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야 실실 웃으면서 상대방을 놀리는 거지. 

그런데 그 웃음이 비꼼도 아니고, 자조적이지도 않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강한 사람들을 웃음거리도 만드는 것이니. 

약자가 강자를 코너로 몰아넣고 강자의 위선을 만천하에 드러낼 때 나타나는 웃음. 그 웃음으로 세상을 위악을 드러내고자 하는 행위. 이름하여 명의 보정. 제 이름, 제 정체성 찾아주기. 

다른 말로 하면 네 칼로 너를 치리라. 

하여튼 상쾌하다. 

이러한 정체성 찾아주기, 또는 올바른 이름 찾아주기는 세계 어느 나라나 가능하지만, 가끔은 법적인 조치를 당한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마치 G20포스터에 쥐를 그려넣었다가 기소당할 뻔한 누구처럼. 

비정규직 보호법, 4대강 살리기, 한국자유총연맹,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 등 정체성이 헷갈리는 단체가 꽤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스맨 프로젝트, 아직 실행이 안 되었지 우리나라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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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인터뷰 특강 시리즈 7
공지영 외 지음, 김용민 사회 / 한겨레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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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쁨에게 

얼마 전에 신문을 보았는데, 우리나라 성인들 한 해 평균 독서량에 대한 기사였지. 난 10권이 조금 넘는다고 보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0.8권이라는 기사도 있고, 16.6권이라는 기사도 있더구나. 어떤 기준으로 삼았느냐에 따라 통계가 달라지겠지만, 많은 쪽으로 잡아도 한 해에 우리나라 성인들이 읽는 책은 17권을 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되지. 여기에  한 해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성인이 10명 중 3.5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는데... 

한 해 17권이면 한 달에 1.5권도 채 안 된다는 얘기거든. 이것을 하루로 환산해 보면 책 한 권을 대략 300쪽이라고 하고, 한 달을 30일로 잡으면 하루에 15쪽을 읽은 셈이 되지. 하루에 15쪽이라, 보통 한 쪽을 읽는데 1분 정도가 걸린다고 생각하면 하루에 15분 정도 책을 읽은 셈이 돼. 참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데 책을 읽지 않는 상황을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령 직장생활을 하는 남자, 여자 어른들 경우를 보면 직장 생활을 하는데 시간을 대부분 보내고, 직장에서 퇴근해서는 제2의 직장생활이라는 각종 회식이 기다리고 있고, 회식을 벗어난다면 온갖 승진시험에 책을 읽을 겨를이 없을 거야. 출근 시간에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읽으면 된다고? 어림없는 소리지. 그건 삶에 여유가 있었을 때나 가능한 소리지. 하루 종일, 사실 법에는 8시간 노동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어른들 중에 8시간 노동하는 사람들 그리 많지 않지. 특히 생산직 노동자들이나 자영업자들 시간 내기 힘들어. 힘들게 노동하고 와서 얼마 쉬지 못 하고 다음날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운이 좋아 앉게 된다면 짧은 시간 잠을 청하게 되지. 아니 잠을 청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이 감기게 돼. 서 있을 땐, 세상에 우리나라 대중교통이 어떤지 출근시간에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거야. 책을 읽을 공간이 나지 않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치여서 간신히 자기 몸 하나 지탱하기도 힘든데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릴 수가 없어.   

그럼 집에서 일을 하는 전업주부는? 역시 마찬가지지. 아침부터 남편, 아이들 챙기고, 집안 청소하고 또다시 식사 준비하고 하다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가게 되지. 잠시 남는 시간, 곤한 몸을 쉬게 하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참 배부른 자들이나 할 수 있는 행위가 되지.  

이렇듯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이 그리 높지 않은 이유는 개인이 게을러서도, 책 읽기를 싫어해서도가 아니라, 책을 읽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높은 곳으로만 남들을 밟으면서 기어오르는 애벌레들처럼 살도록 강요하는 일등주의라는 괴물 때문에 생긴 일이지. 이 일등주의가 승자독식주의로 가면서 1등이 아닌 사람은 살아남지 못 한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하고 있지. 그래서 결코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닌, 너도 나도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이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이러한 고민에 대해 미리 고민했거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말을 따온 제목처럼 일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냈지. 강연 내용과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들이 생생하게 잘 드러나 있어서 읽기에도 편하고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 

여섯 명이 강의하고 질의, 응답을 했다는데, 한 명이 빠지고, 다섯 명의 이야기만이 실려있지. 하긴 뭐 꼭 여섯 명이 모두 책에 실려야 하는 건 아니니까 책 읽는데는 아무 상관이 없어. 

노회찬 진보신당 전대표부터 시작하여, 비클라움이라는 예스맨프로젝트를 실시했던 사람, 소설가 공지영, 일본사람 마쓰모토 하지메, 그리고 김규항까지 모두들 자기 분야에서 자신만이 했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어. 

노회찬 부분은 대동소이(大同小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말을 머리 속에서 떠올리면서 읽었어. 진보가 나름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진보는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을 거부하고, 한 사람의 천재보다는 10만 명의 행복이 더 소중하다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중요하지. 우리나라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여러 동아리로 나누어져 있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지만, 최근에는 진보대통합이란 말이 나오고 있으니, 진보는 힘없는 사람들, 하위계층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목표의 공통점 밑에 어떻게 그 사회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니 이것은 대동소이이고, 그러니 합치되 자신들의 색채를 잃지 않아야 하니 화이부동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진보들은 이 두 단어를 명심하고 자신들의 정책들을 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면 우리는 일등만능주의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 노회찬과 관련해서는 조국,오연호의 "진보집권 플랜"이나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신필균의 "복지국가 스웨덴" 그리고 하워드 진 같은 미국의 진보적인 학자 글이나, 톨스토이, 간디, 크로포트킨 같은 사람들의 책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예스맨 프로젝트의 비클바움의 글을 읽으면서는 외국의 상황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명의보정(Identity Correction)이라는 행동이 우리 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마냥 부러워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들이 한 행동을 우리 사회에도 응용을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 말야. 이게 그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발견해낸 행동이 아닌 것이, 일본에서는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풍자니 해학이니 하는 행동들이 있었으니, 현재 상황에 맞게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다만 누가 언제 어떻게 행동에 돌입하느냐가 중요하겠지.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거든. 자유총연맹이라는 단체의 행동을 그 말 그대로 보여주는 거야.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유총연맹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들 단체의 명칭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야. 나는 실행도 못 해보고, 머리 속에서만 생각해 보고 낄낄거렸지만 혹 알아, 누군가가 나타날지. 

공지영의 글을 읽으면서는 소설의 운명에 작가의 운명을 걸고 있는 그녀에게서 존경스러움을 느꼈고, 그녀의 말처럼 소설이 대중에게 영합하는 장르라면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즉 가치가 개입돼 있는 대중에의 영합이라면 참 훌륭한 작가이지 않을까 싶었고, 그녀가 쓴 소설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단지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공지영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중들의 삶을 드러내고 그들의 삶에서 우리의 삶이 나아갈 방향을 찾아내게 하는 작가 공지영을 말이야. 그녀가 한 말 중에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신의 생각, 말, 내면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말 너무도 당연한 말같지만 다시 한 번 마음에 들었지. 그래 우리가 1등만을 바라보고 살 때 나타나는 내 얼굴과, 1등이 아닌 뒤에 있는, 밑에 있는 존재들에 애정을 갖고 함께 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내 얼굴은 천양지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할까. 앞으로도 그녀가 많이 팔리는 소설(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도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테니까)을 계속 썼으면 좋겠어. 

말이 점점 길어지네. 짧게 쓰려고 했는데 말야. 이번에 마쓰모토 하지메. 이 사람이 하는 일을 우리 말로 어떻게 옮겨야 하나? 빈민운동, 가난뱅이들의 몸짓... 참 뭐라 하기 힘드네. 하지만 그가 앞서가는 사람들이 아닌 뒤쳐져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겠지. 뭐라 이름붙이든 말야. 그는 운동을 진지하게 목숨걸고 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한다고 해. 운동하는 방식이 변한 거지.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하면서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하고, 이건 내 즐거운 삶이다는 생각만을 하게 되지. 우리나라 80년대까지 운동권은 희생이라는 개념을 머리속에 달고 살았거든. 그래서 변절(?)한 사람이 많았는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은 그런 희생이란 개념이 없어. 그게 좋아. 그냥 자기 삶인 거야. 즐거운, 내가 좋아서 하는. 우리나라도 이런 가난뱅이들의 역습이 있기도 하지. 예술가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서 예술 공간을 마련한다든지, 한 집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사는 주거운동을 한다든지 말야. 이런 운동은 남에 대한 공감과 자신의 삶에 대한 여유에서 온다고 생각해. 결국 1등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죽어라 달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공감과 여유가 나올 수가 없지. 이런 공감과 여유는 행복을 옆으로 옆으로 전파하는 특징이 있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자세지. 

이제 마지막 김규항이네. 이 사람, 사람들은 보통 B급 좌파라고 불러. 본인 말에도 나와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지식인(이 말이 뭐하다면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 중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라고도 하지. 그가 어느 정도 왼쪽에 있는지가 중요하지는 않아.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냐를 보면 되고, 그의 말이나 행동이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하면 되지. 난 개인적으로 이 사람, 참 좋아하는데, 이 사람 글을 읽을 때마다 불편해져. 나는 아직도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못 하고 있거든. 그래서 많이 불편해. 이 사람 글을 읽으면 자신의 추악함을 비춰주는 거울을 앞에 놓은 기분이야. 들여다 보았을 때 자신이 외면하고 싶은 얼굴이 정면으로 드러나는 그런 거울. 그래도 가끔은 이 사람 책을 읽어. 불편하지만 반성할 수 있으니까. 조금은 나 자신이 변해갈 수 있으니까. 김규항은 이 책에서는 교육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 하지. 결국은 우리 자신이 우리 안에 괴물을 지니고 있다는 거고,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잡지를 운영해. 희망을 어린이에게서 발견하고, 우리 어린이들이 잘 자라서 이 사회를 이끌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다고 생각해. 이렇게 어린이와 함께 세상을 바꾸어가려는 모습을 여러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냥 독일 교육에 대해 쓴 박성숙의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읽든지, "벤포스타 어린이 공화국"을 읽든지, "키노쿠니 어린이 마을"을 읽든지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결국 이들이 말하는 내용은 1등이라는 한 방향만 보고 달려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정리될 수 있겠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 내 행복을 위해서 남의 행복을 짓밟아서는 안 되는 사회겠지. 이런 사회에서도 과연 성인들이 책을 잘 안 읽을까. 아마 그러지 않을걸. 오히려 많은 책들을 읽고 많이들 토론하고 그러겠지. 그래서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쟁의 트랙에서 벗어나 나의 걸음을 걷되,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 이 책은 이러한 사실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소중한 책이지. 

한 번 읽어 봐.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실천하면서. 

추신 : 일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박의상이란 사람이 쓴 일등육이란 시를 봐. 우린 그런 일등육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 그치!

일등육을 남긴 소를  / 나는 안다 / 그는 틀림없이 / 1등 부모에게서 태어났을 것이다 / 
그리고 좋은 / 1등 목장에서 / 1등 축우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 1등 사료를 먹고 /
빈둥거리며 잘 살았을 것이다 /
그러다가 / 남들보다 빨리 / 120킬로가 되자 / 재깍 / 도축장에 끌려와 / 살이 찢기고 뼈가 쪼개졌다 / 그때 / 1등소는 이런 소리를 들으며 /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 1등육이다! 

              - 박의상 '일등육'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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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
하워드 진.도날도 마세도 지음, 김종승 옮김 / 궁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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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라고 해서 교육에 관한 글들만 실리지는 않았다. 교육 분야로 분류를 할까 사회 분야로 분류를 할까 망설이게 하는 책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보면 교육은 사회의 한 분야이고, 하워드 진이 역사학자라는 생각을 하면 이 책은 단지 미국의 교육문제를 다룬 책이라기 보다는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단지 미국만의 문제일까.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지식의 충족을 위해서는 아닐텐데, 우리가 미국의 교육이 이런 비판을 받기도 하고, 미국 사회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읽지는 않을 테니까. 

대담 글도 있고, 어떤 매체에 기고한 글도 있고, 다른 책에 실렸던 글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실은 글도 있지만, 이 글들을 읽으며 계속 우리나라와 비교를 하게 됐다. 비교만이 아니라 그렇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는 학교에서는 정작 중요한 문제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쳐 뛰어난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생이 자본이 바라는 학생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거기서 희망을 찾는다. 즉 학교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고 강요하는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지배층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을 길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마치 그람시가 말한 지식인들 중에서도 보수적인 전통적인 지식인도 있고, 진보적인 유기적인 지식인도 존재한다는 설명과 유사하다. 그렇담 학교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역사를 가르치되, 지배층의 역사가 아닌 민중들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말이다. 그 예로 콜럼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영웅이지만,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자에 불과하는 사실을, 즉 역사란 사실들의 집함이 아니라, 해석의 결과라고,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을 수립해야 한다고, 그런 태도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미국 언론들의 문제점, 연방수사국의 문제점 등을 말하면서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매체들이나 기관들이 얼마나 진실을 감추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지. 신문들을 보라. 일방적으로 어떤 한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는 신문이 얼마나 많은가. 오죽했으면 불매운동까지 벌이겠는가.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로지 그 집단의 이념만을 주장하고 있어, 사실마저도 왜곡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처럼 객관성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철저히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그들이 지배층이 아닌 민중들의 이익을 보살피게 하려면 그들의 정체를 꾸준히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그가 말하듯이 우리나라도 최근에 정치인 사찰부터 민간인 사찰까지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 있지 않았던가. 그 기관들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도 우리가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갖춰야만 할 이유가 또 한가기 생기는 것이다. 

또 텔레비전을 보라. 세상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매체에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오로지 나오는 내용은 잘사는 사람들의 애정행각이나, 소비행태, 그냥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시간때우기식의 내용만 나오지 않는가. 기껏 가난한 사람들 얘기가 나오면 이는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그 구조적 문제를 집단의 힘으로, 단결해서 해결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베풀어주는 시혜의 개념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던가. 주변의 모든 것이 스스로 단결해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지 않고 있는데, 학교 마저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오직 대학이라는 공간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 때 어떻게 해야 학교 교육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형성하게 할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에서는 정확한 용어의 정리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스맨 프로젝트에서 나온 명의보정이(Identity Correction)이란 말을 실천해야 한다. 보수가 무엇인지, 수구가 무엇인지, 진보가 무엇인지, 우파와 좌파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언어가 별 것 아닌것 같지만, 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경쟁을 통해서 더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이를 경쟁이라는 말보다는 승자독식이라고 바꿔본다면 경쟁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대대수 사람들의 삶이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만는다. 얼마나 다른가? 또 사회적 사실을 예로 들면 광주민주화 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부르는 사람과 광주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행동도 다를 것이다. 내가 어떤 사실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사실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가 교육이 해야 할 일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참 명쾌하고, 통쾌하고, 상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이지만, 그의 글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며,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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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자유교육 -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송순재.고병헌.카를 K. 에기디우스 엮음 / 민들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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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 하면 두 가지 방향에서 논의가 된다.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 여기에 몇 가지 요소가 더 섞일 수가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나는 미국식보다는 유럽식, 특히 북유럽식을 좋아하는데,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의 나라 교육제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들 교육에 대해 소개한 글을 읽어보면 부러움과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도 이런 교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엔 우리나라에서도 대안학교가 많이 생겼고,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따라서 대안학교들도, 또 현재 논의되고,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혁신학교들도 이런 책을 참조해서 우리나라 또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자신만의 학교들을 만들어가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이책에 나온 관심있는 내용과 내 생각이다. 

자유학교의 공통원리 ... 폴켈리(folkelig)적 요소, 즉 평면적 요소 ... 자기 자신과 타자를 위해 기꺼이 책임지는 자세 ... 평등을 지향하는 책임 (61쪽)   

-> 모든 교육의 기본이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남을 밟고 내가 올라서면 된다는 승자독식주의 교육이 아니라, 함께 모두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교육. 그게 필요하다.  

부모의 권리 ... 법적으로 확정된 교육의 의무가 있지만, 학교교육을 의무사항으로 확정하지는 않았다. (63쪽)   

-> 우리나라 대안교육계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의무교육을 의무 취학으로 판단을 한다. 따라서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부모는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은 부모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징계를 면하긴 하지만, 이 과정이 힘들고 복잡하다. 의무교육은 의무 취학이 아니라는 사실, 교육법에 이 조항만 추가한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텐데, 아직도 학교만이 교육을 담당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으니 원.

학교는 교사가 특정한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갖도록 요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사가 학교 근무시간 안팎으로 이러한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살도록 요구할 수 있다(69쪽)  

자유증등학교의 해설서 .. 교육과정이나 이데올로기의 자유: 학교가 스스로 교육과정을 정치적 또는 종교적, 교육학적인 이념에 따라 정했다고 해도 국가는 간섭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정부는 어떤 교육과정이나 학교라도 인가한다. 곧 국가전복을 위해 학생들이 저항해야 한다는 교육목표에 따른 커리큘럼, 글자 그대로 성서를 강독하는 듯한 교육과정, 교실에서 배우지 않고 가게나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학교, 과목이 하나밖에 없어서 교사나 학생이 그때그때 적당하게 학습주제를 정하는 학교도 있을 수 있다. (169쪽) 

-> 우리나라를 보라. 교사가 정당에 가입했다는 확정되지도 않은 혐의로 징계를 받도록 강제당하고 있으며,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그것이 정치적인 중립성을 훼손했다고 징계를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사는 사랍학교든, 공립학교든 공무원인 교사로서만 지내야 하지, 시민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없다. 이러한 차이를 우리나라의 특수성이라고 생각하고 교사들이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에 발언할 수 없도록 하는 관습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성과 교사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당연히 정치적 권리를 가질 수 있게 제도적인 면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인(全人)을 길러 내는 것을 교육의 과제이자 목표로 삼는다 (79쪽) 

-> 우리나라도 교육 목표는 전인이다. 그러나 사실 학교에서는 전인보다는 단편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너무도 많이 분절된 과목들, 그리고 그 과목들을 통해 인간이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보다 앞서 갈 수 있나를 공부하기에 목표와 실천이 따로노는 교육을 지금의 공교육은 하고 있다. 대안교육에서는 공교육보다는 훨씬 낫지만, 대학이라는 장애에 걸려 비틀거리고 있는 대안학교도 있으니 목표와 실천이 어울리게 노력해야 한다. 

함께 협동으로 작업하기를 그리 내켜 하지 않는 학생들,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학교 안의 분위기는 신임 교사들을 힘들게 하기에 충분하다(95쪽)  

-> 신자유주의를 덴마크라고 해서 피해가지는 못한다. 이 나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교육에 손질을 하려고 하고, 자유학교들에 대해서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나 보다. 이 구절을 보면서 덴마크 교사들도 우리나라 교사들과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럼에도 이들은 자유학교라는 틈새를 이용해서 아이들을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아이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데...

민주주의의 질은 소수가 어떻게 취급되는지에 따라 평가할 수 있다(99쪽)  

사회시스템 가운데 10% 정도의 '틈새'를 열어 놓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야말로 교육개혁에서 중요한 포인트... '비주로' 또는 '비주류의 권리'를 표방하는 일이 많은 것(173쪽)  

 이런 교육이 가능한 진짜 배경은 대화를 중시하고 자유로우며 비경쟁적인 사회 분위기인지도 모른다 (151쪽) 

-> 가장 좋은 말이고, 소수가 존중되면 다수는 행복해 진다. 소수를 존중했을 때 왕따라는 말은 존재할 수가 없다. 소수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 가장 좋은 방법이 대화이다. 대화는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담 우리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대화이다. 열린 마음으로 하는 대화, 그것이 교육인데, 지금 우리나라는 닫혀 있다. 이 닫힘을 풀 수 있는 길,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라도 확보해내야 한다.

지역 행정당국은 기본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부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일반 사립학교나 자유학교에서 공부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부모들은 학비의 20% 정도를 부담해야 하고, 동시에 학교위원회의 구성원이 될 권리를 갖는다(103쪽) 

-> 이런 점은 우리나라 대안학교에 대한 지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안학교가 귀족학교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을테니까. 

우리는 7학년까지 숙제를 내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과제를 해내야 할 빚진 자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당연히 집에서 쉴 권리가 있습니다.(210쪽)  

-> 얼마나 부러운가. 이 아이들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아이들을 보라.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숙제에,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학원 숙제에 시달려 도대체 어른들도 주장하는 8시간 노동제를 훌쩍 넘어서 과중한 부담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부모 한 명 한 명의 의지에 맡겨두기엔 이미 너무 힘들어진 이 사회에서,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학원 교습시간 제한이 아니던가. 여기에 한 발 더 나간다면 의무교육에서는 과제를 내주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고, 학교 시험에서는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으로만, 결코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경시대회 문제라든지,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내지 않도록 강제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제도로 강제해야지만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편해지고, 또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고치려는 실천을 하지 않을까 한다. 

시민대학에 관한 그룬트비 교육의 의도... 첫째는 참된 자아를 찾는 일로 학교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가르쳐야 한다는 의도. 둘째는 학교는 공동의 선에 답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에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찾아가는 곳 (217쪽)  

-> 이거 참. 지금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과 비교를 해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은 교육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대학은 취업기관이지 교육기관이 아니지 않은가? 인간이란 무엇인지, 공동선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학과는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런 교육을 하려고도 하지 않아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나온 지가 꽤 되는데, 아직도 우리는 기업이 원하는 학생을 배출하려고 하지 전인적인 인간을 양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교수라는 직업이 파편화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되고,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지식인 집단이 안 된 지가 오래되어서인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만큼 책임을 지려는 자세들을 교수들도 가질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교사회의조차 아이들에게 닫혀 있지 않다. 끼어들기를 조장하지는 않지만 나가달라고 말하지도 않는다(251쪽)  

-> 꿈같은 얘기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교무실은 신성한 공간이어서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고, 한 번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을 열고 경례를 하고 용무를 말한 뒤 허락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학생들과 단절된 공간 그곳이 교무실이었다. 그리고 교사들의 회의시간에는 어디 감히 학생이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어쩌다 우연히 교사들이 회의를 하는데 학생이 교무실에 있으면 대뜸 "야, 너 나가"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즉 본다는 행위가 교육에 매우 필요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교사들의 회의 모습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여기에 학교 운영의 전반적인 일을 결정한다는 학교운영위원회에도 학생들의 참여는 봉쇄되어 있다. 어쩌다 참여해도 참관인 자격으로 참여할 뿐이다. 최근에 교사회의, 학생회의를 법제화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꼭 필요한 일이다. 학생들이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제도화하면 교장 선의 여부에 의해 학생들의 참여가 결정되는 일은 없어지겠지. 조금 더  학교가 민주화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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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천재 이제석 - 세계를 놀래킨 간판쟁이의 필살 아이디어
이제석 지음 / 학고재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그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 그러나 그 총구는 그 군인의 머리를 다시 겨누고 있었다. 제목도 뿌린대로 거두리라. 전쟁의 위험, 무기의 위험을 단 한 장의 광고로 그토록 잘 나타낼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 되어 그가 처음부터 광고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인 줄 알고만 있었다. 서점에서 이 책을 본 순간,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고 주저없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읽어가는데, 중간 중간 그의 광고가 화보로 나와 있어, 그 광고를 보는 재미도 있고, 그가 이렇게 광고천재로 불리게 되기까지 겪은 일들이 잘 나와 있어 그의 삶을 엿볼 수도 있다는 재미도 있는 책이었다. 

또한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만들어서, 단지 이제석 대단하다로 끝나지 않고, 그도 해냈는데,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의지를 다지게도 된다. 

처음 부분 읽으면서는 우리나라의 학벌 차별에 대해서 씁쓸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는데, 계명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해서 졸업 때 학점이 4.5점 만점에 4.47점을 받았는데 어느 회사에서도 오라는 데가 없고, 광고 공모에 응모해서도 당선된 적이 없었다는, 그래서 졸업한 뒤에 한 일이 동네 간판을 그려주는 일이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모든 것을 학벌로만 판단하는 우리 사회에 분노도 하고, 어떻게 하면 이러한 학벌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그가 뉴욕으로 가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만의 광고를 만들어내게 되기까지, 그리고 세계 광고 공모전에서 많은 상을 받기까지, 그 다음 자신의 광고를 돈이 되는 쪽보다는 공공의 이익 쪽으로 옮기기까지의 과정이 그의 글을 통해 잘 나와 있다.  

우리가 너무도 자주 접하는 광고, 어떨 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접하는, 어떨 때는 기발함에 감탄하기도 하는 광고. 그런 광고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 편의 광고를 위해서도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었다.

그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또한 그의 책을 읽으면서 창의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창의성, 창의성 하지만 그 창의성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진정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제석의 경우를 통해서 알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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