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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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넘치는 감정이 고통스러웠던 때가 있었다. 사소한 생채기에도 장미 가시에 찔려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고, 얼어붙을 것만 같은 겨울밤 옥상에 올라 먼 곳에 켜진 조명등의 점멸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안타까워서 여름의 더위도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것만 못했고, 어느 날 달이 짙게 뜨면 달이 떴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보곤 했다. 내 방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체 책을 펴놓고 아무것도 아닐 감정에 휩싸여 행복했다가 멍하니 울었다. 벌써 이십여년 전이다. 지금은 편하고 좋다. 어느 샌가 생각이 줄고 하루가 너무 짧아 감정안에 잠겨있을 시간도 없어졌다. 많은 것을 잃고 잊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무쳤던 일이 가무룩하니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듣던 밤'은 그랬던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차마 보내지 못할 밤에 쓴 편지를 서슴없이 보내게 되는 곳이 라디오라는 매체인것 같다. 학생 때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항상 라디오가 흘러나왔다. 열두시쯤 되어 가는 시간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고 사연들은 무엇하나 가볍거나 무례한 것이 없었다. 섬세하고 깊었다. 어떤 날은 내리기 아쉬울만큼 빠져 듣고 어떤 날은 흘려 들으며 창 밖을 바라봤다. 그런데도 그 즈음의 시간을 떠올리면 그때 들었던 디제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떠오를만큼 깊게 남아있다. 늦은 시간의 라디오는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집에 내려가려다 차표를 잘 못 사는 바람에 취소 수수료도 물고 집에 못가고 그저 접시에 코 박고 있다(p.25)"는 사연은 얼마 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짧게 일본을 다녀오는 길에 공항 버스 대기 줄을 잘못 서서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친 일이 있다. 내 표를 몇번이나 검수했던 안내 기사분도 나를 제대로 된 줄로 보내주지 않았기에 접수처로 가서 다음 시간으로 표를 바꿔달라 요청해야 했다. 다행이 다음 차 표를 얻었지만 비는 시간동안 허망히 앉아 내 탓인가 자책했던 시간이었다. 내 경우엔 단 한시간 정도의 손해였지만, 엄마를 보러 가려했던 사연자의 심정은 얼마나 실망스러웠을까. 생각지도 못한 실수와 실망이 점철된 순간들이 공감되면서 사람 사는 일 다 똑같구나 싶었다.

 

 또 하나 공감되는 것은 '혼자'에 대한 부분이었다. (p.88) 대학 들어가면서부터 혼자 따로 떨어져 나가는 일이 눈에 띄었다. 전공 수업 시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청하지 않았더니 선배, 동기들이 돌아가며 말렸던 일, 혼자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었더니 마주치는 지인들마다 왜 혼자 먹냐며 같이 먹겠느냐 물어왔던 일, 보고픈 영화를 기다리다 식당에 들어갔더니 옆 테이블 커플이 혼자 밥을 먹는 것을 보며 수근거렸던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은 혼자라는 것이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그때만 해도 혼자 떨어진다는건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였다. 남들과 다르면 '혼자'가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덜 번거롭고 조금 더 자신의 상황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음에도.

 

 이런 것들은 그때는 정말 예민하고 중요한 것 같아도,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혼자해도 괜찮은 일들이 하나씩 늘어나게 되어 익숙해진다. 다만 그때 혼자가 되면 안된다는 남들의 만류에 수업 선택도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하게 만든 주변의 만류가 날 분노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 수업에서 낙제했기 때문에. 그 일을 계기로 내가 하고 싶은 건 내 마음대로 해버리자고 확고히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의 학교생활에서도 그 뒤에도 그 선택은 날 혼자로 만들지 않았다. 혼자는 나의 시간과 취향을 아주 합리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 다만 맛있고 재밌고 좋았고 화났던 부분을 누군가와 나눌 수는 없을테다. 그래 어쩌면 누군가들은 나와 그 시간을 나누고 싶어 나의 혼자를 만류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혼자를 말리는 거추장스러움도 조금은 사랑스럽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저절로 내 할말도 많아진다. 내게도 이런 일들이 있었고,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고 죄 적어내고 싶다가도 금방 지워버리곤 했다. 떠들고 싶다가도 타인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고 싶어졌다. 책장을 다 넘겼을 땐 남은 이야기가 없어 아쉬웠다. 마치 저녁 어스름에 여기저기 불이 켜지는 집들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불빛이 새나오는 창가를 보며 누군가의 삶이 그 안에 담겨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 사람으로 가득찬 대중교통 안에서 괴롭다가도 문득 인류에 대한 온기가 잠시간 살아난다. 이 사람들이 다 저 따스한 불빛이 되려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다.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우리가 함께 듣던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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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 하버드 법대, 젊은 법조인이 그린 법정 실화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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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비밀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내 주위에는 온통 말 못할 비밀뿐이었다. 할 수 있는 말 밑으로 어둠에만 속하는 울림이 있었다. 내 여동생들과 나는 지난 5년간 밤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함구했다. 그 세월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사라져버렸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침대에 몸을 던지며 울부짖던 때도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기론 그건 낮에 부모님이 시내 사무실에서 보내는 삶과는 별개의 모습이었다. 어느 날 밤 내가 부엌에 내려가서 맞닥뜨린 아버지가 이제는 더 이상 다정하지 않고 외려 화가 나 있더라도, 내게 혹은 삶에 화가 나 있더라도, 그리고 내게 저주를 퍼부으며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하더라도, 그 모든 일이 진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p 165 "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읽기 어려운 책이다. 거기에 분량도 적지 않다. 이는 1990년대 미국에서 실제 벌어졌던 아동 성범죄와 이를 다룬 법정 공방을 그려내면서 저자 자신의 어린시절을 교차해가며 보여준다. 독특하게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하면 모호함이 떠오른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소설보다 분명한 사실적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인가가 매우 모호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 소재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에는 꽤나 고약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허구가 섞여있겠지 하거나 섞였기를 기대하게 된다.

 

 " "나는 어린 남자애를 좋아해요." 그가 말했다. "안 그러려고 무척 애를 써도 그래요. 성적으로요." - p233 "

 읽는 도중에 계속해서 리키라는 인물이 왜 아동을 대상으로 욕망하는가에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극악스러운 범죄 뉴스를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왜?" 하고 매번 품는 의문이지만 어떤 사고와 계기로 행동과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인지 이해하려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거기다 함께 다룬 어린 손녀들을 대상으로 한 할아버지의 친족성폭력 또한 그 이상의 거부감이었다. 마땅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리키의 불우했던 출생과 성장기 같은 것들을 읽으며 그게 어떤 이유가 되는지 반문했다. 할머니와 오빠 같은 다른 가족들이 알아선 안된다고 입막음을 당하는 지점에선 말할 것도 없었다.

 

  " 나는 화면 속 저 남자를 구제하는 일을 돕겠다고 이곳으로 왔다. 저런 남자를 돕겠다고 이곳으로 왔다.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과거 내게 일어난 일로부터 내 이상과 내 실제가 별개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 둘은 별개여야만 했다.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삶을 지탱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스크린 속 남자를 보자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만지던 손길을 다시 느꼈고, 그래서 알았다. 그동안 내가 받았던 훈련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 일하러 온 명분에도 불구하고, 내 믿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리키가 죽기를 바랐다. p 311 "

 

 아동성폭력의 피해자가 왜 가해자인 리키의 사건에 파고들었을까. 비슷한 사건은 마주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끔찍한 기억일텐데 굳이 지난 사건을 집요히 파고든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읽었다. 극복했기 때문일까 혹은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얽매여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극복과 긍정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도구를 위해 마땅한 죄를 지은 범죄자의 삶을 동정하여 이해를 구할 수 있을까. 리키가 처음 교도소에 들어갔다 석방된 후로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제러미가 죽었다. 그애의 엄마인 로렐라이 마저 그를 편들어 증언했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생명을 죽였고, 또 기회만 주어진다면 능히 죽일 것이다.

 

 더구나 로렐라이가 니키의 재판에 굳이 찾아와 사형을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생명존중에 대한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어떤 인상적인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마이클 샌들 교수의 강의에서 나온 질문과 비슷하다. 간략히 옮기자면 '선로에 있는 다섯 사람이 곧 다가올 기차에 치일 위기에 쳐했다. 그 앞 길목에 한 뚱뚱한 사람을 밀어 희생시키면 그로 인해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내용이다. 그녀가 니키의 사형을 반대했던 이유도 용서보다는 사형 집행 영장에 남을 자신의 서명이 싫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석된다. 덧붙여 할아버지에게 성추행 당한 딸에게 그 사실을 함구시켰던 부모의 결정처럼 묻어두거나, 여동생처럼 자신에게 아예 없던 일로 하기 위해서 사실을 외면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읽는 동안, 그 후에도 마음은 불편했다. 평소 범죄수사물 미드를 즐겨보는 편인데도 시각으로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범죄 장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무거움이 있는 책이었다. 우리-보편적으로-가 원하는 결말은 없지만 지독한 현실이 있고, 군상들이 존재했다. 범죄물을 좋아한다면 색다른 느낌으로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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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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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울 때는 실컷 외로워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투정을 부렸어야 했다. 추억이란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때 더 부끄러운 짓을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덜 후회하고 살고 있을 것이다. p.201 "

 

 이 책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을 모르겠다기 보다는 일본 사람들을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어떤 부분에서는 요즘말로 하는 인스타감성 가득한 내용을 써내리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나이 든 남자를 공략하는 방법' 같은 걸 들이민다. 그런 방법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는걸까. 이미 여기서 더 나이 든 남자를 만났다가는 금새 병수발 들게 생긴 내 늙음 탓에 따라가지 못하는 걸까. 익명의 SNS 작가고 아직 머리카락이 까맣다길래 굉장히 트렌디한 문장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무리 그렇더래도 이건 좀 촌스러운데 싶은 내용들이 지뢰처럼 등장해서 깜짝깜짝 놀래키곤 한다.

 

 우리가 원래 인터넷에 쓰는 글들이 다 그렇듯 전에 했던 요지의 내용과 나중에 나오는 내용이 서로 다르게 부딪치기도 한다. 몇 개의 내용을 읽으면서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여자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데 이 책에서도 여자력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그것도 '여자력이란 말을 없애'자는 내용으로 등장해서 당황스러웠다. 남자 꼬시는 법이나, 남자 점수 매기기, 속마음 번역하기, 악녀되기 등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잡지책같은 키치한 면모를 자랑하다 갑자기 여자력은 필요없어! 너는 그냥 너 자신이 되면 돼! 하고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제대로 된 말이 나오는가 싶어도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뜨악해지곤 한다.

 

 처음엔 감상적인 내용이 많길래 여자가 작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남자였다. 뒤늦게 알아차린게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특히 백엔짜리 반지 얘기같은 건 전형적인 감성이라 나도 모르게 김건모의 '미안해요'라는 노래를 싫어한다는 한 희극인의 일갈을 떠올렸다. 혹은 문방구 반지 커플링 같은 그런 인터넷 괴담들을. 앞서서 남자에 대해 분석하고 점수매긴 글들이 왜 이렇게 나왔나 했더니 남자어 번역 같은 느낌으로 나름 객관과 주관을 섞어낸 것이었다. 코스모폴리탄 같은 잡지를 한 5년 정도는 정기 구독한 여자인줄 알았더니 90년대에 태어난 우리들이란 표현을 쓰는 애늙은이였다.

 

 다행이도 공감대가 없어 뻘쭘한 이 어색함은 연애에 관한 부분에서 특히 강조되었을 뿐이었는지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서는 약간씩 흥미를 회복해갈 수 있었다. 친구와 만나 신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놓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던지, SNS로 애매한 저격글을 올리는 일 같은 사소함에 공감이 됐다. 어찌보면 본문의 내용보다 삽화에 더 눈길이 갔다. 송아람 작가가 그린 이 삽화가 내용까지 원작가의 확인을 통해서 담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짧으면서도 직접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치사한 방법이고 남들 앞에서는 잘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만화나오는 부분만 먼저 골라가며 읽었다.

 

 이 책이 18만부 넘게 팔리고 품귀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흥했다는 문구에 문득 '언어의 온도'를 떠올렸다. 결이 좀 다르지만 가진 것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혹 '언어의 온도'를 좋게 읽었다면 이 책도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글마다 호불호가 널을 뛰었기 때문에 무엇을 기대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지 가늠이 잘 오지 않는다. 불편을 감수하고 기꺼이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거나 말장난을 해놓은 것 같은 SNS 감성은 원치 않는다면 마음에 안들겠지만, 에세이를 좋아하고 킬링타임용 가벼운 책을 찾는다면 혹은 늦은밤 감성에 취해있을때 곁들이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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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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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모리 마리에 대한 짧은 소개글을 초입에 읽고 어쩐지 기가 질렸다. 짧은 문장들만 봤을 때는 '우리는 같은 과'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그녀와 나는 너무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홍차와 장미의 나날"로 표현되는 사람을 가성비와 포기의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담아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집안이 항상 어질러져 있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비워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 서로 다른 사람들. 플라스틱 컵을 쓰지 않지만 유리컵으로 분위기를 내는, 스테인레스 컵으로 보온을 강조하는 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맞닿을 지점이 있을까.

 

 " 괜찮아, 먹고 싶은 건 매일 있으니까! " "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소설이 안 써진다 "  "좀 곤란한 인생이지만 잘 먹겠습니다 " 와 같은 문구들은 어머, 당신은 나의 정신적 쌍둥이 아닌가요 붙들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 호감이 갔다. 때때로 일기처럼 쓰던 블로그에 한 꼭지 정도는 뭘 먹었거나, 뭘 먹고 싶다는 얘기가 꼭꼭 들어갔던만큼 핸드폰 사진첩에 온통 먹을 것, 먹을 방법, 먹은 것 사진들이 폴더별로 정리되어 있는 만큼 나름 미식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열심히 발돋움하고 있는 만큼 '홍차와 장미의 나날'이 궁금했고 읽어보고도 싶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 사람, 나와는 안 맞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에세이니만큼 저자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게 작용했다. 세대도 차이지고, 나라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실제로 만났어도 성향이 너무나 달랐을거라 생각되는 젠체하는 듯한 표현방식이 시선을 냉담하게 만들었다. 유복한 생활을 한 탓에 프랑스에서도 생활하고 했겠지만 '일본은 아시아의 유럽'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태도나 "파리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미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p.38) " , " 나는 구두쇠에 욕심쟁이인 프랑스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p.227) "같은 표현은 '일본은 아시아의 그냥 아시아! 아시아 섬나라 사람!' 이라고 어딘가를 향해 소리치고 싶게 만드는 면이 있다.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녀의 솔직함. 그것도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독이었다. 주로 과거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것과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초면에 시종일관 천연덕스럽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을 좋아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긴자의 가게에도 취향이 고급스러운 사람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멍청이 직원만 넘쳐나고 있는 모양이니 p.157 " 하는 부분이나 " 나는 엄청나게 애지중지 자란 아가씨라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엌 쪽으로 가서 하녀에게 "얼굴 씻을 더운물"하고 말씀하신다. 그런 다음 세면대가 딸린 삼첩방에서 더운물로 얼굴을 씻으시고 간식을 드시는 순서였다. p.131 " 이런 내용을 읽으면 떨떠름해진다.

 

 특히 이 삼첩방 더운물이 나오는 '애지중지 자란 아가씨' 단락의 내용에서는 그 앞에 "조센아메 (조선엿)" 라는 음식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시기적으로 '우리나라가 일제의 수탈에 고통을 받고~' 하는 생각이 들면 내 안에 자리잡은 독립투사의 혼이 불쑥 솟구쳐오른다. 그럼 나도 모르게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은 남의 나라 (쉽게 쓰여진 시_윤동주) " 하고 떠올리며 마음이 문득 고요해지는 것이다. 너무 나갔나 싶지만, 혹 누군가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모리 마리라는 사람이 밉살스럽기에 이러저러한 불평을 늘어놨지만, 다른 사람들이 평하는 그런데도 밉지 않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는 3 퍼센트 정도쯤은 알 것도 같다. 사랑만 받고 자라 물색없고 솔직하기만 한 사람이랄까. 의도없이 단지 느낀 그대로를 말하기 때문에 가깝고 싶진 않아도 나쁘게 평할 수는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대체적으로 나는 앞으로 글을 쓰거나 말할 때 저렇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때로는 그 단호하고 확고한 취향을 에둘러말하지 않는 당당함이 부럽기도 했다. 굉장히 호감가는 첫인상이지만 의외로 호불호가 갈리는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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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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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년전쯤 일이다. 갑자기 왼쪽 손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무거운 것을 들지도, 손목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파서 덜컥 겁이 났다. 주로 사용하는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 아픈 것도 이유를 모르겠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팔목에서부터 뼈에 구멍이 생기고 있는건 아닌지 염려되었다. 덜컥 차를 얻어타고 아는 사람에게 들은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주차해서 접수를 하러 가니 교수님의 진찰을 받으려면 대기가 삼사개월은 넘어간다고 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그냥 돌아오고서 한동안 손목을 부여잡고 생활했다. 내 진료 대기 차례가 되자 통증은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의 저자 김신회가 오른손에 통증이 생겨 강제휴업 상태로 들어간 계기를 통해 이 책을 썼다는 것을 읽고는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왼쪽 손목이 아팠던 나는 어땠던가.

 

 이 에세이는 몇 퍼센트의 진실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꽤 생생하다. 정말 너무나도 가까웠던 지인과 일년을 함께 살고 난 뒤에 어색해졌다는 단락에서는 불편함마저 느껴졌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졌다는 이유가 크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집 한 켠을 내어줄 정도로 살가웠던 지인이 데면해졌다면 그 이유가 어디서부터 왔을지! 그리고 본인은 왜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인지! 게다가 이런 내용을 글로 써도 되는 것인지! 까지 걱정이 앞섰다. 날 것 그대로의 내용은 아니겠지만, 원래 작가들은 자기의 모든 것들을 이렇게 내놓는데에 주저함이 없는 것일까. 이런 상황의 자신에게는 모두에게 다 사랑받을 수 없으므로 관대해지고, 스타벅스 계산대 앞에서 무슨 음료를 마실까 가벼운 고민을 불특정 다수에게 묻는 결정장애의 타인의 삶에선 움츠리면 나아갈 수 없으니 변화해보자고 말하는 것도 어색했다. 맞는 말이고 좋은 충고이긴 한데, 관대함의 범위가 나와 타인에게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은 초반 부분을 읽으며 주로 들었는데, 사실 이런 날카로운 반응이 돋아나는 것은 저자의 탓이라기 보다는 내 개인적인 일들이 에피소드와 반응해 떠올랐기 때문이 더 컸다. 워낙 생활감이 묻어나는 주제들이어서 비슷한 경우가 나에게도 하나씩은 있었다. 이유를 잘 모른채 멀어지게 된 관계나 속으로만 삼키고 끊어낸 관계도 있었고, 밀떡과 쌀떡에 대한 선호도나, 다소 어려운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생각, 사야된다고 생각하면서 몇번이나 무슨 제품으로 살지 간만 보고 사지 못한 물건들, 선물에 대한 관점을 토론했던 기억도 있었다. (선물을 할 때 실용적인 물건을 고르는지, 필요하지 않아도 있으면 좋을만한 물건을 고르는지 혹은 내가 받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고르는지, 상대방이 원하는 물건을 고르는지 에 대한 토론) 그런 일상적인 내용들 사이에서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생각은 나와 다른데? 왜 이런 생각을 했지? 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다 '사과의 타이밍'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 날선 마음이 점차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선으로 변해갔다. 자연스럽게 이 사람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에서 저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 하며 달라졌다. 그러자 그때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래서 이렇게 생활하고 있구나 하고 가볍게 저자의 일상을 듣듯이 편안하게 책이 읽혔다. 시선이 좀 더 관대해졌을 뿐인데, 타인의 시선과 삶을 이해하고 바라보자 내 것도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들며 스스로에게도 '그럴 수 있어'하며 관대해졌다. 처음엔 저자는 손이 아픈 동안 이 책을 위한 준비를 했는데, 나는 손목이 아픈 동안 대체 뭘 했었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 그때 아팠지. 좀 더 잘 쉬었어야 했는데 팔목을 너무 썼어. 하고 생각도 해본다.  에세이라는 분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나름 좋은 마무리로 잘 읽어냈던 것 같다. 다른 무엇보다 책 속의 당신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는 이런 사람이 아닐수도 있고 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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