작가님들, 죄송합니당^^), 그 다음에는 신랑이 읽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딸롱이가 합류했다. 나는 대부분 1번 읽고 마는데, 딸롱이는 2번은 기본, 3번씩 읽은 책도 꽤 여러 권이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역시 내가 추천한 책이다. 위대한 개츠비 구매시에, 서비스로 받게 된 책인데, 친구 만나러 가는 길에 들고 나갔다가, 친구 만나는 재미만큼 큰 재미를 안겨 주었다. 그날 밤, 딸롱이에게 지나가는 말로 앞부분을 살짝 이야기해 주었는데, 많이 좋아하며 자기도 읽겠다고 했다.

 

 

 

 

 이 책은 딸롱이가 먼저 읽은 책이다.

2학년 때던가, 고전도 읽으면 좋은데, 하며 도서관에서 <심청전>을 내밀었다. 조금 읽어보던 딸롱이는 이 시리즈가 꽂혀 있는 자리로 가서 목록을 살펴보고는 <춘향전>을 대출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렇게나 열씸히 <춘향전>을 읽어댔다. 내가 도서관에서 슬쩍 봤을때는, 2학년인데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게 웬걸, 초등 2학년 어린이는 ‘어화 둥둥 내 사랑’을 그렇게나 좋아할 수 없었다.


저번주에는 같은 시리즈 중, <장화홍련전>을 집어들더니, 한 자리에 그림처럼 앉아 열독을 해댄다. 내 책이 있었지만, 나도 그 책을 집어든다. 생각보다 재미있다. 딸애가 조용히 속삭인다.

“거봐, 재미있지?”

2. 더울 땐 역시 스릴러

“누, 누구냐? 사람이냐 귀신이냐!”

이대로 물러날 순 없었다. 정동호는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질렀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림자처럼 형체가 불분명한 귀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동호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귀신을 노려보았다.

“아니, 너는?”

귀신은 어여쁜 여인이었다. 연두색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자태가 마치 꽃봉오리 같았지만, 기운은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한여름인데도 소름이 돋을 만큼 냉기가 흘렀다. 여인은 정동호 앞에 서서 공손히 절을 올렸다. (155쪽)

 

찾아온 여인은 홍련이었다. 언니의 어이없는 죽음을 대하고, 밤마다 연못 주위를 떠돌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원통함을 풀기위해 관아를 찾은 혼령이었다.

장화와 홍련의 억울한 사정이야 백분 이해하지만, 이들의 등장에 모골이 송연해 이 세상을 하직한 관아의 새 부사들도 안 됐다. 정동호처럼 심기일전했어야 하건만.

<장화홍련전>에서 제일 서늘한 이야기는 계모 허씨의 행적들이다. 사람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오직 자기 자식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 대해 질투심이 폭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울 땐, 역시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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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여름처럼 더운 여름이 있었나 싶다. 어떻게 여름은 매해 더 더워지는가.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도 방안은 낮의 열기로 후끈하고, 어제는 안방 옆 수납장 있는 곳으로 갔는데, 바닥이 난방을 한 것처럼 뜨듯하기까지 했다. 이열치열로 이겨낼 수 있는 더위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본다.
 
이럴 때는 역시 책읽기를 통해 상상의 세계로 탈출하는 게 최고다. 나는 여름에 읽는 책과 겨울에 읽는 책들을 나름 분류해 놓고 있다.    

2. 여름 독서의 특징 : 날도 더운데, 내용이 지루하면 체온 상승의 불운이 찾아 올 수 있다. 재미있는 책이면 좋고, 약간 가벼운 내용의 책도 좋다. 배경이 겨울이면 좋겠지만, 다른 계절이어도 상관없다. 다만, 문체는 시원해야 한다. 



1) 김훈 <남한산성> 

 


김훈의 소설은 모두 좋아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남한산성>이다. 사실, 김훈의 작품은 모두 읽어야 함에도, 아직 다 읽지 못 했다. 그의 작품 중,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은 <칼의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칼의 노래>를 읽던 중 불편했던 순간이 많아, 그보다는 <남한산성>을 더 좋아한다. 

작품의 배경이 겨울이라서 여름 독서에 적합하다기 보다는,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 때문에 시원한 책읽기가 가능하다. 서늘한 문체가 1월의 칼바람을 만나, 가슴 속 깊이 시원하게 해 준다. 

 

 

 

 

2) 에드가 알렌 포 <우울과 몽상> 

 


아직 더워지기 전, 신랑이 이 책을 들고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여름엔, 이런 거 읽어야지." 

2학년 때였나, 변변찮은 영어실력으로 <검은 고양이> 를 읽어가던 중, 마지막 충격반전에, 나의 독해 실력을 다시 한 번 의심하며, 페이지를 뒤적였던 기억이 있다. 

등골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좋아한다면, 여름엔 에드가 알렌 포가 최고다. 

 

 

 

3. 겨울 독서의 특징 : 겨울의 밤은 여름의 밤보다 길다. 겨울의 밤은 일찍 시작해, 늦게서야 겨우 끝난다. 또 여기저기 놀러가고 싶은 여름보다는 겨울은 실내에 있으면 더 포근한 느낌이 든다.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기에, 장편소설도 도전해 볼 수 있고, 만연체의 문장도 큰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1)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일단 러시아 소설은 겨울에 읽어야 한다. 작품이 잉태된 곳이 겨울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이름 때문에. 이름 때문에 겨울에 읽어야 한다. 

로지온 로마노비치/로마니치, 로쟈, 로자까는 라스꼴리니꼬프이고,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바, 소네치까는 소냐이다. 이건 또 어떤가. 아말리야 표도로브나/이바노브나/류드비꼬브나는 립빼베흐젤 부인이다.  
 
더운 여름에 주인공 이름이 헛갈려 책 앞 페이지를 여러번 왕래하다 보면 체온 1~2도 상승한다. 

2) 조정래 <태백산맥> 

 


장편을 읽기엔 역시 겨울이다. 긴 겨울, 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1권, 2권, 3권 해치우다 보면, 어느새 봄이 찾아온다. 약간의 인내심을 더해 3월말까지 장편을 밀어붙여본다면, 10권의 장편소설은 한 해 겨울에 가뿐히 완독할 수 있다. 

 

 

 

 

 

 

 

3) 알베르 카뮈 <이방인> 

지중해의 뜨거운 햇볕이 말 그대로 작열한다. 그가 왜 살인을 했던가. 뜨거운 태양 때문 아니었나.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 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69쪽)  

 

 

 

 

 

 

 

 

4. 그런데, 지금... 

1) 강신주 <김수영을 위하여>  


 

 

몇달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반정도 읽고 반납했는데,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에서 이 책에 대한 강신주의 애정을 새삼 발견하고는, 처음부터 다시 읽는 중이다. 내 사랑이 그에게 가 닿을 수 없더라도, 나는 내 사랑을 멈추지 않으리라. 

 

 

 

 

 

 

 

 

 

2)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이야말로 여름 독서에 적합하다. 유쾌하고, 발랄하다. 그녀가 말한대로 문체가 그녀 자신, 그녀의 몸 자체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작품 속에서, 박지원도 열하의 더위에 헉헉대고 있다는 것. 

 

 

 

 

 

 

 

 

3)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후반부로 갈수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적나라해지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베르테르가 항상 고뇌에 차 있었던 건 아니고, 그도 사랑으로 인한 기쁨을 누렸던 때도 있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한다. 적확히는 외출용이다. 밖에 오래 있을 게 아니고, 잠깐 외출할 때 가방 속에 챙기는 책이다. 근래는 가족들과 함께 외출하는 경우가 많아서, 들고는 다니는데, 읽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여름이 다 지나면, 독서의 계절 가을이 찾아온다. 몇번의 기사를 기억해 보면,  가장 책을 안 읽는 계절 내지는 책구매가 가장 적은 계절이, 바로 독서의 계절 가을이라고들 한다. 

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메뚜기도 한 철이라, 더위를 식힐 시원한 독서를 해야겠다. 

 

하지만, 하지만...

 

아~~~ 너무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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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8-1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이문열의 초한지를 읽고 있습니다. 어디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이나 시원한 카페에서 책읽는 것이 가장 좋더군요.

단발머리 2013-08-17 08:10   좋아요 0 | URL
저도 시~원한 카페에서 책읽는 거 좋아해요. 문제는 초등생인 제 딸도 그 맛을 알아버렸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문열의 초한지는 읽어보지 않았어요.
재미있을까요? 급 궁금해지네요*^^*

노란곰 2013-08-22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단발머리님^^ 전 여름엔 정민 책을 읽는데 좋더라구요. 작년엔 가장 덥고 잠이 안 오는 휴가땐 삶을 바꾼 만남을 읽었고 올해는 다산의 재발견을 읽기 시작했어요. 물론 책을 마구잡이로 읽어 한권에 집중하긴 힘들지만요. 괜히 제가 좋아하는 강신주, 고미숙 님의 책이 보여 반가운 맘에...^^*

단발머리 2013-08-28 09: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노란곰님. 반갑습니다~~

정민은 신랑이 좋아하는 작가예요. 저는 정민의 책은 완독한게 없네요. 다산의 재발견은 전부터 눈독들였었는데, 두께 때문에 망설이고 있답니다. 내년 여름쯤 도전해볼까요?

강신주님, 고미숙님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두요~~~ 앞으로 자주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