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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교육의 방법
노철 지음 / 태학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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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란 절의 말 

진리로 가는 길에 

만나야 할 방편  

돈오-점수, 점수-돈오 

이 방법 중 

점수-돈오로 나아간다

이미지, 비유, 운율, 서술 

닦고 닦고 또 닦아 

깨달음을 얻으면 

창작 

나만의 진리에 도달한다 

깨달은 자 

부처, 

제 안의 깨달음을 

한 걸음 더 

진리란 무엇인가로 

나아가게 한다 

해석 

진리에의 길이 

하나가 아님을 

각자에게  

자기만의 길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다시 그 모든 

말들을 버리게 한다 

 

진리 속의 말 

말 속의 진리. 

 

시를 가르치기는 참 힘들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시를 배우기는 참 힘들다. 초중고 하다못해 대학교까지 시를 가르치고 배우지만 시란 무엇인가, 어떻게 써야 하는가 하면 막막하다. 시중에 엄청나게 많은 시해설서, 시교육서가 나오는 까닭도 시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시를 가르치는데, 시의 구성요소에서 시작한다. 하나하나 공부하는 가운데, 이를 종합해서 창작까지 나아가게 한다. 시를 배우는 목표는 시 읽기에서 끝나지 않고, 시를 내 것으로 만들어 내 삶을 풍부하게 하는 요소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 창작 다음에 다양한 시해석을 설명하고 있다. 결국 삶과 관련이 없는 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한다.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뜻이다. 앎이란 단지 지식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하여 앎의 적용으로 끝맺음한 이 책의 구성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전문적인 책이다. 아마도 시를 가르치고자 하는 교사들과 시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읽어야 하리라. 

옥의 티가 있다면 시교육을 가르치는 책에서 시의 연구분이 모호하게 된 부분이 제법 있다는 거다. 페이지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엔 시에 관한 책에선 좀 큰 티다. 

이 점을 빼면 구성이나 설명, 그리고 예제들까지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장점이 그러한 티를 덮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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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공부
홍윤숙 지음 / 분도출판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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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시집을 산 이유는 우습게도 단 하나의 시 때문이었다. 

실소(失笑)라는 시. 

한평생 걸려서 / 수수께끼 하나 풀었습니다 

"먹을수록 배고프고 허기진 것 / 나이 먹는 것" 

2연 4행으로 이루어진 이 짧막한 시가 마음에 와 닿았다. 

이 시가 어느 시집에 있나? 찾아보니 마지막 공부라는 시집에 있다. 

마지막 공부라? 제목에서 이미 시인은 나이가 꽤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공부라는 말을 쓰니, 이 사람은 나이 먹어서도 치열하게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이 시집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도 있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잘 드러나고,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나 하는 관조적인 자세도 나타난다. 이 시집의 대부부분 시에 붙은 부제(작은 제목)가 놀이, 목숨 혹은 원죄이다. 결국 삶이란 태어난 원죄로 목숨을 이어가지만, 그 삶들은 놀이라고 생각하고 지내면 더욱 풍성해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천상병 시인이 그의 시 귀천에서 우리의 삶이 소풍이라고 비유했는데 그와 유사하다고나 할까. 

시집에서 시인이 가장 애착을 지니고 있는 시나 구절이 제목이 된다면 이 시집에 수록된 마지막 공부는 이 시의 핵심이 되리라. 마지막 두 연 

마침내 알리라 / 나를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을 / 그리고 눈뜨고 귀 열리리라 / 삶은 끝없이 꾸는 꿈이고  죽음은 비로소 깨어나는 현실임을 

그날을 위해 날마다 / 은사시나무 가지 끝에 부는 바람 / 가슴으로 새기며 / 남모르는 마지막 공부에 / 밤이 깊다 

그래. 이 시는 무겁다. 인생의 마지막 공부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 시의 무거움은 아직은 젊은이들에게 다가오기 힘들다. 나이들어가면서 세상의 허무를 느낄 때에서야 이 시가 가슴에 와닿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시를 읽으면 가슴 한 켠에서 삶의 소중함이 솟아나올 수 있다. 죽음은 곧 삶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니까. 

그래서 나는 실소란 시가 좋다. 우리는 나이먹으면 더욱 많은 것을 얻는다고 하는데, 나이 먹을수록 잃어가는 것이 많다는 시. 그것을 웃음으로 넘기는 시. 

시란 언어를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덜어내어 더 덜어낼 것이 없을 때 그 때서야 울림이 있는 언어로 다가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인의 시들은 길지 않아 좋다. 그렇다고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읽을 필요는 없다. 생각날 때 어느 한 쪽을 펴서 읽어보면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다. 그게 시집의 효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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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을 범하다 -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
이정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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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전을 범하다다. 

전이란 고전이란 뜻으로 해석을 하고, 고전에서도 옛이야기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런데 범하다란 말이 처음에는 맘에 걸렸다. 

왜 이렇게 부정적인 말을 썼을까? 

범하다란 말은 낮은 쪽(도덕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신분이든)이 높은 쪽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나타내거나,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 쓰는 말인데 말이다. 

그래서 지은이가 범하다란 자극적인 표현을 쓰는 이유를 고전에 대해서 갖고 있던 우리의 기존 상식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단 의미에서 쓰지 않았나 추측을 한다. 

전을 범하다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고전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생각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리고 지은이 자신의 생각을 근거들을 제시하며 펼쳐나가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때로는 그렇지, 그럴 수 있지 하기도 하고, 아니지 이건 나랑 생각이 다른데 하기도 한다. 이렇듯 지은이는 한가지 생각만을 하지 않고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역할을 이 책을 하기 바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전을 범하다라는 제목은 참 잘 붙인 제목이다. 

그리고 한 번 범해진 고전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서 우리와 함께 있는, 즉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고, 늘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친숙한 존재가 된다. 내게 친숙한 존재가 되면 내 삶에 고전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떤 일을 겪을 때 고전은 내게 길을 제시해 주고, 참고할 수 있는 예가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의 장점은 장화홍련전, 심청전, 장끼전, 토끼전, 춘향전, 홍길동전, 양반전, 전우치전 등과 같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품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논의를 하지 않고, 일반적인 이런 고전을 이미 읽거나 알고 있다면 한 번쯤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생각거리를 제공한다는데 있다. 

단순히 권선징악이라고 고전소설의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지 않고, 그 시대, 그 사회 속에서 작품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것이 우리 사회에 지금 어떻게 통용될 수 있는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 흔하지 않은 고전에 대한 책이다. 

아마도 고등학생들이 읽고 자기 나름대로 주제를 잡아 토론을 한다면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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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교육
정재걸 지음 / 살림터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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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책이 가끔 나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앞으로 살아야 할 시대의 가능성을 찾는데, 그것을 우리가 이미 지내왔던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얘기리라. 

옛말에 온고지신이란 말도 있듯이 새로움이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고, 옛것을 확실히 익혀서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삼을 때 나타난다고 봐야 한다. 

그럴 때 우리교육의 미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지은이는 이를 우리의 전통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전통교육의 이름을 만두모형이라고 제시하고 만두모형 교육은 학습자의 마음 속에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진리가 들어 있으니, 학습자가 자신의 마음을 탐구하여 진리를 깨닫는 교육이라고 한다. 

학습자가 백지에서 시작한다는 주물모형 교육도, 학습자는 이미 자신의 미래상을 지니고 있다는 도토리모형 교육도 미래교육에는 부적합하다고 하고, 학습자가 자신을 깨달아가는 만두모형이 미래교육에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교육을 위해서는 종교교육(이를 영성교육이라고 한다. 어느 한 종교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교육을 말한다)을 하자고 한다.  

외부로만 향해 있는 교육의 관점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하자는 것에 동의하고 이 책의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의 1부에서는 작가의 교육관이 잘 정립되어 주장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부에서 우리의 전통교육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즉 구체적인 전통교육의 실천과정이 제시되어 있어, 오늘날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할 수 있는 생각거리를 제시해주고 있다. 

3부에서는 근대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간추린 우리나라 교육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입시교육 뿐만이 아니라, 시선을 자꾸 외부로만 두게 되는 환경에 처해 있다. 이럴 때 내 안에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 안의 나를 본다는 것은 내 안의 남도 본다는 얘기고 이는 우리 모두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는 얘기가 되니 결코 허투루 삶을 살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 책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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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세트 - 전10권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 / 창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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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 한 때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지를 읽혀서 그게 문제라고. 

왜 문제냐고 했더니 하는 말이, 삼국지에는 옳고 그름보다는 줄을 잘서야 한다는 교훈밖에는 얻지 못한다고 그래서 읽히면 안된다고 했다. 

삼국지를 잘 읽어보면 한 번 모신 주공은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이 잘하든 못하든 모셔야 하고, 그들은 주공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주공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것을 신의라고 여기고 있으니, 이렇게 한 번 선 줄은 바꾸기가 힘드니 줄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소설이 삼국지라고 했다. 이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삼국지, 이건 소설로 쓴 정치사다. 

정치에서는 굳이 마키아벨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도덕보다는 권력을 장악하려는 술수가 중요하다. 도덕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많이 도덕적이라는 유비도 결국은 도덕을 권력 장악을 위해서 뒤로 미루거나, 또는 권력장악을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행하고 말지 않던가.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삼국지에 열광하는가. 

온갖 인간 군상들이 어떻게 권력을 향해서 나아가는지가 장대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장대한 싸움이 흥미를 끌고,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한 번에 죽 다 읽고나서 무엇을 얻을까? 

유비 쪽에 관심을 두고, 어떻게 그가 천하통일에 실패했는가를 반추하면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수도 있고, 조조 쪽에 관심을 두고 읽으며, 그가 한 때 권력을 쟁취했지만, 그 후손들이 어떻게 똑같은 방식으로 당하게 되는가 관심을 두고 읽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제갈량에 중점을 두고, 천하를 손바닥 알듯이 알고 있는 그가 어째서 천하통일을 이루지 못했는지, 제 아무리 똑똑해도 제대로 된 주인(어른)을 모시지 못하면 그 뜻을 펼 수 없음을 생각하며 읽을 수도 있다. 

이게 삼국지의 장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백성들의 입장에서 삼국지를 읽으면... 

예전에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무슨무슨 계다 하여 보스정치가 이루어진 적이 있었고, 지금도 무슨무슨 계다 하여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한 사람 밑에서 그 사람을 위하여 정치를 하는듯한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야 정권이 목표이니, 유비, 조조, 손권을 중심으로 이 책을 읽는다 하여도 할 말이 없지만,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누구에게 중심을 두고 읽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삼국지에서 이 영웅들의 잔치에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은 힘없는 사람들, 즉 일반 백성들, 그리고 그 가족들 아니던가. 

국민들은 누가 정권을 장악하냐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이 달라짐을 이 책을 통해서 읽어내야 한다. 영웅이라고 하는, 정치가라고 하는 그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권을 장악하려함을 읽어낸다면...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국민들의 권리행사,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됨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치자들에게 백성은 물과 같아서 배를 엎을 수도 있다고 한 성현을 말을 명심하게 해야 한다.   

삼국지, 여전히 재미있다. 생각할 거리도 많다. 이번에는 백성들의 입장에서 어떤 영웅(정치가)이 진정 백성을 위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읽어보았다. 차라리 전쟁을 가장 적게 한 손권이 낫지 않을까. 

여러 차례 명분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제갈량은 정치가 입장에서는 위대할지 몰라도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을 힘들에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읽었다. 좋은 정치는 백성들이 마음 편히 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 결국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백성들의 삶에 스며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삼국지 읽을 때 삼국지에서 '-들'로 뭉뚱그려 나타나는 사람들 처지에서 읽어보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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