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이토록 젊은 작가가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잘 보여줄 수 있다니. 

마치 6.25세대가 옛이야기를 손자세대에게 들려주듯, 최규석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모습을 만화로 고스란히 재현해 내고 있다. 

지금은 잊고 있지만 우리를 만들어준 과거에 대해 작가가 이렇게 기억해내도록 하는 것은, 지금이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가족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사를 오롯이 살려내고 있는 작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결코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지만, 읽고 나서는 가볍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우리네 삶이 잘 드러나 있기에.

 온가족이 함께 읽으면 세대차이란 말도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한다.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최규석의 이 만화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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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사 새옹지마 범우문고 101
리영희 지음 / 범우사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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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 그의 죽음은 우리나라 지식인의 죽음이었다. 

진실을 파악하고 전달하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을 지식인이라 이름 짓는데, 요즘은 자신의 지식을 사실을 왜곡하거나, 아니면 왜곡은 하지 않더라도 진실을 감추려는데 쓰는 사람이 많아서 진정한 지식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국의 하워드 진, 촘스키, 우리나라의 장일순, 리영희 등을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 분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뜨면서 진실을 이야기해줄 사람이 점점 줄어들지 않나 하는 조바심을 가지게도 된다. 

이 분들이 다 떠났다고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을테니 우리도 역시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 일면만을 보지 않고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도록 노력한다면 이 분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시고 리영희 선생의 저작집과 평전, 그리고 수필집 등이 발간되었는데, 그렇게 최근에 발간된 책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문고판으로 아주 작은 책이고 1991년에 발간된 책이다. 손에 지니고 다니면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기에 딱 좋은, 크기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다. 리영희 선생의 사회를 바라보는 글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낸 책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리영희 선생의 수필집이 새로 나왔는데,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대부분 실렸으리라고 추측한다. 집에서 소장하고 읽으려면 큰 책도 좋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리영희 선생의 글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이 더 도움이 되리라. 

수필이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글이니, 인간 리영희의 모습 즉, 본인이 감옥생활을 한 얘기, 자신의 아내 이야기, 교복 문제로 자식들과 한 이야기, 전쟁 때 겪은 이야기, 검사와 논쟁한 이야기 등등 리영희 선생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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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완성을 위한 죽음교육 - 교육과 미래 3 아로리총서 18
정재걸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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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랬다. 사람이란 삶과 앎이 결합된 즉 삶을 아는 존재라고. 

그래서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물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사람이 아니고, 삶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 사람이 된다고. 그것을 우리는 다시 태어남, 또는 거듭남이라고도 하고, 해탈, 깨달음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삶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대상이 죽음이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원초적으로 존재하는, 즉 즉자로서의 하나가 아니라, 깨달은 하나, 즉 대자로서의 하나일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 진다. 

죽음은 무섭고 두려워서 피하려고 하는 존재로 우리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데, 이 죽음은 무섭고 두려워하고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그 순간에 우리는 죽음과 하나가 되고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하지만 현대는 어떤가? 죽음을 한사코 피하고 감추려고만 하지 않나. 온갖 의료기술을 갖추고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하려 한다. 과연 생명이 연장되기만 하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이반 일리히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고 했는데, 병원이 발달함으로써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많이 훼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그는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엄청난 성찰과 노력이 필요했으리라. 

이 책은 요즘 우리 교육을 비판하면서 우리 교육에서 죽음에 대한 교육, 또는 죽음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죽음 교육을 통해 삶을 더욱 잘 알 수 있다는 부수적인 효과 외에도, 죽음 교육을 통해 죽음과 삶이 하나임을 깨닫고, 이 깨달음을 토대로 매일매일을 사람(삶앎)답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 과거의 교육방법을 설명하고, 현재에 이루어지고 있는 죽음 교육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있다. 아주 작은 소책자이지만, 이 책에 담긴 내용은 결코 작지 않다. 글쓴이의 말대로 이 책에도 온우주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위에 누가 있는지도, 자신이 왜 달려가는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상태. 이 상태에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찾을 수는 없고,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기에 삶이 무의미하다고 순간순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시간이 느릿느릿 가고, 어른이 되면 시간이 빨리빨리 간다고, 10대에는 시속 10킬로, 20대는 시속 20킬로, 40대는 시속 40킬로, 70대는 시속 70킬로 등등으로나이에 비례해서 시간이 속도를 낸다고 장난삼아 말하곤 하는데, 이는 어쩌면 죽음을 두렵고 피하고 싶은 존재로만 생각하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의 의식에 따라서 다르게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죽음이란 삶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시간의 속도에 대한 이런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책, 그러나 꼭 읽고 생각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교육에 관련된 책이라고 해서, 교사, 교수, 아니면 학생, 그것도 대학생 이상만 읽어야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  

죽음이 누구에겐 오고, 누구에겐 오지 않는 것이 아니잖은가. 그렇다면 어짜피 우리 모두에게 올 죽음을 우리 모두가 죽음에 대해서 아주 어려서부터 배우고 생각하고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죽음이 너무 어렵다면 영성(종교성)을 일깨우는 노력이라도 하자. 그리고 그런 노력을 하겠다는 생각이라도 하자. 그렇게 하려면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무섭다고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되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도 영성(종교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적어도 이런 책을 읽어본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난다면 물질만능에 빠진, 속도감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하나 줄어 가고, 사회는 좀더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겠지 그런 꿈을 꾸어본다.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인데, 다석 류영모는 한 해 한 해를 살지 않고, 한 날 한 날을 살았다고 한다. 내 나이가 몇 살이다가 아니라, 몇일을 살았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태어남과 죽음의 연속이었다는 얘기다. 그런 다석이 어찌 세상을 허투루 살 수 있었겠는가. 이런 다석의 삶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어도 좋다. 

문정희 시인의 시집 "남자를 위하여"에 실려 있는 '처음처럼'이란 시이다. 난 이 시에서 이 책의 내용을 느꼈다. 죽음은 언제나 친구처럼 내 곁에 있다는 내가 아는 척을 하지 않아도 늘 내 곁에 있다는, 그래서 아쉬움을 남기기 전에 내 삶을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그런 의미로 이 시를 읽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 누가 몰랐으랴  /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끼리도 / 끝까지 함께 살 순 없다는 것을. 

진실로 슬픈 것은 그게 아니었지. / 언젠가 이 손이 낙엽이 되고 / 산이 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언젠가가 / 너무 빨리 온다는 사실이지. 

미처 숨 돌릴 틈도 없이 / 온몸으로 사랑할 겨를도 없이 

어느 하루 / 잠시 잊었던 친구처럼 / 홀연 다가와 / 투욱! 어깨를 친다는 사실이지. 

(문정희, 남자를 위하여, 민음사  중 친구처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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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아리랑 -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김성동 지음 / 녹색평론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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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논쟁이라고 하기보다는 일방적인 비난이었고, 결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이 고쳐지게 되었다. 

진보에 관한 내용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 교과서에서 다뤄진 내용은 기존 학계에서 이미 논의된 내용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이미 통설로 굳어진 내용조차 교과서에서 다루지 못 하게 한다면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과, 완전한 좌익이라고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김성동의 글, 소설 만다라에서 충격을 받고, 좋아하게 되었는데, 요즘은 소설가로보다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거나 잊혀진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통설로 상식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실들을 다시 밝혀내는 사람으로서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녹색평론에 연재하는 글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현대사 아리랑이라는 이 책, 작은제목이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가? 현대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했던 인물을 제법 알고 있다는 나에게도 생소한 이름이 많았으니, 현대사를 고등학교까지만 배운 사람에게는 모르는 인물이 태반이리라. 그만큼 많은 인물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고 해야 한다. 

김성동은 이들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그들이 누구인지 한 번 살펴보자. 

박헌영, 김단야, 이재유, 이관술, 김삼룡, 이주하, 정태식, 이현상, 박세영, 이승엽, 김재봉, 강달영, 권오설, 이준태, 홍증식, 유영준, 정칠성, 김명시, 김복진, 허하백, 박진홍, 김태준, 여운형, 김원봉, 김두봉, 무  정,  이동휘, 최창익, 백남운, 김성숙, 최익한, 조봉암, 고준석, 홍명희, 조명희, 이기영,한설야, 이태준, 조   운, 박승극, 이동규, 김순남, 임   화, 이용악, 유진오, 이강국, 최용달, 박문규, 박영발, 하준수, 김제술, 정순덕 

한 꼭지씩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격동의 현대사에서 이 정도 인물보다 더 많아야 하겠지만, 작가는 더 쓰려고 하다가 먼저 이들만을 썼다고 한다. 아마도 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도 하고,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도 한다. 이 말들에 의하면 역사란 과거에 존재했던 사실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입장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판단하는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역사적 기록이 앞으로도 역사적 기록의 정설이란 생각을  하면 안 되고,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실들을 재해석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의미있는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겨 역사의 기록이 변화하게 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보수의 입장에서 기록되어진 역사를 진보의 입장도 반영하는 역사로 변하게 하려면,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사실들에 대한 기록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게 되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버리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역사도 좌나 우, 어느 한 쪽의 역사일 수 없다. 지금껏 오른쪽으로 너무 굽었다면 이제는 왼쪽으로 굽혀서 중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지 않을까 한다.    

덧붙이는 말 : 우리말(토박이말)을 너무도 잘 사용해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기록을 한 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우리말(토박이말)에 대해 우리 자신이 너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너무도 천대했다는 사실을 역사에서 잊혀진 인물들만큼이나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그래도 책의 뒷부분에 꽤 많은 토박이말들에 대한 풀이가 있어서 읽어나가기는 다른 책들보다 조금 힘들지 모르지만 읽고 나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으니(잊혀진 인물들에 대한 정보, 다양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한 번쯤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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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용산 평화 발자국 2
김성희 외 지음 / 보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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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 재미있다기 보다는 슬프다. 슬프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현실이다. 얼마전에 용산 2주기가 지났다. 그동안 무심히 세월만 보내고 있지는 않았던가. 

70년대 쓰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일명 난쏘공)이 이미 몃 십년 전의 일이지만, 그것이 과거로 끝나지 않고, 현재까지도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지금도 홍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두리반에서는 제2의 용산이 되풀이 되고 있고, 이것이 두리반뿐만이 아니라, 팔당댐 유기농 단지 농민들이 4대강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나는 등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마천루들이 일반 서민들의 삶을 오히려 더 힘들게 하고 있으며, 힘들게 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눈물 위에서 세워지고 있으니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역사는 되풀이 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꼭 용산을 남의 일이라고만 할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슬프다. 

만화라는 매체는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다. 그림을 통해서 시각을 자극하기도 하고, 생략된 언어를 통해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단절된 그림들을 통해 단절된 모습을 연속성으로 살려내는 연습을 하게도 한다. 이와 더불어 만화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도시빈민이나 재개발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6명의 작가가 나름대로 그린 작품을 죽 읽어나가면 도시빈민의 삶에 대해서, 철거민들이 왜 그렇게 저항할 수밖에 없는지를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느낄 수가 있게 된다. 

잊을 수 없는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 그것은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그 작업을 만화로 해낸 만화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읽은 지는 오래되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여기 사람이 있다"와 "밥과 장미"를 읽으면서 이 책이 다시 생각이 났다. 그냥 머리 속에 간직하기 보다는 한 번 글로 정리를 해봐야 더 오래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이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일이 아닌 내 일이라는 생각. 그리고 남들의 눈물 위에 과연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우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  

그래 적어도 우리는 남의 눈물은 내 눈물이고 남의 웃음은 내 웃음이라는, 우리나라 속담에 있는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둘이 된다는 그 말대로 내 주변을 살펴보는 연대성에 대해 고민하는 삶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발견이 우리의 삶의 소중한 자산이고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이 책에 참여한 만화가들의 생각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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