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코너 프란타 지음, 황소연 옮김 / 오브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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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드디어 만났다. 내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에세이를. 한동안 만난 몇 권의 에세이들은 꽤 괜찮았다. 나를 포함 책도 입맛대로 골라읽는 편인 사람들- 편독인들에게는 비선호 계열이 있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에세이가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에세이들은 이상하게도 읽는 족족 괜찮고, 재밌고, 공감도 되고 심지어 꽤 좋았었기 때문에 나의 '에세이 싫어'가 사실은 초장에 찍어서 먹는 브로콜리의 참 맛을 모르는 안타까운 편식같은 게 아니었나 의심했었다.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너는 에세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같이. 하지만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을 읽다보니 역시 그 마음에 들었던 몇 권이 우연히 찾은 나의 골든에세이가 아니었던가 싶어진다.  

 

 어쩌다보니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을 진짜 혼자있는 시간에 읽었다. 들리는 소리는 가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말고는 없는, 옆집에서 간혹 들려오는 소음조차 없는 진짜 조용한 날에. 세련된 표지와 좋은 장정, 작가의 조금 남다른 이력말고는 그리 특별한 것이 없었다. 누군가는 이런 심심함을 사랑하고 공감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평범하고 흔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일기를 모아놓은 것 같다는 표현을 했는데, 읽기 전에는 그렇게 내밀한 내용이려나 싶었던 그 말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유명한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했다. 십여년 전 누군가의 싸이월드 다이어리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블로그 같은데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지나치게 차가운 감상만 늘어놓는 것 같아 어쩐지 미안해진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에 비해 얕고 통속적인 느낌이라 아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보편을 꿰뚫는 깊이를 만나게 되길 기대했었는데. 인터넷 소설과 싸이월드 감성글, 페북 좋아요 같은 것들을 험난하게 거쳐온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경계해야 할 새벽감성 같은 것이 점철된 느낌이었다. 특히 238쪽에 있는 시? 아포리즘? 같은 글은 재빨리 다음장으로 손길이 넘어가게 만들었다. 아마도,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코너 프란타의 새 책이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우울, 멜랑콜리한 감성을 느껴보고 싶은 10대, 20대라면 어쩌면 공감되거나 감성적으로 다가가는 책이 아닐까싶다. 좋게 말하면 세밀하고 순수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 많다.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을 계기로 내가 어떤 에세이들에 반응하는지 감이 좀 잡히게 된 것 같다. 먹고 살기 힘들다를 넘어 더럽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한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 약간의 유머나 아이러니를 섞어 낸 글들이 좋은가보다. 고 짐작한다. 악질적인 편독가의 취향이 반영된 감상이니, 에세이를 좋아하는 너그러운 독자들은 개의치 않고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을 읽어보길 바란다. 확실히 국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외국 배경 특유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긴 했다. 반도가 아닌 대륙인의 생활상이 묻어난달까, 중서부 지역에서 자란 (177) 배경이나 샌프란시스코 외곽에서 바라보는 금문교(21)에 대해서 같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지만, 잘 맞는 독자들에게는 사랑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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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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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난 뒤로, 그와 같은 경험을 또 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살아갈수록 앞으로 남은 것들은 더하는 것보다 덜해나가는 과정이 더 많다는 것을 마주할때면 그만 마음이 암담해진다. 누군가와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도 지금은 얻었어도 나중엔 덜어내야 하는 값이 된다니, 인생을 맨몸으로 왔다 또 맨몸으로 가는 것이라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진다. 요즘 들어서는 특히 부모님 연세 즈음의 분들이 병원을 찾는 소식이 늘었다. 저자의 어머니, 아버지, 친구까지 암에 걸렸던 일처럼 '아프다'는 것이 아주 괴롭고 무서운 일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누군가에게만 내려지는 고통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녹아들고 있는 것 같다.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나에게 그 주제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해서 심지어 낯설기도 하기 때문에, 어른의 수의를 미리 지어두면 장수한다는 속설조차도 사실은 늙음과 미래를 받아들이라는 선고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 찜찜함이 남아있는 것이다. 때문에 '영혼의 집 짓기'를 읽으면서 여든이 넘은 아버지에게 아들이 자신의 관을 짜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긴가민가했다. 결국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관을 쓰게 되는거 아닌가, 아버지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을 만드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데이비드가 겪은 주변 사람들의 "암과 종양의 연대기(295)"는 시종일관 마음을 가라앉혔다. 특히 친구인 존의 죽음은 " 존의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훨씬 힘들(189) "다는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저자가 느꼈을 타격과 상실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첫 달의 두 번째 화요일에 오는 이메일 알람을 삭제하지 못하는 마음이 이해갔다. 때문에 읽기에 편한 책은 아니었다. 아들이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한다는 과정을 세세하고 차분하게 그려낸 부분은 때로는 위트있고 섬세하여 꽤 마음이 가게 읽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약간의 슬픔으로 감싸여 있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유쾌했던 부분은 '허멜 장례 회관'을 방문했을때의 일이다. 2000달러짜리 화장용 관을 구경하려고 했을 때 폴이 " 헉, 안에 누가 있어! (96) " 라며 농담을 했을 땐데, 사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그 순간 내가 관심있어할 만한 어떤 새로운 사건의 시작인것은 아닌지 기대하기도 했었다. 아마 폴만이 할 수 있는 농담이 아니었을까 싶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의 어떤 점을 매력적으로 느꼈는지, 어떤 감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중년의 미국 남성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은 책인 것 같다. sns에 올려둔 책 사진 밑에 좋은 책이라며 댓글을 남겨두고 싶을만큼 미국적인, 차고와 공구를 통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교감이 그들에게 잘 전달되었나 보다. 라고 짐작한다.

 

 그에 반해 나는 한국식으로 인터넷에서 본 조언을 충실히 받아들여, 때때로 일상에서의 부모님 사진을 찍어둔다. 이전에 잘 하지 않던 행동이라 어색하지만 언젠가 가장 보고 싶을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하며 최대한 몰래, 자연스럽게 찍는다. 뭔가를 남겨두고 싶은 마음과, 언젠가를 준비하고자 하는 생각이 담겼는데 최근 지인에게도 권유해보았다가 그의 부모님께서 '죽은 사람 사진 두고 봐서 좋을 거 없다'는 말을 하셨다는 듣고 그렇게도 생각하실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여전히 때때로 부모님의 사진을 찍고 있지만 나중에 과연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남은 이별들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삶뿐 아니라 죽음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책 " 이라고 오은 시인이 남겨둔 문구를 다시 본다. 나눌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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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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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서 조금씩 어긋났던 것들을 떠올렸다. 떠올릴 수 있는 소소한 어긋남들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버스를 바로 눈 앞에서 놓쳐 결국은 늦어버린 약속이나, 말 그대로 길이 어긋나 서로 상대방이 늦었다며 불만을 품었던 일, 조금 늦거나 일찍 산 주식, 놓쳐버린 인연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어떤 것들은 여전히 아쉽고 어떤 것들은 무덤덤하다.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것인지, 그게 너를 열받게 할 것이라는 것인지 꽃같은 표지없이 제목만으로는 가늠이 어려웠다. 모두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무뎌지고, 그 어긋남 속에서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으니 그 모든 어긋남의 복기와 상관없이 답은 정해져있었는지 모른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항상 말해왔는데, 최근에 읽은 에세이들 몇 편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이 남은터라,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를 읽고 나서는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에세이가 싫은게 아니라, 유행을 탔던 특정 스타일의 에세이가 마음에 안들었던 것 같다. 혹은 중년이 되어가고 있는 여성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킬만한 에세이들만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시작은 마찬가지로 불신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가 울린 수많은 딸들 중 하나에 포함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쩔수가 없나보다. 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20)가 나오니 눈물부터 앞선다. 필연적인 상실에 대한 불안에 오늘은 부모님과 사진 한 장 더 찍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한번 마음이 열리고 나니, 다른 글들도 좀 더 가깝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나중에 기록해둘때 다시 볼 마음으로 표시를 해두는데 다 읽고나니 어쩐지 무용하게 느껴졌다. 나라면 꺼내두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는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내밀한 경험에 대한 내용도 있고, 그래서 그런 꼭지들에 대해서 무엇이라 쓸수도 없었다. 그저 공감했고,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함께 서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 외에는. 이를테면 초반에 금연하지 못하는 남편(32)에 대한 글은 처음에 불만을 가지면서 비난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결국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문득 사회초년생시절부터 밥벌이가 괴로워지면 이 일을 반평생넘게 계속한 부모님에게까지 생각이 미친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불만을 품었던 부모님의 습관들에 대해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의사에 대한 이야기(273)를 읽으며 의사들은 친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병듦은 결국 시간의 문제일뿐인 시대에, 종종 각종 질환별 명의 목록이라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본 적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잘 저장해두기까지 한. 실제적으로 의사는 권위적인 태도로 반존대를 섞어서 사실만을 전달한다. 기대할 것은 좋은 실력이지 친절함은 아니라는 듯이. 간호사가 친절함을 기본 평가항목에 달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병원 벽에 붙은 간호사 친절 만족도 평가의 별점을 보면서 의사의 치료 만족도 평가는 왜 별점으로 매겨져 전시되지 않는지 생각했다. 일만 잘하면 된다면 간호사도 친절할 필요는 없을텐데. 의사의 친절하지 않은 태도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또 전부가 친절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지만,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환자의 마음을 짐작해보았다.

 

 공감을 한다는 것이 결국은 그만큼 나를 드러내는 것과 같아서 사람사는건 다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했다가 아직 내가 공감하지 못하고 남겨둔 부분들이 언젠가 내 인생에서도 일어날까 궁금해졌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지인(204)의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이미 끊긴 과거의 인연들을 다시 만나게 됐을때 나는 과연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사람들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일이 부조리하다. 관계를 잘 만들기 위해 생각하다보면 그 의미가 점점 더 깊고 복잡해진다. 품이 들고 복잡한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지는 나이가 되자 늘리기 보다 정리하기에 가까워졌다. 오히려 생각하지 않을 때에 관계맺기는 더 쉬워지는 것 같으니 아이러니하다.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달라졌다는 말이 나을지, 여전하다는 말이 나을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책의 중간중간 엽서같기도 하고, 작은 그림같기도 한 종이가 끼워져있었다. 말 그대로 끼워져있는 줄 알고 무심결에 잡아당기다 하마터면 그대로 찢을 뻔 했다. 이런 게 어디에 더 있는건가 찾아보니 과연 몇장이 더 들어가있었다. 취향에 맞는 그림은 아닌데, 보다보니 어쩐지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책의 내용도 그렇고, 작은 그림도, 90년대 시절에 보았던 글이 떠올랐다. 엄마가 어디선가 받아온 가계부 중간중간에 끼워져있던 일반인의 수기나 작가의 에세이같은 글이었는데, 일상의 소소함을 담은 내용이 인상적이라 오래도록 간직했다가 어느사이에 잃어버린 그 책이 떠올랐다. 정식 발매된 책이 아니라 판촉용으로 나온 가계부에 실린 글이라 내 머리속의 희미한 기억만 남아있는 글들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주변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말해야할지 아직도 망설여진다. 그동안 저평가했던 에세이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할까, 아니면 내가 달라진걸까. 그도 아니면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가 대단히 괜찮은 것일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읽어보길 추천한만한 이유가 충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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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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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형식의 책을 읽으면 궁금증이 생긴다. 저자는 평소에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하나씩 다 기억해두고 있는걸가, 하는. 어떤날 어떤일이 생기면 이 일은 잘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글로 써야지, 혹은 책을 낼 때 써먹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걸까 궁금해진다. 내게도 가끔은 마음에 맺히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감성이 차올라 별 거 아닌 일상의 일도 의미깊게 다가오는 때도 있지만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잊거나 그러고 만다. 자신이 생각하거나 겪은 소소한 순간들과 책을 엮어 낸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는 서른 한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에서 내가 원하는 맛을 고르듯 요즘의 복잡한 내 마음에 닿을만한 글들을 골라가며 읽었다.

 

 최근들어 주변에 가장 많이 한 말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 가장 크게 느낀 변화이기도 한 것이, '계절'이다. 좋아하던 노래가 있었는데, 가을방학이라는 가수의 가을방학이라는 곡이다.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노래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계절이 있었는데, 그래서 매번 그 계절을 기다리곤 했는데, 몇년전부터 문득 좋아하던 계절에 대한 호불호가 옅어지고 그냥 모든 계절이 다 싫지 않아졌다. 봄은 봄이라 좋고, 여름은 여름이라 좋고, 가을도, 겨울도. 모든 계절을 다 좋아하게 된 것도 그 나름 장점이 있지만 사게절 중 한 계절을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던 그 마음이 어디로 사라졌는가 싶은 쓸쓸함이 남았다. 그 노래의 가사 중에 "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싫은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제야 그 가사에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에도 계절에 대한 글이 나온다. " 자꾸 마음 쓰이는 계절 (86)"로 겨울에 얽힌 저자의 에피소드가 소개되는데,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다. 계절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순간에 대해서도, 또 생각지 못한 어긋남으로 마음이 무거워진 일도. 뒤에 이어지는 '세한도'와 얽힌 부분은 제외하고서라도, 문득 가을방학의 노래가 떠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굳이 노래를 찾아 들으며 몇번을 다시 읽어봤는데 그때의 내 마음이 책 제목과 잘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내가 달라진 것이 좋은지 싫은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던데 정말 달라진 것인지, 그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는 때늦은 폭풍에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매번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보다 오년쯤 혹은 십년쯤 더 나이를 먹으면 이런 사소한 일로 방황하거나 고민하지 않을텐데, 하고. 십대때는 그때 했을 법한 뭐 고만고만한 고민들을, 대학가면 살빠지고 예뻐진다길래 그럼 대학가면 해결되겠구나 했던. 이십대적에는 내가 앞으로 뭘하고 살지 밥벌이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서른 넘으면 내 분야에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살게 될거라 생각했었다. 그런 것들 말고도 친구, 일적으로 만난 관계들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도 나이를 더 먹으면 지금보다는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매번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직도 미래를 인간관계를 심지어 외모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 것을 스무살이 넘어서 서른살이 넘어서도 새삼 떠올리고 스스로 자조하는 것이다.

 

 마음에 걸어둔 빗장이 해제되지 않는 시기다. 겨울이 깊어져서 그런지, 허무하게도 나이를 더 먹어가는 시간 때문인지 불분명하다. 책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다만 위안이 된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나와 같은 얼룩이 있고, 그렇게 사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책도 나오고, 이런 책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뭐 그런 것 아니겠나. 얼마 전 받았던 질문이 있다. 우울할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당신만의 방법이 있냐는 것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그럴 때 일부러 패스트푸드 가게를 찾아가 감자튀김을 사먹는다. 처음엔 그냥 사람들속에 껴서 좋아하는 것을 먹고 기분을 전환하려고 한 것인데, 언젠가부터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기로 한 것처럼 바뀌었다. 별 것 아닌 대답을 특별하다고 해준 덕분에 이 방법이 힘을 좀 더 얻었다. 

 

 요즘은 그럴만큼 낮은 감정에 빠진 일이 드물긴 한데, 그냥 단순하게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우리집 강아지, 주말에 먹었던 맛있는 점심, 누군가 굳이 보내주었던 좋아하는 케익의 기프티콘, 겨울마다 장식되는 꼬마전구들, 새로 산 카디건.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누군가도 그래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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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정혜진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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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는 정리할 수 없는 생각들이 맴돌았다. 지금까지는 변호인이 필요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분명 내 입장이 되어 겪어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테지만, 변호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접할 수 있는 법정의 세계는 대체로 이렇다. 세상에 저런 일도 있단 말인가 싶을 4주간의 조정기간이 필요한 사랑과 전쟁 류, 주로 뉴스에 나올만한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형편없는 죄값이 선고되는 부당해보이는 구조, 아주 드물게 부당한 죄를 벗어나도록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 이중 변호와 관련해서 내가 접하게 되는 것이 보통 '왜 저런 사람을 변호해주나'싶은 일들이 많기 때문에 필요성과 그들의 입장이 의문스러웠다.  

 

 처음에는 자잘한 생계형 범죄나 불우했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 재판에 이른 사람들의 사건을 보여주면서 저자가 어떻게 그들을 이해했는가 나도 공감해보려 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혹시 변호사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매우 크게 필요한 직업이었던가 싶기만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걸까. 죄도 결국 사람이 저지르는 일이기에 죄를 저지른 사람도 함께 싫어지는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돈이 필요해서 중고나라 사기를 저지르고, 불우한 어린시절 때문에 술에 의존하게 되어 무전취식을 하고, 술에 취해 자기도 모르게 불을 냈다는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서 그들이 말하는 인과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장 인상깊은 사건이 자고 있던 친구의 이불에 불을 붙인 사건이었다. 그는 탈북민이었는데, 같이 사는 친구와 불화로 다퉈 술에 취한 상태에서 불을 질렀으나 해를 입히려는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친구에 대한 섭섭함, 오해가 쌓인 일일뿐이었으나 나는 친구의 입장이 더 공감됐다. 친구는 목숨을 걸고 어려운 탈북에 성공했으니, 힘들어도 자신을 다잡고 잘 살아서 탈북민들에 대한 인식도 좋게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피고인은 힘든 순간에 술에 의존했고, 친구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원망섞인 섭섭함을 품었다. 같은 상황에서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좋지 못한 선택을 한 사람들에 대해 어디까지 공감하고 이해해야 하는가 고민했다.

 

 지난 10월 생계곤란으로 열흘을 굶은 한 사람이 마트에서 음식물을 훔쳐 체포된 사건을 기사로 보았다. 그의 사정을 들은 피해자도 선처를 바랐고, 지자체에서 그의 재활을 돕기 위한 방향으로 마무리 된 내용이었다. 그의 곤란이 다른 방식으로 알려졌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런 딱한 사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사건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변호가 어디까지 필요할까. 가족력, 불우한 과거와 술 때문에 우발적으로 지인을 찔렀다는 사람은? 삶이 힘들어 마약에 손댔다는 가장은?

 

 저자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와 그릇이 나보다 넓은 사람이기 때문에 변호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럴 수 없어서 읽으면서 어쩌면 국선변호사의 자격은 남을 잘 믿어주고 착할 것이라는 요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피의자들이 대는 핑계같은 말에도 귀기울이며 참고하는 자세가 감탄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까지, 싶었다. 그 사람들의 사정도 있지만 엄연히 피해를 본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의 억울함은 고려하지 않는걸까 생각하기도 했다. 게다가 술 때문이라는 이유가 너무나 많이 이용되는 사회에 의문과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책에서 나오는 중독 혹은 술에 취해서 그랬다는 말들도 더욱 마음의 빗장이 단단해지게 만들었다.  

 

 더욱이 이 가련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들은 너무도 쉽게 유죄를 판결받지만 정작 사회의 근간을 해치는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중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들은 그 죄값을 다 받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다. 이들이 변호를 통해 법망을 피해가는 것도 지겹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충분한데도 돈을 아끼기 위해 국선 변호를 선택하여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 있다는 것도 불만스러웠다. " 삶의 효율을 요구하는 시대에 삶의 자세와 가치를 길어내다 "는 표지문구의 어떤 면모를 책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읽으면서 마음이 답답했다. 차라리 우리는 더 효율적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국선 변호인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관심을 갖고 읽어볼만 할 것이다. 도리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사회의 구조는 이리도 허술한 것일까, 명백히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변호가 필요할까 이런 의문들을 가지게 되버렸지만. 사실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일반적인 통념에 맞지 않는 판결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하다보니 좀 더 부정적이고 까질하게 읽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이제야 든다. 혹시 지금 사람이 좀 싫다면 저자가 만난 우기기, 남의 말 듣지 않기, 화내기 등을 잘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례를 보고 더 속이 터질 수 있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사람와 얽힌 직업은 무엇이든 정말 쉽지 않구나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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