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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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인가 싶기도 하다. 또 어찌 보면 '영감이 오는 순간'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수도 없이 발단만을 쓰고 완성하지 못한 어느 고독한 소설가 지망생의 습작 원고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봤더니 소설집이다. 아니 그보단 둘 다를 섞어놓은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또는 소설 작법을 소설로 보여주는 책이라고 해야 할 것도 같고.


저자가 좀 낯설긴 한데 모 대학 문창과 교수고 그동안 몇 권의 책도 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소설의 구성 요소를 따르기 때문이다. 즉 발단-전개-절정(또는 갈등)- 결말 각 단계가 의미하는 바와 방법을 설명하고 또 그에 맞는 몇 편의 플래시 픽션(아주 짧은 소설)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의 경우 소설 작법 따로 작품집 따로 내지 않는가. 그런데 이 책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다. 저자의 이런 시도가 다소 엉뚱하기도 하고, 때론 야심 차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시도 마음에 든다. 일단 신선하지 않은가. 작품도 플래시 픽션이라고 하지만 저자 특유의 예리한 필치가 느껴져 나름 만족하며 읽었다.


특히 소설의 각 단계를 설명한 글이 심플하면서도 뇌리에 박힌다. 이렇게 깔끔하게 썼다면 굳이 두꺼운 소설작법서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건 그 나름의 매력과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요즘 작법서들 정말 눈 돌아가게 잘 나와있다. 하지만 그런 책만 읽으면 정작 창작을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도움은 되겠지만 그런 책 읽었다고 글을 더 잘 쓰는 건 아니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작법에 관한 설명은 최소화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동기유발을 시켜 직접 써보게끔 하려고 이 책을 낸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작품으로 말해야지 작법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우선 저자는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는 일에 앞서,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알겠지만 소설을 야구 경기에 빗댄 말이다. 그러고는 발단을 서핑에 비유한다. 멋진 파도가 왔고, 그것을 잡기 위해 팔을 젓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발단이다. 지금까지 발단을 이렇게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평생 서핑을 타지 못했어도 이해가 된다. 훅하고 바닷바람을 맞는 것 같았다.


전개는 어떤가. 서핑은 네 단계로 이루어졌는데, 팔을 젓기, 일어서기, 파도타기, 파도에서 내려오기가 그것이다. 그중 전개는 서핑보드 위에 올라서는 과정이란다.


그렇다면 절정은 어떠한가? 짐작했겠지만 파도타기다. 하지만 중요한 건 화려하게 파도를 잡아야지 그것에 먹히면 안 된다.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절정은 소설의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며 좋은 절정은 다른 클라이맥스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그것이 전부인 건 맞지만 절벽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즉 클라이맥스를 만들겠다고 등장인물을 절벽 끝으로 몰아가는 건 좋지만 거기서 추락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서핑으로 말하면 파도에서 나오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다. 세상에 어떤 작가가 절정에서 등장인물 그것도 주인공을 죽인단 말인가. 그런 만큼 작가는 절정에서 결말로 가는 길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결말은 외길이어야 한다고 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소설은 야구의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과 같다고. 그 말은 소설을 쓸 때 결말부터 생각하고 쓰라는 말이다. 이걸 또 서핑에 비유하자면, 서핑 고수는 파도에서 빠져나오면서 자기가 탄 파도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결말부터 쓰거나 아무튼 결말을 설정하고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글쓰기의 영원한 명제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을 이처럼 잘 실천한 글이 또 있을까 싶다. 더구나 소설 작법을 말이다. 이만하면 더 이상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은 그만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고 작품에서 각 단계별로 그것을 증명해 보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시도는 나쁘지 않은데 난 잘 모르겠다. 각 단계별로 나오는 짧은 소설이 각자의 포지션을 의미하고 있는지. 워낙에 짧은 소설이고 각 소설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결미를 보여주고 있는데 무슨... 차라리 그럴 것 같으면 작품 하나 가지고 각을 뜨듯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을까. 마침 초단편을 쓰는 어느 작가가 그에 대한 작법을 소개한 책도 나와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책의 '소설을 잘 쓰려면'이란 제목의 소설은 위의 내용과 계속 이어 어질만해서 언급해 본다. 거듭 말하지만 소설은 야구의 9회 말 투 아웃 만루다. 그리고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완성한 소설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 그게 누구든 간에 뭐에 관한 소설이라고 간단 명료하게 알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궁금증을 유발해야 한다. 이를테면 '소설을 잘 쓰려면'이란 소설의 내용은 그것을 잘 하지 못해 버벅거리는 상황에서 화자의 교수에게서 도움을 받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얘기다.


이때 교수는 더불어 짧게 쓸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얼마나 중요한지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기까지 하는데 그는 어느 책에선가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길게 쓸 수밖에 없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라고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줄여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설이고, 그 줄여 말한 게 재미있어야 영원한 소설이라며 그걸 화자인 제자에게 등단선물처럼 남겨준다. 이 부분을 읽는데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직도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고 하얀 화면에 껌뻑이는 커서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소설가 지망생을 시크하게 위로하는 것만 같다.


그렇지 않아도 저자가 서문에서 이 책을 내는 의도를 무려 8 가지로 밝혔는데 좀 울컥했다. (지면상 다 밝힐 수는 없고 책에서 직접 확인하길) 저자가 정말 소설에 진심이구나 싶었다. 실제로도 작품을 읽어보면 정말 열심히 꾹꾹 눌러가며 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원고를 들고 편집자를 찾아갔을 때 편집자가 그런 말을 하더란다. 백일장에서 1등 먹은 소설 같다고. 한마디로 잘 쓴 작품이라는 소리다. 이런 말을 읽고 질투든 자존심에 스크래치든 궁금증이든 뭐든 느끼는 사람이 글을 쓸 것이다. (저자가 밝히진 않았지만 이게 제9의 의도는 아닐까. 아님 말고.)


솔직히 나는 작법에 관한 책을 내는 작가들은 특별할 수는 있어도 존경하지는 않는다. 또한 한때 열심히 작품을 썼으나 이러저러한 문학상 심사위원으로나 후학양성으로 자리를 옮겨 앉거나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작가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있다. 난 사람들이 읽든 안 읽든 여전히 글을 쓰는 작가를 존경한다. 궁극적으로 그런 작가가 있기 때문에 그의 뒤를 보고 쫓아가는 후배 작가가 있는 거지 그런 '빨간펜 선생님' 때문에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런 선생이 자신의 작품도 꾸준히 내고 있다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이제 소설 작법 그만 봐라. 빨간펜 선생님도 그만 만나라. 양을 이기는 질은 없다. 많이 보고, 많이 쓰는 것 그것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지금은 자신의 작품을 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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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05-16 0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장전으로 이어지는 야구 경기를 소설로 비유하면, 결말이 있어도 작가가 더 쓸 내용이 남았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면 연장전 게임은 ‘연작 소설’이겠군요. ㅎㅎㅎ

stella.K 2024-05-16 10:0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럴수도 있지. 그래서 중편 정도되는 걸 장편으로 늘리기도 하니까. 근데 저자는 결말을 알고 쓰라는 뜻인데 저자도 너와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 ^^
 

 올해 이상문학상의 대상의 영예는 조경란 작가에게 돌아갔다. 작가가 된지 28년만이라고 하니 (그동안 몇개의 굵직한 문학상을 받긴했지만) 이상문학상하곤 오랫동안 인연이 없었던 셈이다. 왜 그랬을까? 어쨌든 축하할 일이다. 또 그러다보니 새삼 오랫만에 이 책을 사 볼까 마음이 동한다.(그냥 마음만 그렇다는 얘기다. 언제 사 볼지는 모른다.) 이러면 모르는 사람은 작가와 무슨 인연이 있는가 하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오래 전 <혀>란 작품을 우연히 읽고 좋아던 기억이 있다. 아주 세련된 프랑스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하고 넘 좋아서 두 번쯤 읽었던 것 같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묻혀서 좀 아쉬웠다. 


그후 <백화점>이 나왔을 때 출판사측에서 독자와의 만남이 성사가 되서 모임에 간 적이 있다. 그때는 독특하게도 디너 파티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와인도 마시고 어색했지만 나름 분위기는 좋았다. 무엇보다 조 작가는 나를 보더니 작가 같다는 말을 불쑥 꺼내서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그런 스치듯한 인연이 있다보니 오랜만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언젠가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를 우연히 찾다 범우사에서 지난 2022년에이 책이 새롭게 출간된 걸 알았다. 옛날 판은 너무 구닥다리라 읽을 맛이 안 났는데 이렇게 나와주니 슬쩍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난 몇년 전, 동서문화사판으로 1권을 사서 읽다가 미처 완독은 하지 못했다. 그나마 저 책도 몇권은 품절 상태라 다 구할 수도 없다. 뭐가 이렇게 들쑥날쑥인 건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난 3월 극단 '학전'이 문을 닫았다. 경영난과 대표인 김민기 씨의 건강 문제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 알만한 배우들은 이곳을 거쳐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잘된 배우도 꽤 있을텐데 그렇게 묻을 닫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나 아쉽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왜 그런 논의가 없었을까 싶기도하고. 김민기의 그늘이 얼마나 깊은데. 그래서 뭐라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마침 S 본부에선 3주에 걸쳐 김민기와 학전을 조명하는 다큐 프로를 방영했는데 보면서 마음이 좀 숙연해졌다. 극단 문을 닫을 정도면 김민기 대표의 건강도 장담은 못하는 상태라는 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고. 경제가 안 좋으니 공연계라고 좋을 리 있겠나.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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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5-03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던 조경란 작가의
<불란서 안경원>이 생각나요.
그때 좋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학전을 거쳐간 배우도 많고~~
김민기가 저항의 아이콘 이었잖아요.
건강 회복하시면 좋겠어요^^

stella.K 2024-05-04 10:05   좋아요 1 | URL
작가님이 단아하고 매력적이었죠. 책도 역시 그렇게 쓰시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아직도 글을 쓰고 있다는 게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 쉽지 않을텐데. 잊고 있었는데 기회있는대로 몇 작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누구라도 좀 학전을 계속 이어줘서 배우의 산실이 되면 좋을텐데 그렇게되 사람이 없나 안타까워요.

cyrus 2024-05-04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펴낸 문학사상사 출판사가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서 이상문학상 운영 판권을 다른 출판사에 매각한대요. 아직 협의 중이라는데 새로운 출판사를 찾지 못하면 이상문학상이 잠정 중단될 수 있겠어요.

stella.K 2024-05-04 11:08   좋아요 0 | URL
헉, 정말? 안타깝다. 그런 문학상은 정부에서도 좀 도와주고 그래야 할 텐데 어쩌면 좋아. ㅠ

페크pek0501 2024-05-04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경란 작가가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우수 작품으로는 몇 번 담겼었죠. 그러니까 대상 후보로 몇 번은 거론된 셈이죠. 드디어 대상이네요...

stella.K 2024-05-04 12:3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대상은 하늘이 내는가 봐요.ㅎ 이제 원도 한도 없을 것 같아요. 괜히 제가 다 뿌듯하더라구요. ㅎㅎ

루쉰P 2024-05-04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랜만에 와서 댓글 남기네요 ^^ 여전히 열심히 독서 중이시네요. 부럽습니다.

stella.K 2024-05-04 20:27   좋아요 0 | URL
어머낫! 이게 누구십니까? 반갑네요. 이렇게 인사도 남겨주시고. 잘 지내시죠? 근데 예전만 같지는 않죠. 차마 비워둘 수 없어 가끔 잊을만 할 때 한번씩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자주 뵈면 좋겠네요.^^

2024-05-04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05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24-05-05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서에서 나온 장 크리스토프 읽다가 눈물 질질 짠 1인입니다. 할아버지와 손자 씬에서요. 음악 좋아하시는 분한테는 필독서 아닐까 싶네요. 쇤베르크 도플갱어. ㅎㅎ

stella.K 2024-05-05 20:30   좋아요 0 | URL
울기는...근데 어느 부분이었나 들쳐보고 싶어지네요. ㅋㅋㅋ
동서가 가성비가 좋긴하죠.
근데 저 범우에서 나온 거 보니까 사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역시 눈이 보배인 것 같습니다.ㅠ

yamoo 2024-05-14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올해 이상문학상은 조경란 작가가 탔군요!
헌데 이상문학상은 이제 더이상 그 가치가 없다고...저는 오래전부터 생각했었습니다. 아마 그런 생각이 지배적일때 한국문학 읽기를 끝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진짜 돌아가면서 타먹는 상 같아요. 모든 주요문학상들 보면 지금 한국 문단에 나와 있는 작가들은 돌아가면서 탔던거 같아요.
뭐, 어쨌거나 조경란 작가의 작품을 2000년 전후로 하여 몇 권 읽어봤는데 서하진 작가와 더불어 되게 재미없었던 소설들로 기억합니다. 뭐 그렇게 지루하게 서사를 끌어가는지....그때 읽었던 느낌이에요. 문학은 정말 재미와 감동이 있는 걸 읽어야 합니다.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안하지만 한국소설들은 건너뛰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부차티 같은 작가를 만날 수조차 없어요. 네,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조경란 작가...여전히 건재하나 봅니다.ㅎㅎ

stella.K 2024-05-14 20:01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얘기는 예전에 들었죠.
근데 조 작가가 28년만에 대상을 받은 걸 보면 그런 관행도
예전만 같지는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동안 후배들이 상을 먼저 타는 것을 조 작가도 보지 않았을까요?
그만큼 MZ세대 작가들이 버티고 있으니.
글 쓰는 환경이나 생각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야무님도 달리 생각해 보시죠. ㅎ
울나라 사람들이 울나라 작가를 응원해 주지 않으면 누가 응원하겠습니까?
전 조경란 작가 좋아합니다. 아직도 변함없이 전업작가로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경 받을만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책 몇 권 내고 사라지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데요.ㅠ
 
뇌를 훔친 소설가 -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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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 제목에 '작가' 또는 '소설가'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도 앞의 글자 보다 '소설가'란 글자 때문에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저자의 명성도 한몫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사자마자 읽어야 했는데 머뭇거렸던 건 게을러서가 주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저 '뇌를 훔친'이란 글자 때문이기도 하다. 실은 내가 과포자라서. 더구나 뇌과학이다. 무슨 소설을 읽는데 뇌과학이 필요하단 말인가.


석영중 교수에 대해선 명성만 들어오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운 좋게 EBS에서 연속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작은 체구에 조근조근 러시아 문학에 대해 들려주는데 참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는데 저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유명했다. 우리나라의 유수한 출판번역상을 받은 건 차치하고라도 지난 2000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 저자가 이런 시도를 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더러 이런 연구를 하라고 한다면 멀리 도망갈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데 난 자꾸만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고만 한다. (얼마 전만 해도 키오스크는 선택이었는데 지금 웬만한 식당이나 카페에선 필수가 되었다. 이제 기계치란 말은 더 이상 통할 수 없게 되었다.ㅠ) 이게 뇌의 측면에서 보면 활동성이 둔화되고 작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뇌를 생각하면 싫어도 자꾸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그것을 막아야 한다.


과거에 뇌는 주로 정신과나 신경과에서 다뤘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인지심리학이나 신경생리학 등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심리학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도 한때는 심리학에 미처 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돌아섰던 건 앞서 말한 대로 과학 포기자여서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은 문과지만 이과적 학문이기도 하다).


처음엔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예측한다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세분화하고 분석한다는 게 점점 거부감이 느껴졌다. 물론 어떤 이는 인간을 더 깊이 알아가겠지만 나는 좀 그렇지 않았다. 뭐 그런 게 아니더라도 그 알량한 지식 가지고 감히 인간을 분석하려고 하는 게 왠지 주제넘게 느껴졌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신세계를 보는 듯했다. 내가 심리학이란 학문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난 과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적어도 저자가 뇌과학을 통해 문학을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 건 정말 경의를 표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책 초반에 나오는 푸시킨의 <에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주인공 오네긴과 그를 사랑한 타티아나의 이야기를 빗대어 저자는 뇌과학의 '거울 뉴런'을 설명한다. 특히 타티아나는 소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소설 속 인물과 동일시했다. 그걸 흔히 아는 말로 모방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거울 뉴런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소설 좀 읽었다고 무슨 거울 뉴런이고 모방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자살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하지 않는가. 놀라운 건 실연 당한 사람만이 아니라 실연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솔로도 자살을 했다고 하니 책이 주는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싶다. 지금은 책 보다 영상으로 옮겨간듯하지만. 오래전에 '600만 불의 사나이'가 방영됐을 때 높은 곳에서 어린아이들이 떨어져 죽는 일이 있었다. 주인공처럼 자신에게도 초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그게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고 모방 범죄나 폭력이 늘어났다고 하니 보는 것 거울 뉴런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 책엔 톨스토이에 대한 일화도 나온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상당한 도덕 주의자며 나이 들어서도 열심히 공부한 학구파이기도 하다. 특히 인생 후기엔 종교에 심취해 신앙 서적을 많이 보았고 설교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중엔 신학에 관한 책도 썼다.) 그 덕분에 그는 80 넘어서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장수하며 살았다. 물론 그의 최후는 객사이긴 했지만 그건 가출로 인해 체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지 어떤 질병이 그를 잠식한 건 아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오래 장수하고 싶으면 공부하기를 멈추지 말고, 특히 외국어 공부를 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정작 이 책에서 인상 깊게 본 건 따로 있다. 그건 프루스트다. 이 책은 주로 러시아 문학을 다루긴 했지만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프루스트의 불멸의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빠지면 안 될 것이다. (알다시피 프루스트는 프랑스 작가다.) 뇌과학에서 '기억'을 서사로 푸는데 이만한 작품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그 유명한 '프루스트 효과'란 이론도 나오지 않았는가.


프루스트는 병약했고 일생 기억하고 쓰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꼭 그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녹여 작품을 쓴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자전을 쓴다. 경험을 말한다는 건 기억하는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어찌 보면 세상 편한 직업이면서 (펜과 종이 또는 노트북만 있으면 되니까) 동시에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다. 세상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글로 쓰는가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글을 쓰지만 한쪽에선 기억이란 정확한 것이 아니란다.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인 만큼 기억도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서전은 다 가짜라고 비판한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말만이 유일한 진실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프루스트의 책은 한낱 개고생의 끝판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발견하게 되는 건 기억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을 떠도는 오기억 혹은 인출 뒤 다시금 변형되어 새로운 고착을 기다리는 '기억의 재고착'을 발견하는 거라고 했다(184p). 말이 좀 어렵다. 즉 하나의 서사로 재구성될 수 있는 상상력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가 프루스트의 작품을 대할 때 그가 얼마나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를 보려고 읽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가 불멸의 작품을 썼다는 것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오기억일지 모르지만 (뇌과학에 의한다면 이제 기억이나 추억을 말할 때 꼭 이 말을 붙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온 기억을 전부 글로 쓴다면 그 양은 책 몇백 권 분량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즉 평생을 써도 다 못 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건 여전히 그의 기억의 일부를 쓴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건 그는 썼고 우리는 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작가와 독자가 나뉘는 지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랬다. 작가는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죄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하는 형벌을 받는 거라고. 그렇다면 작가는 관찰과 기억을 과다하게 쓰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또 그런 걸 생각하면 작가를 마냥 동경해도 좋을지 알 수가 없다.


기억이 작가의 것이라면 망각은 독자의 것이다. 저자는 알렉산드르 루리야란 러시아 심리학자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란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번역된 적은 있지만 절판됐다.) 그가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그 기억이란 것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망각은 확실히 축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가 작가의 작품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억하고 있다는 건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빨리 잊어줘야 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잊지 못한다면 자신도 괴롭지만 작가는 다음 작품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작가는 독자가 자신의 작품을 잊었다고 서운해하거나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독자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작품이 좋았다면 다음 작품을 기다릴 것이고, 만약 나쁘다면 한 달 뒤 자신이 무슨 책을 가지고 이를 갈았는지 기억도 못 할 것이다. 그러니 망각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다 좋은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흥미로운 책을 나는 왜 지금껏 읽지 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검색해 보느라 좀 바빴다. (사실 이건 언제부턴가 나의 습관으로 고착되어버렸다.) 특히 조나 레러의 '프루스트는 신경과 학자였다'란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 역시 아쉽게도 절판됐다. ㅠ) 하지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의 찾아서'만큼 읽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조만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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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5-04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뇌‘라는 글자가 들어간 책엔 무조건 흥미가 생겨요. 유튜브 볼 때도 그런 걸 선호합니다.
최근에 <운동화 신은 뇌>라는 책을 읽었는데 운동을 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 수 있는 책이에요. 어느 학교에서 0교시에 체육 수업을 시켰더니 학생들의 성적이 올랐다는 건 유명화 사례죠. 우울증은 뇌와 깊은 관련이 있어 운동이 우울증 예방도 되고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많은 연구와 사례가 담겨 있어요. 뇌과학은 앞으로도 공부하고 싶은 분야예요.^^

stella.K 2024-05-04 12:38   좋아요 1 | URL
와~ 그러고 보면 언니가 읽지않은 분야가 뭐가 있을까 싶어요. 뇌과학 분야는 대중적으로도 활발하게 알려져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첫 댓글 고맙습니다.ㅋ
 








<<빙점>>은 두 번 정도 읽은 작품인데 소박한 문체도 좋지만 어떤 글을 써야할 것인가에 뭔가의 이정표를 제시해줬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래>>는 동화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있었다니 스스로 놀랐던 작품이다.

<<부할>> 톨스토이는 어떠한 최상급의 수사적 표현을 쓰더라도 다 가능한 작가가 아닌가. 

<<예술가로산다는 것>> 몇년 전 읽었는데 어느새 절판이 돼서 어느 개인 중고서점에서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찌감치 사두길 잘한 것 같은데 내 방구석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텐데 끄집어 내기가 자신이 없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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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4-24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활이 인생책이시군요 네 저 역시 부활도 좋아합니다...

stella.K 2024-04-24 16:47   좋아요 1 | URL
저는 역시 톨스토이가 좋더라구요.^^

페넬로페 2024-04-24 1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빙점‘, 읽어보겠습니다~^
저도 ‘부활‘ 좋았는데 한 번씩 등장하는 톨스토이의 장황한 세계관이 조금 걸려요 ㅎㅎ

stella.K 2024-04-27 20:22   좋아요 0 | URL
사춘기 한때 미우라 아야꼬를 좋아해서 나름 꽤 읽었죠.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 작가 때문에 일본문학도 알게되었지요. 페페님은 어떻게 느끼실지 긍금하네요.^^

페크pek0501 2024-04-25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빙점과 부활을 예전에 읽었습니다.
여러 서재에서 인생 네 권의 페이퍼를 보니 재밌습니다.^^

stella.K 2024-04-26 09:55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이번엔 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장식장에 걸 수 있게해놨잖아요. 언니도 한번 하셔야죠.^^

페크pek0501 2024-04-27 18:05   좋아요 1 | URL
언니도 한 번 하셔야죠, 라는 스텔라 님의 댓글이 떠올라 오늘 인생 네 권의 페이퍼를 작성했는데 도중에 살짝 후회했어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요.ㅋㅋ 제가 쓴 글을 옮겨와 작성할 생각이어서 쉽게 끝날 줄 알았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 고칠 부분이 눈에 띄고 사진을 올일 일도 생기고... ㅋㅋ 이젠 제가 배터리가 다 됐나 봅니다. 이 간단한 일에 쉽게 지쳐요. 예전엔 어떻게 글을 많이 올렸을까 싶네요.
배터리가 다 됐나 봐요. 안 그래도 나이듦을 요즘 새삼 느끼고 있었는데 아, 슬퍼져용..

stella.K 2024-04-27 20:22   좋아요 1 | URL
앗, 안됩니다. 다 되시다뇨. 물론 그런 때가 있어죠. 그때는 젊기도 했지만 개인 블로그가 생긴다는 게 신기해서일 겁니다. 이젠 그걸 해 온 세월만해도 20년을 헤아리니 새로울 게없죠. 저는 필사라도 해 볼까 했는데 늘 생각뿐이지 안되네요.

인생책을 네 권만 고른다는 건 역시 말도 안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알라딘이 여러번 할 수는 있지만 적립금은 한 번만 지급한다고 명시한 거겠죠. 이건 그냥 순삭으로 해야해요. ㅎㅎ

2024-04-28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28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28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28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감 2024-05-01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천명관 작품이 있을줄 알았읍니다 ㅋㅋㅋㅋㅋㅋ
빙점의 명성은 알고 있었는데 분량의 압박으로 손이 안가더라고요...

stella.K 2024-05-01 11:05   좋아요 1 | URL
제가 천명관을 픽한 걸 이리 좋아하시다닛!ㅋㅋㅋ 근데 고령화 가족까지는 좋았는데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좀 별로더군요.
빙점은 두권짜리는 좀 부담스럽고 예전에 범우사에서 문고판으로 나온게 있는데 그게 참 좋았습니다. 책은 원본으로 읽어야겠지만 축약본도 나쁘지 않는 것 같아요. ㅋㅋ

cyrus 2024-05-01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느라 알라딘 마을에 일주일 정도 안 나타났는데, 그사이에 알라딘 마을에 ‘인생 네 책’이 유행하고 있었네요. ㅎㅎㅎ

stella.K 2024-05-02 09:56   좋아요 0 | URL
너는 참가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40권이라면 모를까 4권만 어떻게 뽑니? 그지? ㅋ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동생 볼프강 모차르트에 가려진 누나 나넬의 삶을 그렸다. 음악성은 동생 못지 않았는데 시대를 잘 못 타고났다고 할 밖에. 그나마 (진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부모는 나름 나쁘지 않은 부모였다는 것. 

한때 부모를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 보려고 했지만 다시 돌아와 

스스로 자신의 음악적 자질을 접고 평범한 삶을 산다. 그 시대치곤 장수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선 볼프강의 존재 크게 나오지만 이 영화에선 한낱 소년으로 나와 묘한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영화를 보니 갑자기 비발디의 생애가 궁금해졌다. 성직자지만 그가 음악활동을 하는 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특별히 오페라란 장르가 그다지 환영 받지 못했다는 건 시대 탓인 건지 아니면 비발디였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 그게 좀 모호하다. 당대의 사람들은 비발디가 성직에 충실해 주길 바랐던 것고 같고.

아무튼 이 영화를 보면 귀가 호강하는 건 확실하다. 비발디의 음악을 장면 장면마다 잘 살려서 들려준다. 




작화는 요즘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확실히 떨어진다.  하지만 누가 감히 이 작품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게된 계기가 바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하도 오래된 일이라 가물가물하다.) 그건 나만 그러진 않았을 것 같다. 어느 시대건 여자 아이라면 누구나 자기 도서목록에 이 책 한 권쯤 끼어있지 않을까?

20년 전쯤이었나? TV 외화시리즈로 방영되기도 했는데 거의 환호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 작품은 '플란더스의 개'와 함께 애니메이션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재밌는 건 이번에 볼 때 난 앤 보다는 다소 무뚝뚝하고 어린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마릴라 아줌마한테 더 마음이 갔다는 것. 이거 꼭 나를 보는 것 같잖아 했다. ㅎ 

이 작품의 단점은 앤이 어린 때부터 17살(?) 때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요즘의 사춘기 17세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시절 17세는 이미 성인으로 진입하는 때다.) 키와 얼굴 선만 다소 성숙한 모습으로 나오고 머리 모양이나 옷 모양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것. 거의 말미에 옷이 바뀌긴 한다.

그리고 등장인물 하나 하나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착하다는 것 앤이 학교에 처음 들어가 길버트가 앤을 홍당무라고 놀리는데 무슨 악의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는 정도. 

하다못해 앤이 학교 장학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를 놓고도 주위에 학교 친구들은 들러리처럼 앤이 안 받으면 누가 받느냐며 옹호할뿐 뚜렸한 경쟁자가 없다. 그나마 앤을 놀렸던 길버트가 경쟁자라면 경쟁잔데 그는 장학금을 받지 않는 대신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메달을 받게 되므로 앤과 공평한 행운을 누린다. 그러니 요즘의 스토리텔링에 익숙한 아이들은 싱겁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긴 나도 바로 이점 때문에 좀 김이 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이렇게 착하게 그려도 영원한 명작으로 남을 수 있는 걸 보면 역시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생각을 했을까? 천국 가면 물어보고 싶다. 

추억이 방울방울 솟는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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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04-22 0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해 보니 모차르트 위인전에 모차르트의 누나가 있다는 내용을 본 것 같아요.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음악이든 지금 보면 촌스럽고 무언가 부족한 점이 보여도.. 그래도 좋아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한 번쯤 생각날 때마다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좋아요. ^^

stella.K 2024-04-22 09:57   좋아요 0 | URL
난 이 영화가 있다는 걸 잊고 살다 이제야 봤다. 그래도 부모가 차별해서 키우지는 않았다는 게 다행이야.
요즘 애니는 거의 실사에 가까울 정도로 입체적이잖아. 그래도 옛 정서는 무시 못하는 거 같아. 모처럼 옛 추억에 빠져 봤다. ^^

페크pek0501 2024-04-25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많이 보셨네요. 뿌듯하시겠어요.
저는 요즘 넷플릭스 영화를 안 보게 되고 유튜브 동영상을 많이 보게 됩니다. 법륜 스님과 강신주 님의 강의 그리고 심리학 강의를 들어요. TV로 볼 수 있어 좋답니다.^^

stella.K 2024-04-26 10:00   좋아요 0 | URL
ㅎㅎ 아무래도 TV로 보면 좀 편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도 유튭을 tv로 볼 수 있다는데 전 아직 한번도 그렇게 안 봐봤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