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멍키 - 혼돈의 시대, 어떻게 기회를 낚아챌 것인가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지음, 문수민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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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렇기 때문에 월가는 싸구려 여인숙과 닮은 구석이 있다. 사람들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다. 보너스를 두어 번 받고, 1월 중순경 통장에 찍히는 목돈을 보고 나면, 그런 돈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된다. 월가에 자리 잡은 은행의 경영진은 그런 심리상태를 조장한다. 월가의 투자은행가가 개라고 가정한다면, 주인의 진짜 의도가 뭔지 깨닫지 못한 채 값비싼 목줄과 가죽끈을 '사회적 위치'라며 과시하는 셈이다. 내 목줄은 전반적으로 볼 때 가느다란 편이었지만, 그래도 목덜미가 쓸려 쓰라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p.47 혼돈을 향한 행진"

 

 '카오스 멍키'는 다소 난해했다. 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는 그 자신 그대로 난잡한 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는 원숭이처럼 느껴졌고, 저자의 느낌 그대로 문체도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소설적인 묘사가 들어가 있는 부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저자는 모든 것이 저장된 대화를 그대로 발췌했으며 곡해된 부분이 없이 전달하도록 노력했다고 하지만, 누구도 모든 것을 날 것 그대로 옮겨놓을수는 없기 때문에, 또한 문체에서 느껴지는 과장됨이 계속해서 의심을 눈을 거두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경이 되는 실리콘 밸리라는 무대가 낯설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치 최첨단의 수트를 입고 재기를 뽐내는 아이언맨의 모습을 보는 듯한 저자의 글은 자신만만하고 공격적이다. '성공하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생각이 근간에 깔려있는 성공한 사람을 봤을 때 느끼게 될 약간의 불쾌감이 부러움과 시기에 버무려져 느껴진다. 성공하는 소수의 사람들 중 비상한 머리와 감각으로 세상이 무엇으로 돌아가는지 깨닫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를 보면 그는 분명히 그 구조와 헛점을 알고 있고, 가장 크고 탐스러운 송이를 움켜쥐진 못했어도 떨어진 바나나를 챙겨가질 정도의 능력을 가졌음이 느껴진다. 이런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삶과 동떨어진 느낌에 어떤 감명을 받진 못했다.

 

 특히나 sns를 하지 않아 제대로 활용할 줄도 모르는 편이라 페이스북의 시스템이나 기능에 대해서도 생소했다. 간혹 시선을 끄는 부분들은 보일 것이라 생각지 못했던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일화들에 대한 짧은 언급이었다. 때로 누가 남긴 스파게티를 먹었는가를 두고 날선 모습을 보이거나 사내 연애에 대한 시도는 단 한 번의 기회로 제한, 여직원은 '동료직원에게 방해가 되는 옷을 입지 말 것'이라는 지침이 있다는 부분들은 사소한 것엔 신경쓰지 않으며 새로움과 돈이 되는 것들이라면 무엇이든 기민하게 시도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예상을 훨씬 벗어나는 평범하고 완고한 규제였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매우 단편적이고 주된 내용은 전문적인 업계 내용이다.

 

 무엇보다 '카오스 멍키'를 읽으며 잠시 다른 사람이 몸담고 있는 사회생활이 어떤지 들어서 체험해 본 기분이 들었다. 때로 친구들과 술을 한 잔 마시며 오늘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경쟁하듯 푸념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아예 차원이 다른 리그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엿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IT업계에 관심이 있거나 새롭고 빠른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SNS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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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금 울었다 - 비로소 혼자가 된 시간
권미선 지음 / 허밍버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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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오글거린다'는 말이 많이 쓰이게 되었다. 그 말이 쓰이게 된 뒤로 감성적인 글들이 점차로 사라지게 되었다.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쓰이게 되면서 감성적인 것들은 좀 촌스럽거나 우스운 일로 치부되어 버리는 일들이 생긴 것이다. 물론 때로 눈물을 흘리는 순간에도 셀카를 찍어 올리는, 감수성이 지나친 혹은 포장된 감수성을 이용하는 면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공감을 하고 투박하더라도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좋은 글들도 있었다. 그 자리를 냉소적이고 감정을 배제한 문장들이 채우고 그만큼 사람들이 더 메마르게 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요즘, '아주 조금 울었다'의 등장이 감성적 충족을 위한 단비가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그녀는 매니큐어가 형편없이 벗겨진 / 친구의 손톱을 보더니, 말했다. -p.44 너에게 상처 주지 마"

다른 내용들보다도 이 부분이 눈에 띈 이유는 손톱과 발톱을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깊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네일이나 패디같은 경우는 '너 말고는 아무도 니 손톱에 신경안쓴다', '남자들은 안 봐', '그냥 자기만족이지'라는 말로 많이 평가절하 당한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손을 쓸 일이 많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했기 때문에 잘 관리된 손톱도 신경쓰이는 부분 중 하나였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을 더 들이더라도 직접 관리를 하는 편이지만, 이 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샵에 다니는 다른 동료들의 네일 관리는 시간과 비용이 동시에 드는 일이다. 자기만족의 한 일환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 경우에는 일하다 벗겨진 매니큐어 자국을 자기관리 부족으로 지적당하는 일도 생긴다.

 

 스스로 관리할 시간이 없도록 벅차면 단정히 짧게 자르는 것으로 대체하곤 했던 적이 있는데, 바쁘더라도 주기적으로 완벽한 상태의 손마저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라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그 관리가 무너져내릴만큼 여유가 없고 힘들었다는 상황이 이런 사소함에서 공감된 까닭이다. 그 경험 탓인지 아직까지도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손톱이 잘 정돈되어 있으면 일부러라도 칭찬의 말을 건네는 편이다. 그 사람이 들인 시간과 비용, 어쩌면 필수적이었을 정돈됨을 위한 노력을 공감해주기 위해서.

 

 " "그래서 넌, 고백도 안 해 볼 거야?" / 그녀가 묻자 친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그 사람, 곧 결혼한대." -p.120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

여자의 눈물이나 다른 내용들보다 가장 최근의 시기와 잘 맞는 부분이었다. 과거의 X였던 존재의 결혼 소식을 경험하게 되는 나이를 지나보내고 나니 메신저 프로필에 뜨는 웨딩사진, 결혼식 안내 문구,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아기 사진 등이 주는 느낌이 있다. 이미 예전에 끝난 관계지만 상대의 결혼 소식은 또 다른 형태로 찾아오는 결별임을 실감하게되는 내용이었다. 마치 확인사살처럼. 결혼소식은 헤어지거나 사랑이 식는 것과는 다른 뉘앙스를 준다. 결혼 그 자체를 두고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네보내는 거리감을 준다. 과거의 X를 두고 우연한 재회를 꿈꾸거나 술마시고 전화하는 '진상'짓을 할 수는 있어도 기혼자에게는 이미 '간통죄'가 폐지됐다 하더라도 어떤 시도나 대상화 자체가 범법의 일환과 다름없기 때문이리라. 본문에서 느껴지는 단념, 체념적인 문답도 저런 맥락에서 온 것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감수성이 풍부한 편은 아니다. 무언가에 영향을 받아 눈물을 흘렸던 경험이 아주 오래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조금 울었다'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어떤 구절들은 건조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이 뭔가를 마음속으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감성적인 충족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라디오를 즐겨 듣거나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거나 소소한 위로를 주는 책을 읽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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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지음 / 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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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노보노에 대해 책을 낸 작가도 있는데, 보노보노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한둘일까. 이 책까지 열성적으로 읽은 마당에 보노보노를 좋아한다. 고 써봤자 키보드만 조금 더 닳아버릴 뿐 의미없다. 보노보노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 였다. 채널은 기억 안나지만, 티비에서 만화로 방영해주던 보노보노를 봤는데 정말 좋았다. 신선하기도 했고. 선명하도록 개성있는 캐릭터들도 그렇고, 내용은 잔잔하기만 할 것 같으면서도 재밌었다. 게다가 귀여웠다. 캐릭터의 모습도 행동도 더빙된 성우의 목소리도. 그래서 더이상 티비에서 방영해주지 않았을 때에는 동네 만화대여점으로 달려가 만화책도 쌓아놓고 빌려보기도 했었다. 친구들이랑 교과서와 공책에 찌그러진 보노보노 캐릭터도 그려보고 성대모사도 해보며.

 

 그러나 한동안 보노보노를 잊고 살았다. 보노보노가 아니라 만화를 잊고 살았다. 어른이 되었으니 흥미를 끌만한 더 자극적인 친구들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영화나 미드 같은 것에 빠져들어 봤고 다들 아시다시피 등급의 제한에 구애받지 않는 영화와 미드의 세계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차원의 신천지였다. 때묻고 타락하였으나 후회하지 않는다. 이 또한 나를 성숙의 길로 이끌어준 자양분이니. 하지만 십수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다시 보노보노 앞에 서보니 내가 알고 있었으나 떠나왔던 세계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맞아, 연쇄살인사건, 과학수사나 성과 도시, 좀비 바이러스 같은 게 아니라 내 감수성의 근원은 바로 이런 것이었어! 하는 재발견을 한 기분.

 

 작가도 이런 소소하면서도 잡다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보노보노의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어 책 속에 풀어냈다. 가지고 있는 성향이 달라 공감이 안되는 부분도 조금 있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많이 기억에 남겨두려고 표시를 해놓아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깊게 이해되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누었던 얘기는 시시콜콜하고 껄렁해서 좋고, 언니랑 나눈 대화는 조금 더 성숙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전환시켜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작가는 책의 여러 곳에 스스로를 소심한 편이라고 강조했는데 읽다보니 대범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내밀한 이야기들을 써내려갈 수 없었던 거 아닌가 싶게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진솔하게 적혀있어서 의외성을 발견하며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좋았던 몇가지 부분들 중 "별것 아닌 대화가 필요해" 의 내용에서 아버지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 나 역시 문득 아버지와 나는 어떤가 생각해보니 얼마전 집에 들렀을 때가 떠올랐다. 엄마가 오라고 해서 집엘 갔는데 때가 맞지 않아서 집에는 아버지 뿐이셨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거실에서 아버지가 틀어놓은 '자연인' 티비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부엌에 들어가셔서 식탁을 차려주셨다. 밥을 같이 먹고는 다시 거실로 나와 '승윤씨'가 나오는 자연인을 마저 봤었다. 이렇게 나열하면 별 거 아닌 일 같은데 문득 나라는 인간이 아직도 아버지 식사 챙겨드리지는 못할 망정 챙김을 받고 왔구나 깨달았다. 다음에 갈 때는 내 친구관계 업데이트를 해드려야겠구나 생각하도 해봤다. 아, 나 친구가 없지...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는 왜 칭찬에 목숨을 걸까" 에서 나온 첫 부분이었다. " 예전에 함께 밥을 먹을 때, 외국인 친구 하나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 웃는 게 예쁘구나." 갑작스럽게 날아든 칭찬에 얼굴이 빨개져서 허둥지둥하다가 겨우 대답했다. "아니야." 그 말에 그는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내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게 있어. 한국 사람들은 칭찬을 하면 딱 두 가지로 반응하더라고. '아니에요' 아니면 '내가 좀 그렇죠?'. 칭찬을 들으면 대부분 부정하거나 장난을 쳐." 그 말에 발끈해서 물었다. "그럼 너네는 칭찬을 들으면 뭐라고 말하는데?" 그랬더니 그가 그랬다. "그냥 고맙다고 하지." " 칭찬에 대한 리액션이 어떤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외국인이 우리의 반응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의 반응도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거니까.

 

 어린시절부터 칭찬을 들으면 '아니에요'라고 하는 일에 익숙했는데, 근래에 예사로 남에게 칭찬을 해줬을때 상대방이 '감사합니다' 혹은 '아 네 저 그런편이에요'하고 대답해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종종 있었다. 사실과는 상관없이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인데 상대방이 겸양하지 않고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니 기분이 좋았다면 다행인데 어쩐지 떨떠름한 기분은 오래 남았던 기억이 있다. 한편으로는 저렇게 대답할 수도 있는거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저런 상황을 몇번 겪어보고 나니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던 상관없이 유연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또 누가 나를 칭찬해주면 '어휴, 아니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모두쓰기 기술을 쓰게 되기도 하고.

 

 공감이 좀 어려웠던 부분은 "나 상처받았어" 편에 나오는데, " 책임감이 부족하고 겁이 많은 사람일수록 상대방에게 공을 던지는 말을 자주 쓴다. "난 아무거나 다 괜찮아." "그럼 연락줘." "네가 정해줘." 그렇게 말하고 선택을 상대방의 몫을 돌린다. " 하는 내용이다. 내 주변에서는 저 말들을 진짜 상대방의 스케줄이나 입장을 배려해주기 위해서만 쓰기 때문에 원만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돌아가면서, 때로는 불편을 참아가면서 저 말을 쓴다. 아마 내가 너부리 성향이라 관계 유지에 소중한 배려의 말로 저 말을 사용하는 편이라 좀 다르게 생각했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보노보노 성향의 사람들은 저 말들을 다른 의미로 쓸 수도 있겠지.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고 쓰게 되었다. 취향은 소나무와 같고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는 법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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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히말라야 씨
스티븐 얼터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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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점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과거의 그에게 일어났던 매우 불운했던 어느 날의 한 지점을 내밀하면서도 관조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가 그날에 겪었던 일이 실재적이지 않게 느껴질만큼 비현실적인 폭력성이 드러났기도 하며, 그의 기억 속에서도 채 다 끼워맞춰지지 않은 부분들이 전달된 상태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때문에 그와 그의 아내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던 그날의 일을 읽으며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한무리의 괴한들에게 불시에 습격당한 노부부가 나오던 장면, 그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폭행을 당하던 무차별적이고 가학적이었던 씬을 떠올리며 저자에게 일어났을 고통을 짐작해봤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욱 가혹했을 것이다. 그곳엔 어떤 연출도 의도도 없이 오롯이 살의에 찬 끔찍한 폭력이 날 것으로 그의 생명을 위협했을테니.

 

 "악을 대면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도 악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마냥 편치는 않다. 그날 우리를 공격한 놈들이 사악한 인간들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인데도 말이다. 종교나 철학적 맥락 안에서 벌어지는 모호한 윤리 논쟁과는 달리, 내가 경험한 악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악귀의 빙의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실재하고 현존하는 악이었다. 나를 짓누르고 질식시키려 했던 인간은 사악한 존재다. 아미타를 사정없이 발로 차고 칼로 찌른 녀석들도 똑같이 사악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기도 하다.  59-60p"

 

 폭행을 당한다는 것이 단지 신체적인 상처만으로 그친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아주 큰 확률로 피해자의 정신- 심리적인 부분도 손상시킨다. 몇 번이고 자신이 노출되었던 당혹스럽고 무자비했던 야만적인 순간을 되새기며 그때 나는 어떻게 대처했던가, 혹은 이렇게 행동했다면 좋았을 걸, 아니면 그때 만약 내가 이랬더라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텐데 하고 자책이나 후회와 비슷한 감정을 곱씹는다. 무엇이 되었든 폭력을 휘두른 자의 잘못이고 야만인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비슷한 공간이나 분위기가 느껴지는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긴장하고 패닉하게 된다. 비참한 일이다. 그들도 그랬다.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로 그는 산을 오른다. 처음에는 근처의 낮은 산책로부터 시작했다. 전에 가볍게 오가던 길을 지팡이를 구해 짚고 힘겹게 오르면서, 그래도 이 길을 다 걸어내면 자신 안에서도 뭔가 새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가 산을 오르려 하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떤 시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길을 걷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매우 유사하게 느껴졌다. 읽는 내내 나에게 처음으로 길을 걷는 사람들과, "순례길"이란 것을 알려주었던 책이 떠올랐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은 두 여자의 이야기였는데 약 십년쯤 전에 처음 읽고 나름의 놀라움을 담아 단단히 기억해두었었다. 순례길에 대한 글들을 읽어보면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저 종교적인 신념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길고 긴 길을 며칠동안이나 묵묵히 자신의 두발로 걷다보면 그 안에서 혹은 길 위에서, 걸어낸 자들은 무언가를 얻어왔다. 걷고 걸었을 뿐인데도 그 안에서 무언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히말라야를 오른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저 가장 높은 고지에 다다르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는 산과 교감하고 자신안에 있던 감정과 상념의 찌끄러기들을 때때로 정리하고 환기시키기를 반복한다.

 

 "성스러운 산에 닿기 위해 여행하는 우리 같은 순례자들이 밟는 길들은 이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땅, 마법의 비기와 무시무시한 장애물, 대답 없는 질문들을 품은 신비로운 땅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나 이런 여정에서 경험하는 고난과 의구심을 통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다다른다. 진정한 순례는 얼마나 먼 길을 걸었는가 혹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가 아니라 오직 마음이 가리키는 길을 걸었는가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242-243p"

 

 처음엔 산의 꼭대를 향해 오르거나, 길의 끝까지 걷겠다는 목표가 나를 '무언가'로 만들어주거나, 변화시켜 줄 것만 같다고 여기며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그들은 길 위에서 깨닫는다. 혹은 가장 높은 봉우리 위에서, 그들이 바라본 꼭지점이 무언가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발로 디뎌낸 땅이 버텨낸 중력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마주한 자기 자신이 그 이전의 나와 후의 나를 구분토록 만드는 것이라고. 길을 떠나고 싶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상처받았든 무기력하든 혹은 지금이 아니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 같든 무엇이든 이유를 붙여서 걷다가, 왜 걷고싶었는지라도 깨닫고 싶어진다. 읽다가 문득 나는 아미타가 걱정되었다. 그가 산을 오르는 동안 또 다른 피해자인 그녀는 어떤 식으로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였을까, 하고. 히말라야와 그가 걸었던 길들이 그를 치유하고 성장시켜 주었다면, 그녀에게도 자신만의 히말라야가 존재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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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 - 16년차 부장검사가 쓴 법과 정의, 그 경계의 기록
안종오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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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라고 하면 실생활에서 직접 마주하기는 어려운데 드라마나 영화 속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물이라는 이미지 뿐이다. 보통은 정치, 경제권에 연결되어 있는 부패한 모습이나, 정의롭지만 폭력적이고 자신의 직업을 앞세워 다른 사람들에게 고압적이거나 하는 모습이 다반사다. 그런데 저자 안종오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일상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의 직업을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거나 하는 등의 보통의 아저씨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면면을 느끼게 만든다. 어떤 부분에서는 다소 글 분위기가 올드한 감수성에 충만해지기도 한다. 자기 자신에게 남기는 짧은 위로의 말 같은 것을 남기다던지, 하는.

 

 글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다뤘던 사건들이 어땠는지 보다, 일을 하면서 지친 자신의 마음을 글을 씀으로써 달래고 위안을 받았다는 부분에서 놀랍고 또 대단하게 여겨졌다. 생활과 일을 바쁘게 오가는 와중에 이런식으로 글을 써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앞서 '올드한 감수성'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저자가 투박하고 솔직한 자신의 감성을 가감없이 드러냈다는 부분도 좋았다. 벽이 느껴지지 않아 마치 서로 좀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무슨 일 있으면 안종오 검사 같은 검사에게 상담받고 도움을 청하고 싶다는 생각이들게.

 

 더불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 역시 어떤 영향을 주고 또 받으며 지낼텐데,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구나 싶어졌다. 저자만큼 인생의 기로에 서있는 위태롭고 절박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작은 배려나 관심이 한 사람의 태도를 바꾸고 인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고 나니 사람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의 중요성에 대해 재고해보게 된다. 적어도 남의 하루에 웃음 한 번 더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싶어졌다. 따뜻한 글이었다.

 

 짧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고 직업적인 전문적은 내용은 적어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다. 종합적인 감상은 다소 전형적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는 것. 의사, 변호사, 수사관, 교사 또는 상담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직업적으로 겪었던 일들에 대해 풀어내는 책을 썼을때 그 책들이 갖게되는 구성과 분위기가 있는 줄 의식하지 못했는데 문득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를 읽다보니 느껴졌다. 처음엔 강력 범죄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뭔가 자극적인 소재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사람 냄새나는 소재들을 주로 다룬 상당히 평이한 분위기다. 가볍게 읽어보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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