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깟디마 The Muqaddimah - 이슬람 역사와 문명에 대한 기록
이븐 칼둔 지음, 김정아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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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았을 때 굉장히 놀랐다. 1200페이지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두꺼울 줄은 몰랐으니까. 놀라움을 뒤로하고 책을 열어보니 여백과 같은 꼼수(?)도 없이 빽빽한 글로 채워져 있었다. 분량도 벅차고 보기만 해도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설레는 마음을 잠재울 수 없었다. 《무깟디마》. 이슬람 역사가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역사서라고 칭송받는 책. 동양에 《사기》가 있고, 서양에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있다면 이슬람에는 《무깟디마》가 있다. 역사를 전공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명한 책이고, 역사를 떠나 세계의 위대한 문헌으로도 유명한 이 저서가 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이슬람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 문명의 주류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서양이다. 근대 식민지 시대, 서구 열강은 다른 대륙들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자신들의 문명을 은연중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대다수 국가들은 좋던 싫던 서구문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서구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지만, 이슬람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이유 없는 거부감을 가진 경우가 많다. 특히 이슬람 문화는 서구문명의 근원을 이루는 가톨릭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대립했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양 문명의 시각으로 이슬람을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린 시절 나는 《무깟디마》의 편역본인 《역사서설》을 읽었다. 《역사서설》은 《무깟디마》를 축약하여 번역한 영역본을 한국어로 이중 번역한 책인데, 책에 담긴 이븐 칼둔의 논의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기에 나는 은연중에 완역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최근 원전 완역본이 개정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고무됐다. 새롭게 완역된 책을 접하고 천천히 읽어보니, 이슬람은 역시 유구하며, 뛰어난 문화를 간직한 곳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칼둔이 살았던 시대는 14세기로, 이 당시 우리나라는 조선이 건국되는 시기였다. 내가 놀란 점은 14세기에 아랍인들이 인지하고 있었던 세계관이다. 칼둔은 조선이 건국되는 시기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적도와 위도를 중심으로 문명이 나눠진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기후가 사람의 행동을 규정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14세기를 기준으로 볼 때에는 굉장히 앞서있는 생각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 조선이나 중국의 역사가들은 왕조의 유지와 효율적인 통치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칼둔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명 전체를 규정하고 있는 법칙을 고찰하고자 노력하였기에, 생각의 폭이 훨씬 넓다고 볼 수 있겠다.


칼둔이 살았던 시기, 이슬람 문화권은 동양과 마찬가지로 군주정 국가가 많았다. 《무깟디마》 역시 문명에 본질이 왕조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나아가 동양의 사가들과 마찬가지로 군주의 바람직한 통치에 대해서도 밝혀놨는데, 핵심 개념이 바로 '아싸비아'다. 왕조를 건국하기 위해서는 특정 부족이 아싸비아를 가져야 한다. 아싸비아를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면 연대의식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데, 단순한 연대의식을 넘어 사회를 주도하고 움직일 수 있는 역량과 리더십 등으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아싸비아를 보는 순간, 나는 불현듯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비르투가 떠올랐다.


두 개념은 지도층의 역량과 리더십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무척 비슷하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는 혈통이나 혈연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 개인의 자질과 역량에 집중하는 반면, 아싸비아는 군주와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혈통, 가문, 그리고 가신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비르투를 통하여 국민 개개인의 비르투 정신을 고취시켜 국가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반면 이븐 칼둔은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통치세력이 아싸비아를 오로지 독점해야 하며 군주가 아싸비아를 상실하게 되면 가신이나 인척 등등의 아싸비아에 굴복할 수밖에 없고, 왕조의 교체가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즉 국가에는 여러 아싸비아가 존재할 수 있지만, 가장 강한 아싸비아를 가진 집단이 왕좌를 차지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아싸비아 이론은 왕조의 탄생과 몰락, 그리고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의미하는 '순환론적 사관'으로 이어진다. 왕조의 순환론적 사관으로 살펴볼 때, 아싸비아는 동양의 천명사상과 흡사하다. 동양에서는 집단이 천명을 얻으면 나라를 개국할 수 있고, 천명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도 칼둔 역시 통치계급이 아싸비아를 잃게 되면 왕권을 빼앗긴다고 했으니, 두 개념은 무척이나 닮았다.


《무깟디마》를 읽으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료의 비판적인 시각을 주장한 것과 다르게 종교의 권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적 문헌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이런 문헌들을 두고 칼둔은 비판적인 시각보다 종교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소극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마 당시 이슬람 사회에서 종교는 절대적이었기에, 칼둔은 현실의 상황을 고려하여 종교에 대해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 같다. 이런 칼둔과는 다르게 마키아벨리의 역사관과 정치관은 무척 개방적이다. 마키아벨리는 당대에 주류 세력이었던 종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역사와 정치를 해석하는 데 있어 종교적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고 현실 정치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아무튼 무척 방대한 저작을 통하여 14세기 이슬람 문화와 사회 구조를 소상하게 알 수 있었는데, '세계 3대 문명'이라는 문구처럼 아랍과 이슬람 문화는 무척 뛰어났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이런 명저들이 하나둘씩 발간되어서 아랍과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하루빨리 종식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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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치요 - 세상을 다스리는 360가지 원칙
말레이시아 중화문화교육센터 엮음, 하영삼 외 옮김 / 도서출판3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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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책을 접했다. 그 책은 바로 《군서치요》인데, 중국의 제왕학 정치고전이다. 고전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를 꼽자면 첫 번째가 역사고 두 번째가 정치학이다. 동양의 정치고전들은 군주정에 기초하였기에 제왕적 리더십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개인적인 취향 덕에 국내에 출판된 메이저, 마이너 중국 정치고전을 대부분 섭렵하였는데 《군서치요》는 처음으로 접하는 책이라 굉장히 뜻깊었다. 이 책은 중국의 정관치지를 구현한 당 태종 이세민 시대에 만들어졌다. 태종은 어수선한 난세의 시기, 부친인 당 고조의 패권전쟁에 앞장서서 종군하였으며, 끝내 부왕과 형, 동생을 제압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무력으로 새로운 왕조를 열었지만 무력만으로는 나라를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치를 지향했다. 그런 일환에서 현신들에게 정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 것을 명하였고 그 결과 탄생한 책이 바로 《군서치요》다.


내용적으로 볼 때 《군서치요》는 기존 제왕학 텍스트와 어떤 특징이 있을까? 먼저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을 풀어낸 것이 아니라, 기존에 알려진 문헌들, 가령 《논어》, 《노자》, 《한비자》, 《사기》 등등과 같은 고전에서 통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구들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재구성하여 편집한 책이다. 《군서치요》에 인용된 책은 유가의 경전, 제자백가 철학서, 역사서, 그리고 그 외 정치학 고전 등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그렇기에 중국 고전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군주는 사무가 많았기에 치국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렇기에 현신들은 방대한 고전 속에서 왕에게 필요한 구절들을 엄선하여 《군서치요》를 완성한 것이다.


또 주목할 점으로는 다양한 사상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 정치사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하는 유가의 왕도와 성악설을 바탕으로 하는 법가의 패도로 나뉜다. 역대 중국의 제왕들은 왕도와 패도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왕도, 즉 유가의 이론만을 신봉했다. 그렇기에 중국의 제왕학 고전들은 대체로 주류 사상인 유가 쪽으로 치우쳤다. 《군서치요》 역시 유가를 중심사상으로 설정하기에 기존 중국의 제왕학 이론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지만, 유가와 대조적인 법가와 도가 사상 텍스트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당나라 시대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사상과 종교가 꽃피운 점인데, 그렇기에 이 시대에는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었다. 《군서치요》 역시 이런 개방적인 사회에서 제작됐기에 다채로운 사상의 고전들을 인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흔히 당 태종을 상징하는 제왕학서로 《정관정요》를 꼽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정관정요》는 당 태종의 행적을 기록한 역사책이고 《군서치요》는 신하들이 당 태종의 정치를 돕기 위해 편찬한 정치교본이다. 그렇기에 당 태종의 정치인 정관치지를 알기 위해서는 태종이 애독했다는 《군서치요》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두 책의 관계는 마치 법조문과 판례라고 볼 수 있는데 《군서치요》가 조문이라면 《정관정요》는 판례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왜 《정관정요》가 유행하고 《군서치요》는 생소한 것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정관정요》는 고려 광종 이후 왕들의 정치 교과서로 채택됐다는 점이다. 두 번째 《군서치요》의 원문은 세월을 거치면서 중국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마 한반도에는 《군서치요》를 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에서 《군서치요》가 사라지기 전, 일본의 학승이 《군서치요》 전질을 필사하여 일본에 보관했는데 이를 통해 천황가, 쇼군, 야심이 있는 다이묘들은 《군서치요》를 탐독하며 당 태종의 정관치지를 배우고자 노력했다. 에도 막부를 개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장서가로도 유명한데, 그 역시 《군서치요》를 통해 정치의 요체를 배웠다고 한다.


이번에 나온 《군서치요》는 원문 중 요긴한 구절 360개를 추려서 번역한 책이다. 덕분에 《군서치요》를 국내에서 접하게 되어 기쁘지만 완역이 아니라는 점이 무척 아쉽다. 책의 원문은 65부 50권 50여만 자로 방대한 분량이라서 완역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단행본 출간을 계기로 완역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자들은 민주시대를 사는 오늘날, 왕조시대의 통치론을 탐독하는 것을 두고 시대착오적인 시각으로 해석한다.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만, 책을 직접 읽고 나면 우려가 기우였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동양 정치학은 타인을 다스리기 이전의 나를 돌아봐야 한다고 가르친다. 즉 치인 이전에 수기가 우선이다. 기술문명의 발전으로 예의와 도덕과 같은 정신문화가 사라지는 요즘, 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군서치요》는 민주 시민의 내면을 돌아보는데 참고할 수 있는 거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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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시대를 읽다 - 격변기의 혁명과 개혁 그리고 진보와 보수
김진섭 지음 / 지성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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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숭숭했던 총선이 끝나고, 보름달이 만개했다. 이번 보름달은 그냥 보름달이 아닌 슈퍼문이다. 의석의 과반 이상이 푸른 물결로 가득했다. 유례없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안도감은 준비가 되지 않았던 보수진영의 패배에서 비롯한 것이고, 안타까움은 이번 선거 결과가 지역주의 이념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각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노선을 위해 필사적이었고 그 결과, 뜨거운 투표율로 표출됐다.


식자들 가운데에선 이런 말도 한다. '민주주의 제도에서 선거란 최선이 아닌 최악을 면하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적으로 공감했다. 나 역시 선거를 하면서 최선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여 투표를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투표를 마치고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기본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는 왜 선거를 하면서 후보 개인의 활동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후보의 소속감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투표를 하는 걸까. 후보의 소속, 즉 당적은 그 후보의 방향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고려할 대상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후보의 능력과 비전 등등도 동등하게 고려해야만 한다. 그러나 동서로 극명하게 나뉜 지지도는 여전히 우리 정치가 이념과 이데올로기, 지역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총선 이후, 한국 정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면서, 불현듯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다시 떠올랐다. 혹시나 싶어서 최근 새롭게 나온 책이 없나 생각하여 검색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2020년 4월에 정도전을 다룬 신간이 나온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자는 과거에도 정도전과 관련된 책을 썼는데, 제목은 《정도전의 선택, 백성의 길, 군왕의 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신간이자 리뷰의 주인공은 《정도전의 시대를 읽다》인데, 이 책은 전작을 토대로 하여 대폭 수정하고 편제를 바꾼 책으로 보인다. 저자의 전작은 과거에 읽은 기억이 있는데, 드라마 '정도전' 인기 이후 쏟아지는 정도전 도서 가운데 균형 잡힌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정도전을 통해 저자와 다시 재회하게 되니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 지인을 보는 것 같아 새삼 반가웠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는 한국 정치를 생각하면서 왜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떠오른 것일까. 여말선초 조선 초와 2020년의 대한민국은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이하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모든 부분에서 조선과 대한민국은 이질적임에도 불구하고 왜 불현듯 정도전이 떠오른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정도전이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현실에서 가장 생생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국가 공동체를 대표하고, 피지배층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대변해야 한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그랬고,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원론적이고 교과서적이며, 이상적인 담론일지라도, 시민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은 시민의 이익과 시민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인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인들은 어떤가? 지역구나 민생을 돌보기에 앞서, 자신의 파벌과 세력을 중요시하고 이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선거 철마다 부르짖는 민생이라는 구호는 이미 빈 껍데기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럼 삼봉 정도전은 어땠는가? 그는 어떤 정치인이었나? 이 책으로 정도전을 다시금 접한 결과, 크게 두 가지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첫 번째 그는 민생을 해결하는 능력도 탁월했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쟁술도 탁월했다. 현실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권력이 있어야 자신이 생각하는 정책과 이념을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파벌과 당적을 수호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도 크게 보자면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명석한 정도전 역시 이를 정확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힘이 될 수 있는 이성계를 찾아갔으며, 자신의 주군을 권력의 정점에 세웠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권력을 유지하거나 탈환하는 것만 집중한다. 그러나 정도전은 나아가 권력을 어떻게 휘둘러야 할지를 통찰했다. 왕조의 설계자라는 별명답게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을 대부분 설계했는데 법률, 군사, 행정, 도시계획, 민생, 종교, 토지제도 등등 거대하고 굵직한 사업들을 총괄한 것이다. 가장 의미 있는 점은 정도전이 설정한 국가 제도 시스템 안에는 민본, 즉 당시 백성들을 우선한다는 관념이 담겨 있었던 점이다. 그렇기에 그가 시행한 제도는 고려시대의 모순을 대폭 해소함과 동시에, 민생 안정까지 실현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정도전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바람직한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가치다. 기존 대부분의 저서에서는 정도전을 진보의 아이콘으로 내세우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고를 토대로 단정적으로 '보수적이다.' , '진보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평생 동안 보수나 진보적인 마인드로 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오늘날 특정 정당에 소속된 직업 정치인 외에는 없을 것이다. 사실 특정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들도 언론이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자신의 정당과는 전혀 상이한 생각이 나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보통의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수와 진보적 마인드를 두루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특정 성향을 앞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점은 정치가 정도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진보적인 입장에서 정도전의 삶을 바라보자. 알다시피 정도전은 고려시대의 낡은 틀을 깨부수고, 조선을 건국하는데 앞장선 급진적 신진사대부다. 그렇기에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취한 정몽주나 이색에 비해 훨씬 진보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유배를 통해 백성들의 밑바닥 삶, 제도의 모순을 몸소 체험했고, 그 경험을 잊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의 진보적 마인드는 관념으로 그치지 않았고 현실 속에서 구현되었다. 진보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정도전은 자신의 이상을 현실 속에서 절묘하게 녹아낸 정치인으로, 몇 안 되는 성공한 진보주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보수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정도전 역시 정권을 잡고 공고히 하는 시기에서 자신의 권력을 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진보적 관념이 구체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항간에서는 정도전을 두고 관념적 이상론자로 평가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이상론자이기 앞서 철저하게 현실론자였다. 그렇기에 현실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보수적인 관점으로도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보수의 가장 큰 문제는 기득권으로 인한 타락인데, 정도전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 입장에서도,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고, 공적인 일에 사용했다. 그렇다 보니 정도전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개인적 비리나 착복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다. 즉 그는 현실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며 휘두르는 데에도 모범을 보였기에, 보수 정치인의 바람직한 표상으로도 볼 수 있다.


《정도전의 시대를 읽다》는 전작보다 훨씬 깔끔하고 명료했다. 나에게는 새삼스레 새로울 것도 없는 삼봉의 족적이지만, 명료하게 정리된 저서 덕분에 빠른 시간에 정도전에 대하여 복기할 수 있었다. 책에서는 정도전의 삶만 다룬 것이 아니라, 시대의 배경과 정도전과 관련된 인물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여말선초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분들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도전에 관련된 저서 중 본서를 제외하고 볼 만한 책을 열거하자면 한영우 교수의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조유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 정도인데, 한영우 교수의 책은 교수 특유의 논문 스타일이라서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이 있을 것 같고, 조유식의 책은 대중성으로 볼 때에는 가장 탁월하지만 균형적인 서술에서 볼 때에는 다소 아쉽다. 그렇기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정도전과 관련된 책을 한 권 꼽으라고 추천한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책을 덮고 서평을 완료하는 시점, 우리나라에서도 민생안정에 실질적인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정치인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번 총선에서 초선 의원들이 많았던 배경도 새로운 정치를 희망하는 시민들의 염원으로 보이는데, 정도전처럼 다방면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작은 부분이지만 피부로 와닿을 수 있는,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정치인이 많아지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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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몽룡의 동주열국지 5 - 전국시대
풍몽룡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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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열국지》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5권은 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다. 4권의 마지막에서 변방 중의 변방인 오나라와 월나라가 차례로 패자를 칭하면서 춘추시대는 지나고 전국시대로 접어들었는데, 흔히 "춘추전국"으로 합쳐서 표현하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각각 어떤 특징이 있을까? 여기서는 서주시대를 포함하여 세 시대의 특징을 간략하게 고찰해보려 한다.

 

먼저 가장 앞선 서주시대는 주나라의 전성시대로 제도적으로 봉건제를 지향한다. 주나라 시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분은 왕중의 왕인 천자인데, 오직 주나라의 군주만이 분봉(영지를 나눠서 제후에게 주는 것) 할 권리를 가졌다. 물론 천자는 실질적으로 자신의 영지인 주나라만 다스리고 다른 지역은 제후들이 다스리기에 권력의 분포로 살펴보자면 지방분권형 정부와 비슷하다. 전국의 제후들을 다스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은 바로 예악이었다. 예는 사회질서를 뜻하고 악(음악)은 예의 경직성을 이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서주시대의 봉건 시스템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봉건제는 지방 제후들의 현실적 힘을 고려하지 않았고, 이를 통제하는 예악 역시 강제성이 없었기에 제후들의 야심을 통제하는 데 있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주시대 후대의 천자들은 하나같이 개인적 쾌락을 탐닉하고 정사를 게을리하였다. 그 결과 서주시대를 지탱하던 예악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주나라는 내외부의 혼란으로 인해 동쪽으로 천도하게 된다. 바야흐로 동주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역사가들은 동주시대를 기점으로 춘추시대가 시작됐다고 규정한다.

 

대륙을 호령하던 아버지, 주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본 제후들은 호시탐탐 맹주의 자리를 노리기 시작했고 이런 와중에 제나라의 환공이 가장 먼저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그는 주변 제후국들을 불러 모아서 회맹을 주도하면서 제나라가 중원의 맏형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버지가 아닌 맏형이라는 것이다. 환공은 자신이 국제사회의 실력자임을 자처했지만 주나라의 왕, 즉 천자의 권위까지는 도전할 마음이 없었다. 존왕양이, 즉 왕을 높이고 주변의 해로운 것들은 물리친다는 구호를 내세워 명분과 실리를 두루 찾으려고 노력했다. 명분과 실리. 이질적인 가치관이 남아있는 시대가 바로 춘추시대였다. 그렇기에 춘추시대는 모순으로 가득 찼다. 주나라 천자의 귄위는 인정하지만 실질적인 국제사회의 질서는 패자가 담당했다. 사회적으로도 주나라의 예악이 붕괴되고 수많은 하극상이 일어났지만, 한편으로는 무너지는 예악과 질서를 수호하고, 지키고자 노력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시대였다. 춘추시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계급은 제후였다. 천자는 이미 허수아비가 되었으며 그런 천자를 대신하는 계급은 패자가 된 제후였기 때문이다. 제환공을 시작으로 진(晉)문공, 초장왕, 오합려, 월구천 등이 차례로 패자에 오른다. 유심히 살펴볼 점은 권력의 축이 북방에서 남방으로 이동했다는 점과 문명 지역에서 야만 지역으로 패자의 자리가 옮겨갔다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중화문명의 범위가 확장됐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바로 야만인들의 권력 쟁탈 방식이 중원에 스며들었다는 점이다. 즉 중국은 춘추시대를 거치면서 중화문명의 범위를 물리적으로 넓혔고, 반대로 내부적으로는 야만인들의 거친 습성과 호전성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춘추오패 중 가장 야만적인 나라 월나라가 패자를 선포한 이후, 중원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새로운 시대, 전국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전국시대는 이전 시대와 비교해볼 때 어떤 특징이 있을까.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주나라에 대한 존왕양이 가치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춘추시대에는 미약하게나마 주나라의 권위를 인정하고 예악과 질서를 수호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전국시대에는 약육강식을 지향했다. 그렇기에 작은 군소 나라들은 커다란 세력에 멸망당하고 천하는 7개의 강대국으로 재편된다. 춘추시대가 명분과 실리가 공존했다면 전국시대는 오로지 실익에만 관심이 있었다.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계급은 두 계층인데 전반기는 '대부'이고 중 후반기는 '사인'이다. 대부는 제후의 가신이자 고급 귀족이고, 사인은 대부의 가신으로 신분상으로는 가장 낮은 귀족이지만 전국시대에 접어들어 평민과 다를 바 없었다.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하자 나라와 나라뿐만 아니라 나라 내부에서도 계층 간 하극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춘추오패로 명성을 떨친 진(晉)나라의 몰락이다. 당시 진(晉)나라는 제후인 군주보다 대부들이 권력이 강했고 그 결과 나라는 위, 한, 조 세 개로 쪼개지는데 이들 세 나라를 삼진(三晉)이라고 한다. 삼진(三晉)의 출현은 대부 계층의 부상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또한 대부와 더불어 사인 계층 역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학문을 익혀 강대국들을 떠돌며 유세를 하여 출세를 도모했다. 전국시대는 능력만 있다면 파격적으로 임용하는 사례가 빈번했기에 사인들 역시 생계와 명예를 위해 열국을 주유하며 구직을 청했다. 이 시기에 활약했던 소진과 장의, 상앙, 한비, 이사 등등이 사인 계급을 대표한다.

 

전국시대를 주도한 나라는 진(秦)나라인데 중원을 하나로 통일하는 국가다. 진(秦)나라는 춘추시대 중원에 위치한 진(晉)나라에 문공을 군주로 만들면서 두각을 드러냈는데 당시에 진(秦)목공은 서쪽 변방에서 오랑캐로 취급받던 진(秦)나라의 내실을 다진 군주였다. 이후 진(秦)나라는 주나라의 봉건제를 군현제로 대체했고 예악이 아닌 엄격한 법률로 내부를 다스렸다. 군현제는 지방 분권적인 봉건제와 대조적으로 중앙집권을 추구하였고, 강력한 법률 역시 백성들과 관료들을 통제하는 데 있어 효율적이었다.

 

진(秦)나라가 추구하던 사상은 법가 사상인데 이는 봉건제를 수호는 입장인 유가 사상과 대조적이다. 법가는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그 새로운 방법이 바로 엄격한 법제였다. 난세의 시기, 인의와 예악으로 대표되는 유가보다 엄격한 법가의 사상이 훨씬 현실적이었기에 결국 진(秦)나라는 주나라 왕실을 멸하고 6국을 정복한 뒤 전국통일은 달성한다.

 

《열국지》의 이야기는 시황제의 통일로 끝이 나는데 이후의 이야기는 《초한지》로 이어진다. 이렇듯 《열국지》는 방대한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로 책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한다.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역사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마천의 《사기》인데, 《열국지》가 문학적인 스토리텔링에 의거하여 시대를 표현했다면 《사기》는 인물 중심의 역사책이기에 가독성 면에서는 《열국지》가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역자인 신동준은 다양한 동양고전을 번역했는데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중국 인문학의 장르를 가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역자의 번역서는 기존의 학계와는 색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열국지》 번역에서도 작가만의 독창적인 견해가 많아서 기존의 견해와 비교 분석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일각에서 《열국지》를 두고, 장르는 문학이지만 역사서로 삼기에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칭송한다. 소설이기에 허구가 가미되었지만 비슷한 장르의 《삼국지연의》, 《초한지》보다는 심하지 않다. 그렇기에 이 책으로 방대한 춘추전국시대를 입문하는 것도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묵직한 장편소설을 다 읽고 서평을 마치고 나니 기분이 무척 시원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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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몽룡의 동주열국지 4 - 오월시대
풍몽룡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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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열국지 4》권의 주인공은 바로 오월동주로 유명한 오나라와 월나라다. 이들 두 나라는 초나라보다 더 먼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랬기에 중화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앞선 권의 주인공이었던 초나라는 중화문명을 상징하는 진(晉)나라에 맞서 패자 자리에 오르지만, 도리어 중화문명의 세례를 받아 만이 특유의 호전성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오나라와 월나라가 중원의 패자 자리를 꿈꾸기 시작한다.

 

춘추시대의 말기를 장식한 오나라와 월나라의 이야기. 이 스토리는 비단 《열국지》 뿐만 아니라 여러 역사가들과 호사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두 나라 이야기의 핵심은 '배신'과 '복수'다. 배신과 복수는 역사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지만 오월시대의 배신과 복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으로 이어졌기에 매우 드라마틱 하고 문학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그랬기에 복잡한 춘추전국 시대에 대해서는 모르더라도 오월시대의 이야기는 자세하게 아는 사람들이 많다.

 

신흥 강국 초나라는 중원세력에 집중한 결과 배후에서 성장하는 오와 월을 견제하지 못했으며, 패자가 된 후 자만하기 시작했다. 이틈을 타서 급성장한 오나라는 합려의 리더십 오자서와 손무 등의 명신들의 능력을 통하여 초나라 수도를 함락시키고 당당히 중원에 패자로 군림한다. 이런 오나라의 성세 역시 2대를 넘지 못하고, 월나라 왕 구천과 문종과 범리 등등의 명신들의 활약으로 오나라를 멸망시킨다. 이후 월나라는 패자를 칭하는데 이후의 행적은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세력이 크게 쇠락했던 것 같다.

 

문학적인 색채를 걷어내고 오월시대를 냉정하게 바라보면 커다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바로 '대외활동보다 내부 정비가 우선이라는 점'. 이는 초나라와 오나라 두 패자국이 범한 실수였다. 초나라는 패자가 된 뒤 후방의 약소국들을 신경 쓰지 않고 중원에만 몰두했다. 오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후방의 월나라를 신경 쓰지 않고 무리하게 중원으로만 확장을 시도하다 패망했다. 초와 오 두 나라 모두 앞만 보고 달렸지, 주변을 살피는 데에는 소홀한 것이다. 그 결과 중원의 패권, 즉 힘의 축은 북방의 진나라에서 남방의 초나라로 초에서 오, 월로 이전됐다. 전통적으로 낙후된 지역들이 새로운 맹주로 떠오른 것이다.

 

오월이 춘추 말기에 이토록 급격히 떠오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로 우수한 제철 기술의 발달. 당시 중원은 청동기 시대였지만 초나라나 오나라 월나라 등의 남방 지역은 우수한 철광이 많았다. 그렇기에 품질이 좋은 철기문화를 토대로 생산력과 군사력을 대폭 확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중원과의 문화적 교류가 많아져 문화적 혜택을 풍부하게 받았던 점이다. 야만국으로 분류됐던 초나라의 성공은 오나라와 월나라에게도 커다란 본보기가 됐으며, 오와 월 역시 중원의 문명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고 이름난 명사들을 등용하여 국가 발전을 도모했다. 책에서 나오는 오자서와 손무, 문종과 범리 등등의 현신들은 타지 출신이며, 출생국은 문명이 뛰어난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오와 월나라는 뛰어난 기술을 토대로 하여, 앞선 문물을 접한 재능 있는 인재들을 스카우트하여서 중원의 새로운 패자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와 월의 패자는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제환공의 패업과 같이 단발성 이벤트로 그친다. 오와 월은 중원의 패권을 얻는 것에만 집중했지 유지하는 방법까지는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월이 대륙을 휩쓸고 난 뒤, 춘추시대는 붕괴하고 새로운 시대, 전국시대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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