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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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이라는 거대한 기록 앞에서 당연하게도 위축됐다. 먼 옛날 국사 공부를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서 '아마 난 안될거야, 틀렸어.'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참 이상한게 그때 못했으면서 왠지 지금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그저 막막했다지만, 이제는 머리 속으로 이래저래하면 이렇게 될 거라는 예상 지도가 훤하게 그려져서 실천도 쉬울 것이라 착각하나 보다. 나 자신은 그대로인데. 그래서 예전에는 국사가 어려웠어도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실록을 읽기만 하는 거니 괜찮겠지 하고 책을 잡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란 인간 참 그대로구나. 반갑다, 나 자신아. 아무리 공부하는게 아니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쉽지 않다. 초심자와 호기심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지 말 것.

 

 1권을 읽었는데, 전 10권에 달하는 내용 중 당연하게도 이 첫권의 내용이 가장 친숙하다.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이 알려진 세종을 제외하고, '국사 공부를 시작해볼까'라고 마음 먹었을 때 조선을 건국한 태조 부분만 공부하고 그 뒤로 흐지부지 된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를 10권까지 다 읽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태조만 보고 그 뒤는 역사의 소중한 한 페이지로 남겨둔 사례가 또 한 번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예감이 꽤나 강렬하다. 눈에 띄었던 점은 태조가 차지하는 분량이다. 태조가 1권의 모든 분량을 혼자 소화하는 반면 다른 왕들은 둘, 평균적으로 셋씩 뭉쳐 한 권을 이룬다. 앞으로 나올 세종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다는 게 의외였다. 태조에 대해 실록에 남아있는 부분이 그만큼 많았던 것인지 조선 건국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일부러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혁명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분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개인적 경험으로 어린시절 정몽주에 관한 위인전은 읽고 태조에 관한 위인전은 읽지 못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씩 외웠다는 만인의 시조 단심가도 마음에 걸리고, 태조와 이방원, 정도전에 관한 인상이 그리 좋지 못하다.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심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역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변방의 무장 이성계가 창업군주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겸손과 섬김의 리더십이 있다. 일곱 살 어린 정도전을 스승으로 삼았고, 혁명에 반대한 이색도 끝까지 우대했다."는 소개에서도 정몽주 위인전을 읽고 자란 키드가 가지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린시절 읽었던 책에서는 정몽주가 충절과 이성의 상징이었고 이방원은 잔인한 무뢰한처럼 그러졌기 때문이다. 그 책만 그런건가. 하지만 이성계 측에 선 시선으로 자세히 적힌 글을 오랜 시간 읽다보니 과거에 느꼈던 반감이 좀 사라짐을 느꼈다. 이래서 양쪽말을 다 들어보고 판단해야 된다고 하나보다. 위인전에서 정몽주를 다뤘으면 이성계도 같이 썼어야 했다. 특히 어린 시절에 읽는 것이니 더욱 양쪽 입장을 알 수 있게.

 

 생각보다 읽기 쉬웠다. 여름밤은 덥고, 잠이 쉽게 오지 않아 마실 것 하나를 만들어 한참을 아무 생각없이 몰두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 동안 할일이 없다면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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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MB의 재산 은닉 기술 : 이명박 금고를 여는 네 개의 열쇠 - 이명박 금고를 여는 네 개의 열쇠
백승우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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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한 말보다는 돈을 쫓으려고 했다. 말보다는 돈이 정직하다. - p.8 기자의 말"

 

 돈, 땅, 다스, 동업자. 네 개의 열쇠로 쫓는 이명박과 그 일가의 재산과 의혹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저자가 기자이기 때문에 문장들이 명료하다. 말보다 돈이 정직하다고 단언하는 그의 말처럼 문장은 쓸데없는 수식을 줄였고 집요하게 숨겨진 핵심을 향해 파고든다. 읽다보면 이미 지나온 자취에서 현장감마저 느껴진다. 주진우 기자의 책과 언론을 통해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나 있는 내용이지만 충분히 흥미롭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 라는 질문은 이제 우스운 말이 되었다. 모든 정황과 증거가 가리키는 곳이 분명한데도, 그에 얽혀있는 인물들은 모른다와 침묵으로 진실을 가리려 하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당당하게 만드는 것일까. 정의와 진실에 대한 국민들의 엄중한 요구가 두렵지도 않은 것일까.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정치적 보복'이라는 말도 환멸스럽다. 권력과 재물만을 좇아 눈과 귀를 가린 이들의 꼬리가 밟혔다. 퇴임 이후 5년만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구속되었다.

 

 실망스럽게도 책에 나오는 인터뷰의 내용은 한결같다. 다 다른사람들임에도 '시키는대로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른다'는 답변이 짠듯이 나온다. 막대한 금액의 출처와 용도를 모른채 굳이 복잡한 방법으로 옮겼어도, 몇달동안 맡겨진 80억원의 돈을 영문도 모른 채 차명계좌를 써가며 '관리'했어도, 시키는대로 했을 뿐 감히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과정에서 이명박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 주변의 모든 곳을 검은 자금이 샅샅이 훑어가더라도 교묘히 그 이름은 피해간다. 그럴수록 더욱더 애써 숨긴 그 이름이 미심쩍다.

 

 책을 읽던 와중이었다. 2018년 3월 22일 밤 11시 경 이명박에 대한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23일을 넘기자마자 호송차에 올라 구속되었다. 집 앞에 뺴곡했던 취재진과 함께 그 이동을 많은 대중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간신히 날을 넘겨 구속한 것처럼 하루도 헛투로 보내지 않길 바라는 이들의 마음도 이와 같았다. 구속 이후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나흘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모든 책임을 나에게 물으라'던 이명박은 혐의를 부인하고 검찰의 조사를 보이콧하고 있다. 그리고 SNS에는 글을 남긴다.

 

 그와 주변의 행태만 보더라도 구속은 끝이 아니다. 비록 여기까지 가기에도 오래 걸렸고, 긴 사투를 벌인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욱 중요한 것들이 남았다. 철저히 수사하여 무너진 사법제도와 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07년 대선부터 다스 문제가 제기된지 10년이 지났다.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정의가 실현되길 바란다. 이 뿐 아니라 청계재단,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정원 공작 의혹, 여론 조작, 불법 자금과 뇌물 등의 의혹과 혐의가 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죄값을 받길 바란다.

 

 "이명박은 2007년 대선을 치르면서 모든 의혹에 대해 수없이 부인했다. 세 번 이상 부인했다. 정직했다면 걱정할 건 없다. - p.279 에필로그" '정직'이 자신의 가훈인 사람은 자신의 '기술'에 자신 있을테니, 다만 걱정할 것은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실현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자본과 권력 앞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입에서 진실이 가리워지고 거짓이 뱉어지는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감시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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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8-04-02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기이익이 정의라고 아는 사람에게 아님을 이해시키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더구나 권력의 정점을 찍은 이에게 누가 이것을 조곤조곤 가르쳐 줄 수 있겠습니까?
그저 법이라는 제도에 의해 심판 받는 길 외에. 감사히 읽고 갑니다~~

테일 2018-04-06 15:28   좋아요 0 | URL
오늘, 지금 이 순간입니다. 417호 대법정에서 선고되고 있는 판결문, 법원 인근에서 중계되고 있는 태극기를 ‘장식‘한 사람들의 모습. 남겨주신 글과 함께 많은 생각에 들게합니다. 오늘의 선고가 법으로 다 갚아지지 않을 행동들에 어느 정도라도 위안을 줄 수 있는 길이 되길 바라야지요.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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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는 시간에 대한 다양한 소재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책에서도 설명하고 있듯이 '시간'은 그 사용 빈도가 높은 만큼 생활에 밀접하기 때문에, 다루고 있는 몇몇의 에피소드 들은 익숙한 내용이다. LP에 이어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는 CD 한 장의 용량이 어떤 계기로 정해졌는지에 관한 내용이나, 저 유명한 "베트남, 네이팜 탄, 소녀"의 사진 등이 그러하다. 익히 알고 있던 혹은 전에 생각해본적도 없던 내용이든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시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을 만나볼 수 있다.

 

 '시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무엇인가? 과거-현재-미래라는 흐름,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 정해진 일과, 상대적으로 체감되는 동일한 시간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단순히 떠올리는 이 대부분의 내용들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다. 덕분에 초, 분, 시, 일, 월, 년의 시간 흐름을 의식하고 의심하게 됐다. 시간이 아니라 그 흐름을 인위적으로 나눠놓은 단위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어딘가 불편하다. 마치 숨 쉬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하다 갑자기 의식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2018년이 벌써 3월까지 됐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일어나는 일을 반복하며 시간의 흐름에 무덤덤했다는 것이 오히려 아이러니하다. 책을 읽으며 흥미롭기도 하고 시간이라는 소재의 매력적인 부분을 발견했다.

 

 마침 백화점에 들렀다가 무심코 한 화장품 매장에서 이끄는대로 들어가 피부나이 측정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쩌면 익숙한 체험일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생소하고 어딘지 얼떨떨한 일이었다. 구멍이 뚫린 플라스틱 상자같은 기구를 잠시간 얼굴에 대고 있자 사진이 찍히고, 피부상태에 대한 평가가 뜬다. 피부결, 주름, 유수분, 기미 등의 상태를 나이로 환산하여 알려준다. 이를테면 피부결은 20세, 주름은 35세, 기미는 40세와 같은 식으로.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 알 수 없을 빈약한 테스트임에도 눈에 들어오는 나이라는 측정값은 무시할 수 없이 다가왔다. 어리진 못할 망정 제 나이와 비슷하게 나온 값들도 억울한데, 나이보다 많이 나온 항목에선 충격을 받고 열심히 설명해주는 상담사의 말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라며 급작스런 공황에 빠졌다.

 

 집으로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득 읽고 있던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를 떠올렸다. 가벼운 쇼크 상태에 빠져 내 얼굴, 피부에서 발견한 과거-현재-미래의 나이들. 그 '거의 모든 시간'들을 되짚어보다 불쑥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시간과 나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젊음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 "사람들이 1월을 매우 싫어했고 1월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나는 1월은 하나의 표식일 뿐이며 1월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p50)"

 2017년 12월 31일의 나보다 2018년 1월 1일의 내가 하루만큼 더 젋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하루가 1년의 나이를 가르는 역할을 함으로써 주는 부담감은 지나치다. 더욱이 스물 아홉에서 서른이 되거나, 서른 아홉에서 마흔이 되는 등의 변화가 있다면. 차라리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우리가 지나치게 신경쓰는 이 모든 것들에서 좀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이란 이리도 간사하여 시간으로 인해 얻은 수많은 편리를 쥐고서 고작 피부나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며 시간의 파괴와 종말을 꿈꾼다. 시간에 관한 잡다한 지식을 얻고 싶다면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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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의 철학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노윤기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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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잉과 풍요의 시대에 가장 강조되고 있는 요소 중 하나는 '다이어트'일 것이다. 이는 콩글리쉬의 의미 그대로 체중을 줄이려는 노력으로 통용되지만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으로도 나타난다. 말하자면 우리는 과잉된 섭취로 인해 증가한 체중을 줄이려는 시도를 할 뿐만 아니라, 집안에 쌓여있는 가구와 옷가지 등의 살림을 줄이려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동경, 중독 수준이라 할 수 있는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의 전자 기기 사용을 줄이려는 '디지털 다이어트', 24시간 제한없이 엮어진 인간관계 또한 정리하려 하고, 심지어 내면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수많은 상념들을 떨쳐내려는 노력도 한다. 때문에 '단순한 삶의 철학'을 통해 우리의 이런 노력이 어디에서 기인했으며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맞을지 파헤쳐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띈 주제는 소박한 삶은 옳고 사치스러운 삶은 틀린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왜 보편적으로 사치스러움을 천박히 여기며 경계하고, 소박함에 대해 도덕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두어 생각하는 것일까에 문제적 시각을 둔 점은 꽤 신선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개인적으로는 단순하고 검소한 삶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 몇 번의 방정리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사려다가 마음을 접은 몇몇 가전제품들로 위안을 삼아보기도 했다. 나 역시도 당연스레 소박함에 더욱 이상적인 가치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나에게 지금과 다른 엄청난 부유함이 주어진다면 과연 동일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자문해보니 답은 아니었다. 단순한 삶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던 일이 과연 진짜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 결여로 인한 불만족함을 완화하기 위한 다른 수단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반발적인 생각으로, 많은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떠올려본다. 그들은 나름의 진지한 어조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만약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내어놓고 과거로 돌아가 젊음/선택하지 않은 소박하거나 평범한 삶과 바꾸겠냐고 하면 반드시 기꺼이 그러겠다"고. "많이 가진 것은 곧 행복이 아님"을 누구보다도 많이 가진 그들은 매우 강조한다. 하지만 가진 것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라 부족한 것은 돈밖에 없는 입장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그들의 말은 매우 허황되고 탐욕스럽게 느껴졌다. 그들이 진짜 덜 가졌더라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젊거나 소박하고 단란한 삶을 산다고 해서 분명 그 이상의 행복을 느끼게 될까?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지금의 삶을 다시 버리고 더 가진 삶을 선택하라고 하나면 반드시 기꺼이 그러겠다고 할 사람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은 이미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갖고 싶은 것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니.

 

 특히 "4장 소박함의 철학은 왜 오늘날의 삶에 어려운 것인가" 의 "소박함의 비판적 측면"을 읽으며 어려웠던 시기 동안 핵심이 되었던 '가성비'라는 요소를 떠올려보았다. 이 가성비라는 것은 합리적인 소비 자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특히 젊은 세대들의- 빈곤함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의 면모도 보인다. 책에서는 소박함의 비판적 측면 중 첫번째로 "돈에 집착하게 된다 / 모든 것의 비용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가격을 비교하고, 단위가격을 계산하고, 할인 여부를 살피고, 할인행사를 찾아다니고, 폭리를 취하는 곳을 적발하는 등 역설적으로 돈에 과도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 -p.187 4 소박함의 철학은 왜 오늘날의 삶에 어려운 것인가" 을 꼽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성비와 매우 비슷한 결이다.

 

 매우 오랜 시기동안 근면과 절약, 성실이 전국민적인 삶의 지향점이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에 스며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가성비적인 삶이 무조건적인 긍정이 될 수 없음도 부각되고 있다. 흔한 예로 미국사회의 계층별 비만율을 들 수 있는데, "미국 연방정부의 통계자료는 소득수준과 비만율이 반비례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소수계층(minority)일수록 비만율이 높아짐을 보여주고 있다. 백인은 연봉이 5만달러(약 6500만원) 이상인 사람들 중 비만인 비율이 16%였고 1만5000달러인 집단의 비만율은 23%로 소득이 낮을수록 비만율이 높아졌다. 흑인은 연봉 5만달러와 1만5000달러 집단의 비만율이각각 22.5%와 34%로 백인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비만율이 더 높았다. - 동아일보기사 이진영 020221" 는 내용이 가성비를 추구하고,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생활 환경의 맹점을 꼬집었다.

 

 더불어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이상도 삶이 팍팍하기 때문에 오는 취향에 대한 극단적 절제로도 해석된다. 이 밖에도 책에서는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너그럽지 못하게 된다, 사회가 침체될 수 있다" 는 것들을 꼽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사회가 침체되었기 때문에 소박해졌다는 인과가 더 큰 듯하다. 이처럼 "단순한 삶의 철학"은 소비와 사치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며 단순한 삶에 대한 여러 관점을 보여주는 만큼 책을 읽으며 기존에 품어왔던 생각과 많은 의문들이 서로 부딪히는 과정들을 겪었다. 읽으며 떠올렸던 것들에 비해 개인적인 결론은 너무나 단순하게도 검소함이든 사치든 모든 것이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 되었는데 "단순한 삶은 삶의 충만함에 이를 수 있는 여전히 가장 확실한 길 중 하나이며, 우리는 그것을 지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p.363 맺는 글" 로 정리된 본문처럼 다소 아쉬움이 남는 맺음이었다.

 

 아쉽게도 삶을 관통하는 철학보다는 빈부에 대한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 더욱 집중하게 됐다. 검소한 삶의 자세가 철학을 통해 추구된 신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주어진 기술에 지나지 않는 시대이고 세대이기 때문에. 앞서 언급되었던 '다이어트'를 고려해 본 적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사실은 선택지 없이 주어진 것들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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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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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어떤 분야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오타쿠의 기질을 보인다고 한다. 연예인을 좋아하듯이 왕들을 파고, 숨겨진 디테일에 앓는 애정을 보인다. 가끔 위인전이나 교과서에서는 알 수 없었던 '세종은 고기를 좋아하여...' 에 얽힌 일화 등을 간략하게 소개한 글들을 보면 순전한 애정으로서 역사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 팠구나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내가 사랑한 백제'는 분량도 적지 않고, 자줏빛을 띄는 연한 표지부터,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라는 카피까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성덕의 기운이 몰려오는 책이었다. 백제에 대한 저자의 그득그득 들어찬 애정 뿐 아니라, 애정만큼 밀접하게 다가가 풀어낸 빛나는 결정체라고 할까. 개인적으로 이처럼 백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저자의 열정에 휘말려 읽었다.

 

 백제라는 키워드와, 살짝 두툼한 두께가 독자를 압도하는 것과는 달리, 속내용은 상당히 친절하다. 이 책에 대해서 알려면, 이 책을 쓰는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저자의 배려로 우리는 처음부터 백제란? 이란 질문을 마주하는 당황스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남녀노소 안심하고 읽어보길. 저자가 어떻게 백제를 연구하게 되었는가를 따라가다보면 한결같은 저자의 목표의식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이건 그냥 백제가 저자를 간택한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싶어진다. 고향 땅의 영향이라고 해도, 어린시절부터 확고한 꿈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해나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읽어보면 담담하게 서술하여 놓았는데도 저절로 대단하게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는 얼마전에 순천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일정 상 낙안읍성을 가지 않은 것이 아쉬워졌다. 게다가 조류독감으로 순천만에서 볼 예정이었던 낙조마저 놓쳐서 아쉽고 분한 마음에 순천에 당분간 갈 의향이 없어졌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니 낙안읍성도 그렇고 날이 풀리면 다시 찾아봐야겠다 싶어졌다.

 

 재미있을까 의문을 품고 시작한 것에 비해 꽤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아마도 저자가 백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며 얽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제를 향한 '방망이 깎는 노인'과도 같은 깊은 장인정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모습에 매료되어 버린다. 마치 박물관의 24시간 같은 코너처럼 관찰하듯이 바라보는, 직접 일하지 않고는 모를 박물관에 대한 내용도 곁들여 있어서 그 점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생 이상 정도면 충분히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같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상당히 매력있게 읽었기 때문에 인상이 다소 딱딱해보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책의 맨처음 "목표나 의미"를 얘기하던 저자가, 그것을 이루며 살아왔음을 동경의 눈으로 감탄하며 책을 덮었다. 정말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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