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영화는 해방 전후를 배경으로 벌어진 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주인공 석진(고수)은 마술사로우연히 만난 여인 하연(임화영)과 함께 공연을 하다가 결국 결혼에 이른다어느 날 하연이 숨기고 있던 비밀(지폐 동판)을 발견하고그녀를 쫓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된다결국 살해되고 만 아내의 복수를 위해사건의 원흉인 남도진(김주혁)을 고생 끝에 찾아냈고그의 운전기사로 취직하며 틈을 노리다 복수에 나선다는 스토리.


복수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재도 없을 것 같다또 다른 중요한 동기는 사랑인데아무래도 이쪽은 조금 더 감정적인 측면이 강한 데 반해복수는 감정 이외에도 정의의 실현이라는 또 다른 감각을 만족시켜주기도 하니까물론 모든 복수가 그런 건 아니고억울한 일을 경험했지만 누구도 그가 겪은 부정의를 해소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약자인 경우가 그렇다이 영화는 이쪽인 편.


하지만 단순히 당한 대로 돌려준다는 식의 복수는 지나치게 원초적이다. ‘작품은 이 복수의 과정을 좀 더 효과적이면서정의로운 방식으로 수행한다물론 그 과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면 흥미가 반감되겠지만괜찮은 구성을 할 줄 아는 작가와 감독이라면 이 과정을 개연성 있게동시에 정당한 통쾌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이 영화가 그랬다.






반전.

사실 영화의 초반부터 반전을 깔고 들어간다한 저택에 뛰어 들어간 형사는 그곳에서 총을 들고 있는 사내를 발견한다그리고 장면은 재판정으로 옮겨져서 살인사건의 재판이 진행된다영화는 현재의 재판장면과 과거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보여주는데어느 정도 내용을 파악한 후에는 당연히 그 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 복수에 나선 석진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다 피고의 얼굴이 확인된 순간 딱그는 도진이었다아 실패했나.


도진은 손가락밖에 남지 않은 살인사건의 재판을 받고 있었고검사와 변호사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다당연히 현재와 같은 DNA 검사 같은 기법이 없었던 그 시절최대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혈액형 정도였고시신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도진의 범죄를 입증하는 건 쉽지 않아보였다.


그렇게 재판 전망이 어두워질 무렵검사측에서 결정적인 증인을 내세운다그리고 보이는 얼굴은 석진이었다두 번째 반전석진은 교묘한 방식으로 도진이 자신을 죽인 것으로 꾸몄고자신은 다른 사람인 척 나섰던 것결국 그는 직접 그를 죽이는 대신도진을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음으로써 복수했던 것이었다통쾌한 반전이다.






원작.

영화 머리에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원작을 소개하는 자막이 언뜻 지나간다빌 벨리저의 소설인 이와 손톱이라는 작품읽어본 작품은 아니지만꽤 흥미롭게 진행되는 추리소설인 것 같다원작이 탄탄하게 받쳐주니 배우들의 연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된다이름값 있는 배우들을 잔뜩 등장시켜놓고 허술한 이야기로 망가뜨리는 영화도 적지 않으니까.


1955년에 나왔던 작품이다 보니 확실히 요새 나온 소설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전적인 추리소설들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랄까개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꽤나 추리소설을 읽어왔기에 이런 작품들이 주는 그 특유의 분위기를 만나면 살짝 설레기도 한다.


원작을 제법 우리나라의 배경에 잘 옮겨온 영화였다개봉 당시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뭐 나처럼 뒤늦게라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으니 부디 계속 좋은 작품을 만들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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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실현.


강도에게 살해되었던 어머니가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나타났다는(그게 무슨 유령이나 귀신같은 게 아니라 실제 몸을 지닌 채로흥미로운 소재의 영화알고 보니 이게 이번 한 번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세계적으로 수십 케이스 이상이 보고되고 있다는 설정까지이쯤 되면 영화에 꽤 몰입이 되기 시작한다.


각국 정보기관의 조사에 따르면그렇게 돌아온 사람들은 자신을 죽게 만들었지만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범인들을 죽이고는 자연소멸을 하고 있다고 한다와우가습에 독약을 넣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구적인 장애를 안기거나 죽여도수 천 억의 분식회계를 통해 막대한 손실을 끼쳐도 비싼 전관변호사만 구입하면 쉽게 풀려나는 나라에서정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공정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후보가 대통령까지 당선될 정도로(실제 능력에 대한 검증은 거의 없었지만공정과 정의 같은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건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불공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가장 큰 원인은 정의 실현에 대한 권한을 독점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입법행정사법부의 무능력 때문이 아닐까그리고 그렇게 현실의 문제를 초월적인 힘(영화에서 끝내 부활자들이 등장하는 매커니즘은 설명되지 않는다)을 의지해서라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정의는 구현되었나.


영화 속 돌아온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공격한다사실 영화 초반 그녀가 죽은 과정(오토바이를 탄 날치기에 의한 살해)이 나왔던 상황에서 조금은 이상하기도 했던 부분이다부활자들에 대한 외국의 정보를 토대로 경찰에서는 혹 검사가 된 아들(여기엔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가 또 얽혀있었다)을 의심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왜 다른 부활자들과 달리 어머니는 아들을 공격했을까주인공인 아들 역시 이 점이 궁금했고검사로서 이 사건을 독자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한다결론적으로 주인공은 자신도 잊고 있었던 수년 전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고시합격 소식을 들은 그날 밤친구들과 진탕 술에 빠진 주인공은 도로에 주차된 트럭을 몰고 가다가 길에 나온 아이를 치어 죽이게 된다주인공의 엄마는 상황을 눈치 채고 사건을 덮으려 나갔다가 죽은 아이의 아버지마저 죽이게 되었고결국 어머니가 죽은 건 다시 살아난 죽은 아이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어머니는 자신이 죽게 된 게 결국 아들 때문이었다고 말했던 건데... 이건 좀 억지이지 않나아들은 아들이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처벌을 받았어야 했지만어머니는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에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그래놓고서 사실상 아들 때문에 자신이 죽었다고 억지는 웬 말.





모성애.


더더욱 황당한 건그렇게 아들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어머니가정작 영화 말미 아들이 죽였던 여자 아이가 나타나 복수를 하려고 할 때그 앞에 무릎을 꿇고 사정하더라는 것이다감독은 뭔가 감동적인 걸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모성애를 여기에 끌어들인 듯한데전반적으로 보면 좀 질척댄달까 그런 느낌.


애초에 희생부활자라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한 매커니즘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서그게 이런 식으로 대충 사정한다고 금세 사라져버리기까지 한다면 설정 자체가 붕괴되는 것 같기도 하다공들여 만든 설정을 이렇게 가볍게 무너뜨리는 것도 능력이다필모를 보면 꽤 괜찮은 영화도 만들었던 감독인데 이번엔 영 감이 떨어졌던 느낌.


이런 영화는 좀 더 빠르고경쾌한 진행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기 아들이 저지른 잘못은 무조건 덮으려고 애쓰는 모성애라는 삐뚤어진 생각이 영화의 결말에까지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됐다그건 어머니의 오류로 어떤 식으로든 안고 가든지 했어야 했다모성애는 부족한 창의력을 메워주는 만능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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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22-06-1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랑 다른 건가 봅니다. ??? ‘종료되었습니다‘라는 박하익작가의 소설을 읽었거든요.

노란가방 2022-06-13 17:55   좋아요 0 | URL
아, 이것도 원작소설이 따로 있었나 보군요. 원작은 좀 더 캐릭터들이 살아있었을까요..

서곡 2022-06-1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이 고구마였던 기억이 희미하게 납니다...봉준호 감독의 마더도 참고했을 것 같아요.

노란가방 2022-06-13 17:54   좋아요 1 | URL
아 마더는... 당시 극장에서 보면서 김혜자 배우의 반전연기에 충격을 좀 받았더랬죠..ㅋ 근데 이건 그거에 비할 바가 안 되는 것 같아요...ㅠㅠ
 


미스터리 동아리.


꽤 오래 전에 이런 이름의 동아리들이 있었던 것 같긴 하다내가 다녔던 대학에는 없었지만소위 밀레니엄 세대들의 뻘짓이야 유명하지 않았던가우리나라의 경우 IMF 시대를 거치긴 했지만그래도 전반적으로 이전 세대에 비해 풍요롭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의 혜택을 물씬 받았던 이들모뎀을 통한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면서 가끔 이상한 데 꽂히기도 했던 그들.


미스터리한 심령현상을 무슨 기계로 쫓아다니겠다는 소리도 그 시절에는 흔하게 들렸었다과학과 심령술을 억지로 꿰맨 이 영화 속 주요 소재도 그런 차원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키치처럼 보이기도 하다뭐 대체로 핑계 김에 친구선후배들과 몰려다니면서 술판이나 벌이려는 얄팍한 속셈으로 모인 애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나름 낭만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요샌 고등학교에서부터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 쌓기 동아리가 유행이고대학에 들어가면 취업 동아리에만 사람들이 몰리는 상황이라니까뭐 그래도 여전히 어디든 온갖 구실을 들먹이며 딴짓에 눈이 팔린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한.


영화 소개 사이트를 보면 원작 웹툰이 존재하고그 웹툰의 경우 사운드 효과갑툭튀 효과 등 공포적인 장치 없이 오로지 흥미로운 이야기만으로 네티즌들을 사로잡은 작품이라는 소개가 붙어있다뭐 웹툰에 사운드 효과가 없는 건 당연하고갑자기 툭 뭔가가 튀어나온다는 의미의 갑툭튀역시 제한된 카메라 앵글 안쪽만 볼 수 있는 영화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애초에 스크롤을 하면서 보는 웹툰에서 무슨 갑툭튀가 가능할까.


허술한 영화 소개글처럼영화 자체도 허술하기 그지없다나름 주연을 맡은 정은지의 어색한 연기력은 둘째로 치고(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력도 그냥저냥이긴 마찬가지), 원작웹툰에는 없었다는 사운드 효과와 갑툭튀로만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짜내려고 하는 제작진의 상상력도 빈곤하기는 마찬가지다하다못해 인물들이 지니는 서사도 부족하고, ‘얘네는 하릴 없이 여기 와서 왜 이 짓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공포영화의 경우 특수효과보다 오히려 연기력이나 캐릭터 구축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편인데이 영화의 경우는 어느 것 하나 볼만한 게 없다심지어 영화 속 폐가의 귀신의 사연이라도 좀 더 제대로 묘사했다면(지나가듯 언급은 된다조금은 몰입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젊은 꼰대.


동아리 회원 중 한 남자 캐릭터가 있다성격에 좀 결핍이 있는 인물인데자신이 짝사랑 하는 동기가 동아리 회장과 사귀는 걸 알고 혼자 씩씩대다가귀신에 들려있는 그 여자 동기를 겁탈하려다 결국 귀신에게 비참하게 죽는 역이다.


시종일관 딱딱하다동아리에 새로 들어온 후배에게는 선배인 티를 못 내 안달이고사람이 죽은 폐가에 가서 술 쳐마시려는 걸 알아챈 동네 슈퍼 주인이 한 마디 하자 그걸 또 곱게 못 넘기고 꼰대티를 낸다며 욕을 해댄다그런데 정작 술판의 진행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후배들을 잡는 꼰대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거.


나이가 많다고 꼰대가 되는 게 아니고나이가 적다고 생각도 젊은 게 아니다전세계적으로 청년들의 보수화가 하나의 트렌드라고 하는데보수주의 정당심지어 극우정당이 득세하는 데는 이런 보수화된 청년들의 힘이 컸다흥미로운 건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기성 세대에 대한 반발혹은 반대의 메시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


물론 정치적 견해야 자유롭게 가질 수 있다문제는 일상 가운데서 실천은 안 되면서 입으로만 나불댄다는 것영화 속 젊은 꼰대처럼 자기가 하는 꼴은 못 보면서 남을 지적만 하는 거야 말로 꼴불견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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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흔히 마블의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모아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낸 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줄여서 MCU라고 부르지만우리나라에는 같은 영어 약자가 좀 다른 걸 가리킨다이른바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것공통적으로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주연을 맡고압도적인 하드웨어와 힘으로 나쁜 놈들을 곤죽이 되도록 때려눕힌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는 그닥 정교하지도 않다주인공은 험상궂게 생긴 외모와 엄청난 덩치를 가지고 있지만 실은 상냥하고 착하다는 반전 매력을 가지고 있고처음에는 좀 주저주저 하는 느낌이지만 일단 상대가 진짜 나쁜 놈들이라는 게 확인되는 순간 가차 없이 쓰러질 때까지 때린다나온 지 몇 년이 되어서 이제는 케이블 채널에도 심심찮게 방영되는 이 영화도 그런 MCU의 전형적인 영화다.


사실 작품성이랄 것도 없고재미라는 부분도한두 편을 보면 딱히 반전 같은 게 없을 거라는 게 뻔히 짐작된다그런데도 사람들이 꽤나 여기에 호응을 하는 이유는 뭘까그저 나쁜 놈들을 혼내주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물론 이 점은 꽤 중요한 요소이긴 하다인과응보는 우리들의 윤리적 관점을 자연스럽게 만족시켜주니까.


특히나 현실 세계에서 분명 나쁜 짓을 하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거나매우 약한 처벌만 대충 받는 시늉을 하는 일들을(주로 고가의 변호사를 구입할 경우 높은 확률도 일어나는 이벤트다자주 마주하는 상황이다 보니이런 영화적 허구에 대한 열광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그저 비틀기만 하면 작품이 나오는 것처럼 왜곡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워낙에 자주 영화판에 출몰하는 상황이라이렇게 조금은 단순하면서 분명하게 상식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영화가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마동석의 주먹.


그런데 마동석의 폭력에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그는 절대로 무기를 들지 않는다일부 장면에서 잠시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전반적으로 그는 언제나 맨손으로 상대와 싸운다상대가 칼을 들고 있어도몽둥이와 총을 들고 설쳐도 언제나 그는 주먹으로 승부한다이 과정에서 거의 항상이라고 할 정도로 부상을 입지만개의치 않고 결국 상대를 들어서 매다 꽂는다.


물론 그래도 상대에 비해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하드웨어를 지니고 있는지라오히려 무기를 들고 있는 쪽이 더 위험해 보이는 게 함정하지만 어쨌든 상대는 이쪽보다 수가 많거나무기를 들고 있거나 하니까 어느 정도 균형은 맞는다고 해야 할지도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한두 대 맞긴 하지만 시원하게 한 방을 날리는 데서 일종의 초능력자를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우리나라는 소위 정당방위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한밤 중 도둑이 들어와서 가족을 위협하더라도상대가 들고 있는 무기보다 위험해 보이는 걸 들고 공격을 하면 정당방위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어쩌면 마동석의 맨주먹은 이런 로컬 룰을 따른 건가 싶기도 하지만아마도 이 정도 파워라면 맨손으로 싸워도 정당방위를 인정받기는.. 애초에 마동석은 방어하러 찾아간 게 아니잖아.







인신매매.


영화 속 악당 역인 김성오가 연기한 기태라는 인물은 여자들을 납치해 팔아넘기는 인신매매업자다우리나라 형법의 경우 기본적으로 사람을 팔아넘기면 7년 이하의 징역같은 일이라도 추행간음결혼영리를 위해 했다면 1년 이상 10년 이하노동력 갈취성매매성적 갈취장기 적출이 목적이었다면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 규정되어 있다흥미로운 건 국외 이송즉 영화처럼 해외로 팔아넘기려고 할 경우가 따로 규정되어 있다는 건데이 역시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법에서 규정한 게 그렇다는 거고언제나 범죄자들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우리 사법가족들은 대부분의 경우 인신매매로 기소된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한 통계에 따르면 2013년에서 2020년 인신매매로 입건된 251건의 사건 중 검찰이 기소한 건 고작 9건이었고비슷한 시기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건 5건에 불과했다.(물론 이들은 다른좀 더 가벼운 죄목으로 기소가 되어 처벌을 받긴 했다)


기본적으로 사법 기관들의 인식 부족이 문제다대표적으로 지난 2014년에 뉴스에 소개되며 공분을 일으켰던 전남 신안의 염전 노예 사건이 그렇다. 60명이 넘는 지적장애인들을 감금하고 열악한 처우에서 사육하면서 강제로 염전 일을 시킨 악덕 업주들인데(당연히 10년 동안 아무런 경제적 대가도 주지 않았다), 자기들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줬다면서 무슨 자선가라도 되는 양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여 더욱 분노를 샀었다.


이 정도 대규모의 인원들이 노예 노동을 했는데당연히 지역 경찰 같은 행정당국이 몰랐을 리 없다하지만 섬 특유의 폐쇄성과 형님 동생 하며 다들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특성상 적당히 눈을 감았을 거다그럼 이들은 제대로 처벌을 받았을까아니다대부분은 기소는 되었으나 집행유예로 실형은 면했다이 악마들이 무슨 공무원 시험을 볼 것도대기업 취직을 할 것도 아니고어차피 돌아가서 다시 염전을 경영할 텐데 이게 무슨 처벌이고 타격일까.


현실이 시궁창이니마동석 같은 캐릭터가 나서서 인신매매 조직 일당을 맨주먹으로 깨부수는 장면이 통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생각해 보니 여기에 무기를 들지 않고 맨주먹만을 사용하는 게 어쩌면 더 옳았다그 찰진 타격감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 마음 속 한 구석에 있던 답답함을 깨끗하게 쓸어내 준다그의 영화가 매번 비슷비슷한 내용과 분위기전개라고 하지만답답한 현실이 훨씬 더 오래 반복되고 있는 게 더 문제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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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의 그늘.


일각에서는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는 것이 무조건 선진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여기는 듯하다하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징집을 당하고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각종 훈련을 받고 작전에 투입되고 하는 일이 부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또 복무기간이 짧은 징병제 대신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충분히 훈련받은 인원들이 군사력을 오히려 강화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정말 모병제는 만능의 해결책일까?


영화는 모병제 상황인 미군에서 타의로 전역하게 된 주인공의 비극적 상황을 그린다특수부대원으로 근무하던 제임스 하퍼는아마도 임무 중 입은 부상을 이유로 강제 전역조치를 당한다연금도 의료보험도 보장받지 못한 채 쫓겨난 그의 앞에는 그의 가족이 지불해야 할 청구서가 놓여있었고결국 그는 친구의 소개로 민간군사업체에 들어가게 된다.


업체의 보스는 자신들이 철저하게 합법적이며 정부가 직접 할 수 없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실제로는 더러운 돈을 위해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범죄 집단이었다문제는 이 업체에 일하는 이들이 모두 전직 군인들이었다는 것.


그런데 실제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많은 수의 전직 특수부대원들이 용병이 되어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그 행동들이 모두 합법적이라는 보장은 당연히 없다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졌던 불법적인 고문도 이런 업자들이 저지른 일이었다.


한 때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던 이들이 저지르는 이런 일은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라고(그들이 속았다거나돈에 눈이 멀었다는 식으로치부하면 그만일까.





결국은 돈이다.


결국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국방비라는 게 신경 쓰지 않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매년 늘어나기 마련이고그러면서도 일반인들이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당연히 가장 먼저 삭감되는 비용이 이쪽이다(최근 우리나라에서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그리고 비용을 줄이기 가장 쉬운 영역이 인건비즉 급료다.


전투에 익숙한 인원들이 제대로 된 생계 대책 없이 사회로 나왔을 때는 반드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은 얼마든지 공공의 이익을 해치거나 다른 이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문제는 대개 장기적으로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그 해결책에 대한 고민도 뒤로 미뤄지기 십상이다장기적인 문제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선거철마다 부동산과 감세 공약만 남발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게 세워질까결국 제도 안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이들의 불만은 커져만 갈뿐그렇다고 근본적으로 군대를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니...






탐욕.


영화의 흑막은 제약회사였다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막는 치료제 개발에 힘쓰던 과학자를 제거함으로써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려고 했던 것말 그대로 물질 만능주의의 끝장이다.


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건 그들이 말 그대로 흑막 뒤에 가려져있어서영화 속에는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영화에 보이는 건 희생당한 과학자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 제거임무라는 말에 속은 대원들그리고 그들을 보낸 업체의 보스 뿐.


주인공을 철저하게 희생자로만 볼 필요는 없지만진짜 탐욕의 근원은 언제나 그렇듯 완전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다진짜 나쁜 놈들은 비싼 정장에 비싼 와인을 마시면서 교양 있게 지낸다생각해 보면 그 비싼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한 일은 얼마나 사회에 유익했을까.


흔히 자본주의는 탐욕에 보상을 해 주는 제도로 여겨진다뭔가를 더 갖고자 하는 욕심이 사람을 더 부지런하게 만들고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추동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하지만 자본주의의 모순이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는 요즘이런 주장을 믿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탐욕은 발전의 동력일 수도 있지만동시에 악의 동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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