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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선생의 서공잡기 - 사이공이라 불리운, 도시를 위한 단상
박지훈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베트남에는 딱 한 번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놀러간 건 아니고, 일을 하러 갔던 건데, 그래도 짧은 일정 가운데 시간을 빼서 몇 군데 보고 오기는 했다. 그리고 그 때 공항에 마중을 나와 주시고, 관광일정까지 짜 주신분이 바로 이 책의 작가분이었다. 그 뒤 한국에서 잠시 만난 시간을 합쳐도 채 십 수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사람의 인격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이 책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그런 부분이었다. 책 제목인 서공잡기의 ‘서공’은 베트남 남부의 주요 도시인 사이공(오늘날에는 ‘호치민 시’라고 불린다)의 한자 표기이고, ‘잡기’는 뭐라고 정의내리기 힘든 이 글에 가져다 붙인 장르명이다. 사이공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정도. 뭐 요새야 워낙 인터넷을 이용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 베트남 정보를 굳이 책으로 볼 것까지야 없을 것 같지만, 이 책의 진면목은 작가의 따뜻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 그 자체다.
책 초반 작가는 우리가 베트남을 이해하려고 할 때 세 가지 안경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체제’라는 이름의 안경이고, 두 번째는 ‘전쟁’, 세 번째는 ‘경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은 당연히 우리에겐 외국이고, 그 곳에서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해도 이는 마찬가지다. 우리의 기준으로 그 나라를 이해하려고 하면 어떤 부분에서든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라는 (우리와 다른) 독특한 체제, 오랜 전쟁의 역사, 그리고 드러난 수치와는 차이가 있는 경제 구조와 규모 등을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베트남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일종의 우월감의 안경을 쓰고 그 나라를 바라본다. 특히 책 곳곳에 실려 있는, 한국 사람들이 그곳에서 보여주는 꼰대의식들을 읽을 때면 얼굴이 뜨뜻해진다.
문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에 손을 끼워넣어 갑자기 들어와 놓고서는 놀란 표정을 짓는 승객에게 ‘얘 놀랐나봐’라고 내뱉는 무개념의 아줌마.(그 승객은 작가의 동료 직원이었는데 심지어 한국 사람이었다. 그 아줌마는 베트남 사람에게는 ‘얘’라고 낮춰 부르는 게 일상이었던 거다) 베트남인 기사에게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서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길길이 날뛰는 한국인 사장 같은 모습들이 어디 한두 명 뿐일까.
작가는 한국인들이 그 나라에 돈을 벌러 갔다면, 그 나라에 맞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차피 우리가 그들에게 무슨 자선사업을 하러 간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그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아니라는 말이다. 잠시 왔다 가는 뜨내기가 아니라면, 최소한 그 나라의 말을 배우고, 그 나라 사들의 사고방식과 문화 등을 익히려는 모습을 좀 갖추면 좋겠다는 당연한 말이 왜 어떤 사람들에겐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지.
그리고 책을 읽다 문득 다시 떠올랐는데, 우리는 불과 50년 전에 그 나라에 총을 들고 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온 나라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가 그들로부터 무조건적인 환대와 추앙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비슷한 일을 일본에게 할 수 있을까?
소위 ‘국뽕 유튜버’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베트남 비하 영상들을 보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베트남에 대해 무지한지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돈을 쓰러는 가봤을지 모르지만, 그곳에 살면서 그 나라 사람들 가운데서 돈을 벌려고 애써 본 적은 없는 입장에 맞춰진 원색적인 비난과 조롱들... 이런 내용들이 결국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전해져서 그곳에 사는 한국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악화될 거라는 건 생각하지 못하는 건지.(비슷한 내용을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에 관한 콘텐츠에서도 볼 수 있다)
조금 내용이 무거워졌지만, 책이 무거운 건 아니다. 오히려 경쾌한 느낌까지 준다. 사이공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장면들에 관한 묘사와 감상들을 가볍게 읽어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오히려 앞에 내가 주저리주저리 써 놓은 건 매우 일부니까.
책을 읽으면서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짧은 베트남 방문 시 돌아봤던 몇몇 장소들이 다시 떠올랐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은 도시였는데 언제쯤 그런 날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