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이야기 -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딘 버넷 지음, 임수미 옮김, 허규형 감수 / 미래의창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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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히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말이 유행했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는 저 유행어는 멍 때리고 있는 순간에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내장기관들의 노동마저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도 내 뇌는 뭔가를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아까 먹어치운 음식들을 소화시키고, 그리고 내가 채 눈치채지 못하는 일들까지도 번잡하게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이끌려 활동하고 있는 심장과 폐의 모습을 본 적 있는데, 그렇게 바쁘고 열심일수가 없었다. 그러니 알게 모르게 우리는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상태이긴 한데, 사실 나는 그마저도 살아있기 위해 치열한 상태다. 때문에 한껏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격렬히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고 외치는 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으름과 부지런에는 뇌가 있다. 아주 대단한 성능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는 내 뇌를 떠올려본다. 내가 뭘 좋아했더라, 최근에는 어떤 생각을 자주 했더라,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던 일이 뭐였지, 아 기억이 안나 요즘 자꾸 잘 까먹네, 넷플릭스랑 왓챠보느라 요즘은 머리를 쓸 일이 없어, 저번에 천정 턱에 머리 부딪힌거는 괜찮나, 요새 왜 밤잠을 설치지, 가족력 중에 치매가 있었나, 호두를 먹으면 뇌에 좋은가 같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생각들에 대한 대부분의 답이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 이야기' 안에 들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평소에 내가 겪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줄줄이 나와서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다 흥미롭게 읽었다.

 

 가장 먼저 나온 주제인 멀미부터 시작이었다. 그래, 내가 대체 왜, 장거리 버스를 타면 아무것도 못하고 나무토막처럼 늘어져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며 멀미를 하지 않기만을 기도해야 하는지 우리 백만 멀미인들은 너무나 궁금할 것이다. 책에서는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 이론으로 고유수용감각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가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할때 고유수용감각은 신체의 직접적인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이동에 대한 신호를 보내지 않지만, 전정계의 귓속 액체는 가속도로 인해 우리가 실제로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보낸단다. 두 기관의 이 상반된 신호가 멀미를 일으킨다고 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걸어다니는 것은 옳지 않으니 직접 해볼수는 없겠지만, 그럼 실제로 그 안에서 진행방향쪽으로 계속해서 걸으면 두 기관이 같은 신호를 보내게 될테니 멀미를 덜하게 될까? 책에서도 멀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교통수단을 타지 않는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으니 아마 아닐 것 같다.

 

 2019년 목표로 다이어트를 세웠는데 실패하고 2020년 목표로 다이어트를 다시 잡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을만한 주제도 있었다. 다이어트를 실패하게 되는 이유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때문도, 먹을 것만 보면 입에 침이 고이기 때문도 아니라 뇌 때문이라고 한다. 내 몸을 이렇게 만든 것이 뇌라니, 뇌 이놈! ... 뇌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똑똑하여 다이어트를 하려고 내가 먹은 다이어트 식품들에 속지 않는다고 한다. 포만감을 주지만 칼로리는 낮은 음식으로 배를 채워도 금방 배고픈 이유가 뇌에 있었다. 우리의 좋은 친구 위는 고칼로리 메뉴를 거절하고 싶어하더라도 말이다. 기나긴 역사의 다이어트 실패 이유를 뇌에게 따지고 싶은데 뇌마저 내것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다이어트 실패의 또다른 원인은 내 뇌에서 이상적 자기를 이루기 위한 의무적 자기가 제대로 활동하지 않고 있어서 였다. 마침 책에서 "예를 들어, 저녁에 피자를 먹고 싶다면 어떻게 될까?(307)"란 문장이 나왔는데, 방금 저녁으로 피자를 먹은 사람이 읽기에 편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어서 "피자는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피하는'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샐러드를 찾게 된다(307)"는 문장을 읽으며 내 성격이, 통제권이, 동기부여가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지 않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뇌가 그랬다니까 내 탓인데 내 탓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내 뇌 안에서 동기부여는 " '저것 봐, 케이크야! 먹자!'와 같은 기본적인 반응과 관련된 시스템(308)"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하고 있는지 모른다. 심지어 노력, 고통에 대한 보상을 맛있는 음식으로 하고 있는 점도 체중조절에 방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팩트로 얻어맞으니 또 아프다. 2020년에는 꼭!

 

 

 이 밖에도 나이가 나이다보니 요즘은 짧게 뭔가를 기억하려고 해도 잘 안된다. 가끔 가는 인터넷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항상 잊어버리는 건 문제 삼지도 않는데, 비밀번호 재설정을 하려고 인증번호 6자리를 받아서 입력하려고 하면 문자 확인하고 다시 입력창을 켜는 동안 까먹고 만다. 1학년때 몇반이었는지 같은 과거의 일이 선명하게 기억났었는데 요새는 가물가물 해졌다. 얼마 전에는 외출해서 먹을 죽을 아침 내 만들어서 보온병에 담아 나갔는데 옆에 뒀던 숟가락을 빠트려, 맨손으로 죽을 앞에두고 잠시간 멀거니 바라본 적도 있었다. 숟가락이야 어디서든 구하면 되지만 고생해서 싸놓고 숟가락을 잊어버린 일이 어이가 없어 두뇌조정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깜빡함이 전에는 아, 깜빡했네. 하고 넘어갈 일인데 요즘은 건망증인가 뭔가 스스로 의심해보게 되는 때가 된 것이다.

 

 네번째장의 제목은 참 재밌고 민망하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너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다"가 그 제목인데, 처음에 썼듯이 내 뇌에 나름 만족하고 있다는 표현에 저 뜻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민망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자, 물론 내가 맞고 니가 틀리지만' 이란 말의 유행이 여기서 비롯된 것 같아 재밌었다. 다만 키 큰 사람이 더 똑똑할 확률이 높다는 내용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키 큰 기린과 키 작은 기린 종들 중 먹이를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키 큰 기린만이 살아남았다는 다윈식 진화론이 인간의 두뇌에도 적용되었다는 것인가. 진화론도 키와 아이큐의 상관관계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저자의 키가 클 것이 틀림없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키가 큰 사람들은 키가 크다는 것으로도 장점을 뽐내는데, 덕분에 더 똑똑할 확률이 높다고 하면 또 얼마나 키 작은 사람들의 마음이 뒤집어지겠는가. 키 작은 것도 서러운데, 아무래도 저자는 키가 큰게 틀림없다.

 

 얼마전에 한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가 우울을 앓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그때는 당황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제대로 위로가 될만한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몰라 그저 '병원은 잘 다니는지, 요즘은 다들 힘들어서 병원도 많이들 가고 감기처럼 아픈 일이라 병원다니는 일이 이상할 것도 없다더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네고만 말았다. 마침 책에도 우울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지인이 떠올라 주의깊게 읽었다. 그날 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 그에게 괜찮은 것이었는지 마음에 염려가 남았던 탓이다. 헤어지면서 어쩐지 염려되는 마음에 다음에 만날 약속을 또 잡았는데 그때는 좀 더 위로가 되줄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우울에 대해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도 혹시 우울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403)"하고 생각했지만, 요즘들어 생겨난 생각의 변화나 개인적인 일들이 마음에 걸린 탓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에게도 분명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분량이 적지 않은데도 지루한 마음 없이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내가 생각하고 겪었던 일들이 책에도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고만? 싶은 자신만만함, 안도감이 든다. 이제 어두운 길을 걷는 것도,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을 때 이상하게 숱이 많게 느껴지는 것만 같은 공포감도, 속으로 내가 아는 가장 밝고 경쾌한 아이돌 노래의 싸비를 반복적으로 부르지 않아도 좀 더 객관적으로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한 권으로 뇌의 세계를 전부 알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재밌는 부분은 충분히 얻어낸 것 같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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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세계사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술이 빚어내는 매혹적인 이야기
마크 포사이스 지음, 서정아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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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을적에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어찌됐든 성인의 특권같아 보이는 술을 마시는 것도 좋았고, 그래서 얻어지는 방종도 좋았다. 약간 이성을 놓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즐기는 술자리는 퍽 재밌기도 하니까. 언제부턴가 술이 주는 매력보다 다음날의 숙취가 더 크게 고려되고, 술자리에서 느끼는 재미가 때로 실수로 이어지고 공허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요즘의 솔직한 마음으로는, 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더 크다. 술을 좋아해서 술에 대한 세계사를 읽어보려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술이 궁금했다.

 

 술로 인해 들려오는 사건과 사고 소식들은 너무나 많고, 그에 대한 처벌은 약하다. '술 때문에'라는 핑계는 왜, 어떻게 이유가 될까? '술에 취해서 심신미약이었기 때문'이란 이유로 낮은 처벌을 받는데, 사회는 왜 술에 관대할까? 같은 의문들과 함께 사람은 왜 술을 취할때까지 마실까? 왜 술을 마시고 싶어할까? 같은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이 궁금증들이 '술에 취한 세계사'를 읽도록 만들었다. 정말 '인간은 술꾼으로 진화했'을까? 자신은 만취에 대해 모른다고 운을 떼고선 바로 다음장에 '런던 캠던 타운의 집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십자가를 흔들어대면서 행인들에게 회개하라고 한 적'이 있다는 문장을 쓰는 자의 술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으며 읽을 수 있을까? 혹시 글을 쓰는 도중에도 술을 마신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저것이 만취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복잡한 마음을 안고 책을 읽었다.   

 

 책은 술의 기원부터 살핀다. 여기서는 누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가를 주제로 동물과 술에 대해서도 나온다. 동물들도 술을 마신다는 얘기를 읽다보니 최근 술에 취한 라쿤의 동영상을 본 것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길에 버려둔 술을 마신 모양인데, 만취한 라쿤이 길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확실히 우습고 귀여웠다. 책에서는 동물이 술을 진탕 마시는 일은 드물다고 했는데, 이 라쿤은 어쩐 일인지 만취한 것이었다. 좀 더 찾아보니, 동영상의 술취한 라쿤은 경찰에 잡혀간 뒤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모처럼의 동심이 파괴되는 결말이 술꾼의 최후같아서 씁쓸했다.

 

 불행한 라쿤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술과 여성의 역사에도 매춘, 난교, 구토 같은 말들이 따라붙는다. 처음 가졌던 흥미에 대해 달가운 내용들은 아니었다. 새끼돼지 값으로 치뤄지는 매춘이나 구토, 난교 함께 버무려진 이집트인들의 술문화, 수메르의 술집 여주인, 바이킹의 연회에서 여성 역할은 술을 따르는/제공하는 것이었다는 내용들은 음지의 술문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는 진을 마시는 여성들을 비방하는 글을 쓰는 영국 신사들의 등장과 점잖은 여성은 살룬에 가지 않는다는 서부시대의 불문율과 함께 살룬 아가씨라는 직업의 등장이 소개된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문화권에서 술이 자연스럽게 여자와 성에 얽혀 있는 역사를 보여주는데 하나같이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아보였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역사 속의 술문화는 로마의 콘비비움이었다. 술자리의 좌석배치도도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손님의 중요도를 차갑게 평가해놓은 이 무례한 술자리는 심지어 바닥을 기어야 하는 노예들을 부리고, 노예의 가치를 무려 외모로 평가하기까지 한다. 손님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는 앉은 자리와 그들을 접대한 노예의 외모, 제공받는 술의 품질에서까지 드러난다. 예의와 상식은 어디 먼 곳으로 보내버린 것만 같은 과거의 문화는 주인이 차별대우에 분노한 손님의 칼날을 맞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앞서 본 술의 역사들이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에 금주를 시도한 역사들도 나온다. 이슬람교에서 금주령을 내리니 사람들은 모자를 쓰고, 라키는 술이 아니니까, 원료가 다르니까 같은 핑계를 대고 술을 마시려고 한다. 아즈텍에서는 풀케를 마시고 취한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지만 술을 마시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도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마시면 죽는다고 하더라도 술을 기어코 마시려는 사람들의 의지는 그것이 금지되었다는 이유로 더욱 강해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미성년 시절에 술을 마셔보고 싶어하는 호기심처럼. 개인적으로 평소 술을 즐겨마시지는 않지만,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술은 백해무익하니 금주령을 내리자는 급진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금주와 관련된 내용을 읽다 이건 어렵겠구나 싶었다. 술이 가진 유구한 역사와 큰 팬층을 떠올리면,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는 결국 인간의 것이기 때문인지 술과 인간이 맺어온 관계는 과거와 지금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보였다. 취하고 즐기고 토하고 욕망을 분출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또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한 고대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마치 맨정신으로 만취자들의 술자리에 참석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흥미롭지만, 왜 저러는건지 이해가 안되는 문화도 많았다. '술에 취한 세계사'를 통해 다양한 역사를 접할 수 있어 유익했지만 내용이 정돈된 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역사 속에서 겹치는 내용들이 나오니 시간의 순서에 얽매이기 보다는 술에 취한 인간과 동물, 술 문화, 술과 여성, 금주령 같은 주제로 묶어 내용을 끌어갔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래서 결국 사람은 왜 술을 마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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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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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사람얼굴 토기가 나온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신라시대 기록이 정자체로 적힌 나무통 문서를 추가로 출토했다고 한다. 1600여년 전 신라 고대사를 가늠해볼만한 유산이 되리라 주목을 받고 있는 이 발견에 대한 기사를 공들여 읽었다. 긴 시간을 잠들어있었을 기록이 깨어나게 된 일이 어쩐지 안타깝지만 설레이는 일이다. 고대의 도시가 남겨놓은 아스라한 기록물이 비교적 온전히 1600년의 시간을 너머 우리의 손에 전해졌다니. 십수세기 전에 그 자리에 터전을 이루고 살았던 사람들 삶을 감싼 베일이 한장 걷어졌을 때 내 손에는 '도시 이야기'가 들려있었다. '도시 이야기'의 세번째 콘셉트가 기억과 기록이었다. 도시에 우리가 무엇을 기록하고 남길 수 있을까 막연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소월리 유적이 그 답을 자연스럽게 알려주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도시와 건축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전에도 있어왔지만, 대중적으로 주목하게 된 것은 그리 길지 않은 때라 생각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보면 '밀고 지어내는 일'에 맞췄던 초점을 비교적 '조화롭게 의미를 두고' 만들어내는 것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시기를 떠올려보자. 그리 길지 않은 때라는 말에 공감할 것이다. 요즘은 건축과 공간에 대한 책이 나오고 매체에도 건축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소개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렇지 않다고 낯설게 생각한 때에도 익숙한 건축물과 유명한 도시를 통해 관심을 끌고 보는 이를 매료시켰다. '도시 이야기'의 저자 김진애도 '알쓸신잡'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도시와 건축은 이제 막 관심을 갖게 된 분야인데다, 어쩐지 전문적이고 어려워보이는 느낌에 선뜻 유명한 책을 집어 읽기에 문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성공한 여성의 당당한 모습으로, 도시와 건축물을 접근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친근함으로, 다가온 그녀의 책이 반가웠다. 그녀가 제시한 12가지 도시에 대한 콘셉트는 도시가 안고 있는 의미들이 이렇게 많은가 싶을 정도로 다채로웠다. 12가지 콘셉트들은 도시에 이런 면이 있나 싶다가도 그곳이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고 떠올리면 이내 수긍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알았던, 그리고 알아채지 못했던 도시의 여러 면모들을 좀 더 깊이 생각하며 책을 읽게 되었다. 좋지만도 나쁘지만도 않은 도시는 사람과 닮아있었다. 그 자체로 살아있는 무엇과 같이.

 

 제일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첫번째 콘셉트였다. 가장 많이 다녀본 장소들이 나와서 공간을 익숙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서울시내와 광장, 흥미로운 건 사대문이라는 공간이 아직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도 미세먼지 관련 정책으로 사대문 안에 5등급 차량 운행 제한을 둔다는 기사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오래된 도시의 구획은 사람들로 인해 이어져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뒤에 이어진 권력의 공간, 청와대나 국회같은 곳도 자주, 매일같이 바라보던 시설이라 그 곳들을 보며 내가 자연스럽게 어떤 생각을 하고 감상을 가졌는가 떠올려보니 신기하고 재밌었다. 놀랍게도 나는 그 권력의 장소들을 내심 꽤나 상징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2호선을 타고 지나가며 보이는 한강과 국회의사당의 풍경을 매번 애써 눈에 담는 것처럼. 이런 감상은 그들이 원하는대로의 반응인 것일까, 사회구성원이 자연스럽게 가지는 애착인 것일까 궁금해졌다.

 

 우리나라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기록 덕후들의 나라인터라 개발이 어려울 정도로 '땅을 파면 뭐가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공룡 발자국부터 역사적 기록물의 발견까지, 기록과 보관의 DNA가 우리 유전자에 잘 새겨져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가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우리 나라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가장 특징적인 풍경이 아주 현대적인 건물들과 전통적인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외국인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만큼 한국만의 이 풍경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때는 오래되고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려는데 급급했던 때도 있었다. 이때 스러져간 것들에 대한 아쉬움탓인지 요즘은 컵 하나도 빈티지한 것을 찾아쓰고 일부러 오래된 공간을 찾아가는 흐름이 생겼다. 너무 가까운 과거의 향수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시선도 있고, 이또한 지나가는 유행일수도 있지만, 이런 기호가 무분별함을 막을 수 있는 숨통이 된다면 좋겠다는 저자의 생각에 크게 공감했다.

 

 개인적으로 여행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왜 해외여행을 떠나는가에 대한 질문도 인상적이었다. 익명성을 위해서! 낯선 곳에서 일회적인 타인들 사이에서 느끼는 개방감은 확실히 특별하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이 개방감은, 하루를 구성하는 체험활동과 시간활용에 관대해지고 과감함해지게 만든다. 평소의 자신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해외 여행이 주는 큰 매력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책을 읽으면서 여행이 그래서 좋았구나, 그래서 편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한국인은 먹보니까, 그 나라에 가서 먹어봐야할 맛집 목록을 깨고와야 한다는 사명감도. 우리의 여행준비에는 필수적으로 먹을 것에 대한 검색목록이 있다. 왜 해외여행을 가는가에는 익명성도 있겠지만 그 위에 맛집이 있다. 이 핵심동기를 간과했다는 점이 크게 아쉬웠다.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리라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읽는 이의 이목을 가장 집중시킬만한 것은 일곱번째와 아홉번째, 열한번째 콘셉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차별, 차이, 혐오, 양극화같은 키워드는 최근 몇년을 관통하는 사회의 분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 나오는 '앉싸,서싸'같은 인싸 단어를 책을 보고 알았다는게 어색했다. 별걸 다 줄인다더니 진짜 쓰는걸까, 싶었다. 그리고 엘시티같은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는 부산은, 태풍에 유리가 깨졌는데 쉬쉬한다더라 하는 괴담과 경관을 해치는 흉물이다, 홍콩같이 마천루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같은 얘기만 건너듣다가 저자의 시각이 담긴 글을 읽어보니 이래저래 우리 사회의 구조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책에서 담아낸 콘셉트들에 대해서 겉핥기식이라도 한번쯤은 접해보고 생각해봤다는 점이 재밌었다. 도시라는 주제가 우리 삶에서 전혀 낯선 것이 아니라는 확인을 했다. 우리나라엔 왜 간판이 이리도 많은 것일까에 대한 의문, 불만까지도.

 

 '도시' 이 거대한 규모의 공간을 한 권의 책에 어떻게하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이 전해지는 책이었다. 마치 우리가 어떤 낯선 도시에 막 도착했는데, 그 곳에 대한 안내판 앞에 서서 대략적으로 훑어보게 된 느낌이다. 낯선 주제일지도 모르지만 읽기 쉽고 재미있는만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도시 이야기'를 읽으며 키운 관심으로 더 깊은 도시와 건축에 대한 책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초판 한정 부록으로 '도시는 여행 인생은 여행'이라는 작은 책을 함께 받았는데, 이 책은 저자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어서 이 책을 먼저 읽고 '도시 이야기'를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초판 한정이니 빨리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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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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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일감정이 너무나 커져있어 '국화와 칼'을 읽기 어려웠다. 책을 읽다가도 불쑥, 잠깐 접어두었다가 표지를 보다가 불쑥, 마음속에서 북한 아나운서처럼 '간악한 쪽바리들이...'하는 생각이 솟아났다. 이 격렬한 반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비이성적인 한국인이기 때문에? 혹은 정치적 선동에 휘둘려서? 백번 양보해 아, 이것이 내 내면에서 비롯된 민족주의적 성향 때문인가 싶어도,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에 대해 일어나는 혐오는 외부에서부터 비롯된다. 대문 옆 명패에 일본 이름을 붙여놓은 한국 정치인을 볼 때 느끼는 불쾌감과 비슷하다. 니 그카이 내 그카지. 니 안 그카면 내 그카나?

 

 바로 이런 때야말로 일본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 '국화와 칼'이 도움이 될 거라는 시선도 있겠지만 국화와 칼이 가리키는 이 이중성이라는 것이 정말 그들에게 혼재해있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우리가 이면이라 생각하는 어떤 모습들은 본성을 가리기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p.25 " 다른 무엇보다 바로 이 문장이 그들을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것이 아닐까. 더불어 '거짓말을 백번하면 진실이 된다'는 그들 속담처럼 사실이 아닌 것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꾸며내려는 습성도 있을 것이다.

 

 영화 '반딧불이의 묘'나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배우 아야세 하루카가 찍은 '진주만에 흩어진 사람'이라는 우익 다큐 같은 것을 보면 일본인의 이해안가는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은 자신들이 일으켜놓고 오히려 본인들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받은 것처럼 군다. 좀 감상적으로 전쟁 때문에 죽은 가족과 친구가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게 마음 아플 수 있겠다. 그 정도로는 생각해볼 수 있지만, 진짜 피해를 입은 다른 나라에 제대로 사과도 안하고 '전쟁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어' 어쩌고 하는 태도로 자기 자신의 불행이 대단한 상처인마냥 눈물 흘리는 역겨운 셀프 동정을 보면 여기서 정상인은 어리둥절해진다.

 

 특히 저 다큐에서 한 할머니가 미국인을 보면 얄밉다고 이죽거리며 퇴역군인인 미국인 할아버지에게 진주만 공습 때 무엇을 했냐며 당신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쏴서 살해했냐고 책임을 물을때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마저 아득해지는 어이없음을 경험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일부' 일본인들의 저런 사고와 태도가 가능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추측하려 노력해본다. 받은 것보다 더 큰 것을 돌려주면 안되는 기리문화에 어긋나는 반격을 했기 때문일까. 기리는 정확히 같은 양으로 갚아야 하는데 미국이 "피라미를 도미로 갚"아서 일본이 패전했기 때문에 피해의식에 빠져있는지 모른다. 저 두 영상자료 모두 자신의 귀한 시간을 들여 혈압 올리는데에 낭비하지 않길 바라며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너무도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p.223 "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저자가 일본인을 제대로 이해한건가 싶어졌다. 실패는 개인적인 것이니 어쩔 수 없다해도 비방과 배척으로 일본인이 타인을 괴롭히는 일이 얼마나 흔한 일인지 그때는 이지메라는 말을 몰랐던건가 싶어진다. 그 바로 위에 원수에게 똥을 먹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나오는데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원수에게 들키지 않도록 교묘하게 좋은 음식 속에 똥을 넣어 대접하고 상대가 알아차리는지 살폈다. 손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p223 " 는 부분에서 '후쿠시마 산 식재료를 750만의 한국인 관광객이 먹어준다'고 발언한 일본 외무상의 발언이 떠올랐다. "손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손에 들고 지금이 읽기에 좋은 때라고 생각했다가,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일까 하고도 생각했다. 때때로 반일정서가 끓어오르는 사건이 터지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불매운동이라는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것은 드물다. 나라가 망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즘의 시류가 반갑다. 이제 시작인데 불매운동은 아직 잘 진행되고 있을까, 장기적으로 참여해서 습관처럼 되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읽으면서 어떤 객관을 찾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들이 가진 음습함에 대해서는 한번 더 짚어보게 된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일본에 대한 분석이 필요치않다. 일본에 대해 몰랐던 서양인들이야 처음 일본이라는 적을 마주하고 이게 대체 뭘까 싶은 당황이 몰려왔겠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명백히 그들에 대해 경험으로 쌓아온 내력이 있으니.

 

 쓰고보니 객관적이지 못한 리뷰를 쓴 것 같아서 아쉽다.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애국심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어진다.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태도가 좋지 못한 탓이 더 클수도 있지만, 나의 소견이 아니라 이순님 장군님의 피셜로도 "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답담도사종인금토패문] " 라고 하셨으니 대부분 팩트에 기초한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더 차지게 비판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객관성에 있어서는 덜 아쉬운 마음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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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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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을 들여 책을 천천히 읽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음독도 불사하였는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지만 어느 순간 '철학따윈 필요없어'하면서 도피해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다. 뭣보다 중간중간 내 생각이 끼어드는 때마다 좁은 생각으로 말도 안되는 시비나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책은 책이지 경전이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꿋꿋하려고 애썼지만 잘 안됐다. 애초에 나는 목적을 위해 가치있는 것들을 도구화하는 셈에 익숙해있다. 책에서 말하는 10가지의 요건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이를 통해 셈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래선 안된다고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왜 안되야하는지 끝내 알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불만스러우면서도 절망스러웠다.

 

 주로 반기를 들었던 부분 위주로 생각을 쓸 것이다. 시비걸기에 지나지 않겠지만, 시작하고 한동안 어려워서 정신을 못차리다 존엄에 대한 부분에서 불쑥 반발심이 일었다. 셰익스피어의 전집과 운동화(80)에 대한 비교였다. 나같은 사람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위대한 작가의 전집과 운동화가 같은 가치로 매겨지는 일이 비교조차 어처구니 없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던진다. 운동화는 상품이기 때문에 그보다 못하다? 하지만 운동화-신발이 가지는 의미, 맨발로 거친 땅을 밟으며 살아야하는 이에게 있어 그 삶에 얼마나 중한 필요와 기쁨을 가져다주는지는, 그것도 존엄의 하나 아닌가 생각했다. 제 손으로 신 삼는 법을 몰라 오소리 영감의 종노릇을 해야 했던 원숭이가 원통해했던 것*(정휘찬 '원숭이꽃신')처럼. 어쨌거나 신발도 책만큼 중요하다.

 

 애초에 존엄에 대해 말하면서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노부부(73)를 예로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젊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들이 헤라처럼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257)로 그 순간을 삶의 완성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좀 더 젊었더라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존엄을 잃게 되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오히려 갑판에서 음악을 연주한 연주자들이 보인 태도가 더 존엄에 가깝다고 여겨졌다. 그들은 자신의 품위만이 아니라 타인의 위안까지 도모했다. 그렇다고 해서 살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지는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덜 존엄한 반응을 보인 것이냐는 아니라고 본다. 자신을 삶을 구하고자 하는 절실하고 불굴한 자세도 삶과 인간이 의지에 대한 존엄을 보인다. 그 끝이 비명과 공포에 물들었다 하더라도.

 

 가치있는 10가지 주제에 대해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찜찜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는데, '진짜 사랑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172)음을 이야기하며 오래된 흔들의자를 예로 들었을 때 그가 말하고자 하는게 현재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비우는 삶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잖은가. 미니멀, 심플, 심지어 비움의 미학 같은 것들이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오래된 물건을 끌어안고 있지마라,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아까워하지마라' 같은 말들을 신조삼아 공간, 사람, 생각마저 비운다. 현재의 라이프 스타일에서는 '팔걸이가 계속 떨어지는 오래된 흔들의자'는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케아로 달려가 가볍고 심플한 디자인의 철제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는다.

 

 이는 이상형의 조건에서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났을때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름 그럴듯한 변심의 변명이 되어준다. 사랑의 문제여서 더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일자리에 대한 문자로 생각하면 합리적 선택에 더 가깝게 보일 것이다. 과거엔 평생직장이란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번의 이직이 당연하고 필수적이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좀 더 적성에 맞는 자리를 찾는 길이다. 이건 지켜져야할 것으로 믿는 약속같은게 아니다. 하물며 사랑, 특히나 아무리 검은 머리가 세다 못해 대머리가 된다해도 굳을거라 맹세하는 결혼이라도 함께하는 것보다 더 나은 혼자를 위한 선택도 현명하다 보는 것이 현재이다. 신경과학같은 것으로 본다면 사랑 역시 호르몬작용이고 중요한 가치이지만 영원해야 할 의무는 없어야 한다.  

 

 또한 도구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람을 인적자원(87)으로 보면 안된다는 내용에서 저출생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저출생이라 부르기 전 저출산이라는 명칭이 있었고, 이는 가임기여성의 출산율을 통계화하는 수치로도 계산되었다. 이는 여성과 출산을 인류의 원활한 생존 유지를 위한 도구로써 본 것 아닌가. 국가적 세계적으로 말이다. 이밖에도 개의 행동에 도덕적으로 분노할 수 없다(114)는 내용에서는 요즘 빈번히 보도되는 개물림사고를 떠올렸다. 개가 사람을 무는 사고가 생기면 개에게 목줄을 채우고 입마개를 하고 안락사를 시키라는 요구가 따라온다. 이와 같은 대처는 개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아닌가, 이보다는 개주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라면 개주인이 벌금을 내고 실형을 살아야함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개를 도구화한 생각 아래서는 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개는 그대로 두고 개 때문에 사람만 처벌받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 부분은 '오직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만이 용서할 자격을 갖습니다'(191)는 용서에 대한 내용이었다. 용서 부분을 읽으면서 줄곧 영화 '밀양'을 떠올렸다. 때로 사람들이 갖는 용서에 대한 시선이 어떠한지를. 영화에서 범죄자는 종교를 가졌고 그로인해 자신이 저지를 죄를 용서받았다고 한다. 그를 목적을 통한 용서를 하기 위해 찾아간 주인공은 범죄자의 말에 분노한다. 종교를 통해 받은 죄사함은 '오직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만이' 가진 '용서할 자격'을 빼앗은 것이다. 책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함으로써 용서가 가능해진다는 어려운 내용을 강조하는데 이어서 '종교적 믿음은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일'임을 말하며 종교도 비슷한 예시로 든다. 종교가 침범한 용서의 영역에 종교가 예로 들어가 있어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책은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귀찮은 사람같다. 우리는 때로 그것을 양심이라고도 한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은 순간이 아니라 시도때도 없다. 순박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그 안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떠올리다가도 불현듯 부정하고 싶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책이 어렵지만 큰 틀에서 보면 '어린왕자'에서 말하는 것을 심화하여 담아놓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단순화했을지도 모르고, 오독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느낀 것은 그랬다. 다른 무엇보다 다만 어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해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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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2019-09-0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공감도 가지 않고 이해도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다른 분들은 대체 어떻게 읽으셨을까 궁금해서
리뷰들을 살펴보다가 너무 공감가는 리뷰라 좋아요 눌러봅니다.

점잖게 말씀하셔서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귀찮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제가 보기엔 앞뒤 꽉 막힌 사람이 본인의 주장만 내내 늘어놓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테일 2019-09-07 02:34   좋아요 0 | URL
공감하셨다니 반갑습니다.
읽으면서 저가 너무 꼬아보기만 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현실감이 덜하달까요..
리뷰 마지막에 누군가가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썼는데, 그만큼 답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