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 - 망망대해를 헤매는 고독한 작가를 위한, 르 귄의 글쓰기 워크숍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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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은데 굳이 외국 작가가 쓴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글쓰기가 한국어를 잘 활용한 글쓰기고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에도 어울리기 때문에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따라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 점을 찾아내지 않으면 이 책은 우리에게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다른 글쓰기 책처럼 글쓰기에 관한 이론을 설명하고, 예시문을 실어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로 글을 써보라고 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대부분의 글쓰기 책에서도 보인다. 비슷한 글쓰기 책들이 넘쳐나는 시대 왜 르 귄의 글쓰기 책을 읽어야 할까?


우선 르 귄은 꼭 이렇게 쓰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반드시(이 반드시라는 말은 시험에나 통용되는 그런 말이 아닐까 싶다. 다양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정답만을 찾아야 하는 우리나라 시험 제도에서는 '반드시'가 잘 먹혀든다. 글쓰기 책들도 그래서 '~해야 한다와 ~하지 말아라'를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자신에게 맞는 글쓰기가 있다는 점이 르 귄의 책을 관통한다. 그래서 르 귄은 이렇게 쓰면 좋다고 하지만 그것이 꼭 정답은 아니라고 한다. 다양한 예문을 보여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여럿이다. 그 여럿 중에 고를 수도 있고, 자신이 정답을 만들 수도 있다.


책 제목이 왜 항해하는 글쓰기겠는가! 항해는 바다에서 가는 일이다. 망망대해(茫茫大海). 엄청난 바다에서 길을 찾아 항해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좌초하고 만다.


바다에서 좌초하지 않고 항해를 잘하려면 길을 잘 찾아야 한다. 해도를 보고 항로를 따라가야 한다. 바로 이 해도가 '글쓰기 책'이다. 항로를 따라가는 일, 이것이 글쓰기다. 작품이다.


그런데 해도가 단 하나뿐인가? 아니다. 해도는 많다. 또 같은 바다라도 길은 여럿이다. 항로가 여럿이란 말이다. 그렇다고 이미 밝혀진 항로로만 갈 것인가? 그것은 안전한 길이다. 무난한 길이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길은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도 없다.


마젤란, 바스코 다 가마, 콜럼버스 등이 왜 지금도 이름을 남겼는가? 망망한 바다에 자신의 항로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왜 승리를 했겠는가? 바닷길을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바로 글쓰기다. 르 귄이 말하는 글쓰기도 이렇다. 기존의 해도와 항로를 참조해야 한다. 그렇다고 꼭 그것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지도에 없는 길도 가야 한다. 그런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르 귄의 글쓰기는 글쓰기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이 점이 좋다. 글에서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말로 글쓰기 책을 시작하고 있다.


'자기 글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의식할 줄 아는 기술은 작가에게 필수적이다. ... 좋은 작가는 좋은 독자와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귀가 있다. 우리는 대개 글을 눈으로만 읽지만 많은 독자가 예민한 내면의 귀로 글의 소리를 듣는다. ... 서사 작가는 내면의 귀로 자신의 글을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쓰면서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21쪽)


음성과 문자는 다르다고 하지만 문자에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좋은 독자가 갖추고 있는 자세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작가 역시 자신의 글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카프카가 생각났다.


시인이 아닌 카프카 역시 자신의 작품을 친구들 앞에서 낭독하지 않았는가. 이 낭독을 듣고 감탄한 친구들. 만약 낭독이 실패로 끝났다면 그 작품에는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고치려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카프카는 낭독하기 전에 고치고 또 고치고 했겠지만.


이렇게 소리와 문자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것은 곧 글을 쓸 때 문법이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문법! 이건 시험 볼 때나 필요한 것 아니었나 하지만, 아니다. 우리가 말하기를 잘한다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는 상황에 맞춰 어법에 맞는 말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기에도 어법이 중요한데, 글쓰기에서랴. 르 귄은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간과하기 쉬운 점을 잘 지적해주고 있다.


소리와 어법으로 글쓰기 책을 시작해서 마지막은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이 퇴고로 끝난다. 그런데 이 퇴고를 '메우기와 건너뛰기'라고 한다. 벌어진 틈은 메우고,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띄어야 한다고. 이 과정에서 르 귄은 말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글을 줄이려면 단어들의 무게를 잴 수밖에 없고 그러면 그중에 어떤 것이 스티로폼이고 어떤 것이 묵직한 금인지 찾아낼 수 있다. 글을 가혹하게 줄이다 보면 문체가 강화되고 메우기와 건너뛰기를 둘 다 소화할 수 있게 된다.' (200쪽)


말에도 무게가 있고, 당연히 단어에도 무게가 있다. 그 상황에 맞는 말은 무게가 있는 말이고, 그런 말은 '금'이 된다. 하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은 일회용인 '스티로폼'이 된다.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르 귄의 글쓰기 항해술은 글쓰기라는 바다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르 귄은 이 책을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닌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썼다고 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글쓰기 워크숍(합평회)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혼자 연습할 수도 있게 구성되어 있다. 물론 르 귄이 책 뒤에서 알려주고 있듯이 여러 사람이 모여 합평회를 하면 더 좋겠다.


글쓰기 방법뿐이 아니라 다양한 작품의 예문들을 만날 수도 있어서 좋은 글쓰기에 관한 책. 그렇다고 이 책을 무슨 법전 섬기듯이 모시면 안 된다. 그건 르 귄이 바라는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을 해도로 삼아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하길 바라면서 쓴 책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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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조혜령 감수 / 펜연필독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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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가꾸기에 관한 전문적인 책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정원 가꾸는 사람이 겪게 되면서 느끼는 점을 쓴 책이다. 수필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참 재미있다.


정원에 관한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도 있다니 연신 감탄하면서 읽게 된다. 야, 차페크라는 사람,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정원 가꾸기를 1월부터 12월까지 계절에 따라서 이야기하면서, 그때 그때 필요한 식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그때 그때 느끼는 감정들이 정말 절묘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한번 보고 말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읽어도 재미있겠단 생각이 드는 책이다. 게다가 식물을, 아니 흙을 가까이 두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하니..


우선 차페크는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154쪽)고 한다.


주거지의 형태가 대부분 아파트인 우리나라에서도 베란다에 화분을 놓고 또는 아주 작은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인간은 흙과 식물과 떨어져 살기 힘들다는 말인데...


차페크는 그 점을 명료하고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화단을 가꾸다 보면 '구름들조차 우리 발밑의 흙만큼 변화무쌍하지도 아름답지도 경외할 만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54쪽)고 한다.


그렇다. 흙에는 온갖 생명체들이 산다. 흙은 또 하나의 우주다. 그런 우주를 날마다 보고 접촉한다면 우리는 우주의 경외를 삶 속에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흙을 만지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사람들도 있으니, 하다못해 작은 화분 하나라도 집에 들여놓고 식물을 가꾸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곧장 화원으로 달려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만큼 차페크가 정원 가꾸기의 좋은 점들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물론 그는 일방적인 찬양을 하지는 않는다.


정원을 가꾸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는지, 또 몸은 얼마나 힘든지를 재미있게 표현하는 장면이 많다. 특히 사람의 신체 중에서 등뼈가 가장 쓸모가 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게 된다.


이 부분을 보라.


'만약 정원가가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진화해온 생물이라면 무척추동물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정원가에게 등뼈란 하등 쓸모가 없으니, 이따금 "아이고, 허리야!" 하며 몸을 일으킬 때 말고 등뼈가 쓰이는 데가 어디 있을까? 

  다리로 말할 것 같으면 여러 방향으로 구부릴 수 있다. ... 손가락은 구멍 뚫기에 안성맞춤이고, 손바닥은 흙덩어리를 부수거나 곱게 갈 때 쓰기 좋으며, 머리는 줄기와 버팀대를 지지하기에 좋다. 그러나 등만큼은 정원가의 성미대로 구부릴 수가 없다. 한낱 지렁이도 등뼈 없이 자유자재로 노닐 건만, ...'(57-58쪽)


하하, 정원이 아니더라도 작은 텃밭을 가꿔본 사람은 안다.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할 수밖에 없으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허리가 아파지는지. 그러니 이런 표현에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 달 두 달, 달이 지나면서 차페크는 정원가가 해야 할 일, 또 어떤 마음인지를 표현해나가고 있는데, 여기에 정원가를 비꼬는 표현도 나오고, 또 그럼에도 식물들, 흙이 주는 고마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흙과 식물과 함께하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데, 겨울이 다가오면서 꽃과 잎을 다 떨어뜨린 식물들을 보면서 차페크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본다. 즉 미래는 현재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래란 우리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싹눈 속에 자리하고 있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지금 우리 곁에 자리하지 않은 것들은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할 수 없다. 단지 땅속에 숨어 있기에 새싹을 보지 못하듯, 우리 내부에 자리하고 있기에 우리는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185-186쪽)


혹독한 겨울이 와도 식물은, 흙은 이미 그곳에서 미래를 품고 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잘 보면 미래는 바로 현재에 있다. 겨울이 오는 12월에 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봄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차페크의 글을 보면서, 그래, 미래란 바로 현재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정원가의 열두 달. 정원 가꾸기에 관한 책이 아니다. 정원을 가꾸면서 느꼈던 삶 가꾸기에 대한 책이라고 보는 것이 더 좋겠다. 그것도 낄낄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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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사용 설명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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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삶이다. 자신의 삶을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경제학자에게만 맡겨서야 되겠는가? 그래서는 자신의 삶에서 주체가 될 수 없다. 남이 하라는 대로 하는 객체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주체적인 삶을 살라고 배워오지 않았던가. 그 배움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경제학자에게 경제를 맡겨만 놓아서는 안 된다.


언론에서 경제 관련 소식을 전할 때 무슨 무슨 교수(소위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사람)를 초빙해 그 사람의 말로 현 경제의 상황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언론사에서 선호하는 교수를 초빙해서 그 사람의 의견만 듣는다. 다른 의견은 잘 전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언론을 접하느냐에 따라 경제에 관해서도 다른 관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


각자 다른 관점을 지니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관점만이 옳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의 관점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매도하는 태도가 옳지 않다는 말이다. 다른 의견도 있음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의견들을 듣고 스스로 판단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이 책의 끝부분에서 저자는 바로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변화는 힘들기 때문에 이론은 지적으로는 비관주의, 의지로는 낙관주의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것이다. 경제를 경제학자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 왜냐하면 경제는 바로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내 생활을 남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서 시키는 대로 하면 그것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문 지식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전문가는 말 그대로 아주 좁은 영역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서 하나 이상의 넓은 영역이 결부된 문제(즉 대부분의 문제)에서 다양한 인간적 필요와 물질적 제한, 도덕적 가치를 모두 고려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려 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전문 지식을 가지게 되면 시각이 더 편협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전문 지식에 약간 회의론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경제학뿐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포장을 씌운 정치적 주장인 경제학에서는 이 태도가 특히 중요하다.'(441쪽)


이 책을 읽으면 이와 비슷한 말이 계속 나온다. 장하준이 경계하는 것은 바로 남에게 자신의 판단을 의존하는 태도이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점점 어려운 용어로 포장이 되고, 이해하기 힘든 숫자들로 채워진 통계를 앞세우면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하고 만다.


이런 포기의 순간, 내 삶은 경제학자들의 손에 넘어간다. 아니 경제학자들의 손이라고 하기보다는 경제학자들을 이용하는 정치권력의 손에 넘어간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정치가들이 경제학자들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인다. 무슨무슨 경제학 박사들이 늘 정치권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들은 현란한 용어와 통계를 가지고 사람들을 현혹한다. 


나는 모르니, 전문가가 어련히 알아서 했겠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내 삶에 대한 주도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된다.


장하준은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한다. 경제학이 어렵다고 하지만, 전문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경제학 지식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검색을 하면 다 찾을 수 있는 시대라고 해도, 검색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경제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썼다고 한다.


경제학이 무엇인지, 경제는 어떤 역사를 거쳐왔는지, 경제학에는 어떤 학파들이 있는지를 이야기한 다음에 경제학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해준다.


경제학 사용하기라는 2부에서 생산의 세계, 금융, 불평등과 빈곤, 일과 실업, 정부의 역할, 국제적 차원(무역과 이민) 등등에 대해서 설명한다. 명쾌하다. 그리고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고 여러 경제학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려주고 있으니, 전문가가 아닌 나같은 일반인들이 읽으면 꽤 도움이 된다. 경제학에 대한 거리를 조금은 좁힐 수 있다. 경제학이 무엇보다도 정치와 관련이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그냥 경제학이라고 하기보다는 '정치'경제학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을 왜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경제가 경제로만 떨어져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는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고, 경제 정책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정치를 포함하고 있으니, '정치경제'학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여 저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고 나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경제학 전문가들에게 경제를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는'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더 이상 경제를 전문 경제학자와 '기술 관료'에게 맡겨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처참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능동적인 경제 시민이 되어 경제의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444쪽) 고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이 그냥 경제학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정치경제학'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부분에 계속 전문가에게만 맡겨두었을 때 정치와 관련이 없다고 여기고 실천을 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것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 씁쓸한 뿐인데... 그의 말을 명심하자. 아래 인용한 것이 재반복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일단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은 자신의 잘못이고, 돈을 많이 번 사람은 그럴 만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며,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 부자들이 살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렇게 설득당한 가난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자기의 이익과 상반되는데도 부의 재분배를 촉진하는 세금과 복지 지출을 낮추고 기업 규제와 노동자 권리를 줄일 것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단지 소비자로서의 선호뿐 아니라 납세자, 노동자, 투표자로서 개인의 선호도 고의로 조작될 수 있고 자주 그렇게 된다. 개인은 개인주의 경제이론에서 묘사하듯 '독립의지를 가진 ' 존재가 아닌 것이다.' (197쪽)



덧글


아주 소소한 오타... 97쪽에 '러스크 벨트(rust belt)'라고 나오는데 이건 누가 봐도 러스트 벨트니 다음 판본에서는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내가 읽은 책은 2023년 3월 개정판 1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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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채소롭게 - 작지만 단단한 변화의 시작은 채소였어
단단 지음 / 카멜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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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로 채소를 다루고, 또 가능하면 집에서 만든 음식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 약간 벗어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가 아주 마음에 든 건 모든 것을 한방에 해결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완벽하게 옳고 완벽하게 무해하고 완벽하게 아름답기 위해 나를 잃고 싶지 않다. 나답게 조금씩 천천히, 이리도 가 보고 저리도 가 보면서, 나다운 일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12-13쪽)'이라고 하고 있으니.


한때 자주 가던 음식점이 있었다. 음식점이라고 하기보단 술집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주로 막걸리를 마시면서 곁들인 음식을 함께 먹었으니... 그 집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이 책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이 말 때문에 그 음식점이 생각이 났는지도.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다. 즉 음식이 약이라는 얘기다. 술집에 어울리는 말 같지가 않지만, 술을 약주(藥酒)라고도 하니, 어느 정도는 타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분 좋게 다음날 무리가 가지 않게 좋은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마시는 술이 어찌 독이 될 수 있겠는가. 그때 술은 약이다. 


그리고 주인장이 정성스레 만들어 내오는 안주 역시 약이다. 약식동원. 약과 음식은 같다는 생각으로 요리를 내오는 주인장의 마음이 요리에 깃들여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자주 가던 그런 음식점이었는데...


꼭 술이 나쁘다고 마셔서는 안 된다고, 육식이 나쁘다고 채식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육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야기하고 있고, 또 음식을 바깥에서 사먹는 과정에서, 사오는 과정에서 탄소 발생이야 차치하더라도 수많은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있음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도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그렇게 생활하는 것은 잘못되었어, 당장 고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채식만을 하는 사람들로 이 지구가 채워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육식을 끊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기맛이 난다는 콩고기 등 대체육을 개발하고 있는 지경이니, 누구나 똑같을 수는 없다.


모두가 채식하는 사회도 상상하기 힘들듯이 모두가 육식하는 사회도 힘들다.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채소를 먹는다. 안 먹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정도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완전한 하나는 없다고 보면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런 다름의 인정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언급하듯이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모든 음식을 채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았을 경우 죄책감을 느끼거나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자신의 식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꾸라고 말하는 것 또한 폭력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폭력은 채식과 가장 거리가 먼 것 아닌가?


좋은 것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에게 있다. 함께하면 된다. 강요가 아니라. 상대가 싫다고 하면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면 된다. 또한 어느 순간 상대 역시 조금씩 변해갈 수 있다고 믿고 지내면 된다.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상대와 자연스레 어울리다 보면 상대도 나도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이 책은 채소를 통해서 그런 과정을 거친 자신의 경험담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강요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라고 소곤거리듯이 말하는 듯한 책이다.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강요하지 않으니 묘하게 함께하고픈 마음이 든다. 채소를 먹는다는 일은 자연과 함께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냥 채식이라고 해서 채소만 먹는 식생활이 아니라 공업과 비슷하게 생산된 채소들이 아니라 제철에 나오는, 키우는 사람들의 정성이 배어 있는 그런 채소를 먹는 일이라는 것을...


물론 그렇다고 저자가 외식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외식도 한다. 채식 식당도 많이 늘었다. 또한 고기도 먹는다. 완전히 거부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먹는다. 어느 하나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채소로운' 식생활을 하면서 익히게 된 삶의 방식이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편하게 해준다. 자연스레 어울리면서 생활이 변하게 된다.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그것을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강요로 만들지 않는 사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는 사람, 그리고 함께할 수 있으면 함께하는 사람. 비난보다는 개선이 될 수 있게 비판을 하는 사람. 이것이 바로 '채소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엔 그런 삶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읽는 것으로도 음식을 먹은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배가 부르다. 영양을 채웠으니 움직이고 싶어진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서두르지 않고 해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다.


약식동원이다. 이 책 역시 약이다. 쓴 약이 아니라 달디 단 약. 참고로 이 책은 채소로 요리하는 법도 나와 있으니 채소 음식 레시피로 이용해도 된다. 눈으로 읽고 마음에 지식을 채우고, 채소를 사서 직접 손으로 요리해 자신의 몸에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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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핀 -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
세스 고딘 지음, 윤영삼 옮김 / 라이스메이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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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경전이 많다. 경전이 한 권이라면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싸울 일이 없겠지. 하지만 그 많은 경전들을 관통하는 내용이 다 다를까? 몇몇은 다르기도 하다. 유일신,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경전처럼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신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고 경전이 설파하고 있는 인간들이 실천해야 하는 내용을 보면 대동소이하다. 


그러니 어떤 경전을 읽고 그 경전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면 세상은 자비와 사랑과 평화가 넘치게 될 것이다. 상대를 비방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내 일처럼 돕고, 자신을 항상 뒤돌아보고 개선하려고 하며, 나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린치핀]이란 이 책도 마찬가지다. 경전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경전에 비유하기가 너무 거창하다면 교과서에 비유하면 된다. 물론 이 책에서는 학교를 비판한다. 학교에서는 린치핀이 아닌 톱니바퀴를 양산한다고 하니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톱니바퀴가 되는 길밖에 없다. 이는 곧 실패를 의미한다. -431쪽)


교과서란 말은 틀에 박힌이란 의미로 많이 쓰이니, 틀을 벗어나자고 주장하는 이 책의 취지와는 맞지 않으니 빼자. 경전이 맞다. 경전은 순응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전은 단순히 순응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순응이 아니라 경전대로 살아간다면 세상을 바꾸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기독교만 보아도 그렇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는 경전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 아니었다. 불교는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계급으로 나뉘어진 사회를 비판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 교리는 바로 혁명적이다. 누구나 소중한 사람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교 역시 마찬가지다. 공자의 사상이 순응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맹자를 보라. 왕을 쫓아낼 수 있는 근거를 제기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사람답게 사는 방법, 그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놓은 책들이 경전이다.


이런 점에서 경전은 우리 삶에 많은 도움을 준다. 왜 [린치핀]이란 책을 이야기하면서 경전을 들먹였냐고? 그것은 이 책이 바로 경전과 같은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읽으면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자세를 지녀야 한다. 그래야 린치핀이 되고, 이 사회에서 우리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린치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 특히나 인공지능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시대에는 대체불가능한 린치핀이 되어야 한다고...


린치핀은 <다음 백과사전>에서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린치핀은 마차나 수레의 바퀴를 고정시키기 위해 축에 꽂는 핀으로서 안보 ・ 외교적으로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핵심 국가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미국은 린치핀이란 용어를 미국 ・ 일본 간 동맹 관계에서 주로 쓰다가 오바마 행정부인 2010년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처음으로 한미동맹 관계를 린치핀이라고 표현했다. (출전 : 린치핀 - Daum 백과)


영어 사전을 보면 linchpin : 1. 바퀴를 굴대에 고정시키는 핀 2. 중핵을 이루는 중요인물 3. 급소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린치핀은 중요한,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현대사회에서 대체불가능한 인물이 바로 린치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린치핀이 될 수 있는가?


많은 방법이 - 이 책에서는 방법이라기 보다는 방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구체적인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으니 - 있지만, 그 방법은 경전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즉, 실천은 개인의 몫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 경전에 쓰여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한 린치핀이 되는 방법을 읽고 머리 속에 간직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니 이 책은 경전이다.


하지만 경전에도 우리가 기억하는 문구들이 있기 마련이니, 이 책의 저자가 말한 린치핀이 되기 위한 자세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물론 학교에서는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고, 저자는 학교의 교육은 톱니바퀴를 양산하지 절대로 린치핀을 길러내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긴 경전을 학교에서 배우지는 않으니까...


린치핀이 가진 일곱 가지 능력이라는 장을 기억하면 된다. 적어도 이런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면 되니까...


1. 조직 구성원들이 접촉할 수 있는 고유한 통로를 만든다.

2. 고유한 창의성을 발휘한다.

3. 매우 복잡한 상황이나 조직을 관리한다.

4. 고객들을 이끈다.

5. 직원들에게 영감을 준다.

6. 자신의 분야에 깊은 지식을 제공한다.

7. 독특한 재능을 지닌다.  (417-418쪽)


이런 말들을 뭉뚱그릴 수 있는 말이 '관계, 예술, 선물'이라는 말들이다. 이 세 단어는 이 책에 많이 나온다. 


관계는 중요하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관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진심을 다한 만남, 이런 만남은 선물이다. 선물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좋아서 준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좋은 것, 그것이 선물이다. 이런 선물을 주는 자세,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그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 즉 관계에서 예술은 선물로 나타나게 된다.


[린치핀]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나는 린치핀인가, 톱니바퀴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행동들은 린치핀에서 멀어진 행동들이 아니었나. 내 삶도 린치핀이 아닌 톱니바퀴에 불과하지 않았나, 언제든 대체가능한 존재가 나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 책의 저자가 말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하니, 그것이 린치핀이 되는 가장 기본이라고 하니, 어쩌면 이 책은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경전이 아무리 좋은 소리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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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1-0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천하는 움직임이 되는 오늘이 되도록 !!! 다짐해 봅니다.

kinye91 2024-01-09 10:52   좋아요 0 | URL
아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