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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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인가 싶기도 하다. 또 어찌 보면 '영감이 오는 순간'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수도 없이 발단만을 쓰고 완성하지 못한 어느 고독한 소설가 지망생의 습작 원고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봤더니 소설집이다. 아니 그보단 둘 다를 섞어놓은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또는 소설 작법을 소설로 보여주는 책이라고 해야 할 것도 같고.


저자가 좀 낯설긴 한데 모 대학 문창과 교수고 그동안 몇 권의 책도 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소설의 구성 요소를 따르기 때문이다. 즉 발단-전개-절정(또는 갈등)- 결말 각 단계가 의미하는 바와 방법을 설명하고 또 그에 맞는 몇 편의 플래시 픽션(아주 짧은 소설)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의 경우 소설 작법 따로 작품집 따로 내지 않는가. 그런데 이 책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다. 저자의 이런 시도가 다소 엉뚱하기도 하고, 때론 야심 차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시도 마음에 든다. 일단 신선하지 않은가. 작품도 플래시 픽션이라고 하지만 저자 특유의 예리한 필치가 느껴져 나름 만족하며 읽었다.


특히 소설의 각 단계를 설명한 글이 심플하면서도 뇌리에 박힌다. 이렇게 깔끔하게 썼다면 굳이 두꺼운 소설작법서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건 그 나름의 매력과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요즘 작법서들 정말 눈 돌아가게 잘 나와있다. 하지만 그런 책만 읽으면 정작 창작을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도움은 되겠지만 그런 책 읽었다고 글을 더 잘 쓰는 건 아니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작법에 관한 설명은 최소화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동기유발을 시켜 직접 써보게끔 하려고 이 책을 낸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작품으로 말해야지 작법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우선 저자는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는 일에 앞서,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알겠지만 소설을 야구 경기에 빗댄 말이다. 그러고는 발단을 서핑에 비유한다. 멋진 파도가 왔고, 그것을 잡기 위해 팔을 젓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발단이다. 지금까지 발단을 이렇게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평생 서핑을 타지 못했어도 이해가 된다. 훅하고 바닷바람을 맞는 것 같았다.


전개는 어떤가. 서핑은 네 단계로 이루어졌는데, 팔을 젓기, 일어서기, 파도타기, 파도에서 내려오기가 그것이다. 그중 전개는 서핑보드 위에 올라서는 과정이란다.


그렇다면 절정은 어떠한가? 짐작했겠지만 파도타기다. 하지만 중요한 건 화려하게 파도를 잡아야지 그것에 먹히면 안 된다.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절정은 소설의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며 좋은 절정은 다른 클라이맥스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그것이 전부인 건 맞지만 절벽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즉 클라이맥스를 만들겠다고 등장인물을 절벽 끝으로 몰아가는 건 좋지만 거기서 추락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서핑으로 말하면 파도에서 나오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다. 세상에 어떤 작가가 절정에서 등장인물 그것도 주인공을 죽인단 말인가. 그런 만큼 작가는 절정에서 결말로 가는 길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결말은 외길이어야 한다고 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소설은 야구의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과 같다고. 그 말은 소설을 쓸 때 결말부터 생각하고 쓰라는 말이다. 이걸 또 서핑에 비유하자면, 서핑 고수는 파도에서 빠져나오면서 자기가 탄 파도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결말부터 쓰거나 아무튼 결말을 설정하고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글쓰기의 영원한 명제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을 이처럼 잘 실천한 글이 또 있을까 싶다. 더구나 소설 작법을 말이다. 이만하면 더 이상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은 그만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고 작품에서 각 단계별로 그것을 증명해 보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시도는 나쁘지 않은데 난 잘 모르겠다. 각 단계별로 나오는 짧은 소설이 각자의 포지션을 의미하고 있는지. 워낙에 짧은 소설이고 각 소설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결미를 보여주고 있는데 무슨... 차라리 그럴 것 같으면 작품 하나 가지고 각을 뜨듯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을까. 마침 초단편을 쓰는 어느 작가가 그에 대한 작법을 소개한 책도 나와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책의 '소설을 잘 쓰려면'이란 제목의 소설은 위의 내용과 계속 이어 어질만해서 언급해 본다. 거듭 말하지만 소설은 야구의 9회 말 투 아웃 만루다. 그리고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완성한 소설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 그게 누구든 간에 뭐에 관한 소설이라고 간단 명료하게 알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궁금증을 유발해야 한다. 이를테면 '소설을 잘 쓰려면'이란 소설의 내용은 그것을 잘 하지 못해 버벅거리는 상황에서 화자의 교수에게서 도움을 받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얘기다.


이때 교수는 더불어 짧게 쓸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얼마나 중요한지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기까지 하는데 그는 어느 책에선가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길게 쓸 수밖에 없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라고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줄여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설이고, 그 줄여 말한 게 재미있어야 영원한 소설이라며 그걸 화자인 제자에게 등단선물처럼 남겨준다. 이 부분을 읽는데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직도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고 하얀 화면에 껌뻑이는 커서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소설가 지망생을 시크하게 위로하는 것만 같다.


그렇지 않아도 저자가 서문에서 이 책을 내는 의도를 무려 8 가지로 밝혔는데 좀 울컥했다. (지면상 다 밝힐 수는 없고 책에서 직접 확인하길) 저자가 정말 소설에 진심이구나 싶었다. 실제로도 작품을 읽어보면 정말 열심히 꾹꾹 눌러가며 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원고를 들고 편집자를 찾아갔을 때 편집자가 그런 말을 하더란다. 백일장에서 1등 먹은 소설 같다고. 한마디로 잘 쓴 작품이라는 소리다. 이런 말을 읽고 질투든 자존심에 스크래치든 궁금증이든 뭐든 느끼는 사람이 글을 쓸 것이다. (저자가 밝히진 않았지만 이게 제9의 의도는 아닐까. 아님 말고.)


솔직히 나는 작법에 관한 책을 내는 작가들은 특별할 수는 있어도 존경하지는 않는다. 또한 한때 열심히 작품을 썼으나 이러저러한 문학상 심사위원으로나 후학양성으로 자리를 옮겨 앉거나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작가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있다. 난 사람들이 읽든 안 읽든 여전히 글을 쓰는 작가를 존경한다. 궁극적으로 그런 작가가 있기 때문에 그의 뒤를 보고 쫓아가는 후배 작가가 있는 거지 그런 '빨간펜 선생님' 때문에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런 선생이 자신의 작품도 꾸준히 내고 있다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이제 소설 작법 그만 봐라. 빨간펜 선생님도 그만 만나라. 양을 이기는 질은 없다. 많이 보고, 많이 쓰는 것 그것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지금은 자신의 작품을 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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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05-16 0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장전으로 이어지는 야구 경기를 소설로 비유하면, 결말이 있어도 작가가 더 쓸 내용이 남았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면 연장전 게임은 ‘연작 소설’이겠군요. ㅎㅎㅎ

stella.K 2024-05-16 10:0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럴수도 있지. 그래서 중편 정도되는 걸 장편으로 늘리기도 하니까. 근데 저자는 결말을 알고 쓰라는 뜻인데 저자도 너와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 ^^
 
뇌를 훔친 소설가 -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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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 제목에 '작가' 또는 '소설가'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도 앞의 글자 보다 '소설가'란 글자 때문에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저자의 명성도 한몫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사자마자 읽어야 했는데 머뭇거렸던 건 게을러서가 주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저 '뇌를 훔친'이란 글자 때문이기도 하다. 실은 내가 과포자라서. 더구나 뇌과학이다. 무슨 소설을 읽는데 뇌과학이 필요하단 말인가.


석영중 교수에 대해선 명성만 들어오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운 좋게 EBS에서 연속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작은 체구에 조근조근 러시아 문학에 대해 들려주는데 참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는데 저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유명했다. 우리나라의 유수한 출판번역상을 받은 건 차치하고라도 지난 2000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 저자가 이런 시도를 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더러 이런 연구를 하라고 한다면 멀리 도망갈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데 난 자꾸만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고만 한다. (얼마 전만 해도 키오스크는 선택이었는데 지금 웬만한 식당이나 카페에선 필수가 되었다. 이제 기계치란 말은 더 이상 통할 수 없게 되었다.ㅠ) 이게 뇌의 측면에서 보면 활동성이 둔화되고 작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뇌를 생각하면 싫어도 자꾸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그것을 막아야 한다.


과거에 뇌는 주로 정신과나 신경과에서 다뤘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인지심리학이나 신경생리학 등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심리학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도 한때는 심리학에 미처 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돌아섰던 건 앞서 말한 대로 과학 포기자여서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은 문과지만 이과적 학문이기도 하다).


처음엔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예측한다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세분화하고 분석한다는 게 점점 거부감이 느껴졌다. 물론 어떤 이는 인간을 더 깊이 알아가겠지만 나는 좀 그렇지 않았다. 뭐 그런 게 아니더라도 그 알량한 지식 가지고 감히 인간을 분석하려고 하는 게 왠지 주제넘게 느껴졌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신세계를 보는 듯했다. 내가 심리학이란 학문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난 과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적어도 저자가 뇌과학을 통해 문학을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 건 정말 경의를 표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책 초반에 나오는 푸시킨의 <에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주인공 오네긴과 그를 사랑한 타티아나의 이야기를 빗대어 저자는 뇌과학의 '거울 뉴런'을 설명한다. 특히 타티아나는 소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소설 속 인물과 동일시했다. 그걸 흔히 아는 말로 모방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거울 뉴런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소설 좀 읽었다고 무슨 거울 뉴런이고 모방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자살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하지 않는가. 놀라운 건 실연 당한 사람만이 아니라 실연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솔로도 자살을 했다고 하니 책이 주는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싶다. 지금은 책 보다 영상으로 옮겨간듯하지만. 오래전에 '600만 불의 사나이'가 방영됐을 때 높은 곳에서 어린아이들이 떨어져 죽는 일이 있었다. 주인공처럼 자신에게도 초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그게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고 모방 범죄나 폭력이 늘어났다고 하니 보는 것 거울 뉴런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 책엔 톨스토이에 대한 일화도 나온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상당한 도덕 주의자며 나이 들어서도 열심히 공부한 학구파이기도 하다. 특히 인생 후기엔 종교에 심취해 신앙 서적을 많이 보았고 설교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중엔 신학에 관한 책도 썼다.) 그 덕분에 그는 80 넘어서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장수하며 살았다. 물론 그의 최후는 객사이긴 했지만 그건 가출로 인해 체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지 어떤 질병이 그를 잠식한 건 아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오래 장수하고 싶으면 공부하기를 멈추지 말고, 특히 외국어 공부를 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정작 이 책에서 인상 깊게 본 건 따로 있다. 그건 프루스트다. 이 책은 주로 러시아 문학을 다루긴 했지만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프루스트의 불멸의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빠지면 안 될 것이다. (알다시피 프루스트는 프랑스 작가다.) 뇌과학에서 '기억'을 서사로 푸는데 이만한 작품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그 유명한 '프루스트 효과'란 이론도 나오지 않았는가.


프루스트는 병약했고 일생 기억하고 쓰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꼭 그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녹여 작품을 쓴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자전을 쓴다. 경험을 말한다는 건 기억하는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어찌 보면 세상 편한 직업이면서 (펜과 종이 또는 노트북만 있으면 되니까) 동시에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다. 세상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글로 쓰는가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글을 쓰지만 한쪽에선 기억이란 정확한 것이 아니란다.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인 만큼 기억도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서전은 다 가짜라고 비판한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말만이 유일한 진실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프루스트의 책은 한낱 개고생의 끝판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발견하게 되는 건 기억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을 떠도는 오기억 혹은 인출 뒤 다시금 변형되어 새로운 고착을 기다리는 '기억의 재고착'을 발견하는 거라고 했다(184p). 말이 좀 어렵다. 즉 하나의 서사로 재구성될 수 있는 상상력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가 프루스트의 작품을 대할 때 그가 얼마나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를 보려고 읽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가 불멸의 작품을 썼다는 것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오기억일지 모르지만 (뇌과학에 의한다면 이제 기억이나 추억을 말할 때 꼭 이 말을 붙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온 기억을 전부 글로 쓴다면 그 양은 책 몇백 권 분량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즉 평생을 써도 다 못 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건 여전히 그의 기억의 일부를 쓴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건 그는 썼고 우리는 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작가와 독자가 나뉘는 지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랬다. 작가는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죄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하는 형벌을 받는 거라고. 그렇다면 작가는 관찰과 기억을 과다하게 쓰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또 그런 걸 생각하면 작가를 마냥 동경해도 좋을지 알 수가 없다.


기억이 작가의 것이라면 망각은 독자의 것이다. 저자는 알렉산드르 루리야란 러시아 심리학자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란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번역된 적은 있지만 절판됐다.) 그가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그 기억이란 것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망각은 확실히 축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가 작가의 작품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억하고 있다는 건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빨리 잊어줘야 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잊지 못한다면 자신도 괴롭지만 작가는 다음 작품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작가는 독자가 자신의 작품을 잊었다고 서운해하거나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독자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작품이 좋았다면 다음 작품을 기다릴 것이고, 만약 나쁘다면 한 달 뒤 자신이 무슨 책을 가지고 이를 갈았는지 기억도 못 할 것이다. 그러니 망각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다 좋은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흥미로운 책을 나는 왜 지금껏 읽지 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검색해 보느라 좀 바빴다. (사실 이건 언제부턴가 나의 습관으로 고착되어버렸다.) 특히 조나 레러의 '프루스트는 신경과 학자였다'란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 역시 아쉽게도 절판됐다. ㅠ) 하지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의 찾아서'만큼 읽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조만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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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5-04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뇌‘라는 글자가 들어간 책엔 무조건 흥미가 생겨요. 유튜브 볼 때도 그런 걸 선호합니다.
최근에 <운동화 신은 뇌>라는 책을 읽었는데 운동을 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 수 있는 책이에요. 어느 학교에서 0교시에 체육 수업을 시켰더니 학생들의 성적이 올랐다는 건 유명화 사례죠. 우울증은 뇌와 깊은 관련이 있어 운동이 우울증 예방도 되고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많은 연구와 사례가 담겨 있어요. 뇌과학은 앞으로도 공부하고 싶은 분야예요.^^

stella.K 2024-05-04 12:38   좋아요 1 | URL
와~ 그러고 보면 언니가 읽지않은 분야가 뭐가 있을까 싶어요. 뇌과학 분야는 대중적으로도 활발하게 알려져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첫 댓글 고맙습니다.ㅋ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동생 볼프강 모차르트에 가려진 누나 나넬의 삶을 그렸다. 음악성은 동생 못지 않았는데 시대를 잘 못 타고났다고 할 밖에. 그나마 (진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부모는 나름 나쁘지 않은 부모였다는 것. 

한때 부모를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 보려고 했지만 다시 돌아와 

스스로 자신의 음악적 자질을 접고 평범한 삶을 산다. 그 시대치곤 장수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선 볼프강의 존재 크게 나오지만 이 영화에선 한낱 소년으로 나와 묘한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영화를 보니 갑자기 비발디의 생애가 궁금해졌다. 성직자지만 그가 음악활동을 하는 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특별히 오페라란 장르가 그다지 환영 받지 못했다는 건 시대 탓인 건지 아니면 비발디였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 그게 좀 모호하다. 당대의 사람들은 비발디가 성직에 충실해 주길 바랐던 것고 같고.

아무튼 이 영화를 보면 귀가 호강하는 건 확실하다. 비발디의 음악을 장면 장면마다 잘 살려서 들려준다. 




작화는 요즘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확실히 떨어진다.  하지만 누가 감히 이 작품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게된 계기가 바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하도 오래된 일이라 가물가물하다.) 그건 나만 그러진 않았을 것 같다. 어느 시대건 여자 아이라면 누구나 자기 도서목록에 이 책 한 권쯤 끼어있지 않을까?

20년 전쯤이었나? TV 외화시리즈로 방영되기도 했는데 거의 환호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 작품은 '플란더스의 개'와 함께 애니메이션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재밌는 건 이번에 볼 때 난 앤 보다는 다소 무뚝뚝하고 어린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마릴라 아줌마한테 더 마음이 갔다는 것. 이거 꼭 나를 보는 것 같잖아 했다. ㅎ 

이 작품의 단점은 앤이 어린 때부터 17살(?) 때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요즘의 사춘기 17세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시절 17세는 이미 성인으로 진입하는 때다.) 키와 얼굴 선만 다소 성숙한 모습으로 나오고 머리 모양이나 옷 모양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것. 거의 말미에 옷이 바뀌긴 한다.

그리고 등장인물 하나 하나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착하다는 것 앤이 학교에 처음 들어가 길버트가 앤을 홍당무라고 놀리는데 무슨 악의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는 정도. 

하다못해 앤이 학교 장학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를 놓고도 주위에 학교 친구들은 들러리처럼 앤이 안 받으면 누가 받느냐며 옹호할뿐 뚜렸한 경쟁자가 없다. 그나마 앤을 놀렸던 길버트가 경쟁자라면 경쟁잔데 그는 장학금을 받지 않는 대신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메달을 받게 되므로 앤과 공평한 행운을 누린다. 그러니 요즘의 스토리텔링에 익숙한 아이들은 싱겁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긴 나도 바로 이점 때문에 좀 김이 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이렇게 착하게 그려도 영원한 명작으로 남을 수 있는 걸 보면 역시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생각을 했을까? 천국 가면 물어보고 싶다. 

추억이 방울방울 솟는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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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04-22 0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해 보니 모차르트 위인전에 모차르트의 누나가 있다는 내용을 본 것 같아요.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음악이든 지금 보면 촌스럽고 무언가 부족한 점이 보여도.. 그래도 좋아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한 번쯤 생각날 때마다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좋아요. ^^

stella.K 2024-04-22 09:57   좋아요 0 | URL
난 이 영화가 있다는 걸 잊고 살다 이제야 봤다. 그래도 부모가 차별해서 키우지는 않았다는 게 다행이야.
요즘 애니는 거의 실사에 가까울 정도로 입체적이잖아. 그래도 옛 정서는 무시 못하는 거 같아. 모처럼 옛 추억에 빠져 봤다. ^^

페크pek0501 2024-04-25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많이 보셨네요. 뿌듯하시겠어요.
저는 요즘 넷플릭스 영화를 안 보게 되고 유튜브 동영상을 많이 보게 됩니다. 법륜 스님과 강신주 님의 강의 그리고 심리학 강의를 들어요. TV로 볼 수 있어 좋답니다.^^

stella.K 2024-04-26 10:00   좋아요 0 | URL
ㅎㅎ 아무래도 TV로 보면 좀 편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도 유튭을 tv로 볼 수 있다는데 전 아직 한번도 그렇게 안 봐봤네요. ㅎ
 


장동건이 악역으로 나오는 걸 본건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닐까 싶다. 이전에도 악역을 했었나? 악역이기도 하지만 변태이기도 하다. 어쩌면 자기 아내와 자식을 그런 식으로 피를 말리는지. 그런데 그 악역을 나름 괜찮게 연기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장동건 보단 류승룡을 위한 영화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성애든 모성애든 모든 상황에서 다 용납되고 아름다운 건 아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몰살시킨 백치 같은 악역도 있다. 그전에 실수로 달리는 차에 뛰어든 아이를 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니 살기를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그는 사형수가 됐지만 사형이 집행되기 전 마지막으로 아들을 만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들 역은 고경표가 맡았는데 촌스러운 까까머리에 고뇌를 잔뜩 뒤짚어 쓴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류승룡의 고군분투하는 역이 하도 인상적여 별 세개 반은 줘야할 것 같다.  


난 정유정 작가를 그다지 안 좋아했는데 영화를 보니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이 그래서 그런지 낮의 밝음 보단 밤의 어둡고 음산한 이미지를 잘 살렸다. 





 언젠가 일본 영화로 본 것 같기도한데 가물가물하다. 강동원과 김의성이 출연한 한국판을 봤는데 뭐하나 겹치는 게 없다. 그럼 안 본 건가? 점점 기억이...ㅠ 


암튼 영화가 시작은 좋은데 갈수록 좀 만화 같다는 느낌도 들고 신파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도 역시 강동원과 김의성이 고생하는 연기를 보니 나쁜 평은 하고 싶지가 않다. 특히 악역 전문 배우 김의성이가 여기선 사람을 돕는 선한 역할로 나와 좀 훈훈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엔딩이 참 인상적이다. 


누군가 나의 신분을 도용해 악당으로 만들고 나쁜 놈으로 몰아간다면 어쩔 것인가. 다소 만화 같은 소재지만 아주 불가능한 소재도 아니다. 물론 이런 일은 실제론 잘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착한 사람을 못된 놈 만들면 누가 착한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소설은 그다지 보고 싶지는 않다. 


나도 나이를 먹는지 얼마 전부터 습관적으로 시니어 토크쇼 <<황금연못>> 재방송을 보기 시작하더니 그 여파 때문일까? 괜히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무래도 나의 옛 추억에 가장 근접해 있는 세대가 아닌가. 게다가 울엄니도 요즘 들어 부쩍 옛날 이야기를 많이한다. 어쨌든 그런 그런 분위기를 타고 이 영화까지 보게 되었다. 2015년 작품이니 무려 10년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그런데 워낙 노인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스토리 자체는 별로 시간을 타지 않는 느낌이다. 요즘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휴먼 드라마 내지는 노인 멜로로 봐도 되겠지만 약간의 미스터리를 가미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엔 무슨 이야기가 이렇게 불친절한가? 무슨 필름을 뚝뚝 잘라 먹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중에 마무리는 나름 잘 됐지만. 노인성 치매에 관한 접근도 나름 나쁘지 않게 했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이 이런 영화도 만들다니 좀 놀랍기도 했다.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시도가 좋은 영화란 생각은 들지만 이런 영화가 앞으로도 계속 나온다면 소재를 좀 더 다양화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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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4-09 0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두 권 예전에 읽어서 많이 잊어버리기도 했네요 《7년의 밤》과 《골든슬럼버》... 그때는 책을 읽고 쓴 지도 얼마 안 됐을 때기도 했네요 책도 잘 못 보고 제대로 쓰지도 못했네요 지금도 못 쓰지만... 책을 봤다는 건 기억하네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희선

stella.K 2024-04-10 11:00   좋아요 1 | URL
희선님 벌써 그러시면 어쩌십니까? ㅎㅎ
어쨌든 장르소설 좋아 하시는 희선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골든 슬럼버는 모르겠는데 7년의 밤은 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요. 나중에 읽어 볼까합니다.^^

페크pek0501 2024-04-14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본 두 영화가 있어요. 메이 디셈버, 파묘.
영화관에서 봤는데 전자가 더 좋았어요. 파묘는 무섭기보단 약간 만화영화 같단 생각을 했어요.

stella.K 2024-04-14 20:07   좋아요 0 | URL
부지런하시네요.
저는 이제 극장에 가는 일이 있을까 싶기도해요.
극장엘 안 가니 리뷰를 써도 개봉한지 한참 된 영화를 보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옛날 영화도 본 것 보다 안 본 영화가 많아요.
월정액을 끊어서 보면 비교적 최신 영화를 볼 수도 있는데
그럼 다른 것 못하겠더군요.
이래저래 영화는 저의 애증물인 것 같습니다.ㅎㅎ

파묘가 그렇군요. 저도 감독의 전작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별로 저랑 안 맞는 것 같아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근데 이 영화는
꽤 성공했던 모양입니다. 지난 번에 유퀴즈에도 나오고 그랬더군요.
 
세계 문학 필독서 50 - 셰익스피어에서 하루키까지 세계 문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14
박균호 지음 / 센시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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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을 이리 써 놓으면 안 그래도 고전을 잘 안 읽는 사람은 더 안 읽을지도 모르겠다. 함부로 읽지 말라는데 어떻게 읽느냐며 내심 회심의 미소를 띨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뜻에서 쓴 말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전문학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무턱대고 읽겠다고 덤비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다가 (어떤 책은) 큰코 다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고전을 읽을 때도 이 말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무슨 책을 읽어도 저자의 들어가는 말이나 프롤로그를 읽게 된다. 하물며 우리는 고전을 읽을 때 그 나라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다. 그럴 때 먼저 이런 좋은 해설서를 읽고 읽으면 실패하지 않는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전을 읽으려고 하면 먼저 학창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학교 때 고전을 열심히 읽으라고 선생님들이 그렇게 외치기만 했지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따로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니 새삼 두 가지 정도로 현타가 왔다. 그건 그렇게 선생님이 고전을 읽어라, 읽어라 할 때 청개구리처럼 안 읽었던 것 같은데 또 돌아면 아주 안 읽지만은 않았다는 것. 반복 효과 때문이었을까? 또 좀 놀라웠던 건, 옛날 같으면 감히 알지도 못했을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이 되었다는 거다. 당연한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전의 범위는 넓어지는구나를 새삼 깨닫게 된다. 더구나 지금은 21세기다. 앞으로 어떤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며 다음 세기를 맞이하게 될지 궁금하다. 모르긴 해도 저자가 50권을 선정하는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장점은 우선 정리를 잘 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이 작품을 썼는지가 잘 정리되어 있어 읽으면서도 감탄했다. 또 그런 만큼 내가 몰랐던 지식을 전해주고 있어 읽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과연 저자는 언제 이런 것들을 다 알아내어 썼을까 놀랍기도 하고.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단점도 없지 않다. 그건 아는 척하기 딱 좋다는 것. 고전문학 한 번 읽으려면 큰 숨 한번 내쉬고 읽어야 하는데 이건 날로 먹기 딱 좋다 싶다. 물론 고생스럽게 고전을 읽는 사람이 보면 얄미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해설서만이라도 읽는다는 게 어딘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도 있다는데 읽은 척하는 것도 능력이다. 아무리 천하에 없는 독서광이라도 세상에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그러니 누가 읽은 척하더라도 너그럽게 봐줘라. 그게 읽은 사람의 겸양이고 덕목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장점이 더 많다. 오히려 반대로 이 책을 읽다 고뤠? 하며 그동안 한 번도 읽어 볼 생각이 없는 원본을 펼쳐 볼 확률이 더 많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 작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교정해 준다. 사실 난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대한 인상이 굉장히 안 좋았다. (공교롭게도 난 아직 책으로 읽지 못하고 영화로 봤다.) 특히 난 주인공 험버트가 작가인 나보코프의 페르소나는 아닐까 그런 의심을 했더랬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런 작품이 세계 명작이 될 수 있는지 한때 금서가 되기도 했다는데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하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벼라별 생각을 다했다. 이 책에서도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문학은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는 게 대부분이니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에 대해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소설은 소아성애자를 옹호하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소아성애자를 비판하는 소설로 읽을 수 있다고. 험버트가 자신의 소아성애적 행각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지만, 이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독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도 했다. 더 나아가 나보코프는 소설로 도덕이나 철학 따위를 주장하는 작가를 혐오했으며 자신의 소설이 단순히 소설 그 자체로 읽히기를 원했고, 작품으로 교훈을 주기보다는 문학적 실험과 탐색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했다. 내가 좀 팔랑귀이긴 하지만 저자가 이렇게 쓰고 있으니 내가 좀 예민했나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문학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겠구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나보코프를 잘못 알고 있었을 것이다. 조만간 진짜 나보코프를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이례적(?)인 건 저자가 하루키를 50의 명단에 넣었다는 것이다. 물론 거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니 오히려 제외하는 게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꼭 모든 독자에게 다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나도 마냥 좋아라 하는 작가는 아니다. 본국에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한다. 이를테면 대중적으로 인기는 많지만 순수문학 분야의 최고봉인 아쿠타가와상을 아직 받지 못한 것과 일본이 당면한 현실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 등.

사실 하루키는 이제 '하루키 월드'라는 하나의 문화를 구축했지만 그렇게 하루키를 즐기려 할 뿐 그에 대한 변변한 평론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하루키 성격에 누가 자기 작품을 가지고 평론을 쓰던 뭘 하든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나 같이 초기에 약간의 관심을 가졌다 지금은 거의 냉담으로 돌아선 독자로선 그를 좀 객관적으로 알아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나도 내 취향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너무 무관심한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문학은 취미로 읽을 수 있지만 종국적으론 취향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 내가 뽑아든 책이 문학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작품을 문학사적으로 조망하는데 어느 만큼의 시야를 확보해 주기도 한다.

또한 이 책은 고전 읽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내려놓게 만든다. 예를 들면 '돈키호테'나 '모비 딕'같은 작품은 너무 두꺼워 읽기가 꺼려진다. 게다가 언젠가 누가 썼는지도 모를 리뷰에 부정적인 말 한마디 발견했다고 아예 접어둔다. 그러다 이 책을 읽고 당장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완독까지 이어진다면 뿌듯하겠지.

한 가지 발견한 팁 아닌 팁이 있다면 고전문학도 거의 대부분 작가의 경험이나 본 것을 가지고 썼다는 것. 당연하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을 읽으면 독자가 되고, 쓰면 작가가 된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갈수록 편견과 편독이 심해지고 있다. 그건 하루에도 몇십 권씩 쏟아지는 책의 바다와 그에 비해 나이 들수록 읽을 수 있는 책은 점점 한정되어 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때가 되면 자기만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난 아직도 읽지 못한 고전들이 너무 많다. 정말 내가 죽기 전에 이 책들을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도 이 책이 더 고맙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게 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책을 읽는다는 거 아닌가? 짐승은 책을 읽지 않는다. 어차피 죽을 건데 책은 읽어 뭐하나 하는 건 짐승같이 살다 죽겠다는 말과 같은지도 모르겠다. 그보단 한 권, 아니 한 페이지라도 더 읽기 위해 작은 몸부림이라도 치는 게 더 인간답지 않을까. 그래서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저러 한 이유로 그 책 목록에서 일찌감치 제외했던 책들을 슬그머니 끌어와 목록 속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다 읽고 나면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을 뷔페로 즐긴 듯 포만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고전 명작이 50권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저자의 다음 50권엔 어떤 책을 포함시킬지 궁금하다.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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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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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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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3-26 0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고전이다 하지만, 그 소설이 나왔을 때는 대중소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때를 잘 나타내고 어떤 건 재미있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을 읽을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런 거 모르고 봐도 괜찮은 것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고전은 별로 안 보는군요 어쩌다 보니... 이 책을 보면 읽고 싶은 고전이 생길 것도 같네요


희선

stella.K 2024-03-26 14:47   좋아요 1 | URL
저도 전엔 뭐 읽겠나싶은 책들 이 책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책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24-03-27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이렇게 많이 내시다니... 박균호 님은 능 력 자, 이십니다.
노력이 중요하지만 타고난 능력이란 게 있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stella.K 2024-03-27 16:36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부럽기도 합니다. ㅋ

transient-guest 2024-04-05 0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선생님이 또 책을 내셨네요. 저도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깊이있는 독서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책을 꽤 많이 읽는 저도 이런 책을 읽을때마다 듣도보도 못한 책이 많음에 새삼 놀라곤 합니다. 이렇게 잘 쓴 정리를 보면 원전에 대한 흥미가 생겨 더 찾아보게 됩니다.

박균호 2024-04-05 08: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이번엔 괜찮은 책이어야 할텐데요 ㅎ

stella.K 2024-04-05 19:45   좋아요 2 | URL
맞아요. 그래서 이런 해설서가 필요하더라구요. 박 작가님 정말 부지런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