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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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을 읽는 일은 즐겁고도 재미 있다. 특히 그 작가의 작품을 졸아한다면 더더욱. 작가가 어떻게 그 작품을 썼는지 엿볼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글을 쓴다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지만.


김초엽이 쓴 이 책은 자신이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SF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 그리고 책과 글쓰기 작업에 얽힌 이야기들을 싣고 있다. 처음부터 책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지만, 도대체 무엇을 SF소설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굳이 장르를 나누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글을 쓰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으니, 이들이 굳이 장르를 나누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제목과 같이 이 책에는 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읽어야 했던 책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책들. 그런 책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읽으면서 야, 나도 이 책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그 많은 책을 다 따라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내게 필요한 책들을,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겠지 하는 생각도 한다.


서점, 작은 서점, 그렇다. 우연히 들른 책방에서 만난 책들이 큰 기쁨을 주는 때가 있다. 어떤 책을 사야지 하고 목표를 정하지 않고 서점 이곳저곳을 서성이다가 발견한 책. 아니 눈에 띤 책. 그런 책들이 더 기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가끔 헌책방을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책방에서는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쁨이란... 김초엽도 이 책에서 그런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았는데...


이런 수필집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소설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작가가 쓴 수필까지 찾아 읽지는 않는다. 그런데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책과 우연들이라니... 그럼 책도 우연인가? 하는 생각.


꼭 정하지 않아도 읽어야 할 책들, 내가 관심을 갖지 않다가도 우연한 기회에 읽을 기회가 생긴 책들. 나는 김초엽 작가와는 반대로 과학 종류의 책은 잘 읽지 않다가 최근에 좀 읽는 편인데...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그쪽 방면의 책을 읽었던 작가와는 반대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문학부터 읽다가 그러다가 SF소설을 읽고, 이거 과학을 모르면 잘 이해를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쉬운 과학책을 찾아 읽고, 그러면서 과학책들도 재미 있는 책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읽은 책 중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까인데, 읽은 책을 또 읽는 경우도 있고, 분명 읽은 책인데 읽었단 생각도 들지 않는 책이 있어서, 그러면 왜 읽는가 회의도 들곤 했는데...


기억을 하지 못해도 내 몸, 내 마음 속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때 읽은 책들이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와 또 미래의 나를 연결해 주고 있으며, 나를 다른 사람들, 다른 존재들과 연결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록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읽은 책들이 우연처럼 내게 다가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고 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책은 모든 존재를 연결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명, 함께 울림을 경험하게도 한다. 시공간을 넘어서. 그런 점에서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주고, 김초엽의 이 책 역시 다른 책들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우연들,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 관심 속에서 생겨난 우연들. 그런 우연은 공명을 이룬다. 함께 울린다. 이 책 역시 그렇게 마음을 울리고 있다.  


김초엽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전보다 더 흥미롭고 복잡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결코 읽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눈길도 주지 않았던 책을 우연히 펼쳐드는 순간이 있다. 투덜거리며, 의심을 가득 품고, 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그런 우연한 순간들이 때로는 나를 가장 기이하고 반짝이는 세상으로 데려가고는 했다.

  그 우연의 순간들을 여기에 조심스레 펼쳐놓는다.' (11쪽. '들어가며'에서)


자, 김초엽의 우연의 순간들을 만나고, 다시 자기 자신의 우연한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 또한 좋지 아니하겠는가. 우리도 책을 만나러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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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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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제목만으로는 어린이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어린이와 함께 지내면서 겪은 이야기를 쓴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이와 멀어진 어른들에게는 그다지 읽을 필요를 느끼게 하지 못하는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 책을 펼치자마자 사라진다. 이 책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거치지 않은 어른이 없고, 어린이와 완전히 접촉을 끊은 어른도 역시 거의 없고, 어린이와 어른은 다른 존재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둘 중 어느 한 존재가 사라져서도 안 되고, 사라질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이 두 존재는 동등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한쪽은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존재고, 한쪽은 보호와 지로를 해야 할 존재라고... 


물론 이 말이 그릇되지는 않았다. 아직 자신의 힘으로 자립할 수 없는 존재, 자립하기 위해서 배워가는 존재가 어린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평생교육을 이야기하는 지금 세상에서 배워야 하는 존재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보호와 지도만이 필요한 존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존재라고 해도 자신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어린이는 그 자체로 오롯한, 완전한 존재다. 그렇게 어린이를 대해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하면서 어른도 어른이 된다.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이 책에는 그런 어린이의 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어린이의 세계, 그리고 어른의 세계, 함께 살아가는 세계. 가끔 어른들은 어린이는 지도가 필요하다고, 가정교육의 중요성,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마치 자신들은 어린이들의 교육과 관련이 없다는 듯이. 하지만 아니다. 아이 한 명이 자리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들 교육은 사회 몫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를 가르치고 키우는 일, 즉 교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된다. 가정과 학교는 교육의 출발점일 뿐 결국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한다. 그러기 싫어도 사회의 몫으로 돌아오고 만다.(254쪽)


한때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노 키즈 존'(왜 영어로 말하는지, 그냥 아이들출입금지구역이라고 해도 될 것을)이라는 말... 여기에는 부모들이 교육을 잘못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지 않을까. 부모가 아닌 자신들은 상관이 없다는 인식. 하지만 아니다.


'노 키즈 존'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활동하면서 배워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의 몫이고,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잘못되었다, 실패했다고 말하기 전에. 저자의 이 말이 가슴에 새겨진다.


나는 교육의 실패를 선언하고 싶다면 세상의 실패를 선언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 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이 나라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짐을 결국 어린이가 떠안을 것이다.(255쪽)


실패했다고 포기해버리면 그 짐을 다른 세대에게 넘겨버리는 꼴이라는 이 말. 그렇다. 문제는 지금 발생했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도 지금 사람들이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그러니 희망,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안고 가는 희망을 지녀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반대말을 찾지 않는다.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성별이나 자녀가 있고 없고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219쪽)


해야할 일, 옳은 일. 어린이라는 세계는 미래를 준비하는 단계만이 아니다. 그들은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다. 온전한 세계다. 그 세계를 인정하고, 그런 세계가 다양하게 마련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라고 모두 동일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어른 역시 어른이라는 개념으로 뭉뚱그려지지 않듯이,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온전한, 오롯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생각한다. 어린이라는 나 자신도 거쳐온 세계를 통해 다시 우리가 살아갈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단지 어린이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아니다.


어린이와 함께 하면서 겪은 일들을 통해서 저자는 어린이라는 세계는 불완전한 세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오롯한 세계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오롯한 세계를 우리에게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해서 지도와 보호만이 필요한 어린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어린이라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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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청소년 말모이
정도상 외 지음, 홍화정 그림,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기획 / 창비교육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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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나빠지고, 나빠지다가 좋아지고, 분단이 된 남과 북의 모습이다. 지금은 긴장이 고조되는 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하고 적으로 여기는 때가 되었다.


여기에서 더 안 좋은 상황으로 가면 안 되는데, 남과 북이 다시 전쟁을 한다면 그것은 공멸하는 길임을 서로 잘 알지 않을까. 그럼에도 요즘 긴장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교류도 단절되었고, 긴장만 고조되고 있으니, 남북 간 평화가 이루어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평화, 이것은 단절된 상태에서는 오지 않는다.


평화는 교류를 통해서 온다. 교류는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주 만나야 오해도 풀 수 있는데, 아예 만남을 거부하면 오해에 오해가 쌓여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을 유발하기도 한다.


다행히도 남북한은 같은 한글(조선글)을 쓰고 있다. 물론 명칭은 다르다고 하더라도(한글과 조선글이라고 문자 이름이 다르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그러니 의사소통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통역을 부르지 않더라도 대화가 가능한 관계가 바로 남북한 관계가 아닌가.


그럼에도 교류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언어는 변한다. 문자는 같은데 의미가 달라지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어렵게 꼬이기 마련이다. 이럴 때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방법.


언어가 달라져 의사소통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 그 방법 중 하나로 남북한 학자들이 모여 사전을 만드는 일이다.


사전 이름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다, 남한은 한국어(말)사전, 북한은 조선어(말)사전이라는 이름을 주장하다가, 둘 다 통용이 될 수 있는 겨레말사전이라고 이름 붙이고 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전, 즉 말모이가 있으면 언어에서 의미 차이가 난 말들을 찾을 수 있고, 그 언어들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말모이를 편찬하는 작업과 함께 자주 만나야 한다. 만나야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해야 언어의 어떤 말들이 다르게 쓰이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름을 인식한다면 다름을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서 서로 노력하게 된다. 


이 책에는 많은 북한말들이 실려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들이지만 북한에서 다른 언어로 만들어진 말들을 다뤄주고 있다.


한 가지 간단한 예를 들면 '고려의사'라는 말이 있다. 의사는 의사인데 무슨 의사?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바로 '한의사'다. 그런데 왜 '조선의사'라고 하지 않고 '고려의사'라고 할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라 이름을 붙이지 않고 옛날부터 전해온 우리나라 의학이라는 이름을 쓰려다 보니 '고려'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을까 하는데...


'고려의학' 전에는 '동의학'이라고 했단다. 허준이 쓴 의학서도 '동의보감'이니, 전통의학을 동의학이라고 한 것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동'이라는 말이 중국을 중심에 두고 그 동쪽이라는 뜻이니, 주체성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동의학'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1993년부터. (79쪽)


이렇게 같은(비슷한) 의미를 지니지만 다른 언어로 쓰는 말들을 이 책에서 많이 다뤄주고 있다. 남북이 교류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언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기에, 이 책처럼 북한의 말을 다뤄주는 책들이 계속 나와야겠다.


이와 더불어서 남북이 모두 자기들 나라에서 남북의 방송을 보고 들을 수 있게 해야 하고, 또 남북에서 나온 책들을 제한 없이 볼 수 있도록 한다면, 자연스레 언어가 통일되어 가지 않을까 한다.적어도 너무도 다른 뜻으로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긴장의 시대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긴장 속에 살 수는 없다. 남북이 평화롭게 지내야 우리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선 말모이(사전)만이라도 함께 만드는 작업,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북한에서 쓰이는 말들을 알려주는 책이 계속 나와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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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 나도 모르게 쓰는 차별의 언어 왜요?
김청연 지음, 김예지 그림 / 동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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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상대와 나를 잇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끊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은 상대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힘을 빼기도 한다. 상대를 격려하기도 하고, 좌절하게 하기도 한다. 말은 살림의 말이 될 수도 죽임의 말이 될 수도 있다. 말은 붕대가 될 수도 있고, 칼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말은 중요하다. 중요한 말임에도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상대에게 다르게 다가간다. 상대에게만이 아니다. 나에게도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 말은 중요하다. 잘 말해야 한다. 


그런데 가끔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 가운데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말들이 있다. 상처를 주는 말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말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은 그래도 사람들이 쉽게 인식한다. 그 말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쓰지 못하도록 막을 수가 있다.


문제는 자주 쓰는 말이라서 별다른 생각없이 쓰는 남에게 상처주는 말들이다. 심지어는 언론에서도 그 말들이 쓰이고 있어서 남들도 다 쓰는데 뭐가 문제야 하는 식이 되기도 한다. 이 책 제목처럼.


이 책은 그렇게 자주 쓰이는 말 중에서 차별을 담고 있는 말을 다루고 있다. 다른 말로 바꿔 쓸 수 있으니 사용하지 않거나, 바꿔쓰면 좋은 말들에 대한 이야기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으로 청소년에 관한 말부터 시작한다. 급식충...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면 듣는 사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런데 많은 말들에 이 벌레 '충'자가 붙는다. 남들을 비하하는 말로.


중고등학생을 급식충이라고 하고, 대학에 지역균형발전전형으로 들어온 학생을 지균충이라고 하고, 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말로 한남충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고 하니... 이건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이 말... '지방대 출신으로 대기업 입사' 

어디서 많이 본 구절 아닌가. 여기서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지방대'에 있다. 예전에 표준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말이 표준어이니 다른 지역 말들은 표준어가 되지 못한 불완전한 말들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각 지방의 말들 중에, 그러니까 서울이라는 지방의 말을 표준으로 삼아 맞춤법을 정리했을 뿐이라고, 말들에는 위계가 없다고... 이 말을 대학에 적용하면 각 지방에 대학이 있는 셈이니,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대학들도 지방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방대 출신이라는 표현은 서울을 중심에 놓고 다른 지역을 아래로 보는 차별이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모든 대학은 지방대다. 이런 생각을 지닌다면 위에 쓴 말을 쓰지는 못하겠지.


이런 예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호칭을 고칠 필요가 있고.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직업인들을 만날 수 있지. 그런데 직업인에 따라 누구한테는 '선생님' 또는 '님'이라는 말을 붙여 부르고, 누구한테는 '아저씨' '아줌마' 심지어 '어이' '여기'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어. 의사한테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붙여 부르면서 소방관한테는 '아저씨'라는 말을 붙여 부르는 게 대표적인 예지.' (45쪽)


이런 호칭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냥 생활에서 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면서 직업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지 하는 생각. 그 말들이 은연 중에 차별로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의사에게는 늘 의사선생님이라고 하면서 경찰, 소방관과 같이 우리들 삶을 다른 방향에서 살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저씨 또는 그냥 '-님'(이 경우도 많지는 않지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경우 말은 사람들을 잇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끊는 역할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직업이 말을 통해 은연 중에 구분되고 있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직업의 귀천이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쓰는 말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말들이 왜 문제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어서 받아들이기가 쉽다. 말, 한 번 나오면 다시 담기 힘드니, 잘 생각하고 내보내야겠다. 


다른 사람의 귀를 통해서 마음까지 닿는 것이 말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청소년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읽고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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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 교양으로 읽는 마약 세계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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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불법이라는 말도 동시에 떠오르고. 가끔 약물중독에 관한 연수를 받을 때가 있다. 약물중독? 이때 약물을 대부분 마약으로 생각하는데, 이 약물에는 술과 커피나 차도 포함이 되니, 약물중독 연수가 꼭 마약에 관한 연수는 아니다. 오히려 마약은 우리 생활과 멀리 있다고 생각해서 - 마약 청정국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나라를 - 마약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술, 커피, 담배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마약은 멀리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가끔 언론에서 마약사범이 체포되었다는 둥, 몇 킬로그램의 마약이 적발되었다는 사건을 다루기는 하지만, 연예인 모모 씨가 마약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사건을 듣기도 하지만, 이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과연 마약이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존재일까?


마약류에 해당하는 프로포폴이라는 의약품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고, 대마초 또한 심심치 않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마약은 우리 생활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마약은 모른다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적어도 알고는 있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에는 이중성이 있다. 우리 생활 또한 이러한 이중성들이 합쳐져 있는데,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과 '모르는 게 약이다'는 말처럼, 삶은 이율배반들이 함께 존재한다.


마약도 그렇다. 알면 힘이 될 때도 있고, 그냥 모르고 지내는 것이 약이 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마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면 좀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 적게 쓰면 약, 많이 쓰면 독이라는 말도 있으니.


이 책은 마약에 관해서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저자는 강하게 주장한다. 마약을 하라는 말은 아니라고.


마약이 몸에 나쁘다는 사실은 증명이 되었다고. 또한 마약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쉽게 중독이 된다고. 환경이 좋다면 마약을 하더라도 중독에 이르는 비율이 적어진다고.


그러니 마약에 관한 정책이 처벌 위주보다는 환경 개선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건강이나 중독이나 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고, 마약으로 인해 피해 역시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서 더 크게 일어난다고.


이런 이야기들... 마약이 꼭 나쁜가? 여기에서부터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마약은 인류 문명과 함께 해왔다는 말로 책을 시작하는데, 이렇게 인류의 생활과 함께 해온 마약이 언제부터인가 해서는 안 될 금지 물품으로 규정되었다는 것. 그러니 인류의 시작에서 마약은 나쁜 존재가 아니라 신성한 존재이기도 했다는 사실로 책을 시작한다. 


역사가 발전하면서, 종교가 확립되면서 마약은 좋지 않은 존재로 격하된다. 격하될 뿐만 아니라 해서는 안 될 금지 물품이 된다. 그렇게 마약은 우리 생활에서 쫓겨난다. 음성적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게 된다. 


과연 금지가 효과적인가? 저자는 미국의 금주법을 예로 들고 있다. 금주법이 술 판매를 줄였는가? 술로 인한 사고를 줄였는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불법으로, 음성적으로 유통되기에 더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고한다. 소비량이 줄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이 금주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마약에 관해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생각하자고 한다.


특히 마약으로 구분되는 대마초에 대한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는 마약에 포함되어 대마초 흡입은 불법이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마약에서 제외기도 해서 합법적으로 유통이 되기도 한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기도 하고 - 는 많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대마초가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는 논쟁보다도 대마초에 관한 세계의 다른 정책들을 살펴봐야 한다.


어떤 정책이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이 책은 마약이 인간의 역사와 어떻게 상관관계를 이루면서 존재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아예 마약을 모르면 약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마약은 우리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알아야 한다. 아는 게 힘이 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마약에 대해서 알려주고, 마약에 대한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더 나아가서 마약이라는 존재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게 하고 있다. 똑같은 유전자라도 환경에 따라서 다르게 성장하듯이, 마약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마약에 대한 대응방식, 또는 중독여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약에서 시야를 넓혀 사회를 바라보게 한 점이 이 책이 지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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