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미움들 - 김사월 산문집
김사월 지음 / 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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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선 문장들은 아주 솔직하다. 사람은 일기를 쓰면서도 전부 솔직할 수 없는 법이라고 하니 사실 그녀의 솔직함은 조금 비틀리고 가리워진 채 드러날만 할 만큼의 솔직함이겠지만. 그렇다면 솔직하다기보다는 대범하다고 해야할까. 처음엔 내가 자신에 대해 드러낼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내용을 읽으며 공감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을 때는 이 모든 것이 좀 덜 무서웠던 것도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티를 내지는 않아도 무섭고 두려운 것들이 많아졌다. 김사월의 과감함이 어쩐지 염려스러울만큼.

 

 " 나는 '지금' 꾸미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은 안 꾸몄지만 언젠가 내가 원하면 겉모습을 꾸미는 데 기꺼이 돈과 노력을 바칠 것이며 그때는 지금보다 매력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53) "

 

 김사월은 몇 살일까 생각했다. 내가 잘 모르는 작가는 내가 모르는 삶을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 뮤지션인 그녀는 클럽에 가서 빵디를 흔들고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하고 데이트 어플을 쓰고 초커를 하고 독일로 떠난다. 나는 그 적극적인 삶의 태도에 조금 거리감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자궁경부암 예방 주사를 맞고, 프리사이즈 옷을 입는 몸을 욕망하고, 스타벅스에 가고, 화장을 했다가, 꾸밈에서 벗어나려 시도한다. 나는 이 평이한 생활의 흔적에 공감한다. 그리고 김사월은 이렇게나 자신을 드러내는데도 영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다 문득 그녀가 누군지 궁금해 검색해봤을때 실제로 그녀의 나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묘했다. 알 것 같은데 모르겠는 사람다웠다.

 

 짧게 이어지는 글들은 처음엔 놀라웠다가 갈수록 귀여워졌다. 모르는 사이에 꼰대화 된 유교걸인 내가 클럽에 갔다가 강간당하거나 살해되는 것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두렵지 않다는 문장에서 지나치게 놀랐던 것일까. 이어지는 소소한 단상들은 이십대후반, 어쩌면 서른 정도의 여성들이 느끼고 생각할만한 보편적인 것들이라 꽤 익숙한 느낌이었다. 특히 나는 가끔 강남을 갈때마다 느끼는 강북으로의 회귀 열망, 무엇보다 종로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갖고 있어서인지 종로에 대한 그녀의 찬양이 썩 마음에 들었다. 비록 그녀는 딱히 강남 때문도, 회귀 열망같은 것도 아니라 그냥 종로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종로에 대한 애정만으로도 '우린 같은 민족이었어'하고 속삭인다.

 

  " 내가 욕망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섹스하는 상상을 해본다. 나보다 어리고, 예쁘고, 재능 있고, 너를 이해해주고, 아무튼 나는 아닌 어떤 이는 너를 몹시 흥분시킨다. (22) " 

 

 본격적인 사랑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3부의 내용은 오히려 너무 감성적인 것 같아 그냥 그랬는데, 1부에서 읽은 사랑과 욕망에 대해 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나 역시도 한때 그 둘이 같은것이라 믿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둘이 너무나 별개의 것으로 떨어져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랑과 욕망의 질량이 같을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해야 한다는데, 사랑도 섹스도 다 따로 할 수 있고, 욕망이 식었다고 사랑마저 버릴수도 없는, 그러나 그 둘은 같아야 한다는 믿음에서 묶여있을 뿐이다. 나는 항상 그점이 안타깝고 때로는 서글펐는데 지금은 어쩐지 무덤덤하다. 그건 사랑때문일까 욕망때문일까. 갈수록 사랑도 욕망도 힘을 잃고 어려워진다.

 

 그녀가 남긴 우울의 기록을 보다가 문득 나는 우울해질 수 있는 사람일까 궁금했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많은 일들에 대해 무감해졌기 때문에 우울이라는 감정에 빠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 무감해지는 일도 우울의 하나일까 싶어졌다.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해야할 일을 하는 것으로 그녀가 나아가고 있다면, 나는 부정적인 태도를 줄이기로 했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도움 안 됨 긍정적인 사람들과 얘기해라.' 라는 남극 펭 선생의 짤을 보고 불현듯 그래야겠다 싶었다. 나는 차고 넘치게 부정적인 사람인데, 이런저런 일들로 나 자신도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요즘의 여성들이라면 김사월의 글에 꽤 공감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디까지를 요즘의 범위로 잡아야 하는지 좀 애매하지만. 처음 너무 전위적인거 아닐까 이를테면 홍대의, 음악을 하는, 같은 키워드로 전해지는 독특함이 도드라지는거 아닐까 생각했던 것도 기우였다.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맑았다 흐려지는 자신을 하루하루 느끼는 보통의 문제많은, 사랑스러운 우리였다. 여성들로 꾸려진 독서모임이 있다면 한번쯤은 가볍게 '사랑하는 미움들'을 읽고 20대와 한때 내가 겪었던 거칠고 흐린 날에 대해 이야기해본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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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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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책이든, 미리 커다란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보통은 어떤 내용을 나한테 보여 줄 수 있는데? 하는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시작한다. '우리만 아는 농담'이라니 나도 아는 농담으로 해주면 안될까, 속으로 생각했었다. 남태평양의 보라보라 섬에서 보낸 9년이라니. 실제로는 넷플릭스 보는 날이 더 많았다 하더라도 이 반도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았다는 사실이 우선 행복해보였다. 사금파리같이 빛나는 타인의 행복한 순간, 현실에 발 딛지 않은 삶의 이야기에서 내가 감화될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삐딱한 시선에 날이 섰다. 그런데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뭉그러졌다.

 

 "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발음할 수 없는 단어가 계속 나타났다. 이리저리 발음을 바꿔가며 말해도 상대는 알아듣지 못했고, 하려고 했던 말과 전혀 다른 말을 해버리기도 했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웠다. 말을 하면 숨겨둔 뉘앙스까지 귀에 탁탁 꽂히는 나의 모국어가. (19) "

 

 개인적인 이유로 저 문장이 마음속에 깊이 날아와 꽂혔고, 뒤이은 프로포즈 장면에 웃음이 지어졌다. 그래, 행복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바라보는 건 좋은 일이었지. 하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지막 장면에 환히 웃으며 서로를 껴안는 두 주인공이 나오는 로맨스 영화를 보는 이유처럼 말이다.

 

 책을 읽고 한동안 말랑말랑해졌던 마음이 낡은 노트북 앞에서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것을 적어서 잠시 저장해둔 것을 야속하게도 불러오지 못했다. 이래저래 방법을 써봐도 소용이 없었다. 꼭 그렇게 시작하고 싶었는데 어쩔수가 없을 것 같았다. 뭐였더라, 손으로 주무르며 갖고 노는 색색의 장난감같이 말랑이던 마음이 딱딱하고 검게 굳어버리는 현무암처럼 되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내뱉지는 않았지만 불쑥 욕이 솟아올랐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생각해봤다. 책에는 꿈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사람으로 살지는 꿈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직업을 넘어서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지 그 자체도 결국은 평생을 꿈꾸는 방향성일 것이다. 이렇게 짜증나는 순간에도 욕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사는 것. 아니 애초에 이런 순간에 욕이 떠오르고 마는 사람인 내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꿈같은 소리아닌가.

 

 "우리만 아는 농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에세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책을 곱게 보는 편인데, 일부러 그런게 아니지만 택배 포장을 뜯다가 그만 띠지에 가위가 닿았다. 아예 다 잘려지지는 않았어도 꽤 깊게 가위자국이 생긴 띠지를 보면서 '어쩔 수 없지'하고 넘어갔다. 처음엔 그랬는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잘라진 틈을 보면 조금 미안해진다. '넌 띠지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하고 웬 인형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책에 상처를 냈기 때문일까, 읽으면서 내 눈에 눈물 쏟을 일이 많았다. 상처 준 만큼 울게 되다니. 이 책은 농담을 한다고 해놓고 내 마음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책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다시 마음이 물렁거린다. 책을 읽으며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카페에서 책을 읽지 말 것을, 내가 진짜 무모했다고. 커다란 커피숍 한 가운데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며 남몰래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이는 추레한 독자는 화장실로 달려가 급히 끊어온 휴지로 코를 풀며 쪽팔림을 느낀다.

 

 대도시의 삶이 아니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여자와 걸핏하면 전기가 끊기고 모기의 습격을 받는 보라보라 섬에서 사는 여자의 삶에서 서로를 이해할만한 구석은 얼마나 될까. 그녀의 친구들조차 4층인 그녀의 보라보라 집 방문을 열고 바다로 뛰어내리려다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것 만큼 나도 그녀의 삶을 멋대로 정반대의 구역에 구분지어 놓았다. 물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은 맞지만, 그녀 삶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일부들은 내 삶에도, 모든 사람들의 삶에도 존재했다. 그녀가 모든 것을 솔직하게 쓰지는 않았겠지만 진실하게는 내놓았기 때문에 그녀가 보여준 보편이 나로 하여금 그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사실 나는 한번도 아버지에게 용돈 입금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그녀가 말한 7에 공감했다. 한적한 새벽길을 달려 인천공항에 나와 이민가방같은 캐리어을 내려놓아 준 어떤 날을 공유했다. 올랑드를 두고 " 설마 노트북 달래? "하고 물을 수 밖에 없었던 달라지지 않음도 닮아있었다. 마트를 사랑하는 건 그녀와 내가 영혼의 쌍둥이-수많은 조각들 중 꼭 맞는 한쌍-라는 증거였다.

 

 실제로 나도 'I'm sorry'란 말을 때때로 해야할 상황에서 왜 sorry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조금은 긴가민가하다. 파인 땡큐 앤 유?처럼 반사적으로 내뱉은 적도 있지만, 어쩔 때는 이럴때 해줄 수 있는 다른 더 좋은 표현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에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남편의 이야기가 꽤 자주 나오는데, 그녀가 그려주는 그의 프로필은 서정적이면서도 슬퍼 마음에 들었다. 기념일에 관한 이야기, 계단에 대한 이야기, 결국은 폐업한 그의 꿈,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차를 세우는 점, 중국식당에서 한국인의 치킨수프인 죽을 사온 일, 무엇보다 전날의 짜증을 공복이라는 웃음으로 덮어준 마음 씀씀이 같은 것이 좋았다. 그녀가 그를 통해 'I'm sorry'를 깨달았듯이, 그녀가 조심스레 덧붙여놓은 슬픔들을 보며 나도 한번쯤을 그녀를 위해 'I'm sorry'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더불어 나랑은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 실제로는 가까워질 수 없을 사람이지만, 무엇보다도 말이 통하지 않을!, 그에게도. 그리고 조금은 더 기꺼운 마음으로 앞으로 나와 슬픔을 나눌 내 친구들에게 그 말을 건네줄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전부 솔직할 수는 없지만, 일부 진실되게 그녀에게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언젠가 가까운 이들에게 가볍게 아무것도 아닌척 흘려 말했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내밀하고 얼룩져서 숨기고 싶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딱 그만큼 삶을 얘기하는 '우리만 아는 농담'을 읽으며 다들 이렇게 살고 있구나, 조금 안도했다. 삶에 있어 오롯한 내것은 없는 것 같아 조금 실망도 했다. 특히 아빠와 얽힌 "편도 항공권" 글을 읽으면서 " 그 사람에게 가까워지는 일은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일이라는 것 "이라는 문장이 또렷하게 가슴에 박혔다. 이 말을 좀 더 젊었을 적의 내가 읽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기꺼이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누군가와 새롭게 사랑에 빠질만한 여력도 없지만, 그게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일이라면 더욱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것 같다. 왜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식이 결혼해서 애낳고 사는 것을 너무나 바라는 부모님이 듣는다면 전혀 절대 좋아하지 않을 만한 것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과 내가 연결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게 무섭다.

 

 책을 읽다 감정적으로 지쳐서 잠깐 쉬었다 읽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그때 대충 몇 줄 읽다가 덮으려던 책을 다시 펴게 만든 부분이 친구 소현과 그녀의 할머니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이미 그녀의 친구와 심지어 그녀의 친구의 할머니, 다른 가족들까지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먼 집"은 내가 사랑하는 영화였다. 어느 날 오후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그 영화는 그 날 오후와 그 뒤의 오랜 시간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우리는 너무 달라 아무런 접점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이미 닿아있었구나 싶어졌다. 문득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영화를 보고 느낀 것들이 조금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제는 태연이의 친구 소현이와 소현이네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할머니의 먼 집"을 꼭 보길 너무나 추천하다. "우리만 아는 농담"도 "할머니의 먼 집"도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과 온도를 가지고 있다. 좋은 사람의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이, 이 두 사람이 친구라는 사실이 어쩐지 너무나 이해가 간다.  

 

 다 읽고 난 뒤에 친구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내가 발견한 보편으로, 그들에게도 감동이 전해졌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에세이는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앞으로 에세이 책 앞에 서서 신간을 살피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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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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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랑은 아니지만, 사실 이 책을 집어든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자랑에 가까운 일이지만 난 헬스장에 잘 간다. 등록하는 일이 꾸준하지 않아서 그렇지 일단 등록을 하면 그 기간동안은 보통 주5일 출근하듯이 간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은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랑은 잘 안맞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책을 얼마 읽지 않았을때 드디어 나온 헬스에 대한 경험담은 읽으면서 '오, 확실히 나랑 달라'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로지 등록만 해놓으면 꼬박꼬박 가는 헬스에 대한 것일 뿐, 그 밖에 운동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신체를 지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신부조화의 경험이나 오늘 할 일은 내일의 나에게 넘겨주고 싶은 삶에서 게으름이 차지하는 분포 같은 것들은 공감됐다. 사람 사는게 다 비슷하지 뭐.

 

 처음에는 이 책은 필라테스교의 사주를 받아 만든 필라테스 복음인가 싶었다. 책을 읽는데, 세상 모든 운동들에 대한 실패담을 줄줄이 늘어놓다가 우연히 요가 대신 하게 된 필라테스를 경험하고 ~ 내 인생이 달라졌다~ 필라테스를 경험하고~ 나의 운동시대 시작됐다~ ...고 하는 노래가 어디서 배경음악으로 들리는 듯한 광고효과가 느껴졌다. 세상 모든 운동들에게 버려진 육신도 품어주고, 갈비도 열고 닫을 수 있는 사랑은 열린 문 같은 운동이 필라테스라고? 선생님이 자꾸 숫자를 느리게 센다고 하소연하는 필라테스 경험자들의 고통스러운 간증이 이미 이 바닥에 스멀스멀 퍼져있는데? 이 책이 혹시 필라테스교에서 방황하는 운동양들을 거둬가기 위해 보낸 포교인가, 아닌가 읽으며 주의를 기울였다. 혹하는 마음으로 필라테스를 등록하려 알아보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그런데 읽다보니 단순히 주제가 운동에 대해서만 강조된 것이 아니라 뜻밖에도 페미니즘적 시선이 많이 보였다. 학교 다닐 적에 여학생들은 구석에서 알아서 놀고?쉬고? 있으라고 하고, 큰 운동장에 공 하나 던져주고 남학생들만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했던 선생님들의 -그때는 이득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차별적 대우- 체육 수업이나, 여성 회원을 상대로는 살 빼는 것만 강조하는 운동 광고, 종목의 프로인 여성운동선수와 일반인 남자를 비교하여 시합하게 하는 사회의 태도, 트레이너의 유사연애같은 회원관리 법? 등등을 꼬집는다. 운동 외적으로도 생리대 파동 이후로 큰 주목을 받았던 생리컵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페미니즘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운동하는 여성이 전반적으로 경험하고 생각했을만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책에는 양말에 대한 애정과 함께 손에 꼽은 필라테스 뿐 아니라 복싱, 아쿠아로빅, PT, 커브스 순환운동, 요가, 승마 심지어 인스타 광고로 지겹게 등장하는 교정깔창까지! 저자를 스쳐 지나가는 한 때의 풋사랑같았던 수많은 운동 경험담이 담겨있다. 괜찮을 줄 알고 사겼는데 알고보니 나랑은 안맞았던 구남친에 대해 줄줄이 떠올리는듯 운동이야기가 막힘없고 재밌다. 그 많은 운동은 언제 다 등록하고 다녔을까 궁금할 정도로 폭이 넓은데, 그러다보니 문득 '아, 이 사람 게으른 척 하지만 사실은 엄청 열정적이고 부지런한거 아니야?'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마치 너도나도 모솔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2주일이내로 썸타고 사겼다 깨진 전남친이 몇 되는 연애부자가 아유, 나도 뭐 없었어 하고 몸을 사리는 느낌이랄까.

 

 작가의 행동력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얻은 뒤로 '찐 게으름뱅이들이여, 실패하더라도 등록부터 하고 보는 이 사람은 어차피 실패할 거 그 돈으로 치킨을 한 번 더 시키는 우리보다 윗길이니 쌓으려던 공감대를 조금 내려놓고 보세요'하고 주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게다가 우리는 더 많이 먹으려고 운동하는데! 운동을 하고 '음식에 대한 감각(200)'도 달라졌노라고 고백하는 작가의 모습은 좀 낯설었다. 마치 옥주현씨가 '먹어봤자 어차피 아는 그 맛'이라는 명언을 남겼을 때 '그 맛을 아니까 먹고 싶은거잖아요'하며 오열하며 반박하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운동에 대한 의지를 좀 세워볼까 하고 책을 읽다가 운동 새싹이 된 작가를 취조하려고 눈에 쌍심지를 켠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저자도 우리민족이었어'하고 공감대만 쌓고 싶었다.

 

 사실 세상이 모든 운동이 나한테 맞으면 만능이요, 안 맞으면 강습료 잡아먹는 애물단지일 것이다. 나와는 다르게 취미 부자인 친구는 운동도 이것저것 돌아가면서 다녔는데 그 중 수영과 스피닝을 아주 흡족해하며 마치 전도사가 된 양 주변에 추천도 했었다. 그 간곡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굳세게 운동을 안한 나도 가끔은 진짜 나도 수영을 해볼까, 스피닝을 타볼까 혹할만한 추천이었다. 나 역시도 잘 등록을 안해서 그렇지 한번 등록하면 헬스는 꾸준히 다니는 편이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대유잼인 혹은 견딜만한 운동들이 저자에게는 지나친 친밀감을 표시하는 인싸들의 사냥터이거나 사물함 강제 철거를 앞두고 간신히 신발만 챙겨나오는 실패의 현장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사람마다 결과값이 다르다. 운동은 죄가 없어요, 사람이 문제죠. 그러니 책 재밌게 읽었으면 또 운동하길 시도해보자.

 

 책은 트렌디하다. 곳곳에 시니컬하면서 자조적인 유머도 섞여있고, '운동을 합시다. 근육이란, 식단은, 호흡법이,' 하는 딱딱한 내용도 없다. 대신 '이렇게 살다간 곧 죽어요'나 '사람 흉내라도 내고 살려면 운동을 하는 것이 어때'하는 권유로 시작한다. 나만 이렇게 힘든거 아니구나, 나만 실패한 거 아니구나 하는 공통점을 찾아 웃으며 책을 읽고 위안을 얻다보면 슬며시 새로운 결심이 든다. '운동 해야겠다!' 분명 나 자신에게 또 속는 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눕거나 엎드려서 과자 까먹고 커피 마시면서 책 읽다가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잡는 변화부터 시작한다. 아직 '이제라도 운동 해야겠다고 마음 먹어야 하는데'에 머물러있지만, 곧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근데 지금은 너무 추우니까, 날 좀 풀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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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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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정말 TMI 대방출이다. 아, 나는 예술-예술가에 대해서 이 정도까지 알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약간의 지적허영심 정도만 채운다면, 책을 들고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 본 적 있는 그림을 눈도장 찍고 널리 알려진 일화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면 된다. 그런데 이 사람-줄리언 반스-은 전에 요리할 때도 그랬지만 날 순순히 놔둬줄 요량이 전혀 없는 것이다. 내가 알아 괴로운 것들을 너에게도 알려주지 않으면 내가 손해라는 듯이 뛰어난 글빨을 이용해서 살살 사람을 꾀어낸다. 그냥 예술에 대해 아는 척 하려는게 아니라 자신이 알고있는 모든 것을 너에게도 말해주지 않고는 못배긴다는 듯이 털어내놓았다. 그러면서 미끼를 던진다. '읽어봐, 재미는 있잖아'

 

 문제는 재미있다는 거다. '저는 솔직히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요?' 라고 자신을 방어한다고 해도 이 사람이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 그런 것 쯤은 상관없게 만드는 읽는 재미를 준다. 다만 그 재미란 것이 드가의 '성적 수단의 부실함'(183)을 언급하며 이에 대한 반론으로 콘돔을 샀다는 주장이 제기 됐건 말건 알고 싶지도 알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tmi 파티라는걸- 모르고 드가의 그림을 본다면 참 좋을텐데, 책을 읽고나면 이제 앞으로는 드가의 그림을 볼 때마다 '음, 영 좋지 못한 능력이지만 콘돔을 샀긴 했다지'하고 떠올리며 감상하게 될 것이다. 이것든 드가와 내 사이에 일어난 불행인가 이해인가 아리송해하면서.

 

 사실 미술관에 다녀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소문난 전시회라는 곳에는 일부러 찾아가도 보고 도록이며 도슨트 설명이며 찾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다소 미술작품들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은 그 시간들이 나한테는 아무런 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이 잘 그렸다, 예쁘다 같은 것 말고는 없었다. 그림을 보고 그 이상의 것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었다면 아마 계속 작품들을 보려고 노력했을텐데, 누군가 떠먹여주어서 알게되는 것 외에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고나니 미술과 예술이란 것들이 더 멀게만 느껴졌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을 읽는 일도 두려움이었다. 이 사람의 아는 척만 열심히 들어주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책을 덮을 일이 눈에 보였다.

 

 그런데 '사적인'이란 단어를 간과했던 것일까, 넘쳐나는 tmi들이 예술세계를 지질한 인간세계로 끌어당겨 준다. 읽다보니 작가에게 차라리 예술은 예술의 세계로 남아있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쿠르베가 '항문으로 18리터' 대신 '복수 흡입'으로 수종을 치료하려 했다(102)는 것이나, 보들레르와 들라크루아의 기싸움, 그들이 남긴 일기 내용 같은 것, 보나르가 죽은 아내그림을 집착적으로 그린 것(216), 피망을 특히 잘 그리는 발로통이 친구 모랭에게 들은 "내 친구들을 보면 총각일 때는 성격이 좋았는데 장가든 뒤로는 고약해지더군."(265)이란 조언이나, "결혼을 예술의 적으로 간주하는" 예술가들의 강력한 전통(191) 같은 걸 읽다보면 차라리 그들의 삶을 모르고 보면 아름답다고 생각할 미술작품일텐데, 하는 아쉬움이 불쑥 든다. 

 

 하지만 시시콜콜한 얘기만 늘어놓는 우스운 책은 아니다. 읽다보면 줄리언 반스는 이 많은 예술가들과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세세하게 알고 있는걸까 의문이 들 정도로 미술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이쯤되면 요리 정도는 그냥 손대지 않아도 됐을텐데 음식에 대한 에세이(또 이따위 레시피라니)도 냈었지, 이 사람은 대체 어떤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걸까 작가에게도 벽이 느껴진다. 새알을 바라보며 새의 그림을 그리는 마그리트를 두고 양이 있는 지역을 지날때면 양갈비를 떠올리며 "저녁거리네"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처럼(314) 웃으면서 재밌게 책을 읽다가 근본적인 관념수준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물론 읽으면서 얕은 희망도 느꼈다. 나도 영 못쓸 인간은 아니란 듯이 그래도 책을 읽으니 미술에 대한 이해가 좀 생겼나 싶은 때도 있었다. 보나르에 대한 단락을 읽으며 욕조 안에 있는 사람의 하반신 그림을 보았다.(217) 선뜩하게 칠해진 색감을 두고 내심 '왜 저렇게 시체처럼 그렸담' 하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그가 진짜로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림을 그려왔다는 내용을 보게 된다. 물론 그녀가 죽은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았던 것은 아니지만, 죽은 사람처럼 그렸다고 생각했던 상황과 비슷하게 시기가 엮여가니 '내가 그림을 본건가' 싶어지는 때였다. 정말 그림으로 뭔가를 전달할 수 있고 그걸 수신할 수 있는게 무려 나에게도 조금은 있다고? 어쩌다 하루에 두번은 맞는 고장난 시계같은 감이지만 잠깐 맞았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어떤 부분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듯 읽었다. 특히 '15 이것은 예술인가?' 부분이 그랬다. 이게 바로 예술입니다,하고 반박조차 받지 않을 작품들도 보는 눈이 없다며 스스로를 한탄하는 와중에 '예술인가?'하는 미술품에 대해서 무엇을 어쩌겠는가 하는 배짱이었다. 나 역시 최대한 따라가려고 노력하며 읽었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놓을 건 놓아가며 읽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술에 대한 부담감을 접고 약간의 호기심만으로도 이 책을 충분히 시작할 수, 끝맺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에 대해 잘 안다면 아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테지만 거기까지는 나도 볼 수 없는 영역이라 짐작만 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놓겠다. 나도 생과 사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 더 맞겠다. 앞으로 이어질 시간들, 그것을 견뎌내는 일에는 때로는 이유가 없지만 때로는 의미를 찾고 있다. 특히나 "화가들은 결코 자기들이 정확히 무엇을 성취했는지 보지 못하고 죽는다.(109)"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리 모두의 삶도 끝나고 난 뒤에 비로소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자기 앞에 놓인 길을 걸어야하는 것이다. 아래 옮겨놓는 문장은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추모이며 우리가 걱정하는 모든 버티는 삶들에 대한 염려이다.


 " 이는 모든 것을 팽개쳐버리는 예술가들이나 정신이 이상해져서, 혹은 그냥 스스로 목숨을 끊는 화가들보다 훨씬 큰 감동을 주는 본보기다.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보다 더 대담한 자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일하고, 끊임없이 분발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고, 만족스럽지 않은 작품을 파기하는 일이 잦으며, 작품이 타락하지 않도록 반드시 타락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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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만 단발머리
리아킴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리아킴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이미 그녀를 알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익숙한 사람이었다. 정말 '들으면 알만한', '내노라하는', '유명한' 수식어를 달아도 어색하지 않은 유명한 가수들의 춤선생님이자, 노래의 안무를 담당한 댄서다. 소녀시대, 선미, 트와이스, 24시간이 모자라, TT 등. 책을 두른 띠지에는 '춤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사실 그녀가 사랑한 것이 춤이었으니 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아니 전부다. 삶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 이런 주제들도 결국은 다 같은 방향을 향해 있으니 이건 리아킴의 이야기이자 춤에 대한 이야기다.

 

 춤같은 일에는 담을 쌓고 사는터라 건너다보듯 읽었다. 어렴풋이 갖고 있는 선입견, 춤추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돈을 잘 못 번다던데 관절쓰는 춤을 많이 추면 나중에 고생한다던데 하는 고루한 말들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실제로 책에서 만난 그녀는 성공했고, 당연히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여유있을만큼, 매일 아침 사과와 생강, 시금치를 간 주스를 마시며 자기관리를 한다. 내가 아무렇게나 떠올렸던 생각들처럼 누군가도 내 삶을 잘못 해석하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해졌다. 리아킴에 대해 읽으며 다시 머리속으로 말을 건넨다. '반갑습니다, 제가 오해했네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누군가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게 된다.

 

 책의 흐름이 좋은 편은 아니다. 갑자기 이런 내용이 왜 들어가있지, 싶은 부분도 있고 좀 더 확실한 주제로 잡아 묶였으면 좋았을 것 같은 내용도 있었다. 특히 가수들에게 춤을 가르쳐주고, 안무를 짰던 일들이 들어간 4장이 그랬다. 아이돌들에 대한 얘기와 자신에 대한 얘기가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다 여자아이돌와 남자아이돌을 가르칠 때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굳이 넣었어야 하는 내용인가 싶었다. 춤추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깨려고 노력하는 것에 비해 본인도 비슷한 틀을 갖고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그게 참 많이 아쉬웠다.

 

 계속 이유를 찾으며 읽었다. 이 책이 나온 이유가 뭘까, 하고. 쉽게 이유가 어딨어, 꼭 이유가 있어야만 나오나.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싶었다. 이만큼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을때에는 꼭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역사적 사명이라도 가진 그런 거창한 이유가 나오진 않았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어느 한 순간이 떠올랐다. 어쩌면 바로 이 부분이 내가 찾아 헤맨 이유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리아킴이 이루어낸 성취들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은 오히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더 가깝다.

 

 " 연습실 한쪽 다용도실. 간이침대에 몸을 뉘인 나는 왼쪽벽을 보고 누워 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다. 어둠속에서도 싱크대, 작은 냉장고, 선풍기,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수도세, 전기세, 연습실 관리비가 떠오른다. 이번 달 연습실 월세는? 생활비는? 지난달보다 수강생이 줄었으니 레슨비도 줄 것이고. 대회에서 탄 상금은 밀린 공과금과 카드값 메우는 데 써야 하고.... 복잡하다. 모르겠다. 나는 억지로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던 그때를. (p.102) "

 

 리아킴이 세계 대회에 나가 챔피언이 된 3일 뒤의 이야기다. 우리는 때로 삶에서 바라던 성취를 이루고 난 뒤를 생각하지 못한다. 목표와 그것을 향해가는 과정은 익숙하지만 거기에 집중해 그 뒤에도 인생이 계속되고 있음을 잊게 된다. 그런 시기를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나의 까만 단발머리'에서 만난 가장 공감되는 부분이고 매우 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대회 성적 부진, 서툰 인간관계같이 그녀가 삶에서 겪었던 어려움으로 꼽은 일들보다 빛나던 순간은 짧고 현실은 계속된다는 사실. 삶이 눅눅하고 팍팍해질 때 가끔 그때 그 빛을 떠올리며 위로를 삼는다는 저 마음이 공감됐다.  

 

 책을 한 권 다 읽었는데, 여전히 리아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중간에 몇 페이지에 걸쳐 실린 그녀의 사진들처럼 단편적이고 짧은 순간의 모습만 조금 엿본 것 같다. 다만 앞으로 몇몇 노래들을 우연히 들으면 아마 유행했던 그 춤동작들과 함께 까만 단발머리의 깡마른 여자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좀 아쉽지만, 그녀의 남은 삶이 앞으로 아쉬운 부분들을 더 채워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난 뒤에 어쩌면 또 다른 에세이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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