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원래 질곡이 많은 것이 자연스러우니, 이 책의 주인공들도 오해하고 화해하고 미워하고 용서하는 사건, 사고가 많다.

 


첫 번째는 남주(콜린)가 여주(올리비아)에게 무시하는 말을 해서 올리비아가 화가 났고, 콜린이 찾아와 진지하게 사과했다. 두 번째는 올리비아가 콜린을 오해한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올리비아가 콜린을 오해하고 콜린 역시 화가 난 상태였다. 얼마 후에 진실을 알게 된 올리비아가 사과하면서 화해를 청하고 콜린은 올리비아를 용서한다. 그리고 세 번째. 이 오해/실수/잘못은 전적으로 콜린의 것이면서 또한 작가의 것이기도 한데, 이런 설정 자체가 이 소설의 틀이 되기 때문이다. 콜린은 미안하다고 말하며 올리비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올리비아는 설명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올리비아가 아니라, 내가 콜린이라면 어떨까. 말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오랜 시간 올리비아를 속인 건 잘못이고, 그것 때문에 올리비아가 (가볍기는 했지만 진지했던) 두 사람의 관계를 끝내겠다고 하면,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콜린은 올리비아를 진심으로 대했고, 올리비아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고, 그녀 역시 자신에 대해 그런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화가 난 올리비아는 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전화를 차단하고, 집(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찾아오지도 못하게 한다. 용기를 내서 보낸 커다란 꽃바구니를 아파트 로비 테이블 위에 놓고 갔다.  

 


이제 콜린에게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만약 여기에서 더 많은 문자를 보내고, 더 많은 전화를 하고, 그녀의 아파트와 직장을 찾아간다면, 그건 스토킹 범죄다. 올리비아는 명시적으로 자신은 더 이상 이 관계에 관심이 없다고, 너랑 끝내겠다고 말했다. 설명하고 싶은 건 콜린의 마음이다. 되돌리고 싶은 것도 콜린의 마음이다. 올리비아는 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만약 나의 진지한 이 마음을 그녀가 제대로듣기만 한다면, 그녀의 마음이 돌아설 거라는 건, 그만의 착각이다. 듣지 않기로 한 것이, 올리비아의 선택이다. 그 선택 때문에 두 사람이 어긋나고, 이별하고, 다시는 못 본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해 때문이건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건, 후에 사실을 알게 된 올리비아가 혹은 그를 용서하게 된 올리비아가 땅을 치고 후회를 하든 말든 어쩔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 콜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똑같은 상황이 아니기는 하다.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는 매사에 오만하기는 했지만, 위컴과의 사건에 관해서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위컴의 말만 믿고 다아시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편지를 쓴다. , 사랑과 정성의 러브레터. 역시 편지는 손편지가 최고지요.



 
















이 편지를 받고 제가 지난밤 당신을 그토록 불쾌하게 했던 감정을 다시 토로하거나 또다시 청혼을 할까 봐 놀라지는 마십시오, 엘리자베스 양. 제가 편지를 쓰는 의도는 우리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빨리 잊으면 잊을수록 좋은 희망에 대해 길게 논함으로써 당신께 고통을 주거나, 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려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편지를 써서 당신이 읽어주시도록 부탁드리는 것이 제 성격상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더라면 제가 이 편지를 쓰고 당신이 그것을 읽으셔야 하는 수고는 덜어질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멋대로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을 용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기꺼이 읽어줄 기분이 아니시라는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정함의 문제라고 감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277)

 


다아시는 편지를 썼다. 콜린은, 콜린은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콜린은 이사를 간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다른 도시로 떠나기로 한다. 올리비아가 없는 곳, 올리비아를 볼 수 없는 곳으로 간다. 혹 그렇게 하면 그녀가 자신을 붙잡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는 상황. 이렇게 계속 살 수 없으니, 살려고 간다. 나도 살아야겠다, 는 심정으로 이사를 간다.

 



 





이 문단이 이 소설에서 제일 좋았다. '나는 너를 사랑해' 라는 말 뒤에, ‘나는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가 아니라, ‘죽을 거 같아서, 난 여기서 벗어나야겠어라고 말하는 게 좋았다. 죽을 것 같은 심정이고, 정말 죽을 것 같지만, 그 사람이 끝내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나는 결국 그 사람을 얻지 못할 것이 확실해진 그 상황에서.

 


너 없는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그래, 나 죽고 너 죽자, 가 아니라. 나도 이렇게는 못 살겠어. 나도, 나도 살아야겠어. 그런 마음이 좋았다. 돌려받지 못한 마음, 이미 내게서 떠나버린 내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야겠다고, 이렇게 바보처럼 망가진 채로 살 수는 없다고, 여기서, 이 상황에서 도망가겠다고 말하는 게, 좋았다. 애원보다는 이사를 권한다. 혹시 모를 일, 올리비아처럼 그녀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주말이니까 느긋하게는 아니고. 밥 먹기 전에 커피를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은 밥 먹기 전에 달달한 탄수화물 일체를 먹지 못한다. , 도넛, 쿠키 등등. 나는 그런 순서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고, 저 도넛 다른 사람이 먹기 전에 내가 먹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이게 마지막 도넛이다. 맛있는 거는, 제발 내가 먹어야 한다.

 


올해는 유독 로맨스를 많이 읽었다. 영어책이니까, 라는 변명을 하기에는 너무 그쪽으로 치우쳐졌다. 이제 제발 그만.

 


사랑 그만. 로맨스 그만. 뜨거운 밤 그만. 이제 제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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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10-29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뜨거워서 선풍기 트셨나봐요?

단발머리 2022-10-29 11:0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더워요 ㅋㅋㅋㅋㅋㅋㅋ 이상기온 생각보다 오래 가네요, 올해는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10-29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 잔은 제가 품절이라 못 산 미친여자 맥주컵이네요! 아아도 넉넉히 들아가고 손잡이도 커서 좋고.. 부럽네요. 도넛도 너무 맛나보이고요~

단발머리 2022-10-29 12:24   좋아요 1 | URL
아이고 ㅋㅋㅋㅋㅋ저는 커피잔으로 애용하는 맥주컵입니다. 제가 아침에 커피를 좀 진하게 타서 글씨가 잘 안 보이죠? ㅋㅋㅋㅋㅋ 알아봐주시는 안목, 반갑습니다^^
멋진 컵은 다음에 좋은 책과 함께 또 다른 기회가 있으실 거에요. 저도 다른 건 아닌데 컵은 항상 욕심나서 그 맘 압니다^^

프레이야 2022-10-29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니 단발머리 님 선풍기에 맥주잔 아아 얼음까지 동동 ㅎㅎ 열기는 좀 가라앉았나요. 그나저나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유혹 참고 있는데 오만과편견 초판본 디자인도 못 참게 하네요.

단발머리 2022-10-29 13:59   좋아요 1 | URL
저도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중에서 오만과편견이랑 이방인은 정말 사고 싶기는 한데요. 집에 오만과편견이 총 3권이네요. 자중해야겠지요 ㅎㅎㅎㅎㅎ
열기는 그만 가라앉아야합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헉헉.

공쟝쟝 2022-11-01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로맨스 쟁이 놀리려다 태그....보고.. ㅋㅋㅋㅋㅋ 뜨밤을 누가 말려요.. 계속 하세요.. 뜨겁게..... 춥잖아요? (쿨럭...)
저도 요새 감정이 좀 남아서... 로맨스 끊기 전까지 인생 드라마였던 동백이나 다시 볼까 싶어요... 비록 내겐 강하늘이 없지만 ㅜㅜ 강하늘의 응원은 좀 필요하니까요... 흑 ㅜㅜㅜㅜㅜㅜㅜㅜ 근데 강하늘은 요새 작품 이상한 것만 찍더라? (그러고 보니 잊고 잇었다. 내가 강하늘을 좋아했던 것을...)

단발머리 2022-11-10 18:05   좋아요 0 | URL
나 로맨스 끊게 도와줄 수 없는지 그게 좀 궁금합니다. 가능하시면 협조 좀 합시다.
강하늘은 요즘에 뭐하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상속자들> 이후에는 강하늘 못 봐서요, 미안합니다.

독서괭 2022-11-04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원 대신 이사라는 제목에 이런 심오함이..!! 매우 공감합니다.
근데 도넛은반드시내꺼 뭐예요 ㅋㅋㅋ 사랑그만 ㅋㅋㅋ 왜 아무도 나 안말려요 ㅋㅋㅋ 왜 말려야 하나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2-11-10 18:06   좋아요 1 | URL
애원이 곧 협박되고 그러더라구요. 한 번, 아님 두 번 진지하게 물어보고 안 되면 이사 권합니다.
도넛은 제꺼인데, 왜냐하면 딱 한 개 남아서요. 제가 먹어야 돼요, 맛있는 거는요^^
 


















1. An American Bride in Kabul

 


밀린 책 읽기에 여념이 없는 요즘이다. 2챕터 남았던 책을 마저 읽었다.

 


카불의 미국인 신부, 필리스 체슬러는 제2세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중의 한 명이다. 미국으로 유학 온 아프칸 남성과 결혼해 카불에서 5개월 정도 체류하면서 죽음의 위기 가운데 간신히 카불을 탈출했고, 시간이 지난 후에 그때의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지적이고, 여유로우며, 개방적이었던 남편이 카불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린 일에 대해 체슬러는 이렇게 쓴다. 그는 나를 진지한 지적, 미적 포부를 가진 미국 대학교육을 받은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아프칸 아내로 대했을 뿐이다.

 

 




명예 살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아프칸이 아닌 미국 혹은 캐나다에 살면서도 과거의 관습 때문에 아버지 혹은 남자형제들에게 살해당하는 여성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이론가이자 혁명가로서의 그녀를 보여준다. 페미니즘은 서구 사상의 산물이라던가, 명예 살인을 문화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당당히 맞서 싸운다.

 






지독한 과거, 죽을 것만 같은 고통으로 점철된 과거를 직면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체슬러는 그 과거에 당당히 맞섰다.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그 나라가 자신을 억압하고 감금하고 굶주리게 했음에도 자신을 그 나라 역사의 일부라고 여겼다. 그곳에서의 삶을 잊지 않았고, 자신은 이미 탈출에 성공해 꿈꾸던 대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곳의 억압받은 여성들을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싸웠다.

 


이론가이자 혁명가. 페미니즘의 산증인. 예언가. 실천하는 지성. 진정한 영웅, 마이 히어로. 필리스 체슬러.

 




 














2.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글이 사람을 얼마만큼 보여줄 수 있나.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진면목을 노출시키고 그 사람의 부족함을 전시하는가. 전영애 교수님의 글은 따뜻하다. 따뜻해서 지금이라도 찾아가면 금방 차를 한 잔 내어 주실 것 같고(이건 예의가 아니라서, 해서는 안 될 일이기는 하다), 이 책에서와 같은 좋은 이야기를 한없이 들려주실 것 같다.

 


공부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을 끌었다. 치열하게 공부하며 살아냈던 시간이 눈앞에 그려졌는데, 아이를 낳은 지 2달 만에 유학길에 오르는 몸과 마음을 상상하면 더욱 그랬다. 저자가 그 모든 인고의 시간을 거쳐 대학에 임용되고 그리고 정년퇴임을 하고 여백서원을 지었던 일들이 모두 꿈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 캄캄하고 절박했던 세월이 내 인생의 초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막막하게 쭈그리고 앉아 읽고 손가락이 굳도록 적었던 것들이, 혼자 힘으로 무얼 읽고 읽어내는 일, 지금껏 제 자양분입니다. 그 캄캄한 10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것도 같습니다. 그 시절 제가 의지했던 건 미안하기만 한 제 아이들로부터 받은 힘이었고(아이들은 고맙게도 잘 커주었습니다), 대학원 시절에 받은 소중한 장학금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무언가 보답이 될 만한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89)



 

특히, ‘캄캄한 10이라는 문구가 오래오래 뇌리에 남았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인정받는, 혹은 평가받는 그 모든 시간 바로 앞에. 나 혼자 책을 펴고 읽고 번역하고 쓰고 공부하는 그 인고의 시간이, 그 캄캄한 10년이 얼마나 길었을까, 외로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하루를 살았다고 말했다. 10년을 그렇게 살았던 것이 아니라, 오늘 할 일, 오늘 바로 해야 할 일, 그것만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담함 속의 공부에 대해 생각한다. 하루, 오늘 하루, 오늘 하루치의 공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독서괭님과 서곡님의 페이퍼 덕분에 놓치지 않고 마저 읽을 수 있었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3. Mr. Wrong Number

 


일전에 친구들과 원서 읽기를 하던 중에 친구 한 명이 내게 연애 사건 발생(?)과 관련해서만 봤을 때, 일단의 가능성자체를 ‘차단'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친구는 내 글과  내 댓글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데, 그 때는 그게 맞는가, 내가 정말 그런가, 생각했더랜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친구의 생각이 옳음을 확인했다.

 


제목이 9할인 로맨스 소설이니, 이 책은 Wrong Number을 가지고 여주에게 문자를 보낸 Mr.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겠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한 번 실수로 문자를 보내고, 재미있고 위트 넘치는 대화를 나눌 수는 있겠으나, 그다음날 혹은 며칠 후에 또 다시 그런 문자가 온다면? 바로 차단이다. 더 읽어볼 필요도 없다. 그 사람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남자인 척하는 여자이든, 여자인 척하는 남자이든 관심이 없다. 모르는 사람과 문자를 주고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걸로 이야기는 끝이다. 하지만, Mr. Wrong Number는 계속해서 문자를 보내고, 여주는 계속해서 답장을 한다. 스스럼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멍청한 질문과 멍청한 대답을 주고 받으며 킥킥거린다. Mr. Wrong Number 29, 여주가 25이라서 가능한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가끔, 우리는 우리를 모르는 사람 앞에서 더 솔직해진다. 말하고 싶어하고, 그리고 말한다.

 



 

 

만약 Mr. Wrong Number와 여주(Mr. Wrong Number는 그녀를 Miss Misdial이라 부른다)와의 이야기가 전부였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남주는 따로 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여주 오빠 절친인데, 두 사람은 참을 수 없는 끌림 때문에 키스를 하고, 그건 실수였다고 합의했지만, 또 다시 길고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것마저 실수라고 주장하는 여주에게 남주는 fun fling, 썸을 타는 정도의 가벼운 연애를 제안한다.

 


 


 

두 사람이 데이트하는 장면이 좋았다. 손잡기가 섹스보다 좋다거나 혹은 섹스가 손잡기보다 강렬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긴 시간 서로를 알아 왔고, 또 아무리 봐도 이해되지 않는 엉뚱한 생활습관, 약점, 일말의 비밀까지도 알고 있는 두 사람이, 게다가 이미 섹스까지 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알콩달콩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 즐거웠다.

 

 

위의 인용문 보면 확인 가능하지만 보통 혹은 보통보다 쉬운 수준이다. 다만, 남녀 주인공들이 서로를 놀리면서 주고 받는 농담들은 너무 재치 만점이라 이해하지 못 하고 패쓰하는 경우도 많았다. 두 사람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Love you Forever.

 

 
















4. , 윌리엄

 


<오, 윌리엄> 출간을 축하드리며, 집에 있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책을 꺼내 보았다. 나는 이 중에 한 권을 읽었고, 한 권을 반정도 읽다 말았고, 두 권은 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제일 먼저 읽은 스트라우트 책은 <에이미와 이저벨>이어서, 내게 스트라우트는 좀 쎄고 강한 인상이다. 다른 책들도 읽게 될 날을 고대한다. 더 미루면 안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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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28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영애 선생님의 따뜻함은 이미 여러 분께서 올려주시는 인용문과 내용을 통해서 느껴졌습니다.
스트라우트 원서들 표지가 다 이쁘네요. 배경과 문자체의 조화가 근사합니다. 특히 <Olive, Again> 저 짙은 청록(!)색 참 마음에 드네요. 흩날리는 단풍잎도 근사하고ㅎㅎㅎ

꾸준히 원서읽기하시는 모습 멋지십니다. 저는 두달동안 이제 한 권 다 읽어가네요ㅠㅠ

단발머리 2022-10-28 14:14   좋아요 0 | URL
전영애 선생님 책은, 저도 알라딘 이웃님들 페이퍼 보고 읽게됐는데 읽는내내 참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스트라우트의 책은 모두 다 예쁜데요. 저는 루시 바턴 저 시리즈가 예쁘더라구요. 가지고 있는데 의의를 두지 말고 읽어야할텐데요, 저도 제가 걱정입니다.

꾸준히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진도는 느립니다. 거리의화가님은 다른 책들을 많이 읽으시니까요. 두 달에 한 권도 대단합니다.
저도 카불의 신부 두 달 걸렸다죠 ㅠㅠ

다락방 2022-10-28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 롱 넘버 내용 알 것 같아요. 따로 있는 남주가 바로 그 남주.. 이겠군요. 그러니까 이건 그 뭣이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같은 바로 그것? 오호호호. 저도 다운 받아놓았으니 읽어볼래요. 지금은 미 비포 유를 읽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전영애 선생님 글은 하도 여러분이 좋다 하시니 저도 이젠 정말 읽어야할 때가 온것인가 싶습니다. 오..

단발머리 2022-10-28 14:16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맞아요, 맞아요!! 역시나! 제가 모르게 하려고 샤샤샥 해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군요. 그 남주가 그 남주고, 그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즐겁고 유쾌한 시간 보내시기 바래요.

전영애 선생님 책은 저도 한 권 더 있는데 읽어야지 싶습니다. 잔잔하면서도 강인하고... 참 좋아요^^

독서괭 2022-11-0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사를 다 받다니, 영광입니다^^ 제가 늦게 왔네요.
카불의 신부 완독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쉽지 않은 원서 완독이라니, 대단하세요.
태그에 씩스팩 보고 웃고 갑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2-11-10 18:07   좋아요 1 | URL
완독 축하 감사드려요. 저도 너무 흐믓합니다. 체슬러라니, 이게 웬 떡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씩스팩은... 글쎄, 그게 뭘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주의 시작과 나의 끝
나의 타오르는 질문 목록들






 















오후 3 51.  『An American Bride in Kabul』 읽기를 마치고 그냥 덮으면 잊어버릴까, A4 한 장 안 되는 분량으로 감상을 썼다. 이제 좀 놀아볼까. 한 시간 전에 너무 졸려서 잠 물리친다고 서가를 거닐다가 가져온 책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을 펼쳤다. 책을 뽑기 전, 책 등만 보았을 때는, 이 책이 지구 이외의 행성에 사는 외계 존재에 대한 책일거라 추측했다. 그게 이 책을 뽑아 든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목차를 살펴보니, 지구상의 신기한(?) 생명체들에 대한 이야기다. 넓적다리불가사리, 돌고래, 일본원숭이, 장수거북, 문어, 긴수염올빼미. , 이 쪽은 아닌 것 같은데, 하며 책을 덮으려고 하는데 챕터 8이 눈에 들어온다. 8 Human 인간. , 인간이라면 또 읽어봐야지요, 인간.

 


이렇게 인간, 159쪽을 펼쳐 두고 잠깐 알라딘 서재에 들어갔다. (알라딘서재 수시로 들어가는 사람) 쟝쟝님 방에서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다락방님 방에서 제목을 보았던 기억은 나는데,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제일 주요한 내용은 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 정가 48,000, 판매가 43,200원에 빛나는 어마어마한 가격. 636. 책의 목차를 잠깐 살펴보고, 댓글을 달고, 다시 내 책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한다.   

 



첫 문장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 문학적이야. 여성은 거미와 월계수로, 남성은 사슴과 아네모네로 변하는 <변신 이야기>보다 더 기이한 변신이 우리 몸 가운데 일어났는데, 그 신체 부위가 바로 발이라는 주장이다. 뛰어난 손재주를 가능케 하는 손의 발달은 포유동물 계통에서 아주 일찍 출현했지만, 발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우리의 뒷손, 즉 발은 나뭇가지를 우아하게 잡을 수도 없고 발을 구르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데, 이러한 발의 진화를 통해 우리 인간은 두 발로 오래 걸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여러 차이점 중에서 두 발로 걷는다는 지점에 주목한다.  

 


 

또 달리기가 우리를 가장 인간답고 건강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라는 주장도 있다. 달리기를 할 때, 인간은 풍크치온스루스트(funktionslust), 즉 본래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하는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동물은 본래 자신의 생존에 중요한 것을 하는 데 능숙하며, 그것을 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경향이 있다. 인간에게는 달리기가 그렇다(혹은 그러했다). 달리고 동물을 뒤쫓는 행위가 이후 과학을 가능하게 한 정신적 과정들 중 상당 부분이 진화할 수 있도록 자극했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말이 맞든 간에, 인류 역사의 99퍼센트를 넘는 기간 동안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었다. (168)

 



운동, 우울증 치료, 글쓰기의 관점에서 걷기/산책의 효과에 대한 글을 많이도 보았다. 걷기를 즐겨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하루에 3,000보 채우는 일이 미션인 사람으로서, 나는 그 어떤 글에도 설득되지 않았으나. 이 글은 단연코 가장 훌륭한 걷기 예찬글이며, 고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걷기그리고 달리기는 그 어떤 활동보다 인간을 인간답게만들었다고 한다.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란다.

 


 

그다음,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음악이다. 음악과 춤이 언어와 기원을 공유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이 동물이 내는 소리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한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직립 보행과 달리기를 위해 척수가 머리뼈 뒤쪽이 아닌 바로 밑에 연결되는 진화가 아주 서서히 이루어졌고, 척추와 입 사이에 후두를 위한 공간이 좁아지고, 후두가 목에서 좀 더 아래쪽에 놓이며, 결과적으로는 성도의 길이가 늘어나고 성도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소리가 더 다양해진(172) 결과라고 한다.

 

 


의식은 진화적 적응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여겨져 왔다. (대체로 의식이라는 경이로운 경험을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하고 거기에 투자하고 싶어지도록 강하게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 옳든 그르든 간에 (이에 대해 격렬한 반박이 있어왔다), 음악이 의식을 강화하고 삶에 몰두하도록 기여하는 혁신적인 발명품임에는 틀림없다. 리듬, 강약, 화음, 음색을 다양하게 실험해 보는 것은 의식 자체의 본질과 경계를 탐구하고 확장하는 한 방법이다. (174)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당연히 이 부분에서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를 떠올린다. 40억 년 전 지구,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불덩어리 행성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자가 유지보수와 에너지 획득, 번식을 위한 기초적인 움직임만 가능한 박테리아가 출현(알라딘 책소개)했다. 그리고 진화의 긴 시간을 거쳐 이 행성의 지배자가 된 인간은 바흐로 상징되는 위대한 정신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어떻게? 마음의 진화를 통해. 저자 대니얼 C. 데닛은 진화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철학자라는 평이 있는데, 나의 방점은 사상가, 철학자에 있다.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해 인간 의식의 진화를 초끈이론우주론전문가로서 과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과 비교해서 읽어도 좋을 성싶다. 그래서, 결론은 43,200원의 이 책을. ?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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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10-25 2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앍!!! 너무 좋와!!! 이 글 읽고 너무 좋아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어요!!! 걷기와 달리기 예찬에 대한 이토록 지적인 동의라니!! ㅋㅋㅋ 물론 저는 당분간 달릴 수 없는 몸이지만 .... 확실해요. 달리지 않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달리기의 매력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알 수 없는 책읽기의 매력이 있는 것 처럼요. ㅋㅋㅋㅋㅋ
바흐... 들어볼게요 ... 999... 그리구............................. 음악이요....
마약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마약을 내밀 수는 없고, 마약과 가장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게... 익숙한 좋아하는 즐겨듣는 음악을 듣는 거. 기왕이면 사람들과 함께 몸을 흔들며 듣는 것..... 이라는 내용의 책을 얼마전에 읽었던 터라. 박테리아에서 환각과 음악에 꽂혔다는 단발머리님과 나는 영혼 어딘가가 통하는 것이다. 진화 - 몸 - 마음 - 음악 - 중독 - 마약? 응? ....
음악. 그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건대,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가. 그리고 달리면서 음악 듣는 거 진짜 좋아해요. 저. (중독...)

단발머리 2022-10-26 11:05   좋아요 1 | URL
걷기와 달리기에 대해 지적으로 동의합니다. 머리로는 동의하고요. 지금까지는 나를 설득시킨 사람이 없어서 내가 그랬다는 걸, 밝혀서 뭐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달리기의 매력을 이미 아는 쟝쟝님이 부러울 뿐입니다. 저희 동네도 반바지에 머리띠 하고 달리시는 분들 많기는 한데 항상 위험해 보여서요. 좀 넓은 곳에서 맘껏 달리고 싶네요.

우리 모두 음악을 사랑하잖아요. 음악에 그런 효과도 있군요. 마약과 가장 비슷한 효과라니... 하긴 가장 직관적이기는 하죠. 다른 기술 필요없이 바로 이해가 가능하니까요.
바흐 BWV999는 음악 잘 모르는 내가 좋아하고, 그리고 2배속으로 칠 수 있는 곡이에요. 이 짧은 곡에서도 7, 8, 9, 10번 마디에서 왼손 옥타브 아래로 내려갈 때, 내 몸의 나사 한 3개는 풀어지는 게, 난 느껴져요. 나한테 뭐 부탁할 일 있으면 이 노래 틀어놓고 7-10 마디 연주될 때 말해봐요. 누구든,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주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10-26 13:26   좋아요 1 | URL
참 음악인….. 바흐 애청자가 여기 또 있었다… 🤣

수이 2022-10-27 09:31   좋아요 1 | URL
지금 정확히 7-10마디 연주되고 있습니다. 노래 불러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10-26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 표지가 예쁘네요. 달리기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다니! 저도 계속 열심히 달려봐야겠습니다. <가벼운 마음>을 읽고 있는데, 여기에도 계속 바흐가 나오네요. 바흐 BWV999 뭔지 몰라서 찾아 들어봤어요. 아니 근데, 단발님 피아노 연주도 가능하신 분??
˝난 바흐 BWV999의 7, 8, 9, 10번 마디에서 왼손 옥타브 아래로 내려갈 때, 몸의 나사가 한 3개 풀어지는 게 느껴져.˝
라니 완전 멋지다...

수이 2022-10-27 09:30   좋아요 1 | URL
˝난 바흐 BWV999의 7, 8, 9, 10번 마디에서 왼손 옥타브 아래로 내려갈 때, 몸의 나사가 한 3개 풀어지는 게 느껴져˝라고 말하는 저 분이 제 친구라는 사실이 가슴 벅차오르는 오늘 아침입니다.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죠?

˝난 바흐 BWV999의 7, 8, 9, 10번 마디에서 왼손 옥타브 아래로 내려갈 때, 몸의 나사가 한 3개 풀어지는 게 느껴져˝라는 문장에 제 몸의 나사는 한 30개 풀려나가는 거 같습니다, 독서괭님도 같은 마음? ㅋㅋㅋㅋ

독서괭 2022-10-27 11:42   좋아요 1 | URL
나사 다시 끼웠었는데 vita님 댓글 읽고 다시 다 빠졌습니다. 떼구루루루

단발머리 2022-10-28 14:22   좋아요 0 | URL
바흐는 여기저기 막 나오는 사람이 맞는가봐요. 전 피아노학원 다닐 때 바하인벤션만 쳐서요. 바하 잘 모르고 찾아 듣지도 않는데, 제가 좋아하는 이 곡은 좀 쉬워요. 제가 감수성 예민하고 그런 사람은 아닌데요..... 베이스음에 약합니다.
낮은 음자리표의 아래 도 밑으로 내려가면 막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콩닥 그런다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나사 6개 .......주워놨어요. 제꺼 3개랑 독서괭님꺼 3개요. 담에 비타님 만나면 기념품으로 드릴게요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10-26 2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저 위의 세 권의 책은 모두 뭐랄까? 저의 로망이랄까? 저런 책을 막 잘 읽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맘만 그렇다고요. 대부분 시도는 하는데 앞부분 읽다가 항상 드는 생각,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 어려운걸 굳이 공부해가며 읽어야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그런 질문을 막 하고 있는거예요. 아니 이런 질문 안하고 싶은데 그냥 막 떠올라요. 그리고는 살포시 이거 읽을 시간이면 난 적어도 3-4권의 읽고 싶은 책을 더 읽을 수 있어라는 대답을 하며 책을 휙 던집니다. ㅠ.ㅠ
요즘 일일 15,000보 ~ 20,000보 걷는 사람으로서 잣죽도 잘 쑤고 저렇게 어려운 책도 막 읽는 단발머리님을 내가 이기는 분야도 있구나 하고 혼자서 막 신나 신나 하고 갑니다. ^^;;

단발머리 2022-10-28 14:48   좋아요 1 | URL
저도 저 위의 세 권 중에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ㅋㅋㅋㅋㅋ 저도 저런 책을 막 잘 읽는 사람이 되고 싶기는 합니다. 다만 저는 이해하지 못해도 그냥 쭉쭉 읽어나가는 스타일이라서 체에 물 빠지듯 책에 쓰여진 정보가 술술 빠져나가지만 결국 다 읽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끼고는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8000보 정도가 한계인거 같아요. 만보를 넘으면 몸 여기저기 쑤시고 아주 난리입니다. 일일 15,000보에서 20,000보가 가능하시다니 절로 존경의 마음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래오래 신나셔도 되겠습니다^^
 






 












언제 신청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아무튼 도서관에서 희망도서찾아가라 문자가 와서 도서관에 다녀왔다. 도나 J. 해러웨이.

 



목차를 쓱 훑어보고 알라딘에 들어왔는데 출판사 책 소개에 이런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그대, 죽여도 되는 존재로 만들지 말지어다외모 이야기해서 좀 그렇기는 한데 이건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니까. 나는 얼룩소보다는 누렁소가 예쁘다는 쪽인데, 왼쪽 끝에 누렁소 정말 예쁘지 않은가. 삼십 년 전인가, 둘째 이모 댁에서 보았던 더 밝은 노란색의 황소를 떠올려야 하는데. 실제로 떠오른 생각은 , 마트에서 소고기 국거리사 왔는데…” 였다. 육식인간 1인이라 우리 집은 고기 소비가 정말 적은 편이에요, 라고 어디에 대고든 소리치고 싶지만, 만두, 순대, 치킨버거 좋아하는 나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79쪽에 나는 미셸 푸코를 읽었고…”.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저도 푸코 읽었거든요. 두 권이나. 하지만 제가 읽은 것과 해러웨이님이 읽으신 것은 다르지요. 암요, 달라요, 달라. “푸코의 종 중심주의에 속아서…” 푸코에게 속아? ? 이런 문장이 나오네요. 우아, 흥미진진. 이 문단 전체를, 푸코 블랙 유머와의 소통에 큰 희열을 느끼며 나만 재밌어?”를 연발하는 소중한 똑똑이 친구에게 바친다.



 






이 사진은 해러웨이 아버지 프랭크 해러웨이와 그의 동생 잭이 야구를 하는 모습이다.



 



해러웨이의 아버지는 생후 16개월 때 넘어져서 엉덩이를 다쳤는데 결핵이 그때 시작되었다. 결핵은 한 차례 좋아졌지만 재발했고, 결핵이 무릎에서 대퇴골과 골반에 걸쳐 자리를 잡아 8살에서 11살 때까지 가슴에서 무릎까지 단단하게 깁스로 고정된 상태로 침대 위에서 생활했다. (208) 아무도 그의 아버지가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는 살아났고,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스포츠 기자가 되었고, 결혼했다. 해러웨이와 그의 형제자매의 아버지가 되었다. 당연히 『Me before You』가 떠오르고, 나는 잠시 윌을 생각한다.

 




세상에 다시 없는 창조적이고 기발한 이 훌륭한 사상가의 아버지. 그의 삶을 이어가게 했던, 포기하지 않게 했던 그 정신이 나는 궁금하다. 해러웨이를 이 세상에 내어놓은, 해러웨이의 반쪽을 이 세상에 선사한 그 불굴의 정신이, 나는 궁금하다. 그걸 밝히기 위해서는, 이 책을 사야만 한다. 이 책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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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10-22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리하여 또 알라딘에는 해러웨이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두근두근

단발머리 2022-10-22 16:58   좋아요 1 | URL
봄바람이면 살랑살랑인데 요즘은 겨울 재촉하는 바람이라 매섭더라구요. 해러웨이 바람, 휘이이이이잉!!

다락방 2022-10-22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겠습니다!!

단발머리 2022-10-22 16:57   좋아요 1 | URL
현명한 생각이십니다. 464쪽이고 22,500원입니다^^

건수하 2022-10-2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밝히기 위해서는 꼭 사야만 하나요…. 😳

단발머리 2022-10-22 16:59   좋아요 1 | URL
사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만, 저는 만져보고 슬쩍 살펴보니 사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오래오래 두고 읽을 수 있을 책이고요.
무엇보다 줄을 쳐야하기 때문입니다 (수하님 줄 치는 거 좋아하는 거를 알고 있는 사람) 일단 저처럼 희망도서 신청 한 번 해보셔도^^

건수하 2022-10-22 17:07   좋아요 0 | URL
역시 절 파악하고 계신 단발머리님 ㅎㅎ
어제 아렌트 그래픽 노블 읽고 이제 막 담았는데 오늘 해러웨이.. 살 거 같지만 그냥 한 번 해본 말입니다 ㅎㅎ 북플은 넓고 살 책은 많고!

공쟝쟝 2022-10-22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해러웨이도 푸코를 읽었고… 나는 못읽겠고…. 이런 ㅋㅋㅋㅋ 해러웨이는 조금씩 풀리는 썰들만 슬쩍슬쩍 봐도 진짜 신박해 죽겠어요.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10-23 17:25   좋아요 1 | URL
해러웨이 완전 다르게 보이더라구요. 저 부분 읽는데요. 나는 아버지의 언어를 승계했다. 뭐, 이런 대목이 나와요. 신체는 갇혀 (있다고 우리들이 생각하는 상황)이지만 그 자유로운 아버지가 참... 대단하시더이다. 물론 어머니도 그러하시고요.
신박한 세계로 바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니데이 2022-10-2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장의 소 사진과 마트에서 파는 포장된 쇠고기를 연상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예요.
그래서 어느 날 저녁에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단발머리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단발머리 2022-10-23 17:26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말이에요. 저는 고민하는 한 명의 육식인간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되시길요^^

독서괭 2022-10-23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고기는 거의 안 먹기 때문에 양떼목장에서는 순수하게 볼 수 있었는데 소는.. 크흑 ㅠㅠ 저도 육식인간입니다 ㅠㅠ 단발님은 홀로 육식이신가요. 좀 외로우시겠군요. 저희 집은 육식이 많아서;; 늘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먹는다.. 😓

단발머리 2022-10-23 17:30   좋아요 1 | URL
육식인간과 잡식인간에 대한 저의 정의에 따르면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고기 그 자체가 목적인 그러니까 스테이크, 삼겹살, 훈제오리 등을 즐겨 먹는, 좋아하는 사람을 육식인간으로 보고요. 저희집 육식인간은 아롱이 1명. 가끔 고기를 먹고, 고기를 넣은 미역국, 감자탕, 오징어볶음 등을 먹는 잡식인간이 2명. 그리고 비건에 가까운 채식인간이 1명 있어요.
성장기에는.... 전 고기 먹는 거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성장기 지나면 우유랑 고기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라떼 마시는 나는 어째요 ㅠㅠㅠ

거리의화가 2022-10-2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식을 포기할 수 없어 늘 먹으면서도ㅠㅠ
해러웨이 가족사 보니 더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단발머리 2022-10-23 17:32   좋아요 0 | URL
육식 포기에 대해서는 정말 기나긴 이야기가 있고요. 전, 완전 끊는게 어려우면 좀 줄여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위에 누렁소, 갈색소(?)는 너무 예뻐서요 ㅠㅠ
해러웨이 가족사가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이 책을 슬쩍 살펴보면서 들었습니다. 기대만발입니다^^
 



















키워드 : 


원나잇 섹스, 포르노가 강간에 개입하는 방식, 강간 문화, 포르노의 서사에 남자가 대항하는 법(211), 

원나잇 이후 남녀간 태도의 차이, 포로노 섹스에서 인종의 문제, 

백인 여성/흑인 남성이 주인공인 포르노에서 백인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 성기로 환원되는 인간, 

아동포르노금지법의 포르노 배우의 나이범위 확대(미, 1996년), 평등에 기반한 섹슈얼리티


가능할까, 의 회의와 절망이 너무나 강한 책. 돈벌이가 되는 이 산업을 순순히 포기할 사람들이던가... 흐미. 

간신히 마쳤다. 


그간 꾸준히 드러난 일종의 패턴은, 이들 남자 중 대다수가 섹스 파트너가 원나잇 상대라는 조건하에선 포르노 이미지가 자신의 성생활에 침투하는 걸 꺼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관계를 쌓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는데 포르노 이미지를 떨쳐 낼 수 없을 때 비로소 그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포르노 영화의 장면이 성적 흥분을 느낄 때마다 밀려 들어온다. - P199

내가 듣는 최악의 이야기는 포르노에 너무 무감각해져서 점점 더 극단적인 포르노를 이용하기 시작하고 결국 이전에는 역겹다고 느꼈던 이미지를 보고 자위하게 되었다는 남자들의 고백이다. 이들 남자 대다수가 깊은 수치심을 느끼고 결국 이 모든 게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 P204

그들은 더 폭력적이고, 페티시적 성향이 강한 포르노로 점차 눈을돌렸고, 대개 그야말로 고문으로 보이는 행위를 찾아 나섰다. 이것도지루해지기 시작하면, 그들 대부분은 아동 포르노로 넘어갔다. 일부는 포르노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아동 포르노를 발견했고, 또 다른 이들은 일반적인 포르노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자위할 목적으로 그것을 찾아냈다. 아동 포르노를 처음 내려받은 시점과 실제로 아동에게 성폭력을 가한 시점 사이의 기간은 평균 1년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인터넷 포르노에 중독되기 이전에는 아동에게 성적인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 P205

포르노가 강간에 개입하는 방식은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포르노를 이용하는 모든 남자가 강간을 저지르는 건 결코 아니지만, 포르노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상화하고, 합리화하고, 묵인함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이 ‘강간 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미지들은 폭력과 학대로 가득한 섹스를 당사자 모두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는 ‘섹시’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포르노의 메시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비정상적이며 용인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사회의 규범을 갉아먹는데, 사실 이 규범은 남성지배적 사회에서 이미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P208

즉, 남자가 포르노의 서사에 대항하려면 어떤 것에 되어야 할까? 나를 비롯한 미디어 연구자들은 자본주의와 짝을 이루는 소비주의 이데올로기의 지속적 유입으로부터 사람들의 면역력을 길러주는 방법을 논의할 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대개 그 해답은 그것에 반하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하여 소비 이데올로기의 허위적 본질을 드러내고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데 있다. 포르노의 반이데올로기 또한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그 메시지를 방해하고 파괴해야 하고, 포르노만큼 강력하고 즐거워야 하며, 남자에게 포르노 속 여성의 이미지는 허구이고, 특정한 형태의 섹스만을 팔기 위해 꾸며낸 거라고 설득해야한다. 또한 이 대안 이데올로기는 이성애 섹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하며, 그것은 성평등과 정의에 입각해야 한다. - P211

우리는 각자의 삶을 써 내려가는 주체로서 어느 정도의 힘을 갖고 있지만, 자기한테 딱 맞는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나 자유롭게 떠다니는 개별 존재는 아니다. 그 대신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특수한 사회, 경제, 정치적 조건 하에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회적 존재고, 그 조건은 대개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특히 우리의 성역할에 관한 정체성이 그러하다. 성역할은 사회적 구성물이고 따라서 우리가 ‘정상‘ 범위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적 행동‘은 외부의 힘이 결정한다. - P218

예를 들어 대학 연령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학자 캐슬린 보글Kathleen Bogle의 연구에 따르면 여자들 중 많은 경우가 "원나잇 상대를 남자친구로 사귀는 것에 관심을 보였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아무런 구속 없이 원나잇 섹스만을 원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 P239

이런 사례를 학생들에게서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셀 수조차 없지만, 자기가 강간을 당했다고 얘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들은 그 경험을 그저 ‘너무 나간‘ 원나잇 섹스라고 생각하거나, 남자를 그만두게 하지 못한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만, 자기한테 일어난 일이 실제 강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애초에 원나잇 만남을 갖기로 동의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남자에게 그만하라고 요구한다 해도, 남자가 그만두지 않으면 그냥 그가 원하는 대로 하기도 하는데, 이는 다음 날 아침 강간 피해자가 되어 눈을 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기를 탓할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그들을 무력하다고 규정하는 정체성을 뒤집어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P243

여기서 아시아 여자들은 넘치는 성욕, 성적으로 순종적인 태도, 섹스 기술, 성적 매력을 모두 겸비했다고 여겨지며 그 덕분에 ‘초특급 걸레’로 규정된다. 소위 그 ‘순종적 태도‘는 에로화되며, 이들은 남자의 어떠한 잠재적 성적 요구도 거절하지 못할 만큼 완전히 무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 무력함은 거기서 더 나아가 이들 여성이 ‘아동화‘되는 방식에 의해 강화된다. 이들은 순진하고 순수한 존재로, 성인으로서 자기 결정권은 없는 것처럼 비친다. 여자가 어린 아이로 보일수록, 남자가 그를 착취하고 조종할 여지도 더욱 커진다. - P255

아시아 남자가 남성성의 스펙트럼에서 여성화된 쪽의 극단에 위치한다면, 흑인 남자는 과잉남성화된 쪽의 극단을 차지한다. 난폭한 깡패나 강간범과 같은 추악한 스테레오타입을 짊어진 흑인 남자는 대개 도를 넘은 남성성, 즉 참을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형태의 남성성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묘사된다. 사실 이런 남성성이야말로 포르노에서 이상화되고 미화되는 유형인데, 야동의 세계에 사는 남자들은 모두 과잉흥분 상태에 있으며 쾌락을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 P272

이는 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비교적 가까운 과거만 해도 백인 남자들은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를 바라본다는 생각만으로 린치 패거리가 되어 광분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백인 남자들이,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의 몸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는 장면을, 그것도 아주 상세하게 보여주는 영화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붓는 것이다. 하지만 야동의 세계에서는 여자-백인이든 유색인이든-가 폄하되면 폄하될수록 이용자에게 더 나은 야동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을 이해하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그리고 백인 남자의 눈에, 백인 여자가 성적으로 변태에다 야만인이며 난봉꾼이라고 지정된 자들에게 계속해서 삽입당하게 하는 것보다 그들을 폄하하기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 P273

이러한 백인 여성의 폄하는 물론 백인 이용자의 성적 흥분을 강화하겠지만, 그것이 현실 세계에 갖는 함의는 흑인 커뮤니티로 향해 있다. 성별, 인종, 계급 등에 기반한 모든 형태의 억압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행사하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신념 체계를 필요로 한다. 이 정당화의 과정은 대개 대상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형태를 통해 전개되는데, 이때 이들은 권력 집단보다 어딘가 덜 인간화된 존재로 그려지며, 이 인간보다 못한 지위 때문에 착취, 학대, 폄하당해야 마땅한 존재로 전락한다. 사실 포르노에서 인간은 모두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이는 그들이 전부 성기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 P279

미 대법원은 1996년에 제정된 아동포르노금지법 Child PornPrevention Act이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표현의자유연합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근거로 아동 포르노의 정의(미성년자가 성적으로 노골적인 행위에참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각적 묘사)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점을 들었다. 이 법은 실제로 18세 미만인 자(단순히 그렇게 보이는 자가 아니라)가 제작에 참여한 포르노 이미지에만 적용되도록 그 범위가 축소되었고, 이로써 포르노 업계는 컴퓨터로 생성한 아동 이미지를 쓰거나 실제로는 18세 이상인 포르노 배우를 그보다 훨씬 어려 보이게 아동화하여 쓸수 있게 되었다. - P285

평등에 기반한 섹슈얼리티는 결국 평등에 기반한 사회를 필요로한다. 우리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우리 스스로 규정하기 위해 싸우면서도 더 큰 그림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여자들은 여전히 경제적, 정치적, 법적 차별에 직면해 있다. 포르노는 이렇게 더 큰 구조 안에 놓여 있으며, 이만큼 불평등의 관행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포르노에서 우리는 포르노 섹스 이외에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 일차원적 대상물이다.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우리 삶의 전 분야에서의 평등이고, 이를 통해 생식권의 말살, 결핍, 상실이나 남자가 가하는 폭력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포르노가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남자들이 가진 모든 권리를 동등하게 가질 자격이 있는 온전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활발히 운동을 펼쳐 여자가 자신의 삶에 온전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다. 정의로운 사회에선 포르노가 설 곳이 없을 테니까.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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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시작했습니다. 멘탈 후덜덜....ㅠ.ㅠ

단발머리 2022-10-21 16:49   좋아요 1 | URL
멘탈 잘 잡고 읽으시기 바래요. 읽는 일의 괴로움.... ㅠㅠ

다락방 2022-10-27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벌이가 되는 이 산업에 모두가 달려들었는데 정말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뭔가를 하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ㅜㅜ

이 책 읽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2-10-27 16:36   좋아요 0 | URL
이 쪽 산업이 활발한건 자금 때문인데 우리한테는 그렇게 큰 돈은 없고요 ㅠㅠㅠ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그 곳으로 ‘일하러‘ 가는 젊은 여성들, 여자 청소년들을 어떻게 도울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네가 선택한 거잖아... 라고 말하기 전에 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그들이 자립하며 자존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돈은 필요없어요, 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기초적인 생활에 필요한 돈은 각자에게 주어져야 할테고... 그래서, 저의 결론은 다시 기본 소득으로....

고마워요, 다락방님. 이 책 힘들었는데 다락방님 글 여러 편을 다시 읽게 되어 좋았어요. 악을 직면하고, 멈추지 말고 싸웁시다.
읽고 이야기하고 쓰고 다시 한 번 더 말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